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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8일 목요일

위기가 왔을 때 진짜 실력이 나온다


이진우  | 등록:2015-06-18 12:36:34 | 최종:2015-06-18 13:07:17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김무성 대 문재인 구도였던 여야의 중심축이 메르스 파동을 겪으면서 박근혜 대 박원순 구도로 개편되었습니다. 삼성서울병원을 비롯 감염 경로 상에 놓여있던 병원 이름을 정부가 공개한 것도, 정부, 지자체 및 여야 정당이 혼연일체가 되어 방역에 힘을 쏟게 된 것도, 모두 그 단초는 박원순이 열었죠. 지금 정치권은 어떻게든 메르스를 진정시켜보겠다는 박원순과, 어떻게든 메르스를 잊게만들겠다는 박근혜가 극명한 콘트라스트를 이루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여야의 중심인물로 부각되었던 김무성과 문재인은 그야말로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김무성은 박근혜와 유승민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고 있고, 문재인은 박원순과 김상곤 뒤에 숨어서 소심한 훈수만 두고 있습니다. 국민의 안전과 후생은 박원순에게 선수를 빼앗겼고, 당의 개혁과 쇄신은 김상곤에게 총대를 메게 하고 숨어서 추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와 경제가 더 큰 혼란과 불안 속으로 들어갈 확률이 매우 높은 만큼 이들이 다시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잇단 악재가 겹치고 있는 여당이지만, 나름대로 얻은 것도 있습니다. 다름 아닌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재발견입니다. 박근혜 대 박원순의 극강 대결 속에서 합리성과 포용력으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야당 부지사를 임명한 것도, 서울시와의 유기적 협력 체제를 이끌어낸 것도, 여당 및 정부 책임자들과 부드러운 소통을 하며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것까지. 비록 박근혜와 박원순의 대결 프레임에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여당 내에서 가장 돋보이는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리더십의 등장입니다.
야권 인사 중 가장 대표적인 ‘삼성 장학생’이라고 할 수 있는 박원순이 삼성서울병원과의 일전을 촉발한 당사자라는 것도 대단히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마치 전두환-노태우와의 3당 통합을 주도한 김영삼이 대통령 취임 후 이들을 법정에 세워 5.18의 책임을 물어 단죄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죠. 재벌 눈치를 보느라 우왕좌왕하던 정부와 여당에게 보란 듯이 어퍼컷을 날린 박원순의 모습에서 승부사의 기질을 엿보게 됩니다. 2011년 안철수와의 담판이 어쩌면 안철수의 ‘아름다운 양보’가 아닌 박원순의 ‘강력한 투쟁’의 산물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파이팅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야권 입장에서 볼 때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한 슈퍼 히어로와 같은 존재죠.
우리가 흔히 역사의 라이벌이라고 하는 김영삼과 김대중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들의 우열을 확연히 가르게 만든 것은 바로 위기입니다. IMF 외환위기를 처음 겪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김영삼은 갈수록 수렁으로 빠져들었고, 김대중은 갈수록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두 사람의 능력 비교는 위기 국면을 통해 쉽고도 싱겁게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위기가 되고 나서야 그 사람의 진가를 확인하는 순간이죠. 그리고 그것이 역사에 그대로 기록되지요.
위기 국면이 되고 나서야 보이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누가 당파적 사익을 위해 뛰고 있는지, 누가 초당적 공익을 위해 뛰고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박근혜와 친박은 메르스 파동이라는 국가적 위기 국면 속에서도 오로지 당파적 사익만을 위해 뛰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줬습니다. 유승민을 비롯한 비박과 그 뒤에 숨은 김무성도 친박과의 주도권 싸움에 몰입해있다는 점에서 ‘도찐개찐’ 상황입니다.
그 눈을 야권으로 돌려보아도 문재인은 오로지 친노의 안위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한 갈지자 행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를 공격하고 있는 박지원과 조경태도 메르스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당의 헤게모니 장악에만 마음이 있는 것 같더군요. 김상곤과 조국이 중심이 되어 있는 혁신위원회도 마치 경치 좋은 곳에 소풍 나온 팔자 좋은 한량들처럼 국민 눈에 비춰집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록 그 스타일이 강하냐 부드러우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박원순과 남경필은 당파적 사익이 아닌 초당적 공익을 위해 뛰고 있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주고 있지요. 박근혜 정권 후반기의 차기 대권구도가 어찌 되었건 이 두 사람 중심으로 흘러갈 것 같다는 예감을 하는 것이 너무도 성급한 분석일까요? 다이내미즘이 넘쳐나는 한국정치에 있어서 예측은 금물이지만 위기 속에서 드러난 진가이기에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박원순과 남경필… 앞으로 주목해야 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이진우 /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KPCC)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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