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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9일 화요일

'자라' 납품 회사도, 20년 우수기업도 은행에 당했다

17.12.19 20:08l최종 업데이트 17.12.19 20:26l
사진·영상: 유성호(hoyah35)




'금융판 세월호'라 할 만한 대형 금융 사건 '키코 사태'. 10년 전, 2007년 말 은행의 권유로 키코에 가입했던 700여 개의 중소·중견기업들이 큰 손해를 입고, 대부분 파산했다. 당시 피해 기업을 '환투기꾼'이라 부르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은행이 중요한 정보를 숨기고 상품을 팔았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당시 피해 기업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키코 사태 10년을 맞아 피해 기업인들을 만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편집자말]
 키코(knock-in, knock-out:KIKO)로 파산한 조정희 전 에이원어패럴 사장이 14일 오후 구로구에 있는 하청업체 의류 제작 샘플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키코 계약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  키코(knock-in, knock-out:KIKO)로 파산한 조정희 전 에이원어패럴 사장이 14일 오후 구로구에 있는 하청업체 의류 제작 샘플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키코 계약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조 전 사장은 “희망 사항은 사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사업을 할 수 있게 나라가 도와 줘야 한다”고 말했다.
ⓒ 유성호

"전 우리나라에 정의가 살아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에요. 이건 정의가 아니라, 살인을 하고도 뒤집어 씌우는... 그런 식인 거죠. 실망이 너무 큰 거예요. 재봉틀 한 대로 시작해서 200대까지 운영하다가, 중국에서 스페인으로 수출하는 무역을 했는데... 그렇게 된 거죠."

바쁘게 손을 놀리며 작업물에 시선을 고정시킨 그는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지난 14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만난 조정희 전 에이원어패럴 사장. 당초 조 전 사장은 이른바 '키코 사태' 당시의 일을 떠올리기도 싫다며 인터뷰를 고사했지만 어렵게 시간을 내어 이야기를 풀었다.

그는 "(글로벌 의류기업) 자라(ZARA)에 직접 수출했었다"며 "무역을 하니 달러를 받았는데 그때는 환율이 900~920원 등으로 요동치던 때였다"고 말했다. 조 전 사장은 지난 2007년 말 신한은행과 키코 계약을 맺었다. 키코(knock-in, knock-out: KIKO)는 원-달러 환율(아래 환율) 변동폭이 클 때 환율이 일정 구간 안에서 움직이면 미리 정한 환율로 달러를 팔 수 있는 금융 상품이다.

은행들은 키코를 '환 헤지(위험회피)'가 가능하고, 수수료가 0원인 상품으로 소개하며 수출 기업들에게 판매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환율이 900원대에서 1500원까지 폭등하자 계약한 돈의 2~5배를 물어주게 된 수많은 기업들이 손실을 입고 파산했다. 

[에이원어패럴] "걱정하지 말라더니..." 돈 못 갚자 수출 길 막아버린 은행

이어 조 전 사장은 "(은행에서) 우리는 우수기업이니 선처를 해준다며 달러를 950원에 바꿔준다고 했다"며 "그렇게 알고 계약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그는 "환율이 1000원에 가면 (계약)해지가 되고, 900원으로 떨어져도 해지가 된다고 해서 계약했다"며 "그런데 나중에 보니 600만 원 가량 돈이 빠져나가게 됐다"고 했다. 환율이 떨어져 손해볼까봐 키코에 가입했는데, 오히려 환율이 치솟자 거꾸로 은행에 돈을 물어주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 전 사장은 이런 계약 내용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만큼 키코 계약 내용이 복잡하다. 환율 변동이 심할 때는 수출 기업이 똑같은 달러를 벌어도 원화로 환전하면 손해(환차손)를 볼 수도 있다. 은행에서 이런 기업을 겨냥해 환율이 미리 정한 범위 안에서 움직일 때는 약정 환율을 적용해주는 금융 상품을 내놓았다. 바로 키코다. 하지만 이 상품에는 무서운 '함정'이 있다. 

예를 들어 A기업이 2년 동안 매달 1만 달러를 환율 1000원에 팔 수 있는 은행 키코 상품에 가입했다고 하자, 이때 환율이 미리 정한 상한선과 하한선인 1020원과 980원 사이에서 오르내리면 A기업은 손해를 보지 않는다. 문제는 환율이 상한선을 벗어날 때다. 계약기간 동안 환율이 상한선인 1020원을 넘어서면 A기업은 매달 1만 달러의 2배인 2만 달러를 약정 환율인 1000원에 은행에 팔아야 한다. 더 많은 달러를 은행에 더 비싸게 팔아야 하기 때문에 A기업은 더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에이원어패럴이 신한은행과 약정한 금액은 20만 달러, 약정 환율은 950원이었다. 환율 상한선과 하한선은 각각 1000원과 900원으로 2년간 계약했다. 다른 피해 기업들처럼 환율이 상한선을 넘어갈 경우 약정 금액이 2배 이상 뛰는 계약은 아니었다. 하지만 환율이 1500원까지 올라가면서 약정 환율보다 500원 이상 높아져 그 손실을 감당할 수 없게 돼 결국 폐업하게 됐다. 조 전 사장의 이야기다. 

"이런 건 들은 적이 없는데, 무슨 소리냐고 방방 뛰었죠. 당시 은행장이 와서 '임시적으로 잠깐 이러는 거다, 걱정하지 말아라' 그러는 거에요. 우리가 그때 1000만불을 수출하려다 보니 예산이 부족했어요. 그러니까 대출 쪽으로 많이 도와 줄 테니 걱정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다음에 은행이 (신용장) 네고를 안 해주는 거죠. (키코 계약) 20만불에 대해서 600 몇 만원이 나왔는데, 그걸 얼른 줘야 네고를 해준다는 거야. 첫 번째 이자를 그렇게 물었어요. 나중에 금융감독원에 진정서를 냈더니 '이자를 냈으니 그건 당신이 계약한 거다'라고 하더라고요."

"사채 쓴 것도 아닌데 자고 일어나면 갚아야 할 돈이 몇 천만 원씩 불어나"
 키코(knock-in, knock-out:KIKO)로 파산한 조정희 전 에이원어패럴 사장이 14일 오후 구로구에 있는 하청업체 의류 제작 샘플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키코 계약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  조 전 사장은 “우리같은 사람은 뭐도 모르고 은행이니까 믿고 했는데 은행이 설마 사기를 칠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라며 “사채를 쓴 것도 아니었는데 자고 일어나면 몇 천만원씩 돈이 불어났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 유성호



돈을 갚지 못하게 되자 은행은 이를 이유로 무역에 필요한 신용장 처리를 해주지 않았고,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회사가 이를 갚게 됐다는 것. 이후 키코 계약의 부당함을 호소했을 때 금융당국은 갚은 돈을 키코 계약이 성사된 증거로 봤다는 게 조 전 사장 설명이다.   
더불어 조 전 사장은 "사채를 쓴 것도 아니었는데 자고 일어나면 (몇 천만 원씩 갚을 돈이) 불어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조금 더 벌겠다고 화장실도 없는 중국 산지에 가고 그랬는데 몇 푼 벌어봤자 (갚을 돈이 많아) 소용이 없어 (무역을) 중단했다"고 덧붙였다.  

억울한 마음에 조 전 사장은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때 신한은행이 키코에 대해 제대로 설명했다고 반격하자, 당시 출입국확인서를 제출하면서 한국에 없어 설명을 들을 수 없었음을 증명했다고 조 전 사장은 설명했다.
 키코(knock-in, knock-out:KIKO)로 파산한 조정희 전 에이원어패럴 사장이 14일 오후 구로구에 있는 하청업체 의류 제작 샘플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키코 계약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  재봉틀 1대로 시작해 200대까지 운영했다는 조정희 전 에이원어패럴 사장은 키코(knock-in, knock-out:KIKO) 사태로 불어난 이자를 갚지 못해 파산했다.
ⓒ 유성호

 키코(knock-in, knock-out:KIKO)로 파산한 조정희 전 에이원어패럴 사장이 14일 오후 구로구에 있는 하청업체 의류 제작 샘플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키코 계약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  조 전 사장은 불어난 이자를 갚기 위해 밤낮 쉬지 않고 재봉틀 작업을 했다. 그는 "손을 너무 많이 써서 연골이 다 닳았다"라며 "약을 먹어보고 안 되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유성호

대법원도 이를 인정해 은행이 상품 설명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고 키코계약 손실액 약 13억 원의 절반을 은행이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에이원어패럴은 나머지 6~7억 원에 붙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30여 년 살던 집을 팔고, 회사 사무실도 팔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조 전 사장은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빚을 갚고 있다. 

키코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에이원어패럴은 꾸준히 성장하는 회사였다. 중국에서 옷을 만들어 의류기업 '자라'에 납품하는 업체였다. 키코 사태 이후 회사가 사라지자 조 전 사장과 그의 남편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회사에 취업해 돈을 벌었다. 현재는 한국에서 개인사업자 형태로 일하고 있다. 예전에는 자라에 옷을 직접 납품하는 업체였지만, 이제는 단순히 의류 샘플을 만들어 다른 업체에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다. 글로벌 의류 브랜드의 1차 협력업체에서 2차 하청업체로 전락한 것이다.

조 전 사장은 기자에게 손목을 보여주며 "손을 너무 많이 써서 연골이 다 닳았다"고 말했다. 이어 "약을 먹어보고 안 되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키코로 속앓이를 하다가 뇌종양 판정까지 받았다"며 "다행히 수술을 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조 전 사장은 여전히 은행이 자신들을 상대로 사기행위를 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은행이니까 100% 믿었다"며 "설마 사기를 칠 거라고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고 했다. 그에게 희망을 물었더니, "정부가 나서서 다시 사업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소연했다.

[동화산기] "기업회생 신청하자 회사 빼앗겨... 변호사 선임도 못하고 끝났다"
 키코(knock-in, knock-out:KIKO)로 파산한 박용관 동화산기 전 회장
▲  키코(knock-in, knock-out:KIKO)로 파산한 박용관 동화산기 전 회장
ⓒ 이희훈

박용관 전 동화산기 회장도 키코 사태 여파로 회사를 잃은 사연을 기자에게 털어놨다.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기업회생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일흔을 훌쩍 넘긴 백발의 노인이었지만 10년 전 키코 사태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해냈다. 박 전 회장은 "기업회생으로 갔는데, 그 조건이 신한은행에서 관리인을 보내는 것이었다"며 "금융권의 악랄한 수법이다. 자기 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키코 손실을 막아내지 못한 동화산기가 기업회생을 신청하자 채권자인 신한은행이 회사를 넘겨 받겠다고 나섰다는 얘기다. 이어 그는 "그 관리인은 은행편이니 회사를 빨리 매각해야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2009년 말 쯤에 회사가 매각됐다"고 덧붙였다. 박 전 회장이 당황하던 찰나 은행에 회사를 빼앗겼고 이후 회사가 중국으로 팔렸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런 법적 권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며 "돈이 없으니 변호사 선임도 못하고 그렇게 끝이 났다"고 했다. 

동화산기는 타이어 제조 설비를 만드는 회사였다.1987년 설립 이래 지난 2007년에는 약 600억 원이라는 최고 매출액을 기록하고, 국가품질 경쟁력 우수기업, 금호타이어 설비협력업체 가운데 1등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당시 컨설팅 업체로부터 코스닥 상장을 권유받기도 했었다고 박 전 회장은 설명했다. 모두 키코 사태가 불거지기 이전의 이야기다. 이어 키코 계약 당시를 떠올리며 박 전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신상훈 전 신한은행장까지 나서서, 자금 지원 약속하며 키코 영업"

"2007년 말 쯤이었어요. 은행이 기업 담당자들과 대표들을 데리고 말레이시아로 해외연수를 보내줬죠. (키코를) 환헤지 상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선 외화가 들어오는데 환율이 떨어질 때 위험을 피할 수 있겠구나 한 거죠. 신상훈 신한은행장도 와서 설명할 때 옆에 앉아있더라고요. 믿음을 주는 겁니다. 최대한 기업을 지원해주겠다 하니 듣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금융권의 자금(대출)을 지원 받아서 멋있는 회사를 만들어 국가에도 기여하고, 그렇게 생각했죠."

당시 40여 개 기업들이 이 연수에 참가했다는 것이 박 전 회장의 설명이다. 이후 계약한 키코로 인해 동화산기는 총 186억 원 가량 손실을 보고, 이를 막지 못해 매각됐다. 이에 대해 박 전 회장은 "기업회생 신청까지는 갔었다"며 "다른 (채권) 은행들은 모두 회생에 동의했는데 신한은행이 반대했고, 그 지점장이 회사의 관리인으로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전 회장은 대표이사직을 빼앗겼고, 키코 관련 자료도 손에 넣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후 박 전 회장은 개인신용불량자가 돼버렸고, 지금은 고철유통업을 하고 있다. 이어 그는 "키코 피해 기업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적폐청산"이라며 "빨리 기업들이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박 전 회장은 키코 피해자에게 자금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는 "은행들이 나눠 피해를 보상하고, 기업들이 (살아나) 국가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실업율도 높은데, 이에 도움 줄 수 있는 힘을 길러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키코(knock-in, knock-out:KIKO)로 파산한 박용관 동화산기 전 회장
▲  키코(knock-in, knock-out:KIKO)로 파산한 박용관 동화산기 전 회장
ⓒ 이희훈

2017년 12월 18일 월요일

조선 하청업체 4대보험 체납처분 유예, “독 든 사과”


경남권 조선 하청노동자들 ‘4대보험 체납처분 유예 중단, 피해대책 마련’ 촉구
  • 정영현 담쟁이기자
  • 승인 2017.12.18 15:52
  • 댓글 0
▲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와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가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업 국민연금 체납처분 유예 중단’과 ‘하청노동자 피해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정부가 조선업 하청업체의 경영 지원을 위해 마련한 ‘4대보험 체납처분 유예’ 조치가 오히려 조선 하청노동자에게 독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주노총 경남본부와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대책위)’는 18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선업 국민연금 체납처분 유예 중단’과 ‘하청노동자 피해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6월 조선업을 살리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고 ‘조선업 국민연금 체납처분 유예’ 조치를 시행했다. 이 조치는 같은 해 7월부터 조선업체가 4대보험료를 체납해도 4대보험 통합징수 기관인 건강보험공단이 기업을 대상으로 압류 등 체납 처분을 하지 않는 제도다.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이 조치의 적용기간은 이달 말까지다.
하지만 ‘체납처분 유예 조치’를 악용한 하청업체의 ‘꼼수’로 인해 하청노동자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대책위는 “하청업체가 하청노동자 임금에서 4대보험 중 노동자가 납부해야 할 금액을 꼬박꼬박 공제하면서 정작 공단엔 4대보험료를 납부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알리곤 “4대보험 중 국민연금은 체납 상태에서 하청업체가 폐업하게 되면 체납 금액은 고스란히 노동자의 피해로 돌아온다”고 지적했다.
회견 참가자들이 밝힌 4대보험 체납액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경우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월 평균 5억3000만 원이었던 체납액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는 월 평균 9억8000만 원으로 급증했다. 4대보험 전체 체납액을 보면 그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달 20일을 기준으로 조선업종 지원사업장 4대보험 체납 총액은 약 375억 원에 이른다.
참가자들은 “375억 원의 체납액 중 100% 노동자의 피해로 돌아오는 국민연금 체납액만 135억5000만 원이며 거제, 통영, 고성지역의 국민연금 체납액 총액은 152억5000만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4대보험 체납처분 유예 기간을 내년 6월까지 연장하려는 움직임에 따라 하청 노동자의 피해 예상액은 더 커질 전망이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회견문에서 ▲국민연금 체납처분 유예조치를 2017년 12월로 중단할 것 ▲조선업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후 2016년 7월 이후 발생한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국민연금 체납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정영현 담쟁이기자  minplusnews@gmail.com

2017년 12월 17일 일요일

낯선 새 한 마리가 낳은 ‘탐조 효과’ 2억4천만원

낯선 새 한 마리가 낳은 ‘탐조 효과’ 2억4천만원

조홍섭 2017. 12. 18
조회수 939 추천수 0
미서 나그네새 검은등찌르레기 출현, 이웃 나라서까지 1800여명 몰려
두달 동안 교통·숙박·식사비 지출액 상당…난개발보다 경제효과 높아

Jeffrey Gordon-s.jpg» 검은등찌르레기를 보기 위해 외국에서까지 탐조객이 교외의 작은 마을에 몰려들었다. 제프리 고든 제공

지난여름 새만금에서 우리나라를 찾은 적 없는 홍학이 발견돼 화제가 됐지만, 탐조객이 북적대지는 않았다. 탐조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 낯설고 희귀한 새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퍼지면 상황은 다르다. 탐조 장소로 가는 길이 막히고 숙박 장소를 구하기도 어려워진다. 알려지지 않은 경제 파급효과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교외인 버크스 카운티의 한 가정집 뒤뜰에 새를 위한 모이대를 설치했는데, 1월26일 진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멕시코 고유종인 검은등찌르레기가 나그네새로는 처음으로 관찰됐다. 일주일 뒤 이 소식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조류 애호가들에 알려졌다. 이후 새가 떠나기까지 두 달 남짓 동안 1824명의 탐조객이 멀리는 캐나다에서까지 이 집을 찾아왔다. 집주인은 방명록을 두고 어느 지역에서 온 누구인지 기록하게 했다.

Susan Schmoyer-s.jpg» 멕시코 고유종인 검은등찌르레기 한 마리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교외에 나타났다. 희귀 조류의 출현은 알려지지 않은 경제효과를 낸다. 수전 슈모이어 제공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자들이 이 사례와 자료를 토대로 일상적이지 않은 희귀 새를 추적하는 탐조 활동의 경제효과를 추정했다. 탐조객들이 교통과 식사, 숙박에 지출한 돈은 모두 22만3851달러(2억4천만원 상당)에 이르렀다. 하루 3천달러꼴이었다.

연구에 참여한 리처드 킹스퍼드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는 “생물 다양성이 경제에 도움을 주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지만, 이 연구는 생물 다양성 보전에서 진짜 달러가 나온다는 걸 보여준다. 새 한 마리가 경제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미국에는 1780만명의 탐조 인구가 있으며 이들이 쓰는 돈은 연간 400억달러(약 40조원)에 이른다. DOI: 10.1080/10871209.2017.1392654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orey T. Callaghan, Michael Slater, Richard E. Major, Mark Morrison, John M. Martin & Richard T. Kingsford (2017): Travelling birds generate eco-travellers:
The economic potential of vagrant birdwatching, Human Dimensions of Wildlife, DOI: 10.1080/10871209.2017.139265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2017년 12월 16일 토요일

8주째 비어 있는 피고인석…‘불통’ 박근혜는 바뀌지 않았다

등록 :2017-12-17 09:44수정 :2017-12-17 10:14

[토요판] 법정 다큐-수인번호 503
⑫ 박근혜 탄핵 1년
최다 공범 최순실엔 25년 구형
이영선·장시호 등 유죄 판결문엔
일관되게 “대통령 지시” 판단
국정농단 1심 ‘박근혜 재판’만 남아
탄핵 법정에선 “사회 통념”
형사 법정에선 “정치 보복 당해”
피고인 없는 궐석재판만 세 차례
국선변호인이 ‘내심’ 짐작해 변론
지금으로부터 꼬박 1년 전인 2016년 12월9일 금요일 오후 4시10분. 영상 기온을 가까스로 웃도는 추운 날씨에 사뭇 뜨거운 공기가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주변을 데웠다. 헌정 사상 두번째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의원 234명의 찬성으로 의결되는 순간이었다. 1시간40분 뒤, 헌법재판소에 사건이 접수됐고 사건번호 일곱 글자가 이후 대한민국의 1년을 바꿨다.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과 비리 그리고 공권력을 이용하거나 공권력을 배경으로 한 사익의 추구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국민은 이러한 비리가 단순히 측근에 해당하는 인물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본인에 의해서 저질러졌다는 점에 분노와 허탈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 이 탄핵소추로서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며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의사와 신임을 배반하는 권한행사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준엄한 헌법 원칙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탄핵소추 의결서 속 피청구인 박근혜는 대통령이라기보다는 민간인 최순실씨의 대리인에 가까웠다. 대통령으로서 법률과 헌법 수호 의무에 눈감은 채 ‘40년 지기’ 최씨에게 권력을 위임하다시피 했단 내용이었다.
박 전 대통령 생각은 달랐다. 직무가 정지된 지 이레 만에 헌재에 낸 첫 답변서를 통해 그는 침묵을 깼다.
“대통령이 국정 수행 과정에서 지인의 의견을 들어 일부 반영했다고 해도 이는 사회 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일(White House Bubble·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갇혀 외부와 고립되는 상황).”
“대통령이 최씨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최씨의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을 대통령의 형사상 책임으로 구성한 것은 헌법상 연좌제 금지의 정신에 위배된다.”
“최순실의 국정 관여 비율은 대통령의 국정 수행 총량 대비 1% 미만이다.”
어떠한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결연함이 엿보였다. 주말마다 광화문광장을 채우며 ‘박근혜 퇴진’을 외치던 촛불과도 온도 차가 나는 답변이었다. 이후 92일간 탄핵심판이 이어지는 동안 박 전 대통령 쪽은 헌재 재판관을 ‘국회 수석대리인’으로 묘사하고, “부양해야 할 자식 없이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 전 대통령의) 애국심을 따뜻한 시각에서 봐달라”는 등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지는 발언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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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정치투쟁 고수하는 ‘피고인 박근혜’
1년 뒤, 탄핵심판 피청구인이 아니라 형사재판의 피고인이 된 박근혜는 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역시 구치소로부터 인치 보고서가 왔습니다. 피고인이 법정에 나가기를 거부하고 있고 법정에 인치하기 곤란하다는 취지의 보고서입니다. 박근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의 인치도 현저히 곤란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형사소송법에 의해서 피고인 출석 없이 그대로 공판 절차 진행하겠습니다.”(12월12일 김세윤 부장판사)
지난 10월16일 박 전 대통령이 재판부의 추가 구속영장 발부를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정치투쟁을 선포한 뒤 피고인석은 8주째 덩그러니 비어 있다. 피고인 없이 열리는 궐석재판만 세 차례 열렸다. 접견을 거부하는 피고인 대신 다섯명의 국선변호인이 그의 내심을 미루어 ‘짐작’하며 변론할 뿐이다.
“(문체부로부터 지원 배제 리스트를) 받은 뒤 여러 가지 고민을 했습니다. 이름이 튀거나 청와대로 보냈을 때 배제될 수 있는 단체들은 아예 문체부에 (명단을 보낼 때부터) 단체명과 대표자명을 바꿨습니다. 일종의 허위보고 내지는 조작을 한 겁니다. 선정이 위험한 단체들에는 전화해서 ‘이번에 말고 다음번에 신청해줬으면 좋겠다’고 얘기도 했습니다. 심의위원들에게는 ‘상부기관에서 이런 게 왔으니 심의위원 보이콧을 해줬으면 좋겠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조건부 탈락’이란 걸 만들었습니다. (지원 대상에서) 탈락했다고 보고하고 실제로는 일정 조건이 되면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세번째 궐석재판이 열린 지난 12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아무개 본부장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집행 과정을 증언했다. 문체부와 윗선으로부터 “청와대가 싫어하는 단체”에 대한 지원 배제를 요구받았고, 배제 대상을 줄이기 위해 갖은 고육지책을 썼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저도 왜 지난 3년 동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20년 동안 몸담은 현장에서는 저더러 부역자라며 손가락질합니다. 박 전 대통령한테 책임을 꼭 물었으면 좋겠습니다.”
‘블랙리스트’ 업무는 피해자뿐 아니라 대다수 집행자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김씨 말을 들어야 할 피고인 박근혜는 자리에 없었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인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지난 14일 결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인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지난 14일 결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궁극적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박 전 대통령은 파면이란 현실도, 국정농단의 정점이란 혐의도 부정하지만, 법의 판단은 다르다.
“피청구인의 이 사건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게 된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2017년 3월10일, 헌재 파면 결정)
탄핵심판은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을 끝내는 데 그쳤지만, 형사재판은 그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다. 16개 혐의를 받는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 밖으로 나오긴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일주일에 한번꼴로 속속 날아드는 공범들의 유죄 판결은 박 전 대통령에겐 암울한 소식이다. 박 전 대통령 지시로 최씨에게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11월15일 선고), 케이티(KT) 인사 청탁 및 68억 광고 수주 압력 행위의 공범인 차은택씨(11월22일)에 이어 최씨 조카 장시호씨 등이 삼성과 문체부 산하 그랜드코리아레저(GKL)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영재센터) 지원을 강요한 혐의로 지난 6일 유죄를 선고받았다. 일찌감치 선고가 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포함하면 관련 사건 8건 중 6건이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상황이다.
판결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박 전 대통령이 빠져나갈 구멍은 더 작아 보인다.
“피고인의 지위나 업무 내용 등에 비추면 무면허 의료 행위를 청와대 내에서도 받으려는 대통령의 의사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인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서울고법 형사5부, 이영선 전 청와대 경호관 ‘의료법 위반 방조’ 2심 선고)
“삼성전자의 영재센터 지원은 박 전 대통령의 이 부회장에 대한 요청과 이 부회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 장시호씨 1심 선고)
11개 혐의 ‘최다 공범’ 최순실씨 역시 내년 1월26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14일 최씨에게 징역 25년을 구형하며 1년을 달린 국정농단 ‘1호’ 재판을 마무리했다.
“피고인은 국정농단 사태의 시작과 끝입니다. 피고인은 박 전 대통령과 40년 지기로서 친분관계를 이용해 소위 지난 정부의 ‘비선 실세’로서 정부조직과 민간기업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국정을 농단해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된 국가위기 사태를 유발한 장본인입니다.”(검찰)
“재판 내내 피고인이 본건 범행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별다른 근거 없이 검찰 및 특검을 비난하는 법정 태도를 보며 참으로 후안무치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마지막 순간까지라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 양심의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국민의 가슴에 다시 한번 큰 상처를 줬습니다.”(특검)
징역 25년 구형에 최씨는 무너졌다. 비명과 오열이 섞인 말을 늘어놓으며 격렬히 저항한 뒤 조기퇴정했다.
“저는 박 대통령이 젊은 시절 그분이 겪은 고통과 아픔을 딛고 일어난 그분의 강한 모습에 존경과 신뢰를 가졌기 때문에 그분을 40년 동안 곁에서 지켜온 것뿐입니다. 사실 그분과 함께했던 시간은 어려운 시간이 많았고 박 대통령을 탄압하기 위해 정권마다 저희에게 이뤄진 세무조사와 의혹 제기는 완전히 제 삶을 무너지게 했고 딸아이는 마음의 상처를 받아 어린 학생의 꿈은 없어져버렸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삶이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대통령이 되셨을 때 떠났어야 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으나 떠나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고 이런 국정농단 논란이 된 것에 대해 고통스러워했을 박 대통령과 충격을 받은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싶습니다.”
사과는 했지만 반성은 없었다. 최씨는 ‘비선 실세’라는 말을 극구 부인하면서도 자신은 ‘투명인간’이라고 했다. 이경재 변호사 역시 “최씨는 드러나지 않은 대통령의 조력자”라며 거들었다. 투명인간이든 숨은 조력자든 공직자에겐 그 존재만으로 치명적이라는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는 박 전 대통령과의 사적 인연과 그를 보좌한 자신에 대한 연민을 토해내며 23분간의 최후진술을 끝맺었다.
“그동안 박 대통령 곁에서 투명인간같이 살아온 삶은 정말 어려웠고, 제 개인의 삶은 실종되었고 결국 가족들의 많은 희생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결코 박 대통령과 공모하여 어떤 사익도 추구하지 않았고 어떤 이익을 나눈 적도 없습니다!”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된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공판에 출석한 뒤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된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공판에 출석한 뒤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최씨를 끝으로 ‘국정농단’ 사건 1심 재판은 박 전 대통령 사건만 남겨 두게 됐다. 이 모든 사태의 시발점이 된 탄핵을 막을 기회는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탄핵 직전 박 전 대통령의 참모들은 진실을 말할 기회를 여러 차례 얻었다. 하지만 이들은 줄곧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거짓말을 내놓으면서 국민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지난해 12월7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장에 나온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꿋꿋했다.
“최순실을 제가 알았다면 무언가 연락을 하거나 통화라도 한번 있지 않겠습니까?”(김기춘 전 실장)
“최순실을 언제 알았습니까?”(이용주 국민의당 의원)
“이번에 태블릿피시가 노출되어 가지고 이름이 나와서 알았습니다.”(김)
“(정윤회 문건을 제시하며) ‘최태민 목사의 5녀(女) 최순실’ 이렇게 ‘정윤회 부’라고 등장하거든요.”(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착각했습니다.”(김)
“정말 어떻게 이렇게 거짓말을 하십니까? 여기 첫 문장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최순실입니다.”(박)
“본 지가 오래돼서 착각했습니다.”(김)
“아직도 대통령을 매력적(charming)이고, 위엄(dignity)하고, 엘레강스(elegance) 우아하다’고 생각합니까?”(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
“대답하세요.”(안)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김)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입니까?”(안)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김)(2016년 12월7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
지근거리에서 국정농단에 눈감았던 참모들은 탄핵을 막지 못했고, 끝내 함께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과오로만 남은 박근혜 정부 4년을 돌이켜보며, 박 전 대통령과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49년만의 졸업장, 故백남기 명예학사학위 수여식…김상곤 “농민열사로 부르고자 한다”

눈물 흘리는 故백남기 농민의 아내 박경숙 여사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7-12-16 20:13:22
수정 2017-12-16 20: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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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대학원 건물에서 ‘故 백남기 동문 명예학사학위 수여식’이 열렸다.
16일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대학원 건물에서 ‘故 백남기 동문 명예학사학위 수여식’이 열렸다.ⓒ민중의소리

“저는 고인을 ‘백남기 농민열사’로 불러드리고자 합니다. 고인의 정의로운 희생은 촛불혁명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문재인 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백남기 농민열사께서는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그 정신은 시대와 함께 숨 쉴 것이라 생각하며 저부터 그 정신 이어받아 선생님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6일 ‘故 백남기 동문 명예학사학위 수여식’에 참석한 김상곤 사회부총리의 말이다. 그는 고인을 “농민열사”라고 칭하며 “문재인 정부는 고인의 뜻을 받들어 부당하고 억울함이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것이 적폐청산의 정신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수여식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던 백남기 농민열사의 아내 박경숙 여사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중앙대학교는 이날 서울캠퍼스 대학원 5층 대회의실에서 수여식을 열었다. 수여식에서 대학 측은 유가족 대표인 백도라지씨에게 백남기 농민 명예졸업증서 및 공로패를 전달했다. 수여식에는 김 부총리 외에도 김영진·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창수 대학총장이 참석했다. 유가족으로는 백남기 농민의 아내 박경숙 여사와 딸 백도라지, 아들 백두산씨가 참석했다. 정현찬 가톨릭농민회 회장과 백남기 농민과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이명준씨 및 선후배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 각계각층의 시민사회 대표자들도 수여식을 찾았다.
16일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대학원 건물에서 ‘故 백남기 동문 명예학사학위 수여식’이 열렸다.
16일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대학원 건물에서 ‘故 백남기 동문 명예학사학위 수여식’이 열렸다.ⓒ민중의소리
16일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대학원 건물에서 ‘故 백남기 동문 명예학사학위 수여식’이 열렸다.
16일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대학원 건물에서 ‘故 백남기 동문 명예학사학위 수여식’이 열렸다.ⓒ민중의소리
故백남기 농민열사, 49년만의 졸업장
“중앙대에 백남기 동상을 세워달라”
이날 故 백남기 농민열사는 중앙대학교 68학번 행정학과 명예졸업생이 됐다. 대학입학 이후 49년만의 일이다.
그는 대학입학부터 마지막 숨을 거두는 날까지 한 평생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1968년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한 그는 1971년 위수령 시위로 제적을 당했고, 1973년 교내에서 유신 철폐 시위를 주도했다가 수배생활을 해야만 했다. 1980년 복교한 뒤 유신잔당 장례식과 의혈중앙 4000인 한강도하 등을 주도했다. 이같은 활동으로 5월17일 신군부의 계엄군에 체포돼 가혹한 고문과 수감생활을 겪었다. 학교에서마저 퇴학을 당했다. 이후 고향 보성으로 귀향해 가톨릭농민회에 가입, 농촌살리기 운동에 전념했다. 그러다가 2015년 11월14일 농민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317일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결국 백남기 농민은 중환자실서 생을 마감했다.
백남기 농민 유가족에 따르면, 중앙대학교 민주동문회가 백남기 농민열사의 명예졸업장을 추진하고 학교가 준비해 이날 수여식이 열리게 됐다. 딸 백도라지씨는 “아버지께 49년 만에 졸업장을 받는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볼 수는 없지만… 하늘에서 기뻐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라는 빡빡한 시스템 안에서 이례적인 명예수여식자리를 마련해 준 아버지 동문들과 학교관계자들, 이 자리를 찾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수여식에서 백남기 농민열사와 함께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중대 신문방송학과 69학번 이명준(70)씨는 “의혈 탑에 백남기 농민의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화운동과 농민운동에 평생을 몸 바친 사람은 몇 없다”며 “백남기 농민은 중앙대학교의 창학이념인 ‘의와 참’ 정신이자 촛불혁명의 중요한 상징이기에 동상을 세워줄 것으로 요구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촛불의 출발을 백남기 농민이 이루었고, 평화적 시위로 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촛불혁명을 말할 때 백남기 농민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16일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대학원 건물에서 ‘故 백남기 동문 명예학사학위 수여식’이 열렸다.
16일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대학원 건물에서 ‘故 백남기 동문 명예학사학위 수여식’이 열렸다.ⓒ민중의소리

아웅산 수치 침묵 속에 아이들이 산채로 태워지고 있다

[함께 사는 길] 제국주의가 낳은 로힝야족의 비극
"군인들이 아이들을 산채로 태웠고, 여성들을 집단 성폭행했다. 달아나는 주민들에게는 총격을 가했다. 미얀마 군의 인권유린은 사실이며 폭력은 폭넓고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HRW)를 비롯한 58개 국제 시민사회 인권단체들이 지난 11월 2일 미국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앞으로 보낸 서한의 일부다. 이들은 잔혹 행위를 벌이고 있는 미얀마에 대해 관련 법령에 따른 경제 제재를 촉구했다. 미얀마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 보트를 타고 미얀마를 탈출해 방글라데시에 도착한 로힝야족. ⓒDan Kitwood

미얀마의 소수민족 로힝야족  

소수민족인 로힝야(Rohingya)족에 대한 인종청소 문제는 미얀마 라카인(Rakhine)주에서 발생하고 있다. 미얀마는 수십 년에 걸친 군부독재 끝에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를 향한 과도기를 밟아 가고 있던 터였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 8월 일어났다. 로힝야족 반군인 아라칸로힝야구원군(ARSA)이 8월 25일 라카인주에서 미얀마 정부를 상대로 항전을 선포하고, 국경 인근의 경찰 초소 30여 곳을 습격한 것이다. 이에 미얀마 군은 반군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병력을 투입해 군사작전을 펼쳤다. 토벌과 다름없는 무차별 군사작전은 두 달 넘게 계속됐고, 그 결과 60만 명 넘는 로힝야족 난민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도피했다.

로힝야족 난민들은 미얀마 군이 토벌 작전을 벌이며 살인, 방화, 성폭행 등을 일삼았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국제 민간기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미얀마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하며 국제사회의 조사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미얀마 군의 이번 로힝야족 사태를 '인종 청소'로 규정, 미얀마 정부를 향해 군사작전의 즉각 중단과 국제 구호단체가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협조를 촉구하고 있다.

인구 5500만 명의 미얀마는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 불교를 믿는 버마 족이 68퍼센트로 제일 많으며 샨족(9퍼센트), 카렌족(7퍼센트), 라카인족(4퍼센트) 등 소수민족의 수도 매우 다양하고 많다. 로힝야족은 인구 2퍼센트를 차지하는 소수민족이며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이슬람교를 믿는다.  

로힝야족은 전 세계에 200만 명이 있으며, 미얀마에 13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미얀마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 로힝야족은 원래 남아시아 출신으로 인도 인근 지역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살았다.  

하지만 1885년 영국은 미얀마를 인도의 한 주로 편입하면서 로힝야족을 비롯한 인도인들을 미얀마로 강제이주 시킨 뒤, 미얀마 인들을 소작농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이는 영국의 분리통치 지배방식의 일환이었다. 분리통치란 언어, 인종, 이념 등이 다른 부족들을 서로 싸우게 해서 약해진 양쪽을 적은 힘으로 동시에 제압하는 전략을 뜻한다.

로힝야족은 영국의 비호 아래 미얀마 정부의 요직을 차지했고, 각 지방의 주요 관직에 배치되어 영국의 미얀마 수탈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미얀마의 독립운동 과정에서 로힝야족은 영국 편에 서서 많은 미얀마 인을 살상하기도 했다.  

르완다 인종청소 이후 최악의 참사 

▲18살 소년은 로힝야족이란 이유로 버마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았다. ⓒDan Kitwood
로힝야족 갈등은 과거 제국주의 전쟁의 소산인 한편 현대 미얀마 정부가 야기한 문제이기도 하다. 미얀마는 1948년 1월 4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하지만 미얀마는 로힝야족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고 이들을 불법체류자로 취급해왔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을 방글라데시와 인접한 라카인 주에 몰아넣고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를 금했다. 모든 참정권을 박탈하고 2인 이상 자녀를 갖는 일도 막았다. 이 같은 악조건에서 로힝야족 청년들은 IS 등 이슬람 근본주의에 빠져들게 됐고 미얀마-로힝야족 사태는 폭력의 악순환에 걸려들었다.

역사적 증오 속에 반목해 왔던 로힝야족에 대해 미얀마 정부군은 지난 8월 로힝야족 ARSA의 공격을 빌미로 탄압을 본격화했다. 무자비한 폭력과 강간, 살인을 피해 로힝야족은 이웃 나라인 방글라데시로 향할 수밖에 없었고 이번에 이동한 난민만 60만 명을 넘어섰다고 알려졌다. 방글라데시에 있는 11개 로힝야 난민 수용소 가운데 6개가 최근 지어졌다.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 정부는 난민 대란을 치르며 미얀마에 항의하는 중이다.  

하지만 난민송환을 위한 방글라데시-미얀마 간 양국 회담에서 미얀마는 하루에 300명만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얀마는 꼼꼼한 신분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게 이유지만 이 경우 전체 난민송환에 6년 이상이 소요돼 방글라데시로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난민 대부분이 실제 미얀마 국적이 없고, 미얀마 내 거주 사실을 증명할 서류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로힝야족 사태로 인해 미얀마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국가자문역을 맡고 있는 아웅산 수치가 현 상황에 침묵하는 것에 대하여 실망스럽다는 여론이 높다. 한 편에서는 아웅산 수치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철회해야 한다는 서명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유니세프는 8월 25일 이래 방글라데시에 도착한 로힝야 난민 아동 5만9000여 명을 진찰한 결과, 1970명이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려 있으며 7000명은 보통 상태의 영상실조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국경없는의사회'와 휴먼라이츠워치는 미얀마 군인들이 로힝야족 여성과 소녀들을 상대로 집단 성폭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밝혔다. 유엔은 이번 사태를 1994년 르완다 인종청소 이후 최악의 참사로 규정했다. 

미얀마 정부가 폭력의 악순환 끊어야  

유엔난민기구는 전 세계 75개국 320만 명이 국적 없이 살고 있는 문제가 있으며 실제 무국적자는 10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얀마 로힝야족, 시리아 쿠르드족, 옛 유고연방의 집시, 케냐 펨바족 등이 무국적자로 방치되어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한 과거사는 안타깝지만 폭력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미얀마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잔혹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으며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arqus@ekara.org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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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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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16  14:5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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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숙 여사와 함께 16일 오전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방문, 김구 흉상에 헌화 묵념하고 있다. [사진출처 - 청와대페이스북]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의 뿌리입니다. 우리의 정신입니다. 2017.12.16.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중국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충칭(中京)시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둘러보고 방명록에 이같이 썼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30분(이하 현지시간, 한국시간 10시 30분) 수행단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사전람관’을 찾아 김구 주석이 사용했던 ‘주석 판공실’ 등을 둘러봤다.
문 대통령은 이어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간담회를 갖고 “여기 와서 보니 우리 선열들이 중국 각지를 떠돌면서 항일 독립운동에 바쳤던 그런 피와 눈물, 그리고 혼과 숨결을 잘 느낄 수가 있었다”며 “우리 선열들의 강인한 독립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특히 “임시정부는 우리 대한민국의 뿌리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법통이다”며 “우리는 임시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건국의 시작으로 그렇게 보고 있다”고 재확인하고 “2019년은 3.1 운동 100주년이면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고, 그것은 곧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 된다”고 분명히 했다.
또한 “해방 정국에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을 이끌지 못했다는 점이 우리로선 한스러운 부분”이라며 “앞으로 기념사업 통해서라도, 임시정부 기념관 통해서라도 법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부 뉴라이트 계열 등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삼자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임시정부사전람관’ 내부에 있는 김구 주석이 사용했던 ‘주석 판공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출처 - 청와대페이스북]
  
▲ 문재인 대통령 ‘대한민국임시정부사전람관’에 전시된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출처 - 청와대페이스북]
문 대통령은 “100주년 이 기간 동안 국내에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을 건립하려고 한다”며 “부지는 마련이 돼 있기 때문에 정부가 모든 힘을 다해 조기에 임시정부 기념관이 국내에서도 지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중국 각지에 흩어진 과거 우리 독립운동 사적지도 제대로 보존할 수 있도록 최선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아직까지 광복군 총사령부는 복원되지 못했다”며 “총사령부 건물도 빠른 시일 내에 복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정말 여기 와서 보니 가슴이 메인다”며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기억해야 나라도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히고 “우리가 2019년에 맞이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 100주년의 정신을 제대로 살려내는 것이 국격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임정청사를 찾아간 문재인 대통령이 수행단과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사진출처 - 청와대페이스북]
  
▲ 문재인 대통령은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사진출처 - 청와대페이스북]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 회장은 “이렇게 대통령께서 방문한 것에 대해 정말 기쁘다”며 “이 지역은 당시에 내 집이라 할 정도로 살다시피 했다”고 과거를 회고하고 참석자들을 소개했다.
이종찬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추진위원장은 “여기(중국) 유족들은 사실은 서울에 와서도 갈 데가 없었다”며 “대통령께서 용단을 내리셔서 이 기념관(서울 임정기념관)을 마련해 주신 것은 참으로 감동스러운 일”이라고 사례했다.
이어 “임시정부의 정신은 자주, 화합, 평화와 민주”라며 “이제 2019년이 되면 또 다른 세기가 시작이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테이프 끊는 첫 대통령이 돼서 새 임시정부 기념관이 서울에 섦으로써 그런 것이 다시 강조되는 시기가 오길 기대해 마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달 선생의 후손 이소심 여사는 “충칭은 우리 대한민국에게 매우 의미 있는 곳이다. 임시정부 청사는 6년간 있었는데 정치, 군사, 외교 등 여러 가지 방면에서 성과가 많았다”며 “한․중 양국 우의가 앞으로 영원히 계속되길 바란다”고 인사했다.
충칭 임정청사 방문에는 김정숙 여사와 강경화 외교장관, 노영민 주중국대사,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등 수행단과 특별수행원인 이해찬․송영길․박병석․박정 의원, 김구 선생 주치의였던 유진동 선생의 후손 유수동 선생 등 독립유공자 후손 6명이 참석했다.
  
▲ 충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천민얼 충칭시 당서기와 오찬을 가졌다. [사진출처 - 청와대페이스북]
  
▲ 오찬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천민얼 당서기가 환담하고 있다. [사진출처 - 청와대페이스북]
문재인 대통령은 이어 오전 11시 35분 충칭시 유주빈관 3호에서 천민얼(陈敏尔) 충칭시 당서기와 오찬을 갖고 상호 관심사를 논의했으며 ‘광복군 총사령부 터 복원 사업’ 재개에 합의했다.
문 대통령은 “충칭은 우리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초한지와 삼국지의 역사적 배경이기도 하지만 우리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와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던 곳이고 또 주은래 등 중국 지도자들과 활발히 교류를 하고 협력했던 그런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며 “그간 충칭시 정부가 우리 독립운동 사적지 보호 관리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주신데 대해서 깊이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이어 “충칭은 역사의 도시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중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그런 대단히 중요한 도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한-충칭 간 경제협력의 확대가 중국의 서부대개발과 또 중국의 균형발전에 아주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말했다.
천민얼 서기는 “이번 중국 방문 기간에 특별히 우리 충칭시를 방문해 주신데 대해 뜨거운 환영의 말씀드린다”고 인사하고 “한편으로 우리의 역사적 관계, 우리 사이의 공동적 우정하고 기억할 만한 옛날의 일도 기념할 수 있고, 또 현실적으로도 우리 사이의 실무적 협력을 강화할 수가 있다”고 화답했다.
  
▲ 오찬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천민얼 당서기가 환담을 나누고 있다. 이 자리에는 문재인 대통령 국빈방문 수행단과 충칭시 간부들이 배석했다. [사진출처 - 청와대페이스북]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오찬 간담회가 끝난 뒤 문재인 대통령과 천민얼 당서기가 충칭시 독립운동 유적지 중 하나인 ‘광복군 총사령부 터 복원 사업’을 재개한다는데 합의했다고 전했다.
광복군 총사령부 터 복원은 이전 정부에서 합의됐으나, 사드 문제로 중단됐고, 문 대통령이 14일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각별한 관심을 요청했던 사안이다.
윤 수석에 따르면, 천민얼 당서기는 “충칭시는 중·한 관계 우호협력을 위해 특별한 역할을 하겠다”며, “충칭 내 한국의 독립운동 사적지를 보호하기 위해 연구하고, 충칭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천민얼 당서기와의 오찬에는 김동연 부총리, 강경화 외교부장관, 노영민 주중국대사, 정의용 안보실장,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홍장표 경제수석 등 우리 측 공식수행원과 특별수행원 등이 배석했으며, 중국측에서는 장궈칭 충칭시장, 추궈홍 주한국대사, 탕량즈 충칭시 부서기, 왕센강 충칭시당위 상무위원, 류구이핑 충칭시 부시장 등이 참석했다.

천민얼(57) 충칭시 당서기는 지난 10월 19차 당대회에서 중앙정치국 위원(25명)에 선출된 3명의 1960년대생 위원 중 한 명으로 시진핑 주석의 이후 차기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추가, 1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