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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8일 수요일

언어와 마음이 통하는 한국어교육, 출발!

 

언어와 마음이 통하는 한국어교육, 출발!

- 경상북도교육청경주한국어교육센터 제2기 위탁학생 예비 교육 실시 -

유성옥기자  | 기사입력 2023/06/29 [04:28]

[한국아이뉴스/경북 경주시] =유성옥기자= 다문화학생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한국어교육을 통한 공교육 적응 지원을 위한 전국 최초, 한국어교육 중점 공립형 대안교육 위탁교육기관인 경상북도교육청경주한국어교육센터가 6월 28일(수) 제2기 위탁학생 78명을 대상으로 예비교육을 실시했다.

 

▲ 경상북도교육청경주한국어교육센터 제2기 위탁학생 예비 교육 실시  © 유성옥기자


2023년 7월 3일부터 10월 20일까지 3개월 기간으로 운영되는 제2기 과정에는 다문화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흥무초를 비롯한 초,중12개교의 중도입국학생 및 외국인가정자녀 78명이 신청하여 1학급 10명 내외 8개 학급으로 구성하여 수준별 수업이 이루어진다.

 

이번 실시된 제2기 위탁학생 예비교육은 학생과 학부모, 인솔교사 등 1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경주한국어교육센터의 교육과정(수업내용 및 평가), 스쿨버스 운행, 생활규정 안내와 예비생들과의 즐거운 레크레이션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김시용 센터장은 “지난 1기 운영의 강점을 부각하여 3개월 위탁기간 동안 맞춤형 교육프로그램을 통한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으로 외국인학생의 초기 학교 적응력 제고 및 학교부담 감소에 기여하길 바란다.” 라고 소감을 말했다.




2023년 6월 27일 화요일

포천시 ‘드론작전사 배치 반대’...국방부 “확정 안돼”

 


  • 기자명 이광길 기자 
  •  
  •  입력 2023.06.2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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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정부가 ‘드론작전사령부령’을 제정·공포했다. 

“북 무인기 침투(’22.12.26.) 및 현대/미래전의 드론 무기체계 활용 확대, 국방혁신 4.0 기본계획 상 드론작전사령부 창설(’23년)계획 등 합동드론부대 창설 필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드론작전사령부 창설을 위한 부대의 설치와 임무, 사령관등의 임명과 직무, 정원 등에 관련된 사항을 정하려는 것”이다. 창설 예정일은 9월 1일이다. 

문제는 사령부가 들어설 지역 주민들이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천시의회 드론작전사령부 주둔 반대 및 6군단 부지반환 특별위원회’(드론작전사 반대 특별위)는 지난 21일 성명을 통해 “무성한 소문과 추측이 난무하던 ‘드론작전사령부 포천 배치설’이 결국 정부의 일방적, 암묵적인 추진에 따라 기정사실화됐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대통령의 드론작전사령부 창설 지시 이후 포천 배치가 기정사실이 된 이 상황까지 정부는 사령부 배치에 따른 직접적 피해자인 우리 시민의 의견을 물을 노력도, 들을 노력도 전혀 하지 않았다”면서 “국가 안보라는 미명 하에 일방적, 암묵적으로 결정했고, 우리 시민에게 그저 순응하고 응당 희생할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드론작전사 반대 특별위’는 ‘7월초 포천 거주 18세 이상 1천 명 대상 여론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구체적 조사 일정과 문항은 위원회 차원의 회의,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확정·공개된다.

27일 브리핑하는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 [사진 갈무리-e브리핑]
27일 브리핑하는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 [사진 갈무리-e브리핑]

27일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은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아직 어느 곳에 드론작전사령부가 창설될지가 확정된 건 아니”라며, “후보지로 검토되는 부분이 있고 그 지역 주민들께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으신 것으로 생각하는데, (...)지역 주민들께서 혹시 우려하시는 부분은 잘 설명하도록 하겠다”고 대답했다.

“확정되면 그 지역 지자체 또 여러 주민대표들과 아마 협의를 하게 될 것”이라며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서 부대 창설을 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전 대변인은 “현재 드론작전사령부 창설 지역은 세부적으로 검토가 되고 있기 때문에 어디다, 라고 확정되지는 않(았다)”면서 “일부 언급되는 지역들, 또 그 외 지역들도 같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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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6일 월요일

억울함을 풀기 위한 노래,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한 춤짓

 


대전민예총 ‘제2회 골령골 평화예술제’ 개최

  • 기자명 대전=임재근 객원기자 
  •  
  •  입력 2023.06.27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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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주기 대전 산내 학살 사건 피학살자 합동 위령제’를 하루 앞두고 전야제 성격의 ‘골령골평화예술제’가 개최됐다.

(사)대전민예총(이사장 이찬현)은 6월 26일(월) 저녁 7시 30분, 작은극장 ‘다함’(대전 동구 가오동)에서 지역의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제2회 골령골 평화예술제’를 열고,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지난해에는 위령제가 있던 날 저녁 골령골 현장에서 개최됐지만, 올해에는 전야제 성격으로 하루 앞서 진행했다. 또한 장소도 당초 골령골 현장으로 예정했으나, 전국적으로 장마권에 접어들면서 우천으로 인해 급히 장소를 실내로 옮기게 됐다. 급히 장소가 변경되었지만, 평화예술제를 찾은 시민들은 극장을 가득 채웠다.

골령골 평화예술제는 대전민예총에 참여하고 있는 지역의 각계 문화예술인들이 각자의 재능으로 만들어갔다.

‘제2회 골령골 평화예술제’가 6월 26일 저녁 7시 30분 작은 극장 ‘다함’에서 개최됐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제2회 골령골 평화예술제’가 6월 26일 저녁 7시 30분 작은 극장 ‘다함’에서 개최됐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평화예술제 예술 감독을 맡은 대전민예총 연극위원회 김황식 감독은 “우리의 역사는 민간인 수천명을 억울한 주검으로 골령골에 파묻고 가족들의 삶고 함께 묻어 짓밟아 온 세월”이며, “학살자들은 영웅이 되어 떵떵거리며 활개 친 세상, 그 억울함을 그 한을 그 사실을 골령골에 묻어 놓고 우리에게 망각을 강요한 미친 세월의 역사”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2회 산내 골령골 평화예술제는 그 기억을 되찾기 위한 자리”라며, “억울함을 풀기 위한 노래이며,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한 춤짓”이라고 말했다. 또한 “하루 빨리 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외침”이라고 덧붙였다.

한기복 명인의 대북 소리에 맞춰 한항선 작가가 붓으로 무대 배경대를 완성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한기복 명인의 대북 소리에 맞춰 한항선 작가가 붓으로 무대 배경대를 완성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맨 처음 무대에 오른 이들은 음악위원회 한기복 명인과 미술위원회 한항선 작가였다. 한기복 명인의 대북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한항선 작가는 붓을 들고 무대에 올랐다.

한 작가는 ‘골령골 평화예술제’라는 글씨가 쓰여 있던 무대 배경에 북소리에 맞춰 붓질을 하기 시작했고, 골령골 산능선 아래 노란 달맞이꽃과 파란 나비 등이 그려지면서 어느 순간 멋진 배경대가 완성됐다.

이어진 무대는 가운데 긴 봉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의 천이 펼쳐진 상태에서 천을 서로 엇갈려 돌면서 엮어 가는 단심줄 감기였다. 대전민예총 교육위원회 소속 구성원들이 소리를 하는 동안 대전평화합창단 단원들이 무대에 올라 단심봉과 천을 잡고 노래 소리에 맞춰 천을 천천히 감아갔다. 단심봉을 중심으로 단단히 묵인 천들은 무대의 기둥이 되어 무대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살아살아 괴롭구나’라는 제목의 탈극이 공연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살아살아 괴롭구나’라는 제목의 탈극이 공연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제2회 골령골평화예술제’에서 정진채 가수는 ‘골령골 산허리’와 ‘서시’를 노래했고, 김희정 시인은 ‘여기에’를 낭송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제2회 골령골평화예술제’에서 정진채 가수는 ‘골령골 산허리’와 ‘서시’를 노래했고, 김희정 시인은 ‘여기에’를 낭송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이어 연극위원회 성원들은 ‘살아살아 괴롭구나’라는 제목으로 탈극을 선보였고, 정진채 가수는 ‘골령골 산허리’와 ‘서시’를 노래했다. 특히 ‘골령골 산허리’는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신순란 유족의 사연을 담은 가사에 정진채 가수가 작곡한 곡이다. 이어 김희정 시인은 자신의 시 ‘여기에’를 낭송했다. 김희정 시인이 시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정진채 가수는 기타로 배경음악을 연주해주었다.

대전민예총 외 단체들도 무대에 오르면서 골령골 사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노래와 그 사건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한 춤짓에 동참했다. 노래모임 ‘놀’과 대전평화합창단은 노래 공연을 했고, 대전댄스보컬학원 랩퍼 최진리와 빅버스트는 산내 골령골 사건의 내용을 담은 랩과 함께 춤 공연을 펼쳤다.

노래모임 ‘놀’이 ‘제2회 골령골평화예술제’에서 노래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노래모임 ‘놀’이 ‘제2회 골령골평화예술제’에서 노래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대전평화합창단이 ‘제2회 골령골평화예술제’에서 노래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대전평화합창단이 ‘제2회 골령골평화예술제’에서 노래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대전댄스보컬학원 랩퍼 최진리와 빅버스트는 산내 골령골 사건의 내용을 담은 랩과 함께 춤 공연을 펼쳤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대전댄스보컬학원 랩퍼 최진리와 빅버스트는 산내 골령골 사건의 내용을 담은 랩과 함께 춤 공연을 펼쳤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평화예술제의 마지막은 앞서 묵었던 단심줄을 풀어내면서 넋푸리로 마무리했다.

평화예술제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무대로 올라 장단과 소리에 맞춰 하나씩 줄을 풀어냈고, 단심줄이 모두 풀리자, 천을 잡았던 손은 옆 사람의 손을 잡으며 강강술래를 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연대의 힘으로 산내 골령골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넋을 위로할 평화공원이 하루빨리 조성되기를 기원하며 예술제는 막을 내렸다.

평화예술제 초반에 묵어두었던 단심줄을 다시 풀어내면서 단심죽 넋푸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평화예술제 초반에 묵어두었던 단심줄을 다시 풀어내면서 단심죽 넋푸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단심줄을 모두 풀고 난 후 참가자들은 서로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며 평화예술제를 마무리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단심줄을 모두 풀고 난 후 참가자들은 서로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며 평화예술제를 마무리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한편, ‘대전산내학살사건 제73주기 제24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는 27일 오전 11시 30분에 골령골 현장에서 예정되어 있다. 오전 10시 30분부터는 불교,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 4대 종단이 진행하는 종교제례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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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언론개입' 문건 '이동관 홍보수석실' 가리키고 있다

 

  • 박재령 기자 
  •  

  •  입력 2023.06.27 08:51
  •  

  •  댓글 0
  • 

    [아침신문 솎아보기] 경향신문 1, 3, 4면 털어 이동관 특보 집중 보도

    KBS 내 좌편향 인사 파악 지시, 이 특보 있던 홍보수석실 요청

    국정원 직원 “당시 정부 정책 비판 성향 KBS 인사를 솎아내겠다는 의도”

    경향 “이동관 특보 방통위원장 임명하는 건 윤 대통령의 자기 부정”

    경향신문이 ‘2010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 불법사찰 문건’ 등을 들어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이 차기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자격이 없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2010년 당시 이동관 특보가 수석으로 있던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국정원에 KBS 내 ‘좌편향’ 인사를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경향신문은 “공무원 적격성을 의심케 하는 심각한 직권남용”이라며 “방통위 수장 자격이 없다”고 했다.

    ▲ 27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앞서 미디어오늘은 국정원 직원 진술을 통해 이동관 특보가 언론장악 문건 배후에 있을 가능성을 보도했다. 2017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국정원법 위반 등 혐의로 넘겨진 재판에서 국정원 직원이 직접 보고자료의 요청 주체로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 재임 당시 홍보수석실을 구체적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해당 문건을 1면에 배치하며 “선명하게 찍힌 ‘홍보수석실 요청사항’ 문구”라고 했다. 홍보수석실은 통한 KBS 내 ‘좌편향’ 인사 파악 이후 KBS 일부 간부의 보직이 변경됐다.

    [관련 기사 : 국정원 직원도 언론개입 문건 요청 주체로 MB 청와대 홍보수석실 지목]

    청와대 지시에 따라 국정원은 △좌편향 △무능·무소신 △비리 연루 등 세 가지 기준을 세워 인사 대상자를 선별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국정원은 해당 문건에 “좌편향 간부 → 반드시 퇴출, 좌파세력의 재기 음모 분쇄”라고 적시하며 정부에 비판 보도를 해온 인사를 나열했다. 특히 일부 인사들에겐 “정연주 전 KBS 사장(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추종 인물”이라 규정하며 “무관용 원칙 고수”라고 했다. 정연주 전 사장은 이명박 정부 초기 해임됐고, 지금 윤석열 정부 아래에서도 방심위원장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실제 조직개편도 이뤄졌다. 경향신문은 “시사 프로그램 ‘취재파일 4321’ 부장 B씨와 ‘추적 60분’ 책임PD C씨는 2010년 6월 보직이 변경됐다”며 “국정원이 문건을 청와대 홍보수석실에 보고한 뒤 문건 내용이 일부 실행된 것”이라고 했다.

    ▲ 27일자 경향신문 3면 기사.

    이동관 특보는 문건 지시 의혹을 부인했다. 특보실에 따르면 “이 특보는 과거부터 해당 문건에 대해 요청한 적도, 보고받은 적도, 본 적도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표명해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들의 ‘참고인 진술조서’를 보면, 국정원 국익전략실 여론팀에서 근무한 A씨는 해당 문서를 놓고 “2010년 5월28일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요청해 작성된 것”이라며 “청와대에서 이 보고서를 요청한 이유는 당시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성향의 KBS 내부 인사를 솎아내겠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A씨는 2010년 6월3일자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 방안> 문건의 중간 결재자였다.

    검찰 수사 기록에 따르면, ‘홍보수석실 요청’으로 작성된 언론 관련 문건은 KBS 건 말고도 많다. 경향신문은 “이 특보가 홍보수석으로 재직한 2009년 9월부터 2010년 7월 사이 ‘홍보수석 요청’ 또는 ‘홍보수석실 요청’으로 작성된 문건이 다수 확인된다. 대표적인 문건이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및 고려사항>, <방송사 지방선거기획단 구성 실태 및 고려사항> 등”이라며 “홍보수석실이 문건 작성을 요청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으나 이 특보가 홍보수석일 때 홍보수석실이 국정원으로부터 문건을 보고받은 사례도 수십 건에 이른다.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MBC 좌편향 출연자 추가 퇴출 확행> <좌편향 방송인에 대한 온정주의 확산조짐 엄단> 등”이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의 불법사찰에 대해선 대대적인 검찰수사가 이뤄졌었다. 하지만 경향신문은 “홍보수석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실이 확인됐지만 당시 검찰 수사는 윗선까지 이어지지 못했다”며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이 과거 이명박 정부 홍보수석으로 재직할 당시 공영방송 운영에 부당 개입한 정황은 당시 사건 증거기록에만 남아있는 상태”라고 했다.

    ▲ 27일자 경향신문 4면 기사.

    4면 기사 <“다른 정파 탄압은 범죄”라던 윤 대통령, 이동관 임명으로 “지금은 아니다”할까>에서 경향신문은 이 특보의 법적 처벌 가능성까지 짚었다. 박근혜 정부 때의 ‘블랙리스트’ 사건 때도 지금처럼 반대편을 규정하고 배제하려 했던 움직임이 위법이라는 수사결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청와대 고위공직자들의 직권남용이 처벌받은 대표적 사례는 박근혜 정부 ‘최순실 국정농단’ 과정에서 벌어진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라며 “당시 특검의 수사팀장이 윤석열 대통령이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특검에 파견돼 일했다”고 했다.

    이어 경향신문은 “당시 특검팀의 이런 입장에 비춰보면,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했다고 공영방송을 ‘좌편향’으로 낙인찍고 공영방송 인사에도 관여한 정황이 보이는 이동관 특보를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하는 건 윤 대통령의 자기 부정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이 특보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인 지난 2019년 7월 채널A 시사방송에 출연해 윤 대통령을 향해 ‘이런 패거리 문화에 물든 검사가 이전 수사는 제대로 했을지 의심스럽다’고 발언했다”고 했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경향신문 #이동관 #방통위원장 #언론장악 #KBS

    여자가 많을수록 '반란'이 많이 일어났다, 왜일까?


    [프레시안 books] <WAKE>, '니그로 계집'의 이야기

    한예섭 기자  |  기사입력 2023.06.27. 06:23:59 최종수정 2023.06.27. 06:32:43


    "배 위에 여자가 많을수록, 반란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1700년대 백인들은 아프리카에서 특수한 상품을 가지고 무역을 했다. 흑인. 노예무역 산업에서 흑인은 배에 싣는 '짐짝'이었다. 빼곡하게 쌓아 최대한 많이 운송할까, 아니면 적재량을 낮추더라도 상품이 최대한 죽지 않도록 여유 공간을 내줄까. 백인들은 수백 명 흑인의 효과적인 적재법을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다만 어떤 백인들은 바로 그 짐짝에 의해 바다 위에서 최후를 맞았다. 노예들의 선상반란. 계량사학자들은 400년여 동안 쌓인 3만 6000건 이상의 노예무역선 항해자료를 분석해 "항해 열 건당 최소 한 번은 반란이 있었음"을 알아냈다. 대서양의 망망대해에서, 구속된 노예들이, 대체 어떻게 반란을 일으켰을까? 

    역사학자 리베카 홀은 노예반란에 대한 수많은 기록 속에서 포착된 특이한 경향성에 주목한다. "배 위에 여자가 많을수록, 반란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는 재차 강조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노예무역선에 탄 여자가 많을수록 반란이 많이 일어난다." 그리고 놀란 듯이 되묻는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노예제를 연구해온 사학자들은 모두가 이 사실을 "직관에 어긋나는", "통계적인 우연"으로 치부했다. 거의 대부분의 기록에서 반란의 주동자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노예의 후예이자 현 시대의 흑인 여성 학자인 리베카는 달랐다. 그는 학자란 이들의 '직관'이 "여자를 향한 편견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성적 편견을 버리고, 왜 여자가 많을수록 반란이 더 많이 일어나느냐는 질문을 다시 던져보면 어떻게 될까?"

    기록에는 이미 답이 있었다. 1789년 영국 추밀원 고문관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성인 남성 노예는 족쇄를 채워 주갑판에 둔다. 여자나 여자아이는 족쇄 없이 선미 갑판에 둔다." 노예상들은 여자들은 싸울 수 없다고 믿어 족쇄를 채우지 않았다. 그리고 긴 항해 기간 동안 여자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손닿는 곳'에 뒀다.

    싸울 수 없는 약자, 강간과 성폭력의 대상, 그래서 선원들의 '특전'으로 취급된 여성노예들은 그렇게 족쇄 없이 무기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했다. 경계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가장 낮은 위치, 그곳에서 여자들은 무기에 접근하고 반란을 계획하고 폭동을 추동했다. 바다 한 가운데 반란의 결과는 죽음뿐이었지만 그들은 기꺼이 그렇게 했다. 역사가들은 이 같은 반란 덕에 '팔려나가지 않을 수 있었던' 노예가 최소 백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웨이크(WAKE)>는 "노예무역으로 세워진 도시, 뉴욕"에서 억눌려온 조상들의 흔적을 추적하는 흑인 여성 역사학자 리베카 홀의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 노블이다. 노예의 후예인 그가 조상들의 흔적을, 특히 '반란을 추동한 여성 전사'들을 집요하리만큼 쫓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8년의 변호사 생활 동안 그가 목격한 '흑인여성을 향한 차별', 즉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가 정의를 뒤트는 모습" 때문이었다.

    "무엇이 세상을 왜곡하는지 뿌리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서구사회 인종·성 차별주의적 폭력의 근원적 당사자들을 추적해야 했다. 노예제 당시의 흑인 여성들, 그들의 동료 남성과는 달리 투쟁의 역사조차 역사서에서 삭제된 "이름없는 노예"들. 리베카는 그들을 "반란의 주인공"으로 다시 주목하고자 했다. 

    "정의를 위해 싸운 흑인 여성의 이야기를 물 밖으로 가지고 나와야만 한다." 

    흑인이고 여성이라 기록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현시대에 되살리는 일은, 즉 흑인 여성의 피해 자체를 전복하는 과정이다. 다만 리베카는 자신의 결심을 두고 이렇게 회고한다. "그 여자들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일 자체가 싸움이 되리라는 것도 모르고..." 

    실제로 노예제에 맞서 싸운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는 그것을 복원하려는 시도만으로도 또 다른 고통과 피해를 야기하기에 충분했다. 백인 남성들이 기록한 '승자의 역사'에선 아무도 흑인의 이야기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흑인 '여성'의 이야기는 철저히 말살 당했다. 

    "두 겹으로 지워져 도무지 보이지 않는"(홍한별) 역사를 찾아나서는 것만으로도 고통이다. 여기에 승자의 역사 위에 세워진 현대의 서구사회에선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춰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문제까지 겹친다. 

    리베카는 찾아도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여성들의 이름과 행적, 그들의 투쟁과 최후를 찾아 전 세계를 누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흑인 여성에겐 어떤 기록도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 이 세계에 여전히 만연한 "노예제의 여파"를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처형당한 노예의 재판 기록을 보기 위해 찾아간 형사법원 서기실에선 흑인 여성의 입장을 거부한다. 노예라는 '자산'을 피보험 상품으로 거래했던 영국의 보험회사들은 그 기록을 굳이 들춰내려는 리베카의 연구에 대해 그 어떤 협조도 거부한다. 그의 좌절이 책에 실린다. 

    "찾을 수가 없어, 나는 세라인지 에비게일인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영 알 수 없을 거야."

    "여자는 니그로 악마, 니그로 계집이라고만 언급되었다." 

    리베카의 고군분투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아니다. 가령 리베카는 1707년 퀸스 카운티 뉴타운의 지주 윌리엄 핼릿 2세의 노예들이 일으킨 봉기를 추적하면서 당시 여성 노예들의 사회적 처지와 그 구조성을 상당히 입체적으로 파악한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백인 일곱 명이 살해 당하고 노예 네 명이 처형된 이 사건은 이후 '노예들의 음모를 방지하기 위한 법령', 즉 구체적인 노예'제'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지는 주요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이 일은 노예 반란의 역사에서 거의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왜일까? 이유를 알기 위해 리베카는 사건을 더 자세하게 뒤쫓는다.

    사건에서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이름은 남자 주동자 인디언 샘이었으며 여자는 '니그로 계집', '니그로 악마'라고만 언급됐다. 사건을 보고하는 정부 내 서신 속에서 샘과 니그로 악마 등 이들의 최후를 알 수 있었는데, 4명의 남자들은 교수형을 당했고, 여자인 니그로 악마는 화형대에서 화형 당했다. 질문이 꼬리를 문다. "왜일까? 왜 여자는 화형을 당했을까?" 리베카는 400년을 거슬러 올라가 답을 찾는다. 

    "1352년 에드워드 3세가 여자가 남편이나 주인을 살해하면 그 살해는 반역이며, 그에 따른 처벌은 화형이라는 법령을 만들었다. 이런 행위는 살인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된다. 여자의 남편이나 주인은 자연 군주로 간주하므로, 남편이나 주인을 죽이는 것은 국왕을 죽이는 것과 같았다. 따라서 국가에 대한 범죄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여자'와 '반란'을 둘러싼 당시 사회의 모순을 발견한다. 니그로 악마는 몇 백년 전의 법을 통해 반란죄로 화형을 당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사건은 어떤 역사서에서도 "반란으로 분류되지 않"았고, 어떤 주목도 받지 못했다. "주동한 사람이 여자였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은 여자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여자가 감정이 상해 울컥해서 주인을 살해할 수는 있지만, 그건 반란에 참여하거나 심지어 반란을 획책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역사가들은 여자가 주인을 살해한 사건을 보았더라도 그냥 사적인 가정폭력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저항은 오직 남자들만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노예를 배에 싣고 대륙으로 운송한 상인들도, 노예를 공급 받아 노예로 부린 지주들도, 노예의 반란을 본국에 보고한 주지사들도, 그 보고를 받은 정부 인사들도 "대체로 여자 노예들의 능동적 역할에 대해 몰랐다." 그 일련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들은 여성의 이야기를 "직관에 어긋난다"며 기록에서 배제했다. 그렇게 생긴 역사의 공백을 이제와 찾으려 하자, 백인 남성 중심의 서구사회는 그조차 가로막았다. 

    흑인 여성으로서 리베카는 결국 자신 또한 '두 겹으로' 지워진 세계 속에 살고 있음을 인식한다. 과거를 추적하던 그를 과거가 오히려 추적해온다. '니그로 악마'의 기록을 찾으려 찾아간 퀸스 카운티 형사법원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뉴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리베카는 미셸 롤프 트루요의 격언을 되뇌인다. 

    "권력의 극치는 불가시성일지도 모른다. 궁극적 과제는 그 뿌리를 밝히는 것이다." 

    탁월한 능력과 투철한 의지를 갖춘 역사학자에게조차, 과거와 현재의 장벽을 넘어 흑인 여성의 온전한 뿌리를 찾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현대를 사는 노예의 후예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WAKE>는 그 고민의 과정이자 하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리베카는 당대의 주변 기록들을 최대한 뒤지고 뒤져, 그림 작가 휴고 마르티네스의 손을 빌려, 거기에 본인의 상상과 추정을 더해 공백의 역사를 채워 넣었다. 세라와 아비게일과, 니그로 악마와, 선상의 여자 반란자들이 반란을 결심하고 계획하고 추동하며 마침내 최후를 맞이하는 과정들이 책에는 빼곡히 담겼다. 결국 이 책은 그들 본인은 물론 그들 후손의 "미래를 위해" 싸운 여자들의 이야기이며, 가까스로 그 미래를 살아내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부단한 노력 끝에 과거와 미래의 여자들이 만나는 일은,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공고한 구조에도 균열이 생기는 것을 목격하는 일은 책의 독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일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문제 등 과거사 속 여성들의 이야기에 민감한 한국 독자들에겐 더욱 특별한 감회를 주기도 한다. 옮긴이 홍한별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서 눈을 돌리지 않을 EO, 아픈 역사를 마주할 때, 모순을 인지할 때에만 가능한 인식이 있다. 지워져서, 감추어져서, 억눌려서, 혹은 몰라서 아직도 하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