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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30일 금요일

31일, 10차 촛불로 송박영신(送朴迎新)

세월호 가족 '심야식당' 4160그릇 따뜻한 밥 '촛불국민'에게 대접한다
힘겨웠던 한해를 ‘촛불’로 극복해온 시민들이 2016년 마지막 날까지 촛불을 들며 격동의 한해를 마무리한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3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송박영신(送朴迎新)’ 제10차 촛불집회를 열고,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당한 이후 3주 넘게 청와대에서 은둔으로 ‘버티기’를 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 ‘조기 탄핵’, ‘적폐 청산’을 촉구하는 촛불을 밝힌다고 전했다.
‘송박영신’ 본대회는 저녁 7시부터 시작된다. 본대회에 이어 송박영신 콘서트가 끝나면, 9시 반께부터 시민들은 청운동 청와대 앞, 삼청동 총리공관, 헌법재판소 앞으로 각각 행진한다. 퇴진행동은 31일엔 특별히 시민들이 밀집하는 종로~명동 거리를 관통하는 도심행진도 추가했다고 전했다.
청와대 행진 대오는 청와대 앞으로 ‘박근혜 체포 감옥’을 끌고 가 ‘적폐 청산’ 발언과 ‘쓰레기’ 퍼포먼스 등을 벌인다. 삼청동 총리공관 앞에선 황교안 총리의 사퇴를 촉구하며 ‘박근혜정권퇴진! 전국대학생시국회의’가 주최하는 박 터뜨리기, 오방색 풍선날리기 등 ‘두둥실 떠올라라 대학생 새해소망’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헌법재판소 앞에선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비치볼 퍼포먼스를 벌일 예정이다.
행진을 마친 시민들은 밤 11시께부터 보신각에 모여 제야의 종 타종식에 참가하고 새해의 희망을 기원하는 촛불을 밝힌다.
본대회 전인 5시 반부터는 광화문광장 북단에 설치된 본무대에서 시민자유발언대 마련된다. 그 외, 오후 4시에는 세종대왕상 앞에서 지난 촛불집회들에 재미와 다양함을 더해준 깃발들이 총집합하는 ‘아무 깃발 대잔치’가 열린다. 또한 4시 반에는 광화문 세종로소공원에서 5대종단이 ‘사필귀정- 사를 버리고 정을 취하라’ 연합기도회를 연다.
밤 10시 반부터는 세월호 가족들이 진심을 담아 마련한 ‘심야식당’에서 2016년의 마지막 한끼를 먹을 수 있다. 세월호 유가족은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1,000일 가까이 잊지 않고 함께해주신 국민 여러분과 따뜻한 밥 한끼를 나누고자 한다”며 31일 심야식당 개업을 알렸다. ‘심야식당’은 '청와대 행진경로' 선상에 있는 통인동 커피공방 앞에서 열린다. 메뉴는 ‘잊지 않겠다’는 세월호 노란리본을 상징하는 노란 카레덮밥이다.
시민들과 4,160그릇의 컵밥을 나누기 위해 세월호 가족과 돕는 손길들은 30일 오후부터 감자를 깎고 당근을 볶는 등 준비에 들어갔다. 세월호 유가족은 “말로 다 전해지지 않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고, 항상 밥 한끼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따뜻한 밥 한끼가 1000만 촛불에게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10차 촛불집회 관련 포스터]
이명주 기자  ana.myungjulee@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점령하라!"던 그의 외침, 5년 지나서야 이뤘습니다


16.12.30 20:52l최종 업데이트 16.12.30 20:52l









삶이 무겁거든

삶이 무겁다 생각되거든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에 의해 결정된다는
땅의 흙 같은 진실만 마음에 담아라
희망이 어찌 무거울 것이며
가볍다 하여 가치가 적다 할 수 없으니

가는 길 멀다 생각 되거든
이 길 먼저 걸었을 이들의 고되었을 여정 먼저 기억하라
처음부터 길이었던 적 없는 거친 들
메마른 대지에 쬐는 뙤약볕 타는 갈증
이보다 더 고되고 힘겹게 걸었을 그들

남이 무어라 하거든 물어라
언제 최선을 다해 참여한 적 있더냐
언제 스스로 피맺히게 외쳐 본 적 있더냐
최선을 다한 참여가 힘을 만들고
그 힘이 세상을 바꾸고
그 바뀐 힘이 세상을 편하게 하리니

삶이 무겁다 생각되거든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에 의해 결정된다는
어둔 하늘 별 초롱한 꿈을 가슴에 품어라
희망이 어찌 무거울 것이며
가볍다 하여 가치가 적다 할 수 없으니

2016년 12월 29일 - 김근태 한반도재단 전 이사장을 기리며

어떤 길을 선택해 걷든 그 길은 선택한 사람이 결과까지 책임을 질 일이다. 하지만 어떤 길이나 다양한 변수와 장애물이 있다. 극복하는 이들이 있고, 굴복하는 이들이 있다. 더러 아예 쉬운 길만 골라 걷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모두 장애물을 만나게 마련이다.

그런 삶의 장애물을 넘어서 바른 길을 끝까지 걷는 이들의 삶은 향기롭고, 먼 훗날 역사란 페이지에서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별이 되어 빛난다.
김근태 추모문화제 故김근태 5주기 추모 콘서트에서 받은 행사 안내 팸플릿의 뒷면엔 위와 같이 적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는 말은 지금 대한민국에 촛불을 든 국민들의 모습 그대로다. 작은 외침이 모여 함성이 되고 역사는 그 함성에 의해 새로운 발자국을 만들어 방향을 결정할 것이 분명하다.
▲ 김근태 추모문화제 故김근태 5주기 추모 콘서트에서 받은 행사 안내 팸플릿의 뒷면엔 위와 같이 적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는 말은 지금 대한민국에 촛불을 든 국민들의 모습 그대로다. 작은 외침이 모여 함성이 되고 역사는 그 함성에 의해 새로운 발자국을 만들어 방향을 결정할 것이 분명하다.
ⓒ 정덕수

"12월 30일 새벽 5시 31분 민주통합당 김근태 상임고문께서 서울대병원에서 결국 이승의 끈을 놓으셨습니다.

향연 64세의 일기를 끝으로 이제 그 장엄했던 생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기신 것입니다.

한반도재단 이사장이시기도 한 김근태 고문은 양지보다는 음지에 머물며 투쟁하던 1980년대 운동권 세대의 정신적인 지주였습니다. 지난해 12월 6일 리영희 선생의 빈소에서 잠시 마주쳤을 때,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았던 김근태 고문께서는 여전히 어눌한 말투와 간간이 떨리는 손을 내밀어 식사를 하던 제게 "어, 왔구나" 한 마디 인사와 함께 했습니다.

검정색 양복엔 콧물이 흘러 허옇게 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수행을 하는 젊은 분이 서둘러 옷맵시를 고쳐주셨지만 그런 모습이 되레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저지른 악행의 후유증이셨습니다.

식사를 하다말고 자리에서 어정쩡하게 일어섰던 저는 그런 김근태 이사장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게 다시는 뵐 수 없는 마지막 모습이란 걸 당시로서는 알 수 없었으나, 참언론인으로 불리시던 리영희 선생의 장례예식장이란 자리와, 20여 년간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며 수배와 옥살이를 하신 분과의 대면이기에 더 착잡한 마음이었으리라 봅니다."

2011년 12월 30일 오전 9시에 쓴 글의 첫 부분이다.

그로부터 이제야 5년이 흘렀다. 묻는다. "김근태 한반도재단 이사장을 기억하시나요?" 더러 <남영동 1985> 영화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겠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이들도 극히 일부에서 기억할 이름 김근태! 그에 대해 '민주주의자'란 또 다른 호칭은 이제 다시 민주주의를 회복하자는 이들에게 똑바로 기억되어야 할 이름 중 하나다.

벌써 5년이라니...

그런데 리영희 선생께서 영면에 드신 지도 어느새 6년이 넘었다.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민주주의를 염원하고 오로지 그 길을 위해 걸으신 분들이 그동안 많이 이 세상을 등지셨다.

그 5년, 세상은 살기 좋아졌는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고통 속에 분노한 국민이 촛불을 드는 세상이 됐다. 분명 김근태 전 한반도재단 이사장은 "2012년을 점령하라!"는 추상같은 말씀을 세상에 던졌음에도 많은 사람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선택한 박근혜로 인해 세상은 더 많은 분열과 고통을 겪으며 신음한다.
민중가수들 손병휘를 비롯한 많은 민중가수들이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진행한 <민주주의의 대합창 “Occup 2017!”>에서 첫 번째 부른 노래는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였다.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 따뜻한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 / 어둠 산천 타오르는 작은 횃불 하나 될 수 있다면 / 우리의 노래가 이 잠든 땅에 / 북소리처럼 울려날 수 있다면 / 침묵 산천 솟구쳐 오를 큰 함성 하나 될 수 있다면 / 정말 좋겠네”가 울려 퍼지며 시작된 추모 콘서트는 2시간 30분을 훌쩍 넘겼다.
▲ 민중가수들 손병휘를 비롯한 많은 민중가수들이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진행한 <민주주의의 대합창 “Occup 2017!”>에서 첫 번째 부른 노래는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였다.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 따뜻한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 / 어둠 산천 타오르는 작은 횃불 하나 될 수 있다면 / 우리의 노래가 이 잠든 땅에 / 북소리처럼 울려날 수 있다면 / 침묵 산천 솟구쳐 오를 큰 함성 하나 될 수 있다면 / 정말 좋겠네”가 울려 퍼지며 시작된 추모 콘서트는 2시간 30분을 훌쩍 넘겼다.
ⓒ 정덕수

민중가수 마지막 곡이 끝나고 앵콜을 외치는 관객들을 위해 다시 무대에 오른 이 시대의 민중가수들을 손병휘 가수가 일일이 소개한 뒤 다 함께 부른 노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모두 한 마음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 깨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를 합창했다.
▲ 민중가수 마지막 곡이 끝나고 앵콜을 외치는 관객들을 위해 다시 무대에 오른 이 시대의 민중가수들을 손병휘 가수가 일일이 소개한 뒤 다 함께 부른 노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모두 한 마음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 깨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를 합창했다.
ⓒ 정덕수

지난 28일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민주주의자 고 김근태 5주기 추모 콘서트'가 열려 광장에서 함께 노숙하는 민중가수 손병휘님의 초청으로 다녀왔다. 그곳엔 여전히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이들의 피맺힌 함성과 절규가 흐르고 있었다.
김근태 리영희 선생의 추모식장에서 문상을 마치고 식사를 할 때 등을 누군가 쳤다. 엉거주춤 일어섰을 때 “어, 왔구나”란 말씀으로 인사를 대신 하시던 모습을 다시금 되살려 놓은 김근태 5주기 추모 콘서트 시작은 故김근태 한반도재단 이사장의 인사말이 화면에 비쳐졌다. 상투적인 인사 한 마디 드리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배웅했던 6년 전의 마지막 만남을 떠 올리며 눈물샘부터 터졌다.
▲ 김근태 리영희 선생의 추모식장에서 문상을 마치고 식사를 할 때 등을 누군가 쳤다. 엉거주춤 일어섰을 때 “어, 왔구나”란 말씀으로 인사를 대신 하시던 모습을 다시금 되살려 놓은 김근태 5주기 추모 콘서트 시작은 故김근태 한반도재단 이사장의 인사말이 화면에 비쳐졌다. 상투적인 인사 한 마디 드리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배웅했던 6년 전의 마지막 만남을 떠 올리며 눈물샘부터 터졌다.
ⓒ 정덕수

첫 시작에 김근태 전 한반도재단 이사장께서 하시는 말씀이 화면 가득 펼쳐졌다. 시작부터 울컥 눈물샘이 터졌다. "어, 왔구나" 한 마디 막연하게 남길 수밖에 없었던 민주주의자 김근태, 그에게 "건강은요?"란 상투적인 인사도, "건강 좋아보이십니다"라는 다소 과한 인사도 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던 나. 그런 내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이상한 현상을 봤다. 남몰래 눈물을 감췄다. 

그런 김근태 전 한반도재단 이사장을 기려 제정한 상을 이번에 처음으로 시상한다. 이 상은 민주주의에 대한 활동을 전개한 개인이나 단체에 주는 상이다. 명칭은 '민주주의자 김근태상'. 제1회 민주주의자 김근태상은 (사)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가 받았다.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에 의해 결정된다."

김근태 전 한반도재단 이사장이 세상에 남기신 말씀이다. 추도 미사와 추도식이나 민주주의자 김근태상 시상식(29일)은 다녀오지 못했지만 여전히 마음속 깊이 김근태란 이름을 간직하고 살아갈 것이다.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유가족들이 영정사진을 모시고 빈소로 향하자, 한명숙 전 총리와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이 고인의 넋을 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  2011년 12월 30일, '민주주의자' 김근태 전 한반도재단 이사장이 세상을 떠났다. 2011년 12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유가족들이 영정사진을 모시고 빈소로 향하자, 한명숙 전 총리와 노회찬 당시 통합진보당 대변인이 고인을 넋을 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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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외톨이 소비자'의 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2017, 촛불을 묻다] 조한혜정-서복경 대담 ①

박세열 기자

이명선 기자    2016.12.30 18:22:12

'촛불 민심'의 정체는 무엇일까? <프레시안>은 그 해답을 인류학자와 정치학자 각각 한 분씩을 초청해 찾아보았다. '촛불 민심'의 근원을 탐색해보고, '촛불 민심'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가늠'해 봤다. 두 편으로 나누었는데, 먼저 '탐색' 작업이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권은 두 개의 큰 분수령을 맞이하게 된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그리고 2016년, 아직 현재 진행형인 '박근혜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다. 후자는 이미 '탄핵'이라는 절차적 고비를 한 단계 넘긴 상황이다. 그럼에도 진행형인 이유는, 지난 4년간 박근혜 체제에 대한 거센 '저항'의 물결이 광장에서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체제 4년' 이상의 문제가 켜켜이 쌓여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은 타당성이 있다. 우리는 1961년부터 시작된 재벌
·전경련의 실체를 봤고, 18년 군부독재 과정에서 헌정을 농단했던 세력의 부스러기를 목도하고 있으며,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고쳐지지 않았던 낡은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고, 1997년 구제금융 이후 심화된 경제 구조의 불평등을 체험하고 있다.  

이 모든 부조리에 대한 외침은 2016년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리고 모종의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 변화는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일 수도 있다. 아니, 이미 세상은 변했고, 우리 스스로 그에 맞춰 '조율'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촛불 민심'을 분석하기 위해 <프레시안>은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와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의 대담을 마련했다. 이 대담은 두 편으로 나뉘어 실릴 예정이다. 먼저, 촛불 민심의 '기원'을 더듬어 봤다. 편집자. 
ⓒ프레시안(최형락)

2008년과 2016년 '촛불' 비교 

프레시안 :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촛불 민심이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수그러지기는커녕, 황교안 권한대행에게도 '최순실 국정농단'의 책임을 묻고 있다. 또 헌법재판소에 탄핵을 인용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촛불 민심, 어떻게 보고 있나. 

서복경 :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와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의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학생 40여 명과 5차 촛불집회(11월 26일)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광장 조사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시간대와 구역을 나눠 최대한 바이어스(편향성)를 제거했다. 

그 결과, 세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세대 구성의 포괄성이 달라졌다. 2008년은 2030세대의 참여가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2016년은 20대 참여율이 가장 높고 다음으로 40대와 50대 순이다. 이 중 50대 이상 참여자는 2008년과 비교해 3배 이상 늘었다. 

둘째, 의사 표현 욕구가 높아졌다. 현장조사의 경우, 2명 중 1명은 '바쁘다'며 응답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 11월 26일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85% 이상의 응답률을 보였다. 조사원으로 참가한 한 학생은 사람들이 줄을 서가며 적극적으로 조사에 임했다고 말했다. 2008년 조사한 1300여 명 중 300명 정도가 개인정보에 답하지 않아 샘플로 쓸 수 없었다. 약 3000명을 대상으로 한 2016년 조사에서는 개인정보에 응답하지 않은 사람이 3% 정도였다. 

셋째, 정치인과 정당을 바라보는 시각이 2008년에 비해 긍정적이었다. 당시에는 국회의원이 촛불집회에 나오면, '뭐하러 나왔느냐?'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2016년 정치인의 촛불집회 참여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90%가 찬성한다고 밝혔다. 
▲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프레시안(최형락)

조한혜정 : 또 한 가지 특이점은 2008년에는 일명 '유모차 부대'와 온라인카페 '82쿡' '쌍코' 등 여성이 주로 참여했다. 반면, 2016년 촛불집회에서는 가족 단위 참가자를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486세대가 아이들과 함께 광장에 나오면서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참여 연령층이 다양하다. 기성세대의 민주화 열망도 있지만, 세월호 참사, 구의역 사망 사고, 강남역 살인 사건, 정유라 대입 특혜 외에도 박근혜 정권이 주도한 국정 역사 교과서 문제 등 피해 당사자는 10대라는 인식이 작용한 것 같다.  

여기에 한일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폐쇄, 한반도 사드 배치 등 박근혜 정권은 국민과 의논 하나 없이 계속 폭탄을 터트렸다. 청년, 노년 가릴 것 없이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라며 불안해하던 차에 '비선 농단'이라는 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뭘까?'라는 의혹은 있었으나, 설명되지 않던 것이 단번에 설명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자체로 '인지적 일치'가 이루어지며 '해방적 시간'이 되었던 것.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진영 구분 없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공동으로 파헤치듯 보도한 것도 촛불집회 참여 열기를 높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몰랐을까?'…의문이 진화하다
 
프레시안 : '촛불 정국'의 직접적인 원인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지만,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쌓여 있던 불만과 불쾌감이 더해져 현재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분석 같다. 그래서 정치인 몇몇에 대한 비토 이상의 사회적 공분이 촉발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서복경 : '의문'의 진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처음 '최순실 사태'가 터진 10월 말 SNS에는 '과연 몰랐을까?'라는 의문이 주를 이뤘다. '청와대 직원은 몰랐을까? 장차관 같은 국무위원도 몰랐나? 언론도 몰랐어? 재벌도 전혀 모른 채 돈을 헌납했나?' 등. 그리고 11월 중순쯤 의문을 입증할 만한 보도가 쏟아지면서 '몰랐을 리 없다'고 바뀌었다.

다음으로 '저들은 알면서도 공모했다. 왜?'로 의문이 진화했다. 그 결과, 검찰 수사 방향도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의 구조적 공모가 있었다'에 맞춰졌다. 이어 국민 또는 촛불 스스로, '우리는 그들의 공모를 왜 몰랐지?'까지 왔다.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의문이다.

조한혜정 : '구조적 공모'에 대한 의문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건가.

서복경 : 예를 들어, 미르·K스포츠 재단과 관련해 정권과 재벌이 일종의 거래를 한 정황이 사실로 밝혀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국가 권력을 사유화했다. 당시 20대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1978년 최태민 목사가 총재로 있는 '대한국국선교단' 부설단체인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를 맡아 역시 재벌을 대상으로 기금 마련에 나섰다. 최순실 씨와의 인연도 이때부터 본격화되는데, 최 씨는 전국새마음대학생 총연합회장으로 '영애 박근혜'를 지근거리에서 수행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다시 시작된 '삥 뜯기'와 '강남 큰손 아줌마'의 국정 개입

조한혜정 :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박사모)' 등 보수 단체가 가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은 '나라를 살리겠다'는 신념의 정치군인일 것이다. 재벌을 이용해 개인의 사유 재산을 늘린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다르다고, 애써 차별화 하고 있지 않을까?

서복경 : 그렇다. 그들이 인식하는 '박정희'는 다르지만 뒤에서 한 것을 똑같다. 10.26사태 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뭉칫돈을 사실상 최태민 목사가 관리했다거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퇴임 후를 고려해 조성했다는 영남학원(현 영남대학교), '육영재단' 경영권을 둘러싼 박근혜 대통령 5촌 살인 사건 등은 40대 후반인 나에게 새로운 정보다. 87년 민주화 이전 세대인 60대와 이후 세대인 4050대에게도 낯선 정보일 수 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 주변 사람이나, 검찰 핵심 관계자·민주화 이전 공직 경험자 및 언론사 등 과연 몰랐을까? 또 현재 경영권을 가지고 있는 재벌 2,3세대의 경우 부모 세대와 박정희 정권과의 관계를 정말 몰랐을까? 첫 번째, 몰랐을까? 두 번째, 알고도 왜 그랬을까? 세 번째, 이런 구조적 공모 관계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을까? 등 의문의 진화 과정이 참 흥미롭다. '이들의 관계는 대체 언제,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긴다.  

▲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조한혜정 : 인류학자 관점에서 나는 조금 다른 차원의 공모 관계를 생각해보고 있다. 식민지 시대와 해방 정국을 거쳐 이승만 정권에 이르기까지 당시 정권은 국가를 운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의 하부 구조는 토건족과 사기꾼 등 온갖 브로커가 '삥 뜯는' 시스템으로 굴러 왔다. 민주화 정권은 이후 토대(하부 구조)를 바꾸어보려고 했지만, 경제 위기와 신자유주의 등과 맞물려 바꾸지 못했다. 국민도 '돈만 벌면 된다'는 의식이 강해졌다. '부자 되세요'가 인사가 된 '돈 공화국'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2007년 이명박 대선 후보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으로 대통령이 됐다. 당시 홍보 영상인 '욕쟁이 할머니 편' 생각나는지? 국밥집 할머니가 이명박 후보에게 국밥을 던지듯 주면서 "이것 먹고 경제나 잘 살려라"라고 나무라는 장면이 나온다. 효과가 아주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경제는 할머니가 말하는 경제가 아닌, '4대강 사업'이라는 거대 토건 사업이었는데 말이다. 그런 식으로 유권자를 헷갈리게 하는 선거전이 펼쳐졌고, 이 전쟁은 돈이 많은 편이 이길 승산도 높았다. BBK 사건 등에도 불구하고,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면서 이명박 후보는 당선됐다. 국민들이 4대강 사업만은 막았어야 했는데 막지 못했고, 그런 '무심한' 가운데 이명박은 대 놓고 '삥 뜯기'를 한 것 아닌가.  

프레시안 :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정치 문화, 특히 선거 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말인가.

조한혜정 : 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터 선거는 이미지 홍보와 SNS를 활용한 새로운 판으로 변했다. MB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야말로 '킹 메이킹 시스템'이 만들어낸 경우다. 거액의 돈이 오가는 일종의 산업인 '킹 메이킹 시스템'에서는 후보가 대통령을 할 자격이 되는지, 능력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기고 지는 승부만 중요하다. 며칠 전, 자료가 필요해 18대 대선 홍보 영상을 찾아봤다.  

"경험 있는 선장은 파도를 피해 가지만 경험 많은 선장을 파도 속으로 들어간다.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에 강한 대통령이 필요합니다. 글로벌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동북아 평화를 이끌어갈 리더십, 앞으로의 5년이 대한민국의 5년을 좌우합니다. 준비된 여성대통령 기호 1번 박근혜" 

 

당시 세력은 '비련의 공주'이면서 '은둔형(히키코모리)'인 박근혜 후보를 '준비된 대통령' '여성 대통령'으로 만들어서 당선시켰다. 아버지가 만든 나라가 IMF 경제 위기로 망해가는 것을 보며 맏딸로 정치판에 나섰지만, 실제 그는 주변 누구도 믿지 못하는 사람, 국정 운영을 의논하기 위한 구성원과 보좌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다. 오른편에 아버지의 독재 정권을 유지시키는 브레인 역할을 한 정보원(김기춘), 왼편에 교주의 딸이자 '강남의 큰손 아줌마(최순실)'을 두지 않는 한 국정 운영이 어려운 상태였던 것이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의 분석대로, 그는 부모를 총격에 잃은 엄청난 트라우마가 있는 딸로 '연산군 콤플렉스'를 가진, 사실은 "대통령 하기 싫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심리 분석을 하지 말자는 이들이 있지만, 심리 차원을 포함해 인물을 총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유신 정권 말기에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정권을 유지하는데 급급했던 아버지를 보면서 배운 것이 정치 전부인, 대통령 코스프레는 잘할 수 있어도 그 이상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은 몰랐을까?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이면 알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사실을 알고도 '킹'을 만드는데 동조했다면 사악한 것이다. 혹 모르고 했다면, 무지하고 비겁한 일이다.

'만들어진 권력' 아래, '재산권신수설'을 추앙하다 

프레시안 : 민간인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실태가 드러나기 전까지 '민주주의 시스템'이 정상 가동되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조한혜정 : '킹메이킹 시스템'이 작동하면 대의제는 한계에 직면한다. '투표'가 정치적 의사 결정 행위가 아닌, 인기투표나 감정적인 자기 위로를 위한 행위가 된다. 2002년 대선 때만 해도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투표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 국민은 자신의 이익과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하는 투자자 겸 소비자로 나르시시스트가 됐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렇게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펀드를 하고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점점 외톨이가 된 것이다. 이른바 '사회'는 사라지고, 투표(선거)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하는 '정치 공학'이 되었다. 2007년 대선 당시 홍보와 광고 전문가가 선거판에 대거 영입됐고, 이 전문가들이 똑똑한 '킹메이커' 역할을 했다.  

프레시안 : 킹메이커들도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킹이 누구인지는 상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기득권 세력(킹메이커)이 만든 '대통령 박근혜'(킹)가 허상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대통령 박근혜'는 '만들어진 권력'일 뿐 아니라 국가 권력기관이 댓글을 통해 조작까지 해서 만든 경우다.  

서복경 : 이명박-박근혜 정부 내내 만들어진 권력이 사실상 정권을 운영했다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돈을 쏟아 부었다고 또는 몇몇 세력이 여론을 조작한다고 시민들이 휘둘릴 만큼 민주성이 취약한 존재일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 그렇다면 지난 10여 년 동안 조작된 여론이 유지된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과도한 벌금을 부과하는 체제적 억압이다. 우리 공직선거법은 허위사실유포죄, 후보비방죄, 사전선거운동금지죄 등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내용이다. 형법상 명예훼손의 경우는 기소되면 재판을 거쳐 대부분 실형이 선고된다. 특히 노동자의 파업 현장에는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이 청구된다. 집단행동도 말 그대로 위축됐다.

다른 하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만들고 민주화를 지탱해온 시민적 기반이 와해됐다는 점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서는 집권여당이 공중 분해되며 민주화 세력마저 뿔뿔이 흩어졌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 10년 동안 먹고사는 문제마저 악화됐다.

2008년 4.9 총선 투표율은 46.1%로 역대 최저다. 유권자가 정치에서 철수한 것이다. 그렇게 시민들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더 나은 민주주의에 대한 노력을 포기한 채 개인화됐다. 또 유권자가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실망하며 정치적으로도 정당이 무능해졌다.

ⓒ프레시안(최형락)

조한혜정 : 정치에서 철수한 나르시시스트들은 돈을 좇기에 바빴다. 그러면서 '재산권신수설'이 등장했다.(왕의 절대성을 강조한 '왕권신수설'에 빗댄 것. 돈과 부동산 등 재산(富)이야말로 절대적 가치라는 의미. 편집자) '내 안의 이명박'을 되돌아보게 하는 부분이다.

재밌는 현상은 이 나르시시스트들이 주도한 온라인 커뮤니티('디씨인사이드' 주식갤러리)가 최순실 일가의 국정 농단 의혹을 밝히며 첩보원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 '82쿡'과 쌍코'과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위험 의식과 광장 참여를 독려했다면, 주식갤러리는 첩보가 민주주의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 : 주식갤러리의 제보는 지난 7일 2차 청문회가 결정적이었다. 그동안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줄곧 '최순실 씨를 모른다'고 했으나, 이들이 제보한 2007년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 영상이 공개되자 진술을 번복했다.  

서복경 :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본주의 체제를 갖춘 나라는 많다. 한국 사회와 차이가 있다면, 정경유착·부정부패 등 잘못이 발각되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는 계속 묻어가며 정권을 유지했다.  

조한혜정 : 그렇다. 정치권도 적당한 선에서 '봐주기'를 계속해온 셈이다. 그러나 봐주는 대가로 더는 이권을 챙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현 사태가 불거진 것이다. '정치 혐오증'은 여전하지만, 국민들이 이대로 가서는 '전멸'이라는 것을 피부로 감지하고 거리로 나와 가수 한영애 씨의 노랫말처럼 '조율'하기로 작심했다. 노력이 배신당한다는 것을 알게 된 대학생, 대학입시도 더 이상은 공평한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청소년도 부모와 함께 집회에 참가하면서 한국 정치는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조한혜정-서복경 대담 2편이 곧 이어집니다.  

2016년 12월 29일 목요일

<세계> “최순실 비선 활용한 軍 인사 개입 의혹” 보도


野 “朴,<세계일보>가 ‘최순실 비선을 활용한 軍 인사 개입 관련 의혹 보고’란 제목의 문건을 입수해 28일 보도했다.
보고서는 “軍 내부 제보에 의하면, 지난 2014년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 전후를 기점으로 박지만 육사 동기 그룹(육사37기)이 대다수 경질 또는 좌천 되자 ‘알자회’ 출신 국정원 추모(육사41기)국장이 최순실 라인을 통해 현 기무사령관(조현천/육사38기)을 천거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돼 있다.
추 국장의 누나가 최순실과 가까운 사이로, 누나의 도움으로 비선라인과 친해졌다는 것.
보고서는 특히 이후, 기무사령관으로 내정된 조현천 장군은 군 내 인사정보를 추 국장에게 제공했고, 추 국장은 국정원 보고형태로 청와대 우병우, 안봉근에게 제공, 군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세계>는 이 보고서의 출처에 대해 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가 만들어 정치권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22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5차 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군 장성 승진인사에 개입해 군대 내 사조직인 ‘알자회’를 지원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29일 현안 브리핑을 통해 <세계일보> 보도를 언급하며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묵인한 결과가 군대 내 사조직의 부활까지 연결됐다는 것이 이 의혹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변인은 또 “대통령의 ‘국가 사유화’가 국가안보까지 위태롭게 만들었다”면서 “국방부 장관은 ‘알자회’ 의혹에 대해 즉각 조사하고 그 결과를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진위를 정확하게 확인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장관은 이날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기자들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정말 엄중한 상황에서 오직 군심을 결집하고 지휘관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기강을 확립해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하는데, 이런(군내 사조직)일이 불거진 것에 매우 분노하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문건에서 거론된 조현천 기무사령관 인사와 관련해서는 “조현천 사령관은 제가 추천했다”면서 “국군사이버사령부가 굉장히 어려울 때 조현천 사령관이 그곳을 정리하는 역량을 보고 제가 추천해서 된 것”이라고 관련 의혹을 일축했다.   국가 사유화로 안보까지 위태”…한민구 “진위 확인해 조치 취할 것”
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2016년 12월 28일 수요일

2017년을 전민족의 에너지를 모으는 원년으로

<칼럼> 이장희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이장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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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29  12: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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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2017 평화통일 기원 21세기 실크로드 마라톤’에 부쳐

2016년 12월 끝자락에 서서 우리민족과 세계를 다시 생각해본다. 동아시아 한반도에 위치하는 우리 한민족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국 특유의 수준 높은 문화를 끈질기게 간직하고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해양세력 일본이 중국 명나라 대륙으로 진출한다는 명분하에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란을 일으켰고, 1910년에는 마침내 일제식민통치 36년간의 식민지 아픔을 앓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소의 냉전질서 속에서 6.25라는 민족상쟁의 비극적 고통을 겪어, 타의에 의해 현재 분단 71주년을 맞고 있다.
1990년대 국제사회는 탈냉전이 되었고, 국제범죄를 저질러 가장 비관적이었던 독일은 2017년 평화통일 26년을 맞고 있다. 분단이 분명히 대부분 외세의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한민족은 왜 71년 이상의 분단의 아픔을 현재까지 겪고 있어야만 하는가?
이러한 민족의 숙원인 평화통일 문제에 대해 순수한 마라톤 스포츠인으로서 오랜 기간 동안 고민하고 용감하게 도전해 온 평화연대 정책위원 강명구 마라토너의 노력에 존경과 박수갈채를 보낸다.
그는 이념, 정파 등 모든 것을 초월해 지난 26년간 미국에 있을 때도 유모차를 끌고 ‘미주대륙 횡단 마라톤’을 완주해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잊지 못해 2년전 완전 귀국해 2015년 ‘815 광복 70주년 전국일주 마라톤’을 하였고, 올해에도 ‘8.15 광복절 평화통일 기원 경부마라톤’을 시행하여 마라톤을 통해 잠자는 민족혼을 끊임없이 일깨우려 노력해오고 있다.
이번 2017년 9월에 ‘평화통일 기원 21세기 실크로드 마라톤’을 헤이그에서 출발하여 유라시아대륙 14,968km을 횡단한다. 주요 통과도시에는 (네)헤이그-(독)뮌헨-(오스트리아)비엔나-(항가리)부다페스트-(불가리아)소피아-(터키)이스탄불-(이란)테헤란-(우즈베키스탄)사마칸트-(중국)둔황-(중국)북경-(북한)평양-서울을 포함한다. 이들 도시는 세계사의 주축이었던 유라시아 대륙의 핵심 도시들이다.
강명구 마라토너는 지금 실크로드 마라톤 대회 준비에 용기있게 혼신의 힘을 던지고 있다. 그는 이번 대회 취지문에서 “21세기의 새로운 실크로드는 평화의 물줄기가 동서양으로 넘나들어 진정한 지구상의 평화와 평등과 자유를 실어나르는 일이 될 것이며, 대한민국의 물류와 문화를 세계로 뻗어나게 하는 새로운 활력의 길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누가 뭐래도 지금 우리 민족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분단체제 71주년을 극복하는 길이다. 같은 인종.문화.역사를 가진 민족이 타의에 의해 둘로 71년이상 나누어졌다는 이 비극적 모순은 이땅에 민주주의, 법치주의, 평화를 항상 위협했고, 그리고 수많은 갈등과 모순을 이 땅에 주었다.
이제는 끝내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후손들에게 이러한 분단의 아픈 모순된 역사를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 분단을 극복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정답이 없다. 우리민족은 이스라엘 민족 다음으로 전 세계에 가장 많이 흩어져 살고 있는 민족이다. 그 만큼 두 민족의 수난의 아픔이 매우 깊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 ‘평화통일 기원 21세기 실크로드 마라톤’은 모든 인종, 정파를 뛰어넘어 남북한 간에 막힌 것은 뚫고 굽은 것을 펴는 또 하나의 교류협력의 혜안이다. 이 실크로드 마라톤은 전 세계에 퍼져있는 한민족의 가슴속에 있는 통일에 대한 염원의 불씨와 세계시민의 평화에 대한 갈망을 살리리라고 본다.
마라토너 강명구씨의 유라시아 횡단 ‘평화통일 기원 21세기 실크로드 마라톤’에 전국민의 지혜와 후원이 실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고대 법대 졸업, 서울대 법학석사, 독일 킬대학 법학박사(국제법)
-한국외대 법대 학장, 대외부총장(역임)
-대한국제법학회장,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회장.
엠네스티 한국지부 법률가위위회 위원장(역임)
-경실련 통일협회 운영위원장, 통일교욱협의회 상임공동대표,민화협 정책위원장(역임)
-동북아역사재단 제1대 이사,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역임)
-민화협 공동의장, 남북경협국민운동 본부 상임대표,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동아시아역사네트워크 상임공동대표, SOFA 개정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현재)
-한국외대 명예교수, 네델란드 헤이그 소재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재판관,
대한적십자사 인도법 자문위원, Editor-in-Chief /Korean Yearbook of International Law(현재)
-국제법과 한반도의 현안 이슈들(2015), 한일 역사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공저,2013), 1910년 ‘한일병합협정’의 역사적.국제법적 재조명(공저, 2011),“제3차 핵실험과 국제법적 쟁점 검토”, “안중근 재판에 대한 국제법적 평가” 등 300여 편 학술 논저

2016년 12월 27일 화요일

특검이 오늘 새벽 '긴급체포'한 이 사람


게시됨: 업데이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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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으로 점점 다가간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작년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찬성 결정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가한 혐의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28일 오전 긴급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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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팀이 21일 현판식과 함께 공식 수사에 착수한 이후 강제 수단으로 핵심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대통령의 제3자 뇌물수수 혐의 등 비위 의혹을 수사 중인 특검팀은 전날 오전 9시 25분께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했던 문 전 장관을 피의자로 입건하고 28일 오전 1시 45분께 긴급체포했다. 그에게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가 적용됐다.
특검팀은 문 전 장관이 조사 과정에서 삼성합병 찬성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기존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물증 및 주요 핵심 사건 관계인들의 진술과 배치되는 진술을 함에 따라 증거인멸 우려가 크다고보고 전격적으로 긴급체포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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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전 장관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있던 작년 7월 산하 기관인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유무형의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국민연금을 관리·감독하는 복지부 국장급 간부들은 앞서 특검 조사에서 문 전 장관이 합병 반대 의견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 국민연금 의결권전문위원회에 삼성합병 안건을 올리지 말고 기금운용본부 차원에서 독자 결정하라는 취지로 주문하는 등 삼성합병에 찬성하라는 지시를 사실상 내렸다는 진술을 한것으로 전해졌다.
작년 삼성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전날 기존 진술을 번복하고 복지부로부터 합병에 찬성하라는 취지의 압력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도 체포 결정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전 본부장은 이틀째 이어진 특검 조사에서 복지부 연금정책국 간부로부터 합병 찬성에 관한 요구를 받았다고 새롭게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 박근혜와 부역자들에게 필요한 건 바로..."


16.12.28 10:58l최종 업데이트 16.12.28 10:58l







<오마이뉴스>는 '2016 특별상' 수상자로 김종성 박도 기자를 선정했습니다. '특별상'은 한 해 동안 좋은 기사와 기획 등으로 활약한 시민기자에게 드리는 상입니다.

시상식은 2017년 2월 17일 <오마이뉴스> 상암동 사무실에서 치러집니다. 이 자리에서는 '2016 올해의 뉴스게릴라상'과 '2017 2월22일상', '2016 올해의 기사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시상식도 함께 열립니다. 수상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 인사 드립니다. [편집자말]
1년 전, 10년 전 일을 소상히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그 1년 전 일이 당신의 오늘을 만드는 데 일조했을 수 있다. 우리는 오늘을 살지만, 어제가 중요한 이유기도 하다. 그 때문에 인류는 역사를 기록하고, 그 기록물을 공부한다. 

2016년 <오마이뉴스> 특별상 수상자들은 '역사의 중요성'과 연관이 있는 시민기자들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김종성(qqqkim2000) 시민기자와 박도(parkdo45) 시민기자(가나다 순). 이들은 2016년 한해 지난 날의 역사에서 지금의 한국 사회를 비추어 보면서, 적폐를 짚고 대안을 모색했다. 

[김종성 시민기자] 과거에서 오늘의 해결책을 모색하다
 김종성 시민기자.
▲  김종성 시민기자.
ⓒ 김종성 제공

김종성 시민기자는 '동아시아 역사 연구자'로 알려져 있다. 올해만 역사서 <패권 쟁탈의 한국사>(을유문화사), <신라 왕실의 비밀>(역사의아침)을 펴냈다. 2005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을 시작, 2007년부터는 <오마이뉴스> 대표 콘텐츠 중 하나인 '사극으로 역사 읽기'를 연재하고 있다. 

그는 올해 전반기만 해도 '사극으로 역사 읽기' 연재에 집중했다. 하지만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정국을 뒤흔들면서 그의 기사도 타깃을 분명히했다. 국정농단 사태를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진령군 이야기였다(130년 전의 최순실, 여자무당 '진령군'). 최순실씨가 언론보도를 타기 시작할 때 작성한 기사다. 역사를 돌아보니 명성황후 생존 당시 진령군이 지금의 최순실씨와 참 비슷하더라."

김종성 시민기자는 시시각각 이슈가 터지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현재를 진단하는 기사를 쓴다. 하지만 역사라는 게 워낙 분량이 방대한 데다가 과거와 현재를 엮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의 비법이 있을 듯했다.

"평소에 역사 서적을 계속 탐독한다. 서적에서 이슈화할 수 있는 부분을 그때그때 찾아 메모한다. 2012년부터 하나의 문서에 연구 결과를 쌓기 시작했는데 현재 5000쪽가량 된다. 이슈의 열쇳말을 입력하면 바로 역사적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게끔 작업해놨다. 이 문서를 토대로 기사를 작성한다."

2016년은 다사다난했다. 하지만 다가올 2017년도 만만치 않은 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성사 가능성이 큰 조기 대선, 남한을 둘러싼 국가들의 이해관계 충돌 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시사에 비중을 둬 역사 이야기를 풀어갈 계획이다. 급변하는 정세에 맞춰 역사적 사실을 끊임없이 조명하겠다. 또한 영국과 미국의 움직임 등 급변하는 국제 정세도 다룰 예정이다."

그는 역사적 사실을 제시하면서 지금의 시사를 진단한다. 독자들은 그의 기사를 통해 역사의 맥을 보다 쉽고 재미있게 짚을 수 있다. 김종성 시민기자는 자신의 기사가 독자들에게 이런 의미로 남길 원한다. 

"내 기사는 '옛날 옛적에 이런 일 있었다'에 멈추지 않는다. 지금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이 과거에 있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해결책은 무엇이었는지, 그 결과는 어땠는지를 전망하는 데 의미가 있다. '지난 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

[또 다른 기사] 
672년 전 탄핵당한 폭군, 박근혜와 참 비슷하다
100년 전 한일 군사정보 공유, 결과는 비참했다 
결정적 순간에 주저한 국회, 결국 강제 해산당했다

[박도 시민기자] "지금 박근혜, 최순실, 우병우에 필요한 건..."
 박도 시민기자.
▲  박도 시민기자.
ⓒ 장병국 작가

앞서 소개한 김종성 시민기자가 거시적인 역사에서 지금을 톺아본다면, 박도 시민기자는 미시적인 역사(한 개인의 역사)에서 한국 사회의 오늘을 진단한다. 지난 8월 15일부터 시작된 연재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이야기다. 제1부 초록색 견장에 이어 현재 제2부 교단일기가 연재 중이다.

제1부 초록색 견장은 박도 시민기자가 장교로 군 생활을 하던 시절을 다뤘고, 제2부 교단일기는 교단에 섰던 시절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박도 시민기자는 이 연재에서 군 복무 당시 직접 목도했던 대한민국 군대의 부조리와 장병들의 애환을, 그리고 한국 교직사회의 병폐와 사제지간의 끈끈한 정을 그대로 옮겨놨다. 최근에는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을 펴내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이었던 허 장군의 삶을 조명했다. 

지난 23일 박도 시민기자와 전화로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 2016 <오마이뉴스> 특별상 수상을 축하한다. 소감 한 말씀 부탁한다.
"얼떨떨하고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이런 상은 젊은 시민기자들이 받아야 하는데... 아무튼 기쁘다. 늙은 말에게 주는 홍당무로 알겠다. 더 분발하겠다."

- 지금 시점에서 개인의 역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이유가 있었을 텐데. 
"E.H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말했다. 나는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으로 한 개인의 인생사를 통해 지난 역사의 행간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이 연재를 시작하게 됐다."

- 현재까지 38개의 기사가 연재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을 것 같다.
"역시 독자의 조회수가 가장 많았던 '육군 소위 비웃은 카투사 일병, 결말은...'이란 기사다. 간략히 내용을 소개하자면, 당시 소위였던 내가 밖에서 카투사 일병을 마주쳤는데, 이 일병이 상관에게 경례를 하지 않았던 일화다. 나중에 헌병이 개입해 카투사를 교육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처음 기사를 쓸 때는 읽는 이에게 어떻게 비칠까 걱정했는데, 많은 이들이 공감해줬다. 나는 이 기사를 통해 우리 안의 주체성 결여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었다."

- 향후 연재는 어떤 내용으로 꾸려지나. 
"교단일기 후반부에는 정년을 못 채우고 떠나는 교사의 아픔을 이야기할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 3부에서는 내가 작가와 시민기자로 살아온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연재 진행에 있어 소망이 있다면?
"요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가 진행 중이지 않나. 그런데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은 각종 의혹에 대해 '모른다'로 일관한다. 나는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이 내 기사를 보고 '솔직하게 고백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가치를 깨닫길 바란다. 

연재 기사 중에 '한밤중의 해프닝, 대대장 앞에 엎드린 소대장'이라는 기사가 있다. 병사들의 일탈 행위가 대대장에 적발됐는데, 지휘관인 내가 대대장에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솔직하게 대하니 대대장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병사들에게도 탈이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최순실, 우병우, 김기춘... 이들이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개과천선하길 바란다."

올해의 특별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50만 원이 지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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