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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9일 금요일

삼겹살 앞에서 당신도 딜레마를 느낄까


조홍섭 2015. 05. 29
조회수 1742 추천수 0
공장식 축산 "이래도 괜찮냐"고 묻는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정부가 들인 '고기 맛'…돼지고기 소비 45년만에 8배 늘어

dilemma_still10.jpg» 스스로 만든 짚더미 속에서 새끼를 낳아 젖을 물린 어미 돼지. 이제는 보기 힘들어진 소규모 돼지농장에서의 모습이다. 사진=시네마달

일찍 찾아온 더위와 나들이 철을 맞아 삼겹살이 ‘금겹살’로 불릴 만큼 몸값을 높이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이 28일 집계한 삼겹살 소비자가격은 ㎏당 2만3349원이었다.

그러나 값이 오른다고 소비가 크게 줄 것 같지는 않다. 2011년 320만 마리가 넘는 돼지를 살처분한 구제역 파동으로 삼겹살 값이 폭등해 한때 ㎏당 2만5000원을 웃돌았다.

■ 연도별 돼지고기 소비량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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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축산물품질평가원

그해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19㎏으로 전년보다 300g 줄었을 뿐이다. 2013년 돼지 소비량은 다시 1인당 20.9㎏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1970년 2.6㎏보다 8배 많은 양이다.
 
돼지고기는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고기이다. 쇠고기나 닭고기의 곱절을 소비한다. 흥미롭게도 45년 전에도 이런 비율은 비슷했다. 취향은 변치 않았는데 먹는 고기의 양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터무니없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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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가 공장제 축산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뤄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영화는 값싼 돼지고기를 양껏 먹을 수 있게 된 우리 세대에게 ‘이래도 괜찮겠냐’고 묻는다.

제목이 말해주듯, 끔찍한 가축 ‘공장’의 내부를 폭로하고 채식주의를 옹호하는 일방적 영화가 아니다. 공장식 축산과 자연 농장, 육식과 채식을 각각 악과 선으로 구분해 놓고 결정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고기가 주식”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젊은 세대와 “사람은 원래 잡식동물”이라는 지식인, “먹고 살기도 힘든데 상관 말라”는 대다수 시민들에게, 쉽게 답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함께 생각해 보자고 이끈다.
 
dilemma_still20.jpg» 공장식 축산에서 돼지는 생명체라기보다 공산품처럼 생산된다. 사진=시네마달

황 감독은 구제역을 계기로 공장식 양돈 실태를 둘러보고 충격을 받는다. 유기농을 하는 소규모 농장에서 돼지를 알게 된 뒤 채식을 결심한다.

그 이후는 가시밭길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즐기던 기쁨이 사라지고 소외감을 느끼는 일이 잦아졌다. 남편은 곧잘하던 요리를 중단했다.

젤리에 돼지 껍질 성분이 들어있다며 집어든 과자를 빼앗다 아들을 울리고는 ‘지금까지 본 걸 다 잊고 과거로 돌아갈까’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촬영을 하면서 알게 된 행복한 돼지의 모습은 돼지라면 저금통과 돈까스밖에 모드던 아들을 바꿔놨다.

국립축산과학원.jpg» 새끼 돼지의 송곳니를 니퍼로 자르는 모습(왼쪽). 씨수퇘지를 '의빈대'에 앉혀 정액을 채취하는 모습. 사진=국립축산과학원 

‘공장’에서는 몸을 돌릴 수도 없는 감금틀에 누워 쉬지않고 새끼를 낳아야 하는 번식용 암퇘지가, 정기적으로 암컷 대용 나무틀에 올라타도록 훈련받은 씨수퇘지에서 사람이 짜낸 정액을 받아 임신한다.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꼬리와 송곳니를 잘린 뒤 옥수수가 주성분이 배합사료를 먹고 하루에 최고 900g씩 살을 찌운 뒤 첫 돌을 넘기지 못하고 도축된다.

dilemma_still01.JPG» 유기농 양돈 농가에서 황윤 감독이 아들 도영과 돼지에게 풀을 먹이고 있다. 사진=시네마달
 
농장에서는 달랐다. 수컷과 사랑을 나눈 암컷은 짚더미로 둥지를 만들고 낳은 새끼에 오래 젖을 먹여 기른다. 사료와 함께 농업 부산물인 당근과 야생의 풀을 실컷 먹는다. 돼지에게 풀을 먹이는 재미에 푹 빠진 아들 도영은 자연스럽게 고기 음식에서 멀어진다.
 
물론 대안 농장에도 고통은 있었다. 어미 돼지의 반발과 짚북더미에 숨는 새끼를 잡아 마취 없이 거세하고, 번식 돼지에서 새끼를 떼어내 다음 번식을 재촉하며, 다 자라기 무섭게 도축장에 보낸다.

그렇지만 공장식 축산에 비할 바는 아니다. 황 감독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둡고 심한 폭력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공산품처럼 길러 도축하는 가축의 수는 2013년에만 돼지 1600만 마리, 소 100만 마리, 닭 8억 마리에 이른다.

무엇보다 동물학대라는 비난을 받는 것은 어미 돼지를 새끼 낳는 장치로 만드는 감금틀(스톨)과 마리당 면적이 A4 용지도 안 되는 산란닭 철창우리(배터리 케이지)다. 그런 이유로 유럽연합과 캐나다에서는 이미 사용이 금지돼 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는 녹색당과 함께 이 시설을 추방하자는 백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dilemma_still16.jpg» 공장제 축산은 환경문제, 새로운 질병 유발 등 각종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육식 문화의 토대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불편하더라도 현실을 아는 것이 먼저라고 황윤 감독은 강조한다. 사진=시네마달
 
27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시사회가 끝나고 황 감독은 “이 영화가 고기는 절대로 먹지 말자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정부가 농업개방에 대비해 1990년대부터 공장제 축산을 적극 추진한 결과가 요즘 밥상 모습이다.

“원래 고기를 많이 먹던 나라가 아니었는데, 국가가 육식 중심의 입맛을 들였다. 그러니 고기를 먹더라도 어떤 과정으로 고기가 만들어지는지 알고 선택할 권리를 주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또 서울시장과 국회의원들 앞에서도 상영했으니 이 영화를 공장축산 주무부서인 농림축산식품부 공무원에게 보여주고 함께 토론해 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밝혔다.

돈까스를 좋아하다 진짜 돼지를 좋아하게 된 도영이는 곧 학교에 갈 것이다. 겨우 채식에 맛을 들였는데 고기 위주의 급식에는 선택권이 없다. 황 감독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한반도’를 잊어버린 야당


외교 통일 리더십 실종은 여야 불문
유창선  |  yuc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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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29  14: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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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박근혜 정부가 외교 통일 안보 분야에서 무능하다는 지적은 더 이상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남북한이 서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며 다시 대결의 분위기로 치닫고 있지만 이를 타개할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 측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여러 차례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기회들이 있었지만 이를 살리지 못한 채 남북관계는 다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거기에는 물론 북측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조차 풀고 넘어설 수 있는 통 큰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우리 정부의 책임 또한 면제될 수는 없다.
국정원이 나서서 북한에서의 처형극을 자극적으로 폭로하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그들의 공포정치를 비난하는 광경은 그 이후의 남북관계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 남북관계에 대해 어떤 일관된 비전이나 정책보다는 그때그때의 즉흥적인 대응 논리가 앞선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한반도 주변의 상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미.일의 새로운 밀월관계가 급속히 형성되고 있고, 일본 자위대는 그 군사적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미국은 한미일 3각 동맹을 통해 중국에 대한 견제를 시도하고 있고, 특히 한국을 중국 견제의 전초기지로 삼으려 하고 있다.
미국이 주권국가로서 우리의 체면조차도 고려하지 않고 거의 막무가내 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사드 배치 움직임이 단적인 사례이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동북아 역학관계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고립되는 처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중대한 시기에 박근혜 정부가 매달리고 있는 것은 한미동맹이라는 낡은 동아줄 밖에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래도 외교 안보는 잘한다던 집권 초기의 여론조사 결과들은 신기루를 쫓은 허상이었음이 판명되고 있다. 다른 내치에서 실패하고 있는 박 대통령은 외치에서도 실패하고 있다. 아니, 외치에 관한한 아무런 대책도 비전도 없는 속수무책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나라는 지금 외교 통일 안보 리더십의 부재 상황에 처해있다.
박근혜 정부만 못한다고 탓할 일이 아니다.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주변정세에 대응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면 야당은 그것을 견제하거나 아니면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야당에는 그런 전통이 있었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을 이끌었던 시절, 누구보다 그 자신이 한반도 문제에 관한 전문가이기도 했지만, 외교 통일 안보에 관한 전문적 능력을 갖춘 인재들이 당내에 여럿 있곤 했다. 실제로 이들은 대북정책이나 동북아정책 등에 관해 정부보다 더 우수하고 현실성 있는 대안들을 많이 제시하곤 했고 상당한 정책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런데 지금 야당을 보면 그런 정치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비례대표들을 영입해도 ‘투사’들은 많이 들여왔지만,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한반도 문제를 책임지고 다룰만한 인물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남북관계가 파국 직전으로 치달아도, 일본 자위대의 해외 진출이 눈앞의 일이 되어도 야당 안에는 그 흔한 위원회 하나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단기적인 정치대결에만 갇혀버린 나머지 정작 중요한 민족 생존의 문제를 잊어버린 야당의 모습이다.
정부나 여당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그렇다고 야당 또한 길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족의 생존을 지킬 리더십은 공백상태에 처해있다. 박근혜 정부야 태생적 한계의 결과라 하더라도, 야당까지 무능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민족의 살 길은 누가 책임지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새정치민주연합에게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연세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 SBS, EBS, B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역임
전) 좋은정책포럼 운영위원
전) 경찰청 경찰혁신위원회 위원
전) 경희사이버대 NGO학과 객원교수
전) <한국일보> <국제신문> <부산일보> <시사저널> 고정 칼럼 연재
현) <주간경향> <폴리뉴스> 고정칼럼 연재
수상) 2010 대한민국 블로그어워드 대상 수상
        2012 아프리카TV 대상 시사부문 최우수상 수상
저서) <정치의 재발견> 지식프레임. 2012

박 대통령이 북한인권 전도사가 된 사연

곽동기  | 등록:2015-05-30 09:40:34 | 최종:2015-05-30 10:10:30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최근 한미당국은 틈만 나면 북한인권을 문제시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지난 4월 30일, 푸틴 대통령의 대변인은 “외교 채널을 통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러시아 전승절 기념행사에 올 수 없게 됐다는 결정을 전달받았다”며 5월 8일로 예정되었던 김정은 제1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이 무산되었음을 알렸습니다. 그는 “북한 내부 문제 때문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김정은 제1위원장의 불참 소식을 공개했습니다.
이러자 미국과 한국에서는 그 원인으로 북한내부의 위기를 지목하고, 나아가 북한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외교에 인권을 끼워넣은 셈입니다.
미국 <CNN>은 5월 11일 서울발 기사에서 탈북자 인터뷰를 통해 김정은 제1위원장이 고모인 김경희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을 독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은 5월 13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현안보고에서 최근 제기된 ‘김경희 독살설’에 대해 “매우 근거가 약한 일방적인 얘기이고, 현재 이상 징후는 발견된 게 없다”며 “김경희는 현재 병원 치료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문제제기 후 이틀 만에 반론에 부닥친 것입니다.
그렇다고 논란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국정원이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숙청설을 입수하였다며 언론에 퍼뜨렸습니다. <노컷뉴스>는 숙청설 공개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행동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의 민간 연구기관인 신미국안보센터의 밴 잭슨 연구원은 5월 5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도 북한 내부 상황이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밴 잭슨은 북한이 권력기반에 자신있다면 많은 고위 관리들을 처형할 필요가 없다며 여러 숙청설을 단정적으로 두둔하였습니다.
이제는 마약소식까지 들려옵니다. <연합뉴스>는 5월 29일, 북한인민해방전선이 "북한에서 최근에는 중학교 학생들까지 마약을 소지하는가 하면, 결혼식 부조금, 대학 입학, 승진 뇌물로도 마약을 선물할 정도로 마약이 성행하고 있다"는 탈북자 A씨의 증언을 전했습니다. 탈북자의 직접 증언이 아니라 탈북자가 다른 탈북자의 증언을 전달한 황당한 보도인데요, 중학생까지 마약을 소지하고 결혼식 부조금, 승진뇌물로 마약을 선물한다는 이들의 증언은 허위일 가능성에 매우 높습니다. <TV조선>은 아예 북한 주민의 70%가 마약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국정원은 지금까지 3만명에 달하는 탈북자들로부터 <하나원>을 통해 북한의 생활상과 정보를 캐내었겠지만, 지금까지 증언되지 않은 내용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특히나 북한주민이 가난하다고 할때는 언제고 이제는 주민의 70%가 마약을 한다고 하니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정보입니다.
결국 최근의 이러한 보도들은 미국과 박근혜 정부가 북한인권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유력한 증거입니다. 현 시기 당국이 북한인권문제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배후는 미국
북한 인권문제에 집중하는 진원지는 바로 미국입니다.
2012년 3월 28일, 한국을 찾은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북한의 인권문제 해결’이라고 밝혔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앞으로도 북한의 정보자유화와 시민사회 기초마련을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습니다.
2014년 4월 25일,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한미의 공동입장을 발표하였습니다. 한국과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에 대해 관심을 집중시키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북한 주민에 대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인권 침해에 대해 북한 당국의 책임을 묻는 데 전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내의 숱한 인권문제를 외면하고 바다 건너편의 북한 인권에 매달리는 목적은 북한정권 붕괴입니다. 2015년 1월 24일,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유튜브와 인터뷰를 갖고 “북한과 같은 독재체제의 국가를 똑같이 만들어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며 북한체제에 대한 반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전쟁보다 인터넷을 앞세우면 북한정권이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부터 대북전단살포에도 미국인들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1월 19일, 미국인권재단 (HRF : Human Rights Foundation)의 토르 하버슨 대표 등 미국인들과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는 통일부의 자제권고마저 간단하게 무시하고 파주와 연천 등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하였습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2015년 4월 21일, 미국인권재단(HRF)과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대북전단 15만장과 북한 지도자를 조롱한 영화 ‘더 인터뷰’ USB 2500개와 DVD 2500개를 날렸다고 합니다. 4월 9일에 전단 30만장을 뿌리려다 당국의 제지로 실패한 박상학 대표는 이번에는 전단을 기습적으로 뿌렸기에 당국은 모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미국은 북한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에 성공한 상황에서도 인권문제에 집중하는 황당한 모습을 연출하였습니다.
2015년 5월 18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회담을 갖고 북한이 가장 큰 안보 우려 사항이라고 밝혔습니다. 케리 장관은 북한 내의 숙청설을 연계하며 "북한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가장 없는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유엔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잠수함 탄도미사일에 인권으로 대응한 모습입니다.
북한의 SLBM 발사에 대해 미국이 지금까지와 달리 군사적 대응 대신 북한인권문제에 매달리는 속내를 어찌 보아야 하나요? 미국으로서는 이제 북한의 군사적 행동을 제지할 수단이 없는 것입니다. 군사적으로 북한의 핵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보니 북한인권문제라도 자꾸 건드려서 북한을 고립시키자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데 미국이 북한인권을 거론하는 만큼 다른나라들이 북한과의 적극적 외교가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국의 북한인권공세는 북한주민 구출보다 북한정권고립을 조금이라도 더 지속시키자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2. 박근혜 정권의 의도
박근혜 정권은 오바마 행정부의 북한인권 제기에 전폭적으로 화답하며 대북인권공세의 돌격대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신년사에서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단절과 갈등의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신뢰와 변화로 북한을 이끌어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기반을 구축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갈 것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신뢰와 변화로 북한을 이끌어내는 기본 방식으로 인권문제를 통한 북한 고립압박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북한인권을 공격하는 내용들은 근거가 명확한 사실이 아니라 대부분 “풍문으로 들었소” 수준의 모호한 이야기입니다. 
일례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숙청당했는지, 실각 당했는지, 아니면 제3의 장소에서 요양 중인 것인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북한이 정말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고사총으로 공개처형하였다면, 지난 장성택 부위원장의 경우처럼 숙청을 언론에 대서특필하며 대대적으로 경고하는 것이 맞습니다. 북한주민들에게 왜 그를 죽이게 되었는지 소상히 밝혀 숙청에 대한 정당성을 설득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경우는 북한당국의 아무런 입장발표가 없습니다. 더구나 북한언론에서는 5월에도 현영철 부장의 모습이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숙청설을 퍼뜨리고, 이를 계기로 인권을 거론하는 행태는 필연코 북한의 반발을 불러오게 됩니다. 상대를 자꾸 의심하고, 어두운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은 두터운 신뢰관계를 구축하기 어렵습니다. 입장을 바꾸며 북한에서 별다른 근거도 없이 박근혜 대통령이 고모를 독살했을 것이라고 대서특필한다면, 우리 정부가 어떻게 북한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허위로 판명되더라도 북한에 대한 근거없는 악담이 대서특필되는 것은 남과 북이 관계를 개선할 수 없는 분위기를 구축하는데 목적이 있는, 대단히 반민족적인 행동입니다.
신뢰가 없어지면 앙금이 남고, 앙금이 쌓이면 필연코 충돌합니다. 지금 남쪽에서는 북한의 SLBM 발사시험과 더불어 연평도 인근 갈도의 진지구축, 북한해군의 스텔스 고속정 배치 등을 묶어보며 서해공격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동향들은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처럼 남북간 핫채널이 있었다면, 별 문제없이 넘어갈 수도 있는 사안입니다. 그러나 지금 대북긴장태세와 비방중상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그런 채널도 없을뿐더러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가 북측 설명의 진정성을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결국 비방중상은 서로의 신뢰를 훼손합니다. 인권문제 제기는 결국 남북간 군사적 충돌에까지 확산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왜나하면 정국의 사면초가에 빠진 박근혜 정권이 지금 정국수습의 탈출구를 애타게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지난 2014년, 집권 2년 차가 되는 시기를 상반기 세월호 참사와 하반기 정윤회 파문으로 통채로 날려먹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지지율을 만회해보겠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부패척결” 카드를 꺼냈습니다. 그러나, 부패의 희생양이 될 것을 강요당한 성완종 회장이 부정부패 관련 리스트를 남기고 자살함으로써 국무총리가 사임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자금까지 거론되어 박근혜 대통령은 사태를 수습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지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20대의 지지율은 18%, 30대의 지지율은 25%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직 60대 이상의 노령층만 50% 이상의 지지율을 보여 대통령 전체 지지율이 40%라는 거품이 완성되는 것이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와 원성은 대단히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박근혜 정부로서는 남북 간 화해보다는 대북대결태세를 더욱 굳건히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군사적 긴장을 높여 여론을 북한으로 옮기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만에 하나라도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정말로 일어난다면, 어차피 그 책임도 북한의 무력도발로 떠넘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우려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서해교전과 연평도 포격전이 바로 그러하였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현 정부 일각에서는 군사적 충돌을 계기로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면, 미국의 지지도 받으면서 현 정국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타산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3. 정쟁의 도구가 되어버린 북한인권
북한인권문제가 이런 식으로 정쟁의 도구가 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요?
인권은 사회구성원이 사회로부터 보장받는 권리입니다. 절대적 빈곤과 경제수준만으로 사회의 총체적 인권수준을 진단할 수는 없습니다. 일례로 2014년 한국 어린이와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로 나타났습니다. 풍요로운 먹거리와 놀이시설,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어린이 인권유린국가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만을 절대화하며 대한민국이 인권유린국가라고 주장한다면 이 역시도 숱한 논란을 불러올 것입니다. 인권문제가 정상적으로 회자되려면, 구체적인 사실자료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인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렵사리 입수한 북한 내부 사진 몇 장과 몇몇 탈북자들의 검증되지 않은 증언만으로 북한사회의 인권을 종합평가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단지 한국사회에서는 북한인권문제가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것은 북한체제가 여전히 유일사상체계를 고수하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과 더불어 북한은 가난하다는 고정관념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유일사상+경제난=인권유린 이란 등식이 우리 국민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인권에는 사회적 자살의 수치와 불법구금의 규모와 실태, 선거의 공정성, 빈부격차의 정도가 구체적으로 파악되는 가운데에서 거론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자살자의 수치와 불법구금의 규모와 실태, 빈부격차의 정도가 원인을 구체적으로 찾아야 구체적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인권문제가 정말 심각하다는 주장에는 미성년 자살자 수치와 앞서 언급한 행복수치, 빈부격차 등 구체적 판단지표들이 있습니다. 북한인권도 그 정도의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인권에 대해서는 모든 문제가 북한체제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단순한 인권이 어디에 있습니까? 북한인권만큼은 정치투쟁의 도구가 되어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곽동기 상임연구원 / 우리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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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북 〈SLBM, 미국 뒤통수 또한번 후려쳐〉



  • 노동신문은 정세론해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자기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를 29일 게재했다.

    해설은 <미국이 요즘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며 <대국이라고 하는 나라들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전략잠수함 탄도탄수중시험발사에서 우리 공화국이 완전성공한 사실이 아메리카제국의 뒤통수를 또한번 후려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미제의 세계제패전략은 그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며 <정치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조선반도를 통채로 병탄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는 짖어도 행렬은 간다. 그 누가 <도발>이라고 시비를 하든 <중지>하라고 고아대든 우리에 대한 불순적대세력들의 도전이 쉬임없이 계속되는 조건에서 자위적핵억제력을 더욱더 완벽하게 다지기 위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투쟁은 백배천배로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자기의 길로 나아갈것이다

    미국이 요즘 안절부절 못하고있다.대국이라고 하는 나라들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전략잠수함 탄도탄수중시험발사에서 우리 공화국이 완전성공한 사실이 아메리카제국의 뒤통수를 또 한번 후려친것이다.
    혼비백산한 미정객들속에서는 탄도탄수중시험발사가 국제사회에 대한 《엄중한 도발》이고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느니 뭐니 하는따위의 비난이 그칠새없이 울려나오고있다.여기에 일본과 남조선괴뢰들도 상전과 꼭같은 악청을 돋구어대며 아부재기를 치고있다.
    병적인 거부감속에 우리가 하는 모든것을 사사건건 범죄시하는 미국이니만큼 탄도탄수중시험발사에 심사가 삐뚤어져 내뱉은 넉두리나 복닥소동이 새삼스러운것은 아니다.그래 묻건대 우리 탄도탄의 파편쪼각이 미국본토나 주변나라들에 떨어지고 미국함선이나 비행기에 자그마한 흠집이라도 냈단 말인가.
    남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제손가락이 깨끗한가부터 먼저 보라고 하였다.도발에 대하여 말한다면 남의 땅에 침략무력을 끌고와 우리 《수뇌부제거》와 《평양점령》을 노리고 벌리는 미국의 화약내풍기는 전쟁연습소동보다 더 큰 도발은 없다.그리고 때없이 핵전략폭격비행대와 핵항공모함전단을 비롯한 핵타격수단을 들이밀어 로골적으로 벌리는 공공연한 핵공갈소동이야말로 위협중에서 진짜위협이다.도발을 일으키고 위협을 조성하는 주범이 그에 대응한 자위적인 행동을 《도발》로,《위협》으로 강변하며 국제사회를 기만하고있는것은 양키식기준이 얼마나 파렴치한것인가를 다시금 립증해줄뿐이다.
    돌이켜보면 반세기이상에 걸치는 장구한 세월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여 미국이 감행한 범죄적책동은 철두철미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양키식기준에 준하고있다.
    그 뿌리는 미국의 《리익》이다.
    미제가 제창하는 《리익》이 어떤것인가는 1999년에 발표한 《국방보고서》에서 명백히 드러났다.21세기에 대비한 세계전략을 밝혔다고 하는 이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의 《리익》에는 적대적인 지역동맹이나 패권국출현의 저지와 함께 거점시장,전략자원에로의 제한없는 접근보장이 포함되여있다.결국 미제가 내든 《리익》이란 곧 다른 나라들에 대한 침략과 략탈을 강화하여 제 리속을 차리는것이다.
    미제의 세계제패전략은 그 《리익》을 실현하기 위한것이다.그때문에 정치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조선반도를 통채로 병탄하려고 하고있다.
    미국이 1945년에 남조선을 강점한 후 우리 공화국을 적으로 규정하고 그 내용과 방식,기간에 있어서 가장 악랄하고 집요하며 장기적인 적대시정책을 실시하고있는것도,론쟁거리로 될수 없는 우리의 정정당당한 자위적조치들을 문제시하면서 국제화하기 위해 발악하고있는것도 여기에 기인된다.
    사실상 제2차 세계대전시기 조선문제가 우리 민족의 자주적요구와 의사에 배치되게 렬강들의 리해관계에 따라 처리된 때로부터 남조선에서의 괴뢰정권조작,조선전쟁발발,조선분렬의 장기화,조선반도핵문제발생 등은 전적으로 국제기구의 이름을 도용하고 추종국가들을 끌어들인 미제에 의한것이다.
    미제는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서 해방된 조선인민에게 《자치능력이 부족》하기때문에 조선에 대한 국제적《신탁통치》를 실시해야 한다고 떠들었다.그런가하면 남조선괴뢰정권이 유엔에 의하여 《수립》되였기때문에 남조선을 지원할 임무가 유엔에 있다고 하면서 조선전쟁에 추종국가들을 끌어들이였다.21세기를 전후해서는 《핵문제》,《미싸일문제》,《인권문제》 등 별의별 구실을 내들고 우리 《문제》를 국제무대에 끌고가 반공화국여론조성에 광분하였다.
    이를 통해 미국이 노리는 목적은 다른데 있지 않다.침략자,간섭자로서의 저들의 정체를 은페하고 전조선을 지배하기 위한 국제적인 명분을 마련하는데 있다.동시에 정치와 경제,군사,외교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우리에 대한 국제적인 제재와 압력의 포위망을 형성하여 저들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손쉽게 달성하자는것이다.
    원래 다른 나라들을 희생시켜 어부지리를 얻는것은 미제의 상투적수법이다.제1차 세계대전시기에 미제는 처음에는 《중립》의 간판밑에 무기를 교전쌍방에 팔아 막대한 돈벌이를 하였다.전쟁의 마감에 전후 분배몫분할에서 한몫 얻기 위하여 《협상국》측에서 전쟁에 참가하였다.
    전쟁기간 미제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가장 많은 리득을 보았으며 채무국으로부터 채권국으로 되였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도 미제는 큰 기여를 하지 않으면서도 반파쑈련합국으로 행세하여 막대한 폭리를 획득함으로써 전후 자본주의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력을 가진 제국주의우두머리로 되였다.
    1950년대의 조선전쟁은 또 하나의 생동한 실례이다.
    미제가 온갖 권모술수를 써가며 유엔의 이름을 도용하여 조선전쟁에 15개 추종국가군대들을 끌어들인것은 동맹국들의 희생의 대가로 전쟁을 치르어보려는데 있었다.
    조선전쟁시기 미제는 목숨을 내대야 하는 곳에는 례외없이 추종국가군대들을 내세웠다.
    수많은 《유엔군》이 포위섬멸되고있던 총퇴각시에만도 영국침략군부대들이 퇴각하는 미군의 엄호에 나섰다가 전멸되였다.조선전쟁에 뛰여들었던 프랑스침략군의 한 중위는 프랑스병사들은 우둔한 노새처럼 리용되고있다고 하면서 《가렬한 전투의 주요부담은 우리들의 잔등에 업혀 놀려는 미국인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짊어지고있다.》고 일기에 썼다.
    미국의 교활한 침략수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최근년간 미국이 허구적인 우리의 《위협》타령으로 세계여론을 어지럽히는 한편 《유엔군사령부》부활을 떠드는것은 그것을 아시아판나토와 같은 《다국적련합기구》로 둔갑시켜 저들의 아시아태평양지배전략실현에 써먹으려는데 있다.급속히 쇠퇴몰락하는 미국에 있어서 저들의 군사적공백을 대신할수 있는 동맹국들의 힘이 절실히 요구된다는것은 두말할것 없다.
    그러나 미국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미국이 첨예한 조선반도사태의 본질을 외곡하고 우리 공화국에 대한 국제적압박도수를 높이려고 발악한다고 하여 결코 진실이 가리워지는것은 아니다.
    영국의 국제문제전문가 피니안 쿤닝함은 사회계에 전해지는 모든 소식들과 보도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도발자》,《핵위협》의 장본인으로 비난하고 미국을 가장 리성적이고 평화애호적인 《정의의 국가》로 만드는데 집중되고있는데 이것은 완전히 날조외곡된것이라고 단죄하였다.스웨리예신문 《쒸드외스트란》은 지각이 있는 사람들은 조선이 자기를 방어하고 전쟁을 억제할 목적에서 핵을 가졌다는것을 리해한다고 전하였다.
    로씨야과학원 극동문제연구소 조선연구쎈터 소장 알렉싼드르 줴빈은 조선의 핵보유는 미국의 부당한 대조선정책의 산물이라고 까밝혔다.
    미국의 전문기관이 전세계 68개 나라에서 6만 8 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많은 응답자들이 미국을 세계평화에 대한 최대의 위협국으로 꼽았다.
    오늘날 조선문제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수십년세월 가증되는 핵위협으로 평화애호국가의 자주적발전을 가로막아나서는 장본인,조선반도정세를 전쟁의 극단에로 몰아가며 평화와 안전을 파괴하는 주범인 미국을 단죄하고있다.
    우리의 자위적조치들은 원쑤들의 침략으로부터 나라와 인민의 안전을 지키고 지역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합법적인 자주권행사이다.이번에 완전성공한 전략잠수함 탄도탄수중시험발사를 통하여 세계는 우리의 전략타격수단개발이 높은 경지에 도달하였음을 똑똑히 알게 되였다.
    미국이 우리 공화국의 자위적조치에 대해 그처럼 악의에 차서 헐뜯는것은 모략의 명수들이 고안해내고 력대 미집권자들이 강행해온 반공화국적대시정책을 걸음마다 짓부시며 승승장구하는 선군조선에 대한 위압감과 불안감의 발로이다.때문에 천만군민은 불에 덴 승냥이마냥 날뛰는 원쑤들의 망동에서 우리의 전진,우리의 승리를 가슴뿌듯이 확신하고있다.
    개는 짖어도 행렬은 간다.그 누가 《도발》이라고 시비를 하든 《중지》하라고 고아대든 우리에 대한 불순적대세력들의 도전이 쉬임없이 계속되는 조건에서 자위적핵억제력을 더욱더 완벽하게 다지기 위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투쟁은 백배천배로 강화될것이다.
    이 행성우에 살판치는 부정의와 란무하는 강권과 전횡을 짓부시며 보란듯이 솟구치는 우리 공화국의 무진막강한 위력을 가로막을자 이 세상에 없다.

    (노동신문, 2015.5.29) 



    송재호기자

3차 대전 선동한 한국 대통령의 황당무계 '반올림 개헌'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01> 조봉암과 진보당, 아홉 번째 마당
김덕련 기자2015.05.30 07:07:09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열 번째 이야기 주제는 조봉암과 진보당이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프레시안 : 1954년 5.20선거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개헌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만 공천을 주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선거가 끝난 후 이제 헌법을 바꾸는 문제가 주요 정치 현안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서중석 : 개헌 문제가 급박하게 대두된다. 자유당은 개헌 정족수인 재적 인원의 3분의 2를 채우기 위해 국회의원을 계속 끌어들인다. 김두한이 그때 종로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지만 그런 김두한도 선거법에 걸릴 만한 게 많이 있지 않았겠나. 그러니 김두한도 여기에 넘어왔다. 김두한의 약점을 쥐고서 그런 식으로 한 것인데, 어쨌건 그런 방식으로 3분의 2가 넘는 136명을 자유당 국회의원으로 확보했다. 그것으로 됐다 싶었는데 7월 2일 역사상 처음으로 국무원 투표라는 걸 했다. 뭐냐 하면 새로운 변영태 총리를 선두로 한 국무원이 구성됐는데, 이 변영태와 다른 국무원들을 일괄해 신임 투표를 한 것이다. 법 해석을 가지고도 이때 논란이 많았지만 결국 이 투표를 했다. 그랬는데 인준을 못 받았다. 재적 과반수(102표)만 획득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것조차 인준이 안 된 것이다. 그러면서 자유당은 '이러니 어떻게 개헌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위기에 빠진다.

그런 속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미국에 가게 된다. 7월말 이 대통령은 미국 상하 양원 합동 회의에서 "우리들은 당장 행동을 개시하자"고 하면서 "소련의 생산 중심지를 파괴하자"고 이야기했다. 소련이 수소탄을 대량 생산하기 전에 그렇게 하자는 주장까지 하고 나선다. 미국 정부 인사들과 미국 의회 의원들은 기겁을 했다. 남의 나라 정치인이 와서 3차 대전을 일으키자고 하니, 참 놀랄 일이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세계적 위인, 세계적 반공 지도자라는 걸 미국에 가서 확실히 보여줬다', 이런 식으로 됐고 이 양반이 돌아오자마자 북진 통일 운동이 또 새로운 형태로 일어나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면서 9월 6일 자유당은 이기붕 외 135명이 서명해서 드디어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건 재적 의원 3분의 2를 넘는 숫자다. 그런데도 자유당은 겁이 나서 표결을 할 수가 없었다.

뉴델리 밀회 사건에 회심의 미소를 지은 자유당 

프레시안 : 소련을 정말 공격했다면 그건 핵전쟁을 기본으로 한 3차 대전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미국이 이승만 대통령의 말을 듣고 그렇게 할 턱이 없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낳을 수밖에 없는 무시무시한 주장을 공개석상에서 했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수많은 사람이 씻을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한국전쟁을 겪은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다시 돌아오면, 자유당은 왜 그토록 겁을 낸 것인가. 

서중석 : 왜냐하면 당시 여론 조사만 보더라도 그 결과가 너무나 나빴다. 개헌안의 골자는 크게 봐서 네 가지였다. 하나는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철폐한다는 것이었다. 얼마든지 대통령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1952년 발췌 개헌 때는 시일이 워낙 촉박했고, 이 중임 제한 철폐 문제까지 내놓으면 문제가 더 복잡해지니까 그때는 못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대통령제 강화였다. 국무총리제를 없애고 국무원의 힘을 약화시켜 대통령을 중심으로 몰고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국민투표제였다. 지금 중공 등에 의해 중대 상황, 국가 위기가 생길 것 같은데 그럴 경우 국민투표제를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네 번째는 경제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 제헌 헌법에는 통제 경제 내지 사회주의적 균등 경제를 강조하는 요소가 상당히 있지 않았나. 국유화, 공영화도 강조했다. 그런데 그걸 전면적으로 바꾸라고 미국이 수년간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러한 요구에 맞춰 자유 경제 체제로 방향을 전환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개헌 골자였는데, 다른 것도 다 인기가 없었지만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철폐한다'는 것이 특히 그랬다. <한국일보> 여론 조사를 보면 16.9퍼센트만 찬성하고 78.8퍼센트가 반대한다고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당 내 반란표가 안 생기리라고 어떻게 보장하느냐, 이 말이다. 그런데 하늘이 자유당을 돕는 일이 생겼다. 

▲ 해공 신익희. ⓒ연합뉴스
프레시안 : 무엇인가.

서중석 : 유명한 뉴델리 밀회 사건이 발생한다. 이름만 보면 스파이 사건 같기도 한데, 야당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졸아들고 있던 민국당의 선전부장 함상훈이 10월 27일 '전 민국당우에게 고함'이라고 하면서 "우리 당에 제3세력이 침투했다"고 주장했다. 제3세력은 그전에는 주로 조봉암을 가리켰다. 극우 반공 세력을 제1세력이라고 하면 제3세력은 중도파, 통일을 주장하는 세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때 함상훈은 민국당 당수인 신익희를 제3세력으로 몰아갔다.

신익희가 1953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에 국가를 대표해 국회 의장으로서 참석했는데, 귀국할 때 인도 뉴델리에 들러 조소앙(한국전쟁 당시 납북)을 만났다는 주장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 이 양반은 그때 대관식을 하고 지금까지 60년 넘게 여왕으로 있는데, 어쨌건 그 시기에 신익희가 남북 협상 문제에 관한 밀담을 조소앙과 나눴다는 것이었다. 협상파는 다 제3세력이었다. 그러고 나서 북한에서 조소앙의 밀사 오경심이라는 여자가 내려와서 신익희를 또 만났다는 것이다. 이것도 정말 어이없는 주장을 한 것인데, 민국당 내 옛 한민당 핵심 세력들이 신익희가 다음 대선에 못 나오게 하고 자기들이 나가려고 이런 짓을 꾸미지 않았나 싶다. 이걸 뉴델리 밀회 사건이라고 부른다. 

그때 신익희와 동행했던 김동성 국회 부의장이 그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걸 국회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그것으로 이 사건은 끝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유당으로서는 드디어 큰 것을 문 것이다. 이건 국가에 관한 중대사라고 하면서 이 문제를 물고 늘어져 공안 분위기, 긴장을 고조시키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긴급 동의로 국회에서 '남북 협상, 중립화 배격 결의안' 등 아주 강경한 결의안을 연달아 막 제출해 통과시켰다. 국회 바깥에서는 드디어 또 민의대가 동원되기 시작해 지방 의회 의원들이 속속 올라와서 개헌안 통과 촉구 결의문을 전달하고, 반공혈전대사령부라는 이름으로 "민국당은 역적"이라는 유인물이 나돌았다. 원용덕 헌병 총사령관은 '휴전 감시 위원단 중 적성국 대표들은 일주일 이내에 철수하라. 불응하면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이게 헌병 총사령관이 할 이야기가 전혀 아닌데도 그렇게 하면서 분위기를 돋웠다. 또 서울운동장 같은 데서는 총궐기 대회 등을 대대적으로 열었다. 그러면서 공안 정국을 띄우는데, 이때부터 1990년대 초까지 그야말로 40년간 공안 정국이라는 걸 맛보게 된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사사오입 개헌 밀어붙인 이승만 정권 

프레시안 : 공안 정국 조성은 예나 지금이나 지배 세력이 뭔가 딴마음을 품고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다. 자유당 정권은 이때 무엇을 노리고 그렇게 한 것인가. 

서중석 : 이렇게 공안 정국을 형성해 안보 공세로 나아가고 긴장을 고조시킨 것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자유당 내분을 잠재우는 것이었다. 반란표가 없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자유당뿐만 아니라 무소속 중에도 유동적 의원들이 많았는데, 이런 쪽 사람들 사이에서도 '긴장 분위기이니 위기 상황에서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고 그걸 또 개헌안에 있던 국민투표제와 연결하고 그랬다.

그러면서 자유당 지도부에서는 몇 번이고 표 검사를 했을 것 아닌가. 이제는 틀림없다 싶어서 11월 20일에 상정해 11월 27일 표결에 부쳤다. 그런데 여기서 자유당이 원한 것과 아주 동떨어진 결과가 나왔다. 최순주 국회 부의장이 사회를 봤는데 재적 203명 가운데 202명이 참석해 가 135, 부 60, 기권 7, 그렇게 해서 1표 차이로 부결됐다. 그래서 최순주가 이 개헌안은 부결됐다고 하면서 '땅땅땅' 두드렸다.

그런데 그다음 날인 11월 28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국회도 아니고 자유당도 아니고 정부에서 갈홍기 공보처장이 '국회의원들은 사사오입(반올림)도 모르냐'고 하면서 수학적으로 사사오입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헌안이 통과됐다는 게 정부 견해라고 밝혔다. 아니, 국회에서 결의하고 나서 정부가 이런 설명을 하면 또 모르겠는데, 국회에서는 부결됐다고 명백하게 처리한 것을 가지고 정부에서 그건 통과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다음 날인 11월 29일 야당 의원들이 총퇴장한 가운데 최순주는 다시 '개헌안 부결 번복 가결 동의안'이라는 긴 이름의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이게 악명 높은 사사오입 개헌이다.

프레시안 : 사사오입 개헌은 언제 들어도 어이없고, 관련자들이 두고두고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국 정치의 민낯이다. 전장에선 장병들이 쓰러지고 방방곡곡에서 다수의 국민들이 고통을 받던 1952년 우격다짐으로 발췌 개헌을 한 데 이어 2년 만에 그런 일을 또 벌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서중석 : 사사오입 개헌으로 자유당은 영구 집권을 할 수 있게 됐고, 그야말로 절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국회의원들, 특히 여당 국회의원들은 거수기가 됐다. 그렇지만 이승만 정권이나 이 대통령이 꼭 이득만 본 건 아니었다. 시민들은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고 했다. 그렇지 않나. 누가 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 아닌가. 자유당 정권,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비판, 냉소적인 태도 같은 것이 한껏 고조되기 시작했다. 

야당은 대단한 위기감을 느끼게 됐다. '이거 우리 야당 쫄딱 망하는 것 아냐? 이렇게 되면 야당이 할 일도 없어지게 되는 것 아냐?' 그러면서 '새로운 야당으로 탄생해야겠다. 범야당을 만들어내자'는 움직임이 호헌동지회라는 야당 단체를 중심으로 일어나게 된다. 정치적으로 매장당하고 쫓겨났던 조봉암이 이래서 다시 살아나고 화제의 초점이 되는 일이 생기게 된다. 

▲ 2012년 제헌절에 남산에 있는 자유총연맹 광장(서울시 중구 장충동)에서 이승만 동상 너머로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이승만 동상은 본래 1956년 남산에 세워졌으나, 1960년 4월혁명 때 시민들의 손에 철거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는 자유총연맹은 2011년 남산에 다시 이승만 동상을 세웠다. ⓒ연합뉴스


조봉암을 배척하고 탄생한 0.5 보수 야당, 민주당 

프레시안 : 야권을 아우르는 새로운 정당 건설 운동은 어떤 식으로 전개되나.

서중석 : 호헌동지회에는 민국당은 물론이고 무소속까지 합쳐서 61명의 의원이 참가했다. 여기서는 모두 '이제는 야당이 하나로 뭉쳐서 이승만 정권하고 대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처음에는 잘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바로 양 파로 갈라졌다. 하나는 조병옥, 장면, 곽상훈 같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파였고 다른 하나는 장택상, 서상일, 신도성 등을 중심으로 한 민주대동파였다. 서상일은 한민당, 민국당의 중진이었고 신도성은 한민당 이래 민국당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이런 이름이 생긴 이유는 간단했다. 자유민주파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조봉암을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조봉암은 사절한다. 이 당에 못 오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민당의 지주라고 볼 수 있는 김성수는 그 당시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런 김성수가 '조봉암이 들어오게 해야 한다'고까지 이야기했는데도 자유민주파는 완강하게 버텼다. 이와 달리 민주대동파는 '모든 민주주의 세력은 뭉치자. 그러니까 조봉암은 당연히 오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 : 자유민주파는 왜 그토록 강하게 조봉암의 합류를 막으려 한 것인가.

서중석 : 우선 한민당 골수 세력은 조봉암하고 숙원 관계였다. 한두 해 그런 게 아니었다. 수많은 사건과 세월을 두고 원수,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 같은 관계였다. 이런 점을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곧 선거가 있는데 조봉암이 들어와서 휘젓고 다니면 다음 대통령 후보, 부통령 후보가 누가 될 것인가. 조봉암은 지난번 대선 차점자 아니냐', 이게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니었을까라고 보는 견해도 많았다. 신익희도 대통령 선거에 나오려 했고, 조병옥과 장면 역시 적어도 부통령 후보로라도 나오려고 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경우건 '조봉암이 들어오면 아주 어렵다. 문제가 심각하다', 이걸 느낀 것이다. 그래서 자유민주파를 중심으로 1955년 9월 민주당이 생겨나게 된다. 

신익희를 대표 최고위원으로 한 민주당 출범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야당들은 이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무지하게 좋아한다. 야당이 가장 선호하는 이름이 신민당과 함께 바로 이 민주당이다. 왜냐하면 1955년 이후의 민주당, 이게 국민들한테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민주당이 실제 내건 것 자체는 별것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내각 책임제 그리고 '자유 경제를 원칙으로 한다', 이 두 가지가 핵심이었고 다른 건 별게 없었다. 그리고 민주당은 권력을 정말 장악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정당이라고 사람들이 보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비실비실한 면이 보였다. 정책적으로도, 새로운 정부를 떠맡을 수 있는 대안자로서도 능력이 있는 정당이라고 사람들이 보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이 민주당을 0.5 야당 또는 0.5 보수 야당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왜 민주당이 사랑을 받았느냐. 이승만 정권한테 되게 당하면서 참 힘들게 야당 노릇을 했다는 것도 있지만, 도시민의 불만을 야당이 해소해주기를 바라는 강한 분위기가 이 시기에 형성되고 있었다. 이때는 도시화가 급속히 진전되던 시기 아닌가. 그래서 야당이 좋아서 야당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이승만 정권과 여당이 미워서 야당을 지지하는 한국적 현상이 바로 이때부터 나타난다. 이건 나중에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이 미워서 야당을 지지하는 모습으로 이어지고 어떤 면에서는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도 민주당의 출현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진보 정당 결성 움직임과 조봉암의 구상 

프레시안 : 민주당 탄생 과정은 그 후 한국 야당이 보인 반공주의적 속성의 근원을 잘 드러낸다. 아울러 바로 이해(1955년) 이웃 나라 일본에서 자민당이 결성되며 '55년 체제'(자민당의 압도적 우위를 기본으로 한 자민당-사회당 양당 체제)가 만들어진 것과 대비하며 음미할 대목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중석 : 일본에서는 자민당-사회당의 보혁(보수·혁신) 체제가 이때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약 40년간 계속된다. (자민당은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수 획득에 실패할 때까지 38년에 걸쳐 장기 집권한다.) 한국의 경우 자유당과 민주당은 뿌리가 같다. 둘 다 분단 반공 세력으로 불리지 않나. 따라서 이 당시 진보당이라는 것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었다면 한국에서도 새로운 정당제로 차라리 보혁 제도가 발전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도 있었다. 

그것이 9월 1일 광릉 회합으로 나타난다. 뭐냐 하면 해방 직후에는 좌파가 무지하게 많았지만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좌파가 활동하기가 굉장히 어렵게 되지 않나. 그 후 잔존한 진보 세력의 다수가 9월 1일 광릉에 모였다. 이걸 광릉 회합이라고 부른다. 이때 조봉암은 물론이고 서상일, 장건상, 정화암, 최익환, 박용희, 서세충, 정이형처럼 한때 유명했던 원로들과 함께 윤길중, 신도성, 김기철, 이명하, 조규희 같은 신진, 청년들도 모였다. 전쟁에서 잔존한 진보 세력이 상당수 망라됐는데, 이렇게 모임을 한 것도 1956년 선거를 의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진보 정당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나온다. 

프레시안 : 진보 정당의 조직 방식, 노선 등을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조봉암은 일종의 용광로론을 제시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서중석 : 광릉 회합 이후 여러 차례 회합을 하면서 많은 논란이 오갔다. 지도층 구성에서 누구를 배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갖고도 논란이 일었고, 노선 문제에 대해서도 진보 세력으로서는 또 논란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장건상, 정화암 등은 선이념 통일, 후창당을 주장했다. 먼저 이념을 통일하고 나서 진보 정당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봉암은 선창당, 후이념 통일을 주장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념 통일부터 먼저 하려고 하면 신당 발족은 백년하청이다, 이 말이었다. 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정당은 정치 단체이지 사상 단체가 아니라고 조봉암은 주장했다. 따라서 진보주의자들을 한 가마 속에 다 털어 넣고 거기서 쇠는 쇠대로, 금은 금대로 가려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이건 현실론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당시 진보 세력 또는 혁신 세력은 굉장히 다양했다. 일제 때 어디서 활동했느냐, 이것부터 다 달랐다. 예컨대 만주, 노령 지방, 중국 관내, 일본, 국내 중 어디서 활동했느냐에 따라 사상적으로 차이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해방 후 그 복잡한 정국에서 여러 가지 이합집산이 있었고 전쟁을 겪으면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그랬나. 그런 여러 가지가 있었기 때문에, 진보 세력을 어떻게 결집할 것인가 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니까 먼저 당을 만들어놓고 당을 운영하면서 거기서 구체적인 논의를 해나가자, 이게 조봉암의 생각이었다. 

나중에 진보당을 보면 진보당이 인적으로 복잡하게 구성돼 있었던 걸 알 수 있다. 그게 한국적 혁신계다. 어떻게 보면 1987년 6월항쟁 이후에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 아니냐,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이념이 상당히 다른 사람들이 민중당도 만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지 않나. 

"피해 대중의 자각과 단결" 강조한 진보당 발기 취지문 

ⓒ오월의봄
프레시안 : 
우여곡절 끝에 진보당이 그 지향을 세상에 드러내는 단계에 접어든다.

서중석 : 1955년 12월 22일, 드디어 진보당 발기 취지문과 강령 초안이 발표된다. 진보당이라는 이름은 조봉암이 주장한 것인데, 진보당 발기 취지문과 강령 초안 발표는 우리나라 진보 세력의 노선, 길에서 아주 중요한 새로운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제3의 길을 제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발기 취지문에는 "진정한 혁신은 오로지 피해를 받고 있는 대중 자신의 자각과 단결 위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걸 깊이 인식하고"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이것도 조봉암이 집어넣은 것으로 돼 있다. 여기서 "피해를 받고 있는 대중"이라는 게 뭐냐 하는 것이 나중에 크게 논란이 된다. 진보당 사건을 일으킬 때 극우 반공 세력은 '이게 바로 노농 독재를 하려는 주장'이라는 식으로 해석했다.

강령을 보면 "공산 독재는 물론 자본가와 부패분자의 독재도 배격"한다고 돼 있다. 1946년 방향 전환을 할 때 이미 주장한 것인데, 조봉암은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이 주장을 했다. 제일 논란이 되는 것으로 통일 문제가 있는데, 여기서도 아직 평화 통일을 주장하지는 못했다. 다만 "민주 우방과 제휴하여 민주 세력이 결정적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조국 통일의 실현"을 말했다. 이건 북한만이 아니라 남한의 극우 세력에 대한 것을 말하는 것일 텐데, 표현을 그렇게 했다. 

진보당을 만들기 위한 작업은 진보당 추진 준비위원회 구성으로 이어졌는데, 대통령 선거가 눈앞에 닥쳐버렸다. 1956년 3월에 가서 진보당 추진위원 208명의 명단이 발표됐다. 여기에는 조봉암, 이동화, 서상일, 윤길중, 신도성처럼 이름 있는 사람들이 들어가 있었지만 원내 의원은 신도성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유명한 '장군의 아들' 김두한 의원도 여기 들어왔다. 그걸 보면 김두한도 뭔가 생각하는 게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백두 번째 편도 조만간 발행됩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2권 서평 바로 가기  


"너무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

세월호 추모 뮤직비디오... "너무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

15.05.29 22:16l최종 업데이트 15.05.29 22:3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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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시간 넘게 이어진 발표회가 끝날 즈음, 무대 위에는 발표회에 참여한 시민들과 유가족 등 20여명이 무대 위에 섰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함께 '네버엔딩스토리'를 부르며 행사는 끝이 났다.
ⓒ 유성애

6분짜리 짧은 영상이었다. 캄캄한 무대 위 화면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평화의나무 합창단이 부른 '네버엔딩스토리' 뮤직비디오 영상이 흘러나오자, 객석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29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마포구 카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네버엔딩스토리' 제작발표회 겸 첫 상영회 현장이었다.

"가슴이 짠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참사 후 가족들이 싸워왔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흘러갔고, 영상에 나오는 (단원고) 빈 운동장과 빈 철봉, 빈 의자들을 보면서 그 많은 단원고 아이들 250명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게 너무 가슴 아프더라고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남석, 고 이창현군 아버지)

"'우리도 평범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저는 사고 후에 계속 '난 이제 평범한 사람들과 달라졌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뮤비(뮤직비디오)에선 아주 평범한 모습들이 나오잖아요. 가족들이 요즘 '빨갱이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듣는데, 사람들이 이걸 보고 참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아픈 일을 당했다는 걸 알길 바라요." (최윤아, 고 최윤민양 언니)

'끝나지 않는 아픔'을 상징하며 만들었다는 뮤직비디오의 줄거리는 단순하면서도 강하다. 세월호 참사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의 모습으로 영상은 시작됐다.

유족들이 부르는 '네버엔딩스토리(김태원 원곡)' 노래를 배경으로, 화면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의 어릴 적 사진이 돌아가며 등장한다. 젖먹이 때부터 유치원 소풍, 가족여행 등 성장하는 순간순간이 찍힌 사진들이었다. 70여 유가족, 1000여 장의 사진들이 모여 세월호 선체 형상을 이루면서 영상은 끝이 났다.

"'아이 얼굴 도저히 못 보겠다' 참여 못해 아쉬워한 유족도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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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나지 않는 아픔'을 상징하며 만들었다는 네버엔딩스토리 뮤비에는 희생자들의 어릴 적 사진이 많이 등장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참사 희생자로, 유가족으로 바뀌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 뮤비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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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나지 않는 아픔'을 상징하며 만들었다는 이 뮤비에는 희생자들의 어릴 적 사진이 많이 등장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참사 희생자로, 유가족으로 바뀌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 유성애

뮤직비디오에는 특히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학생들의 어린 시절 사진이 많이 등장했다. 모두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유족들을 일일이 찾아가 유품사진을 모았다는 이미경(고 이영만군 어머니)씨는 "동참하고 싶은데도 '아이 얼굴을 도저히 볼 수가 없다'며 사진을 못 준 가족들도 많았다, 다들 아쉬워했다"고 말했다.

제작부터 섭외까지 총괄한 건 5남매의 평범한 엄마이자 '리멤버0416' 대표인 오지숙씨다. 참사 발생 후, '유족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다'는 생각에 광화문 1인시위에 나섰던 오씨였다(관련기사: 독수리 오남매의 엄마 "저에게 1초만 주소서"). 그는 "제가 오히려 무모했기 때문에 이 꿈을 현실로 만든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2015년 2월 11일 수요일>
차를 운전하면서 음악들을 들었다. 어떤 노래를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막 흘렀다. 노래 가사와 함께 머릿속에 선명한 영상들이 지나갔다. 반복해서 들으며 계속 울었다. 어떤 구상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되기만 하면 참 좋겠지만 안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실현된다는 건 꿈에 가깝다. 이 꿈을 꾸어도 될 것인가? 
('네버엔딩스토리' 페이스북 페이지에 오씨가 쓴 글)

뮤직비디오의 시작은 2월 초, 음악을 듣다 떠오른 영상이었다고 한다. 첫 구상부터 발표까지는 딱 107일이 걸렸다. 안 될 가능성이 더 큰, 그의 표현대로라면 '꿈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오씨는 고민 끝에 지인에게 물었다. "선생님, 제게 오늘 우연히 한가지 생각이 났는데, 상의 드리고 싶어서요…"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는 진행 과정 내내 페이스북 페이지에 업데이트 됐다.
 
오씨는 원곡 저작자이자 록밴드 '부활'의 리더인 가수 김태원에게 직접 일곱 장의 손편지를 쓰고, 회사에 찾아가기도 하면서 결국 원곡 저작물의 사용동의서를 받는 데 성공했다. 영상제작을 맡아줄 감독을 찾아갔다가 거절을 당하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편곡자와 음악감독을 섭외했다고 한다.

발표회에서는 촬영과정이 담긴 제작 필름도 공개됐다. 한 공간에 둘러앉아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 연습이 끝난 뒤 휴지를 나누며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결국 지난 9일, 서울 시내 한 대학에서 노란 옷을 맞춰 입은 유족들이 모여 뮤비 촬영을 시작했다. 제작비도 190여 명의 후원으로 3일 만에 모였다.

'윤민 언니' 최윤아씨는 "제 동생 윤민이는 희생자 304명 중 한 명이 아니라 윤민이 딱 한 명"이라고 말하던 도중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던 윤민이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이번 뮤비에도 그런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란 최씨의 말에 객석에서 응원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건 '그들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 합창으로 막 내린 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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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표회에서는 촬영과정이 담긴 제작 필름도 공개됐다. 한 공간에 둘러앉아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 연습이 끝난 뒤 휴지를 나누며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 오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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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마포구 카톨릭청년회관에서 세월호 추모뮤비인 '네버엔딩스토리' 제작발표회 겸 첫 상영회가 열렸다. 무대 위에 선 유가족들과 제작자들의 모습.
ⓒ 유성애

<2015년 4월 27일 월요일 – 보컬 첫 연습> 
저녁 7시, 안산합동분향소 가족대기실 공방에 어머님, 아버님, 언니들이 모였다.
그토록 애타게 찾던 보컬이 정해졌다.부모님 다섯 분, 형제자매 다섯 명, 이렇게 10명의 메인 보컬과 416가족합창단과 평화의 나무 합창단이 함께하기로 했다. 가족분들께 노래를 해달라고 하는 것이 혹시나 결례가 아닐까 염려했던 것은 기우였다. 노래를 부르시는 부모님과 언니들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오씨는 "매일 유가족이 투쟁하고 싸우는 모습만 보던 사람들에게, 이들도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만약 우리에게 이런 일이 닥쳤다면 우리도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제작 의도를 말했다. "너무나 행복했던 이 일상이 참사로 인해 다 사라졌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날 발표회 생중계를 맡아 내보낸 유가족 문종택(고 문지성양 아버지, 416TV 총괄)씨는 "사실 그대로를 전달할 언론을 만나고 싶다, 유족들의 슬픔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특별법과 (정부) 시행령 폐기를 외치는 유족들의 한스러운 목소리를 싣는 언론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제작발표회 이후 유튜브와 SNS를 통해 이 뮤직비디오를 알릴 계획이다. 영어자막도 함께 제공된다. 2시간 넘게 이어진 발표회가 끝날 즈음, 무대 위에는 발표회에 참여한 시민들과 유가족 등 20여 명이 무대 위에 섰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함께 '네버엔딩스토리'를 부르며 행사는 끝이 났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409일째의 모습이었다. 

"한 사람의 작은 생각에서 시작된 일이, 여럿의 노력이 더해져 큰 울림이 있는 작품으로 탄생했습니다. 끝으로 여기 모인 모든 분들과 함께 끝나지 않는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 네버엔딩 스토리를 불러보겠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의 이야기, 가족의 마음으로 불러주세요."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아서, 저희 같은 유가족이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416 유가족 합창단, 이런 것도 더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이 더 안전한 사회가 될 때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남석씨) 

미국의 위험천만한 탄저균<생화학전쟁>기도


  • [사설] 미국의 위험천만한 탄저균<생화학전쟁>기도



  • 지난 27일 스티븐 워런 미국방부대변인은 <탄저균이 실수로 살아있는 상태에서 미국 9개주와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로 배달됐다>며 <이 탄저균 샘플들은 적절한 절차에 따라 파괴됐으며 탄저균에 노출된 증세를 보인 사람은 없었다>고 밝혔다. 주남미군사령부가 28일 밝힌 바에 따르면 주남미군연구소 합동위협인식연구소(ITRP)는 당초 죽어있는 상태인 탄저균을 갖고 배양실험을 통해 균을 살려내 각종 제독실험을 할 예정이었지만 살아있는 탄저균이 미국방부산하연구소로부터 배달됐다고 전했다. 미군은 배양실험 중 탄저균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고, 즉각 시설물을 차단하고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 규정에 따라 탄저균을 폐기처분했다고 설명했다. 미군은 이같은 사실을 27일, 박근혜<정부>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탄저병을 일으키는 탄저균은 대표적인 생물학무기로 알려져 있다. 탄저병은 감염후 곧바로 발병하고 하루안에 항생제를 다량으로 복용하지 않으면 80%이상이 감염자의 인체부위가 검게 썩어들어가면서 사망할 정도로 살상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분말 100kg을 대도시 상공위로 저공비행하며 살포하면 100만~300만명을 죽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실제 이번에 배달된 10kg이 서울직경 30km에 살포되면 최고 9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생화학무기가 핵이나 미사일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라고 지적한다. 주남미군은 탄저균전에 대비해 2002년 6월부터 예방백신을 맞으며 미리 대응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국민들은 예방백신조차 맞지 못한 완전한 무방비상태에 놓여있다.  

    생화학전에 쓰이는 탄저균이 활성상태로 배달된 것과 관련해 국민들의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고는 우발적 사고라고 보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너무 많다. 지난 5.9 북의 전략잠수함탄도탄시험발사성공에 자극받은 미국이 코리아반도내에서 7000만민족의 목숨을 담보로 생화학전을 벌일 수 있음을 경고하는 <의도된 자작극>이라는 합리적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3년 4월, 300여명의 생화학전 대응능력을 갖춘 23화학대대가 의정부 주남미2사단에 배치된 것과 에볼라바이러스대응차원으로 작년 8월, 미남국방부주관으로 미남<생물방어연습>이 시행됐다는 점 등은 우연이 아니다. 자칫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던 <대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을 <탄저균배달사고>가 난지 이틀이나 지났음에도 항의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무능한 박근혜<정권>은 도대체 누구의 <정부>인가. 

    이땅은 미군의 전쟁놀이터나 생화학실험장이 아니다. 전세계 악의 근원 미국은 남을 전초기지로 삼아 여전히 군작전권을 영구히 틀어쥘 음모를 꾸미며, 싸드(THAAD)와 같이 효용성도 없는 폐기돼야 할 고철덩어리를 1기에 2조원이나 들여 팔아먹으며 우리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또한 키리졸브·독수리미남합동군사연습, 을지포커스렌즈 등 각종 미남합동연습을 벌이며 전쟁기도를 노골화하면서 7000만 온민족의 목숨을 담보로 탄저균생화학전을 벌이려고 하는 위험천만한 불장난·전쟁놀음을 미국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 나아가 미군점령 70년이 되는 올해, 온민족의 화근덩어리 주남미군은 이제 코리아반도에서 즉각 철수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게 말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묵인·방조하는 종미사대매국<정권>, 박근혜<정권>은 즉각 물러나야 한다.

    21세기민족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