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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2일 월요일

생태어업 지키는 '슬로피시'를 아십니까

생태어업 지키는 '슬로피시'를 아십니까

황선도 2015. 06. 22
조회수 2036 추천수 0
로푸드 운동 하나로 2003년 출범, 지속가능 어업과 책임 있는 소비 중점
남해 죽방멸치가 대표적 예, 독살과 원담 등 전통어업의 가치 새롭게 주목

1280px-SlowFoodThera06676.jpg» 슬로푸드 운동의 일환으로 지속가능하고 책임 있는 수산물의 소비를 추구하는 슬로피시 운동이 눈길을 끈다. 사진은 슬로푸드 운동의 상징물인 달팽이.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요즘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이른바 ‘먹방’이라 부르는 먹는 요리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방송인들이 출연하여 현지에 다니면서 이 계절에는 어디에 가면 무엇이 맛있다는 둥, 요리 쉐프가 나와 어떻게 음식을 만들고 어떤 영양분이 풍부하여 몸에 좋다는 둥, 심지어는 어느 식당의 음식을 평가하는 맛집 투어까지 온통 먹는 것에 관심이 높다.
 
다른 한편에서는 제철 음식이니 로컬푸드(Local food)니 슬로푸드(Slow food)니 하는 용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이럴진대 어느 모임에 가서 품위 있게 한자리라도 끼려면 새로이 대두하는 먹을거리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할 정도이다.
 
슬로푸드란 패스트푸드(Fast food)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지역의 전통적인 식생활 문화나 식재료를 다시 생각해보는 운동 또는 그 식품 자체를 가리킨다.

Bruno Cordioli 600px-Carlo_Petrini.jpg» 슬로푸드를 제창한 카를로 페트리니. 사진=Bruno Cordioli, 위키미디어 코먼스
 
슬로푸드 운동은 1986년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에 있는 작은 마을 ‘브라’에서 ‘고라’라는 식생활문화 잡지의 편집자였던 카를로 페트리니가 이탈리아 풀뿌리문화 부흥운동 조직인 아르치(ARCI)라는 여가·문화협회의 한 부문으로 ‘아르치·고라’라는 음식 모임을 만든 것이 출발점이 되었다.
 
1980년대 중반 로마의 명소로 알려진 에스파냐 광장에 맥도널드가 문을 열었고, 이 패스트푸드가 이탈리아의 식생활 문화를 망친다는 위기감이 들면서 급기야 전통 식생활 문화를 지키자는 슬로푸드 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슬로푸드 운동’을 ‘안티 맥도널드 운동’으로도 부른다.
 
패스트푸드에 반기를 들고 정성이 담긴 전통음식으로 건강한 먹을거리를 되찾자는 취지에서 발생한 슬로푸드 운동은 이후에 사람들이 “미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전통식, 소박한 식재료, 유기농, 건강에 좋은 것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시선을 끌게 되었다.
 
Jan-Tore Egge 640px-Patata_rossa_di_Cetica.jpg» 슬로푸드 식재료인 다양한 품종의 감자와 과일. 사진=Jan-Tore Egge, 위키미디어 코먼스 
  
슬로푸드 운동은 1989년 파리에서 결성된 국제 슬로푸드 협회 설립대회에서 “사람은 기뻐할 권리가 있다.”라는 개념의 슬로푸드 선언을 계기로 국제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여 현재 전 세계 160개 이상의 국가에서 10만명이 넘는 회원과 100만명이 넘는 후원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2000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슬로푸드 운동은 2007년부터 ㈔슬로푸드문화원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2014년 5월에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가 출범하여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은 단순히 좋은 음식인 슬로푸드를 먹자는 운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 속에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생겨난 다양성 감소, 지속가능성 저하에 대응하는 운동이다. 슬로푸드 운동에서 말하는 슬로푸드는 ‘좋은’, ‘깨끗한’, ‘공정한’ 음식을 말한다.
 
좋은 음식은 맛과 풍미가 있으며, 신선하고 감각을 자극하며 만족시키는 음식이다. 깨끗한 음식은 그것의 생산이 생태계와 환경을 해치지 않으며, 건강을 위협하지 않도록 생산된 음식이다. 공정한 음식은 먹을거리를 생산한 생산자들의 노고를 인정하고, 그것에 합당한 가격을 지급한 음식이다.

david silver_640px-Victory_gardens_at_slow_food_nation.jpg»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설치된 슬로푸드 네이션. 도심 채소밭이다. 슬로푸드를 내세운 다양한 활동이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진=david silver,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러한 슬로푸드 운동은 주로 농업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농업이 없이는 먹을거리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슬로푸드 운동에서는 공장 수준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산업형 농업이 땅을 망가뜨리고, 물을 오염시키고, 종자를 사라지게 하며, 농민들의 설 자리를 잃게 해 지역농업의 기반을 붕괴시키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슬로푸드 운동이 현대의 공장식 축산, 공장식 어업으로 인해 지속가능성이 위기에 몰리고 있어 이에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축산과 어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즉, 공장식 축산에 대한 대안으로 자연 축산을 제시하고, 소비자들이 동물성 고기를 적게 먹을 것을 권하고 있다. 또한, 공장식 어업에 대한 대안으로 ‘슬로피시(Slow fish)’를 주창하고 있다.

slowfish.jpg» 슬로피시 캠페인 포스터들.  
 
슬로피시는 지속가능한 어업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소비자들의 책임 있는 수산물 소비를 지향하는 개념이자 국제행사를 일컫는데, 국제행사는 2003년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처음 열린 후 홀수 해마다 열린다.
 
이 행사에는 어업 공동체와 수산 관계자들이 모여 점점 더 고갈되는 해양식량자원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바다의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한 국제적인 캠페인을 펼치며, 수산자원 관련 회의, 워크숍, 미각체험, 요리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슬로피시는 민간과 공공기관의 거버넌스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데, 기획이나 컨텐츠 개발은 슬로푸드 운동이 담당하고 있다.
 
slow fish4.jpg» 2015 슬로피시 대회 포스터. 
 
최근 슬로푸드 생물다양성재단의 슬로피시 활동도 주목된다. 이 재단은 최근에 23개 어업 공동체와 함께 23개 프레시디아(생산자 활동지원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생선이 점점 더 확산하고 있다.
 
좋은 생선이란 우리의 감각을 만족시키는 신선하고, 맛있는 제철 생선으로 지역의 문화와 연관된 것을 말한다. 깨끗한 생선은 환경과 인간의 건강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생산한 것을 말한다.
 
공정한 생선은 소비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가격이고, 소규모 생산자나 작업자들에게 온전한 작업 및 생활을 제공해줄 수 있는 소득을 보장해주는 가격을 지급한 생선을 말한다.

slow1.jpg» 잘 보전된 바다는 슬로피시의 터전이다. 사진은 전통어법인 죽방렴이 이뤄지고 있는 남해 연안 모습이다. 사진=황선도
 
최근 식량 자원 공급과 관련해서 바다와 갯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연안 난개발과 갯벌 오염 그리고 과잉 양식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에서도 슬로피시에 대한 관심과 정책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녹색혁명을 넘어 청색혁명(blue revolution)에 주목하고 있다. 청색혁명을 통해 수산물 공급에 대한 기대감이 크며, 엄청난 자원의 보고인 바다와 갯벌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01744628_R_0.JPG» 남해 창선교에서 바라본 죽방렴. 죽방렴은 길이 10m 정도의 참나무로 된 말목을 갯벌에 박아 만든 원시적 어업도구이다. 밀물 때 원통에 들어간 물고기는 썰물 때 나오지 못한다. 사진=고나무
 
식량자급률이 47%, 곡물자급률이 23%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경우 바다로부터 생산되는 식량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잡는 어업에 비해 기르는 어업이 여러 면에서 효율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식에 의한 바다와 갯벌 접근은 식량자급률을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슬로푸드 운동이 제안하는 슬로피시는 중요한 정책방향을 제시해 준다. 그것은 지속가능한 어업과 소비자들의 책임 있는 수산물 소비이다.
 
slow2.jpg» 대나무 그물(죽방렴)에 갇힌 멸치를 잡아내고 있는 어민. 사진=황선도  
 
우리나라 슬로피시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전통어업인 죽방렴과 그 어업으로 생산된 품질 좋은 멸치가 주목을 받았다. 2001년 포르투칼 포르토에서 열린 슬로푸드 시상대회에서 경남 남해 창선에서 죽방멸치를 생산하는 류광춘씨가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전통적인 어획방법을 지키면서 품질 좋은 멸치를 생산하고 있는 공적이 인정되었던 것이다. 당시 슬로푸드 리더들에게 죽방멸치 그리고 그 멸치로 만든 멸치젓을 소개했는데, 이를 맛본 사람들 모두 고품질의 멸치와 그 맛에 감탄했다. 죽방렴과 죽방멸치가 보여주듯이 우리나라는 이미 전통적으로 슬로피시를 갖고 있다.

남해의 죽방렴은 대나무로 발을 쳐놓고 조석에 의한 밀물과 썰물에 따라 헤엄치다가 걸린 물고기를 잡는 어법으로, 이와 같은 원리의 어법이 서해나 제주에도 있다. 서해 갯벌에 있는 독살이 그것이다. 돌로 부챗살처럼 살을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slow3.jpg» 충남 태안읍 파도리 독살. 사진=황선도 

slow4.jpg» 충남 무창포 해수욕장 독살. 사진=황선도
 
요즘 유행하는 제주 올레투어를 할 때 골목길에서 볼 수 있는 ‘돌담’이 강한 바람으로부터 집과 작물을 보호해 준다는  것쯤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다. 밭 한가운데 있는 무덤가에도 돌담이 있고, 산 중턱에 가도 돌담이 있는데 이를 산에 있다 하여 ‘산담’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제주에는 들과 산에 돌담이 있는데, 그렇다면 바다에도 돌담이 있을까? 바다에도 돌담이 있다. ‘원담’이 그것이다. 원담이란 돌을 둑처럼 야트막하게 쌓아 놓고 밀물 때 바닷물과 함께 휩쓸려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물을 타고 빠져나가다가 엉기성기 쌓인 돌담 사이로 물은 빠져나가고 고기가 걸리게 한 돌 그물이다.

slow5.jpg» 제주 한림읍에 있는 금능원담. 사진=황선도 

slow6.jpg» 금룽원담에서 돌 그물에 갇힌 물고기를 잡아내는 어민. 사진=황선도
 
원담을 처음 만들 때에는 어촌계 사람들 모두가 함께 무거운 돌을 하나하나 맞잡아 옮기고 쌓았을 것이다. 지금은 그 엄청난 일을 맨손이 아닌 굴착기로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으니 그 시기에 많은 노동력을 제공했던 것이 다소 미련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노동생산성을 고려하면 답 안 나오는 행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원담은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긴 했어도 한번 시설해 놓으면 선박 기름값이나 소모품인 그물 값이 들지 않으니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이득일 수 있으니 자연순응적인 생태어업이 경제성도 있음을 입증한 셈이다.
 
우리는 이들을 전통어업 또는 생태어업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먹고살려고 했던 자연발생적인 고기잡이며 자연순응적인 어업이라는 의미이다.
 
요즘 먹을거리 관점에서 보면, 이들 어업에 의해 잡힌 물고기는 슬로피시에 해당한다. 즉, 현대사회에서 이문을 남기려고 빠르게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장식 먹거리를 과거 전통방식으로 자연에 순응하여 그리고 소비자와 가까운 생산지에서 얻어낸 수산물인 것이다.
 
지속가능성이 위기인 시대에 슬로피시는 미래의 어업이고 미래의 식량자원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생선도 그냥 생선이 아니라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생선이어야 한다. 앞으로 슬로피시를 지향하는 정부의 정책과 소비자의 슬로피시 실천을 유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시스템 키친이 아무리 화려해도 요리의 즐거움이 되살아나지 않고, 재빠르고 영양이 넘치고 기름진 식탁에도 우리 가족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먹을거리의 그늘이다. 먹을거리가 비록 우리 삶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우리의 삶을 지속시켜 주고, 우리 삶의 질을 높여주는 의미에서 음식은 매우 중요하다.
 
국제 슬로푸드 운동 선언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인류는 종이 소멸하는 위협에 처하기 전에 속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속도와 효율성에 도취한 흐름에 전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느리고 오래가는 기쁨과 즐거움을 적절하게 누려야 한다. 이러한 우리의 방어는 슬로푸드 식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어류학 박사

이 기사는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이 발행하는 잡지 <Sea Geographic>에 필자와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이며 국제 슬로푸드 한국협회 회장인 김종덕 님이 함께 기고한 것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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