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17년 12월 13일 수요일

민변 TF, 북 여종업원 사건 킨타나 유엔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협력해 갈 것

민변 TF, 북 여종업원 사건 킨타나 유엔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협력해 갈 것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7/12/13 [23:4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기획탈북의혹사건대응 TF팀장을 맡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장경욱 변호사는 “김련희씨는 평양시민이다. 본인 의사로 한국에 입국하지 않았다는 것이 본인 의사로 명백히 확인되었음에도 정부당국은 가족들과의 상봉을 막고 있다. 나아가 김련희씨의 페이스북 활동 등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일체의 활동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려 하고 있다. 이는 적대적인 분단 대립 구조의 모순 덩어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현실”이라면서 “김련희씨와 보안수사대에 함께 들어가서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고 퇴거할 예정이다. 그리고 서울 UN인권사무소에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을 만나서 이 상황을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12일 유엔 총회 보고서에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을 포함시킨 것에 대해 “인권과 인도주의 관점에서 자신이 검토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고 특히 북 여종업원들 가족들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 대응TF'는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같이 전했다.

이날 TF 소속 4명의 변호사들은(장경욱, 채희준, 천낙붕, 오민애 변호사) 오전 11시 30분 서울 유엔인권사무소에서 방한 중인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만나 이 사안과 관련해 1시간 20여분 동안 면담을 진행했다.

이 면담에서 변호사들은 킨타나 보고관에게 인신보호구제심사청구, 변호인 접견거부처분 취소소송 등 국내 소송 진행경과와 유엔 자유권위원회에 대한 개인진정, 자의적구금실무그룹에 대한 긴급청원 및 유엔 인권이사회 ‘법관과 변호사의 독립을 위한 특별보고관’,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에 대한 긴급청원의 진행경과를 설명하였고, 유엔 개인진정서와 긴급청원서, 한국 정부 답변서 등 유엔 내 인권구제절차에서 제출된 자료 일체를 전달했다.

변호사들이 킨타나 보고관의 관할권에 대하여 질의하자 “북한 내외의 북한 주민의 인권과 인도주의 위기 전반에 걸쳐 관할권이 있다”고 답했으며, 변호사들은 “향후 이 사안을 비롯하여 한국 내 탈북자 인권침해 문제(북송 희망 탈북자 문제, 탈북자 간첩조작 사건, 한국 내 탈북자 차별 문제)에 대하여 킨타나 보고관과 연계를 갖고 적극적으로 진정 및 청원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과 관련하여 킨타나 보고관은 “이 사안은 인권의 문제로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에 따라 처리해야 할 것이고, 그 전제로서 변호인들이 자유롭게 여종업원들을 만날 수 있어야 하고, 여종업원들과 북 가족들이 만날 수 있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확인된 의사에 따라서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본인 의사에 반해서 왔으나 여기 남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의 경우에는 귀순공작의 결과로 그런 의사를 가지게 된 개연성이 있으므로, 이에 유엔에서 신속히 변호인 접견을 중재해달라는 것과 함께 판문점이든 서울 유엔인권사무소이든 북 가족들과 종업원들의 상봉을 신속하게 주선해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한편 킨타나 보고관에게 이 사안과 관련하여 그가 제72차 유엔총회에 보고한 보고서 내용 중 종업원들이 한국행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다는 기술을 한 것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조사결과에 대하여 질문하자 “자신의 의견이며, 한국 정부의 설명에 의문을 갖고 있다. 그래서 변호사들을 만났다”고 밝혔다. 이어 “유엔 내에서 이 사안을 계속 다루고 있고 그 과정에 여종업원들을 추가로 만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위 보고서에 ‘여종업원들이 현재 구금상태에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했다’고 했으나 변호사들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국정원이 여전히 여종업원들을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설명하자 “현재 서울 유엔인권사무소에서 계속 확인 중인 사항”이라고 답변했다.

마지막으로 킨타나 보고관은 변호사들에게 “나는 인권과 인도주의 관점에서 객관성, 공정성, 독립성에 기반해서 활동하는 유엔 보고관으로 우선, 북측 부모들에게 킨타나 특별보고관을 만났고 이 사안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려달라”면서 “북한을 방문하여 북측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도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변호사들은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킨타나 보고관과 협력하여 이 문제해결을 위하여 노력할 것을 전했다.

트위터페이스북

"대한민국이 알고있던 홍준표는 가짜다"

17.12.14 09:33l최종 업데이트 17.12.14 09:33l



지난 1991년 홍준표 당시 광주지검 강력부 검사에 의해 조직폭력단 '국제PJ파 두목'으로 기소됐던 여운환씨가 입을 열었다. 그는 <오마이뉴스>와 이틀간 총 7시간에 걸쳐 자신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사이에 있었던 '사나웠던 운명'을 숨가쁘게 털어놨다. <오마이뉴스>는 20회에 걸쳐 그 '사나웠던 운명의 증언'을 풀 스토리로 연재한다. 이 기사는 여는글에 이어 본격 인터뷰 연재 첫번째다. <오마이뉴스>는 여 대표의 인터뷰 내용과 관련해 홍 대표의 해명과 반론을 듣고자 수차례 접촉을 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다만 홍 대표의 한 측근인사는 "그것은 검찰(검사)이 불의한 깡패세력을 소통한 사건"이라고 반박했다. <오마이뉴스>는 이후라도 언제든지 홍 대표의 반론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힌다. [편집자말]
 여운환 아름다운컨벤션 대표가 지난 10월 25일 광주의 한 호텔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여운환 아름다운컨벤션 대표가 지난 10월 25일 광주의 한 호텔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소중한



- 할 이야기가 많다고 들었다.
"내 입장에서는 홍준표한테 원한이 얼마나 깊겠어? 지금도 집사람은 (이야기가 알려지는 것을) 마다해. 내 얘기가 사회에서 거론되는 것 자체를 굉장히 염려할 정도여. 나는 홍준표라는 희귀한 정치인 때문에 졸지에 조직폭력배 두목으로 알려지면서 내 인생은 완전히 혼돈에 빠져들었어. 홍준표에 의해 이런 굴레('국제PJ파의 두목'으로 낙인찍힌 것 - 기자 주)가 씌워져 버리니 내가 받는 불이익이 너무 엄청나버려. 대한민국에서 조직폭력배 두목으로 각인되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겠어?

오죽하면 내가 집사람에게 이렇게 얘기했겠어? '아들들한테도 다 변명하고 사돈들도 다 알게 됐지만, 지금 손녀가 셋인데 그 애들한테 어떻게 일일이 대답할 수가 없지 않냐? 그래서 내가 포기할 수가 없다. 혹시라도 지금 사는 모습이 흐트러질까, 생활이 깨질까 두려운 모양인데, 내 생각도 좀 해주라. 당신은 이대로가 행복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다. 내가 홍준표에게 거짓을 만들어서 말하면 내가 당할 수 있으나, 팩트를 갖고 이야기하는 거니 아무리 거대 야당의 대표라고 하지만 내가 뭔 불이익을 받겠냐? 세상이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잃을 게 있다면 얼마나 더 잃겠냐? 사업 안하면 그만이고.' 

집사람도 반듯한 전남도청 공무원이었지. 도지사 비서실에서 죽 근무했던. 그런 집사람으로 봐선 얼마나 기가 막혀겠어? 집사람은 나랑 초등학교 동기야. 한 5년 연애하고 결혼했어. 내가 1977년 1월에 결혼했으니 올해로 41년 됐어. 만난 지는 46년 됐고. 누구 말대로 천생연분이라고 할 정도로 권태 한번 안 느꼈어. 그런데 나 땜에 어머어마하게 고생했어. 내가 몇 년씩 감옥살이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기가 막혔겠어? 재산은 재산대로 엄청나게 없어지고. 그러니까 여자로서는 두려울 수 있어. 얻을 것은 미비하고."

- 내가 잡지사 기자로 근무할 때 한국 조폭의 역사를 정리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기사의 마지막 대목이 당신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래서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질문지를 받아보고 내가 할 이야기가 많겠구나 생각했다. 내가 홍준표의 '모래시계 검사' 타이틀은 조작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이것 이상으로 홍준표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게 어디 있겠어? 내 말이 합당치 않은 이야기고 나 혼자서 만들어낸 이야기라면, 홍준표가 나를 찍어 죽일라고 할 거 아녀? 가만 두겄어? 자기가 알고 있는 비하인드(숨겨진 이야기)라도 꺼내지 않겠어? 그런데 말 한자리 못하고, 말하자면 노 코멘트 해불잖아. 홍준표가 노 코멘트할 사람이야? 절대 안 할 사람이야. 나는 홍준표를 너무 잘 알아. 

내가 조사받을 때 타자수가 여자였어. 근데 홍준표가 막 서서 왔다갔다 하면서 조사를 하더라고. '이때 검사는 창문 밖을 내다본다' 별 소설 같은 지문도 다 쓰라고 해. 재판부에 (검사의 고뇌 등) 현실적인 것을 막 얘기하고 싶은 거야. '이때 피의자는 고개를 숙인다'라고 쓰라고 해. 내가 인자 반성한다는 그런 것을 지가 연출한 거야. 

난 그런지도 모르고 듣기 싫어서 '검사님, 내가 뭘 반성합니까? 내가 뭘 반성할 게 있다고 반성을 해요?'라고 따졌어. 그러면 홍준표가 '지금도 당신은 말이야' 하면서 얘기해. 홍준표 말하는 투가 정말 싫었어. 수갑 찬 손으로 주둥이를 한 대 쳐불고 싶을 정도였어. '긍께 검사님, 좀 앉아서 조사하시라고요. 어지럽게 왔다갔다 하지 마시고.' 나도 얼마나 전라도 말을 (많이) 써불었겠어? 긍께 홍준표는 어쨌든 내가 싫은 거야. 오죽하면 내가 재판 중에 '저 검사 정신감정 좀 하는 게 좋겠다'고 했겠어? 글고 내가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디 홍준표가 우리 변호사한테 욕을 하더라고. '저 새끼' 어쩌구 하면서." 

"날 활용해 홍준표는 모래시계 검사가 되고"

- 원래 2부짜리 인터뷰를 생각하고 왔다. 1부는 국제PJ파사건이고, 2부는 이용호 게이트다. 그래서 인터뷰 시간도 굉장히 길 수밖에 없다. 오늘 이야기가 안 끝나면 내일 다시 시간을 내서 인터뷰를 이어갔으면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내가 말씀을 먼저 드려야 할 것이 있어. 인자 이용호 문제와 홍준표 문제를 섞으면 안돼. 이용호 문제는 우습지도 않아. 3류 사기꾼이나 다름없는 친구의 현란함에 당시 검사가 놀아났어. 그 이야기는 나중에 들려드릴게." 

- 이용호 게이트를 얘기할 시기는 아니다? 
"이용호 게이트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황당한 스토리가 전개됐는지 알 수 있는데 그렇게 가면 내가 바라는 취지가 소설화 돼버려. 남한테 소설같이 들려선 절대 안되는 이야기인데." 

- 그럼 이번 인터뷰에서는 홍준표와 국제PJ파 관련 이야기만 하고 싶다? 
"이용호 게이트는 나한테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가 아녀. 홍준표로부터 시작된 내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이어진 고통 중 하나일 뿐이야. 

그럼 이야기를 풀어나가 볼까? 우선 내 이야기를 하자면, 1974년도에 폭력 전과가 한 번 있었어. 그리고 홍준표를 1991년에 만났지. (폭력 전과가 있었던 1974년 이후부터) 1991년도까지 내가 경찰서나 파출소에라도 잡혀가서 조사받거나 입건된 적이 한 번도 없었어. 홍준표가 내가 국제PJ파를 만들어서 활동한 두목인 것처럼 만들었는데 그것 자체가 너무 잘못됐어. 홍준표가 나를 국제PJ파 두목으로 기소했지만, 그 공소사실 전체에 대해 조목조목 무죄를 받았다. 

내가 1심부터 대법원까지 무죄를 받은 사건을, 홍준표는 자기가 기소한 대로 유죄를 받았다고 지금까지 얘기해왔어. 내가 조폭 두목으로 활동해온 사람처럼 매도하고. 본인은 나중에 나를 적절하게 활용해서 무슨 턱도 없이 모래시계 검사가 되고, 나도 드라마 <모래시계>의 일부 모델이 됐어. 홍준표 인생과 내 인생이 너무 많이 바뀌었어. 나는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홍준표는 나를 잘 활용해서 오늘날의 홍준표가 됐고. 

하지만 홍준표는 사실 조작된 과거로 날조된 영웅담을 만들어냈던 거야. 대한민국이 알고있던 홍준표는 가짜다. 옛날에 흔하게 보안사범이나 간첩으로 조작한 것들이 많은 시간이 지나서 다 밝혀지고 있는데, 그런 데만 조작이 있는 게 아니라 내 사건도 완전히 조작됐어. 판결문에서 다 밝혀진 내용이야. 지금이야 그런 일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 환경이지만 30년 전에는 정말 안 그랬어. 

나는 그때 검사의 권력이 죄만 없으면 별 거 아닌 걸로 생각하고 세게 싸움을 붙었어. 조금도 굽히지 않고, 검사의 부당함에 많이 반발하고 그랬제. 그런데 나는 검사의 권력이 저렇게 함부로 쓰여지면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직접 체험했어. 당시 홍준표는 자기 혼자 힘으로 안되니까 당시 검사장을 꼬드겨서 이런 일들을 만들었어." 

- 그 검사장이라면 문정수 광주지검장을 말하나? 
"그렇다. 그분은 마치 홍준표의 말이 사실인 것처럼 믿었던 거야." 

2017년 12월 12일 화요일

강우일 주교 “강정 주민 사면돼야 모든 법적 문제 해결”

평화방송 전화인터뷰, “강정항, 미 해군기지 연장선이란 의구심 현실로” 우려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사진 : 뉴시스]
문재인 정부가 강정마을 주민을 상대로 34억원의 구상권 소송을 취하한 것과 관련해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13일 “구상권이 해결되더라도 이 (마을 주민과 평화활동가)분들이 법적으로 사면이 돼야 모든 법적인 강정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우일 주교는 이날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김혜영입니다’와 전화 인터뷰에서 정부의 소송 취하에 “기쁜 일이고요. 합당한 결정이고 또 당연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환영하면서도 이렇게 후속 법적 사면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왜냐면 “이 분들이 무슨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서 이렇게 한 것이 아니고, 정말 제주의 자연을 지키고 또 동북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들은 희생을 하면서 몸 사리지 않고 저항을 한 사람들인데, 이들을 범법자로 낙인을 찍어버리는 일을 국가가 해서는 안 된다”고 강 주교는 이유를 강조했다.
정부의 소송 취하에 대한 일각의 부정적 시선에 대해선 “지금까지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여러 기회가 있었는데, 그로 인해서 이렇게 공사가 지연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국민에게, 주민들에게 책임을 물은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면서 “(지난 정권이)이런 기회에 국책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좀 혼을 내야 된다는 그런 정부 당국의 상당히 오만한 태도가 있었던 것으로 제가 간접적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결정은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국민을 주민을 존중하는 그런 결론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정부가 이번 구상권 소송 취하를 계기로 해군기지 반대 시위가 중단되길 바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진행자가 묻자 강 주교는 “반대 시위라고 해도 결국 지금까지 누구도 폭력을 써서 반대 시위를 한 적이 없다. 항상 지난 10년간 평화적으로 주민들도 그렇고 활동가들도 그렇고 항상 평화적인 시위였다”고 환기시키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은 지금 기지가 완공된 후에 미국 해군 함정이 들어오기 시작을 했다. 미 해군 구축함, 이지스함 그리고 핵잠수함까지 다녀갔다. 기지 건설 시작 때부터 많은 이들이 강정을 미 해군기지의 연장선으로 짓는 것이 아니냐 하는 그런 의구심을 가지고 반대를 했는데, 그 의구심 염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면서 강 주교는 “ 그래서 갈수록 긴장이 더 극화되어 가는 동북아를 생각하면 이것이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고 볼 수가 없고, 그래서 아마 강정 주민들도 이러한 미 해군의 함정들이 정박하고 또 입항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고, 또 배들이 강정항에 도대체 무엇을 남기고 가는지 굉장히 불안해하고 초조해 하고 있다”면서 “그래서 그런 것이 참 주민들의 염려가 기우가 되기를 저는 간절히 바랄 뿐”이라고 착잡해했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2017년 12월 11일 월요일

푸틴대통령, 시리아 현지에서 IS거점 궤멸선언

푸틴대통령, 시리아 현지에서 IS거점 궤멸선언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12/12 [02:5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7년 12월 11일 시리아 해안 지역 라타키야의 흐메이임 러시아 공군기지를 방문해 승리 연설하고 있다.  

11일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오늘(11일) 처음으로 시리아를 전격 방문하였다.

그는 이날 시리아 해안 지역 라타키야의 흐메이임 러시아 공군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러시아 군은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며 높이 평가하고 “테러분자들이 다시 고개를 들면 러시아는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더 강력한 힘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러시아군 병력 '상당 부분'을 철수하도록 명령하였다.
시리아 정부의 자주권 존중 차원에서 '승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 사실상 승리선언을 함 셈이다. 

러시아는 이 흐메이임 공군기지와 서부 타트루스 해군기지를 전초기지로 삼아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정부군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왔다. 

▲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 

이에 앞서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참모총장은 지난 6일 ‘러시아군이 시리아에서 IS를 완전히 제거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6일 자국 주재 외국 군 관계자들을 상대로 한 연례 브리핑에서 “오늘 시리아와 러시아 연합군이 동부 데이르엘조르에 남아있던 IS를 격퇴하고 이 지역을 해방시켰다”면서 “이에 따라 오늘부터 시리아에서 IS가 통제하는 지역은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이날 “국방장관이 시리아 내 테러분자들을 완전히 궤멸시키면서 유프라테스강 작전이 마무리됐다고 보고했다”고 발표했다. 그에 따라 대부분의 러시아군을 철수시키고 시리아 내 기지 두 곳과 휴전 상황을 감시하기 위해 일부 지역에 설치된 '화해센터,' 상황 통제를 위한 필수적인 시설들만 유지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실 지난 달 23일 시리아 반군이 점령하고 있는 다마스쿠스 외곽 아르빈 지역에 러시군의 대대적인 공습이 있었는데 그곳이 시리아 내 IS의 마지막 주요 거점도시였다. 그로써 IS는 시리아 내 모든 거점을 빼앗긴 것이다.

▲ (12017년 11월 23일 시리아 반군이 점령하고 있는 다마스쿠스 외곽 아르빈 지역에 공습이 있은 후 연기가 치솟고 있다.     ©

시리아 내전은 사실상 미국 CIA가 몰래 거금 들여 키운 IS와 여러 아사드 정부를 반대하는 반군을 상대로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 지원군의 대결이었다. 물론 이란 정부군과 레바논 헤즈볼라도 시리아 정부군을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었다.
결국 아사드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친미 친서방 반군진영과 아사드 정부를 지키려는 반미반제진영의 치열한 대결전이었던 셈이다. 그 대결전에서 아사드 정부를 중심으로 한 반미반제진영이 완전히 승리를 거둔 셈이다.

미국이 천문학적 비용과 많은 미군 목숨을 바쳐가며 새로 세운 이라크 정부도 점점 이란과 관계가 깊어가고 있고 아프간 친미정부는 민심을 얻지 못한 채 계속 반미반제 반군들에게 밀리고 예멘전쟁에서도 미국의 의도는 걸음걸음 파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오일달러의 원천 중동에서 미국의 힘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이는 오바마정부가 북의 핵무장 강화를 막기 위해(말로는 중국의 군사굴기를 막기 위해서라고 함)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을 쓴지 만 3년이 채 되지 않아 일어난 결과이다. 중동에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이 이렇게 무너져내린 것이다.

그렇다고 아시아지역에서 미군의 영향력이 커졌는가. 
중국의 군사굴기를 막기는커녕 오히려 중국 군부들과 모여 머리를 싸매고 북의 핵무장력 강화를 막을 방도를 찾고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트럼프가 항복서를 들고 평양행 비행기를 타야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사실 전 세계의 미군들이 서태평양지역으로 몰려와 누구를 상대로 지금 거의 매달매일 강도 높은 군사훈련을 하고 있는가. 중국 남중국해 근처인가. 동해의 이북 근처해상인가.

▲ 2017년 11월 29일 새벽 전격 발사 성공한 북의 화성-15형, 미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고 미국의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일치된 평가를 내린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결국 아시아로의 회귀는 중국 견제의 의미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실질적으로 북을 압박하고 여차하면 공격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미군의 행보를 통해 낱낱이 드러났다. 
물론 그럴수록 북은 더욱 강력한 수소탄과 더 위력적인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마구마구 터트리고 쏘아대며 ‘좋다, 전쟁을 바란다면 어디 한판 붙어보자’며 미국을 향해 큰 소리를 탕탕 터트리고 있다. 
그런 북에 대한 제재에 앞장을 섰던 유엔사무국 핵심 간부들이 이제 평양으로 득달같이 날아가 대화를 간청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여 아시아에서마저 미군의 위력은 바닥으로 추락하게 되었다.

미군은 자타공인 세계 최강이다. 적어도 그 첨단무기만큼은 아직 러시아도 당할 수 없다. 그런 미국이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 중동과 아시아에서 동반 몰락하게 되었을까. 아마 미국의 책사들도 이리 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이런 상황이 펼쳐지게 되어 머리가 띵 하고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믿을래야 믿을 수 없을 것 같다.

미국은 다시 마지막 카드로 중동 달러패권의 지탱점이라도 살려보려고 다시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인정이라는 도발적 안을 꺼내들었다.  
중동에서의 피의 전쟁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다시 미군 항공모함들이 지중해와 페르시아만으로 몰려가게 될 우려가 높다.

▲ 2017년 12월 1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이슬람수호전선(FPI) 회원들이 성조기를 태우며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패권붕괴라는 근본 흐름을 되돌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전 아랍 정부와 국민들이 이번 예루살렘 수도인정 조치를 반대하고 있다. 특히 이란의 군사력이 만만치 않다. 러시아도 여차하면 개입할 태세다. 

▲ 중동 전쟁터에서 친미반군이건 반미반군이건 80년대 생산한 북의 로켓발사기(7호발사관)에서부터 최신 휴대용대전차미사일, 휴대용대공미사일 등 북 무기를 갖기 위해 거금을 아끼지 않고 있다. 친미국 아랍에미레이트에서 미국 무기로 예멘전에 뛰어들었다. 현지 사령관이 사망하는 등 크게 패하자 국제무기상을 통해 1억달러 상당의 북 무기를 긴급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 해설: 이창기 기자

중동전쟁이 확대되면 세계 무기상들이 가장 득달같이 달려갈 곳이 쿠알라룸푸르와 같은 북의 무기거래 거점들이 될 것이다. 
중동 전쟁터에서 친미반군이건 반미반군이건 북이 80년대 생산한 구형 로켓발사기(7호발사관)에서부터 최신 휴대용대전차미사일, 휴대용대공미사일 등 북 무기를 갖기 위해 거금을 아끼지 않고 있다.
오죽했으면 친미국 아랍에미레이트에서 미국 무기로 예멘전쟁에 뛰어들었다가 현지 사령관이 사망하는 등 크게 패하자 국제무기상을 통해 1억달러 상당의 북 무기를 긴급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겠는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시리아 등에서 전후 재건을 북의 기술자 노동자들에게 거의 전적으로 맡길 가능성이 있다는 국제언론들의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득은 미국이 그렇게 붕괴시키지 못해 안달을 하고 있는 북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미국이라는 제국의 해가 서산너머로 기울어가게 되는가 보다. 그것도 저 동방의 작은 나라 북 때문에...

트위터페이스북

2017년 12월 10일 일요일

조용한 군사회담에서 펠트먼 평양방문까지

[개벽예감277] 조용한 군사회담에서 펠트먼 평양방문까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7/12/11 [13:57]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리처드 클락과 샤오위안밍의 조용한 군사회담
2. 화약고 안의 불장난은 자구책이며 전선이동징후
3. 펠트먼을 평양에 보낸 구떼헤스의 구상
4. 55년 만에 되살아난 우탄트의 기억
5. 구떼헤스의 중재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1. 리처드 클락과 샤오위안밍의 조용한 군사회담

조선이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2017년 11월 29일 <AP통신>에 흥미로운 기사 한 편이 실렸다. 제목은 ‘북조선과의 긴장 속에서 미국과 중국이 진행한 조용한 군사회담’이다. 보도기사에 서술된 “조용한 군사회담(quiet military talks)”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하나는 고위급 군사회담이 아니라 준고위급 군사회담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비공개 군사회담이라는 뜻이다. 그날 비공개 군사회담은 워싱턴에 있는 국방대학교(National Defense University) 교내에서 진행되었다. 국방대학교는 미국 국방부가 직영하는 고등군사교육기관이다. 또한 그 비공개 군사회담에는 미국군 합동참모본부 기획국장인 리처드 클락(Richard D. Clarke) 육군 중장과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연합참모부 부참모장인 샤오위안밍(邵元明) 육군 소장이 각각 회담대표로 참석하였다.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그날 진행된 미국-중국 준고위급 군사회담은 조섭 던포드(Joseph F. Dunford) 미국군 합참의장이 지난 8월 15일 중국 베이징에서 팡펑후이(房峰輝)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을 만나 고위급 군사회담을 진행할 때 준고위급 군사회담을 열자고 합의하였고, 그 합의에 따라 지난 11월 29일에 열린 것이라고 한다. <워싱턴포스트> 2017년 8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던포드-팡펑후이 군사회담에서는 미국군 합동참모본부 기획국장 리처드 클락과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연합참모부 부참모장 샤오위안밍을 각각 대표로 하는 ‘합참대화기구(Joint Staff Dialogue Mechanism)’라고 부르는 상설회의체를 개설하기 위한 합의서를 채택하였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2017년 11월 29일 워싱턴에 있는 국방대학교에서 진행된 준고위급 군사회담은 미국-중국 합참대화기구 제1차 회담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조용한 군사회담에서 어떤 의제가 논의되었을까?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17년 8월 15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조섭 던포드 미국군 합참의장이 팡펑후이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의 영접을 받으며 그와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는 장면이다. 당시 던포드-팡펑후이 고위급 군사회담에서 준고위급 군사회담을 열자고 합의하였는데, 그 합의에 따라 2017년 11월 29일 워싱턴에 있는 국방대학교 교내에서 미국-중국 합참대화기구 제1차 회담이 열렸다. 합참대화기구는 상설회의체다. 이 회담에는 미국군 합참본부 기획국장 리처드 클락과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연합참모부 부참모장 샤오위안밍이 각각 대표로 참석하였다. 미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중국 합참대화기구 제1차 회담에서 쿠바미사일위기에 대한 공동의 사례연구결과가 논의되었다고 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AP통신>은 2017년 11월 29일 보도기사에서 지난 8월 중순 베이징을 방문한 던포드 미국군 합참의장은 팡펑후이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장에게 조선의 “우발사태(contingencies)들”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였고, 양측은 “발생할 수 있는 갈등(conflict) 또는 핵재앙(nuclear disaster)의 위험”에 대해 논의하였다고 하면서, 이번에 워싱턴에서 진행된 미국-중국 합참대화기구 제1차 회담에서도 그 문제를 또 다시 논의하였을 것이라는 중국문제전문가들의 추측발언을 인용하였다. 던포드-팡펑후이 회담에서 논의되었다는 ‘갈등’이라는 것은 조미핵대결 위험이 극도로 고조된 상황을 뜻하는 말이고, 그 회담에서 논의되었다는 ‘핵참화’라는 것은 조미핵대결이 우발사태를 도화선으로 폭발한 핵전쟁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조미핵대결→우발사태→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태와 관련하여 <워싱턴포스트> 기고자 데이빗 이그네이셔스(David Ignatius)는 2017년 12월 5일 그 신문에 실린 자신의 글에서 미국 국방부 고위관리가 전해준 말을 인용하면서 미국-중국 합참대화기구 제1차 회담에서 “쿠바미사일위기에 대한 공동의 사례연구(a joint case study of the Cuban Missile Crisis)”가 진행되었다고 밝혔다. 
조미핵대결이 최종국면에 접어든 지금, 미국 군부 대표들과 중국 군부 대표들이 상설회의체를 개설하고 쿠바미사일위기 사례연구를 진행하였다니,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쿠바미사일위기 사례연구를 진행한 것은 조미핵대결 최종국면과 쿠바미사일위기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 것으로 보고, 조미핵대결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쿠바미사일위기를 재평가하는 토론을 진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미국-중국 합참대화기구 제1차 회담에서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고, 오판을 어떻게 예방하고, 오해의 위험을 어떻게 줄이느냐 하는 문제를 논의”하였다고 지적한, 미국 합참본부가 <AP통신>에 보내온 보도자료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회담에서 그들은 조미핵대결이 우발사태를 도화선으로 하여 핵전쟁으로 폭발하지 않도록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고, 오판을 어떻게 예방하고, 오해의 위험을 어떻게 줄이느냐 하는 해법을 쿠바미사일위기 해결경험에서 찾으려고 하였던 것이다. 

조미핵대결 최종국면과 쿠바미사일위기를 비교하면서 어떤 해법을 찾아보려는 논의는 미국군 합참본부에서만 진행되는 게 아니다. 조미핵대결 해법을 쿠바미사일위기 해결경험에서 찾아보려는 미국의 전직 외교관리, 정치분석가, 언론인들의 주장과 견해들이 올해 들어 미국의 주요언론매체들에 지속적으로 보도되었다. 온라인에서 눈에 띄는 것만 추려내더라도, 2017년 4월 16일 <뉴욕타임스>, 8월 9일 <워싱턴포스트>, 8월 23일 <더 네이션(The Nation)>, 9월 25일 <포츈(Fortune)>, 10월 26일 <허핑턴포스트(Huffington Post)>, 12월 6일 <뉴스윅(Newsweek)> 등이 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보도하지 않고 있지만, 지금 미국에서는 조미핵대결 해법을 쿠바미사일위기 해결경험에서 찾으려는 논의가 빈번하게 진행되는 중이다. 
그러므로 그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도 조미핵대결 해법을 쿠바미사일위기 해결경험에서 찾으려는 내부논의를 진행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 주요언론매체들이 활발히 논의하는 가운데, 최근에는 미국-중국 합참대화기구 제1차 회담에서까지 논의된 문제를 정작 책임 있는 당사자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외면하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조선이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서 성공하자,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킬 시간과 기회를 잃어버려 다급해질 대로 다급해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 문제를 논의하였다면, 지금쯤 그와 관련된 움직임이 나타나는 게 정상이다. 아래에 서술한 두 가지 움직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2. 화약고 안의 불장난은 자구책이며 전선이동징후 

2017년 12월 6일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미국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의 알꾸드스(Al-Quds)를 이스라엘 수도로 공인한다고 선언하고,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알꾸드스로 이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사람들이 무심코 예루살렘이라고 부르는 그 도시의 아랍어 명칭은 알꾸드스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 명칭이다.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강점한 그 도시는 팔레스타인의 고유한 영토이므로, 독도를 ‘다께시마’라고 부르면 안 되는 것처럼 알꾸드스를 ‘예루살렘’으로 부르면 안 된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결정은 무리수를 넘어 자충수를 둔 것이었다. 트럼프의 자충수가 미국과 중동에 얼마나 큰 해악을 불러오게 되는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트럼프 이전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미국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유대인계 정치세력을 의식한 나머지 자기들의 대선공약에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알꾸드스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약방의 감초처럼 어김없이 집어넣곤 하였지만, 집권한 뒤에는 그 공약을 이행하지 않고 슬그머니 접어두었다. 왜냐하면, 미국이 알꾸드스를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는 경우, 전 세계 이슬람국가들과 격렬한 충돌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고, 국제사회와 유엔으로부터 백악관으로 몰아칠 반대와 저항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폭탄뇌관 같은 그 문제를 대선공약 안에 슬쩍 끼워 넣었다가, 백악관에 들어간 뒤에는 흐지부지 넘어가는 관례를 불문율처럼 지켜왔던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7년 12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팔레스타인의 알꾸드스를 이스라엘 수도로 공인한 문서에 서명한 뒤에 그 문서를 자랑스럽게 취재진에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뒤에 서 있는 사람은 마익 펜스 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알꾸드스로 이전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강점한 알꾸드스는 팔레스타인의 고유한 영토일 뿐 아니라, 전 세계 이슬람교도들의 성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알꾸드스를 아랍민족의 적인 이스라엘에게 넘겨주겠다는 망발을 늘어놓았으니 거대한 화약고 안에 들어가서 불장난을 하는 꼴이다. 그는 왜 그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자해행동을 저지른 것일까?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그 ‘불문율’을 제 손으로 깨버렸다. 거대한 화약고 안에 들어가서 불장난을 하는 꼴이다. 미치광이 대통령의 ‘불장난’이야말로 중동에서 극도의 정치혼란과 새로운 전쟁위험을 불러일으키고, 국제사회에서 반미테러위험과 미국의 외교고립을 겹겹이 자초하는 자해행동이 아닐 수 없다. 미치광이 대통령의 ‘불장난’에 격노한 팔레스타인 민중은 곧바로 항쟁(Intifada)에 궐기하였고, 이스라엘군은 그들의 항쟁을 난폭하게 진입하고 있다. 미국-이스라엘 침략동맹에 맞서 싸우는 팔레스타인 민중항쟁이 차츰 격화되면서 중동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갑자기 왜 그런 자해행동을 저지른 것일까? 미국의 정치분석가들은 제각기 이 문제에 대한 여러 해석들을 내놓았는데, 최근 백악관을 불안과 공포에 몰아넣은 이른바 트럼프-러시아 내통사건에 대한 특검수사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러시아 내통사건이란 트럼프가 대선에서 이긴 직후인 2016년 12월 당시 그의 최측근이었던 마이클 플린(Michael T. Flynn)이 쎄르게이 킬스약(Sergey Kilsyak) 당시 워싱턴 주재 러시아 대사와 은밀히 접촉하였던 사건이다. 지금 특검의 수사방향은 그 비밀접촉이 미국 대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는지를 파헤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있다. 

2017년 12월 1일 전격적으로 특검에 기소된 플린은 자신과 킬스약의 비밀접촉이 트럼프의 사위이며 백악관 선임고문인 재럿 쿠쉬너(Jared C. Kushner)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는 ‘폭탄진술’을 내던졌다. 이 ‘폭탄진술’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왜냐하면 쿠쉬너가 플린에게 전달한 지시는 곧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지시였기 때문이다. 만일 플린에 이어 쿠쉬너까지 줄줄이 특검에 기소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내통’을 쿠쉬너에게 지시한 정치적, 법적 책임을 피할 길이 없어진다. 이것은 정치생명을 끊어버릴 실각위기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엄습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위중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특검에 기소당할 위험에 빠진 쿠쉬너를 구출하려는 ‘긴급구조’를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긴급구조’를 요청한 지지세력은 워싱턴의 정계 및 관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대계 미국인 정치인맥이다. 이들 유대계 미국인 정치인맥과 직통하는 사람이 재럿 쿠쉬너의 아버지인 찰스 쿠쉬너(Charles Kushner)다. 찰스 쿠쉬너는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에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보내는 5대 후원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며, 유대복고주의(Zionism)를 지지하는 부동산개발업자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대계 미국인 정치인맥을 움직여 쿠쉬너를 위험에서 구출하려면, 그들의 오랜 숙원을 풀어주어야 하는데, 그 숙원이 바로 알꾸드스를 이스라엘 수도로 공인하는 대통령의 조치다. 이런 내막을 살펴보면, 자해행동처럼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그 결정은 실제로는 궁색스러운 자구책인 것이다.  

알꾸드스를 이스라엘 수도로 공인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놓고 미국의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분석기사의 논지는 여기서 끝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그 결정 속에 깔려있는 속셈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아래의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 3>

▲ <사진 3> 팔레스타인의 알꾸드스를 이스라엘 수도로 공인하는 문제는 커다란 '폭탄뇌관'이므로, 당연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신중히 논의, 결정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 문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의제로 꺼내놓았을 때, 그의 핵심측근들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을 비롯한 대다수 성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견에 반대의사를 표명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다수의 반대의견을 돌려세우고, 자기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그들을 설득할 강한 명분을 꺼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전선이동론이었다. 전선을 한반도에서 중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논리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트럼프 대통령이 알꾸드스를 이스라엘 수도로 공인하는 문제는 커다란 ‘폭탄뇌관’이므로, 그가 백악관 집무실에서 혼자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문제는 당연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논의, 결정되었다. 미국 언론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그 문제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의제로 제기하자, 논란이 일었다고 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측근들인 렉스 틸러슨(Rex W. Tillerson)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국방장관이 반대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꾸드스를 이스라엘 수도로 공인하는 경우, 미국에게는 얻을 것이 별로 없고, 잃을 것이 거의 전부일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그 핵심측근을 반대의견으로 끌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반대하였다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성원들 대다수가 반대한 것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성원 대다수의 반대의견을 돌려세우고 자기 의사를 관철하려면 그들을 설득할 강한 명분을 꺼내놓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꺼내놓은 명분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전선이동론이었다. 전선이동론이란 전선을 한반도에서 중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논리다. 다시 말하면, 미국이 조선을 상대로 벌여왔으나 이미 패색이 짙어진 한반도 전선에서 발을 빼고, 그 대신 중동에서 새로운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요즈음 정치력, 군사력, 경제력이 날로 약해지고 있는 미국에게는 이전처럼 한반도와 중동의 두 전선에서 동시에 싸울 수 있는 힘이 없다. 미국이 이른바 ‘두 개의 전쟁전략’을 폐기한 지도 오래 되었다.     
그런 미국이 이미 패색이 짙어진 조선과의 핵대결을 무모하게 계속하면서 그와 동시에 중동전쟁을 벌이는 확전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어느 한 전선을 택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패색이 짙어진 조선과의 핵대결을 포기하고, 새로운 중동전쟁의 길을 택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과의 핵대결을 포기한다는 말은, 조선의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성공으로 미국이 사실상 패한 핵대결을 더 이상 확대하지 않고,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킬 협상의 길을 택한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며칠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화약고 안에서 저지른 불장난’은 자신에게 몰아닥친 정치위기에서 탈출하려는 자구책인 동시에 전선을 한반도에서 중동으로 이동시키려는 징후라고 말할 수 있다.  
  
▲ <사진 4> 이 사진은 리용호 조선 외무상이 2017년 12월 7일 조선을 방문한 제프리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을 만나는 장면이다. 펠트먼을 평양에 보낸 사람은 안또니오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이다.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은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키기 위해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를 서겠다고 나선 것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펠트먼의 조선방문을 계기로 조선과 유엔사무국은 각이한 급에서 내왕하면서 의사소통을 정례화하기로 합의하였다고 한다. 구떼헤스가 이끄는 유엔사무국이 핵대결을 벌이는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과연 중재를 제대로 설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유엔사무국의 중재 이외에 다른 대안을 찾기 힘들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3. 펠트먼을 평양에 보낸 구떼헤스의 구상  

2017년 11월 29일 워싱턴에서 미국-중국 합참대화기구 제1차 회담이 진행된 때로부터 엿새가 지난 12월 5일 평양국제공항에 착륙한 고려항공 여객기에서 낯선 미국인 한 사람이 내렸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그 미국인 손님은 유엔사무국 정치부 수장인 제프리 펠트먼(Jeffrey D. Feltman) 유엔사무차장이었다. 그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 국무부에서 중동담당 국무차관으로 일하였는데, 미국 국무부는 2012년에 그를 유엔사무차장에 천거하여 임명되도록 하였다. 그런 배경과 경력을 가진 사람이 조미핵대결위기가 고조된 시점에 평양에 나타난 것이다. <사진 4> 

<교도통신> 2017년 12월 9일 보도에 따르면,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을 평양에 보낸 사람은 안또니오 구떼헤스(Antonio Guterres) 유엔사무총장이다. 그 보도기사에서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은 “북조선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북조선과 관계국 간의 의미 있고, 열린, 건설적 대화가 가능한 환경을 마련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유엔사무국이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키기 위해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를 서겠다는 말이다. 
중국 <신화통신> 2017년 12월 8일 보도에 따르면,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의 중재의사를 전하기 위해 평양에 간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은 원래 3박4일이었던 체류일정을 하루 더 연장하였다고 한다. 체류일정은 연장한 것은 조선 외무성과 유엔사무차장 사이에서 대화가 원만히 진행되었음을 말해주는 징후였다. 

징후는 즉각 현실로 되었다. <조선중앙통신> 2017년 12월 9일 보도에 따르면, “우리측과 유엔사무국측은 이번 유엔부사무총장의 방문이 우리와 유엔사무국 사이의 리해를 깊이 하는 데 기여하였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각이한 급에서 래왕을 통한 의사소통을 정례화할 데 대하여 합의하였다”고 한다. 각이한 급에서 내왕을 통한 의사소통을 정례화한다는 말은,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를 서겠다는 유엔사무국의 제안을 조선이 받아들였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또한 각이한 급에서 내왕한다는 말은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의 조선방문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2017년 9월 말 최선희 조선 외무성 북아메리카국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하였을 때, 이고르 모르굴로브(Igor V. Morgulov) 러시아 외무차관이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를 설 용의가 있다고 하였지만, 조선은 러시아의 중재제안을 거절하였다. 2017년 11월 17일 쑹타오(宋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하여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안을 제시하였으나, 조선은 중국의 중재안을 거절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조선은 유엔사무국의 중재제안을 받아들였다. 

러시아의 중재제안와 중국의 중재안을 각각 거절한 조선이 유엔사무국의 중재제안을 받아들인 까닭은,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의 정치성향이 중재에 적합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은 포르투갈 사회당 총비서로 재직하던 기간에 국제사회주의(Socialist International) 의장과 포르투갈 총리를 겸임하였던 중도좌파 정치인이다. 중도좌파 구떼헤스가 이끄는 유엔사무국이 핵대결을 벌이는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과연 중재를 제대로 설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유엔사무국의 중재 이외에 다른 대안은 찾기 힘들다. 
  

4. 55년 만에 되살아난 우탄트의 기억 

나는 이 글을 시작하면서, 조선이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성공으로 자기의 핵무력을 완성한 2017년 11월 29일 미국 워싱턴에서는 미국-중국 합참대화기구 제1차 회담이 진행되었는데, 그 회담에서 조미핵대결 해법을 찾기 위해 쿠바미사일위기 사례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55년 전 쿠바미사일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중재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쿠바미사일위기→우발사태→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극심한 불안과 공포 속에서 중재역할을 수행했던 것은 유엔사무국이었다. 55년 전 유엔사무국의 중재경험은 아래와 같다.

쿠바미사일위기가 격화되면서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위험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던 1962년 10월 26일 당시 유엔사무총장이었던 우탄트(U Thant)는 미국, 소련, 쿠바 3국 사이에서 적극적인 중재노력을 펼치겠다는 의사를 공식 발표하였다. 우탄트는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면, 그에 상응하여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중재안, 다시 말하면 소련의 핵무력 철수와 미국의 쿠바 불가침을 맞바꾸는 중재안을 미국과 소련에게 각각 제시하였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1960년 11월 20일 쿠바미사일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중재노력을 펼치던 우탄트 유엔사무총장이 유엔본부 청사에서 양측 대표들과 회담을 마치고 촬영한 것이다. 사진에서 우탄트의 왼쪽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미국측 회담대표들이고, 그의 오른쪽에 서 있는 두 사람은 소련측 회담대표들이다. 이 사진을 보면, 우탄트 유엔사무총장이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만 중재노력을 펼친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는 미국, 소련, 쿠바 3자 사이에서 중재노력을 펼치면서 쿠바미사일위기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니끼따 후르쇼브(Nikita S. Khrushchev) 당시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우탄트의 중재안을 받아들이면서 소련이 미국과 협상하는 동안에는 소련군 미사일을 실은 수송선을 쿠바에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요즈음 쓰이는 말로 표현하면, 핵동결을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1962년 10월 27일 쿠바혁명군은 자국 영공을 침범하여 공중정찰을 감행하던 미국군 고고도정찰기 U-2를 S-75 지대공미사일로 격추하였다. 쿠바미사일위기가 최고조로 치닫고 있던 시점이었으므로, 미국은 그 사건으로 ‘개망신’을 당했다. 그로부터 55년이 지난 오늘도 미국은 오산공군기지에서 U-2를 매일같이 군사분계선 상공으로 출동시켜 조선에 대한 공중정찰을 감행하고 있고, 조선인민군은 S-75를 개량한 번개-1 지대공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 U-2가 군사분계선 상공을 조금이라도 넘어서기만 하면 격추해버릴 즉시발사태세를 갖추고 있다. 

55년 전, 미국 군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실행위원회는 쿠바혁명군의 U-2 격추에 대한 보복으로 쿠바무력침공을 주장하였다. 백악관과 펜타곤은 무력침공을 떠벌였으나, 존 케네디(John F. Kennedy) 당시 대통령은 남다르게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그가 각료들과 군부의 무력침공주장에 맞장구를 치지 않았던 까닭은,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소련과의 핵전쟁을 두려워하는 겁쟁이였기 때문이다. 

흥미로는 사실은, 케네디가 후르쇼브도 자기처럼 겁쟁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다. 그래서 케네디는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면, 소련이 미국과 전쟁을 벌일 것으로 생각하였고, 그 전쟁은 곧 핵전쟁으로 될 것으로 우려하면서 공포를 느꼈다. 바로 이것이 케네디가 쿠바무력침공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였던 원인이다. 하지만 케네디만큼 겁쟁이였던 후르쇼브에게는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는 경우, 미국과 핵전쟁을 벌여서라도 쿠바를 끝까지 지켜주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만일 케네디가 쿠바침공을 명령하였더라면, 미국군은 군사력이 약한 쿠바를 점령했을 것이다. 이처럼 쿠바를 점령할 기회를 놓쳐버린 겁쟁이 케네디는 쿠바침공에 광분하던 전쟁광신자들의 저격으로 암살당하였으니, 그 때가 쿠바미사일위기로부터 1년이 지난 1963년 11월 22일이었다. 

겁쟁이 케네디가 쿠바무력침공을 결정하지 못하면서 마음속으로 기대를 걸었던 것은 우탄트의 중재노력이었다. 그래서 케네디는 소련이 국제사찰단 감시 하에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면, 그에 상응하여 쿠바에 대한 불가침을 보장하고, 터키에 전진배치한 미국군 미사일을 철수한다는 우탄트의 중재안을 받아들였다. 터키는 자국 영토에 배치된 미국군 미사일들이 철수되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케네디는 그것을 철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1962년 10월 28일 후르쇼브 서기장은 케네디 대통령이 제시한 협상조건을 받아들였고, 그 사실을 피델 알레한드로 까스뜨로 루쓰(Fidel Alejandro Castro Ruz) 쿠바공화국 수상(당시 직책)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 까스뜨로는 자기와 한 마디 상의도 하지 않고, 케네디와 타협하여 쿠바에서 핵무력을 철수하려는 후르쇼브의 비겁하고 굴욕적인 처사에 격노하였다. 

위기상황이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자, 우탄트 유엔사무총장이 다시 중재에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쿠바를 방문하여 까스뜨로 수상과 회담하였다. 그 자리에서 우탄트는 격추당한 미국군 정찰기 U-2 조종사의 시신을 미국에 반환해줄 것과 국제사찰단이 쿠바에 입국하여 소련군 미사일 철수과정을 감시할 수 있게 허락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국제사찰단 입국을 쿠바의 주권침해로 본 피델 까스뜨로 수상은 국제사찰단 입국을 거부하였고, 미국군 정찰기 조종사의 시신만 반환하였다. <사진 6> 

▲ <사진 6> 1962년 10월 28일 피델 까스뜨로 쿠바 수상은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타협하여 쿠바에서 핵무력을 철수하려는 후르쇼브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비겁하고 굴욕적인 처사에 격노하였고, 후르쇼브-케네디 비밀협상을 전면 거부하였다. 까스뜨로 수상은 쿠바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5개항을 발표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미국과 끝까지 싸울 결의를 표명하였다. 위쪽 사진은 쿠바미사일위기 당시 까스뜨로 수상이 반미결사항전에 나선 쿠바혁명군 고사포부대를 시찰하는 장면이고, 아래쪽 사진은 쿠바혁명의 영원한 지도자들인 피델 까스뜨로와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가 담화하는 장면이다. 체 게바라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그의 혁명생애만큼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우탄트의 중재안을 거부한 피델 까스뜨로는 쿠바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5개항을 발표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미국과 끝까지 싸울 결의를 표명하였다. 그의 명령에 따라 반미결사항전을 결의해 나선 쿠바혁명군과 쿠바인민은 전투동원태세에 진입하였다. 그가 제시한 평화안은 미국은 쿠바에 대한 해상봉쇄와 경제제재를 중단할 것, 미국은 쿠바 정부에 대한 전복활동, 무력침공, 침투공작을 중단할 것, 미국은 쿠바 선박에 대한 해적행위를 중단할 것, 미국은 쿠바 영공 및 영해에서 모든 불법행동을 중단할 것, 미국군은 쿠바의 관따나모 해군기지에서 철수할 것 등이었다.  

겁쟁이 케네디와 비겁한 후르쇼브는 비밀협상으로 쿠바미사일위기를 해결하였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그들의 비밀협상을 거부하고 결사항전을 결의한 쿠바는 케네디-후르쇼브의 해법을 걷어차 버렸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발생한 쿠바미사일위기가 케네디-후르쇼브 비밀협상으로 종식된 이후에도, 미국과 쿠바 사이에서 발생한 쿠바미사일위기는 종식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쿠바미사일위기가 1962년 10월 28일에 종식되었다는 주장은 쿠바를 제외시킨 미국과 소련의 편중된 시각으로 쿠바미사일위기를 바라본 반쪽짜리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1962년 11월 2일 후르쇼브는 아나스따스 미꼬얀(Anastas I. Mikoyan) 소련 제1부수상을 쿠바에 급파하여 국제사찰단을 받아들이라고 피델 까스뜨로 수상을 여러 날 동안 설득해보았으나, 까스뜨로 수상은 그런 굴욕적인 요구를 거부하면서 쿠바의 주권과 자존심을 지켰다. 그렇게 되자 미국이 조작해놓은 국제사찰단은 미국 공군 해상정찰기의 공중지원을 받는 가운데 미국 해군 군함을 타고 쿠바 영해로 접근하여 쿠바 영해 밖에서 대기 중이던 소련 수송선들에 승선하여 사찰놀음을 벌이는 수밖에 없었다. 


5. 구떼헤스의 중재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위에 서술한 쿠바미사일위기 해결경험을 보면, 유엔사무국이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발생한 위기를 해소하는 데서 중재역할을 수행한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과 쿠바 사이에서 발생한 위기를 해소하는 데서는 중재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은 군사력이 약한 쿠바를 얕잡아보고 국제사찰단을 들이밀려는 주권침해의도를 버리지 않았고, 쿠바는 반미결사항전을 결의하고 자기의 자주권을 지키려는 투쟁정신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유엔사무국의 중재노력도 허사로 되었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돌이켜보면서, 조미핵대결과 쿠바미사일위기를 굳이 비교한다면, 조미핵대결은 미국과 소련 사이의 타협가능한 대결보다는 미국과 쿠바 사이의 비타협적인 대결에 더 가깝다. 조선은 전략적 핵압박공세로 주한미국군을 철수시켜 자주권을 지키려고 하고, 미국은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계속 얻어맞으면서도 주한미국군을 철수하지 않겠다고 버티기 때문에 조미핵대결은 비타협적인 대결로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비타협적인 대결이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은 아니고, 수세에 몰려 얻어맞는 쪽이 공세를 펴며 들이치는 쪽에게 굴복하는 것으로 멀지 않아 종식될 것이다.

그런데 미국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내용만 읽어보면, 이번에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이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을 조선에 파견한 중재시도가 백악관과의 사전조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유엔사무국이 백악관에게 알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추진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미국의소리> 2017년 12월 5일 보도에 따르면,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의 조선방문은 유엔사무국이 미국 정부와 협의를 거쳐 추진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렇게 하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진 7>

▲ <사진 7> 이 사진은 2017년 1월 1일 안또니오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이 2017년을 평화의 해로 만들자고 전 세계에 호소하는 장면이다. 지금 그는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노력을 펼치려고 하지만,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타협적인 핵대결이 유엔사무국의 중재로 과연 종식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엔사무국이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떠맡을 중재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아메리카제국의 체면을 고려하여 미국의 굴복을 굴복이 아닌 타협처럼 포장해주는 중재역할로 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017년 12월 5일 헤더 노어트(Heather A. Nauert)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언론설명회에서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이 조선에 갈 때 미국 정부의 어떤 메시지도 지참하지 않았고, 미국 정부를 대표하여 조선을 방문한 것도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하나마나한 소리다. 왜냐하면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은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이 중재를 시도하기 위해 조선에 보낸 유엔사무국의 외교사절이므로, 처음부터 미국의 의사를 조선에 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이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을 조선에 파견한 것은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를 시도하려는 노력이므로 펠트먼 유엔사무차장이 유엔사무국으로 돌아가면 구떼헤스 유엔사무총장은 그를 통해 전달받은 조선의 의견을 백악관에게 전달할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타협적인 핵대결이 유엔사무국의 중재로 과연 종식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물론 유엔사무국이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조미핵대결 최종국면에 일정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예견할 수 있다. 유엔사무국이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떠맡을 중재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아메리카제국의 체면을 고려하여 미국의 굴복을 굴복이 아닌 타협처럼 포장해주는 중재역할로 될 것이다.   

트위터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