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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0일 수요일

"전작권 환수 두려워 한 장군들 이라크군보다 못한 한국군 만들어"


15.06.10 21:22l최종 업데이트 15.06.10 21:2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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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1월 24일 오전 전날 오후 발생한 북한의 포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연평도 주택가의 모습.
ⓒ 해양경찰청 제공

2010년 11월 23일,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으로 북한군의 포탄이 우리 영토에 떨어졌다. 이 공격으로 해병대원 2명이 전사하고 16명의 군인이 중경상을 입었다. 민간인도 2명 사망했다.

이 시각 우리 군 수뇌부는 '우리 마음대로 북한을 공격해도 되는지'를 두고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합동참모본부의 고위 장교들은 "미국에 협조를 구해야 한다"는 쪽과 "우리가 단독으로 결정하면 된다"는 쪽으로 양분되었다.

자위권이냐, 교전규칙이냐를 놓고 허둥지둥하던 군 수뇌부는 상황이 다 끝난 뒤 전투기로 보복공격을 할 수 있는지도 판단할 수 없었다. 한민구 당시 합참의장이 "국지전에서 전투기로 타격하는 것이 교전규칙 사항인가, 아니면 한국 정부가 자위권 차원에서 독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인가"를 한미연합사에 물었고, 1주일 뒤에야 "한국정부가 자위권 차원에서 결정할 일"이라는 답신을 받았다.

이 일을 놓고 한미연합사 정보작전부장 존 맥도널드 소장은 불같이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이라크전에 참전했다. 이라크의 신생 군대도 자기 목숨이 걸린 상황이 되면 스스로 판단한다. 그런데 어제 합참에서 뭘 해도 되느냐는 전화가 매 시간, 매 분 수도 없이 왔다. 어떻게 한국군이 이라크 군보다 못하단 말인가?"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한국군 수뇌부가 보여줬던 난맥상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런 군대가 과연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군사평론가 김종대 <디펜스 21 플러스> 편집장이 최근에 펴낸 <위기의 장군들>(메디치)은 이런 의구심과 관련한 우리 군의 불편한 진실들을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

김 편집장은 "한·미 연합방위체제는 끊임없이 진화해왔지만, 한국전쟁 때 마련된 규범들은 여전히 그대로다, 변화된 체제에 맞는 규범체계가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미군에 의존적인 한국군 장교들은 자신의 임무환경에 전혀 맞지 않는 규범을 적용받고 있다"면서 "이런 문제점들이 실전 상황을 통해서야 확인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편집장은 "군의 미래를 결정할 전작권 전환과 같은 중요한 사안에 있어서 한국군 장군들이 보여주고 있는 견해의 획일성은 맹목적으로 한 가지 이데올로기를 추종한 결과"라면서 "이런 모습은 정신적인 빈곤함의 또 다른 모습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김 편집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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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대 편집장 김종대 <디펜스 21 플러스> 편집장은 한반도 평화와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한국군 장교단의 폐쇄적 군사문화를 비판했다.
ⓒ 김도균

- 권력과 진급을 향한 별들의 전쟁이라는 부제 아래 '항명' '원한' '변신' 등 29개의 키워드를 뽑아 책을 구성했다.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지금 한국군대를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마키아벨리즘'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군인이 공적인 존재이고, 국가의 공적인 가치를 추구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인간이다.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 위에 군대가 작동하고 있다. 지위 경쟁의 당사자로서 공적가치와 인간적 욕망 사이에 끊임없는 긴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선한 존재도, 악한 존재도 아니고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가르치지 않았나.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은 군대, 결국은 권력을 향한 진급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지상 과제로 자리 잡은 한국군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목적만 정당하다면 수단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고 제창했던 마키아벨리로 보는 것이다."

"한국군 하면 떠오르는 것? 별로 없다"

- 이 책을 읽으면서 꽤 불편해 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명을 언급하기 때문에 내가 책이나 글을 쓰면 앓아눕는 예비역 장군들이 꼭 한두 명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자연적으로 치유되고,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관계로 강화되더라. 사실 <위기의 장군들> 같은 경우에도 불편해 할 사람들은 꽤 있다. 장군들의 세계는 보호 받아야 되고, 자기들만이 공유해야 되고, 국가 안에서 존중 받아야 된다고들 생각하는데, 나는 이 이미지들을 다 해체해버린다. 그랬을 때 남은 밑천이 뭔가에 대해 장군들은 두려워한다.

독일군 하면 떠오르는 '혁신을 잘하는 군대', 이스라엘하면 '생존을 위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장교집단'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한국군은 뭐가 떠오르나? 별로 없다. 이러니 자신들 세계가 해체되고 해부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외부의 자극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것은 정신적으로 빈곤한 집단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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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장군들>, 김종대 저.
ⓒ 메디치
- 이 책에서 참여정부 당시 전시작전권(아래 전작권) 환수 문제를 놓고 미국과 밀고 당기는 협상장면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한국군의 빈곤한 정신세계가 나타난 한 단면으로 봐도 괜찮은가.
"전작권 환수와 같은 우리 군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사안에 대해 한국군 장군들이 가지고 있는 견해의 획일성은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 데서 기인한다. 장군들이 내는 목소리는 겉으로는 일치 단결된 의지의 표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맹목적인 한 가지 이데올로기를 추종하고 있는 정신적 빈곤함의 또 다른 모습에 불과하다.

전작권 환수에 대한 우리 군의 모습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방황'이다. 오랫동안 자기 군대를 지휘해보지 못한 자신감의 부족, 전통과 역사 없는 군대가 새롭게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자 정신이 붕괴되고 방황하는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 사실 군대의 패러다임 전환은 다른 어떤 집단보다 어려운 일이다."

- 방황하는 근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전 세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기 군대는 스스로 지휘하겠다는 이런 본성에서 위배된 군대를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군인의 본성을 이데올로기가 가로막고 있을 때, 정책을 다루는 핵심 장교들은 방황할 수밖에 없다. 전작권을 한국군이 행사한다고 해도 나라가 망하는 일은 절대 없고, 우리 군대가 파산될 위험도 전혀 없다. 오히려 새로운 패러다임을 능력을 고양시키는 좋은 계기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한미동맹이라는 이데올로기, 이 패러다임은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 기존의 장군들이 살아 있는 이상 후배 장교들은 여기에 절대로 도전하거나 일탈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군의 원로, 선배 장군들이 사라져야 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본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모든 아버지는 죽는다, 아들의 시대를 열어주기 위해서'라는 대사처럼, 아버지는 아들의 시대를 열기 위해 사라져줘야 한다."

- 군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시대를 앞서서 끌고 갈 수 있는 자신감이 없을 때, 남이 만든 역사에 주석만 붙일 수밖에 없다. 이데올로기에 포로가 된 군대, 방황하는 군대는 이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니 항상 안보는 보수언론이 선동을 하고 군은 뒤늦게 대책을 내놓는 행보를 보이는 것 아닌가.

북한에 새로운 게 뭐라도 나타났을 때, '기존의 군사력으로는 대책이 없다'고 보수언론이 선동하면 군은 뒤늦게 대책을 내놓았다. 무인기 대책을 왜 세워야 하는가? 그것은 <조선일보>가 선동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지금 한국군은 보수언론이 만들어 낸 여론이라는 괴물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면서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대책만 내놓는 집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런 군대는 역사를 만들 수 없다."

"아웃소싱 되어 있는 한반도의 위기관리... 한미동맹의 '덫'"

-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때 한국군 수뇌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허둥지둥했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이런 난맥상의 원인이 무엇인가.
"비정상적 지휘체계 때문이다. 연합방위 체제는 끊임없이 진화해왔지만, 규범은 다 옛날 것이다. 예컨대 유엔사 정전시 교전규칙은 지난 1994년 우리가 평시작전권을 돌려받은 후로도 고치지 않았다. 한국군 장교들은 자신의 임무환경에 전혀 맞지 않는 규범을 적용받고 있다. 이런 것들이 실전 상황을 통해서야 확인된 것인데 왜 평소에 확인할 수는 없을까? 답은 간단하다. 한미동맹은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니까.

연평도 포격전 때는 우리가 전투기로 대응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대통령과 국방장관, 합참의장, 주요지휘관들이 일주일 동안이나 논쟁을 했다. 이게 자위권 사안이냐, 교전규칙 사안이냐를 놓고 헷갈리니까, 국방부는 대학교수에게 연구용역을 주겠다고 브리핑했다. 그러면 앞으로 전쟁이 터지면 대학교수, 변호사 불러놓고 쏠까, 말까를 물어봐야 하겠네. 자율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한반도의 위기관리, 전쟁에 관한 문제는 우리 영역이 아니라는 인식 속에서 이 문제가 다 아웃소싱 되어 있다가 막상 우리가 위기를 관리해야 할 시점에서는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눈앞이 하얗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동맹의 덫'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보수 정부는 그렇다 쳐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은 대체 무얼 했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군 개혁은 보통 20년 앞을 내다보고 장기계획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전후임 정권이 서로 협력해야 성취되는 초(超)정권적인 과업이지, 한 정권이 열심히 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란 말이다. 김대중 정부는 IMF라는 국가재정 위기 속에서 국방비를 증액시킬 수 없으니, 연구개발비를 대폭 증액했다. 지금 당장의 현존 군사력이 늘어나지 않아도 미래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국방투자로 패러다임을 전환시켰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전작권을 전환하고 장기 국방개혁 방안을 세우되, 거기 수반되는 비용을 충분히 마련해 줌으로써 군이 스스로 개혁의 길로 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자는 차원에서 개혁을 추진했다. 군에 있어서는 매우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 중 국방개혁안을 완결 짓지 못하고, 다음 정권의 숙제로 물려주는 순간 즉각 변질되고 말았다. 개혁의 목표를 훼손하지 말고 관리만 잘했어도 되는데 정말 안타깝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국방예산이 사실상 삭감되고, 당장의 안보위기에서 군대가 위신을 세워야 한다는 절박한 처지로 군이 내몰렸다. 그러다보니 장기적 안목에서 '군사력의 미래상'이란 관점을 놓치기 시작했고, 현상유지 또는 체념적인 군대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는 아예 국방개혁이란 말이 사라졌다.

군인들이 정치적 환경이 바뀌었다고 자신들이 세웠던 개혁의 목표를 스스로 헌신짝처럼 버린 것은 아마 앞으로 20년 이상 군대를 불행하게 만드는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다. 결국 박근혜 이후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개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군인들 자신을 군인들이 배신한 셈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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