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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6일 목요일

남북정상회담 당일, 조선일보 “북핵 폐기 못하면 아무 것도 아냐”

[아침신문 솎아보기] 남북정상회담, 단판승부 요구하는 조중동… “정부발표 따르라” 방통심의위 월권 논란도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2018년 04월 27일 금요일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이날 아침신문들은 1면에서 정상회담 소식을 다뤘다. 단계적 평화체제 구축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보수신문은 ‘단판승부’를 요구하고 나섰다. 조중동은 일제히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상회담 보도에 대한 사전 ‘권고문’을 배포한 데 대해 ‘언론통제’ 논란을 제기했다. 드루킹 논란을 계기로 네이버에 ‘아웃링크’를 요구하는 기사들도연일 쏟아지고 있다.
다음은 27일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다. 
“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한 걸음 한 걸음 뒤따라 오라”(경향신문)
“이 길에서 평화가 시작된다”(국민일보) “9시30분 판문점, 비핵화 첫발 뗀다”(동아일보) “분단 넘어서 평화 새길로”(서울신문) “분단 5cm 벽 넘어... 남북 평화 새 길 연다”(세계일보) “25년을 끌어왔다, 북핵 마침표 찍자”(조선일보) “비핵화 여정... 한반도 빅게임 시작됐다”(중앙일보) “1953. 7.27 정전 2018. 4. 27 평화”(한겨레) “남과 북, 모이고 포개졌던 사을 기억해 냈으면”(한국일보) 
▲ 27일 한겨레, 경향신문 1면.
▲ 27일 한겨레, 경향신문 1면.
회담 성패는 ‘비핵화 의지’
이번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의제는 크게 비핵화, 한반도 평화구축, 남북관계 등 3개 분야다. 이 가운데 정부와 언론은 비핵화 명문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임종석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은 “뚜렷한 비핵화 의지를 명문화할 수 있다면 더 나아가 이것이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의미함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면 이번 정상회담이 매우 성공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은 이번 회담에서의 비핵화 ‘의지’가 명문화 되는지 여부에 따라 북미 정상회담 성공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경향신문은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회담에서 현존하는 모든 핵무기에 대한 궁극적 폐기 방침을 분명히 밝히고 이를 토대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회담에 임하게 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한겨레 역시 “남북정상이 비핵화와 평화를 향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다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 내 일각의 우려를 씻어내면서 회담 성공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신문도 “남북 정상회담은 그 자체로 역사적이지만 한미,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과정의 디딤돌”이라고 밝혔다.
▲ 27일 중앙일보 기사.
▲ 27일 중앙일보 기사.
이 가운데 조중동은 북한이 모호한 합의 문구를 끌어내게 한 다음 순차적으로 경제지원 등을 요구할 가능성을 언급하며 ‘우려’를 부각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많은 사람이 지금 마치 평화가 온 듯 생각하고 있다. 봄 바람이 불 때 얼음이 깨지는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면서 “북핵 폐기를 확인하면 성공이고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역시 “비핵화를 둘러싼 남북의 인식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비핵화에 합의해도 구체적인 후속조치에는 여러 난관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선언적 의미의 비핵화만 합의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내용을 ‘한 외교 소식통’을 통해 전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주한미군 철수나 핵우산 폐기 노림수가 들어 있는 조선반도 비핵화같은 모호한 합의 문구로 회담의 성공을 내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서 “혹여 김정은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천명을 끝내 거부한다면 문 대통령은 의지를 박차고 나올 수도 있다는 결기를 갖고 회담장에 들어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부발표 따르라” 방통심의위 월권 논란 
정상회담을 앞두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사전 가이드라인 성격의 권고문을 배포한 데 대해 보수신문은 ‘언론통제 논란’으로 부각하고 나섰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6일 배포한 ‘취재보도시 유의사항’을 담은 공고문을 발표했다. 방통심의위는 △정상회담 기간 동안 특별 모니터링팀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하고 △‘유의해야 할 사항’으로 ‘정부의 공식 발표를 토대로 보도할 것’을 요구하고 △언론사가 직접 취재할 경우 확인되지 않은 발언 또는 주장 인용을 지양할 것 등을 권고했다. 
조중동은 일제히 권고문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전문가들은 방통심의위의 권고가 언론의 취재, 보도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방통심의위는 민간기구지만 정부여당이 추천하는 위원이 다수로 구성되기 때문에 정부 행사에 부정적인 보도를 막기 위해 지나친 사전개입을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한 조중동은 26일 ‘사전개입은 명백한 월권’이라는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성명을 비중 있게 인용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진보 언론단체까지 ‘회담취재 부당한 간섭 중단하라’”는 제목을 통해 진보단체도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지난 정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검열행위 비판, 공영방송 개혁 요구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 이들 신문이 이처럼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입장을 전하는 경우는 없었다. 
언론의 ‘아웃링크’ 타령 이어져 
드루킹 사건으로 촉발된 네이버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언론사는 아웃링크(기사를 클릭하면 네이버가 아닌 언론사 홈페이지로 이동하는 방식)에 네이버가 소극적이라는 점을 비판하고 나섰다.  
매일경제는 “아웃링크 방식 도입이 국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됐다”면서 여야의 관련 법안 추진 계획을 전했다. 중앙일보는 “해외 주요 포털과 매체들은 이미 뉴스를 클릭하면 해당 언론사 사이트로 연결하는 아웃링크로 뉴스를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 27일 중앙일보 기사.
▲ 27일 중앙일보 기사.

앞서 신문협회가 아웃링크 도입을 찬성하는 입장을 내자 24개 신문이 이를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언론사 홈페이지 직접 방문 비율이 늘면 수익이 올라가기 때문에 네이버 댓글 논란을 지렛대 삼아 이 같은 주장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드루킹 논란 이후 네이버가 댓글 개편을 했음에도 댓글량에 별다른 차이가 없어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서울경제는 “25일 총 31만 1373개의 댓글이 네이버 뉴스에 올라온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개편 전인) 24일에는 29만 926개의 댓글이 달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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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닥치는 어린 죽음, 동물구조센터의 ‘잔인한 봄’

이준석 2018. 04. 26
조회수 757 추천수 0
소쩍새, 수리부엉이, 삵, 고라니…여름 전쟁터 앞둔 폭풍 전야
충돌, 둥지 파괴, 납치 등 어린 생명의 고통과 죽음 몰려들어

r2.JPG» 4월은 야생동물에게도 잔인한 철이다. 번식기여서 새끼가 늘어나고 구조되는 개체도 많고 짧은 생을 마감하는 동물도 많다. ‘솥 적다’고 한 번도 울어보지 못한 채 건물에 충돌해 죽은 어린 소쩍새.

꽃샘추위가 지나고 벚나무는 꽃잎을 떨어뜨려 푸릇한 요즘 새들은 저마다 둥지를 짓느라 분주하고, 여름 철새는 하나둘 돌아와 여름이 다가옴을 알린다. 4월은 여름이라는 폭풍의 전야로 구조센터는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름은 야생동물의 번식기여서 야생동물의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만큼 많은 동물이 구조되고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한 어린 동물 또한 넘쳐나 구조센터로서는 정신없는 폭풍 같은 시기이다. 

4월 중순인 지금 멧비둘기와 수리부엉이 새끼, 여름 철새인 소쩍새가 벌써 구조됐다. 구조센터의 여름은 이미 시작된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머지않아 더 많은 동물이 밀려들 것이다.

r5.JPG» 어린 수리부엉이가 구조됐다. 구조센터의 여름은 벌써 시작됐다.

생태계의 시간은 여간해서 크게 뒤틀리지 않는데 야생이 살아 숨 쉬는 자연이 아닌 구조센터에서도 그 시간을 느낄 수 있다. 매년 3월 말 가장 먼저 번식을 시작하는 수리부엉이와 연 2~3회 번식하는 어린 멧비둘기가 구조되면서 여름이 다가옴을 알린다. 

r15-1.jpg» 구조돼 치료를 받고 자연으로 돌아간 어린 멧비둘기.

그 뒤를 이어 4월이면 까치와 올빼미 등의 새끼와 번식을 위해 돌아온 제비, 소쩍새, 솔부엉이 등의 여름 철새가 구조된다. 포유류 중에선 어린 삵이 가장 먼저 구조 혹은 납치되기 시작한다. 

5월이면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다. 위에 언급한 동물들과 함께 더 많은 어린 새가 구조되는데 참새목에 속한 참새, 박새, 딱새 등의 유조는 한두 마리가 아닌 둥지째 구조되고, 흰뺨검둥오리, 원앙의 유조도 수 십 마리가 한 번에 구조되기도 한다. 포유류는 삵과 함께 너구리가 구조되기 시작한다. 

r7.JPG» 구조된 원앙 새끼들.

6월은 여름의 절정으로 여름 철새의 유조와 어린 고라니, 수달까지 구조되며 일 년 중 가장 많은 동물이 구조되는 시기다. 작년의 경우, 6월 한 달 동안 구조된 야생동물은 277마리이며, 4월부터 8월까지 700여 마리가 구조됐다. 다친 야생동물의 수만 봐도 여름이 폭풍이라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숫자로는 이렇게 덤덤하게 얘기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숫자는 여름의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야생동물 구조센터에서 생태계의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생태계의 시간에 발맞추는 야생동물의 삶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700여 마리의 동물이 구조됐는데, 숫자 하나마다 한 마리의 삶과 고통이 녹아있다. 그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단순히 700이라는 숫자에 가두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r6-1.jpg» 구조된 꺼병이(꿩 새끼).

최근 구조된 수리부엉이 유조는 차량과 충돌하면서 양쪽 날개가 모두 부러져 안락사시켜야 했고, 건물에 충돌한 소쩍새는 폐사했다. 이 시기에 구조되는 암컷 고라니는 태아를 지닌 상태로 숨이 끊어진다. 벌써 많은 생명이 죽어 나가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곧 어린 포유류들이 납치당해 어미와 생이별할 것이다. 둥지 밖으로 나서보지도 못한 어린 새들은 나무가 베어져 둥지째로 추락하거나, 인간에게 방해된다는 이유로 둥지가 허물어지고 길바닥에 버려진 채 구조될 것이다. 죽은 어미 곁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어린 오리들이 구조될 것이며, 먼 길을 날아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사고를 당한 여름 철새들이 구조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처절한 여름이 왔음을 알려준다.

r-1-2.jpg» 차량 충돌로 다리가 골절돼 수술을 기다리는 고라니, 엑스선 사진에서 3마리의 태아를 볼 수 있다.

생명이 싹트는 계절이지만 세상에 나오자마자 빛을 잃는 동물이 많다. 늘 죽음을 곁에 두는 곳이기에 익숙할 법도 하지만, 갑작스레 닥쳐오는 수백 마리의 죽음과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어린 생명의 죽음, 잠깐의 방심과 작은 실수도 용납지 않고 매정하게 떠나버리는 생명을 보면서 자신의 노력에 대한 의구심과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떨칠 수 없다. 폭풍을 만나 조금씩 가라앉는 기분이다.

r11-1.jpg» 하나둘 떠나는 어린 생명을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가뜩이나 순탄치 못한 야생동물의 삶은 인간으로 인해 더욱 힘겹기만 하다. 하지만 그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짧지만 생기 넘치고 역동적인 야생의 삶을 보노라면 별것 아닌 작은 행동에도 감동을 하게 된다. 그들이 그러한 삶을 잃고 모든 걸 체념한 눈을 할 때, 우리 손으로 그 삶을 다시 한 번 되돌려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다잡고 나선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올여름도 그들과 삶과 죽음을 함께할 것이다. 한 생명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여름을 보내야겠다.

글·사진 이준석/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연구원

흥남철수 배에서 태어난, 68살 ‘김치 베이비’의 평화가게

흥남철수 배에서 태어난, 68살 ‘김치 베이비’의 평화가게

등록 :2018-04-26 19:46수정 :2018-04-27 01:08


문 대통령도 흥남철수 피란민 출신
2004년 어머니·이모 상봉 직접 지켜봐
1950년 12월 흥남철수 당시 경남 거제로 향하던 피란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김치 베이비’와 그들 부부는 지난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이틀간 스페셜봉사단으로 활동했다. 봉사 첫날이던 2월23일 강원도 강릉시 올림픽파크에서 네 사람이 컬링 경기 봉사를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김치 넘버 원’ 손양영씨, 그의 아내 유동남씨, 옥정희씨(이경필씨 아내), ‘김치 넘버 파이브’ 이경필씨. 평화통일연구회 옥영태 대표 제공
1950년 12월 흥남철수 당시 경남 거제로 향하던 피란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김치 베이비’와 그들 부부는 지난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이틀간 스페셜봉사단으로 활동했다. 봉사 첫날이던 2월23일 강원도 강릉시 올림픽파크에서 네 사람이 컬링 경기 봉사를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김치 넘버 원’ 손양영씨, 그의 아내 유동남씨, 옥정희씨(이경필씨 아내), ‘김치 넘버 파이브’ 이경필씨. 평화통일연구회 옥영태 대표 제공
‘김치 넘버 1’ 손양영씨
5살 딸·9살 아들 두고 배에 오른 부모
그 이름 부르고 또 부르다 세상 떠나
“북한의 형·누나 만나 한 풀었으면”
‘김치 넘버 5’ 이경필씨
아버지 전쟁없이 살고 싶단 말씀에
가축병원 문 열며 ‘평화가축병원’ 간판
“부모 고향에 갈 날 하루빨리 오기를”
“죽기 전에 함경도에 있는 부모님 고향 땅을 밟고 북한에 남겨진 형 누나 얼굴을 볼 수 있을까요?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북한과 왕래하며 사는 게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 모두의 소망일 겁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25일, 성탄절을 맞은 경남 거제 장승포항에는 이틀 전 피란민 1만4천명을 태우고 흥남부두를 떠난 미국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도착했다. 혼란스러운 전쟁통이었지만 이틀 남짓한 시간 동안 배에서는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고, 미국인들은 아이들에게 ‘김치 파이브’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 배에서 첫 번째, 다섯 번째로 태어난 실향민 손양영(68)·이경필(68)씨는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평창 겨울올림픽부터 본격화된 한반도 평화의 불씨가 영원히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이들의 감회는 남달라 보였다. 정상회담에 나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처럼 이들이 태어난 빅토리호를 함께 타고 장승포항에 내린 피란민이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2004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지낼 때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어머니 강한옥씨가 여동생을 만나 목 놓아 우는 모습을 지켜본 적도 있다.
다섯 아기 중 첫 번째로 태어나 ‘김치 넘버 원’으로 불린 손씨도 “북한에 두고 온 형과 누나를 꼭 만나 돌아가신 부모님의 한을 풀고 싶다”고 소망했다. 흥남철수 당시 손씨의 부모에게는 아홉 살 아들과 다섯 살 딸이 있었다. 손씨는 어머니의 배 속에 있었다. 만삭인 아내와 어린 자녀들까지 함께 피란길에 오르기 힘들다고 판단한 아버지는 손씨의 형과 누나에게 “큰삼촌과 며칠만 지내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빅토리호에 올랐다. 금방 전쟁이 끝나 자녀들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손씨의 부모는 60년 동안 북에 두고 온 자녀를 끝내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북에 두고 온 자식들이 그리웠던 손씨의 부모는 생전에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부를 때 항상 ‘영옥아’라고 하셨어요. 북한에 두고 온 누나 이름이 손영옥입니다. 치매를 앓았던 어머니는 제 아내한테 ‘영옥아, 영옥아’ 하셨고요.” 10여년 전 세상을 떠난 손씨의 어머니는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때마다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어머니는 ‘곧 고향에 가서 자식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셨어요. 결국 한을 풀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셨네요.”
지난 2월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리셉션에 참석했던 손씨는 ‘평화’를 구체적인 공기로 느꼈다고 한다. “김여정과 김영남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고향 사람을 만난 듯했어요. ‘곧 형과 누나를 만날 수 있으려나’ 싶었습니다.”
빅토리호에서 막내로 태어난 ‘김치 넘버 파이브’ 이씨도 남북정상회담으로 불어온 따뜻한 평화의 기운이 반갑기만 하다고 했다. 이제 ‘수의사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더 익숙한 이씨는 1975년 처음 문을 연 동물병원 이름을 ‘평화가축병원’이라고 지었다. “아버지가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 동물병원 이름에 ‘평화’를 넣어달라고 하셨어요. 다른 가족들도 자영업을 했는데 ‘평화사진관’, ‘평화상회’라는 간판을 달았습니다.” 평생 고향을 그리워한 그의 아버지는 10여년 전 세상을 뜨면서 “묘비에 함경남도 흥남시 고향 주소를 적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아버지는 언젠가 통일이 되면 후손 중 누군가가 대신 고향 땅을 밟아줬으면 하고 바라셨어요. 제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고향에 갈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합니다.” 차분하고 온화한 그의 말투에서 봄기운이 느껴졌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겨레의 핵우산 쓰고 미군 철수

[연재] 오인동의 ‘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조국’ ⑪
오인동  | 등록:2018-04-26 10:28:25 | 최종:2018-04-26 11:07:42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오인동 / 재미동포 정형외과 의사이자 통일운동가
<차례>

11. 겨레의 핵우산 쓰고 미군 철수
2013년에도 인공고/무릎관절 수술하려 평양에 갔다. 출간한 책 <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의 꿈-남북 연합방>도 가지고 갔다. 평양의학대학병원 의사들과 수술을 하고 난 오후, 책을 받아본 양철식 6.15선언실천 북측부위원장과 만났다. 척하거나 체하지 않고 말 수가 적은 북 고위관료들과의 대화는 재외동포에 연상인 내가 주로 이끌게 된다.
다른 날 저녁엔 초대소에서 해외동포위원회 맹경일 부위원장과 ‘연합방-연방’기에 북핵을 남북이 ‘겨레의 핵’으로 품어 안아야 할 데 대한 얘기를 나눴다. 서로 다른 의견도 있었지만 원칙적으로 공감했다. 열흘 뒤 서울로 가서 10일 동안 대학과 시민단체들에서 통일 강연을 했다. '연합방 경제체제의 실행과 연합방 평화체제’ 합의에 대한 공감은 컸다.
2014 년 4월에는 3주 동안 6·15 남측위원회 지역본부 안영욱 위원장과 시민단체들이 마련한 20차례 전국순회강연도 했다. ‘북핵=겨레핵의 비확산’을 합의/선언한 뒤  ‘겨레의 핵우산 쓰고' 미군을 철수해 통일로 가자는 제언에 대한 놀라움과 공감은 대단했다. 2017년 8월, 서울에서 임동원, 백낙청, 정세현, 문정인 교수와 만나고 평양에 다녀왔다. 쉴 새 없이 계속되는 북의 핵/미사일 고도화를 보며 먼저 미국의 기를 꺾어 놓고 보려는 듯했다.
  
2017년 말 북은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하며 미국과 균형을 이뤘다고 했다. 미국에 맞대결하는 북에 놀란 남의 종미세력은 적화통일의 위기라고 선동하고, 남 정부는 킬체인, 미사일방어, 대량 보복체계를 서두른다는데 모두 효용 없는 일이다. 트럼프는 때 만난 듯 남에 무기 장사를 하니 남에겐 외화 낭비일 뿐이고. 핵 없는 남에 재래식 무기가 무슨 효력이 있으며, 전작권도 없는 남은 자신의 뜻대로 쏠 수도 없지 않나?
트럼프가 북을 전멸시키겠다니 그나마 문재인은 조국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는 옳은 말을 하면서도 압박(?)과 대화로 통일을 이루겠다며 미국 따라 북 지도자 참수 부대 창설도 한다니 이건 또 무슨 망발인가? 수구세력을 달래기 위해선가? 북이야 남 대통령 참수 작전 같은 얘기는 하지도 않을 텐데 부끄럽지도 않나? 트럼프가 남 국회에서 온갖 대북 욕설을 퍼붓는데 박수치는 의원들의 모습을 미국에서 보자니 한심하고 가여웠다.  
   
1900년대 후반 미국은 조국반도와 베트남 전쟁에서 각기 수만 명, 2000년대 이라크, 아프간, 중동에서는 각기 수천 명 미군 전사자를 냈다. 반면 상대국들의 수백 만 등 총 2천만 명이 살상된 것은 미국의 반인륜 인권유린 만행이었다. 현세 핵국가들 사이의 전쟁의 결말은 즉각적이고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교전 상대방은 승리와 패배의 예상이 아니라 핵전쟁 뒤 인간적/물질적/ 도덕적 손실과 이득에 대해 심각한 고려를 할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핵선제 공격으로 평양이, 북의 반격으로 워싱턴이나 뉴욕이 당했다면 누가 이겼을까? 수 백 만이 죽고 도시가 폐허가 됐는데 승패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래서 핵국 사이의 핵전쟁은 없었고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 된다.
  
핵국 북과 재래식 무력의 남 사이의 전쟁은 일어날 수도 없으나 남북대결의 악화로 우발적 이거나 전략/전술 차원에서의 국지전은 일어날 수도 있다. 혹시 조국강토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나면 양극화가 극심해져 재부가 세습된다는 남의 5포, 7포 청년세대 중 전장에 나가 싸우겠다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될까 궁금했다. 한 수구계 국제관계학자의 강연에서 10-20% 라는 얘기를 들으니 금수저/흙수저 얘기가 헛소리가 아닌가 보다.
한편, 2015년 8월 휴전선 지뢰폭발사건으로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자 남에서는 90여 병사가 애국심에 전역 연기 신청을 했다고 종미반북 언론들이 자랑스럽게 보도했다. 다른 한편 선군절을 맞았던 집단주의 북에서는 1백만 청년이 자진입대 청원을 했고, 2017년 여름 북미대결 때는 370만 명의 재입대와 신규입대 청원이 있었다고 한다.
남과 북의 이런 모습을 밖에서 보는 재외동포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또 북은 ‘평화’, ‘통일’ 쪽지를 매단 방사포 공포탄 한 발씩을 인천공항 활주로와 여의도광장에 착지만 시켜도 공항폐쇄와 더불어 수도권을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넣을 시위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
 
남북 ‘연합방 평화체제’가 합의되면 주한미군은 철수시켜야 한다 했지만 북의 핵/미사일 무력의 완성으로 합의된 남북/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핵과 미군철수 문제를 해결해야할 것이다. 미군이 철수해도 북은 남침하지 않을 것이며 남북전쟁 같은 짓을 이제 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은 매해 대북 핵전쟁 연습으로 남녘 주민들의 전쟁위기 의식을 자극하며 반북정서를 북돋고 통일 의지를 약화시켜 왔다.
그러니 통일해야 미군철수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철수해야 통일을 이룰 수 있다. 일찍이 LA Times 논평가 플레이트(T. Plate) 교수와 전 주한미국 대사 레이니(J. Laney)조차 ‘미군이 철수해야 통일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남의 정치인과 국방관료들 중에 미군철수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종미반북 수구세력들은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평통사’를 북의 지령에 따르는 ‘빨갱이’라고 몰아친다. 북보다 여러 배의 국방비를 쓰는 남 정부나 군사전문가들이 국민을 확신시키지도 못했기에 주한미군 없이는 북 인민군에 패배한다는 공포 속에 살고 있다.
남의 국방비 40여조원은 북의 총생산액(GDP)보다 높고 남의 GDP는 북의 40배라는 데도 북을 포용하지도 못했다. 기득권 세력은 어제까지도 북의 붕괴/흡수통일을 말했는데 북미 핵대결 상황을 보며 패망한 남베트남의 부패한 종미세력들처럼 탈남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남은 북핵이 없었던 지난 50여 년에도 지금도 북에 맞서지 못하고 미군 뒤에만 선다. 마치 남녘에서 인기 있다는 노래 “애모”의 가사처럼 국군은 “…인민군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미군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 드는데…”와 같은 모습 같다.
   
그런데 남에서는 현역/퇴역 장성들과 국방관료들 중 전작권을 전환해야 한다는 소리도 없다. 전작권 전환이나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민중의 시위에는 퇴역군인 장성들까지 성조기를 들고 반대시위하려 광장에 몰려나온다. 이에 더해 2006년 이래 10년에 36조 원 이상의 미국무기를 사들인 남이 정보/정찰 능력이 모자라 전작권 전환은 시기상조라고 한다.
도대체 세계 어느 나라가 미국과 같은 군사력을 갖췄단 말인가? 그 세계 나라들 중 하나도 작전통제권을 미국에 맡기지 않았다. 미국이 독립국의 군사주권을 돌려주지 않겠다고는 못할 테니 남은 전작권을 전환하고 ‘북의 불가침보장’에 화답해 ‘연합방 평화체제’를 합의/선언하자. 미국이 거부한다 해도 주권국가의 ‘배타적 고유권리’인 군사주권은 남이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행사해도 된다.
  
북의 역량이 지금 같지 않았던 1992년 김용순(북)/캔터(미)회담, 2000년 김대중/김정일 대화, 김정일/올브라이트 대담에서 김정일이 ‘주한미군의 역할이 달라지면 통일 뒤에도 계속 주둔할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을 구실로 삼는 핑계는 지난날의 얘기로 끝나야 한다.
트럼프가 현재 ‘73% 부담인 남의 방위비 분담금을 200%로 인상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하겠단다. 미국에 큰 은혜를 입었다고 고마워하는 남의 종미세력은 미국의 국방비 감축도 도와드릴 겸 미군을 고향으로 보내드려 절약되는 군사비를 사회복지에 쓰면 어떨까? 그리하여 민족사에 중국, 일본, 미국군대가 차례대로 조국에 주둔해 겨레가 피해와 수모를 겪어온 쓰라린 과거와 현재를 말끔히 청산하자!
‘연합방 평화체제’선언 뒤 겨레핵의 비확산을 선언하면 남북은 겨레의 핵우산 함께 쓰고 미군을 철수시켜 남으로 하여금 미군기지 신세에서 벗어나게 하자. 그 뒤 남북은 세계비핵화를 위해 1996년 유엔에서 채택한 포괄적핵시험금지조약(CTBT)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이 조약에 183국이 서명하고, 166국이 비준했으나 핵개발능력을 보유한 44개 발효 요건국들 중 영국, 프랑스 등 36국이 비준했는데 미국,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 이란, 이집트 8국의 거부로 발효되지 못하고 있다. 후발 핵국 ‘남북’은 이 조약을 비준하고 미비준국들을 선도해 세계비핵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조국의 남에 묻는다. 남이 북의 숙적 미국과 한패가 되어 어떻게 북과 통일할 수 있나? 미국과 북 중 누가 ‘우리’고 누가 ‘남’인가? 북에 묻는다. 외세배격/민족자주를 주장하는 북은 북남 평화체제부터 합의해서 겨레의 이익을 극대화하며 ‘연방’의 길로 남과 함께 가야한다.
    
2016년 북의 5차 핵시험 뒤 뉴욕타임스는 “북은 비이성적인가? 아니면 미친 척 했나?”라는 기사에서, “천만에, 매우 합리적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북은 남과 미국에 한 발짝 씩 물러서야 할 부담을 떠넘겼다”고 했다. 이번엔 미국의 뜻대로가 아니라 우리겨레의 뜻대로 해보자.
6.15 선언의 합의사항들을 10년 동안 이행해냈던 남북이었다. 이것이 오로지 남북 자신들이 추구해야 할 민족공조의 원칙이고, 또한 이것은 다른 그 어떤 대안도 없는 현실적 상식이다. 지난 3월 북중 정상회담이 있었고 북미회담 전에 북러회담도 있음 직하다. 급변하는 이런 현상을 보며 남에선 그것이 북에 유리하다느니, 남에 불리하다느니 또는 그 반대라느니 하는 얘기들이 한창이다. 남북이 한 마음이면 북에 유리하면 남에도, 남에 불리하면 북에도 불리하다는 기본자세를 가져야 한다.
서로 통일하겠다면 어떻게 남에, 북에 하며 따로 생각하나? 남북은 우리이고 주변국은 모두 남이다. 모든 일은 ‘우리 민족끼리 먼저’라는 원칙에서 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회담은 북미
간이 아니라 남북/북남간이 먼저란 인식으로 더 자주 만나 주변국들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민족차원에서 진솔하게 논의/실행해야 한다.
   
제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남이 해야 할 일은 제1장에서 말한 6.15시대를 다시 열어가기 위해 남북 ‘연합방체제’를 제도화해야 한다. 남은 남북교역 중단조치 해제, 금강산관광 환원과 개성공단 운영재개를 합의하자. 이는 모두 민족 내부의 일이니 유엔제재에 구속되지 말자. 더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산가족상봉이다. 그리고 10.4선언의 합의사항들과 북의 경제발전전략사업들을 총화해서 ‘연합방 경제체제’ 운영을 실행해갈 방안들에 대해 합의하기 바란다.
남 정부는 비핵화가 최우선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남은 이에 대해 먼저 나설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지난 세월 늘 북핵 문제는 북이 미국과 논의해야 할 일이라고 해온 남녘 논객들의 주장대로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이 성취하려는 바를 남은 먼저 들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에 따라 북핵을 남이 북과 함께 한마음으로 대처해 나갈 데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반대로 남이 미국의 북핵 폐기 주장에 함께 하려면 차라리 북 혼자 미국과 담판하게 맡겨두고 연합방체제 합의에 주력하는 게 더 생산적일 것이다.
그런데 4월 21일 북은 “핵시험과 대륙간 탄도로켓 시험발사 중지”와  “핵시험장도 폐기할 것”이라며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과정으로 국제적 지향과 노력에 합세할 것’이라고 했다. 이 성명으로 북은 핵보유국임을 선포한 것이며 앞으로 핵국가들과 함께 세계비핵화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북의 이 선언은 앞에 제언해온 ‘겨레핵의 비확산과 세계비핵화’와 상통한다는 생각이다. 70여 년 분단의 멍에를 벗어제끼고 남북은 어떤 이상의 통일조국으로 가야할 지 제12장에서 얘기해 보자.
오인동 (Indong Oh) 약력 
인공관절수술전공의사(은퇴),6.15해외측미국위공동위원장
하버드의대(MGH)교수,미국고관절학회:J.Charnley, F.Stinchfield상
인공고관절기/기구고안 (HD-2, Spectron, Biofit, Tifit System등)
인공고관절논문:70여편,수술법저서:14권, 미국발명특허:11 종

RoKorea - 윤동주민족상 - 윤동주사상선양회 - 2013
DPRKorea - 명예의학박사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 2012
RoKorea- 한겨레통일문화상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2011

<밖에서그려보는통일의꿈> - 남북연합방, 다트앤, 서울, 2013
<평양에두고온수술가방> - 의사오인동의북한방문기, 창비, 서울,2010
<통일의날이참다운광복의날이다> - 밖에서본한반도, 솔문, 서울,2010
<Corea ,Korea>- 서양인이부른우리나라국호의역사, 책과함께,서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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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한 걸음 한 걸음 뒤따라오라

[남북 정상회담]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한 걸음 한 걸음 뒤따라오라

소설가 박민규
입력 : 2018.04.26 22:02:00 수정 : 2018.04.27 00:01:49


ㆍ27일, 남북 정상 11년 만의 동행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그저 날씨나 좋았으면 좋겠다. 화창하고 눈부신 날이면 고맙겠지만 아니어도 나는 족하다. 겨우 근근이 봄이구나, 싶은 하늘이면 또 어떠한가. 설사 날이 궂더라도 오는 이의 표정을, 또 맞이하는 이의 기다림을 서로가 알아볼 정도라면 나는 좋겠다. 오래전부터 당신은 손님이었다. 친가와 외가가 모두 이산가족인 나 같은 사람에겐 더더욱 그러하다. 1974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될 당시 조부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의 얼굴에 서린 당신의 이름을 나는 또박또박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글씨를 못 읽는 꼬마였고 조부는 남하한 함경도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조합이란 이유만으로 나는 당신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당신은 끝내 오지 않는 손님이었다.
이제 당신이 오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오늘 모두가 그 광경을 지켜보겠지만, 거기 당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실망할 일도 없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지난 세기의 염원이고 이름이다. 어서어서 당신이 오기를 바랐던 이들은 대부분 눈을 감았고, 어서 당신이 오기를 재촉했던 이들도 미련을 접은 지 벌써 오래다. 당신이 누군지 모르는 세대들이 이미 자랐고, 그들에게 당신은 딱히 간절하거나 그리운 이름도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당신 없이도 그런대로 살아왔다. 당신이 머물러 있을 그 길가에 희망이란 이름의 꽃들이 아직 피었나 모르겠지만, 풀 한 포기 없는 길이라도 누굴 원망할 처지가 아님을 우선 나부터가 잘 알고 있다. 불쑥, 어서 올 생각 아예 말아라. 어서어서 서두르다 넘어지지 말고 그러니 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오라. 어떠한 부담과 희망… 원망 없이 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남북 정상회담]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한 걸음 한 걸음 뒤따라오라
우선은 그저 서로의 ‘실익’을 얘기하자. 하나의 겨레였느니 그딴 소리 접어두고 이익과 생존을 목표로 한 ‘각자’와 ‘각자’로 서로를 존중하자. 한 걸음 한 걸음 끝까지 너는 너를 위하고 끝까지 나는 나를 위하자.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나를 위한 일이 너를 위한 일이었음을, 그래서 너가 나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각성하자. 그토록 서로가 떠들던 통일이란 말이 그래서 지난 세기의 철지난 단어임을 자각하자. 한바탕 굿판처럼 돌아갈 카메라들, 침 발린 소리들도 이내 바로 잊어버리자. 분단이 만든 괴물들이 여전히 서로의 속에 도사리고 있음을 자각하고, 분단을 부추긴 괴물들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잊지 말자. 그러니 살자, 같이 살자. 그리고 같이 걸어가자. 동행하자. 역사라는 수레를 끄는 두 개의 바퀴처럼, 나란히 동행하자. 그래서 나는 그저 날씨나 좋았으면 좋겠다. 허튼 이념 허튼 소리 오지도 않을 손님 더 이상 떠들지 않고 실익과 생존을 위해 남북이 동행하는 첫날이 오늘이기 때문이다. 껴안지 않아도 좋고 손잡지 않아도 나는 족하다. 그저 동행하기 좋은 봄날이라 그게 기쁘고, 나란히 이어질 두 개의 궤적을 따라 비로소 누군가가 한 걸음 한 걸음 우리를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남과 북이여 그저 걸어가자. 동행하자. 통일은 염원이나 소원이 아니라 다만 우리의 족적이고, 동행하는 우리의 기나긴 그림자에 다름 아니다. 기다리지 않고 우리는 간다, 가겠다. 그러니 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한 걸음 한 걸음 뒤따라오라. 그저 봄날일 뿐이고 동행할 뿐인데 근근이 봄이구나, 싶은 이 하늘에도 왜 이리 족한지는 알 길이 없다. 그저 나란히 걷는 이 봄길이 왜 이리 부시고 아름다운지도 나는 모르겠다. 동행(同行)이 곧 통일이다. 걷고, 또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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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5일 수요일

장자연 성추행 조사받던 조선일보 전직 기자 ‘의문’의 무혐의



[장자연 사건 추적 ②] 경찰 “피의자 아내 검사라서 수사 어려워”… 검찰, 목격자 구체적 진술 안 믿고 피의자 주장 인정

강성원 기자 sejouri@mediatoday.co.kr  2018년 04월 26일 목요일

“저는 술집 접대부와 같은 일을 하고 수없이 술 접대와 잠자리를 강요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09. 2. 28. 장자연”
지난 2009년 3월7일 꿈을 제대로 채 펴보지도 못한 신인 여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기고 간 문건은 방송·연예계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던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과 충격을 줬지만 이런 비참한 일은 단지 고(故) 장자연씨만 겪었던 게 아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9년 장자연 사건을 계기로 연예계 구조와 왜곡된 성인식 문제의 구체적인 실태 파악과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여성 연예인 인권상황 실태조사’ 실시했다.  
실태조사 결과, 조사 대상(여성 연기자 111명, 연기자 지망생 약 240명 등 총 351명) 중 △연기자의 60.2%는 방송 관계자나 사회 유력 인사에 대한 성 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술 시중을 들라는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는 연기자도 45.3%에 달했다.  
지난 2009년 3월7일 신인 배우였던 장자연씨가 자신의 이름과 사인, 지장 날인이 적힌 자필 문건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노컷뉴스
지난 2009년 3월7일 신인 배우였던 장자연씨가 자신의 이름과 사인, 지장 날인이 적힌 자필 문건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노컷뉴스
아울러 성 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는 연기자 48.4%가 이를 거부한 후 캐스팅이나 광고 출연 등 연예 활동에서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으며, 연기자 58.3%는 술 시중과 성 상납을 거부하면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여성 연기자들이 노동(연예활동)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성적·신체적 자기결정권을 포기해야 하는 구조적 상황 속에 놓여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조사 결과다.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여성 연기자의 취약한 인권을 지켜줄 최후의 보루인 사법기관마저 이들을 외면했다면? 장자연씨가 남긴 자필 문건에 등장하는 사회 유력 인사들, 술자리를 함께한 이들 중 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은 장씨의 소속사 대표 김종승씨뿐이다. 지난 2013년 10월 대법원은 장씨에 대한 김씨의 폭행 혐의만을 인정해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미디어오늘은 장자연 사건 관련 검·경 수사기록을 입수해 살펴보던 중 검찰이 무혐의 결정을 내린 14명의 피의자 중 유독 한 사람의 불기소 이유에 대해 세세하게 기록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9년간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있었으며 지난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조아무개(49)씨다. 조씨는 2009년 장자연 사건으로 조사받을 당시 국내 한 사모투자전문회사 상무이사로 재직 중이었다.
조씨를 조사한 경기 분당경찰서는 그의 장자연씨에 대한 강제추행과 강요방조 혐의를 인정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2008년 8월5일 장씨의 소속사 대표 김종승의 생일날 조씨가 장씨를 성추행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장씨의 동료 윤아무개씨는 경찰 조사에서 조씨가 술자리에서 했던 말과 행동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여성 연예인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한 결과 연기자의 60.2%가 성 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여성 연예인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한 결과 연기자의 60.2%가 성 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윤씨는 조씨가 김종승의 생일날 저녁 식사 자리에 참석한 한 유명 여배우와 나눈 대화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으며 당시 김씨의 지인들이 김씨에게 어떤 선물을 했는지 명확히 설명했다. 윤씨의 진술에 따르면 저녁 식사 후 이동한 서울 청담동 M 가라오케에서 장자연은 테이블 위에 올라가 ‘마리아’라는 노래를 불렀으며, 조씨가 폭탄주를 만들어 돌렸다. 조씨는 이 자리에서 ‘여자가 팔뚝에 근육이 있으면 보기 싫다’ ‘꽃이 활짝 핀 것보다 꽃봉오리가 있는 애가 좋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도 윤씨는 전했다.
그런데 조씨는 경찰 조사에서 당시 현장에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 모 경제신문 A사장에게 성추행 혐의를 덮어씌우려 했다. 조씨는 A사장이 그 술좌석에 참석해 자신과 서로 통성명을 하는 등 인사를 나눴고, 장자연이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출 때 자신을 향해 넘어져 피했는데 옆에 있던 A사장이 성추행을 한 것처럼 진술했다.
장자연 성추행 혐의 경찰 수사 결과, 검찰에서 뒤집혔다 
이에 대해 경찰은 “조씨가 비교적 세상 물정에 밝은 유력 신문사의 기자로 오랜 기간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그의 처는 현직 법조인(검사)으로 일반인에 비해 법적 판단 능력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단순히 강요방조죄로 의심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워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면서까지 거짓 진술을 했다는 사실은 상식적으로 전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조씨가 거짓 진술한 데에는 반드시 숨겨야 하는 어떤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마침 당시 윤씨가 (예전에 받은) A사장의 명함으로 인해 피의자를 A사장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A사장이 현장에 참석했고, 장자연이 A사장 쪽으로 넘어졌다고 진술함으로써 A사장에 대한 강제추행 혐의가 확정되면 자신의 혐의를 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했다. 
경찰이 적시한 조씨의 범죄사실을 보면 그는 장자연이 피의자 김종승의 협박에 의해 자신을 위한 접대 자리에 참석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피해자에게 ‘전 한나라당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라는 신분을 밝히며 김종승의 강요 혐의를 방조하기도 했다.
경찰은 “조씨가 자신의 범행을 인정해 혐의가 확정될 경우 자신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장자연의 동료 목격자) 윤씨의 진술에 대한 모순점을 분석, 이를 근거로 결백을 주장했다”면서 “그러나 윤씨가 일관되게 강제추행에 대한 목격 사실을 진술하고 있고 기타 참고인 등의 진술로 보아 범행이 인정된다”고 기록했다.
지난 3일 KBS ‘뉴스 9’ 리포트 갈무리.
지난 3일 KBS ‘뉴스 9’ 리포트 갈무리.
조씨가 경찰 조사에서 거짓 진술로 사실을 숨기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고, 그가 장자연을 성추행했다는 생생한 모습을 봤다는 목격자까지 있었음에도 검찰은 그의 범죄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김형준 검사)은 2009년 8월19일 장자연 사건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조씨를 비롯한 14명의 성매매·성매매 알선·강제추행·강요방조 등 13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특히 검찰은 조씨의 강제추행 무혐의 이유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했는데 조씨의 추행 장면을 목격했다는 동료 윤씨가 진술을 여러 번 번복하는 등 문제가 있어 그대로 믿기 어렵고, 조씨를 포함해 사건이 벌어진 날 함께 있었다는 다른 참고인들이 모두 성추행 사실을 본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는 이유에서다. 
경찰 조사에서 제3자에 성추행 혐의 덮어씌우려 했던 전 조선일보 기자
2008년 8월5일 장자연의 기획사 대표 김종승의 생일날 김 대표, 조씨, 장씨, 윤씨와 함께 가라오케에 있었던 사람은 변아무개·이아무개 B 사모투자펀드 공동대표였다. 만약 윤씨의 성추행 증언이 인정된다면 김 대표는 강요죄로, 나머지는 강요방조죄로 처벌받을 수 있었다. 혐의를 부인한 술자리 참석자들은 구속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진술을 짜 맞추거나 증거를 인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윤씨의 경찰 1회 진술은 여러 가지를 조합해 만든 거짓이었고, 경찰 2회 진술은 피의자(조씨)보다는 실제 A사장에 더 가깝고, 최면 상태에서 한 진술은 조씨를 지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점에 비춰 신빙성에 의심이 있다”며 “조씨에 대한 거짓말탐지 검사 결과가 ‘거짓’ 반응이 나온 사실만으로는 피의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씨가 경찰에서 처음에 성추행 가해자가 조씨가 아닌 A사장이라고 했던 이유는 자신이 갖고 있던 A사장에 대한 명함을 김종승의 생일날 조씨로부터 받은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기록에는 “윤씨가 조씨의 이름을 몰라 명함 속의 인물인 A사장으로 생각한 것일 뿐, 처음부터 장자연을 추행한 남자에 대한 인상착의를 설명한 사람이 조씨라고 명확하게 진술하고 있다”며 “윤씨는 나중에 조씨가 조사받는 장면이 촬영된 동영상을 보고 분명히 장자연을 추행한 사람이 맞다고 지목했다”고 나와 있다.
검찰은 또 윤씨가 경찰 2회 진술에서 말한 가해자가 조씨보다 A사장에 더 가깝다고 했지만, 이 같은 판단 이유도 납득하기 어렵다. 윤씨의 가해자에 대한 진술은 “나이는 약 40대 중반이고 신장은 약 168 정도, 체격은 보통이고 안경은 착용하지 않았고 얼굴형은 넓은 편이면서 긴 편이고, 머리 스타일은 양 머리가 짧은 편이고, 밝은 계통의 남방을 입은 것으로 기억한다”였다. 앞서 윤씨는 가해자가 “일본어를 유창하게 잘 했다”고도 설명했다.  
조씨가 누명을 씌우려 했던 A사장의 경우 당시 49세(60년생)였으며 조씨는 40세(69년생)였다. 게다가 A사장은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하지만 조씨는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다만 조씨의 키는 검찰 조사에서 177cm인 것으로 확인됐다.  
▲ 배우 고(故) 장자연씨가 지난 2009년 2월27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힌 ‘제45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 참석하는 모습. ⓒ 연합뉴스
▲ 배우 고(故) 장자연씨가 지난 2009년 2월27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힌 ‘제45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 참석하는 모습. ⓒ 연합뉴스
김종승 대표 역시 검찰 조사에서 윤씨가 말한 가해자의 인상착의와 관련해 “신장으로 봐서는 이아무개(B 사모투자펀드) 대표인데, 이 대표가 나이는 50대 중반인가 되고 얼굴형도 조그맣고 긴 편이 아니며 머리가 단정한 편”이라며 “그래서 얼굴형만 보면 조씨와도 가깝다”고 진술했다. 그렇지만 김 대표도 “장자연이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춘 것은 사실이나 조씨나 다른 사람이 장자연을 추행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장자연 수사 경찰 “피의자 부인이 검사라서 수사가 어려웠다”
그러나 김 대표 역시 조씨와 돈독한 친분으로 조씨의 성추행 사실을 숨기려고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실제 김 대표는 자신의 생일날 ‘장자연이 2009년 2월27일자 백상예술대상에서 입었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는 윤씨의 진술에 대해 “그 드레스는 협찬이기 때문에 전혀 사실이 아니고 생일 때는 어깨끈이 다 있고 무릎 바로 밑에까지 오는 검정색 드레스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장자연씨가 백상예술대상에서 입은 드레스는 어깨끈이 없고 신체 노출이 많은 흰색 드레스였다. 이에 대해 검찰은 장자연과 가깝게 지낸 지인을 참고인으로 불러 장자연이 백상예술대상에서 입은 드레스를 장씨가 직접 구입한 것인지, 협찬을 받은 것인지 물었다. 이에 장씨의 지인은 “2007년 또는 2008년 봄에 청담동에 있는 웨딩프라자에서 샘플 세일 행사할 때 구입했다”는 장씨의 친언니 말을 전했다.
윤씨는 검찰 참고인 진술에서도 “조씨는 장자연의 차량 조수석에 타고 올 때에도 ‘이런 음악을 좋아하느냐’고 하는 식으로 그때부터 말을 많이 걸었다”며 “내가 조씨의 맞은편에 앉아 있어 잘 볼 수 있는 자리였는데 (조씨의 추행 행위 직후) 잠깐 조용해졌다가 다시 술 마시고 노래 부르는 분위기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윤씨는 “당시 장자연 언니가 술에 많이 취해서 그런지 인상을 쓰거나 기분 나쁘다고 김종승에게 말하지는 않았다”며 “장자연 언니가 술이 취하기 전부터 조씨는 장자연에게 ‘팔뚝이 굵니 뭐니’ 기분 나쁘게 말을 했다. 그런데도 당시 김종승 대표가 가만히 있기에 나는 조씨가 높은 사람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실제 조씨는 아주 ‘높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1995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9년간 사회부·경제부·정치부 기자를 거친 후 2003년 퇴사한 전직 언론인이자 금융회사 임원이다. 2004년엔 한나라당 한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당시 여당 후보에 밀려 낙선한  유력 인사이기도 하다. 아울러 그의 아내는 현재 부산지검 검사로, 대검찰청을 거친 후 장자연 사건 때는 서울남부지검에 재직 중이었다.  
이달 초 KBS는 뉴스 리포트와 인터넷 기사를 통해 “장자연 사건 무혐의 결정을 받은 의혹 가운데 강제추행 공소시효(10년)가 확실하게 남은 사건도 있다”고 조씨 관련 혐의 의혹을 언급하기도 했다. KBS는 “경찰과 검찰 수사 결과가 극명하게 엇갈린 사건”이라며 “그의 부인이 검사라서 수사가 어려웠고, 소환을 요구해도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경찰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미디어오늘은 24일 장자연 사건 피의자로 지목됐던 조씨에게 검·경의 수사 축소·은폐 의혹뿐만 아니라 그 역시도 수사 과정에서 억울하게 수사권 남용 피해를 받았는지 묻기 위해 전화와 문자, 메신저로 수차례 연락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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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4일 화요일

4.25 항일유격대 창건과 2.8건군절

4.25 항일유격대 창건과 2.8건군절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4/25 [12:40]  최종편집: ⓒ 자주시보

25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4월 25일을 지난해까지 건국절로 성대하게 기념하고 노동신문 등 북의 언론에서도 대대적인 기념기사를 보도했었는데 올해에는 2면에 김일성 주석이 빨치산부대를 창설할 때의 일화를 소개하는 글을 실었을 뿐 건군절과 관련된 내용없이 일상적인 내용들만 보도했다며 작년까지는 명절로, 공휴일로 성대하게 기념하던 4·25가 이젠 평범한 기념일, 평일로 격이 떨어진 셈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는 그러면서 이는 올해부터 건군절을 2월 8일로 옮긴 것 때문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 2018년 2월 8일 북의 70돌건군절기념 열병식의 이스칸데르형 지대지탄도미사일

▲ 위의 사진은 2018년 2월 8일 건군절 70주년 열병식 행진에 등장한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주석단 앞을 지나가는 장면이다. 9축18륜 자행발사대차에 수여된 공화국 영웅 메달이 운전석 출입문 옆에 걸려있는 것이 보인다. 조선에서 공화국 영웅 메달은 아무 대상에나 수여하는 것이 아니고, 특출한 국가수호임무를 수행한 대상에게 수여한다. 화성-15형에게 그런 공화국 영웅 메달이 수여된 것은, 그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조선의 국가핵무력을 완성시킨 종결자였음을 말해준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실제 지난 2월 8일 북은 건군절을 성대하게 기념하고 조선인민군 열병식도 진행하였는데 전에 없던 이스칸데르 지대지 미사일, 북 자체로 제작한 9축 18륜 대차에 탑재한 엄청난 크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 등을 전격 공개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미 2.8건군절을 대대적으로 기념했기 때문에 4.25엔 기념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1948년 2월 8일은 조선인민군 창건일이고 1932년 4월 25일은 김일성 주석이 만주 소사하 토기점골 산 등판에서 항일유격대를 창건한 날이다. 

▲ 김일성 주석의 1932년 4월 25일 항일유격대(반일인민유격대) 창건을 기념하여 만주 소사하 토기점골 등판에 세운 기념비, 이 등판에서 항일유격대 창건을 선포하고 열병식도 진행하였다고 한다.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 만주의 항일유격대창건기념비 앞에는 누군가가 꽃 한 다발을 가져다 놓았다. 흥륭촌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선족이나 북에서 가져다 놓은 것이 아니고 중국인(한족)들이 가져다 놓았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비석에는 “김일성 동지께서 1932년 4월 24일 이 곳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시었다. 도현 소사하 무주촌. 1992년 8월 25일(비석을 세운 날)”이라고 반일인민유격대 창건 사실을 우리글과 중국 간자체로 새겨져 있다. 비석은 무주촌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비석건립시 소요될 자금을 모금하여 세웠다고 한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차원에서도 협조를 했다고 한다.     ©이용섭 역사연구가

그렇다고 4.25를 격하했다는 연합뉴스의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4.25항일유격대(반일인민유격대)창건은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은 즉, 조국의 독립과 번영은 오직 자체로 무장한 총대에 의해서만 지키고 빛내갈 수 있다는 김일성 주석의 항일유격대 창군정신은 조선인민군과 더불어 영원할 것이라고 북은 늘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신이 조선인민군창건으로 모아졌고 빛나게 완성되었다는 것도 북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따라서 북은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창건일을 건군절로 기념하는 것이 결국 1932년 4월 25일 항일유격대창건도 함께 기념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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