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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1일 일요일

깡통 조약 맹신하는 우매한 정권

 

[개벽예감 557] 깡통 조약 맹신하는 우매한 정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3/10/02 [09:14]

<차례> 

1. 왜 깡통 조약을 만들어 놓았을까?

2. 1953년 패전 위험에 빠진 미 제국

3. 깡통 조약은 미 제국의 유인책

4. 최후통첩이 장애물 치웠다 

5. 깡통 조약 제3조는 패전으로 직행하는 길

 

 

1. 왜 깡통 조약을 만들어 놓았을까?

 

2023년 10월 1일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때로부터 70년이 되는 날이다. 1953년 10월 1일 워싱턴에서 미 제국 국무부 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 1888~1959)와 한국 외무부 장관 변영태(1892~1969)가 조약문에 서명했다. 이 조약은 1954년 11월 18일에 발효되었고, 그로써 한미동맹 관계가 성립되었다. 조약은 6개 조항으로 이루어졌다. 

 

▲ 변영태 장관과 덜레스 장관의 조약 체결 장면.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에는 “당사국 중 어느 일방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침공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 인정할 때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라고 명기되었다. 이 조항은 어느 일방이 무력 침공을 받는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서로 협의하는 것을 의무화한 조항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어느 일방이 무력 침공을 받는 경우 군사행동을 의무화한 조항이 없다. 그 조약에는 상호협의를 의무화한 조항만 있고, 마땅히 있어야 할, 군사행동을 의무화한 조항은 없는 것이다.  

 

1949년 4월 4일 워싱턴에서 조인된 북대서양조약(North Atlantic Treaty)에는 상호협의를 의무화한 조항과 군사행동을 의무화한 조항이 모두 들어있다. 1960년 1월 19일 워싱턴에서 조인된 미일안보조약에도 상호협의를 의무화한 조항과 군사행동을 의무화한 조항이 모두 들어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는 경우, 미 제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에 의거하여 전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한국과 협의하는 의무만 이행하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전시에 미 제국이 한국에 군대를 파병할 의무도 없고, 공동의 군사행동으로 전쟁에 대처할 의무도 없는 것이다. 

 

명색은 ‘상호방위조약’인데도, 전시에 군대를 파병할 의무와 공동의 군사행동으로 전쟁에 대처할 의무가 모두 빠져있는 것을 보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이야말로 알맹이 없는 깡통 조약에 불과하다.  

 

의문이 생긴다. 미 제국은 왜 알맹이 없는 깡통 조약을 만들어 놓았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70년 전 깡통 조약을 체결하기 전후의 복잡한 상황을 추적할 필요가 있다.

 

1953년 5월 30일 당시 대통령 이승만(1875~1965)은 미 제국 대통령 드와잇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에게 보낸 서한에서 적국이 한국을 침공하는 경우 미 제국이 즉각 군사원조와 비상 지원을 한국에 제공해 준다는 내용을 한미상호방위조약 초안에 명기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미 제국은 이승만의 간곡한 요청을 외면했다. 1953년 7월 7일 이승만은 미 제국 국무부 차관보 월터 로벗슨(Walter S. Robertson, 1893~1970)에게 보낸 서한에서 어느 일방이 침공을 받는 경우 다른 일방이 군사 지원을 제공하는 조항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초안에 명기되지 않아서 매우 실망했다고 썼다. 

 

위에 서술한 사정을 보면, 미 제국이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행동을 의무화한 조항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고의적으로 넣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미 제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해도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행동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던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 1953년 패전 위험에 빠진 미 제국

 

1953년 4월 3일에 작성된 미 제국 국가정보보고서(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s)가 기밀 해제되어 공개되었다. 국가정보보고서는 미 제국의 여러 국가정보기관들이 수집, 분석한 정보를 최종적으로 종합한 기밀문서다. 1953년 4월 3일 국가정보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놀라운 정보가 담겼다.

 

“1951년 중순 정전협상이 시작된 이후, 한반도에서 공산 측 군사력이 꾸준히 증강되어 왔다. (여기서 말하는 ‘공산 측 군사력’은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의 군사력을 의미한다 - 옮긴이) 그들의 군사력은 두 배 이상 증가되었고, 병참도 충분히 증가되었다. 전투기는 세 배 이상 증가되었다. 만주 지역에서 전폭기 100대가 생산된 것으로 판단된다. 대폭 향상된 공산 측 군대의 전투력은 양호한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판단된다. 잘 조직되고 충분히 통합된 그들의 방어지대는 교전지대에서 후방으로 15~20마일(24~32km - 옮긴이) 정도 더 넓어졌다. 방어지대에 요새가 많이 건설되었고, 현재 더욱 증가되고 확장되는 중이다.”

 

위에 인용한 미 제국 국가정보보고서는 1953년 초에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의 전쟁수행력이 대폭 증강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면 같은 시기에 미 제국군의 전쟁수행력은 어떠했을까? 

 

1953년 3월 5일 제임스 밴 플리트(James A. Van Fleet, 1892~1992)가 미 제국 연방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증언했다는 보도기사가 1953년 3월 6일부 동아일보에 실렸다. 미 제국 8군 사령관 겸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육군 대장 밴 플리트는 미 제국이 유엔기 아래 긁어모아 전선에 동원한 미 제국군, 한국군, 그 밖의 추종국가 군대들을 1951년 4월부터 1953년 2월까지 지휘했다. 그런 밴 플리트가 1953년 3월 5일 청문회에서 중요한 정보를 공개했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1953년 초에 미 제국은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군사지휘관을 50%밖에 확보하지 못했고, 전차부대 하사관은 30%밖에 확보하지 못했으며, 전투원도 80%만 확보했다는 것이다. 100%를 확보해도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군사지휘관과 전투원이 그처럼 턱없이 부족했으니 미 제국의 패색이 짙어진 것은 당연하였다. 당시 미 제국이 군사지휘관과 전투원을 충원하지 못한 이유는 전쟁을 2년 이상 계속해 오면서 사상자가 너무 많아져 충원 증가추세가 사상자 증가추세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에 서술한 두 가지 정보는 미 제국이 1953년 당시 전쟁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패전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미 제국의 선택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정전협정을 하루빨리 체결하는 것이었다. 

 

 

3. 깡통 조약은 미 제국의 유인책

 

패전 위험에 빠져 위급해진 미 제국이 정전협상을 서두르고 있는 판에 뜻밖의 장애물이 나타났다. 그 장애물이 바로 이승만이다. 이승만은 정전을 완강히 반대했다. 왜 그랬을까? 정전이 실현되면, 미 제국군이 대폭 감축되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의 전투력이 대폭 증강된 상황에서 미 제국군이 대폭 감축되면, 전쟁이 재발하는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한 일이었다. 미 제국군이 대폭 감축된 상태에서 전쟁이 재발하면, 이승만 종미우익정권과 한국군은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의 압도적인 공격을 받고 전멸할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가 이승만의 심경을 심하게 자극했다. 극도로 불안해진 이승만은 ‘정전반대 국민대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정전협상을 반대하는 관제 시위로 군중들을 내몰았다. 

 

1975년 8월 4일 뉴욕타임스는 기밀 해제된 극비문서들을 폭로하는 기사를 실었다. 폭로기사에 의하면, 1953년 5월 29일 미 제국 국무부 고위 관리들과 국방부 고위 관리들이 국방부 청사에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6.25전쟁 시기 전선을 지킨 미 제국 육군 참모총장 로튼 콜린스(J. Lawton Collins, 1896~1987)가 회의에서 전시 상황을 보고했다. 회의에서는 세 가지 방안이 논의되었다. 그것은 생떼를 부리면서 정전협상을 가로막은, 골치 아픈 장애물 이승만을 처리하기 위한 방안들이었다.

 

제1방안은 이승만에게 안보조약을 유인책으로 제공해 그가 정전협상을 반대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고, 제2방안은 미 제국의 뜻을 거역하는 이승만과 한국군 고위지휘관들을 체포, 구금하는 것이고, 제3방안은 미 제국군이 철수할 때까지 미 제국에 협력한다는 약속을 이승만에게서 받아내는 것이다. 

 

회의에서 국무부 부장관 프리먼 매튜스(H. Freeman Matthews, 1988~1986)와 국무부 차관보 월터 로벗슨은 미 제국의 뜻을 거역하는 이승만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육군 참모총장 로튼 콜린스는 이승만을 체포해야 한다고 했다. 미 제국 해군 참모차장 도널드 던컨(Donald B. Duncun, 1896~1975)은 이승만에게 유인책으로 안보조약을 제공하자고 주장했으나, 콜린스는 이승만을 체포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맞섰다. 오랜 시간 설왕설래한 끝에 이승만이 정전협상을 반대하지 않는 조건으로 미 제국이 이승만과 안보조약 체결을 위한 협상을 할 수 있다는 잠정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논의한 세 가지 방도를 비망록에 담아 아이젠하워에게 상신했다. 아이젠하워는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승만이 정전협상을 반대하지 않게 만드는 유인책으로 안보조약을 체결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1953년 5월 30일 미 제국 합참본부는 전선에 파견된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Mark W. Clark, 1896~1984)에게 1급 비밀전문을 보냈다. 비밀전문에는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와 당시 주한 미 제국 대사 엘리스 브릭스(Ellis O. Briggs, 1899~1976)가 미 제국이 안보조약 체결 협상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이승만에게 통보해 주고,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구조건을 이승만에게 제시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세 가지 요구조건은 다음과 같다.

 

1) 한국 정부는 정전협상을 반대하지 않고, 정전협상을 반대하는 선동에 군중을 동원하지 않는다.  

2) 한국은 정전협정 이행에 협력한다.  

3) 한국군은 미 제국과 한국의 상호방위조약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때까지 유엔군 총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는다. 

 

그러나 상황을 오판한 이승만은 위에 열거한 세 가지 요구조건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전협상을 계속 반대했다. 이승만은 1953년 6월 18일 자정을 기해 미 제국을 격분하게 만든 매우 위험한 망동을 저질렀는데, 그것이 바로 전쟁포로 집단탈출 사건이다. 이승만의 비밀지령을 받은 한국군은 1953년 6월 18일부터 닷새 동안 여러 수용소들에 갇혀있던 전쟁포로들 중에서 26,900여 명을 탈출시키는 대탈주극을 감행했다. 수용소 경비부대는 탈출하는 포로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6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고, 116명에 부상을 입혔으며, 8,200여 명의 탈출을 저지했다. 

 

이 사건은 미 제국에 격앙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전쟁포로 집단탈출 사건으로 미 제국이 “우방을 잃고 적을 얻었다”라고 격분했고,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는 전쟁포로 집단탈출 사건은 “미국의 등에 칼을 꽂는 짓”이라고 맹비난했으며,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는 전쟁포로 집단탈출 사건으로 “지옥문이 열렸다”라고 개탄했다. 

 

이승만이 전쟁포로 집단탈출 사건을 감행한 1953년 6월 18일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회의 제150차 회의가 소집되었다. 회의에서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이 감행한 전쟁포로 집단탈출 사건으로 정전협상이 파탄될 위험이 조성되었다고 탄식하면서 “그 위험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하고 신속한 방도는 군사정변”이라고 말했다. 아이젠하워가 언급한 “유일하고 신속한 방도”는 국무부 고위 관리들과 국방부 고위 관리들이 1953년 5월 29일 회의에서 논의한 세 가지 방안들 중에서 제2방안, 즉 미 제국군이 이승만과 한국군 고위지휘관들을 체포, 구금하는 것을 의미한다. 

 

 

4. 최후통첩이 장애물 치웠다 

 

1953년 6월 초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아이젠하워는 최후통첩에서 “당신이 미 제국에 협력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조치를 실행할 것”이라면서 “유엔군 총사령관은 당신의 결정에 상응하는 어떤 조치를 실행할 승인을 이미 받아놓았다”라고 노골적인 협박을 들이댔다.

 

아이젠하워가 최후통첩에서 언급한 조치는 1952년 7월 5일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가 미 제국 합참본부에 보낸 비밀보고서에 구체적으로 서술되었다. 비밀보고서에 의하면, 유엔사령부는 미 제국의 뜻에 복종하지 않는 이승만과 그 일파를 제거하고 과도정부를 수립한다는 실로 충격적인 내용이 들어있다.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가 그런 비밀보고서를 작성한 이유는 이승만의 폭압 만행으로 전선 후방에서 대혼란이 일어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1952년 이승만이 저지른 폭압 만행은 다음과 같다. 

 

서울을 빼앗기고 임시수도 부산에 내려가 피난살이를 하던 이승만은 1952년 5월 25일 느닷없이 전시계엄령을 선포하고, 야당 국회의원 50여 명을 북과 내통한다는 혐의로 체포, 연행했으며, 7월 4일에는 군대와 경찰을 내몰아 국회의사당을 포위하고 자신이 대통령에 재선되기 위한 이른바 ‘발췌 개헌안’이라는 것을 협박 분위기 속에서 통과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미 제국은 근심에 빠졌다. 폭압 만행을 당한 야당과 지지자들이 반이승만 투쟁을 각지에서 일으키면 이승만은 전시계엄령에 따라 유혈진압을 감행할 것이고, 그런 유혈사태가 일어나면 전선 후방이 대혼란에 빠져 가뜩이나 불리한 전세가 더 불리해질 것으로 우려했다. 그래서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는 이승만을 제거하기 위한 ‘에버레디 작전계획(Operation Plan Everready)’을 수립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임시수도 부산에 있는 이승만을 다른 곳으로 유인한다.

2) 미 제국군 전투부대를 임시수도 부산에 출동시켜 이승만을 추종하는 한국군 고위지휘관 5~10명을 체포하고, 유엔군 시설들과 한국군 시설들을 경비하고, 한국군의 전시 계엄통제권을 장악한다. 

3) 이승만에게 위와 같은 조치가 이미 시행되었음을 통보하고, 그가 전시계엄령을 해제하게 하고, 국회에서 행동의 자유를 허용하게 하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게 한다. 

4) 만일 이승만이 미 제국의 지시에 복종하지 않으면 그를 독방에 감금하고 국무총리 장택상이 전시계엄령을 해제하게 한다.

5) 만일 국무총리 장택상마저 미 제국의 지시에 복종하지 않으면, 유엔사령부가 이승만 정부를 해산하고 과도정부를 세운다.

6) 유엔군에 참여한 나라들의 요청에 따라 유엔사령부는 자기 임무를 거스르는 불법행위를 감행하는 자들을 제거하는 군사행동을 하였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에게 최후통첩을 보낸 직후인 1953년 6월 초 국무부 차관보 월터 로벗슨을 특사로 서울에 파견해 미 제국의 지시에 복종할 것을 이승만에게 요구했다. 이승만은 자신이 미 제국의 지시에 복종하지 않으면 목숨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을 것으로 직감하고 머리를 숙였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마침내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로부터 며칠 뒤 아이젠하워는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를 서울에 급파해 방위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미 제국의 시각에서 보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정전협상을 반대하며 거역 소동을 일으킨 이승만을 복종시키기 위한 유인책에 불과했으므로, 그 조약은 알맹이 없는 깡통 조약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미 제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깡통 조약으로 만들어 놓았는데도, 윤석열 정권은 “한미동맹 70주년 만세!”를 목청껏 외쳐대면서 맹신의 길을 가고 있다. 

 

 

5. 깡통 조약 제3조는 패전으로 직행하는 길

 

2023년 9월 28일 미 제국 국방부가 「대량파괴무기에 대응하는 전략 2023(Strategy for Countering Weapons of Mass Destruction 2023)」이라는 제목의 군사전략문서를 발표했다. 미 제국 국방부는 그 문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미국 본토와 역내 동맹국들 및 우호국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단거리, 중거리, 대륙간 사거리의 이동식 핵능력을 개발, 배치하고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핵)능력 개발은 갈등의 어느 단계에서도(at any stage of conflict)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선택권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제공한다”라고 기술하였다.   

 

▲ 「대량파괴무기에 대응하는 전략 2023」표지.     © 미 국방부

 

위의 인용문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선인민군이 임의의 시각에 미 제국 본토에 치명적인 핵타격을 가할 수 있을 만큼 핵전투 능력을 고도화했다는 사실을 미 제국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조선인민군 전략핵 타격부대가 기습적으로 발사한 화성-18형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미 제국 본토를 강타할 것이고, 그로써 미 제국은 파멸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비교적 솔직하게 공인한 것이다. 

 

미 제국 국방부가 미 제국 본토를 강타당하고 파멸의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공인한 것은 무슨 뜻인가? 거기에는 미 제국이 자국 본토에 화성-18형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떨어지는 파멸 위험을 감수하면서 한국을 방어해 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미 제국 본토를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조선의 핵공격 능력 앞에서 미 제국은 한미동맹을 포기할 것이라는 뜻이다. 백악관은 서울을 방어해 주기 위해 워싱턴을 핵피격 파멸 위험에 빠뜨릴 정도로 우매한 집단이 아니다.  

 

미 제국은 자국 본토를 방어하고, 역외 영토인 하와이, 알래스카, 괌을 방어하기 위해 일본에 외곽 군사기지를 설치했고, 일본 주위에 2개의 부속 방어망을 구축했다. 그것이 바로 한국과 대만이다. 그런데 최근 중미대결이 격화되면서 대만의 군사전략적 가치가 한국의 군사전략적 가치보다 훨씬 더 커졌다. 이것은 미 제국이 한국을 포기할 수 있어도 대만은 포기할 수 없는 특이한 상황 속에 놓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미 제국은 자국 본토와 영외 영토가 조선의 핵타격 위협을 받을 경우, 한국과의 군사동맹을 포기하는 대신 일본과의 군사동맹과 대만 방어에 군사력을 집중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놀라운 사실은, 미 제국이 미 제국 본토와 역외 영토가 조선의 핵타격 위험에 직면하는 경우 한미동맹을 포기할 ‘함정조항’을 깡통 조약에 들여놓았다는 점이다. 깡통 조약 제3조가 바로 그 함정조항이다. 깡통 조약 제3조에는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 헌법 절차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라고 명기되었다. 이 조항을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라고 명기한 미일상호안보조약 제5조와 대조하면 격차가 커 보인다. 각자 헌법 절차에 따라 군사행동을 하는 것과 그런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즉시 군사행동을 하는 것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깡통 조약 제3조에 의하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는 경우 미 제국은 자국의 헌법 절차에 따라 그 전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미 제국 연방헌법에 명기된, 전쟁을 결정하는 절차가 번거롭기 짝이 없다는 점이다. 

 

미 제국 연방헌법 제1조 8항에는 연방의회가 선전포고권을 행사한다고 명기되었다. 이 조항에 대한 법리 해석에 의하면, 전쟁을 선포하는 권한(선전포고권)은 미 제국 연방의회가 행사하고, 전쟁을 시작하는 권한(개전권)은 미 제국 총사령관인 대통령이 행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방의회에서 선전포고를 의결해야, 다시 말해서 연방의회가 전쟁을 승인해야 미 제국 대통령이 전쟁을 시작할 수 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 제국 연방의회는 서로 다른 적대국들을 상대로 여섯 차례의 선전포고를 각각 의결한 바 있다. 

 

그런데 그러한 전통이 미 제국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의 독단과 전횡에 의해 깨졌다. 그는 연방의회가 선전포고를 의결하지 않았는데도 1950년 코리아 전쟁을 결정했다. 미 제국 제36대 대통령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 1908~1973)도 연방의회가 선전포고를 의결하지 않았는데도 1964년 윁남[베트남] 전쟁을 결정했다. 

 

트루먼과 존슨의 독단과 전횡에 의해 깨진 전통은 1990년대에 복구되었다. 미 제국 제41대 대통령 조지 부쉬(George H. W. Bush, 1924~2018)는 1991년 연방의회의 승인을 받고 걸프 전쟁을 일으켰다. 미 제국 제43대 대통령 조지 부쉬(George W. Bush, 1946 출생, 2023년 현재 생존)도 연방의회의 승인을 받고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위에 서술한 내용을 보면,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는 경우 미 제국은 깡통 조약 제3조에 의거해 연방의회에서 전쟁 승인을 받으려 할 것이 분명하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의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1) 1991년 걸프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연방의회에서 전쟁 승인을 받은 절차를 보면, 하원에서 찬성 250표, 반대 183표로 전쟁을 승인했고, 상원에서 찬성 52표, 반대 47표를 전쟁을 승인했음을 알 수 있다. 

2)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연방의회에서 전쟁 승인을 받았을 때는, 미 제국 전체가 9.11 사태의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시기였으므로 하원에서 찬성 420표, 반대 1표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전쟁을 승인했고, 상원에서 찬성 98표, 반대 0표라는 만장일치로 전쟁을 승인했다.  

3)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연방의회에서 전쟁 승인을 받았을 때는 하원에서 찬성 296표, 반대 133표로 전쟁을 승인했고, 상원에서 찬성 77표, 반대 23표로 전쟁을 승인했다. 

 

위에 열거한 표결 상황은 연방의회에 존재하는 전쟁 반대 세력이 만만치 않은 표결력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미 제국은 연방의회의 승인을 받고 일으킨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 각각 패했다. 이 두 차례의 패전은 연방의회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뒤에 무력 개입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로써 젤린스끼 종미우익정권에 미국산 무기를 지원하지 못하게 가로막으려는 분위기가 연방의회에 조성되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는 경우 미 제국 연방의회는 군사력을 사용하는 문제를 놓고 찬반으로 갈려 격론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되는 것은, 분초를 다투는 현대전에서 군사력을 사용하는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이면 패전으로 직행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미 제국 연방의회의 전쟁 승인 절차를 명기한 깡통 조약 제3조는 한미연합군이 패전으로 직행하는 길을 예시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미 제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깡통 조약으로 만들어 놓았을 뿐 아니라, 그 조약 제3조에 패전으로 직행하는 길을 예시했는데도, 이번에 윤석열 정권은 “한미동맹 70주년 만세!”를 열심히 외쳐댔다. 우매한 정권이 깡통 조약을 맹신하면, 전쟁에서 패하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김건희, 김행, 한동훈’ 언급한 조국 “윤석열 ‘살권수’는 개소리”

 

  •  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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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0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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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연일 윤석열 정권과 검찰 비판 메시지

    요직에 검사 출신 임명하는 정권에 “신검부”

    검찰수사 비판할수록 그의 위법행위도 부각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1심서 징역형을 받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 및 양평 고속도로 변경 의혹을 수사하라”고 검찰을 질타했다. 이원석 검찰총장과 검사들이 윤석열 정권 사조직이 아니라면, 현 정권 인사에 대한 수사도 엄격해야 한다는 취지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목소리를 키우는 조 전 장관에 여러 해석이 나온다.

    조 전 장관은 1일 페이스북에 “이원석 검찰총장 및 휘하 검사들이 단지 ‘윤석열·한동훈 사조직’의 부하가 아니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문재인 대통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및 관계인을 수사하듯,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 의혹 및 양평 고속도로 변경 의혹을 수사하는 것.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듯, 해병대 박정훈 대령에게 압박을 가한 용산 대통령실 및 군 관계자들을 수사하는 것. △조국 장관 후보자 배우자의 차명주식 의혹을 수사하듯, 김행 장관 후보자 및 그 배우자, 친인척을 수사하는 것 △조국 장관 및 그 자녀를 수사하듯,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된 한동훈 장관을 비롯한 여러 부처 장관(후보자) 자녀의 인턴 증명서의 진위 및 과장(엄밀한 시간 확인)을 수사하는 것.”

    조 전 장관은 “최소 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검찰도 법치도 ‘사유화’된 것”이라며 “그리고 윤석열의 ‘살아있는 권력 수사론’은 완전 개소리”라고 비난했다.

    ▲ 조국 전 법무부장관. ⓒ연합뉴스

    조 전 장관은 연일 윤석열 정권 검찰에 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달 2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대선 경쟁자이자 야당 대표를 향한 영장실질심사 전까지 727일 동안 세 개의 청(서울중앙지검, 수원지검, 성남지청), 70여명의 검사가 376회 압수수색과 여섯 번의 소환조사를 벌인 결과가 구속영장 기각”이라고 꼬집었다.

    지난달 15일 노무현재단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북스’에선 “윤석열 대통령 처가 사람들을 변호했던 변호사들은 대부분 한자리 하고 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리를 챙겨줄 수 있는가 의문이 있다”며 “윤 대통령은 촛불혁명 시기 국정농단 수사를 했던 사람이다. 정권을 잡고 나니까 간첩조작을 했던 검사도 중용하고, 박근혜 탄핵이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검사 출신 변호사를 정부 외곽기관 주요 자리에 배치했다”고 지적했다. 조 전 장관은 최근 출간한 책 ‘디케의 눈물’에서 정부 요직에 검사 출신을 임명하고 있는 윤 대통령 인사를 ‘신검부’로 표현하며 비판했다.

    조 전 장관은 지난달 22일 친민주당 스피커 김어준씨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나와 내 가족 명예를 회복해야 하는 면이 있다”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서 극우로 달리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 고위 공직자로서 책임이 있다. 이 폭주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조 전 장관이 내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랐다.

    조 전 장관이 윤 대통령과 검찰을 비판할수록 그의 위법 행위와 부도덕도 함께 입길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다. 그는 자녀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등 혐의로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법원은 딸 조민씨의 ‘7대 스펙’ 창조 과정에 조 전 장관이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십 확인서와 부산 아쿠아펠리스 호텔 인턴십 확인서의 경우 조 전 장관이 직접 위조했다고 했다.

    언론도 조 전 장관 발언과 행보를 주목했다. 김윤덕 조선일보 선임기자는 지난달 26일 칼럼에서 “조국은 검찰이 국민들 공포의 대상이 됐다고 했지만, 검찰이 무서워 못 살겠다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공포로 치자면, 검찰보다 백주 대낮의 묻지 마 폭행범과 스토킹 살해범들이 훨씬 무섭다”면서 “신검부, 대한검국이라는 얄팍한 조어 선동에도 더는 속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조 전 장관이 “총선 정국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반검찰, 반독재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는 게 김윤덕 기자 생각이다.

    위지혜 매일경제 기자는 “조 전 장관 일가는 최근 잇따라 책을 출간하는 등 정치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조 전 장관 일가는 최근 이재명 대표 체제에 대한 야권 내 위기론이 불거지자 친문 세력의 대안으로 언급되며 주목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도연 기자 

    영토를 빼앗긴 주권 국가가 있는가

     

  • 장창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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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0.0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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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상호방위조약 70년]지구상에 이런 동맹은 없었다 ①

    ▶ 1953년 10월 1일 워싱턴 D.C에서 미국의 덜레스 국무장관과 한국의 변영태 외무장관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70년 전 오늘, 그러니까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다. ‘상호’라는 말은 장식에 불과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미국의 방위를 지원할 어떤 역량도, 자격도 없었다. 미국의 원조에 기대해 나라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 나라가 어떻게 미국을 지원하겠는가. 게다가 1950년 7월 14일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도 미국이 거머쥐고 있었다. 작전통제권을 상실한 나라가 작전통제권을 거머쥐고 있는 나라의 안보를 지원할 자격이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체결되었다. 마치 동등한 자격을 갖춘 국가들 사이에서 체결된 것처럼, 마치 한국과 미국이 대등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체결되었다.

    1953년 10월 1일 이승만 정부는 동맹을 체결할 자격조차도 갖지 못했다. 동맹은 자신의 군사력을 동맹국을 위해 사용하기로 약속하는 정치적 행위이다. 따라서 자기 나라 군대에 대한 작전권과 통제권을 갖고 있어야 동맹할 자격이 생긴다.

    그런데 미국은 이미 한국전쟁 시기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앗아갔다. 한국 군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거머쥔 미국이 한국과 동맹을 체결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작전통제권은 군사 주권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군사 주권을 상실한 나라는 동맹을 체결할 자격 자체가 없다.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여기는 사람들은 이승만이 결단과 지략으로 한미동맹조약을 체결하지 않으려는 미국을 설득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이 유지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미동맹조약은 우리의 영토를 미국 맘대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을 뿐이다. 이승만은 미국에 우리의 영토 주권을 넘겨준 사람일 뿐이다.

    냉전이 격화되는 시기,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대소전진 군사기지가 필요했다. 미국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군대를 원하는 만큼 주둔시킬 수 있는 권리, 즉 ‘주병권’을 대한민국에서 확보하고자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역사적인’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이다.

    제4조

    상호합의에 의하여 결정된 바에 따라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주변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許與)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이승만 정부는 주병권을 미국에 ‘허여’하고, 미국은 ‘수락’했다. 이로써 미국은 대한민국 영토와 그 주변에 미군 병력을 주둔시킬 수 있는 권리를 완벽하게 확보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가 ‘역사적인’ 이유는 어느 동맹조약도 이런 내용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일동맹조약만 하더라도 "미국은 그의 육군, 공군 및 해군에 의한 일본 국내의 시설 및 구역의 사용권을 허가받는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미국은 미군을 일본에 주둔시킬 때는 매번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게 되어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됨으로써 미국은 한국에 대한 군사 주권뿐 아니라 영토 주권마저 완벽하게 장악하게 되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70년을 맞는 오늘, 빼앗긴 우리의 군사 주권과 영토 주권은 여전히 미국의 손아귀에 있다. 대한민국이 주권 국가라고? 군사 주권과 영토 주권을 빼앗긴 주권 국가가 있었던가? 그런 경우를 식민지라고 부른다.

    장창준 객원기자 

    안보는 보수? 홍범도 논란, 수사 외압에 ‘일베’급 장관 후보자까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단상에서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지켜보며 장병들을 향해 박수 보내고 있다. ⓒ뉴시스

    10월 1일 국군의 날을 닷새 앞두고 성남 서울공항에서 기념식과 함께 육해공군 장병 6,700여 명이 참여한 열병이 진행됐다. 비닉 무기인 고위력 탄도미사일, 최신형 ‘현무’ 등 일반에 최초 공개되는 장비부대 행진도 이어졌다. 곧이어 10년 만에 서울 도심에서 군 시가행진이 실시됐다. 주한미군 전투부대원도 성조기를 휘날리며 처음으로 시가행진에 참여했다.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국군의 날 기념식이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직접 시가행진에 참여한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들이 위풍당당한 개선 행진을 보고, 여러분을 신뢰하고 우리 안보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지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대북 강경대응을 천명하면서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했다. 이날 시가행진이 대북 무력시위 성격임을 드러낸 셈이다.

    그러면서 “안보도 경제도 보수정부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말에 ‘보수정부’인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콧방귀를 끼고 있다. 하지만 안보는 무력뿐만 아니라 국가의 안녕과 국민의 안전에 대한 대비 시스템 전반을 포괄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안보는 보수정부가 낫다’는 증거를 윤석열 정부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안보에 있어서는 소모적인 이념전쟁만 불사르면서, 정작 병사 하나 지키지 못하는 무능함만 내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내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을 포함한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흉상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시스

    ‘항일 영웅’을 한순간에 ‘빨갱이’로 만드는 국방부


    윤석열 정부의 이념전쟁은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추진으로 촉발됐다.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이 1927년 소련공산당에 입당한 것을 문제 삼으면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겠다고 나서면서다. 앞서 육군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3월 1일 우리 군 장병이 훈련으로 사용한 실탄의 탄피 300kg을 녹여 홍범도 장군 등 독립운동가 5명의 흉상을 제작해 육사 교내에 세웠다.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의 전력이 “공산주의 북한의 침략에 대비하여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호국간성을 양성하는 기관”인 육군사관학교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홍범도 장관 흉상 철거를 밀어붙이고 있다.

    국방부의 이런 방침에 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봉오동전투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던 ‘항일 영웅’이 갑자기 ‘빨갱이’로 몰리게 됐다. 항일무장투쟁의 업적을 인정받아 1962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았고, 카자흐스탄에 있던 유해는 2021년 대한민국 공군의 호위를 받으며 송환됐으며, 여러 독립운동가와 함께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흉상이 세워졌던 인물이 바로 홍범도 장군이다. 그런 홍범도 장군을 갑자기 윤석열 정권이 지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국방부의 조치가 과도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홍범도 장군을 사상의 잣대로 평가하고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1945년 해방 이전까지 사회주의, 공산주의적 이념을 갖거나 소련 등의 도움을 받아 독립운동을 한 세력은 적지 않았다는 게 역사학계의 중론이다. 이제 와서 이들의 당시 사상을 문제삼아 배척한다는 건, 일제라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을 정부가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보수세력이 중시하던 안보의 핵심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안보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보수진영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철 지난 해묵은 공산주의 이념전쟁”이라며 “홍범도 장군을 존경하는 것은 독립전쟁 영웅이었기 때문이지 불가피했던 소련 공산당원 홍범도는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민생의 문제는 절대 아니고 심지어 이건 보수진영의 보편적인 지향점이라기보다는 그저 일부의 뉴라이트적인 사관에 따른 행동”이라며 “과거 무장독립운동에 나섰던 사람들 간에 크고 작은 알력이 있었을망정 이념에 따라서 그 평가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역사학계에서도 집단적인 반발이 터져 나왔다. 한국역사연구회 등 51개 역사단체는 “정부의 왜곡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자랑인 평민 의병장, 대한독립군 대장, 북로정일제일군 사령관 홍범도가 부관참시당했다”며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추진 계획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해병대 사관 제81기 동기회는 지난 8월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고 채 상병 순직에 대한 공정수사 촉구를 위한 해병대 총행동’을 가졌다. 이날 자리에는 동기뿐 아니라 여러 선후배들이 함께 했다. ⓒ뉴시스

    군에 입대했더니 돌아온 건 허무한 죽음, 그리고 진실 은폐


    해병대 1사단 포병여단 소속 채 모 상병의 사망 사건은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던 안보의 허점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

    올해 여름, 채 상병은 경북 예천 내성천 일대에서 호우 피해 실종자를 수색하다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당시 일병이던 채 상병은 해병대를 상징하는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구명조끼를 비롯한 안전장치 하나 제대로 갖추지 않았고, 일명 ‘인간띠’ 수색을 하다가 변을 당했다. 설령 구명조끼와 같은 안전장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도보 수색을 담당하는 포병이던 채 상병이 허리까지 물이 차오르는 강에 들어가 수색을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윗선’의 지시가 없었다면 말이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군인이 소모품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군에 입대했더니, 돌아온 것은 허무한 죽음이었다는 것이다. 군에 대한 신뢰는 추락했다.

    더 큰 문제는 채 상병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는 해병대 수사단이 맡았다. 그런데 경찰로 이를 이첩하는 과정에서 ‘윗선’으로부터 외압을 당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의 폭로를 통해 ‘윗선’의 수사 외압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그 핵심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기록에서 사건 현장 지휘 책임자로 꼽히는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빼고, 수사기록의 경찰 이첩도 보류하라는 것이었다. 수사단장이던 박 대령은 임성근 1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수사 결과를 내리고, 이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은 상태였다. 현행 법에 따라 박 대령은 이 수사기록을 경찰로 이첩하려고 하는데 거기서 ‘윗선’에 의해 제동이 걸렸던 셈이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개입이 있었다는 정황도 나오고 있다.

    이후 박 대령은 수사단장 보직에서 해임될 뿐만 아니라 ‘항명죄’로 기소돼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받고 있다. ‘윗선’의 지시를 무시하고 경찰로 수사기록을 이첩했다는 혐의다. 박 대령은 수사 외압을 주장하며 계속 법적 다툼을 이어나가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관련자들을 조사하고 있다. 채 상병 사망 사건은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이지만 그 진실은 여전히 안갯속이고, 박 대령의 항명 사건으로 비화한 형국이다.

    안보의 핵심 축이라고 불리는 군대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혼돈은 보수세력의 지지층도 혀를 내두르게 하고 있다. 전국의 해병대 예비역과 박 대령의 해병대 사관 동기들은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채 상병 사망 사건과 이와 관련한 수사 외압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공정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당시 해병대 사령관을 역임한 전도봉(80) 예비역 중장은 “부하는 상관의 지시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다 죽음으로 충성했는데 이제는 상관이 죽음으로 보답해야 한다. 즉 현실의 해병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휘관이 희생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9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09.27. ⓒ뉴시스

    군사 쿠데타 옹호 논란 휩싸인 ‘극우’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이 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결국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혔다. 야당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실 은폐와 수사 외압의 책임을 물으며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선제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윤 대통령은 하루 만에 서둘러 이 장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는 수사 외압 의혹의 진상규명을 막아선 결과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윤 대통령이 신임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을 지명한 것은 안보의 추락한 신뢰를 더 이상 회복할 생각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신원식 후보자는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이완용, 쿠데타와 민간인 학살을 일으킨 전두환을 옹호하거나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공작’ 사건이 날조된 것이라고 왜곡 주장을 하는 등 부적절한 언사와 극우적인 성향으로 수차례 구설수에 올랐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2019년 자유한국당 주최 집회에 예비역 장군 신분으로 연단에 올랐던 신 후보자는 “이완용이 비록 매국노였지만 한편으론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완용을 옹호하는 반면, “이완용과 비교도 되지 않는 오천 년 민족사의 가장 악질적인 매국노가 문재인”이라며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힐난했다.

    또한 신 후보자는 같은 해 유튜브 채널 ‘신인균의 국방TF’에 출연해 전두환 씨에 대해 “뭐 사람들은 독재자라는데, 박정희 대통령 돌아가신 그 공백기에 서울의봄 일어나고 그래서 저는 그때 당시 (전두환이) 나라 구하겠다 나왔다고 본다”며 “그런데 광주에서 사격명령, 방문한 적도 없는 전 대통령 불러서 저 망신을 주는데 누구 하나 보호해 주는 사람 있나”라고 성토했다.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군사 쿠데타를 옹호하는 시각을 보인 셈이다.

    그는 같은 해 극우 성향의 전광훈 목사 집회에 참석해서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을 파멸로 이끌었던 촛불은 거짓이고, 지금 태극기는 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문재인 당시 대통령에 대해 “내려오지 않으면 쳐들어가서 끌어내리고 다윗이 골리앗의 검을 뺀 것처럼 목을 날려야 한다”고 막말을 하며 춤을 추기도 했다. 아울러 “문재인은 취임하자마자 한국군의 정신을 파괴시킨다”며 “공관병 갑질, (군) 사이버사 댓글, 계엄령 모의 날조 이런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 후보자는 2020년 미래통합당 비례대표로 정치에 입문한 뒤로도 국회에서 여러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올해 4월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오염수”라는 단어를 쓰면 “특정 이념에 매몰된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해병대원 사망사건 조사 및 이첩 과정에서 국방부 윗선의 외압이 있었다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해서도 “3류 저질 정치인 망동”이라고 비난했다.

    최근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선 “북한 공산주의와 싸워서 나라를 지킨 육사에서 홍 장군의 졸업장을 준 그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독립운동가인 홍범도 장군의 육군사관학교 명예졸업증서 회수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신 후보자가 육군 중장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군을 지휘하는 국방부 장관으로서 자격이 있느냐는 의문이 뒤따른다. 논란이 커지자 신 후보자는 뒤늦게 자신의 과거 발언에 대해 바짝 자세를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신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쿠데타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해명하거나 ‘문 전 대통령의 목을 날려야 한다’는 발언에 대해선 “적절치 않았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발언을 주워 담기에는 이미 늦었다. 국회 다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철 지난 종북, 공산주의 타령이나 하는 신 후보자가 있을 곳은 국방부가 아닌 아스팔트 우파의 집회 현장”이라며 윤 대통령에게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수사 외압으로 물러나는 국방부 장관은 물론이고, ‘일베’(극우 성향 커뮤니티) 성향의 국방부 장관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최지현 기자 ” 응원하기

    냉전의 내전화, 尹대통령 '이중 전쟁' 종착지는?


    한 배 탄 尹·바이든 앞에 드리운 '트럼프 변수'

    임경구 기자  |  기사입력 2023.10.02. 05:04:13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다. 보름 뒤 치러진 한국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됐다. 5월 21일, 윤 대통령은 취임 열흘 만에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국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소그룹을 만들지 말라"고 미국을 견제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윤 대통령은 "보편적 가치 공유", "자유의 가치 재발견"을 강조했다. 한미동맹을 외교의 근간으로 삼는 한국 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가치동맹'을 거부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했다. 미중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표상하는 신냉전의 먹구름 속에 출범한 보수 정부의 불가피한 선택으로 인정받았다.

    곧바로 한미동맹, 한미일 공조 강화로 직진했다. 올해 4월 핵 기반 동맹 관계로 다가선 한미 '워싱턴 선언', 한미일 안보 협력 제도화의 발판을 마련한 9월 '캠프 데이비드' 합의는 윤 대통령이 올라탄 가치동맹의 소산이다. 이전 정부에서 최악으로 치달았던 한일관계는 "미래지향적 관계"로 전환했다. 

    대신 한중 관계에 기회비용을 초래했다. 북한과 러시아의 '위험한 거래'도 대가로 돌아오고 있다. 한일관계 개선의 비용도 만만찮았다. 강제징용 문제에서 일본은 배상을 거부하고 사죄도 유보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한국 정부에 난처한 상황을 안기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처음부터 내치와 외치의 경계를 허물고 국정에 임했다. 취임사에서 "우리나라는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를 분리할 수 없다"면서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할 때 국내 문제도 올바른 해결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 예고에 따라 신냉전적 국제 질서에는 모호성을 폐기하고 대응 기조를 잡았다. 동시에 내전에 가까운 국내 갈등도 전면화했다. 화물연대, 건설노조, 민주노총, 시민단체를 몰아붙인 '이권 카르텔' 척결,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흑백 논리가 이념 전쟁으로 거칠어졌다. 

    지난 6월 자유총연맹을 찾은 윤 대통령은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했다. 

    8.15 광복절 경축사에선 '공산전체주의'라는 생경한 용어를 반국가 세력의 정체를 지칭하는 의미로 썼다.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

    9월 국립외교원을 방문해선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그리고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미일 협력 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했다.

    이념 갈라치기는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을 정치 한복판에 끌어올렸다. 급기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윤 대통령은 "이념보다는 실용이라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분명한 철학과 방향성 없이는 실용이 없다"며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고까지 했다. 

    "이념적으로 극과 극이라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장관들이 적극적으로 싸우라"고 다그친 내각도 흡사 '전시 내각'을 방불케하는 진용으로 구성했다. 극렬한 반대론을 무릅쓰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김영호 통일부 장관을 임명한 데 이어 신원식 국방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를 발탁한 인사 기조는 '이념 투사' 전진배치다.


    총선과 美 대선, 尹 앞에 놓인 두 번의 고비

    가장 공격적인 방식으로 냉전과 내전을 병행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 결산은 내년에 이뤄진다.

    첫 번째 고비는 4월 총선이다. 적어도 그때까지 윤 대통령은 '이념 전쟁'을 누그러뜨릴 기색이 없다. 지지층을 강화하고, 중간층을 끌어당기고, 반대층을 약화시키는 선거공학에 어긋나더라도 윤 대통령 스타일상 후퇴하지 않을 거란 관측이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윤 대통령의 인식은 내면화돼 있다"며 "보수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역사인식, 국제질서 인식에서 의외로 강경보수적인 윤 대통령의 면모가 드러났다"고 했다. 

    최 교수는 "특히 미국, 일본과 가까워지면서 본능적인 미일 친화적 의식이 국내 정치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시대와 맞지 않는 '공산전체주의', '반국가세력' 같은 표현들은 그래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이념 전쟁으로) 보수층은 결집하겠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중도층에게는 선거공학적으로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제질서의 분기점이 될 내년 11월 미국 대선은 국내외를 관통해 윤 대통령이 뛰어든 '체제 전쟁'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할 최대 변수다.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가치동맹'의 핵심 파트너인 윤 대통령의 국제적 위상도 높아진다. 한미일 군사협력 제도화,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의 동력이 채워지는 동시에 국정방향 설정의 정당성을 인정받게 될 전망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바이든 정부와 전혀 다른 미중 관계, 미러 관계 설정이 예상된다. 공화당 대선 주자들을 압도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근 바이든 대통령마저 오차범위 밖인 9%포인트 차이로 제쳤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와 술렁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김성한 교수는 최근 학술대회에서 "미 대선 예비주자 중에는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 경시적 사고를 가진 인사들이 있다"며 "앞으로 1년 반 정도가 우리에게 주어진 골든타임"이라고 했다.

    트럼프 재집권이 현실이 될 경우 '워싱턴 선언'과 '캠프 데이비드 합의' 등 윤 대통령이 공들인 외교적 성과가 한꺼번에 초기화될 수 있어 서둘러 '핵우산' 정책의 불변성을 완성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동맹 정부의 성격과 이념을 구분하지 않고 청구서를 내밀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고립주의는 한국 정부도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과 '주한미군 철수' 압박으로 경험한 바 있다. 

    최창렬 교수는 "만약 트럼프가 당선되면 윤 대통령의 인식의 기초가 무너지는 것"이라며 "최근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한중, 한러 관계가 관리돼 있지 않은 윤석열 정부가 국제정세를 너무 낙관적으로 해석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했다.

    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