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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3일 목요일

‘유엔사령부’는 유엔기구가 아니다

 


  • 기자명 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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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9.04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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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사령부’의 정체와 문제점(1)

편집자주

앞으로 4차례에 걸쳐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에서 발표한 자료집, <‘유엔사령부’의 정체와 문제점>을 연재한다.

2019년 4월 25일 국내외 평화운동단체들이 국어·영어·일어 3개 국어로 작성된 유엔사령부 해체 국제선언문의 발표를 시작으로 유엔사 해체 국제운동을 진행하였다.1차 선언에는 유엔 공식 NGO인 국제민주법률가협회를 필두로 140여 명의 국내외 인사와 37개 단체가 참여했다.
이후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실행위원장 이장희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이 결성하고 본 자료집을 발표하였다.

 

차례
1. 유엔사령부는 유엔 기구가 아니다
2. 유엔사령부는 한국의 주권을 침해한다 
3. 유엔사령부를 따라 일본 자위대가 들어온다
4. 군사기구가 정치·외교기구로

머리말 : ‘유엔사령부’는 왜 해체되어야 하는가

죤 리

우리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유엔이 파견한 기구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유엔사령부’는 유령부대이자 가짜 군사기구다.

최근 우리는 한국전쟁 발발 70년과 3년 간의 잔혹한 전쟁을 멈춘 군사정전협정 67주년을 넘어섰다. 우리는 이 긴 기술적 전쟁의 여정을 언제, 어떻게 끝내야 할지 심사숙고해야 하는 중요한 역사적 시점에 와있다.

이제 민족의 앞길을 가로막는 현 전시상태를 과감히 끝내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할 역사적 전환점에 섰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 지도자들이 2018년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이 목표를 8천만 민족 앞에 엄숙히 선언한 것 아닌가? 

그런데 무엇이, 누가 이 정도를 막고 있는가? 남북 분단체제를 통해 수조 원의 첨단 군사무기를 팔아먹고 한국을 영원한 자국의 군사기지로 유지하려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탐욕, 그것이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미국은 그동안 한국 정부의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요구에 응하는 척하면서, 2014년부터는 한국과 일본에서 명맥만 유지해오던 소위 ‘유엔사령부(유엔사)’의 재활성화를 적극 추진해왔다. 그것은 미국이 앞으로 전시작전권을 반환해도 한반도 유사시 다시 ‘유엔사’의 이름으로 한국군을 통수하거나, 1978년 ‘유엔사’가 한미연합군사령관에게 이양한 전시작전권을 ‘유엔사’의 이름으로 환수하려는 의도에서 추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소위 ‘유엔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의 역사와 정체는 무엇인가? 아마 북을 제외한 대다수 남측 사람들은 ‘유엔사’가 국제연합(UN)이 설립한 유엔의 군사기구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유엔사’는 유엔이 창설한 유엔의 군대가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에 유엔의 이름을 도용한 미국의 군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미국 정부는 지금까지 마치 미국 군대가 유엔군으로서 한국전쟁에 참가한 것처럼 자국민과 우리 민족, 그리고 세계를 기만해왔다.

그리고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라는 그 명분 하나로 지금까지 남북 간 교류와 협력, 평화통일을 위한 수많은 노력을 사사건건 방해하고 가로막아왔다. 

우리들이 이 사실을 정확히 이해할 때 ‘유엔사’의 부활이 아니라 해체를 미국에 강력히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길이 바로 우리 민족의 완전한 독립과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이 소책자를 마련했다.

뉴욕에서 / 2020년 8월 15일

▲ 유엔본부 앞에 선 코리아국제평화사절단(2019. 9) [사진 : 자료집 중에서]
▲ 유엔본부 앞에 선 코리아국제평화사절단(2019. 9) [사진 : 자료집 중에서]

 

1. 유엔사령부는 유엔 기구가 아니다

1) 1950년 6월 27일 안보리 결의의 문제 (자료1)

▲ 자료1. 유엔 안보리 결의 S 1511(1950. 6. 27) [사진 : 자료집 중에서]
▲ 자료1. 유엔 안보리 결의 S 1511(1950. 6. 27) [사진 : 자료집 중에서]

유엔이 한 나라의 주권에 개입하려면 분쟁이 발생했을 때 유엔헌장 39조에 따라 두 개의 절차를 우선 밟아야 한다.

첫 번째 절차는 해당 분쟁의 성격이 ‘평화의 위협’, ‘평화의 파괴’, ‘침략’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결정하는 것이다. ‘평화의 위협’에 해당되면 예방하면 되고 ‘평화의 파괴’에 해당되면 복구하면 되므로 이들 경우엔 평화적 해결책이 요구되고, ‘침략’에 해당되면 군사적 해결책이 요구된다.

그리고 두 번째 절차는 ‘권고하기’와 ‘조치하기’ 중 하나를 정하는 것이다. 평화적 해결책에는 권고하기를, 군사적 해결책에는 조치하기를 각각 결정해야 한다.

유엔 안보리 결의 제82호(1950. 6. 25)는 한국전쟁이 ‘평화의 파괴’에 해당된다고 결정하고 “북의 38선 이북으로의 철군과 적대행위 중지 촉구, 모든 회원국에게 결의 이행과 관련해 유엔에 대한 지원 제공 촉구”를 권고했다.

여기서 ‘권고’가 문제가 된다. ‘권고’는 오직 유엔헌장 6장에 나열된 평화적 해결에 대해서만 사용하도록 헌장 제정 당시부터 명확히 정의되었다. 유엔헌장에 근거하지 않으면 안보리의 결정이라도 유엔 결의가 될 수 없다.
 
이에 따라 회원국으로서 UN에 대한 지원을 제공한 나라 가운데 군대를 보낸 나라가 16개국이었다(일본은 비공식 참전). 처음부터 유엔 안보리는 헌장 제42조에 근거한 군사적 제재 조치(military sanctions measures)를 결의한 것이 아니었다. 실례로 1947년 8월 1일 인도네시아-네덜란드 전쟁 시 안보리 결의는 39조에 표현된 평화의 위협, 평화의 파괴, 침략행위의 존재를 결정하는 대신 ‘적대행위의 진전에 주목하며’라고만 했는데 이는 후에 유엔의 제재 조치로 인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유엔 회원국이 한국전쟁에 군대를 보내 참전한 것은 유엔의 군사조치로 인정받을 수 없는 각국의 자발적 조치였을 뿐이다. 미국과 참전국들이 한국을 위해 피를 흘리는 희생을 치렀지만, 그들이 유엔헌장이 정한 대로 행동하지 않아 발생한 위법에 대해서는 그것대로 객관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

 

2) 1950년 7월 7일 안보리 결의 제84호의 문제 (자료2)

▲ 자료2. 유엔 안보리 결의 S 1588_1950. 7. 7 [사진 : 자료집 중에서]
▲ 자료2. 유엔 안보리 결의 S 1588_1950. 7. 7 [사진 : 자료집 중에서]

흔히 유엔사령부 창설 결의라고 알려진 1950년 7월 7일의 결의 어디에도 유엔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미국통합군사령부(Unified Command under the U.S.)의 창설을 권고했을 뿐이다. 유엔사령부라는 이름은 미국이 임의로 도용하고 있는 명칭에 불과하다.

▲ 자료3. 블루랜서밸리 유엔기 [사진 : 자료집 중에서]
▲ 자료3. 블루랜서밸리 유엔기 [사진 : 자료집 중에서]

또한 이 결의에서 참전국 군대에게 유엔기의 사용을 승인했으나 1947년 처음 만들어진 유엔깃발법에는 군사작전에서의 유엔기 사용에 대한 조항 자체가 없었다. 군사작전에서의 유엔기사용에 대한 조항은 20여일이 지난 후인 1950년 7월 28일 유엔깃발법에 처음 추가된 것이어서 사후입법에 불과했다. 또 유엔깃발법에는 사용승인 권한이 오직 유엔 사무총장에게만 있다고 되어있다. 안보리는 유엔기 사용승인 권한이 없으며 그 당시 사무총장이 안보리에 깃발사용 승인권을 위임했다는 증거도 없다.

그래서 1972년부터 유엔총회에 유엔사의 유엔깃발 사용 금지결의안이 계속 상정되자 미국은 1975년 8월 28일부로 주한미군기지에 게양하던 모든 유엔깃발을 내려야 했다(자료3). 또 1993년 12월 24일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은 판문점을 방문한 자리에서 유엔깃발을 가리키며 유엔사의 유엔기 사용을 자신은 승인한 적이 없다고 명확히 밝혔다. 

▲ 자료3-1. 국제민주법률가협회가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유엔깃발 관련 질의서_2019. 9. 30 [사진 : 자료집 중에서]
▲ 자료3-1. 국제민주법률가협회가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유엔깃발 관련 질의서_2019. 9. 30 [사진 : 자료집 중에서]

이에 2019년 국내외 평화운동단체들은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진 마이어 의장의 이름으로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유엔깃발 사용승인 권한을 가진 책임자로서 유엔사의 유엔깃발 사용금지 명령을 내릴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민간 유엔외교를 시작하였다.(자료3-1)

 

3) 1975년 11월 18일 유엔총회의 유엔사 해체 결의 (자료4)

1975년 유엔총회에서는 미국을 지지하는 나라들과 북한(조선)을 지지하는 나라들이 각각 제출한 유엔사 해체 결의안이 모두 통과되었다. 양측의 조건은 약간씩 달랐지만 유엔사 해체를 결정했다는 점에서는 같다. 더구나 미국이 내건 조건은 정전협정이 유지되는 것이었다. 75년부터 지금까지 정전협정이 유지되었으므로 미국 측이 내건 조건조차 현재 시점에선 완전히 충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이 결의를 훼손시키기 위해 유엔총회 결의가 헌장 상 법적 효력이 없다는 논쟁을 일으켰다. 유엔헌장(제12조 1항)에 의하면 안보리만이 국제평화와 안보에 대한 1차적 결정권이 있으나 미국이 주도한 1950년 11월 “평화를 위한 단결” 결의는 안보리가 국제평화와 안보에 1차적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는 총회가 2차 책임을 질 수 있다는 해석을 관철시키고자 했다. 이 정치적 결의는 거의 인용된 적이 없지만 함마슐드 2대 유엔사무총장 이래 총회의 결정은 추후관행으로서 그 효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총회 결의가 소위 ‘연성법’(Soft Law)의 권위를 갖게 된 것이다. 더구나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총회 연설에서 1976년 1월 1일부로 유엔사 해체를 약속함으로써 이 결의의 효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 자료4. 1975년 유엔총회 유엔사 해체 결의안 [사진 : 자료집 중에서]
▲ 자료4. 1975년 유엔총회 유엔사 해체 결의안 [사진 : 자료집 중에서]

 

게다가 1994년 6월 24일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은 “안보리는 유엔 산하조직으로서 통합군사령부를 설립한 적이 없으며 미국 주권 하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1998년 12월 21일 코피 아난 사무총장 역시 한국전쟁 당시 미국에 대해 “나의 전임자들 누구도 유엔 이름을 사용하도록 어떤 국가에 어떤 권한도 위임한 적이 없다”고 확인했다. 2004년 7월 27일과 2006년 3월 6일 반기문 사무총장의 대변인 역시 “유엔사령부는 그 이름에도 불구하고 유엔이 아닌 미국이 주도하는 군대이다”라고 확인했다.

나아가 2018년 9월 27일 안보리 회의에서 로즈마리 디카를로 유엔 사무차장은 “(안보리는) 오늘 저에게 ‘통합군사령부’로 알려지기도 하는 ‘유엔사령부’에 대해 설명하도록 요청했습니다...그 이름에도 불구하고 유엔사령부는 유엔 활동이나 조직이 아니고, 유엔의 명령과 통제 아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안전보장이사회의 하부 조직으로 설치된 것도 아니며 유엔 예산을 통해 자금을 받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유엔사령부와 유엔 사무국 사이에는 아무런 보고선이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국의 유엔대표부 부대사로 3년 간 재직한 미 국무성 고위관리가 유엔의 입장을 공식 재확인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엔사’는 유엔의 주요 기구(main organs)도, 전문기구(specialized agency)도 보조기구(subsidiary Organ)도 아니다. 국제법적으로 유엔사는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2003년 대량살상무기라는 조작된 정보로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얻지 못해 미국 주도로 다국적군을 구성한 것과 유사하다.

이는 또한 1998년 2월 27일자 「유엔사 일반명령 제1호」에 의해서도 명확해진다. 이 명령에 의하면 유엔사 육·해·공군과 해병대·특전사령관은 주한미군의 각 군사령관이 모두 겸직하도록 하고 있다. 유엔사령부는 곧 모자만 바꿔 쓴 주한미군사령부인 것이다.
 
이에 2019년 4월 25일 국어·영어·일어 3개 국어로 작성된 유엔사령부 해체 국제선언문의 발표를 시작으로 유엔사 해체 국제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1차 선언에는 유엔 공식 NGO인 국제민주법률가협회를 필두로 140여 명의 국내외 인사와 37개 단체가 참여했으며, 이후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이 결성되기에 이르렀다.(자료4-1)   

▲ 자료4-1.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 1차 국제선언(2019. 4. 25) [사진 : 자료집중에서]
▲ 자료4-1.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 1차 국제선언(2019. 4. 25) [사진 : 자료집중에서]

 

유엔사 정체와 문제점 자료집 링크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

2019년 4월 25일 140명의 국내외 인사들과 37개 국내외 단체들이 참여해 <평화의 시대, 냉전의 유물 유엔사 해체를 촉구하는 1차 국제 선언발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1차 선언에 참여한 단체들은 유엔사해체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가짜 ‘유엔사’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이라는 상설운동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
주소 서울시 종로구 통일로 162 덕산빌딩 502호
연락처 전자우편 unc427@gmail.com / 홈페이지 www.fakeunc.org
문의 C.P. 010-4244-1387(사무총장 류경완)
후원계좌   국민은행 533301-01-165685, 예금주 류경완(유엔사해체캠페인)

가짜 ‘유엔사’ 해체를 위한 국제캠페인 실행위원회

이장희 (사)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실행위원장)
류경완 (사)코리아국제평화포럼 공동대표(사무총장)
권오혁 사무국장

고은광순 평화어머니회 상임대표
이시우 작가
죤 김 변호사(뉴욕)
정연진 Action One Korea 한국 공동대표
이기묘 Action One Korea 한국 공동대표
리미일 (사)코리아국제평화포럼 이사
박영태 (사)코리아국제평화포럼 이사
김종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장

함께 하는 단체 및 인사

1. 국내 단체 및 인사

<학계>
조영건(경남대학교 명예교수),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이재봉(원광대학교 교수), 이래경(다른백년 이사장)

<법률가 단체 및 변호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회, 박진석(변호사), 심재환(변호사), 허진선(변호사), 권정호(변호사), 남성욱(변호사), 박삼성(변호사), 오민애(변호사)

<사회단체>
여인철, 한성, 안승문(평화연방시민회의), 홍근진(AOK), 윤기진(국민주권연대), 이양수(민주노동자전국회의), 한찬욱(사월혁명회 사무처장), 이윤(사월혁명회 대외협력위원장), 박행덕(전국농민회총연맹), 장남수(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김옥임(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한미경(전국여성연대), 이규재(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곽호남(진보대학생네트워크), 권낙기(통일광장), 권오헌(양심수후원회), 한충목(한국진보연대), 김수남(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 김진수(전국빈민연합), 최영찬(빈민해방실천연대), 조순덕(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김명환(민주노총), 심종숙・홍성미(평화통일시민연대), 김기준・이천동(평화재향군인회), 신수식(유라시아평화의길)

<정당>
이상규(진보당), 남기방(대전세종건설지부)

2. 국제단체 

<국제민주법률가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Democratic Lawyers - IADL)> 
진 마이어 미국 변호사(국제민주법률가협회장), 베냐민 야스민(알제리 변호사), 마리오(아이티 변호사), 에드레 올릴리아(필리핀 변호사, 필리핀 민중변호사 전국노조 대표), 라샤리(파키스탄 변호사), 무하마드 가니(파키스탄 변호사), 니로퍼(인도 변호사)

<아시아-태평양법률가협회(Confederation of Lawyers of Asia and the Pacific-COLAP>
사사모토 준(일본 변호사, 아시아태평양법률가협회 사무총장), 하산 아브라르(파키스탄 변호사, 아시아태평양법률가협회 부회장)

3. 해외 단체 및 인사

미국
오인동(6.15 미국위원회 공동위원장), 미주 양심수후원회 김시환 위원장, 회원 송영애, 왕용운, 민중당 뉴욕연대 한익수,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재미본부 백승배, 재미동포전국연합회 김현환, 진보의 벗 하용진, 전쟁 너머 세계(뉴욕) 앨리스 슬레이터, 에이미 하리브(뉴욕, 평화・정의 지구와의 조화를 위한 요가), 아리얼 키(캘리포니아, 평화 예지가), 부르스 개그넌(메인, 우주 무기와 핵을 반대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러셀 레이(메인, 활동소나위협에 반대하는 시민들), 나타샤 메이어즈 (메인, 메인주시각예술가협회), 윌리엄 그리핀(펜실베니아, 평화보고서), 캐롤 어너(오레곤, 평화와 자유를 위한 국제여성연맹), 데니스 아펠(캘리포니아, 카톨릭 노동자), 다이아나 본(캘리포니아, 버클리시 평화 및 정의위원회 위원), 프랭크 코다로 (아이오와, 카톨릭 워커스), 전쟁반대환경주의자들(캘리포니아), 홀리 그라함(수행자), 구한 백 만더(하와이), 램지 림(메사추세츠, 보스턴대학 명예교수), 수바라타 고시로이(메사추세츠공대 교수, 도쿄공대 과학기술사회연구제휴프로그램 객원교수) 외

영국
엔지 젤터(슈롭셔, 2012년 노벨평화상 후보 및 트라이던트 플라우쉐어 설립자)
데이브 웹(웨스트요크셔, 국제 평화국 부소장,  우주 무기와 핵에 반대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의장, 핵무기 해체를 위한 영국 캠페인 위원장)
린디스 퍼시(노스요크셔, 미군기지 감시를 위한 캠페인 공동창립자)

캐나다
미셸 초서도브스키(오타와, 오타와대 경제학 명예교수, 세계화연구소 연구소장)
타마라 로린츠(온타리오, 평화를 위한 캐나다여성의 목소리 국가위원회)

일본
후지이 가쓰히코(나고야, 전쟁반대 네트워크), 이시이 히로시(도쿄, 회사원), 이소가이 지로(아이치현, 작가), 정종순(일본 나고야, 개호복지사), 사카이 겐지(나고야, 전쟁반대 네트워크), 야마모토 미하기(일본 나고야, 단체직원), 와타나베 겐주/가토 마사키/오자와 다카시(도쿄, 일한민중연대전국네트워크), 기타가와 히로가즈(사이타마, ‘일한분석’ 편집인), 조선의 자주적 평화통일 지지 일본위원회, 기무라 히데토(나가사키, 나가사키 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쿠와노 야수오(야마구치, 시모노세키 일본과 한국을 잇는 모임), 호소이 아케미(도쿄, 시민의 의견회), 한일 스톤워크 코리아, 일본국제법률가협회 외

스웨덴
아그네타 노버그 (스웨덴 평화협의회의장. 우주 무기와 핵을 반대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이사)

인도
아루나 캄밀리아(비샤카파트남, 다모다람 산지바야 국법대학 조교수)
잠무 나라야나 라오(인도 우주 무기와 핵을 반대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이사)

호주
마릭빌 평화그룹(뉴사우스웨일스), 닉 딘(뉴사우스웨일스, 마릭빌평화그룹 의장), 호주 반기지 운동 연합 (AABCC), 데니스 도허티(시드니, AABCC 전국 코디네이터), 한나 미들턴 박사(시드니, AABCC 우주전쟁반대활동가), 쉐린 히바드(쿡, 팔머스턴 럭키스쿨교장)

독일
파울 쉬나이스(하이델베르그)  

  • #유엔사 #가짜유엔사 #국제캠페인




  • 2020년 9월 2일 수요일

    한국 좌파 지배해 온 혁명의 노스탤지어여, 이젠 안녕

     [장석준 칼럼] 비혁명의 시대를 넘어 전환의 시대로

    1991년 5월의 기억은 한국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의 역사에 크나큰 상흔으로 남아 있다. 경찰 폭력으로 강경대 열사가 무참히 희생되자 폭발한 전국적 시위는 4년 전 기억(1987년 6월 항쟁)을 떠올리게 만들며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러나 불과 4년 전의 경험과는 달리 그해 5월은 쓰라린 죽음의 기억만을 남긴 채 패배로 끝나 버렸다. 그렇다. 패배였다. 이것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비혁명의 시대>의 저자는 이 패배가 이후 한국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을 둘러싼 논의와 고민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를 추적하려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미처 책을 들기도 전에 이와는 다른 방향의 상념에 빠져들었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든 것이다. ―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좌파를 움직여온 힘은 과거의 향수, 노스탤지어가 아니었을까? 제5공화국과 제6공화국 내내 이 사회를 바꿔보려 노력했던 이들은 실은 미래가 아니라 오히려 이미 패배가 확정된 과거에 매달려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한국 좌파를 지배해온 노스탤지어적 이념들


    1991년 5월의 거리에서 막연하나마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은 1987년에 미완으로 남은 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한다는 생각이었다. 군부독재 세력이 심판을 받기는커녕 선거로 집권을 연장한 제6공화국은 1987년 6월의 거리에서 희구했던 그 민주주의 혁명의 모습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민주주의 혁명은 절대 끝난 게 아니었다. 단지 긴 소강 국면을 지나고 있을 뿐이었다. 비록 앞에 붙은 수식어는 다르더라도 '민주주의 혁명(DR)'론을 내세우던 거의 모든 운동권이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사고의 밑바탕에는 민주주의 혁명이 더 높은 단계의 혁명으로 '성장, 전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대중 항쟁에 바탕을 둔 철저한 민주주의 혁명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들 믿었다. 누구는 그러한 다음 단계 혁명이 '민족해방혁명'이라 했고, 누구는 '민중민주혁명'이라 했다. 하지만 어쨌든 제6공화국의 불철저한 민주화에 대한 불만이 오히려 모종의 탈자본주의 혁명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라는 전제만은 다들 같았다.


    1991년 5월의 패배는 이런 운동권 공통 이념을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대중은 4년 전 거리에서만큼 시위대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더 많은 대중은 1987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 실패로 확정된 현실 정치 경로를 한국 사회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민주화'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철저한 민주주의 혁명의 재개라는 범운동권 비전은 이들 비전이 상정하는 만큼 '전 민중적'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더불어, 민주주의 혁명의 '성장, 전화'에 바탕을 둔 다음 단계 혁명들의 시나리오 역시 모두 붕괴했다.


    즉, 당시 한국의 범좌파는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이미 지나간 기회에 미래를 투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 혁명은 1987년에 시작된 불철저한 민주화 이행으로 완결되어가고 있었고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 혁명의 급진화를 통한 더 높은 수준의 변혁이라는 전망을 저만치 추월하고 있었는데도, 범좌파는 민주주의 혁명의 미완성에 집착하며 그 뒤늦은 완성을 꿈꾸고 있었다. 그들을 지배한 것은 어쩌면 회한으로 남은 과거로 돌아가려는 강박이었다. 한 마디로, 노스탤지어적 이념이었다.


    따지고 보면, 1980년대 중후반을 거치며 범좌파 내에서 갑자기 다수가 된 민족해방(NL)파야말로 이런 노스탤지어적 이념의 극단적 형태였다. 민족해방파는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가 한반도 통일국가 수립 실패에서 비롯됐다 주장하면서 모든 실천을 예외 없이 조국 통일 완수로 수렴시켰다. 강박적으로 해방 직후의 처참한 실패의 순간들로 돌아갔고, 마치 그 실패들을 만회하려는 노력인 양 현재 자신들의 실천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들의 그 도저한 회한과 향수에도 불구하고 한국 자본주의는 분단 현실을 등에 짊어진 채 이미 저 앞으로 아득히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민족해방파만의 문제나 한계는 결코 아니었다. 민족해방파의 정통 노선과는, 거의 정반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먼 이념-노선 역시 한국 사회에서는 결국 어떤 노스탤지어적 사고와 실천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진보정당운동을 지배해온 한국식 사회민주주의 흐름이 그러했다.


    다름 아닌 1991년 5월의 패배를 겪은 뒤에 좌파 지식인, 운동가들 사이에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넓은 의미의 사회민주주의 흐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극히 불만족스러운 형태이지만 한국식 민주화 과정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단계(군부 쿠데타의 사후적 불법화와 양김 씨의 순차적 집권 등)에 이르러 있었고, 민주주의 혁명의 급진화를 통한 탈자본주의 전망은 한국 사회 자체의 경험뿐만 아니라 현실사회주의권 붕괴를 통해서도 처절하게 무너졌다. 그럼 남은 길은 하나였다. 개혁의 길, 즉 그 내부에 다시 여러 차이가 존재할지라도 어쨌든 '사회민주주의'로 통칭될 수 있는 길이 그것이었다.


    한데 사회민주주의에도 역시 그만의 전제 조건들이 있었다. 민주주의 혁명(DR)론들이 아주 까다롭게 여러 역사적 조건들이 교차하는, 거의 예외적이다 싶은 상황을 전제하는 것처럼, 사회민주주의의 성공도 그만큼 흔치 않은 조건들의 만남을 요구한다. 대의 민주주의가 일정하게 정착돼야 할 뿐만 아니라 고도로 단결한 정치적 행위자로서 노동계급이 형성돼 있어야 한다. 20세기 초중반에 좌파정당과 산업별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뭉쳐 있던 서유럽 여러 나라 노동자들처럼 말이다.


    그럼 한국 사회에 이런 노동계급이 성장해 있었던가? 1996-97년 노동법-안기부법 개악 반대 총파업 와중에는 머지않아 이 물음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으리라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때는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불과 몇 달만에 상황이 반전됐다. 외환위기와 함께,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시작된 한국 노동계급 형성의 대장정은 돌연 중단됐다. 아니, 정반대 방향으로 꺾여 버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정부에 구제금융 조건을 강요해, 한국 사회에 이미 그 싹이 존재하던 이중 노동시장을 새로운 시장지상주의 축적 구조를 뒷받침할 토대로 확대했다. 비정규직 일자리를 양산할 법률 근거들이 도입됐고, 기업별 노동조합들은 비정규직의 존재를 전제로 기득권을 유지하는 전략을 실습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참담한 노동 현실로 이어지게 될 20여 년 여정의 시작이었다. 국회 날치기로는 열 수 없었던 길이 외환위기를 빌미로 한 초국적 개입을 통해 열린 것이다.


    이때 노동 유연화 공세에 가장 격렬히 맞선 것은 노동운동 내 급진좌파였다. 하지만 이들의 저항이 결국 좌절되면서 기회를 영영 놓친 것은 오히려 다른 세력이었다. 바로 범사회민주주의 흐름이었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에서 국가복지제도 확장이나 광범한 사회적 영향력을 갖춘 단체협약 등 사회민주주의적 성과를 내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반인 노동계급 형성과 연대가 이제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빠르게 신자유주의화한 한국 사회는 20세기에 서유럽에서 열렸던 이런 기회를 저항 세력에게 허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후 20여 년간 한국의 진보정당-사회운동은 사회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한국 사회의 역사 전개 경로가 이미 이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쪽으로 갈라져 버렸는데도 좌파 지식인, 운동가들은 마치 이를 만회할 수 있는 것처럼 '북유럽형 복지국가'의 꿈을 놓지 않았다. 무산된 기회에 대한 또 다른 강박, 또 다른 노스탤지어적 이념이었다.


    생태 전환, 이제까지와는 다른 도전


    이것이 지금까지 한국 자본주의와 그 저항 세력이 전개해온 역사다. 한국 사회가 선택한 돌진적 근대화의 속도는 자본주의 지배 질서를 구축하고 이를 변화하는 전 지구적 상황에 맞춰 변형하는 데는 더없이 효과적이었지만, 한국 사회 내부에서 이 질서에 맞서며 새 질서를 준비할 세력이 성장하고 역사적 기회를 부여잡기에는 지나치게 빨랐다. 이런 세력이 되고자 했던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은 늘 지배 질서 재편의 속도에 추월당하며 의도하지 않게 향수병 환자가 되고 말았다.


    새삼스레 이렇게 지난 역사를 회고하는 것은 단지 <비혁명의 시대>가 오랜만에 환기시킨 지난 세기 마지막 10년대의 기억 때문만은 아니다. 이러한 성찰을 통해 지금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이 마주한 역사적 상황과 과제를 더욱 정확하고 절실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역사적 상황과 과제란 무엇인가? 다름 아니라 기후 재앙에 따른 인류 문명의 존립 위기이고, 이에 맞서 문명의 생존력과 회복력을 최대화하려는 생태 전환의 노력이다.


    기나긴 장마 뒤에 다시 잇단 태풍을 맞이하는 요즘,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이 지면에서 굳이 부연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기후 변화를 되돌릴 수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기후 급변 속에서 문명을 최대한 유지, 생존시키기 위해서라도 생태 전환에 매진해야만 한다. 그러자면 장벽은 결국 자본주의다. 자본의 끊임없는 확대 재생산이 전제 조건이 되는 사회 질서는 인류 생존의 최대 걸림돌이다.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새로운 질서를 사고하고 실행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역사적 경로를 밟아온 지구 위 모든 이들에게 '동시'에 닥친 도전이다. 물론 돌진적 근대화의 궤적을 등지고 선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한국의 좌파도 다른 나라 동지들과 마찬가지로 탈자본주의 방향에서 생태 전환을 추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참으로 오랜만에 한국의 진보정당-사회운동이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정확히 현재의 급박한 과제를 풀어나가는 노력으로서 자신의 이념-운동을 정초할 기회이기도 하다. 노스탤지어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현재적'인 과업을 떠안을 기회다.


    향수병은 병일 뿐이다. 그간 한국 좌파 이념 지형을 지배하던 미완의 과제들은 향수병을 통해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역사는 그런 식으로 풀려나가지 않는다. 지배 질서의 진화에 추월당한 미해결의 문제들은 오직 가장 최근에 닥친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 분단 질서를 넘어서는 일도, 20세기 복지국가가 그랬듯이 사회권을 보장하는 일도 생태 전환과 결합됨으로써만 과거의 실패나 공백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21세기의 현재적 과제가 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에게 혁명의 시대는 오직 않았고, 개혁의 시대는 그저 '비혁명의 시대'에 머물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배 질서의 승리로 역사가 종언을 고한 것은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도 더는 피하거나 건너뛸 수 없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전환의 시대다. 이제 우리의 지난날에 대한 모든 진실한 애도와 해원은 이 전환의 시대를 가장 충만하게 살아감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90212562594817#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성추행 당할 때도 "감사합니다"... 해병대의 반복된 비극

     [김형남의 갑을,병정] 해병대에서는 왜 인권침해 계속 되나

    20.09.03 08:17l최종 업데이트 20.09.03 08:17l
     대한민국 해병대
    ▲  대한민국 해병대
    ⓒ 해병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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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오랜만에 한 해병대 병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몸 건강히 무사하게 전역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2019년 초 군인권센터의 인권침해 상담과 지원을 받았던 사람이다. 이병 시절부터 선임 해병들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구타를 당하고 인격 모독을 겪었던 그가 벌써 만기 전역을 할 때가 되었다니 시간이 참 빠르다고 느꼈다.

    그 사이 가해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았고, 피해자는 새로운 부대에서 일상을 되찾았다. 가끔 SNS에 올라오던 사진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새로 만난 전우들과 알찬 군 생활을 보낸 것 같았다. 자신이 겪은 피해를 잊지 않고 군 생활 중에 목격한 병영 부조리를 바로 잡기 위해 힘썼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폐쇄적인 군대 조직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는 사건 자체를 해결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피해자가 어느 순간 가해자가 되고 마는 폭력의 대물림을 끊어내는 데에도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사건을 지원한 나로서는 그의 전역 인사가 반갑고 보람된 소식이었다.

    또 다시 터진 해병대 가혹행위

    다시 시간을 뒤로 돌려 2019년 초를 복기해본다. 군사경찰(헌병)의 피해자 조사에 신뢰 관계인으로 입회했을 때였다. 조사 중간 쉬는 시간에 수사관과 잠깐 이야기를 나눌 틈이 있었다. 수사관에게 이러한 구타 사건이 많냐고 물었다. 2014년 윤 일병 사건 이후 병영 내에서 구타나 잔혹한 가혹행위가 많이 줄어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던 차에 충격적인 구타 사건을 마주하게 된 터라 추세가 궁금하였다. 그런데 수사관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해병대는 특성상 여전히 구타 사건이 종종 발생하는 편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합의를 보는 경우가 많아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것 뿐입니다."

    돌이켜보면 해병대에서는 주기적으로 엽기적인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했고 지금도 그렇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올해 1월 해병1사단에서 선임 해병들이 전입 신병을 때리고 살아 있는 잠자리를 강제로 먹게 한 사건이 있었다(관련기사: "잠자리 산 채로 먹어라" 해병대 가혹행위-성희롱 폭로 http://omn.kr/1mclx).

    그런 해병대에서 또다시 가혹한 인권침해 사건이 터졌다. 군인권센터는 1일 해병1사단에서 선임 해병들이 6개월간 한 병사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며 성추행, 구타를 밤낮없이 매일 저질렀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해병1사단에 자대 배치를 받은 A씨는 B 병장에게 지속해서 괴롭힘과 폭행을 당했다. B병장은 A씨에게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고 얼굴에 들이미는 등의 성추행을 저질렀다. B병장이 제대한 뒤에도 그 다음 선임들에 의해 괴롭힘은 계속 됐다. 샤워실에서 A씨를 부동자세로 세워놓은 뒤 바디워시로 거품을 만들어 성기를 만져 추행하는가 하면, 침대에서 성추행을 하면서 피해자에게는 "감사합니다"를 복창하게 하는 등 피해 내용도 끔찍하기 그지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가해 행위가 대낮에 부대 복도, 흡연장 등 공개된 장소에서 벌어졌지만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대 간부들이 아무도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해병대 군사경찰은 이 사건을 7월에 접수하고 수사를 시작해 가해자 중 현역 3명(병장 2명, 상병 1명)을 강제추행, 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해 군검찰로 송치했다. 전역한 B씨는 관할 경찰서에 사건을 이첩했다고 밝혔다.

    이빨, 악기바리... 뿌리깊은 해병대 악습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해병대는 강도 높은 부대 진단과 가해자 엄중 처벌을 천명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해왔다. 그러나 툭하면 벌어지는 인권침해 사건은 가해행위의 양상까지 흡사할 정도로 반복적이다. 사건이 발생한 부대도 가해자도 피해자도 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이빨'이라 부르는 악·폐습이 공유되고 있었다.

    선임이 물어볼 때 '~ 할 수 있다'라고만 대답할 것, 선임에게 대답할 때 '맞습니다'라고만 답할 것, 선임의 몸에 손을 대지 말 것, 모든 답변은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똑바로 하겠습니다', 질문 시 '~인지 알고 싶습니다'로 통일할 것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해병대에는 병사들끼리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 외치며 병영 악습을 간부에게 이야기하면 소위 '기수열외'를 시켜 투명인간 취급하는 못된 폐습이 온존하고 있다. 그 탓에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오랜 시간 피해를 참고 견디느라 몸과 마음이 깊이 병든 뒤에야 구제를 호소해왔다. 부대 간부들이 오랜 시간 구타와 가혹행위를 인지하지 못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해병대가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16년 여름, 해병대에서 '악기바리'로 불리는 식고문 사건이 불거진 적이 있다. 악기바리는 해병대에서 전해지는 전형적인 악·폐습의 하나로, 후임병에게 빵, 과자 등의 취식을 계속 강요하는 고문이다.

    당시 피해 병사는 밥을 먹은 뒤 빵, 피자, 치킨, 초콜릿, 우유, 음료수 등을 강제로 먹는 식고문을 한 달 동안 10번이나 당했다고 한다. 밥과 치킨 2마리, 초콜릿 파이 1상자, 과자 3봉지, 빵 3개, 음료 1.5ℓ를 통째로 다 먹게 하는 식이었다.
     
     이상훈 해병대 사령관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거수경례로 인사하고 있다. 2016.6.29
    ▲  이상훈 해병대 사령관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거수경례로 인사하고 있다. 2016.6.29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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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상상 초월의 엽기행각에 여론의 뭇매를 맞은 해병대는 병영 내 인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당시 해병대 사령관이었던 이상훈 중장의 결단으로 2017년 외부 인권 전문가들로 구성된 '해병대 인권자문위원회'가 결성되기도 하였다. 군 조직의 폐쇄성을 감안하면 사령부가 민간인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꾸린 것은 용기 있는 일이었다.

    위원회는 해병대에서 발생하는 각종 인권침해 사건을 검토하고 대책 수립을 자문했으며, 해병대 역시 위원회에서 논의된 결과들을 충실히 이행해나갔다. 이러한 노력은 성과를 보여 얼마간 해병대에서는 큰 사건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사령관이 바뀐 뒤 해병대사령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판단을 내렸고, 2019년 2월 위원회를 해산했다. 이만하면 되었다는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위원들이 우려를 제기했지만 해산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기사의 서두에서 다루었던 구타 사건, 후임병에게 개 흉내를 내며 네 발로 걸어 다니게 한 사건, 치약으로 머리를 강제로 감긴 사건 등 인권침해 사건이 다시 확인되기 시작했고, 해가 바뀌어 잠자리 강제 취식 강요 사건, 성추행·구타 사건 등에 이르게 됐다.

    인권은 소란스럽게 지키는 것

    인권에는 완성형이 없다. 여러 사람이 맞부딪히며 살아가는 인간 사회에서 구성원이 많이 배우고 많이 안다고 인권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보호 장치를 겹겹이 갖춘다고 권리 보호가 빈틈 없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매 순간의 섬세한 노력과 관심이 경주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권리를 침해 당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군대처럼 권력 관계가 뚜렷한 조직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인권 옹호의 핵심은 매 순간의 섬세한 노력과 관심을 어떻게 상시적인 시스템으로 구축해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병대의 인권자문위원회 해산은 인권 옹호를 군사 작전처럼 '임무 달성'의 관점으로 바라보았기에 가능했던 발상으로 보인다. 2년 남짓한 시간을 외부의 감시자를 통해 인권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해나가는 상시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쓰기보다는 인권 상황 개선이란 목표 달성의 기간쯤으로 인식한 것이다. 인권에 대한 지휘부의 그릇된 인식이 오랜 시간 힘써 만든 성과를 한순간에 수포로 돌리는 촌극을 빚어낸 셈이다.

    이것이 비단 해병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방부와 육·해·공군이 앞다투어 인권 전담 기구를 신설하고 상담 창구를 열지만 인권침해 사건은 끊이지를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계급 질서의 장막 속에서 암암리에 크고 작은 형태의 폭력이 대물림되는 구조는 지금도 병영 곳곳에서 재생산 되고 있다. 군이 폐쇄 조직이기 때문이다. 인권 상황에 대한 외부의 통제와 감시를 간섭과 지휘권 침해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발전의 기회로 인식하고 이를 어떻게 시스템화할지 고민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곧 국방부 장관 청문회가 예정되어 있다. 군의 문민통제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병영 인권 상황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인권은 특별히 기간을 두어 진단하고,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번지르르한 간판을 단 기구를 새로 설치한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깔끔하고 멋있게 인권 상황을 개선하려 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인권은 소란스럽게 지키는 것이다. 외부의 통제, 바깥의 쓴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군이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는 길일 것이다.
     

    “응급실 찾아 수원서 군포까지…” 공포가 된 집단휴진

     등록 :2020-09-03 04:59수정 :2020-09-03 07:14


    전공의 휴진 13일째 ‘커지는 불만’
    항암치료·수술 연기된 암환자들
    “생명에 위협받는 지경” 울분
    ‘의사 4만명 증원’ 15만명 동의…“수술 미뤄져 식물인간 돼” 글도
    응급실 의사 부족해 문전박대
    “고위험 산모 출산 거부” 분통
    전공의 총파업이 13일째 이어지고 있는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전공의 1인시위와 파업 철회를 요구하는 참여연대 1인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전공의 총파업이 13일째 이어지고 있는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전공의 1인시위와 파업 철회를 요구하는 참여연대 1인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3일째 이어진 전공의들의 집단휴진 사태로 수술과 진료가 연기되고 응급실 입원을 거부당한 환자들이 “공포에 가까운 집단휴진을 멈춰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비롯해 각종 커뮤니티에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는 중증 환자 가족들의 원망 섞인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가장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들은 항암치료나 수술이 연기된 암 환자들이다. 이들은 2일 <한겨레>에 “집단휴진으로 생명에 위협을 받을 지경”이라고 전했다. 외래진료를 봐야 할 교수들이 전공의 업무 등에 투입되면서 정상적인 진료를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6년째 폐암 투병 중인 김종환(56)씨는 “암 환자들에게는 ‘암 전이’만큼 무서운 게 없다. 전이가 된 상황인지 파악해서 치료나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들한테 항암치료나 수술이 연기되는 상황은 공포를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6년째 식도암 투병 중인 김성주(58)씨도 “식도암 수술 뒤 설사가 며칠째 반복돼 살이 46㎏까지 빠졌다. 한밤중에도 설사가 너무 심해 응급실에 가려고 했지만, 주치의 진료는 한참을 기다려야 되고, 응급실은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말만 들었다”고 말했다.

    ‘공공의료를 위하여 4천명이 아니라, 4만명의 의사인력 증원을 청원한다’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이날 오후 3시 기준으로 15만여명이 동의한 상태다.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에는 “한 담낭암 환자가 8월7일 수술 당일 새벽에 집단휴진 때문에 수술이 연기된 뒤 식물인간이 됐다”는 내용의 청원글도 올라왔다. 환자의 손녀인 청원인은 이 글에서 “전공의 집단휴진 당시 외과 당직 교수의 일탈로 발생한 의료 사고”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26일 저녁 경기도 수원에 사는 ㄱ씨도 위험천만한 상황을 겪었다. 자녀가 화장실 욕조에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를 입어 당장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집 근처 대형병원에서는 “응급실에 의사가 부족하다. 동네 개인병원을 찾아보라”며 돌려보냈다. 또 다른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도 문의 전화를 해봤지만, 돌아온 답은 “파업으로 인해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ㄱ씨는 집에서 차로 40분 넘게 걸리는 경기도 군포시의 한 병원을 찾았고, 자녀는 가까스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출산을 앞둔 임신부들의 커뮤니티에는 전공의 휴진으로 분만 중 통증을 줄여주는 ‘무통주사’를 안 놓아준다거나, 고위험 산모의 출산을 대형병원에서 거부했다는 호소가 올라왔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0517.html?_fr=mt1#csidxb17073b897f18918219d8f8b28a8ccf 


    미어샤이머, “자유주의 국제질서 붕괴는 불가피”

     

    왕지스, “많은 국가들이 한쪽 편 들어야 하는 상황 처할 수도”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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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20.09.02  12: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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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팬데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략적 경쟁의 수위를 더 높여가는 미국과 중국은 어떤 계산을 하고 있을까? 1일 ‘2020서울안보대화’ 첫 세션(좌장 김지윤)에 화상으로 참석한 두 나라 전문가들은 비교적 솔직하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전부터 미.중 간 패권경쟁의 불가피성을 주장해온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현재 깊은 곤경에 처해 있다”며,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밑받침이 되는 지각판들이 현재 움직이고 있고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을 바로잡거나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은 거의 없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탓하는 전문가들과는 달리,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이러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몰락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일부의 책임은 있겠지만 자유주의 국제질서 자체에 결함이 있었다”는 것.

      
    ▲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 [2020서울안보대화 영상 캡쳐]

    미어샤이머 교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단극체제에서만 발생할 수 있고,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2차대전 직후인 1945년이 아니라 냉전 이후인 1989년에 시작된 것이며, △냉전 이후에 등장한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기본적으로 내재적인 결함이 있었다고 봤다.

    “즉 붕괴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면서 “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들을 살펴보면 결국 붕괴될 수밖에 없는 정책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정책이 ‘자유민주주의 확산’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켰고 “끔찍한 희생”을 치렀을 뿐만 아니라 중국 및 러시아와 충돌하게 됐다.  

    국경을 개방하면서 이민문제가 발생했고 많은 국가들이 제대로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근간으로 ‘민족주의’가 대두하게 되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국제기구의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몇몇 국가들에서는 주권이나 국가의 정체성과 같은 문제들과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그렇다보니 영국이 ‘브렉시트’ 결정을 했을 수도 있다”고 미어샤이머 교수는 진단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는 ‘초세계화’를 추진했다. 글로벌 무역과 투자장벽을 최소화한 결과, 중국이 부상하게 됐다.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유지되려면 단극체제여야 하는데 역설적으로 그 질서에서 추진한 정책으로 인해서 중국이 우뚝 서고, 중국-러시아가 부활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오늘날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근간이었던 단극체제가 다극체제가 되었다. 새롭게 등장하는 다극화 세계에서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면서 “결국은 현실주의에 기반한 국제질서로 재편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왕지스 베이징대 국제전략연구원 원장. [2020서울안보대화 영상 캡쳐]

    중국 내 저명한 미중관계 전문가인 왕지스 베이징대 국제전략연구원 원장도 “중국과 미국의 지정학적, 지경학적인 경쟁은 세계정치에서 뉴노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국제질서의 분기, 즉 두 갈래로 나뉘는 현상이 강화될 것”이며, “중국과 미국 사이의 전략 지정학적 경쟁이 심해짐에 따라 다른 국가들의 무역, 금융, 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과 미국 사이에 한쪽을 선택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베이징과 미국 모두 흑백 프리즘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데, 베이징의 눈에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의 경쟁 또는 갈등으로 보고 있고 미국의 눈에는 민주주의와 비민주주의의 분열로 세계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왕지스 원장은 “2020년에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는지와 상관없이 중국과 미국 모두 장기적인 전략적 경쟁에 각각의 글로벌 자원을 동원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이에 따라 전 세계는 많은 영역에서 냉전을 연상시키는 ‘분기 위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많은 국가들은 결국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한쪽 편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두 강대국의 각축장인 남중국해에 인접한 아세안 국가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키쇼어 마부바니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 공공정책대학원 학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아래에서 일어나는 “혼돈”의 근원을 세 가지 모순으로 설명했다.

    △협력의 필요성과 갈등의 모순, △서국 국가들 내에서 다자적 협력을 하려는 경향과 자신의 힘을 유지하려는 경향 사이의 충돌(모순), △번영을 기회를 맞은 아시아 국가들 내 지정학적 경쟁이 고조되는 모순이다. 

    마부바니 학장은 ‘코로나 사태’에서 얻어야 할 교훈을 배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세계화 이전에, 코로나 사태 이전에 우리는 193개국에서 각각 살고 있었는데, 마치 193개의 배에 각각 살고 있는 것이었다. 각 배마다 선장과 선원이 있고 이 배들이 충돌하지 않기 위한 규칙들이 있었다. 이것이 과거의 국제질서다. 그렇지만 세계화로 인해서 전 세계는 점점 작아지고 있고,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더 작아지고 있다. 지구에 살고 있는 78억명이 더 이상 193개의 배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배에 타고 193개의 캐비닛에 살고 있다. 같은 배에 탔는데 불이 났을 때, 가장 어리석은 일은 ‘누가 이 불을 냈느냐’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일단 불을 꺼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지금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해서 미국과 중국이 서로 협력해서 불을 끌 생각은 하지 않고 서로 싸우는 상황이 대두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모순이다.”

    아직도 서울은 중재자인가, 할 소리를 하는 주인인가?

     이흥노 재미동포 | 기사입력 2020/09/03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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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민족 문제나 조미 관계를 논하려면 꼭 염두에 두고 고려돼야 할 역사적 두 사건이 있다. 하나는 평양이 “핵무력 완성, 힘의 균형”을 선언하면서 핵보유국 대열에 진입한 2017년 11월 29일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을 무산시킨 2019년 2월28일이다.

     

    전자는 트럼프를 북미 대화로 떠밀어 넣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워싱턴은 평양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핵무력을 완성하리라 상상을 못 했던 터라 정작 오금이 저리도록 기절초풍했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노련한 미국 외교관 출신 펠트먼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이 ‘힘의 균형’ 선언 2주 만에 평양에 급파됐다. 그는 유엔 업무차 방북이라고 시치미를 뗐지만, 실제로는 펠트먼 일행이 예상을 뒤엎고 닷새나 평양에 지체하면서 조미 대화를 이끌어내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유엔의 2인자 펠트먼 사무차장의 방북과 비교되는 사건을 이 기회에 꼭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015년 5월 예정됐던 반기문 유엔총장의 방북 허가를 평양이 돌연 취소한 사건이 떠오른다. 방북길에 서울에 잠시 머문 반 사무총장은 평양에 대고 비핵화에 나서야 하고 인권도 개선돼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이 기자회견 발언이 평양을 자극했을 수 있지만, 그보다 미국과 유엔 대북제재 강화 조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미국의 충견이라는 게 평양의 평가기 때문에 방북 취소가 내려졌다고 봐야 옳을 것 같다. 사실, 같은 동포 사무총장이라는 좋은 위치에서 펠트먼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반북 활동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는 건 같은 민족 성원으로 부끄러운 처사다.  

     

    후자는 미국의 정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남북이 값진 교훈을 터득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실패라고만 볼 일이 아니다. 남북미실무진이 완벽하게 만든 하노이 조미공동선언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호전 네오콘 반대 세력의 높은 장벽을 뚫지 못하고 주저앉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마련된 만찬도 거부하고 재회 약속도 없이 하노이 회담장을 박차고 귀국해버린 것은 전례없는 외교적 결례다. 물론 남북 두 지도자와 우리 겨레를 정면으로 모욕 배신한 작태라고 봐야 맞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을 향해서는 19년 말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남측을 향해서는 ‘오지랖 넓은 중재자가 아니라 할 소리를 하는 당사자, 주인 행세를 하라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미국을 꿰뚫어 보고 내린 기막힌 지적이라고 평가된다. 트럼프의 식지 않은 미련 때문에 어렵사리 판문점에서 남북미 세 정상 회동이 2019년 6월 30일에 있었다. 곧이어 스톡홀름 조미 실무회담이 개최됐다. 그러나 여기서도 트럼프의 뜻은 오간 데 없고 하노이 회담 결렬에 써먹었던 ‘빅 딜’ 소리만 미국 측 실무진이 복창하자 평양 실무진이 자리를 박차고 떠나가 버렸다.

     

    트럼프의 핵협상 타결 의지가 우익보수 네오콘 반대 세력의 집요한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는 것이 트럼프의 한계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절감케 하는 대목이다. 이것은 트럼프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과거 전임자나 차기 백악관 주인이 누가 돼도 동일하게 적용될 이야기다. 요즘 서울에서는 ‘중재자’ 소리와 ‘선순환’ 소리가 들리질 않는다. 아마 할 말을 하는 주인이 되려는 징조인가 싶다. ‘중재자’ 역할론, ‘선순환’ 논리를 도입하고 거기에 메몰됐던 외교안보통일 최고위 참모들이 최근 교체된 것도 그 일환일 수도 있다. 사실, 이들은 지나치게 친미색채를 띤 미국의 예스멘 (Yes Men)으로 알려져 규탄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미국에 순종하는 자세를 ‘중재자’ 역할이라는 말로 포장한 대단한 재간꾼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주도 한미실무그룹 창설에도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들이라는 게 중론이다. 남북 관계 발전을 저지 차단하는 직접 당사자가 바로 한미실무그룹으로 지목되고 있어 온 국민이, 우리 겨레 전체가 일제 ‘총독부’라며 즉각 폐지돼야 한다고 거세게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해리스 미국대사가 여기에 올라타고 앉아 일제 총독 행세를 한다는 비난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고 있다. 그는 여야 국회의원들 앞에서 “문 대통령이 좌경 친북이라는 데 사실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정도로 거만한  외교관으로 실무그룹을 거치지 않곤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소리를 한다.

     

    해리스는 남북 교류 협력 사업을 사사건건 시비 걸고 훼방을 논다. 따라서 남북 관계 발전은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되고 있다. 2019년 초, 독감 약 타미플루 인도적 지원이 허용됐으나 미군이 이를 실고 갈 차량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거부해 무산되고 말았다. 그래서 당시 일각에서는 기발하게 지개부대 동원  제안까지 내놨다. 정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해괴망측한 일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정력적으로 남북 교류 협력 추진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제재 회피 방도를 찾는 데에 몰두할 게 아니라 제재를 정면으로 뚫고 나가는 지혜를 발휘하는 게 더 생산적이라는 걸 염두에 두면 좋겠다.

     

    드디어 때가 왔다. 우리의 이익, 민족의 화합, 겨레의 최대 숙원을 성취할 절호의 기회가 지금이다. 미국 대선, 일본의 아베 후임 작업, 중미 대결, 코로나 대재앙, 세계 경제 파멸, 등으로 세상이 급변하고 요동치고 있다. 더구나 트럼프는 난파선에 매달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일대 위기에 처해있다. 지금이야 말로 할 말을 하는 주인의 입장에서 우리의 이익을 챙길 절박한 순간이다. 우리 민족문제는 민족 내부 문제라는 사실을 설득시켜야 하고 관철해야 한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건 간에 우리 민족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한다는 원칙에서 이탈하면 안 된다. 자주는 양보나 타협의 대상이 아니고 끝까지 사수해야 한다.

    2020년 9월 1일 화요일

    “9월 택배물량 50%이상 폭증...이대로는 다 죽는다”

     


    백남주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0/09/02 [07:14]

    ▲ 코로나19 확산 및 추석연휴로 인해 택배노동자들의 과로로 인한 사망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사진 : 택배연대노조)  © 편집국

     

    코로나19 확산으로 택배물량이 늘어나며 택배노동자의 과로사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8월 16일 ‘택배 없는 날’ 휴가기간에도 택배노동자 한 분이 과로로 사망하는 등 올해에만 7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인해 사망했다. 이는 정부의 공식통계가 아닌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차원의 집계일 뿐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9월에는 추석연휴로 인한 택배 물량 폭증이 예상되고 있어 택배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대책위는 9월에 최소 50% 이상의 택배물량이 폭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대책위는 1일 오전 11시30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택배사가 추석 전 과로사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대책위의 구체적 요구는 ▲추석 물량폭주기부터 분류작업에 대한 추가인력투입,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마련을 위한 민/관공동위원회 구성, ▲제대로 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법 조속 제정 등 3가지다. 

     

    대책위는 “이미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7,8월 역대급 장마와 폭염 속에 택배노동자는 지칠대로 지쳐있다”며 “대책위 집계로도 이미 6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인해 사망했다. 지금은 6명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늘어날지 두렵기만 하나”고 밝혔다. 

     

    대책위는 “정부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너도나도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실질적인 대책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실효성있는 대책마련되지 않을 경우, 전국 곳곳에서 택배노동자가 쓰러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택배노동자 과로사를 멈출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은 분류작업에 대한 인력투입”이라며 “새벽부터 오후 2~3시까지 이어지는 분류작업은 택배노동자 장시간 노동의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다음주 11일까지 정부와 택배사의 태도변화를 기다릴 것”이라면서 정부와 택배사가 결단하지 않으면 “전국 택배노동자들의 의견을 물어 분류작업 전면거부 등의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청와대 측에 요구안을 전달하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 : 택배연대노조)  © 편집국

     

    기자회견 후 참가자들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을 통해 요구안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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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는 다 죽는다. 지금 당장, 분류작업 인력 투입하라”

    정부와 택배사와 결단하지 않으면 우리는 살기 위해 결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9월에는 사상 최대의 택배물량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다시 확산세로 접어들면서 택배물량이 다시 급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추석물량까지 더해지면 택배물량은 최소 50%이상 폭증할 것입니다.

     

    이미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7,8월 역대급 장마와 폭염 속에 택배노동자는 지칠대로 지쳐있습니다. 대책위 집계로도 이미 6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지금은 6명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늘어날지 두렵기만 합니다.

     

    8월 14일 ‘택배없는 날’을 계기로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택배노동자의 장시간 노동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습니다. 정부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너도나도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하지만 말만 요란할 뿐 실질적인 대책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9월은 시작됐습니다. 실효성있는 대책마련되지 않을 경우, 전국 곳곳에서 택배노동자가 쓰러지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정부와 택배사는 안이한 입장과 태도를 벗어던지고 택배노동자의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있는 대책마련에 지금 당장 나서야 합니다.

     

    그동안 수없이 주장해왔지만 택배노동자 과로사를 멈출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은 분류작업에 대한 인력투입입니다. 새벽부터 오후 2~3시까지 이어지는 분류작업은 택배노동자 장시간 노동의 근본적인 요인입니다. 분류작업 개선없이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줄일 수 없습니다. 정부와 택배사는 지금 당장 분류작업에 인력을 투입해야 합니다. 

     

    대책위는 다음주 11일까지 정부와 택배사의 태도변화를 기다릴 것입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다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마냥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정부와 택배사가 결단하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 살기 위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국 택배노동자들의 의견을 물어 분류작업 전면거부 등의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추석연휴 택배배송에 큰 차질이 발생하더라도 사람이 죽어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결단입니다. 

     

    다시한번 정부와 택배사의 조속한 결단을 촉구하며, 택배노동자는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스스로 만들어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9월 1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