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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27일 토요일

백악관 앞에서 ‘사드 말고 평화! 사드 말고 남북대화!’


백악관 앞에서 ‘사드 말고 평화! 사드 말고 남북대화!’
-미주 동포 ‘성주 사드 반대 전국 촛불대회’ 연대 시위
-미주 양심수후원회, 가톨릭워커 등 참가
-지난 7월부터 5번째 시위, 외신들 취재 열기도
이하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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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앞에서 사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미주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회원들과 ‘Catholic Worker’ 활동가들.
성주에서 시작된 사드 반대 촛불이 대구 경북 등 전국 50여 곳에서 타오른 8월 26일(금) 사드 배치의 중심 미국 백악관 앞에서도 고국의 상주 군민들을 지지하는 미주 동포들과 미국 시민단체의 사드 반대 연대시위가 열렸다.
수은주가 90도 후반까지 치솟는 맹렬한 폭염 속에도 백악관 앞에서 열린 이번 연대 시위에는 ‘미주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와 현지 반전 평화단체 가톨릭 워커(Catholic Worker) 회원 등 2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주말을 맞아 전 세계에서 백악관을 찾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열띤 홍보전을 펼쳤다.
이들의 열띤 홍보전에 관광객들을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고 참가자들은 이들에게 사드 배치와 한미군사훈련(UFG, 을지 프리덤 가디언)으로 인한 한반도 전쟁위기에 대한 설명과 함께 유인물을 배포하며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날 시위에는 이번 시위에는 가톨릭 워커의 아트 래핀(Art Laffin)씨와 함께 제주 해군 기지 반대투쟁에 참여한 바 있는 같은 단체의 샌프란시스코 지부 회원 루크 한센(Luke Hansen)씨 외 10여 명의 반전 평화 활동가들이 참여하였으며 이라크의 루다우 통신사(Ludaw News Agency) 및 지역 대학(Suffolk County Community College) 신문사 관계자 등이 취재를 벌였다.
루다우 통신의 이마드(Imad) 씨는 이라크, 터키, 쿠르드 족 내부의 친미 세력들을 배후 조종하여 이 지역에 전쟁과 민간인 대량학살을 일으켰던 장본인 미국을 규탄하는 한편 최근 미국이 한반도에서 조성하고 있는 전쟁 위기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지속적인 취재 및 정보 교환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미국의 중남미 민중 정권에 대한 체제 전복 테러 및 내전 개입에 대하여 비판 활동을 펼쳐온 루크 한센 씨는 <작계 5015>의 내용이 미국이 그동안 니카라구아,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쿠바 등 국가들에 자행해온 불법적 침략행위의 종합 백화점이라고 일일이 열거하며 규탄하기도 했다.
또한 일부 파키스탄 출신 행인은 배너를 들고 시위대에 동참하는 등 외국인들의 참여 열기도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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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반대 시위를 취재하고 있는 루다우 통신의 이마드(Imad) 씨
이날 시위에 참가한 양심수 후원회의 워싱턴 DC 거주의 앤지 김(Angie Kim, 여 미주 양심수후원회 워싱턴 DC 지부 회원) 씨는 “미국과 그 하부 동맹인 박근혜 정권은 사상 최대의 한미군사훈련을 벌이며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가운데 북의 SLBM (핵잠수함미사일발사) 실험 성공으로 사드가 무용지물임이 입증되었다”며 “미국 예산에 사드 한국 배치에 관한 예산은 책정되지 않아 실질적으로 사드 한국 배치에 소요되는 비용마저 한국 국민들의 고혈로 충당이 되지 않나 생각되는데 과연 이렇게 국민들의 혈세를 한반도 전쟁놀음에 사용해도 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김 씨는 “사드 반대 없이 정권교체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허상”이라며 “미국은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정권을 세우려 할 것이고 새로 들어서는 한국 정권이 친 사드 정권인지, 반 사드 정권인지가 한반도 평화와 민주주의에 있어 중요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양심수 후원회 LA 지부 회장은 “성주군민들이 다 들고 일어났는데도 야당은 사드반대 당론조차 못 정하고 여소야대 정국에서도 여전히 새누리 이 중대 노릇만 하면서 정권교체 타령만 하고 있으니 한숨만 나온다”며 “믿을 건 분노하고 단결된 민중의 힘뿐임을 성주군민들의 투쟁에서 다시 한 번 느낀다”고 말했다.
‘미주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의 이번 시위는 한반도 사드 배치 발표 이후 5번째 시위로 특히 성주 군민들의 시위 이후 성주 군민들과 연대의 뜻을 강력하게 표하며 연대 시위를 벌여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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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반대 유인물을 관심 있게 읽어보고 있는 현지인
‘미주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는 지난 7월 15일 백악관 앞 시위 이후 펜타곤, 백악관 등을 오가며 시위를 벌여왔다.
‘미주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는 지난 13일에 열린 사드반대 연대 시위에도 “민족 대단결 연석회의로 싸드 배치 막아내자” 라는 구호가 쓰인 배너를 들고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사드반대 투쟁을 전개해 오고 있다.
‘미주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는 올 2월부터 ‘한반도 전쟁 반대 및 평화협정 100일 투쟁’을 이어왔으며 이후 키리졸브, 천안함 6주기, 탄저균, 핵정상회담 반대 투쟁을 이어 오던 중 한반도 사드 배치 발표 후 사드 배치 반대 투쟁으로 전환하여 현지 반전단체들과 강력한 연대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이 연대 투쟁에는 미국의 ‘Catholic Worker’, ‘Answer Coalition’, ‘Code Pink’, PSL , 코리아 연대, 미 녹색당 등이 사안에 따라 꾸준히 참여하는 등 국제적 연대도 넓혀지고 있다.
[저작권자: 뉴스프로, 기사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나눔에 나중은 없다, 바로 지금 당장

나눔에 나중은 없다, 바로 지금 당장

황창연 신부 2016. 08. 25
조회수 933 추천수 0
q1.jpg» 기업 이윤을 사장부터 말단직원까지 똑같이 나누는 그래비티 페이먼트 회사 직원들.

지금은 ‘서울 디지털 산업단지’라는 화려한 이름으로 탈바꿈한 구로공단은 1960년대 수많은 노동자들이 땀과 눈물로 청춘을 바쳤던 한국 수출 산업의 현장입니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건강을 잃으며 밤낮없이 일하는 노동자를 대변하여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 열사가 목숨을 내걸고 말했습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없다.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
그때 경영자들과 정치인들은 뭐라고 했나요?
“지금은 우선 나라가 잘살아야 하니, 노동자에게는 나중에 돈 벌면 나눠줄게.”
‘나중에, 나중에……’라며 미루는 동안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비참해졌지만 정부는 기업 중심 정책을 밀고 나갔고, 노동자의 땀과 눈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지금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촛불은 불을 나눠도 빛이 약해지지 않는다

2016년 8월 현재, 우리나라 시간당 최저임금은 6,030원입니다. 한국과 경제 규모가 비슷한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1만 원, 우리보다 조금 잘사는 프랑스는 1만 1,000원, 독일은 1만 2,000원입니다. 미국은 모든 주마다 최저임금제가 다르게 실시되는데, 뉴욕의 경우 2016년 현재 시간당 9달러인 최저임금을 2019년까지 15달러(약 1만 7,000원)로 인상할 것을 최종 결정했습니다.
시간당 최저임금이 6,030원이면 100만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한 달을 살라는 뜻입니다. 여유 있는 삶은 고사하고 입에 풀칠하기도 힘겹습니다. 재벌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비축하고 있으면서 노동자들을 위한 지출은 외면합니다. 가진 자들은 애초부터 노동자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다 같이 잘살아야 합니다. 거대기업 몇 개만 잘된다고 국민 전체가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 개의 촛불로 많은 촛불에 불을 붙여도 처음 촛불 빛은 약해지지 않는다.”
나눈다고 해서 적어지거나 소멸되지 않는다는 뜻이고, 오히려 빛을 나눔으로써 세상은 더 환해진다는 뜻입니다.

부자들의 세금으로 모든 국민이 혜택을 누리는 곳이 북유럽 국가들입니다. 독일의 경우 최저임금을 올리니까 노동자들이 소비를 많이 하고, 기업은 물건이 잘 팔려 자본 회전이 잘되니 나라 경제 여건도 덩달아 좋아졌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와는 정반대입니다. 경기 흐름이 좋지 않을 거라는 예상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돈을 풀지 않으니 노동자들은 쓸 돈이 없고, 소비를 안 하니 경제가 활력을 잃고, 기업은 물건을 팔 수 없어 도산 위기에 처하는 악순환을 거듭합니다. 탈무드의 촛불 이야기가 주는 교훈을 너나없이 되씹어야 할 오늘입니다.

지금까지 돈 쓴 일 중에서 제일 잘한 일

댄프라이스.png» 그래비티 페이먼츠 CEO인 댄 프라이스.
기업 이윤을 사장부터 말단직원까지 똑같이 나누는 회사가 있습니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그래비티 페이먼츠(GravityPayments)라는 이름의 신용카드 결제 서비스를 하는 기업입니다. 창업자이며 CEO인 댄 프라이스는 서른 살이던 2015년 전 직원의 최저 연봉을 7만 달러로 맞추기 위해 자신의 연봉을 100만 달러에서 90퍼센트 삭감하여 10만 달러로 하고, 나머지 90만 달러는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프라이스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2011년 어느 날, 댄 프라이스가 휴식시간에 직원 한 명과 나눈 대화가 발단이었습니다. 댄 프라이스는 직원에게 인사말로 잘 지내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시 연봉이 3만 5,000달러였던 이 직원은 사장 면전에서 퉁명스럽게 대꾸하더랍니다.
“내 연봉을 당신이 다 빼앗아가서 행복하지 않아요.”
뜻밖의 말에 충격을 받은 그는 자신의 회사부터 소득 불균형 문제를 바로잡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는 연봉을 많이 올려줄수록 직원들이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매년 평균 15퍼센트씩 연봉을 인상했습니다.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행복해하는 직원들에게 댄 프라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자본가인 내가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껏 제가 돈 쓴 일 중 제일 잘한 일입니다.”
댄 프라이스는 직원들을 돈 주고 부리는 소모품으로 여기지 않고, 함께 행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평등을 넘어서 미래를 함께하는 공생의 관계였던 것입니다.
평균연봉 4만 8,000달러에서 최저연봉 7만 달러로 직원들의 임금을 올린 그래비티 페이먼츠 회사는 1년이 지난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일부에서는 악담을 퍼부으며 망할 거라고 했는데, 고객은 55퍼센트 증가했고 수익은 350만 달러에서 650만 달러로 늘어났으며, 높은 임금 덕분에 직원들은 회사가 있는 시애틀이나 근교로 이사 와서 통근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최고경영자의 나누겠다는 결심으로 모두 다 잘사는 세상을 실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선진국의 기업문화에서 인간존중 사상이 상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혁명에서부터 시작한 민주주의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인들의 열망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적 가치를 가장 근본적으로 일깨워주었고 그때부터 모두가 존중받아야 할 존재이며, 서로를 아끼고 가진 것을 나눠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줄기차게 믿어왔던 것입니다.
05479297_P_0.JPG» 인간이 자연과 함께 공존하며 자급자족하는 공동체를 꿈꾸는, 강원도 평창 성 필립보 생태마을의 대표 황창연 신부가 생태마을의 황토방에서 발효시키고 있는 메주들 사이에서 환히 웃고 있다.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제가 살고 있는 평창 성 필립보 생태마을에는 40여 명의 직원이 함께 일합니다. 월급을 주는 원칙을 제가 정했는데 최저와 최고의 월급 차이가 두 배 이상 넘지 않습니다. 가령 관리책임자 월급이 500만 원이면 신입사원 첫 월급은 250만 원이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그래서인지 서로 위화감 없이 평화롭게 일들을 합니다. 생태마을 직원들은 그간의 수고에 대한 포상 차원에서 3년에 한 번 보너스로 단체 해외여행도 합니다.
나중에, 더 잘살게 되면……. 이런 핑계로 미뤄서는 언제까지고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나부터 오늘 당장 주변을 돌아보며 나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바로 시작입니다.

“‘친일청산’ 제대로 됐더라면 박근혜, 대통령 못됐을 것”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83]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이영광 기자  |  kwang3830@hanmail.net
지난해 독립언론 <뉴스타파>에서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친일파 후손들의 삶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4부작 ‘친일과 망각’을 방송했다. 당시 유튜브 조회 수 13만 회를 넘길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이에 부응해서일까? 1년이 지난 8월 7일 이 다큐멘터리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책에는 방송에서 담지 못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다큐멘터리가 평면적이었다면 책은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출간 뒷이야기가 궁금하여 지난 22일 서울 정동에 위치한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심인보 기자를 만났다.
심 기자는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기대 이상으로 책이 잘 팔리고 있다”면서 “지난해 방송을 했을 때 상당히 많은 분이 보셨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못 보신 분이 많은 것 같고 방송을 보셨던 분이라도 책과 다큐멘터리는 다르다고 생각하셔서 책을 사시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고 반응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다큐멘터리가 책으로 출간되는 건 이례적이다. 이에 심 기자는 “뉴스타파는 초창기부터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취재나 작업을 여러 번 해왔는데 그것들을 제대로 기록으로 남겨두지 못했다는 생각이 있었다. ‘친일과 망각’을 할 때는 처음부터 출판을 염두에 두고 기록을 충실히 하자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더불어 심 기자는 “과거 70년 전에 역사가 뒤틀렸고 그로 인해 우리 사회에 셀 수 없이 많은 부정적인 효과가 누적되고, 그게 누적되어 만들어진 구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고통 받고 있다”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70년 전으로 돌아가 그걸 바로잡을 수는 물론 없지만 적어도 잊지는 말자”는 메시지를 책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다음은 심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뉴스타파> 심인보 기자 ⓒ 이영광
- 지난해 방송된 다큐멘터리 ‘친일과 망각’을 1년이 지난 8월에 책으로 출간하셨어요. 열흘 정도 지났는데 반응은 어때요?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기대 이상으로 책이 잘 팔리고 있어요.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 정치 사회 분야 5위권에 들어가는 정도입니다. 지난해 방송을 했을 때 상당히 많은 분이 보셨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못 보신 분이 많은가 봐요. 그리고 방송을 보셨던 분이라도 책과 다큐멘터리는 다르다고 생각하셔서 책을 사시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친일’은 일부 엘리트가.. ‘망각’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 주위에서는 뭐라고 하나요?
“자영업 하는 제 중학교 동창이 책을 사서 읽고 하는 말이 이래요. ‘제목의 뜻을 생각해 봤는데 친일은 그걸 할 기회조차 엘리트들만 가져서 일부 엘리트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망각은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고 해요. 제목을 지을 때 그런 의미까지 담은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면 저 자신보다 더 의미심장한 해석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책을 읽고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지 물어요. 그래서 민족문제연구소에 후원하라고 했어요. 다음 날 물어보니 후원을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지난해에도 방송을 통해 그런 메시지를 내보내긴 했지만,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아 역사가 비뚤어지고 가치가 전도된 것에 대한 분노나 울분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고 그런 부분 때문에 저희 책에 반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책은 처음부터 생각한 건가요?
“뉴스타파는 초창기부터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취재나 작업을 여러 번 해왔는데 그것들을 제대로 기록으로 남겨두지 못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2013년과 올해 보도했던 조세도피처 연속 보도나 2014년에 했던 원전 마피아 같은 보도요. 이런 것들을 책으로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동안은 취재할 때 너무 힘들기도 하고 취재가 끝나면 곧이어 다른 프로젝트를 해야 하니까 못했어요. 그래서 ‘친일과 망각’을 할 때는 처음부터 출판을 염두에 두고 기록을 충실히 하자는 공감대가 저희 사이에 있었어요. 사실 책은 지난해 말까지 출간하는 게 목표였어요. 그러나 1년이 지나 나오게 됐는데 그건 김용진 대표의 책임이 큽니다(웃음),”
- 그냥 취재하는 것과 출간을 염두에 두고 취재하는 건 다를 것 같아요.
“많이 다르더라고요. 저는 처음부터 방송기자였고 그렇기 때문에 취재를 할 때 항상 화면을 먼저 생각하거든요. 방송에서는 아무리 팩트가 의미 있어도 그림이 약한 부분은 비중이 줄어들고 팩트는 덜 중요해도 그림이 좋으면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책은 그림에 구애받음이 없잖아요.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충분히 쓸 수 있고 제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부분은 그에 맞춰 쓸 수 있죠. 책을 쓴다는 게 훨씬 제약이 적고 자유롭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겠더라고요. 처음이라 아쉬움이 있는데 다음에 한 번 더 책을 쓰면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다큐멘터리와 책의 차이점 중 하나는 책엔 배경까지 설명할 수 있다는 것 같아요.
“맞아요. 다큐멘터리는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림과 소리를 먼저 생각하거든요. 책은 그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게 하나 있죠. 또 하나 다큐멘터리, 동영상을 만들 때는 시청자를 상당히 수동적인 존재로 가정해서 쉽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저는 KBS 출신인데, KBS 같은 경우는 공영방송인 만큼 더더욱 그래요. 처음 입사해서 교육받을 때 ‘네 리포트를 중학교 2학년이 봐서 이해할 수 있겠냐 없겠냐? 만약에 이해를 못 한다면 네가 리포트를 잘못 쓴 거다.’라고 얘기할 정도거든요. 물론 뉴스타파에 온 뒤에는 그런 부분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졌지만 그래도 다큐멘터리는 수동적인 시청자를 전제로 만들기 때문에 제약이 많아요.
그러나 책은 그보다는 훨씬 더 능동적이고 배경지식이 많은 독자를 전제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정도 이야기를 해도 책의 독자들은 더 잘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이라는 장르가 훨씬 더 표현의 범위가 넓고 제약이 적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 <친일과 망각> 표지
“‘친일청산’ 제대로 됐더라면 박근혜, 대통령 못됐을 것”
“재벌위주 경제구조‧보수일색 정치 구도.. 친일 미청산 산물”
- 들어가기를 보니 ‘만약’이란 가정에 대한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친일 청산이 안 된 나비효과가 지금까지도 있다는 것 다시금 느낄 수 있는 대목 같아요.
“그렇죠. 책에도 그 얘기가 나오지만,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었더라면 당장 현재 대통령은 박근혜 씨가 아니겠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만주군 경력이 있기 때문에 합당한 정도의 친일청산이 이뤄졌다면 사형까지는 아니겠지만, 공민권이 박탈되었든지 아니면 최소한 해방된 한국의 군대에서 고위 장교를 지낼 수는 없었겠죠.
그런데 이런 건 오히려 지엽 말단적인 얘기일 수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저희가 지난 프로그램에서도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가치가 전도된 것이죠. 민족과 사회 공동체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한 사람들, 이분들은 물론 당대에는 보상받기 어렵겠다는 걸 상당 부분 알고 감수했을 거라고 봐요, 하지만 해방된 조국에서 자기 후손들이 제대로 못 배우고 못 먹고 못 입으며 어렵게 살리라고는 그분들도 생각 못 했을 거예요. 거꾸로 민족을 배신하고 외세에 빌 빌붙었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계속해서 잘 나가고 권력을 차지하고 있죠. 이런 현실에서 만약 우리 공동체가 미래에 다시 위기에 처한다면 누가 선뜻 희생하려고 나설까요.
현실적인 문제도 있어요. 지금 이 나라의 현실에서 누가 과연 권력을 가지고 있고 사회자원을 차지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 이것 역시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지금 형성돼있는 재벌 위주의 경제구조라든지 보수 일색의 정치 구조라든지 이 모든 것들이 친일 청산이라는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지면서 여기까지 온 것으로 생각합니다.”
“친일청산 열망.. 반민특위 습격‧프락치 사건 일으켜 좌절시켜”
- 제헌 의회에서 제정되었던 ‘반민족 행위 처벌’의 과정과 그로 인한 반민특위 구성에서 해체까지가 책에 나오잖아요. 그걸 조사하시면서 느끼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저희 책에 1948년 당시 의회 속기록에서 발췌한 의원들의 발언이 나옵니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을 당시에야 친일파 청산에 대한 민중적인 의지가 매우 높았습니다. 그러나 미군정 때문에 친일 청산이 되지 않았고 그 상태로 3년이 그냥 흘러가 버렸어요. 48년 의회 속기록을 보면 그 3년이라는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일 청산에 대한 열망이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또 한 가지 그 당시에 의회를 수립하기 위한 총선거가 있었는데 그 총선거에 지금으로 봤을 때 왼쪽에 있거나 중도에 있는 사람들이 대거 불참해서 보수 일색의 의회가 꾸려졌습니다. 그런데 그 보수 일색의 의회에서조차 친일청산이라는 대의에 대해서 그 누구도 딴지를 걸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던 거예요. 이건 우리 민족이 갖고 있던 친일파 청산에 대한 열망이 엄청 높았다는 걸 입증하는 거로 생각해요.
그런데 그렇게 높았던 친일청산에 대한 열망을 반민특위를 습격하고 프락치 사건을 일으키는 등 정치적으로 공격하면서 완전히 좌절시킨 것이잖아요, 정말로 저는 이 장면이, 이승만 대통령의 여러 가지 과오 가운데서도 민족사적으로 보면 한두 손가락에 안에 드는 과오가 아닐까 생각해요, 피눈물 나는 장면인 것 같아요.”
  
“친일파 청산, 역사적 책무 완수 못해.. 왜곡된 역사의식 키워”
- 후손들에게 편지를 보내셨잖아요.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겠지만 실제로 답장을 받으셨을 땐 착잡하셨을 것 같아요.
“‘그렇게 오래된 일을 나에게 왜 묻느냐?’는 반응이 가장 많았어요. 그 정도는 당연히 있을 수 있는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서 ‘우리 할아버지 정말 훌륭한 분이다. 당신이 몰라서 그런 거고 우리 할아버지를 친일파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진보정권의 정치적인 의도에 따른 공격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앞서 하셨던 질문과 이어지는 건데 우리가 친일 청산을 해야 했던 시점에 못했기 때문에 이들이 왜곡된 역사의식을 가지고도 그동안 아무 문제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거죠. 아무도 그 사람에게 ‘너희 할아버지가 친일파로 민족을 배신한 사람이었어’라고 얘기를 안 해준 거예요. 제대로 된 사회였다면 그들에게 사회나 학교 혹은 정부가 공식적인 작업을 통해서라도 얘기를 해줬어야 해요. 그래서 그들도 그 사실을 깊이 알고 자기의 정체성에 대해서, 물론 본인이 죄를 지은 건 아니지만, 자신의 개인사와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했어야 해요.
그런데 그런 고민 전혀 없이 ‘우리 조상은 훌륭한 분이고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여기까지 왔고 모두 나와 내 집안이 잘나서 그런 거다’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너무 부끄러운 일이고 비극적인 일인 거죠. 우리 사회가 주어진 역사적인 책무를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해서 씁쓸했어요.”
- 방송이 나간 후 연락이 온 경우도 있나요?
“네. 저희 책 에필로그에도 나오는데 의외로 취재 과정에서는 저희 취재에 반감을 표시했던 분들이 방송 전체를 보시고는 우호적인 반응으로 바뀐 분도 계세요. 자기들도 잘 몰랐고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 청산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방송을 보니 자기들도 그런 부분을 의식하고 역사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화를 낸 분은 없었어요. 왜냐면 화나신 분들은 아예 방송을 안 봤거나 봤어도 연락을 아예 안 하지 않았을까요. 어쨌든 여러 피드백을 받았는데 피드백만 놓고 보면 저희 방송의 의도를 어느 정도는 이해해 주지 않았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친일과 망각’으로 수상도 많이 하셨잖아요.
“네 감사하게도 여러 상을 받았습니다.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상이지만 특히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주는 임종국 상을 받은 게 정말 기뻤어요. 임종국 선생은 아무도 감히 친일에 대해 얘기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 깊은 망각의 어둠을 깨뜨린 분이에요. 혼자서 촛불 하나 들고서. 어찌 보면 우리 민족 전체가 해야 했을 일을 혼자서 감당하신 분이죠.
정부가 친일·반민족 행위 진상규명을 하거나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임종국 선생의 선구적인 작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고요, 비교하기는 민망하지만 저희가 지난해 했던 작업 같은 것 역시 임종국 선생님께 전적으로 빚지고 있죠. 그런 분의 이름을 걸고 주는 상을 받게 돼서 정말 기뻤습니다. 평생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 얼마 전 문인협회가 친일파인 춘원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 문학상을 제정하기도 했다가 철회하는 일이 있었잖아요. 문인협회 이사장은 선대의 친일을 사죄한 문효치 씨잖아요, 심경이 복잡했을 것 같은데.
“문효치 이사장 같은 경우에 저희가 찾아가 인터뷰를 했을 때도 뭔가 내면세계가 복잡한 것 같더라고요, 시인이라서 그런지. 조상의 친일에 대해 그냥 심플하게 사죄하는 게 아니고 사죄가 나오기까지 이 분의 내면에서 굉장히 많은 고민과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지난해 저희 카메라 앞에서 사죄했는데 이 분이 갑자기 공인된 친일파인 춘원과 육당의 문학상을 제정한다고 해서 저희도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이걸 가지고 따로 문 이사장에게 연락을 해보거나 하진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분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어요.
다만 문인협회 입장을 보면 ‘공과 과는 따로 얘기해야 하고 문학적인 공이 있기 때문에 상을 제정하는 것은 온당하다’인 것 같은데 그런 입장은 이미 이쪽 연구를 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오래전에 논박된 입장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 10대 궤변 가운데 두 번째가 바로 ‘공과론’이에요. 저는 당연히 문인협회의 결정이 원칙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 이사장이 사죄 이후 왜 그 같은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취재 보지 않아서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친일 미청산으로 인한 전도된 역사…취재 이어갈 것”
- ‘친일과 망각’에 대한 후속 보도를 계획하는 게 있나요?
“올해는 저희가 ‘훈장과 권력’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잖아요. 거기에 제가 참여한 건 아니지만, 박중석 선배는 참여했거든요. 박 선배 말로는 작년에 친일파 후손을 추적했던 작업과 이번에 훈장을 받은 친일파를 찾아내는 작업에서 겹치는 것도 상당히 많았고 새롭게 발견한 것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취재 결과들이 모두 친일파와 그 후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로 뉴스타파 안에 쌓이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것을 바탕으로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해 전도된 역사, 뒤집힌 가치 등에 대한 취재는 앞으로도 계속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친일과 망각’이 전하는 메시지.. 뒤틀린 역사 잊지 말자는 것”
-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잊지 말자는 거죠. 과거 70년 전에 역사가 뒤틀렸고 그로 인해 우리 사회에 셀 수 없이 많은 부정적인 효과가 누적되고, 그게 누적되어 만들어진 구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고통받고 있잖아요. 물론 타임머신을 타고 70년 전으로 돌아가 그걸 바로잡을 수는 물론 없어요. 그러나 적어도 잊지는 말아야죠. 기억하고 있어야만 바로 잡을 기회가 생기니까요.”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
“저희 뉴스타파가 ‘친일과 망각’, ‘훈장과 권력’ 등의 프로젝트를 계속 해왔잖아요. 그 이유는 우선 저희가 왜곡된 근현대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른 언론보다 조금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겠죠.
그런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 주신 것은 역시 후원회원들이세요. 진실의 수호자들이신 뉴스타파의 3만 9천 후원 회원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 앞으로도 뉴스타파가 근현대사를 바로잡기 위한 작업을 계속해 나갈 텐데 거기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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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얘기에 울컥하던 당원들 집권 위해 '탄핵' 추미애도 끌어안다


16.08.27 21:41l최종 업데이트 16.08.27 21:49l



▲ "축하해요" "고마워요" 추미애의 인사법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신임 당대표로 선출된 추미애 후보가 축하인사 건넨 유은혜 후보를 와락 껴안고 있다. ⓒ 남소연
반전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8.27전당대회에서 추미애 의원이 새 당대표로 당선됐다. 당 주류의 지원을 받은 추 신임대표는 대의원, 권리당원 득표에서 모두 과반 이상을 확보했고, 일반당원과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45%의 지지를 받아 최종 54% 득표로 김상곤 후보(22%)와 이종걸 후보(24%)를 압도했다. 당심과 민심 모두의 선택을 받은 결과다. 

추 대표의 당선으로 당 주류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이날 당대표뿐 아니라 여성(양향자), 청년(김병관) 등 부분최고위원 역시 주류 측 인사가 당선됐고, 호선으로 뽑힌 5명의 권역별 최고위원 대부분 주류 측 인사로 채워졌다. 결과적으로 주류가 주도권을 확보하며 당은 안정되겠지만, 내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당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숙제를 안게 됐다.

'주류 지도부', 대의원 압도한 권리당원 힘

애초 이번 전당대회는 뚜렷한 변수가 없는 경선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지난 총선에서 야권 분열로 참패할 것이라는 예측을 깨고 더민주가 원내 1당이 되면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안정됐고, 대다수 비주류 인사들이 국민의당으로 떠난 상태였다. 예비경선에서 유력 주자였던 송영길 의원이 컷오프 되며 파장이 일었지만 '추미애 대세론'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번 경선에서 확인된 것은 권리당원의 '힘'이다. 모든 경선에서 다수의 권리당원 지지를 확보한 후보들이 당선됐고, 서울시당위원장과 여성최고위원의 경우 대의원 득표가 많았던 후보가 권리당원 득표에서 뒤처지며 종합득표에서 역전을 당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지난해 연말 대거 입당한 온라인 당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결정적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추 대표 역시 권리당원 투표에서 61.6%를 득표했다. 역시 당 주류 후보로 분류됐던 김상곤 후보는 20.2%, 비주류 결집을 노렸던 이종걸 후보는 18%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권리당원 가운데 문재인 전 대표 지지 성향이 뚜렷한 온라인 당원들이 당 주류와 보조를 맞춘 추 대표에게 확실한 지지를 보냈다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러한 온라인 당원의 선택은 추 대표의 이력을 살펴보면 쉽게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한 추 대표는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을 맡았다. 2003년 노 전 대통령 당선자 시절에는 특사로 미국과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후 열린우리당이 창당하고 민주당에 남은 추 대표는 지난 2004년 3월 노 전 대통령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탄핵안 가결 후 여론의 역풍이 불자 추 대표는 속죄 의미로 '삼보일배'를 했고, 그해 총선에서 민주당은 참패했다. 이로 인해 노 전 대통령 지지층과는 씻기 어려운 앙금이 생겼다.
▲ 5선 추미애, 더민주 당대표 당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신임 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추 대표는 2008년 18대 총선으로 국회에 복귀하기 전부터 이 부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사과나 유감을 표명했지만, 이번 전대에서 다른 후보들은 이 지점을 적극 공략했다. 당시 탄핵에 반대하는 대학교수 모임을 이끌었던 김상곤 후보는 "당대표는 순간에 오판과 독선으로 당을 망칠 수 있다, 그런 전력을 가진 분이 당대표를 제대로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고, 이종걸 후보도 "탄핵에 가담한 리더가 어찌 당대표를 맡을 수 있겠나"라고 공세를 폈다.

그러나 지난해 문재인 대표가 추 대표를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기용하면서 이러한 약점을 상쇄할 기회를 얻게 됐다. 안철수 의원 등 비주류의 탈당 러시 속에서 추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문 전 대표 옆을 지켰고, 이후에도 국민의당을 겨냥해 "분열주의자"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대립각을 보였다. 당의 핵심관계자는 "추 의원의 당권 도전 준비는 최고위원 때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추 대표는 경선 과정에서도 "노 전 대통령에게 진 빚, 당 대표가 돼 대선 승리로 갚겠다"라며 주류에 어필했고, 친노·친문 성향의 당원들도 그런 추 대표에게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었다. 추미애 캠프의 관계자는 "친노·친문이 추 대표를 선택한 게 아니라 당원들이 선택한 것"이라며 "경선 내내 친문이라는 공격을 받았지만, 경선을 통해 드러난 당심과 민심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권은 안정됐지만 대선후보 경선은?

그러나 전대에서 표출된 다수 당원의 절대적 지지는 앞으로 추미애 지도부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당대표, 부문최고위원, 권역별최고위원 경선 모두에서 주류의 지지를 받은 후보들이 당선되면서 내년 대선 경선 결과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재인 전 대표에 기운 당심이 확인된 상황에서 다른 후보들이 경선에 도전할 수 있겠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당의 한 관계자는 주류 중심의 지도부 구성을 놓고 "아무리 공정한 룰을 만들더라도 구도 자체가 너무 원사이드(일방적)하다는 것이 나타났기 때문에 유력 대선 주자들의 입지가 극도로 좁아졌다"며 "이런 측면에서 대선후보 경선의 '공정성'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문 후보에게 '경선 페널티'를 줘야 공정하다는 얘기가 나올 판"이라고 덧붙였다.

주류 내부에서도 추미애 지도부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친문 성향의 한 초선의원은 "추 대표가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경선룰을 만들 리는 만무하지만, 어떤 룰을 내놓더라도 보수언론이나 당 밖에서 불공정 시비를 걸며 흔들 수 있다"라며 "그러면 문 전 대표가 경선을 통과하더라도 본선 경쟁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축하해요" "고마워요" 추미애의 인사법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신임 당대표로 선출된 추미애 후보가 축하인사 건넨 유은혜 후보를 와락 껴안고 있다. 오른쪽은 아쉽게 탈락한 김상곤 이종걸 후보. ⓒ 남소연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당이 또 한 번 갈라지는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비주류 의원은 "이 당에 조금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발붙일 수 없다는 걸 확인한 느낌"이라며 "대선후보 경선마저 이런 식으로 간다면 정권교체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정해진 패배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 대표 역시 이러한 우려를 의식하는 모습이다. 그는 당대표 수락연설에서 김부겸, 박원순, 손학규,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등 당의 유력 대선후보들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공정한 대선경선, 반드시 중심잡고 지키겠다, 모두 함께 모셔서 공정하고 깨끗한 경선, 우리 정당사에 길이 남을 역동적인 경선을 우리 함께 만들어내자"라고 말했다.

차가운 더민주, 뜨겁게 변할까?

추 대표가 '강한 야당'을 강조하면서 정부여당을 향한 더민주의 자세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그동안 김종인 대표는 여야가 충돌하는 각종 현안에서도 '중도 노선'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추 대표가 전대 캠페인에서 "2012년 대선은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가 개입한 관권선거"라고 주장하며 '선명성'을 강조한 만큼 보다 강경한 대여투쟁 노선으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추 대표는 이날 수락연설에서도 "대통령이 국민이 가라는 길을 외면하고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호히 맞서겠다"라며 "고난과 어떠한 탄압이 있더라도 그 길을 가야 선명하고 강한 야당이 되는 것 아니냐, 그래야 수권정당 가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세월호 특별법 개정, 사드 배치,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청문회, 신임 장관 청문회 등에서 여야 대치가 날카로워질 전망이다. 

추 대표가 이러한 강경 기조로 나올 경우 기존의 중도 노선을 지켜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와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물러난 김종인 대표는 전당대회 인사말에서 "종전의 낡은 정당문화를 버리고 민의를 수용하는 새로운 정당이 될 때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고, 집권의 길이 열릴 것"이라며 새 지도부의 강경 기조에 우회적인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 핵심당직자는 "추 대표가 기존의 노선을 180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각종 현안에는 이미 우상호 원내대표가 주도권을 쥐고 결정해 온 만큼 두 사람 사이의 의견 조율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 대표 역시 강경 일변도로 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라며 "선명히 맞설 것은 맞서고 타협할 것은 타협하는 모습을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백두산역사평화기행을 다녀와서

동아시아 상생을 꿈꾸며<기행문> 백두산역사평화기행을 다녀와서
이재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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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26  1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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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원 (부산 동아중학교 3학년)

모든 것이 만주에서 시작되었고 만주에서 끝을 맺었다
  
▲ 지난 19~23일 끝없이 펼쳐진 만주벌판을 버스를 이용해 달렸다. 사진은 백두산에서 내려다본 숲의 바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우리가 여행을 떠난 곳은 중국 중에서도 동북3성(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 지역이다. 대련을 시작으로 여순, 단동, 집안, 통화, 이도백하, 백두산, 용정, 화룡, 연길, 목단강에 이르는 이번 여행은 그야말로 남만주 지역을 횡단하는 대여정이었다.
우리 민족은 이곳을 만주땅, 그리운 만주벌판이라고 불러왔다. 바로 이 땅에서 단군이 조선을 세웠고, 고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것이다. 불과 백 년 전에는 독립군들이 일본 제국주의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모든 것이 만주에서 시작되었고 만주에서 끝을 맺었다.
그리고 만주의 중요성은 오늘날 다시 부각되고 있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의 옛 역사를 찾기 위해 만주를 찾은 것은 아니었다. 흘러간 역사를 통해 지금의 우리를 확인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본격적인 얘기에 앞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해봐야 한다. 이것은 한민족만의 문제가 아니요,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 모든 국가들이 가져야 할 고민인 것이다. 현재 동아시아는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다. 그 분쟁은 단순한 영토분쟁이 아니라 역사분쟁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선 서로의 이해관계도 중요하지만 역사에 대한 반성과 이해가 더더욱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는 전혀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 일본은 걸핏하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교과서를 왜곡한다. 중국은 동북공정, 서남공정, 서북공정 등 소수민족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역사의식은 매우 형편없는 수준이다.
자기네 역사를 기피하는 민족은 영원히 그 생명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고로, 동아시아 3국(한ㆍ중ㆍ일)이 진정한 이웃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이러한 역사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첫날, 두 가지 분노를 느끼다
  
▲ 19일 대련에 도착한 기행단은 여순감옥을 첫 행선지로 택했다. 4박 5일동안 우리 일행을 안내해 준 이경옥 선생이 안중근 의사가 갇혀있던 독방을 가리키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우리가 처음 향한 곳은 여순감옥이었다. 여순감옥에서 안중근 의사, 이회영 선생, 신채호 선생이 돌아가셨다. 그리고 수많은 항일투사들이 돌아가셨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관동법원에서 재판을 받으면서도 항상 떳떳했다. “나는 한 개인의 자격으로 이등박문을 쏜 것이 아니라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적국의 수상을 암살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테러범이 아닌 만국공법상의 전쟁포로로 대해져야 한다.” 안중근은 죽는 그 순간까지 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다. 안중근은 개인의 자격이 아닌 대한 독립군의 자격으로 전쟁을 한 것이다. 안중근의 재판을 지켜보던 기자는 이렇게 평가했다. “안중근의 논리 정연한 언변에 이등박문이 한낱 파렴치한 늙은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 여순감옥은 안중근 의사의 감옥생활과 순국 장면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안중근이 감옥에서 집필하다가 빠른 사형집행으로 마저 쓰지 못한 <동양평화론>이란 책이 있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에서 동아시아의 평화, 한-중-일이 진정한 이웃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다. 나는 이 서슬퍼런 여순감옥의 창살을 어루만지며 이제는 우리가, 그의 뜻을 이어가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순감옥에서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우리는 일본관동법원으로 향했다. 바로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은 역사적인 현장인 것이다.
일본은 만주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집요한 노력을 해왔다. 가장 먼저 한 것이 역사연구. 일본은 전문가들을 보내 이 지역의 역사를 철저히 연구했다. 그들이 주목했던 것은 발해사. 발해가 가장 일본과 활발한 교류를 했기 때문이었다. 고구려 유적은 물론이요, 수많은 유적을 답사했다.
우리는 기억한다. 일본이 조선을 병탄할 때, 조선과 일본은 하나이기 때문에 합쳐져야 한다는 내선일체론을 말이다. 일본은 만주를 점령할 때에도 똑같은 방법을 썼다. 그것이 바로 만선사관(滿鮮史觀)이다. 만주와 조선은 하나의 역사공동체라는 것이다. 물론 만주와 조선은 떼놓을 수 없는 관계이지만 그것이 침략의 용도로 쓰였다는 점에서 일본의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1931년 9월 18일 일본은 철저한 역사연구를 마친 뒤 만주를 침략한다. 만선사관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이것이 바로 ‘만주사변’ 혹은 ‘9.18사변’이다. 아직도 만주는 이 비극을 기억하기 위해 9월 18일 9시 18분이 되면 사이렌을 울린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초콜릿을 사먹으면서 연인들에게 고백하는 그 밸런타인데이가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밸런타인데이는 기억하지만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이것이 역사에 대한 망각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대중의 자각이 절실히 필요하다.
첫날부터 나는 두 가지 분노를 느꼈다. 첫째는 일제의 만행에 대한 뼈저린 분노였으며 둘째는 한국의 무지와 망각에 대한 분노였다. 나는 이 두 가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는 한 동아시아의 평화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주의 해는 빨리 졌다. 나는 분노를 삭이며 잠에 들었다.
“태왕 할아버지, 평안하십니까?”
  
▲ 광개토호태왕비. 4면이 유리로 둘러쌓여 있고, 내부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고구려 환도산성에서 기행단이 포즈를 취했다. [사진제공 - 박종만]
우리가 둘째날 향한 곳은 고구려 유적지였다. 환도산성, 광개토태왕비, 태왕릉, 장군총을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환도산성은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의 방어성이다. 평소에는 국내성에 머무르다가 국가적 위기가 생기면 환도산성으로 가서 항전하는 것이다. 환도산성(丸都山城)은 ‘알맹이도시’라는 뜻이다. 풀어 해석하면 중심도시, 그야말로 환도산성은 고구려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딘 채 환도산성은 견고히 남아 있었다. 구불구불한 산등성이를 따라 환도산성의 성벽이 줄을 이었다. 나는 산성의 성돌 하나하나를 소중히 살폈다. 고국원왕의 원한이 내 몸 속으로 밀려드는 듯했다.
솔직히 나는 환도산성 아래 산성하 고분군을 기대했으나 공사가 한창이어서 들어가보지 못했다. 환도산성을 포함한 집안 지역의 고구려 유적지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광개토태왕비는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태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령스러운 비석이다. 414년에 세워졌으니까 1600년 동안 부서지지 않고 그 자리에 우뚝 서있는 것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우리의 민족성과 어찌 이리 닮았을꼬.
  
▲ 장군총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아직도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사진제공 - 박종만]
  
▲ 태왕릉은 많이 훼손됐지만 위엄은 여전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태왕비에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태왕의 무덤인 태왕릉이 있다. 시간이 흘러감에 많이 훼손되었지만 그래도 태왕릉의 위엄은 여전했다. 한 변이 66m에 달하니 과연 광개토태왕의 무덤다웠다. 나는 태왕릉의 돌방 앞에서 말했다. “태왕 할아버지, 평안하십니까?” 그리고 조용히 돌아섰다.
장군총의 주인에 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장수왕의 무덤이라는 설, 시조묘라는 설, 고국원왕의 무덤이라는 설 등 다양한 설이 혼재하고 있는 것이다. 장군총의 무덤이 정확히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고구려의 신령스러운 곳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고구려 무덤 중 가장 잘 보존이 되어있는 장군총. 그만큼 공들여 쌓았다는 뜻일 수도 있고 그나마 외침을 덜 받은 것일까?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장군총이 기리기리 보존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민족통일의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 나는 부디 천지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산신령께 빌었다. 전날까지 내리던 비가 그쳐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높였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셋째날이 밝았다. 우리는 드디어 여행의 궁극적 목표, 백두산으로 향하게 되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으로 향하는 것이다.
환웅이 내려왔다는 태백산이 바로 백두산일까? 단군과 백두산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 백두산에 호랑이가 살까? 나는 상상력을 발휘해가며 백두산의 모습을 상상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백두산의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부디 천지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산신령께 빌었다.
굽이굽이 길을 봉고차로 올라가는데 그 밑으로 펼쳐지는 절경은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정상에 다다랐을 때 짙은 안개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내심 천지를 못 볼까봐 마음을 졸였다. 그러나 우리가 올라가니 안개가 걷히는 것이 아닌가!
  
▲ 천지를 보는 순간 나는 3일 간의 여정으로 인한 피로가 모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사진 - 이재원]
  
▲ 장엄한 백두산을 배경으로 장백폭포가 흰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다. [사진 - 이재원]
천지를 보는 순간 나는 3일 간의 여정으로 인한 피로가 모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또 다른 세계였다. 천지는 어머니같은 존재였고, 우주였고, 만물의 근원이었다.
천지 물이 유일하게 흘러들어가는 곳이 장백폭포다. 그 장백폭포가 흘러 흘러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 강들이 또 서해바다, 동해바다, 오호츠크 해로 흘러갈 것이다.
우리네 마음도 저 천지로부터 흘러내려오는 강물처럼 변치 않고 흘러가면 좋을 텐데……. 백두산은 말하고 있었다. 민족통일의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저 선 만 넘으면 바로 북한 땅인데
  
▲ 용정 명동촌의 윤동주 생가는 잘 복원돼 관람객들을 맞고 있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어머님,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두만강을 건너면 윤동주가 그리워했던 북간도가 나온다. 다른 이들에게 두만강은 그저 보통의 강일 수 있겠지만 우리 민족에겐 슬픔과 애환이 섞인 역사적인 강이다. 우리는 그 ‘눈물 젖은 두만강’으로 향하고 있었다.
두만강 다리는 주황색 부분과 파란색 부분이 있는데, 주황색 부분은 중국 땅이고 파란 색 부분은 북한 땅이라고 한다. 국경이라는 것이 이렇게 우습던 것이었나? 고작 선 몇 개 긋고 국경선이라고 적어 놓은 걸 국경이라고 하다니……. 저 선 만 넘으면 바로 북한 땅인데. 나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도문대교가 가로놓여 있다. 왼쪽 주황색 부분은 중국 도문시에 속하고 먼쪽 파란색 부분은 북한 남양시에 속한다. 오른쪽 두 번째가 필자.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참 맑았다. 안중근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말한다. “안중근 의사는 아직 춤추며 노래 부르지 않으셨다. 민족통일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대한독립을 이루는 길이다.”
4박 5일 백두산 평화기행은 나에겐 매우 큰 경험이 되었다. 그것은 인식의 변화, 사물을 바라보는 눈의 변화였다.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고구려의 기상과 자부심, 독립전쟁사의 위대함과 참혹함, 민족통일에 대한 염원, 민족의 의미 등 다양한 것들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알찬 여행이었다.
여행은 여행을 떠나기 전의 준비과정과 여행, 그리고 여행이 끝난 후 정리하는 모든 과정을 통틀어서 말하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도 여행의 한부분이다.
내일의 하늘은 오늘의 하늘보다는 더욱 화창하기를
  
▲ 용정 시내에 자리한 간도일본총영사관 옛터. 지금은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간도일본총영사관 옛터의 지하고문실. 당시의 상태를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동아시아의 평화는 우리가 반드시 이뤄야 할 숙제이다. 갈등과 분열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모색할 때인 것이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한-중-일의 역사의식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한-중-일은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패권주의를 버리고 대국이면 대국처럼 행동해야 한다. 더 이상 동북공정 같은 유치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은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진정어린 속죄를 해야 한다. 이것은 역사적인 문제 이전에 인간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역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철저한 역사교육을 통해 역사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 이것은 국수주의가 아니다. 우리의 생존과 동아시아 평화가 달린 문제이다.(한국은 동아시아평화의 중요한 열쇠를 가지고 있다. 남북통일이 동아시아 평회에 지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부디 동아시아에 하루빨리 평화가 오기를 바란다. 내일의 하늘은 오늘의 하늘보다는 더욱 화창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동아시아의 상생을 꿈꾸며 2016. 8. 25
* 여행을 함께한 분들, 그리고 저를 믿어준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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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26일 금요일

죽음의 모성, 심해 오징어 메뉴의 42%는 동족

죽음의 모성, 심해 오징어 메뉴의 42%는 동족

조홍섭 2016. 08. 26
조회수 1620 추천수 0
짧은 평생 단 한번 알주머니 낳고 9개월 지키다 죽는 북태평양 심해 오징어
번식 쓸 에너지 비축 위해 자기보다 큰 심해어, 동족 가리지 않고 포식

mbari_s.jpg» 심해 오징어의 일종인 고나투스 베리이(오른쪽)가 자기 몸집보다 큰 동종을 잡아먹는 모습. 무인 잠수정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NOAA/ MBARI

북태평양의 찬 바다에 사는 갈고리흰오징어과 심해 오징어는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바다 표면부터 4500m 심해까지 서식하는 이 오징어는 워낙 수가 많은 데다 플랑크톤에서 물고기를 거쳐 상어, 새, 물개로 이어지는 생태계 먹이그물의 중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 심해 오징어의 생태에 대해서는 중요성만큼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가장 기초적인 정보인 심해 오징어가 뭘 먹고 사는지가 그런 예다. 이제까지는 주로 그물이나 낚시에 걸린 심해 오징어의 위장을 해부해 정보를 얻었다.

그런데 그렇게 얻은 정보가 과연 자연상태를 반영하는지에는 의문이 있었다. 이 오징어는 그물에 갇힌 상태에서도 포식성을 늦추지 않는다. 또 낚시에 걸린 심해 오징어가 곁을 지나가는 다른 오징어나 다른 낚시에 걸린 오징어를 포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Wusel007_800px-ROV_Ventana_on_Point_Lobos.jpg» 미국 몬테레이만 수족관연구소의 무인 잠수정 벤타나호. 심해 오징어 생태 연구에도 이 잠수정이 촬영한 영상이 쓰였다. Wusel007, 위키미디어 코먼스

결국 깊은 바다 밑에서 자연상태의 심해 오징어 행동을 직접 관찰하는 것이 최선인데, 마침 원격 조정 무인잠수정을 활용한 조사 결과가 나왔다. 헹크-얀 호빙 독일 지오마르 헬름홀츠 해양연구센터 연구원과 브루스 로비슨 미국 캘리포니아 몬터레이만 수족관연구소 연구원은 과학저널 <심해연구 파트1>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그 결과를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무인잠수정이 1995~2015년 동안 수심 160~2056m에서 촬영한 영상 가운데 심해 오징어가 먹이를 먹는 모습을 찾아 분석했다. 연구자들은 심해 오징어 가운데 이 지역에 많은 고나투스속의 오닉스와 베리이 등 2종을 조사했다.

연구자들은 심해 오징어의 포식 행동을 109번 찾아냈다. 오닉스 종은 먹이를 잡아먹는 모습이 36번 촬영됐는데, 놀랍게도 15번은 그 대상이 동족인 오닉스 종 심해 오징어였다. 9번은 심해어인 샛비늘치과 물고기였다.

mbari2_s.jpg» 심해오징어 고나투스 오닉스(오른쪽)가 동족을 잡아먹고 있다. NOAA/ MBARI

다른 심해 오징어 종인 베리이는 17번의 포식 행동에서 다른 베리이를 잡아먹은 것이 2번이고 오닉스 종이 3번, 나머지 10번은 물고기였다. 어떤 심해 오징어 종인지 구분이 안 되는 56번의 포식 행동에서 먹이가 오징어인 경우는 약 4분의 1이었다.

고나투스속 심해 오징어는 포식성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기회가 오면 상대가 동종이든 아니던 무엇이든 잡아먹는 만능 포식자이다.

sq.jpg» 심해 오징어인 고나투스 베리이가 지방이 풍부한 심해어를 잡아먹고 있다. NOAA/ MBARI

이번 연구에서 오닉스 종은 특히 동종 포식 비율이 높아 전체 포식 행동의 42%가 동종을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연구에서 이 오징어는 갑각류를 주로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자들은 “기존 연구에서 오닉스의 위장에서 주로 갑각류를 확인한 까닭은 그물에 걸린 오닉스 종이 소형 개체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이 심해 오징어는 어릴 때 갑각류를 주로 먹지만 자라면서 팔에 고리와 흡반이 생기면서 포식성이 강해진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특히, 다 자란 심해 오징어는 점점 더 크고 영양가 많은 먹이를 사냥하는데, 때로는 자기보다 몸집이 큰 상대도 잡아먹는다. 입보다 큰 먹이를 먹지 못하는 물고기와 입의 구조가 다른 데다 팔로 먹이를 붙잡을 수 있는 것도 이를 가능하게 했다.

■ 심해 오징어가 자기 몸보다 큰 심해어를 사냥하는 모습 동영상


그렇다면 왜 심해 오징어는 동료와 자기보다 큰 상대까지 공격하는 탐식성을 보이게 됐을까. 연구자들은 이 오징어의 번식 방식이 원인일 것으로 추정했다.

심해 오징어는 수명이 짧은 데다 평생 단 한 번 알을 낳고 그 알이 부화할 때까지 지키다 죽는다. 번식에 삶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구조이다.

어미 오징어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낳은 알주머니를 9개월 동안 지킨 뒤 부화 뒤 죽는다. 그동안 필요한 에너지는 소화관에 축적한 지방으로 충당한다.

NOAA_MBARI_ Gonatus_onyx.jpg» 무인잠수정으로 1300m 심해에서 촬영한 고나투스 오닉스의 모습. 어릴 때는 바다 표면에 살다 성체가 되면 깊은 바다로 이동한다. NOAA/ MBARI

두족류 가운데도 가장 대사율이 높은 축에 드는 이 심해 오징어는 이런 지방을 확보하기 위해 동족을 가리지 않는 탐식성을 보인 것이다. 이 오징어가 주로 잡아먹는 심해어도 피부 조직에 지방 함량이 높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자 자연상태에서 심해 오징어의 포식 행동을 처음으로 관찰했다는 의미가 있지만 잠수정의 빛과 소음이 교란을 일으켰고, 먹이를 사냥한 개체가 둔해져 잠수정을 잘 피하지 못하는 등 완전한 자연상태는 아니었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H.J.T. Hovinga, B.H. Robisonb, Deep-sea in situ observations of gonatid squid and their prey reveal high occurrence of cannibalism, Deep Sea Research Part I: Oceanographic Research Papers, Volume 116, October 2016, Pages 94–98, http://dx.doi.org/10.1016/j.dsr.2016.08.00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2016년 8월 24일 수요일

한미 전문가들 “북한, 사드 무력화 입증”

[분석] ‘사드’ 무용지물 증명한 북한의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발사
김원식 | 2016-08-25 08:58:00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분석] ‘사드’ 무용지물 증명한 북한의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발사한미 전문가, “북한 SLBM 발사로 사드 무용성과 억제 능력 과시”
ⓒ민중의소리
북한이 24일 오전 동해상으로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발사 시험이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면서 한국에 배치 예정인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무용론이 더욱 확산하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SLBM을 장착한 북한의 잠수함이 사드 레이더의 탐지 거리를 벗어난 공해상에서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사드 포대가 이를 사전에 탐지 및 요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 전략사령부는 24일, “북한이 발사한 SLBM이 동해상으로 대략 300마일 이상을 날아가 일본 공해상(방공식별구역) 근처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한국 합동참모본부도 “북한이 발사한 SLBM이 약 500km를 비행했다”며 “지난 수차례 시험발사에 비해 기술적으로 진전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SLBM은 초기 개발단계에서 300여㎞를 비행하면 성공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합참은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SLBM은 사실상 성공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북한은 예상보다 빠른, 이르면 내년 초에 SLBM을 실전 배치할 수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SLBM은 사실상 사전에 탐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드의 배치 필요성이 커졌다고 주장하지만, 수중에서 은밀하게 기동하는 잠수함이 사드 레이더의 탐지 범위인 120도를 넘어선 공해상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면 사드는 탐지와 요격이 불가능한 무용지물이 된다. 북한이 한국의 사드 배치 무력화를 노리고 이번에 SLBM 시험 발사를 강행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다.
북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모습ⓒ뉴시스
한미 전문가들 “북한, 사드 무력화 입증”
북한, SLBM 이르면 내년초 배치 가능성
이에 관해 북한 핵과 미사일 등 비확산 분야 전문가인 제프리 루이스는 “북한의 이번 SLBM 발사는 사드 레이더의 범위인 120도를 넘어서는 뛰어난 대응 능력(countermeasure)을 보여 준 것”이라며 “북한은 잠수함이 사드 레이더를 벗어나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해 사드(배치)의 무력화를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루이스는 “(그동안) 북한은 살보 발사(salvo launches, 여러 개 미사일을 동시에 발사). 사드 요격 미사일보다 속도가 빠르게 장거리 미사일의 고각 발사, 그리고 잠수함 미사일 발사 등 대응 능력을 증명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이러한 의도는 자부심(pride) 표출을 비롯해 여러 의도가 있겠지만, 간단한(simple) 전략만으로도 (미국의) 미사일방어(MD)를 분쇄(defeat)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의 SLBM 발사 시험에 관해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북한의 이번 SLBM 발사 시험은 사드 무력화 시도를 넘어, 본질적으로 2차 공격 능력을 갖추고 한국보다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있는 미군 기지나 미 본토에 대한 억제 능력을 갖추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대표는 “이러한 상황에서 사드나 SM-3가 더 필요하다는 주장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드 유용성 문제에 관해서도 “간단히 말해서 사드 레이더 탐지 범위 밖에서 발사되는 SLBM은 물론, 사드의 요격 고도 범위(40~150km)를 벗어나는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도 (사드가) 못 잡는 것 아니냐”며 사드 도입 필요성을 일축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이번 SLBM 시험 발사 성공으로 “전후방을 다 탐지할 수 있는 360도의 탐지와 요격 능력을 구비했다고 하더라도 SLBM이 자세 각도를 낮춰서 낮은 고도로 발사할 경우, 요격은 힘들다”는 의견도 개진하고 있다. 또 일부는 “북한이 SLBM 발사에 성공함에 따라 우리 군은 앞으로 지상 킬체인 뿐 아니라, ‘수중 킬체인’까지 구축해야 한다”며 “SLBM을 탑재한 북한 잠수함을 들키지 않고 장시간 추적하려면 물속에서 1~2개월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잠항 능력이 뛰어난 핵추진 잠수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그만큼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사드 배치가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해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민중의소리’ 24일 자에 게재된 필자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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