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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8일 화요일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 경찰 재조사 실패했다"

경찰개혁위원 신경아 교수 “경찰 재조사, 여전히 피해자 탓"...경찰 "수사 진행 중"
2018.08.29 09:42:14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에 대한 경찰 재수사가 새로운 내용을 전혀 밝혀낸 것 없이 요식행위로 끝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성폭력 피해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은 지난 2004년 동생의 권유로 드라마 단역배우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영(가명) 씨가 배우들을 관리하던 관리자 등 12명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가영 씨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으나, 오히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언어 성희롱, 모욕 등 2차 피해를 입고 2006년 법적 대응을 포기하고 고소를 취하했고, 결국 이를 비관해 2009년 8월 28일 자살했다. 이후 죄책감에 시달려온 동생마저 언니가 사망한지 6일 만에 자살했다. (관련 기사 : 단역 배우 어머니 "국가는 없었다")

피해 자매의 어머니 장연록 씨와 그를 돕던 문계순 전국보조출연자노동조합 위원장 등이 1인 시위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경찰 수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오다가, 올해 3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이 사건의 재수사를 요구한다는 내용의 청원을 올려 37만 명이 이에 동의하면서 경찰의 재수사가 확정됐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 중 3명은 어머니를 상대로 명예훼손 등 억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9년 만의 '두 자매 단역 배우'의 장례식ⓒ프레시안(전홍기혜)

9년 만에 장례를 치르는 어머니의 눈물  

두 자매의 어머니는 28일 두 딸의 장례식을 9년 만에 치르는 심경을 밝히며 눈물을 흘렸다.

"큰 딸은 2009년 8월 28일 오후 8시 18분 18초, 건물 18층, 유품지갑 속에 8000원, 승화원 8호실에서 이승을 떠났습니다. 억울함을 숫자로 남기고 저승으로 갔습니다. 둘째 딸도 단역배우 아르바이트를 소개했던 언니를 따라 6일 뒤 같은 방법으로 갔습니다. 2개월 뒤 아빠도 지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떴습니다. 엄마는 강하니까, '우리 원수 갚고 20년 후에 만나요'라는 둘째 딸의 말만 이 뇌리에서 메아리 쳤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지팡이에 의지한 채 하늘이 부끄러워 모자를 쓰면서 몇 달을 지냈습니다. 병원을 다니라는 막내의 부탁이 있어 병원도 다녔습니다. 자살이라는 대한민국의 금기어, 그 오명 때문에 부모형제, 친척들은 쉬쉬했습니다. 

바뀌어야 합니다. 억울해서, 아파서, 못 견뎌서, 자살했습니다. 저는 억울합니다. 보는 것도 아까우리 만큼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일초만이라도 목소리 한번 듣고 싶습니다.  

'보물 1호'는 여성 장관을 꿈꾸며 대학원을 다녔고, '보물 2호'는 최고의 연기자를 꿈꾸며 예술대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우리 딸들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튼튼하게 생겼네", "588(성매매업소 밀집 지역) 가면 하루 30명 상대해도 돈 벌고 자가용 끌고 산다", "강간당한 장면을 묘사해봐라", "12명 상대한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얼굴 좀 보자" 등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쏟아냈습니다. 어떻게 경찰이 대질 심문을 한다면서 가해자와 함께 옆에서 웃을 수 있나? 이들이 혈세를 받는 경찰이 맞나? 내 딸을 살려내라. 강간이 없는, 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두 자매의 추모 장례식은 이날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여성가족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등의 지원으로 거행됐다. 이 사건을 지원하고 있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이날 중구구민회관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치유 : 방관자에서 조력자로'라는 주제로 '이후포럼'을 개최했다.  
▲ 두 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는 장연록 어머니. ⓒ프레시안(전홍기혜)

"여전히 피해자를 모욕하는 내용의 경찰 재조사" 

이날 토론회 발제자로 참석한 신경아 한림대 교수는 지난 6월로 활동이 종료된 경찰개혁위원회 개혁위원을 지냈고, 이 사건에 대한 경찰 재조사의 문제점에 대해 폭로했다. 신 교수는 "지난 5월 경찰이 이 사건에 대한 2차 조사 결과를 가져왔다. 전혀 재조사가 되지 못했고, 피해자를 모욕하는 내용도 상당 부분 있어서 당시 내가 그 자리에서 매우 화를 냈는데 경찰은 현행법상으로 할 만큼 했다는 태도였다. 그나마 그런 수준의 재조사 관련 보고서도 현장에서 회수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오늘 토론회 발제를 맡아 경찰 측에 여성인권진흥원을 통해 공식적으로 재조사 관련 자료를 요청했지만 받지 못했다. 재조사 결과는 국회에도 제출하지 않았는데 왜 제출해야 하냐는 답변을 받았다"며 경찰의 재조사가 당장의 비난 여론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진행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신 교수는 특히 경찰이 여전히 재조사에서도 성폭력 피해를 호소한 큰 딸이 정신질환 때문에 일관된 진술을 하지 못한 것을 조사 실패의 주요한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고 문제제기했다. 그는 "보고서의 한 페이지 넘는 분량이 피해자의 진술이 얼마나 엇갈렸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며 "그 자체가 피해자를 모욕하는 내용들이었으며, 경찰 조사가 완수되지 못한 책임을 여전히 피해자에게 돌리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사라진 사건" 
신경아 교수는 이처럼 경찰이 14년 전 첫 번째 조사에서 뿐만이 아니라 지난 4월 진행된 2차 조사에서도 실패한 이유에 대해 성폭력 사건에 대한 '편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모든 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크게 소리를 내고 가해자가 부끄러워야 한다. 그런데 왜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에서는 피해자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가해자가 활개를 치고 공권력조차 가해자를 편드는 것인지 의문이다. 단역배우 자매 사건에서 피해자는 정신질환 때문에 피해 사실에 대해 의심 받고, 안희정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똑똑한 전문직 여성이라는 이유로 피해 사실을 의심 받는다. 도대체 성폭력 피해자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냐? 

또 이 사건은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사건이다. 많은 분들이 두 자매의 존재를 알고 이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다가 자살했는지 안다. 심지어 실명까지도 안다. 하지만 12명이나 되는 가해자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다. 그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고, 얼마나 반성했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들어보았나? 나는 자세히 듣지 못했다. 가해자에 대해 들은 것은 그들이 피해 자매들의 어머니를 협박하고,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했다는 것뿐이다."

신 교수는 12명의 가해자들이 경찰 조사에 매우 불성실하게 임했으며, 경찰은 이를 방조했으며, 2차 조사에서는 이미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인데다 이미 고인이 된 피해자가 생전에 고소를 취하했다는 이유로 다수의 가해자가 조사에 불응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의 가해자들에 대해선 심지어 경찰 보고서를 봐도 모르겠다. 12명이나 되는 가해자가 혐의를 부인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더 이상 따져 묻지 않았다. 경찰이 사실 관계를 입증하겠다며 따져 물은 사람은 피해자였다. 경찰은 2차 조사에 일부 가해자가 출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사 자체를 진행하지 않았다. 강제 체포하지 않았다. 결국 가해자는 12명에 이르지만 두 차례에 걸린 조사에서 가해자와 가해행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가해자가 피해 자매들의 어머니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에서는 큰 딸의 성폭력 사실에 대해 사실상 인정했다. 법원은 지난해 2월 이 사건에 대해 "공권력이 범한 참담한 실패"라고 규정하며 어머니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큰 딸의 일기장 등에 성폭행과 관련된 매우 자세한 기록 등 이를 입증할 충분한 자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1차 조사 경찰 3명 중 1명이 해외 거주로 재조사에 불응"
신경아 교수는 재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중요한 이유로 1차 조사를 맡았던 경찰에 대한 조사마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 사건의 1차 조사에 3명의 경찰이 책임자로 일했으며, 이중 가장 긴 시간 조사를 수행한 경찰은 여자 경찰이었다. 하지만 이 여경은 퇴직하고 현재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 이 여경은 해외 거주를 이유로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고, 나머지 2명의 경찰은 모든 책임을 이 여경에게 떠넘기며 자신은 수사에 깊이 관여하지 않아서 모른다고 하고 있다. 따라서 1차 조사에 대한 재조사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로 남았는데, 이렇게 조사를 끝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신 교수는 두 자매의 자살은 성폭력 사건 때문이 아니라 경찰 조사 과정에서 있었던 2차 성폭력 때문이라는 사실을 경찰이 아직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경찰은 재조사를 통해 어느 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대단히 심각한 정도의 2차 피해가 발생했다. 경찰 수뇌부에서 이 문제에 대해 누군가는 사과해야 한다고 개혁위원회 회의에서 주장했지만 동의를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경찰 측은 아직 재조사가 진행 중이며, 주어진 조건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박창호 경찰청 성폭력 대책과장은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신 교수의 발언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이며, 경찰이 출석을 하지 않는 가해자를 강제로 구인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을 문제 삼았다는 부분도 당시 수사기록, 진료기록 등에 대한 요약을 한 내용이지 특정한 입장을 담은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또 신 교수가 여성인권진흥원을 통해 요청한 재조사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개인정보를 담고 있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 여성가족부 장관 등 다른 기관이나 관계자들에게도 구두로만 보고한 뒤 회수했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자 20명 중 17명에 대한 조사를 마친 상태이므로 아직 수사 결과를 예단하기에는 이르다"고 주장했다.   

"방송사도 책임져야 하는 일이다"
 

한편, 두 자매의 죽음은 보조출연자들의 노동조건과도 연관된 문제라는 점에서 신 교수는 방송사들도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방송 현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권, 그들이 성차별과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계순 위원장은 "보조출연자들은 파견근로자로 촬영 현장에서 인권유린, 성추행,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야외 촬영을 하면서 화장실조차 제공이 안 되는 열악한 작업 환경, 고용 불안, 파업 사업주로부터의 임금 착취 등에 시달리고 있다"며 "방송사들이 파견업체 선정 과정 등에서 충분히 이런 문제를 개선시킬 힘을 갖고 있지만 전혀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보조출연자들이 직면한 현실에 대해 증언했다.

정현백 장관 "두 자매의 죽음이 2차 피해의 심각성 알렸다"

한편 이날 장례식은 여성부, 여성인권진흥원 등이 경찰의 2차 가해에 의한 희생자를 지원하고 사과한다는 의미에서 지원을 하게 됐다. 

변혜정 여성인권진흥원 원장은 "이 추모행사 자체가 사회적 치유라고 생각한다"며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조력, 함께 함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가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현백 여성부 장관은 "(피해 자매의) 어머님이 계시기에 이 자리가 있었고 이 자리가 빛이 난다고 생각한다"며 "두 자매의 중심을 중심으로 수사나 재판 과정 또는 의료, 언론 보도 때문에 발생하는 2차 피해의 심각성에 대해 인식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두 자매의 죽음이 큰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두 자매의 죽음을 기억해야 하고 성폭력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지, 배려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송보경 예술문화예술연합 코디네이터는 "조력자가 해야할 가장 큰 일은 조력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성폭력 피해자이며 조력을 받았던 입장에서 저는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아픈 모습으로 영영 남는 게 아니라 잘 살겠다고. 때로는 다툼이 있고, 심심하고, 귀찮고, 부족함이 있는 삶을 회복해 잘 살겠다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마치 공기와도 같이 늘 그 자리에 있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이날 장례식은 이 사건을 지원하고 있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안내, 진행을 맡았다. 정현백 여성부 장관, 경찰 관계자 등도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했다. ⓒ프레시안(전홍기혜)

한반도 비정상의 정상화

<기고> 김성수 독한문화원 원장
김성수  |  dr.kim3@web.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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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28  22: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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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Dr. Kim, Sung-Soo, 독한문화원 원장) 

너무 안타깝다. 이산가족의 상봉과 작별의 장면, 영원한 작별을 위한 잠깐의 만남인가! 천만의 사람들이 한 세기 가깝게 안고 사는 이 세기적인 쓰라린 비극 앞에서 새삼스럽게 한반도의 숱한 비극의 근원을 다시 찾아본다. 그리고 이 비정상의 비극에서 우리는 어떻게 빨리 해방될 수 있을 것인가?
비정상의 근원
한반도의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수많은 민족적 인간적 비극의 근원은 새삼 말할 것도 없이 일제 식민통치와 외세에 의해 강요된 남북 분단이라는 비정상에 있다. 그럼에도 많은 남한 국민들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간다.
우리 민족은 수천 년 역사에서 외세의 침략과 약탈에 많이 시달렸음에도 다른 나라를 침략할 줄 모르는 평화애호 민족이었다. 이런 민족이 결국 19세기 후반부터 유럽 제국주의 세력의 시달림을 받다가 20세기 초에는 이웃나라 일본의 식민지국가로 전락되고 말았다. 먼나라 미국은 일본 식민지 정책의 적극적인 동조자였다. 바로 “태프트 가쓰라 밀약”(1905년)으로 필리핀과 한반도를 서로 노나 먹기식 한 것은 그 한 예일 뿐이다.
미국은 드디어 세계 2차 대전에서 승기를 잡자 소련을 원자탄 위력으로 압박하여 조선반도를 자기의 입맛에 맞게 처리했다. 미국은 원자탄을 못 가진 소련에게 얄타밀약을 강요했으며 한반도의 남북 분단과 신탁통치를 실현시켰다. 1945년 8월 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의 투하는 미국의 강력한 위력의 과시였다. 아무런 역사적 정치적 책임도 없는 한반도는 수천 년의 단일국가에서 졸지에 분단의 멍에를 쓰고 만 것이다.
이제 일제 36년에 분단 73년을 합한 100여년의 세월은 끝을 모르고 흐르고 있다. 이 강요된 비정상의 세월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정치사회적 비극이 산출되고 있다.
비정상의 비극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자 해방의 환희가 충천했으며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기세는 비등했다. 어린 초등학생인 나는 매일같이 수많은 남녀노소와 어울려 해방의 노래를 목이 터지도록 불렀다. 그 속에는 두발 없는 앉은뱅이 젊은이도 있었다. 일본인 담장에 달린 늙은 호박 하나 따주자 환한 웃음 띠고 신나게 썰매질 하고 사라진 그의 모습 지금도 싱싱하다.
그러나 이 벅찬 세월은 불과 수개월, 시간이 갈수록 사회분위기는 살벌해지기 시작했다. 신탁통치의 강요로 찬탁 대 반탁, 친외세 대 민족자주세력 간의 갈등은 마침내 동족상쟁의 비극, 수백만의 살육, 수백만의 이산가족, 온 나라의 초토화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그 후 두 번에 걸친 군사쿠데타는 정치사회 구도를 왜곡과 갈등으로 덧칠했다.
미국은 록펠러재단을 통해 친일 학술단체인 진단학회를 지원하여 한국사를 미국의 입맛에 맞게 재빨리 정리 출판했다. 화려한 할리우드 영화는 한반도 문화의 꽃으로 각인되었다. 마침내 한반도 사람들의 의식에 “미국 똥은 조선사람 똥보다 고급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미국은 친미굴종을 강요하면서 한일관계를 일본에 유리하게 유도했다. 박정희 군사쿠데타 세력을 얼마의 배상금으로 일본에 굴종케 만들었다. 일본은 미국을 배경으로 식민지지배를 미화하고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챙겼다.
이런 비정상의 와중애서 한반도는 정치 경제 문화 도덕 전반에서 세계에 유례없는 비극적 비정상이 점철되고 있는 것이다.
- 민족자주역량은 쇠퇴하고 친미친일세력이 정치경제문화의 중추세력으로 되었다.
- 미국의 항시적인 전쟁위협은 북측을 원자핵국가로 몰아가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파괴적인 원자핵전쟁 위험지대로 되었다.
- 세계 역사상 찾기 힘든 수십만의 위안부와 강제징용의 희생과 굴욕의 몸서리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 한반도 전체는 민족적, 지역적, 정치사상적 적대감, 증오, 이질감으로 얽혀 있으며, 남측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이 신주같이 모셔지고 있다.
- 70년 한을 품은 이산가족의 비극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 남북 민족 간의 교류협력도 미국의 승인 없이는 전진하지 못한다.
결자해지
우리 민족은 이 모든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 남북통일을 이루고자 70여년 세월을 간고분투 해 왔다. 헤아릴 수 없는 고초와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을 비롯한 국내외 반대세력의 우위는 계속되고, 제2의 전쟁바람만 고조되었다. 그러나 항용유회(亢龍有悔)! 2018년 봄바람을 타고 한반도에는 극적인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성사는 세기적인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크지 않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수반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70여년 철천지 원수국가인 세계최강의 국가수반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과 격의 없는 담화로 한반도에서 평화의 물꼬를 튼 것이다.
이 회담의 성사는 강대국인 미국 대통령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대전환의 계기와 의도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은 한반도 문제를 더 이상 강압과 제재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과학적 인식이 뒷받침했을 것이다. 하여튼 북미회담의 공동성명과 그 후의 호의적인 분위기는 좋은 결실을 기대하게 하였다.
그러나 북미정상회담 이후 두 달이 지난 과정은 순조롭지 못하고 오히려 꼬여 간다는 판단이다. 미국이 북미정상회담을 즉흥적이고 변칙적인 수준에서 시작했다면 이제는 합리화 체계화 단계로 넘어가야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미국에게 한반도 비정상의 원인 제공자로서의 결자해지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결자해지란 상식이며 자연법적 원칙이며, 정의의 실현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결자해지란 비정상의 정상화일 뿐 어떤 비용이 특별히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 누군가가 그에 대한 배상을 청구한 적도 없다. 이제 미국은 결자해지의 책임자답게 심기 전환하여 시대적 요구에 옳게 응답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조건 없이 휴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전환하고 남의 나라에 주둔한 군대를 철수하고, 일방적인 제재를 푸는 것은 결자해지의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당연지사를 외면하고 북핵의 원인 제공자가 본말을 전도하여 선(善)비핵화나 핵시설 신고를 종전선언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한다면 현대판의 “샤일록”(세익스피어, 베니스상인의 주인공)이라는 비난만을 받게 될 것이다.
미국이 결자해지의 참다운 입장을 성의 있게 실천할 때만 “북미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은 좋은 결실을 가져 올 것이다. 이 결과는 세계적 차원에서도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미국은 그럴만한 좋은 역사적 자원도 가지고 있다.
미국의 16대 에이브러함 링컨 대통령은 미국의 남북전쟁을 종식시키고 “노예해방선언”(1863년)을 통해 미국의 남북 분열을 막아 냈다. 그리고 온 세계 정치계가 지향해야 할 “민중의 자주권과 자결권“(게티즈버그 연설)의 주목할 만한 정치사상을 선포했다.
이 정치사상이 온 세계를 위계적 종속이 아니라 상생평등의 관계로, 갈등은 담판을 통한 평화적 해결의 길로 인도한다면 세계는 획기적으로 변혁될 것이다. 이때 미국의 핵도 북의 핵도 필요 없는 평화로운 세계가 열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저러나 주인공은 우리
미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결자해지로의 입장선회는 바람직하지만 아직은 천상의 꿈인 것 같다. 어디까지나 자기 운명의 최후책임은 자기에게 있다는 격언은 만고의 진리다. 우리가 참된 자기 운명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역사에서 최소한도 배워야 할 몇 가지가 있다.
* 우리에게 가장 큰 약점은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자주자결정신의 부족이다.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사대의존주의는 망국의 길임을 절실히 경험했다.
*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동학정신을 아직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이 정신은 한미동맹과 미군주둔과 상응하지 못한다.
* “홍익인간”의 오랜 전통을 가진 우리 민족이다. 이웃도 사랑하고 같은 겨레와 손도 맞잡을 줄 알고 세계인들과 좋은 일에 연대할 줄 아는 정신이 우리 디엔에이(DNA)에 있다 할 것이다.
어떠한 조건보다 우리의 주인의식 강화와 그에 기반한 진취적인 활동만이 민족 통일과 번영의 성취 속도를 좌우할 것이다.
김성수 (Dr. Kim, Sung-Soo)
  
 
- 1936년 생, 전남 화순
- 전남 광주고, 연세대 철학 학사, 석사
-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교 철학박사

- 1973년 유럽거점간첩단 사건
- 1973년 – 2018년, 민주화 통일운동 참여 (민주사회건설협의회, 코리아코미티, 조국통일 해외기독자회 등 창립회원)
- 현재 6.15 유럽위원회 자문위원
- 현재 독한문화원 원장

매티스 미 국방장관 "한미연합훈련, 더는 중단할 계획 없다"

18.08.29 09:12l최종 업데이트 18.08.29 09:12l




북한, 남북장성급회담서 한미훈련중단 요구 가능성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 혼선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백악관이 한미 간 통상적 훈련은 계속하되 대규모 연합훈련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오는 14일 열리는 제8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북측은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비롯한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예측된다. 사진은 지난 2017년 8월 열린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의 일환으로 열린 육군 55사단 기동대대 공중강습훈련.
▲  지난 2017년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의 일환으로 열린 육군 55사단 기동대대 공중강습훈련.
ⓒ 연합뉴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더 이상 중단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매티스 장관은 미국 동부시각으로 28일 국방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북미정상회담 이후 선의의 조치로 가장 큰 군사훈련 일부를 중단했다"라며 "그러나 더 이상 중단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는 "훈련 중단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선의로 이뤄진 것"이라며 "만약 대통령이 훈련 중단을 지시한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중단 계획이 없다(no plans at this time)"라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가 훈련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훈련을 멈춘 적이 없다"라며 "일부 큰 훈련은 중단했지만 나머지는 중단하지 않았고, 한반도에는 항상 진행 중인 훈련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과 선의로 협상하는 동안 '워 게임'을 중단하겠다"라고 밝혔고, 미 국방부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과 한미 해병대 연합훈련 케이맵(KMEP)을 중단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고, 다음 주로 예정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도 취소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전략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자 '군사 카드'를 꺼내 북한을 압박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매티스 장관은 "(북한과의)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고 앞날을 결정하겠다"라며 "외교관들이 협상을 진전시키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북한 비핵화 협상과 연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내년에 UFG 훈련이 재개될지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어떤 것도 결정되지 않았다"라며 "국무부와 협의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북한의 태도에 따라 훈련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 리스트를 신고하며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한국전쟁 종전 선언이 먼저라고 맞서고 있다. 협상이 진전되지 않자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을 전격 취소했다.

일각에서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에게 보낸 편지가 방북 취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CNN 방송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평화협정을 추진하는 데 있어 북한의 기대에 부응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라고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2018년 8월 27일 월요일

중국 관영언론들, 트럼프 ‘비협조론’에 “책임전가 말라”

인민일보 “이랬다저랬다 타국에 책임전가는 대국이 할 일 아니다” 비판
▲ 사진 :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전격 취소하면서 중국의 ‘비협조’를 이유로 든 데 대해 중국 관영언론들이 강하게 비판해 나섰다.
27일 국내 통신사들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해외판 고정논평인 ‘망해루(望海樓)’에 국제문제 전문가 화이성(華益聲)의 칼럼을 게재, 타국에 책임을 전가하는 미국의 행보는 대국의 소행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인민일보는 “최근 들어 미국 정부의 변덕스러운 행보는 지난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당시 상황을 연상케 한다”면서 “미국의 근거 없는 비난에 대해 중국은 강력히 반격했고, 엄중히 항의를 제기했다”고 전했다.
이어 “중국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이는 국제사회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중국은 책임감 있는 대국의 입장에서 국제적인 지역문제 해결에 적극 참여해 왔다”고 강조했다.
인민일보는 또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삼척 두께의 얼음이 어는 것은 하루 추위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해 왔고, 관련국들의 적극적인 접촉과 협상 및 상호 우려사항 배려 등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이랬다저랬다 하고 타국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대국이 해야 할 일이 아님을 미국에 재차 경고한다”고 밝혔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도 이날 평론을 통해 “미중 무역전쟁과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연계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비협조론을 반박했다.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이 무역전쟁의 반격 수단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연계시키는 좋은 핑계거리를 찾은 것 같다”면서 “이런 조치로 인해 비핵화 문제에서 미국이 진정성이 없음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이어 “진정성이 필요한 이때 미국은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하지만, 미국은 중국을 비난하고 있다”면서 “중국은 비핵화 문제를 중미 관계를 위한 카드로 사용할 생각이 없지만, 중미간 상호 신뢰 부족은 다른 영역에서 협력을 필연적으로 위태롭게 한다”고 경고했다.
앞서 중국 외교부는 하루 전 루캉(陸慷) 대변인 명의의 문답을 홈페이지에 올려 “미국의 주장은 기본 사실에 위배될 뿐 아니라 무책임한 것”이라며 “우리는 이와 관련해 매우 우려하고 있고, 미국에 엄중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또 “북핵 문제에 관한 중국 입장은 일관되고 명확하다”며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와 안정,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주장해 왔다”고 강조했다.
환구시보도 26일자 사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회담 번복과 관련해 중국 책임론을 거론한 것은 ‘적반하장’과 같다고 비난했다. 신문은 현 북미회담의 중단 책임을 미국에 돌리면서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조선)은 풍계리 실험장을 폐쇄하고, 탄도미사일 발사 시설 철거와 미군 유해 송환 등 성의를 보였지만, 미국은 대북 독자제재에 나서는 등 북에 대한 위협을 지속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2018년 8월 26일 일요일

민중의 눈으로 본 촛불혁명사


<촛불민중혁명사> “저자와의 대화”에서 만난 원희복 기자
▲ 8월 25일 오전 11시 서교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의실에서 <촛불민중혁명사>(도서출판 말)를 쓴 원희복 기자와 "저자와의 대화" 행사가 열렸다.
기자의 눈은 따뜻했다.
“이번 촛불혁명이 아무런 희생자가 없는 명예혁명이요, 성숙한 시민혁명”이라는 규정에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기자는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숨지고, 분신한 사람도 여럿이다”고 말한다.(358쪽)
<촛불민중혁명사>는 ‘17개의 장면’을 각 장 서두에 배치했다. 촛불혁명을 이야기하는 첫 장면에 2013년 7월 9일 홍만희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 전국동지회 회장이 ‘광주민주항쟁의 역사를 왜곡하는 정신병자들이 판치는 나라에 다시 한 번 일어서서 역사를 바로 세우라’는 취지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을 다룬다. 의외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남종 시민, 성유보 언론인, 김승교 변호사, 세월호 학생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주요 장면 마다 등장한다. 촛불이 역사에 자신을 바친 이들에 대한 추모의 불빛이라는 의미도 담겨있다면, 저자는 가슴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써 나갔다.
기자의 눈은 민중의 시선으로 촛불혁명을 기록했기에 더욱더 따뜻하다.
촛불혁명이 태블릿 피시로 시작되고,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심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것이 저자의 질문이다. “퇴진행동이 만든 백서 <촛불의 기록>(2권)에는 민주노총의 민중총궐기를 ‘촛불혁명의 마중물’이라고 표현”하면서, “백서의 본류가 아닌 말미 ‘각계각층 행동’ 대목에 일부로 기록”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한다.(360쪽)
기자는 촛불혁명은 “친일·독재미화 역사교과서와 종북몰이를 통한 정당해산과 같은 극도의 민주주의 퇴행에 맞서 싸운 민중들, 쉬운해고와 비정규직에 내몰렸던 노동자와 신자유주의 농정에 신음하던 농민, 무분별한 도시개발에 저항한 철거민들의 뜨거운 열망과 집요한 투쟁이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주인공”이라고 역설한다.
기자의 눈은 사실과 진실, 역사적 인과관계에 충실했다.
따뜻한 시선과 기록, 고발, 보도에 충실한 직업적 전문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글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원희복 기자는 기록문학이 어떻게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지 예시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촛불민중혁명사>는 박근혜 정권 등장 이후 이에 저항하는 국정원 시국회의에서부터 진보당강제해산반대 국민운동본부, 교과서국정화저지 네트워크, 세월호 희생자연대모임 416연대, 민주주의국민행동, 민중총궐기운동본부의 험난한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다룬다. 그리고 이 힘들에 시민사회단체연대가 가세하면서 ‘박근혜정권퇴진비상행동(퇴진행동)으로 결집하는 과정이 촛불혁명의 폭발과정이라고 서술한다.
또한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역사전쟁, 세월호 투쟁, 민중총궐기, 백남기 농민 투쟁 등 촛불혁명 진화과정에서 나타난 주요 변곡점들에게 대해서도 나름의 분석을 가했다.
최근 촛불로 세워진 정권하에 촛불혁명의 정신과 요구가 하나둘씩 좌절되어가는 안타까움을 느끼는 민중들에게 자신이 참여하고 일궈낸 촛불혁명의 근본요인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 하나의 위로가 될 것이고, 현재의 동요과 고비를 뛰어넘어 기어이 촛불혁명을 완성할 수 있는 희망이 될 수 있겠다.
▲ 시민들이 <촛불민중혁명사> 저자 원희복 경햔신문 선임기자에게 꽃과 케익을 선물했다.
기자의 눈은 기회주의에 대해 의외로 단호했다. 거칠다 싶을 만큼.
저자는 이 책을 쓴 중요한 동기를 “기레기”가 되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국정원 댓글에 저항하는 촛불에 위기감을 느낀 박근혜가 김기춘을 비서실장으로 세우면서 종북공안광풍이 몰아치고, 그 첫 번째 희생양으로 이석기 내란음모조작사건과 진보당 해산 사건이 터질 때, 나치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마르틴 니묄러의 시 <그들이 처음 왔을 때>가 유행하던 당시의 분위기를 언급한다. 그리고 그 어두운 시절, 침묵하고, 선긋기를 하고, 외면하고,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는데 급급했던 민주당과 진보정당 일부, 시민사회단체, 돌격대로 나섰던 언론들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민중이 박근혜의 즉각 퇴진을 외칠 때, 정치권과 퇴진행동 일부에서 ‘박근혜 정권의 안전한 퇴각론’, ‘하야’ 등의 주장으로 공포와 보신에 급급했던 기회주의자들의 행태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저자는 “먹물들은 노동자농민과 같은 ‘무지렁이’가 세상을 뒤집었다는 것을 한사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정서의 반영이라고 폭로한다.
민중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촛불혁명을 재조명한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자기 이야기를 거칠게 밖에는 할 줄 모르는 민중을 대신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많은 진보진영 단체와 청년들, 학생, 자녀들에게 꼭 권장해야할 촛불혁명에 대한 또 하나의 교과서라 할 수 있겠다.
▲ <촛불민중혁명사> 저자 원희복 기자에게 열띤 질문을 하고 있는 참가 시민들
이런 심정들은 지난 8월 25일 서교동에 위치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사무실에서 이병창 교수의 주도아래 열린 ‘저자와의 대화’ 자리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책 어딘가에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있나 관심있게 찾아본 시민들이 조촐하게 마련한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최근 문재인 정부가 이재용을 만나 구걸하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심정을 많이 이야기했다. 촛불혁명을 과연 ‘혁명’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질문과 논쟁도 나왔다.
촛불혁명에서 저자는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백남기 농민의 시신을 경찰이 강제부검을 시도할 때 여성 등 많은 시민들이 팔뚝을 걸고 이를 막던 장면이며, 이 장면은 퓰리처상감이라고 말했다.(265쪽)
촛불혁명의 주역들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함세웅 신부를 포함한 민주행동, 한상균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총, 김영호 의장을 비롯한 전농, 한국진보연대 등 연대조직, 통합진보당 등 진보정당 들이라고 거침없이 대답했다.
저자는 이날 마지막으로 앞으로 백편 이상의 논문들이 촛불혁명에 대해서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최순실 국정농단이나 태블릿 피시 폭로가 중요한 도화선은 되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시작은 민중들의 저항에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참여시민들은 저자에게 꽃과 케익을 선물하고, 저자 사인회를 열었다.
▲ <촛불민중혁명사> 저자와의 대화 이후 기념사진(왼쪽), 저자 원희복 기자에게 사인을 받고 있다(오른쪽)
원희복 기자는 경향신문 선임기자로서 2014년부터 “인물탐구”를 매주 연재(현재 427회)하고 있다. 2006년는 제8회 민주시민언론상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2004년 <조용수와 민족일보>(도서출판 새누리)
1995년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평전>(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2015년 <보물선 돈스코이호 쫓는 재벌 권력 탐사가>(공명)
2011년 <국가가 알려주지않는 공무원 승진의 비밀>(위즈덤하우스)
2015년 김찬‧도개손 부부의 평전 <사랑할 때와 죽을 때>(공명) 등이 있다.
김장호 기자  jangkim2121@gmail.com

2018년 8월 25일 토요일

‘청양 면장댁 셋째’ 이해찬 다잡은 딱 세줄 아버지 엽서

‘청양 면장댁 셋째’ 이해찬 다잡은 딱 세줄 아버지 엽서

등록 :2018-08-25 19:44수정 :2018-08-25 21:35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225
민주당 새 선장 이해찬 대표 들여다보기

“담백하고 가식 없는 삶” 아버지 큰 영향
민청학련·김대중내란음모 사건으로 옥고
6월항쟁 뒤 평민당 입당 13대 국회 출마

“성실하고 철저한 개량주의자가 진보에 기여”
“리더는 잘 맞지 않아···리더 도와주는 장기”

2010년 “2012년 정권교체는 어렵다” 예측
재단법인 광장 이사장 지내며 재집권 준비

“민주개혁진영 정체성·가치·비전 명확해야”
늦게 출마했어도 역량·경험은 ‘준비된 대표’
“한 표 줍쇼!”
“한 표 주소!”
“한 표 줘유!”
25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린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 폭소와 박수가 터졌습니다. 기호 3번 이해찬 후보가 연설 말미에 예능 프로그램 <한끼줍쇼> 얘기를 하며 대의원들에게 표를 구걸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자존심 강한 저 사람이 표 구걸을 다 하네”라고 촌평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7선의 전직 국무총리 이해찬 의원(66)이 새 대표에 당선됐습니다. 어떤 정치인을 알고 싶을 때 그가 과거에 썼던 글과, 했던 말을 찾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역사의 고비에서 시대 상황을 어떻게 인식했고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서전이 있었습니다. <청양 이 면장댁 셋째 아들 이해찬>(2007, 푸른나무)입니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 쓴 책입니다. 책 표지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는 발표를 한 뒤 나는 아버님 산소를 찾았다. 사람들 눈에는 으레 하는 ‘의식’이나 ‘절차’로 비쳤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청양 이 면장’께 고하고 싶었다. 당신의 짧지만 한없이 무거운 당부를 잊지 않겠다고. 정치는 그때나 지금이나 번잡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이 면장 댁 셋째 아들’로서 그 속에서도 담백하고 가식 없이 살아보겠노라고.”
이해찬 대표는 1952년 7월 10일 충남 청양에서 출생했습니다. 청양초등학교, 덕수중학교,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1년 서울대 섬유공학과에 입학했다가 다음 해 사회학과에 다시 입학했습니다.
1974년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과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두 차례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 뒤 민청련과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에서 활동하던 재야인사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자서전도 아버지 얘기로 시작합니다.
나는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4년 4월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 재판이 끝나고 대전교도소에서 징역을 살고 있던 한겨울의 어느 날 , 엽서를 한장 받았다 . 아버님이 보낸 엽서였다 . 아버님은 서대문구치소에 있을 때 한 번 면회를 오셨고 , 그 뒤 재판정에도 한 번 오셨지만, 교도소로는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으셨다 . 엽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추운 겨울에 동상 걸리지 않도록 해라 .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들에게 잘해라 .
애비 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딱 세 줄이었다. 나는 그 엽서를 보고 혼자 가만히 웃었다. 담백하고 가식 없는 삶···. 그 엽서는 아버님이 살아오신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이기도 했다.
자서전에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진로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한겨레신문 >에 갈 생각을 했다 . 재야운동을 할 때 늘 정책이나 기획 분야를 맡아 정세 분석이나 글 쓰는 일에 익숙했고 , 예전부터 책이나 잡지 ·출판에 관심이 많아서 나한테 잘 맞을 것 같았다 . 그런데 평민당(평화민주당)이 재야인사들한테 영입을 제의해 왔다 .
이 대목을 읽으며 만약 이해찬 대표가 정치를 하지 않고 <한겨레신문>에 왔다면 뛰어난 논설위원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해찬 대표는 김대중 총재의 평민당에 입당했고 1988년 총선이 소선거구제로 바뀌면서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 평민당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민정당의 김종인 후보, 통일민주당의 김수한 후보 등 거물들을 꺾고 당선됐습니다. 재야인사에서 정치인으로 신분이 바뀐 것입니다.
자서전에는 이해찬 대표 자신의 정체성이나 정치적 스타일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정치인 이해찬’의 본질을 잘 묘사한 대목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개량주의자라고 설명했습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근본주의적이거나 극단적인 주장에는 잘 끌리지 않는 개량주의자이다 .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가장 공감했던 말은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배우라 ”는 말이었다 .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오가는 불성실하고 불철저한 근본주의자보다는 성실하고 철저한 개량주의자가 사회의 진보에 훨씬 더 기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이 즐겨 쓰던 말 중에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 감각”이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해찬 대표를 좋아했던 이유가 바로 이해찬 대표의 이러한 가치관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재야 출신인 이해찬 대표가 처음부터 균형 감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1989년 출판한 <이해찬 평론집 : 민주와 통일의 길목에서>라는 책에서 평민당 초선 국회의원이었던 이해찬 대표는 자신의 생각이 변화하는 과정을 꽤 진솔하게 써 놓았습니다. 통일민주당의 노무현 강신옥 의원, 평화민주당의 이해찬 양성우 의원이 ‘우리에게 정치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좌담을 했습니다. 사회를 본 이해찬 의원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노 의원께서 말씀한 것처럼 정치에는 여러 가지 이해관계 집단들이 여러 가지 로비와 여론의 형태로 압력을 가해오기 때문에 단순히 이념만을 가지고 정치가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이념 이외에 이해를 대변하고 조정하는 문제가 우선 재야에서 하던 일과는 엄청나게 다릅니다. 재야에서는 어떤 이념이다 통일문제다 노동자들의 권익 문제다 하면 그 문제를 가지고 주저 없이 밀고 나가면 됩니다. 일이 해결되든 안 되든 하다 보면 일정한 성과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데 적어도 자기 운동으로서의 자기실현은 해 나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재야운동권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많은 요구를 하지 않아요. 적어도 직접 일상적인 자기 문제를 호소하는 일이 흔한 게 아닙니다. 그런데 정당에는 엄청나게 많은 이해가 다 쏟아져 들어오는 곳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그것을 선별하고 중점을 두고 하는 일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고 중요한 문제가 있어도 그 문제만 열심히 추구하기 어려운 그런 구조상의 문제들에서 재야와의 차이를 느낍니다.(중략)
이렇듯 각 부문에서의 운동성과 정당의 노력이 불가분의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한 것이 국민적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가능한 한 그러한 운동과 정당 간에 괴리를 줄이도록 하는 작업이 앞으로 계속되어야만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고, 그동안에 국회가 여러 가지 부정적인 이미지를 빨리 극복하려면 이번 국회에서처럼 약간의 성과라도 국민들에게 바로바로 알려지고 그 반응이 돌아오고 하면 정당이나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성이 높아지리라 봅니다. 그리고 당내에서부터 그리고 국회 내에 새로운 정치문화를 형성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재야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어떻습니까? 이해찬 대표는 다른 자리에서도 여러 차례 자신이 현실 정치를 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성장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으며, 재야에서 받아들였던 민족경제론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습니다.
다시 2007년 시점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해찬 대표는 처음으로 자서전까지 써가며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지만 패배했습니다. 정동영-손학규-이해찬 후보가 겨룬 경선의 승리자는 이해찬 대표의 친구였던 정동영 후보였습니다. 정동영 후보는 2007년 대선에서 참패했습니다. 이해찬 대표는 2008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습니다. 2008년 5월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의 의정보고서를 냈습니다. 의정보고서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저는 올해 20년간의 관악구 국회의원 생활을 마감하고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습니다 . 관악주민 여러분의 과분한 사랑에 대한 보은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마는 관악이 길러낸 정치인 이해찬으로서 좀 더 큰 시야에서 나라를 위한 일을 하는 것이 여러분께 보답하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민족사의 정기를 되살리기 위해서 독립투사 운암 김성숙 선생님의 기념사업회 일을 맡았습니다 . 아울러 한국 개혁진영의 정체성과 노선을 복원하고 서민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는 재단법인 광장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일에 힘을 쏟기로 하였습니다 . 관악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일할 것을 관악주민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
2010년 1월 이해찬 대표는 재단법인 광장 이사장이었습니다. 이때 출판된 <문제는 리더다>(2010, 메디치)라는 책이 있습니다. 방송인 정관용씨가 남재희, 김종인, 윤여준, 이해찬 네 사람과 나눈 대담을 묶은 것입니다. 이 시기 이해찬 대표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우선 자신의 정치적 자질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나옵니다.
나는 리더가 잘 맞지 않아요 . 리더를 도와주는 데는 대단한 장기 ( 長技 )가 있어요 . 김 대통령도 그렇고 노 대통령도 그렇고 , 내가 두 번 선거에서 모두 기획본부장을 했는데 , 두 번 다 쉬운 전술이 아니었어요 . 그리고 굉장히 용의주도하게 해야지 허술하게 해서 되는 게 아니었어요 .
흥미로운 대목은 2010년 시점에서 내다본 정치 전망입니다. 이해찬 대표는 2012년 정권교체 가능성을 매우 낮게 봤습니다. 2017년에나 반전이 올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2012년 대선에서 야당이나 진보진영의 집권은 생각보다 쉽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 혹 2017년에는 가능할지 모르죠 . 민심의 역사적 반전 ( 反轉 )이 오는 시점이 있는데 , 그냥 오진 않아요 . 현재 이쪽 진영의 인물이나 역량으로 보면 2012년에 반전을 기대하긴 어려워요 . 그런데 한 십 년 하고 나면 국민들의 정서나 마음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 , 2017년에 가서는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하는 반전이 올 가능성이 있어요 .(중략 )
우리에게도 그런 식의 정권교체 내지 새로운 역할이 요구될 때가 올 텐데 그것에 맞춰서 2017년 후보는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거기에 누가 가장 적합할 건가를 생각하지요 . 7년 후면 우리 사회가 많이 변할 텐데 , 그 시대와 국민들의 요구를 생각해보면 , 지금 40대 초중반에서 50대 중반 정도의 나이에 , 앞으로 십 년을 앞두고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하는데 ···. 유시민 전 장관과 박원순 씨가 가시적인 후보고 , 2022년쯤이면 민노당의 이정희 의원도 가능하다고 봐요 . 상당히 야무지고 열정도 많고 , 2022년이면 나이가 50대니까 , 지금 페이스로 십 년만 열심히 하면 제 2의 노무현이 나올 수도 있어요 . 노 대통령이 초선을 40대 초반에 해서 13년 만에 대통령이 된 거거든요 . 이정희 의원은 능력도 있고 , 품성도 훌륭하고 , 제가 보기에는 유시민 , 박원순 , 이정희 정도가 2017년 , 2022년 후보로서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어떻습니까? 2010년 시점에서 이해찬 대표는 유시민, 박원순, 이정희 세 사람을 장래의 대통령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시민, 이정희 두 사람은 정치를 아예 그만뒀으니, 이제 박원순 서울시장 한 사람만 남았네요.
이해찬 대표는 공직에서 물러나 있는 기간에도 쉬지 않았습니다. 재단법인 광장 이사장으로 수많은 좌담, 토론, 출판을 기획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활동이 모두 민주·개혁 세력의 재집권 준비였던 것 같습니다.
“나쁜 정치를 바로 잡고 나라를 바르게 이끌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지켜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선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현 집권당이 무능하고 사심이 가득하며, 오만하다 할지라도 대안이 되어야 할 비판 진영이 지리멸렬하다면 국민은 좌절하고 무관심하게 됩니다.
대안을 만들기 위해 첫 번째로 할 일은 민주개혁 진영의 정체성과 가치, 그리고 비전을 명확하게 하는 일입니다.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어떤 가치를 실현하려 하고 내가 실현할 가치가 어떤 미래를 만들 수 있는지를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이 선택할 근거가 마련됩니다.“(2011, 광장에서 길을 묻다 : 이해찬과 진보 지성 23인의 대화)
“저는 주로 정책을 다룬 사람인데, 그러다 보면 사회가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자주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 특성을 분명히 인식하지 않으면 자꾸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그 특성 가운데 핵심은 분단입니다. 분단된 나라는 지금 우리나라밖에 없죠. 분단 때문에 전쟁도 터지고, 각종 음해도 일어나고, 국방비도 많이 써야 하는 등 별일이 다 생기는 겁니다. 분단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구조적 제약입니다.
두 번째는 지역주의입니다. 지역주의 때문에 정상적인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 번째가 개방형 통상국가입니다. 우리는 수출 위주로 경제성장을 추진하다 보니 구조적으로 개방형 통상국가가 돼버렸어요. 이 구조를 조금 벗어나기 시작하면 경기가 불황으로 빠져버립니다. 네 번째는 사회의 양극화입니다.(중략)
이 구조 때문에 사회의 안정을 이룰 수가 없는 겁니다. 남북분단, 지역주의, 개방형 통상국가, 사회적 양극화, 이 네 가지는 쉽게 고칠 수 없습니다. 제도 몇 가지를 고친다고 해서 금방 바뀌지 않거든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민생경제를 안정시키고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굉장히 어려운 과제죠. 김대중 대통령은 5년 동안 왜 못했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5년 동안 왜 못했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주장했잖아요. 5년, 10년 안에 고칠 수 있는 것이었으면 벌써 고쳤죠.”(2011,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
이해찬 대표는 2012년 19대 총선에서 지역구를 세종시로 옮겨 다시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그리고 민주통합당 6·9 전당대회에 박지원 원내대표와 이른바 ‘이-박 연대’로 출마해 대표에 당선됐습니다. 하지만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내에서 퇴진론이 터져 나와 대표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해찬 대표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했습니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복당했습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그는 세종시 국회의원 이외에는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2018년 발간된 ‘국회의원 이해찬 의정보고서 제 6호’는 세종시 관련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동안 국회 상임위원회에서도 전직 국무총리로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세종시 관련 정책 질의에 치중했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전언입니다. 이번 전당대회 대표 출마 결정이 갑작스럽게 이뤄졌다는 정황 증거들입니다.
아무튼 이해찬 대표가 이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됐습니다. 출마는 갑작스럽게 이뤄졌지만 그의 인생과 가치관, 정치적 역량과 국정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준비된 집권여당 대표’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한 축을 담당하는 더불어민주당 대표로서 국정과 정치를 잘 이끌어주기를 기원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2007년 자서전 표지
2007년 자서전 표지
이해찬 대표의 가족
이해찬 대표의 가족
이해찬 대표의 어릴 때 모습
이해찬 대표의 어릴 때 모습
13대 총선 평민당 후보 벽보
13대 총선 평민당 후보 벽보
1989년 이해찬 평론집
1989년 이해찬 평론집
1989년 이해찬 평론집
1989년 이해찬 평론집
2008년 의정보고서
2008년 의정보고서
2010년 <문제는 리더다> 책 표지
2010년 <문제는 리더다> 책 표지
2018년 의정보고서
2018년 의정보고서

'언제 또 만날까'…이산가족 오늘 눈물의 이별

南가족, 작별상봉으로 마지막 인사한 뒤 버스로 귀환 예정
이 눈물로 그리움이 잊혀질까
이 눈물로 그리움이 잊혀질까(금강산=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둘째날인 25일 오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의 박춘자(77)씨가 북측의 언니 박봉렬(85)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2018.8.25 jieunlee@yna.co.kr
(금강산·서울=연합뉴스) 공동취재단 백나리 기자 = 이산가족 2차 상봉 행사 마지막 날인 26일 남북의 가족은 작별 상봉을 마지막으로 다시 긴 이별에 들어간다.
이들은 이날 오전 단체로 작별 상봉을 하고 함께 점심을 먹는다.
재회의 기약이 없는 작별이라 1차 상봉단의 작별 상봉 때처럼 곳곳에서 눈물을 쏟으며 헤어짐을 아쉬워할 것으로 보인다.
작별 상봉이 끝나면 남측 가족들은 오후 1시 30분께 버스를 타고 금강산을 떠나 남측으로 귀환할 계획이다.
이로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27 정상회담에서 합의했던 8·15 계기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마무리된다. 앞서 1차 상봉단이 20∼22일 금강산에 가 북측 가족을 만났고 이어 24∼26일 2차 상봉이 이어졌다.
이번 상봉행사에서는 65년 넘게 헤어졌던 남북 가족이 호텔 객실에서 가족만의 식사를 했다. 개별상봉은 상봉행사마다 있었지만, 개별식사를 한 것은 처음이다.
'눈물 흘리는 남매'
'눈물 흘리는 남매'(금강산=연합뉴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둘째 날인 25일 오후 북한 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안길자(최성순에서 개명, 85) 할머니가 남측 동생 최성택(82) 할아버지 등 가족들과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8.8.25 [뉴스통신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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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8/26 06: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