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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일 월요일

'길바닥 저널리스트' 박훈규 PD, 정유라 육성인터뷰 영상 공개

"박근혜 마지막 만난 건 초등학생 때
세월호 참사 당시 뭘 했는지, 들은 바 없다"

17.01.03 09:55l최종 업데이트 17.01.03 10:01l






덴마크에서 체포된 정유라 2일(현지시간) 덴마크 올보르시에서 현지 경찰에 체포된 최순실 딸 정유라씨가 법원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정유라씨를 추적하던 1인 미디어  '길바닥저널리스트' 박훈규 기자가 인터뷰 사진을 제공했다.
▲ 덴마크에서 체포된 정유라 2일(현지시간) 덴마크 올보르시에서 현지 경찰에 체포된 최순실 딸 정유라씨가 법원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정유라씨를 추적하던 1인 미디어 '길바닥저널리스트' 박훈규 기자가 인터뷰 사진을 제공했다.
ⓒ 길바닥저널리스트 박훈규 제공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태풍의 눈' 정유라씨(21)에 대한 육성 인터뷰가 공개됐다.

3일 새벽, 1인 미디어 '길바닥 저널리스트' 박훈규 PD의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정유라씨에 대한 육성인터뷰 영상이 업로드됐다. 총 8분 20초 가량의 영상 속에는 수척한 모습의 정씨가 기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인터뷰 당시 정씨는 덴마크 현지 법원으로부터 영장심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던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상 속 정씨는 차분한 목소리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자신이 받고 있는 혐의에 대해 한결같이 부정했지만 질문을 회피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반박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화여대·세월호 7시간 등 의혹들 "모른다"

이화여대 학점특혜 의혹과 관련해 휴학을 하지 않고 독일로 떠난 이유를 묻자 "어머니(최순실씨)를 통해 자퇴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정씨는 "아기를 낳자마자 독일로 떠났기에 담당 교수가 누군지도 모른다"고도 말했다.

해외로 외화를 불법유출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박하기도 했다. 그녀는 "아버지(정윤회씨)와 어머니가 이혼하면서 아버지 명의의 강원도 땅을 인수받았다"며 "그 땅으로 담보를 잡고 외환은행에서 총 2차례에 걸쳐 36만 유로(약 4억5600만 원)를 대출받았다"고 말했다. 대출받은 돈은 모두 갚았으며 독일에서도 꼬박꼬박 세금을 냈다는 게 정씨의 주장이다.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해서도 정씨는 "박근혜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만난 게 아버지가 일할 때인 초등학생 때였다"며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어머니랑 사이가 틀어진 상태라 박 대통령이 그날 뭘 했는지 전해들은 바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주사아줌마'로 알려진 백아무개 실장에 대해서는 "누군지 알 것 같다"고 애매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정씨의 체포 당시 정씨의 독일 도피생활을 도운 '호위무사' 데이비드 윤은 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데이비드 윤은 어딨느냐"고 기자들이 묻자, 정씨는 "연락이 안 된다"며 "그 사람은 나와 연락 자체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해 데이비드에 대한 원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인터뷰에서는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기도 했다. 정씨는 "남자친구로 문제로 재산포기각서를 써야 할 정도로 어머니와 사이가 틀어졌다"며 "나중에는 중간에서 박원오 전무를 통해 서로 얘기해야만 했다"고 말해 최씨와 정씨의 모녀관계가 심각한 상태까지 이르렀음을 시사했다. 정씨의 주장에 따르면 박 전 전무는 어머니와의 대립으로 힘들어하던 정씨가 독일에서 승마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한 장본인이다.

"정유라, 취재진 앞에서 매우 당황한 모습"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1일(현지시각) 덴마크에서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청은 2일 "덴마크 경찰이 정유라씨를 포함한 4명을 덴마크 현지시각으로 1일 검거했다는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전문을 오늘 접수했다"고 밝혔다. 2017.1.2 [JTBC 캡처=연합뉴스]
▲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1일(현지시각) 덴마크에서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청은 2일 "덴마크 경찰이 정유라씨를 포함한 4명을 덴마크 현지시각으로 1일 검거했다는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전문을 오늘 접수했다"고 밝혔다. 2017.1.2 [JTBC 캡처=연합뉴스]
ⓒ 연합뉴스

영상을 공개한 박훈규 PD는 자신의 개인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정유라를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을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정씨에 대해 "아직 20대 초반의 여린 모습이었으며 입술이 바짝 말라보이는 게 취재진 앞에서 매우 당황한 모습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기자들의 질문에 나름 차분하게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해명하려는 모습도 보였다"며 "'아이를 보고싶다', '아이와 함께 할수 있다면 병원이든 사회시설이든 어느 곳에서라도 특검조사에 응하겠다'고 울먹이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육성인터뷰 진행 후 이뤄진 영장실질심사에서 덴마크 현지 법원은 정씨에게 '4주 구금' 판결을 내렸다. 오는 30일 오후 9시까지 구금이 연장된 것이다. 

박 PD는 재판 당시 정씨의 모습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그는 "(정씨가) 판사의 질문에는 국선변호사의 도움으로 답변을 했으며 이후 4주 구금 판결이 난 후 소리내며 울기도 했다"며 "항소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법정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후 정씨는 변호인을 통해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박 PD는 "귀국 후 단독 미공개 영상을 공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앞서 정씨는 덴마크 올보르 외곽의 한 주택에서 은신하던 중, JTBC 이가혁 기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지 경찰에 의해 불법체류 혐의로 체포됐다. 한국 시각으로 2일 오전 4시 10분 경이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검 팀은 정씨의 국내 송환 여부를 두고 다양한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영상을 공개한 박훈규 PD는 지난해 12월부터 독일 현지에 머물며 정씨를 추적해왔다. 그는 같은 달 27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독립기자에겐 충분한 취재비용이나 인프라가 없어 방송사들에 공동 취재 의사를 타진했지만 실패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독립저널리스트도 충분히 준비만 잘 하면 해외 취재, 탐사 취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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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 부지 제공 않으면 사드는 돌아갈 것”

사드반대 여성계 기자회견, ‘세계적 범위서 롯데 불매운동’ 압박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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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02  17: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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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드배치에 반대하는 여성계가 나서 2일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에서 국방부와 롯데의 사드부지 교환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롯데가 국방부와 사드배치 부지를 교환하지 않으면, 사드는 배치될 곳이 없으니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 갈 것이다.”
2일 새해 벽두부터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에서 열린 ‘국방부-롯데 사드부지 교환저지 여성계 기자회견‘, 원불교 성주성지수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인 김성혜 교무는 “내일 열릴 예정인 롯데 이사회에 참석하는 이사님들은 국방부와 부지를 교환하는 안건에 부결표를 던져달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성혜 교무는 “평범하게 살아오던 여성들이 작년 7월 13일 국방부의 사드배치 발표 이후 지금까지 174일째 성주에서 촛불을 들다가 참다못해 서울로 올라왔다”며, 사드배치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만약 롯데가 사드배치 부지를 제공할 경우 세계적 범위에서 롯데 불매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이어 “사드는 전쟁무기이자 평화저해요소이며, 우리 국가안보와는 전혀 상관없이 미·일에만 이익이 된다”며, “평화의 성자인 원불교 2대 정산종사의 탄생지이자 주민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마을에 평화가 아닌 전쟁 무기인 사드를 배치하는 것은 절대 안된다”고 강조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 부지와 관련, 롯데 성주 골프장과 군 소유의 남양주 부지를 맞바꾸는 방식이 검토되는 가운데, 현재 롯데 측은 1월 초로 예정돼 있던 이사회를 열흘 정도 미루고 국방부의 감정평가 결과도 거부하고 있는 등 여론을 살피는 것으로 알려졌다.
  
▲ 김성혜 원불교 비상대책위 공동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드를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전국 여성들’은 기자회견문에서“롯데는 배임 혐의까지 뒤집어 쓸 정도로 비정상적인 토지 거래를 하면서까지, 또한 중국의 경제보복까지 당해가면서 사드 부지를 내주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명명백백히 온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며, 롯데 측을 압박했다.
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와 김천시민대책위, 원불교 성주성지수호비상대책위 여성위를 주축으로 모인 여성들은 롯데가 토지매매 방식 및 보상방안과 관련해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에 따른 보상이 아니라 정부가 요구한 ‘국유재산법에 근거한 교환방식’을 수용했다는 점에 주목해 국방부와 롯데의 부당거래 혐의를 지적했다.
군이 사드배치를 위해 롯데 소유의 성주골프장을 보상절차를 거쳐 취득하기 위해서는 최소 1,000억 원대로 평가되는 부지 대금을 올해 국방예산에 추가해야 하지만 국회 심의 등 현실적으로 통과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남양주 군 소유 부지와 교환하려는 것인데, 이 경우 롯데는 권리보상과 영업손실 보상, 근로자 임금보상, 이주대책 수립 등 각종 보상에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정부와 롯데가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불구속과 사드배치 장소를 ‘빅딜’했다는 의혹이 있으며,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70억원 관련 뇌물공여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된 것도 석연치 않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1만인 선언을 시작한데 이어 앞으로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전국 여성들의 연대조직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롯데 불매운동을 비롯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롯데 반대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울산에서 올라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영순 민중의 꿈 대표는 울산이 원전으로 둘러싸인 형편을 소개한 뒤 “미국의 미사일체계가 들락거리면 배치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 롯데백화점에 쇼핑하러 오는 중국 관광객도 안전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이영순 대표는 국정농단의 주범인 최순실 씨가 10조원에 달하는 부당 이익을 얻은 것은 무고한 국민의 피해를 감수하면서 전쟁위험을 고조시키는 무기 사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며, 그 일환으로 보이는 사드배치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비호자 황교안은 사퇴하라!”

“국정농단 비호자 황교안은 사퇴하라!”
편집국
기사입력: 2017/01/03 [09:5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박근혜 정권퇴진을 바라는  5대 종단 관계자들이 황교안 권한대행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사진 : 민중의소리)     © 편집국

기독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천주교 등 5대 종단이 황교안 권한대행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2일 ‘박근혜퇴진 5대종단 운동본부’는 서울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황교안 총리 사퇴와 야권의 새총리 추천을 촉구했다.

종교계는 현재 “불법행위를 저질렀던 자들에 대한 인적청산, 개혁입법 공포, 국정교과서 채택문제, 한일 위안부 협상 재협의 등 중요한 국정운영의 중심에 박근혜 정권의 가장 큰 비호자였고 수혜자였던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이 서 있다”며 “역사발전의 중요한 시기가 왜곡될 중대한 위기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황 총리에 대해 “국무총리가 되기 이전부터 삼성 X파일 수사에서의 재벌 봐주기, 희귀병을 악용한 병역면제, 법무부 장관시절 국정원 대선개입수사와 세월호 수사 방해, 변호사 시절 전관예우 등 적폐의 생산자이자 수혜자였고, 편향된 역사관과 종교관으로 주요 공직에 몸담을 자격이 없는 자”로 평가했다.

이들은 야당을 향해 왜 황교안을 정부측 대표자로 인정하고 여야정 협의체를 진행하고자 하는지 물으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야3당은 서둘러 새 총리를 국회에서 추천하여 황교안에게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교계는 “지금은 아직 악인이 의인을 협박하고, 공의가 왜곡되어 있는 상황”이라며 “황교안을 사퇴시키고, 부역자들에 대한 인적청산으로써, 정의와 역사를 바로 세울 첫 단추를 채우기 위하여 더 뜻을 모으고 더 힘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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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최순실 국정농단의 수혜자이자 비호자인 황교안 국무총리는 즉각 사퇴하라.

두 달간 전국을 뜨겁게 달구던 촛불의 함성이 마침내 국회의 탄핵 가결로 이어졌다.

박근혜 정권하에서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대표되는 적폐가 박근혜 혼자 만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부역자들의 협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에 국민들은 연이어 휴일을 반납하고 촛불을 들고 적폐청산을 외치고 있다.

그럼에도, 검찰로부터 범법자로 규정되었던 박근혜에 대한 탄핵심판기관인 헌법재판소 구성,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 수사기간 연장,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자 등 수 많은 불법행위를 저질렀던 자들에 대한 인적청산, 개혁입법 공포, 국정교과서 채택문제, 한일 위안부 협상 재협의 등 현 시기 가장 중요한 국정운영의 중심에 박근혜 정권의 가장 큰 비호자였고 수혜자였던 현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이 서 있다.

최근 연일 대통령 행세를 이어가고 있는 황교안은 국무총리가 되기 이전부터 삼성 X파일 수사에서의 재벌 봐주기, 희귀병을 악용한 병역면제, 법무부 장관시절 국정원 대선개입수사와 세월호 수사 방해, 변호사 시절 전관 예우 등 적폐의 생산자이자 수혜자였고, 편향된 역사관과 종교관으로 주요 공직에 몸담을 자격이 없는 자였다.

국무총리가 된 이후에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만족할 만한 협상이라고 주장하였고, 세월호 사건의 진실 규명을 외치는 목소리와 최순실 국정농단을 조사하라는 요구를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행위로 엄벌에 처하여 한다고 국민을 협박하였다.

또한 사드배치와 개성공단 폐쇄 등 국가의 흥망성쇄를 좌지우지할 사건에 있어서 국가를 위한 합리적 의견을 낸 사실이 없으면서도, 현재는 자신이 국무총리시절에 이루어진 위안부 협상을 박근혜 정권의 무능에 기인한 것으로 자신과 선을 긋고 있다.

이러한 황교안에 의하여 역사발전의 중요한 시기가 왜곡될 중대한 위기 상황에 있음에도, 국민주권주의를 실현을 위해 적폐를 해소해야 할 야당들과 적폐에 대한 1차적 책임을 져야함에도 소위 개혁적 보수라고 분칠을 하고 있는 새누리당 비박계는 차후의 권력구도에만 정신이 팔려, 황교안의 대통령 놀음을 지켜보고만 있다.

황교안을 사퇴시키지 아니한다면, 박근혜-최순실을 비롯한 범죄자들에 의한 국정농단의 진상규명과 박근혜정권 하에서 쌓인 수많은 적폐들을 즉각 청산해야 하는 과제는 또 다시 미루어질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야당은 왜 황교안을 대통령 권한대행, 즉 정부측 대표자로 인정하고 여야정 협의체를 진행하고자 하는지 묻는다. 황교안은 박근혜-최순실 일당이 국정을 농단하던 시기에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라는 막중한 지위에 있으면서, 헌정파괴를 방조하고 국정농단을 비호해온 주요 인물이다.
이 당사자를, 국정농단의 진상규명과 각종 적폐를 청산해야 하는 일에 함께할 수가 있다는 것인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야 3당은 서둘러 새 총리를 국회에서 추천하여 황교안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황교안은 야 3당 추천 총리를 받아들이고 퇴진해야 한다. 새로운 총리가 권한대행을 겸직하며 내각을 책임져야 한다. 이것만이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대통령선거 전의 질서 있는 과도기 수습방안이다.

모든 종교인들과 국민에게 호소한다.
온갖 악행과의 싸움은 이제 본격적인 시작일 뿐이다.
지금은 아직 악인이 의인을 협박하고, 공의가 왜곡되어 있는 상황이다.
황교안을 사퇴시키고, 부역자들에 대한 인적청산으로써, 정의와 역사를 바로 세울 첫 단추를 채우기 위하여 더 뜻을 모으고 더 힘을 모으자.

2017년 1월 2일
박근혜퇴진 5대종단 운동본부 

2017년 1월 1일 일요일

연대에서 고립으로…광장서 열린 입, 일상서 닫히다

[민주주의는 목소리다]①연대에서 고립으로…광장서 열린 입, 일상서 닫히다

김지원·정대연·허남설·송윤경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ㆍ민주화 30년…한국 민주주의 항로
ㆍ1부 ①고립된 삶, 고립된 언어
<b>촛불로 드러난 우리</b> 새해가 밝았지만, 세상은 아직 어둡습니다. 지난해 세밑까지 촛불을 들었을 때 시민들은 비로소 자신의 그림자라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촛불은 ‘여기 사람 있다’고 외치는 목소리였습니다. 암흑에 빠져 있던 민초들을 꺼내야 한다는 구조 신호였습니다. 새 세상에 대한 염원이었습니다. 새해에는 굳이 촛불을 켜지 않아도 대지와 광장의 목소리들이 곳곳에 퍼져나갔으면 합니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016년을 보내고 2017년을 맞은 새해 첫날 새벽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촛불로 드러난 우리 새해가 밝았지만, 세상은 아직 어둡습니다. 지난해 세밑까지 촛불을 들었을 때 시민들은 비로소 자신의 그림자라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촛불은 ‘여기 사람 있다’고 외치는 목소리였습니다. 암흑에 빠져 있던 민초들을 꺼내야 한다는 구조 신호였습니다. 새 세상에 대한 염원이었습니다. 새해에는 굳이 촛불을 켜지 않아도 대지와 광장의 목소리들이 곳곳에 퍼져나갔으면 합니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016년을 보내고 2017년을 맞은 새해 첫날 새벽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촛불을 끄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불의한 권력을 응징했다는 자부심이 가슴에 일렁였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전쟁 같은 삶은 그대로라는 사실을. 소득보다 빨리 느는 빚, 월급 16년 치를 꼬박 모아야 장만할 수 있는 아파트, 140만원에 불과한 비정규직 평균 월급….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는 지적처럼 지금 우리는 “광장의 조증과 삶의 울증”(사회학자 엄기호) 사이 어디쯤에 서 있다. 
경향신문은 시민 100명을 만나 광장 민주주의와 삶, 그리고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나아갈 길을 물었다. 답변 속 단어 하나하나보다 그 단어가 가리키는 ‘방향’을 살폈다. 광장에 대한 답변의 열쇳말은 ‘함께’ ‘다 같이’ ‘확인했다’ ‘용기’ 등이었다. 지난겨울 크고 따뜻했던 ‘광장’이 만든 ‘지진’이 감지됐다. 
각자 삶으로 돌아가면 달랐다. “답이 없다” “이직·퇴직·이민” “운이 좋아야 한다”. 광장에서 자유발언을 위해 긴 줄을 서던 시민들이 일상에서는 “바른말 않고 사는 게 편하다”고 고백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마음이 흘러가는 길은 그랬다. 
‘연대하는 광장’에서 트인 말문은 고립과 경쟁의 개인으로 돌아가자 닫혔다. 삶의 요구를 함께 분출하고 해법을 모색할 ‘작은 광장’이 일상에는 없었다. 배설과 냉소, 뒷담화, 독백만 남았다.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김모씨(32)는 “(정권은 무너뜨릴 수 있어도) 아버지·상사가 비민주·반민주라면 무너뜨릴 수가 없다”고 했다. 
2017년은 1987년 ‘6월항쟁’이 30주년을 맞는 해다. 6월항쟁은 정치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한국에 정착시켰다. 
이제는 질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향신문은 시민의 ‘목소리’에, ‘말’에 주목한다. “우리의 권리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토론해야 한다”(42세 운송업자)는 한 시민의 말처럼 그것이 민주화 30년의 성과를 토대로 새로운 민주주의 30년의 미래를 밝힐 ‘등대’가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광장에서 확인한 ‘함께 말하기’의 승리는 삶 속으로 들어가 진화해야 한다. 하나의 거대한 광장이 수백, 수천개의 ‘작은 광장’으로 번져가야 한다. 
시민은 말한다. “민주주의는 목소리다.” 광장의 목소리들은 이제 ‘일상’으로 향한다.
 

[민주주의는 목소리다]①연대에서 고립으로…광장서 열린 입, 일상서 닫히다
‘1000만 촛불’을 밝힌 겨울 광장의 시민들은 ‘우리’였다. 한목소리로 외쳤고, 그리고 승리했다. 이제 그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광장의 벅찬 경험을 한꺼풀 들어내면 그곳엔 무거운 삶이 자리한다. 잔업에 야근의 연속이지만 통장 잔액은 노동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반토막 임금을 받는데 여전히 고용불안에 떤다. ‘영재교육’이란 단어는 엄마들의 심란한 마음을 파고든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들 위엔 “이것이 잘못됐다고 쉽사리 말할 수조차 없는” 현실이 자리한다. 최근 직장을 그만둔 박모씨(34)는 “집회에선 ‘박근혜 나가라’고 외치고 왔어도 정작 직장에선 아무 말 못하고 다들 뒷담화로 풀어버리고 만다. 결국 각자 답답해하다가 (직장을) 하나둘씩 뜨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100명의 시민들을 상대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의 언어 속 ‘광장’과 ‘일상’의 간극은 넓었다. 광장에서의 경험과 일상의 실천은 좀처럼 이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광장에서 느낀 희망은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자취를 감췄다. ‘광장의 우리’와 ‘일상의 나’를 가르는 벽은 무너질 수 있을까. 
■ ‘하나’에서 ‘우리’가 된 광장 
광장에서의 경험은 시민들이 ‘우리’의 힘을 느낀 계기였다. 
시민들이 광장에서 경험을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사용한 단어는 ‘희망’이다. 그리고 ‘희망’이란 단어는 ‘국민, 주권자, 대중’ 등 집단을 가리키는 말들과 함께 이어졌다. 광장의 승리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닌 ‘우리’였기에 가능했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나’에서 ‘우리’로 진화하는 과정은 분노가 희망으로 바뀌는 과정이었다.
박모씨(63·무직)는 “나라가 엉망이 된 것이 분해 국민 한 사람으로서 집회에 나갔다”며 “광장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고 감격했고, 우리나라도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모씨(33·전문직)는 “촛불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의 표시였다”며 “그래도 우리나라에 아직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 많으니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광장에서 함께 느낀 벅찬 감정은 ‘승리’의 경험과 합쳐져 한층 공고해졌다. 많은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국회 통과 등 촛불이 일궈낸 성과들을 톺아보며 ‘가능성’ ‘자신감’ 등의 단어를 사용했다. 연장선상에서 ‘머릿수’란 단어의 빈번한 등장도 인상적이었다. “모이는 만큼”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으니 기꺼이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전체의 일부’가 되길”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김모씨(29·시민단체 근무)는 “매주 촛불집회 인원이 늘어난 것은 일종의 즉각적인 ‘효능감’이 작용한 결과”라며 “집회가 열릴 때마다 대통령이 담화를 하고 국회가 신경을 쓰는 등 꾸준히 결과가 나오니 ‘조금씩이라도 바뀐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소연씨(22·대학생)는 “(그동안) 정치에 대해 사람들이 지치고 회의적으로 되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하지만 이번 집회를 통해 다시 희망, 가능성이 생긴 것 같아 기뻤다”고 말했다.
■ 다시 ‘혼자’가 되는 일상 
광장을 뒤로하고 우리 앞에 놓인 일상으로 돌아오면 출구 없는 삶의 문제가 여전히 시민들을 짓누르고 있다. 
남석종씨(28·음악인)는 친구들과 만나면 술 한잔 앞에 두고 으레 서로 “사는 게 힘들다”는 얘기를 풀어놓곤 한다. 남씨는 “‘개처럼 일하는데 왜 돈은 이것밖에 못 벌지’ 등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 15초 정적이 오고 또 한잔하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간다”고 말했다. 침묵 아래엔 “출구가 없다”는 막막한 심정이 자리한다. 
인터뷰 결과 일상의 문제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억압, 고립, 답답’ 등이었다. 광장에서 느꼈던 ‘연대·희망’의 감정과는 정반대다. 
신모씨(45·마트 계산원)는 “힘들지만 내 문제를 누가 해결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집에 돌아와 혼자 있을 때 누워 있으면 가끔 ‘이러다 죽으면 어떡하지’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연대’가 끊어진 일상에선 문제의 진단도 해결책도 결국 개인의 차원에 갇힌다.
내가 ‘못사는’ 이유는 “수저를 잘못 잡고 태어나서”다. 많은 사람들은 현실의 어려움을 얘기할 때 ‘수저론’을 거론했다. 김모씨(62·대리기사)는 “둘째 아들 교육때문에 노후자금을 다 썼는데 (아들이)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한동안 못했다”며 “흙수저는 대학원을 나와도 대기업 문턱 밟기도 힘들고 공무원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모씨(47·직장인)는 “중1 아들이 ‘우리 집은 은수저는 못돼도 흙수저까지는 아니지 않을까요’라고 말했을 때 안도감이 들었다”고 했다.
과거 어려운 일이 해결된 경험과 관련해선 “운이 좋다”는 표현을 썼다. ‘운이 좋게’ 정부지원사업을 따내 얼마간 돈을 모을 수 있었고, ‘운 좋게’ 낮은 학벌임에도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직장인은 “운 좋게 로또에 당첨되면 가게를 열고 마음껏 취미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은 힘든 일상의 해결책으로 이직, 퇴직을 꿈꿨고 어떤 사람들은 실제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된다”는 말을 자조적으로 읊으며 이들은 ‘해결’ 대신 ‘탈출’을 꿈꾼다.
■ 촛불 이후를 고민하다 
그럼에도 말하고자 하는 의지, 말을 통해 바꾸고자 하는 의지는 꿈틀거렸다. 승리의 경험이 ‘정치 참여’와 삶의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권서로씨(27·대학생)는 “이번 탄핵 정국에서 시민들이 직접 국회의원에게 전화·문자를 넣으며 압박한 행동들을 긍정적으로 봤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정당은 철저히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는 측면이 있다”며 “국민들의 감시가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그것이 지지율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현 정당정치의 모습이 많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광장에서의 경험은 일상 속 작은 변화의 물꼬를 틔웠다. 진성우씨(52·사립대 직원)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공간에서 직접 얼굴 맞대며 말하고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생소한 경험”이라며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지역이나 일터 등에서도 활발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직접 민주주의가 일상에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프로할말러’(할 말은 하는 사람)의 씨앗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뭉쳐야 산다”는 말처럼, 많은 시민들은 홀로 마주한 답답한 일상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으로 ‘함께’의 가치를 꼽았다. 
박모씨(26·영화계 종사자)는 일상적으로 유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 간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성 중심적인 영화계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여성들이 ‘판을 떠나게 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 SNS를 통해 여성 영화인들이 모였다”며 “같은 문제의식, 생각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정승훈씨(48·운송업)는 “노동자는 (돈을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직장에서의 불합리한 처사에 혼자 대응하긴 힘들다”며 “노조 등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결사체들이 개인의 권익을 충분히 대변할 수 있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장에 모인 200만 촛불이 ‘빽’이었잖아요. 우리가 직접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이 일상에도 아로새겨져야 해요.”(고광재씨·27·대학생) 
■취재일지 - 연령·지역·직업 다양한 시민 100명 생애사 등 심층 인터뷰…원고지 4000여장 분량

경향신문은 지난해 12월8일부터 24일간 시민 100명을 만나 민주주의를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촛불광장 경험은 물론 일상과 고민, 개인사까지 파고들어 가는 물음을 던졌다. ‘민주주의’가 각자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킨 ‘촛불시민’의 폭발적 에너지가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어떻게 성장시킬지 가늠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100명 가운데 51명은 생애사와 국가적 사건·사고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아우르는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대상자 1인당 약 2시간이 소요됐다. 나머지 49명에게는 촛불 경험과 자신의 삶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방향을 묻는 30분 안팎의 인터뷰를 실시했다.
연령별로는 10대 10명, 20대 20명, 30대 20명, 40대 20명, 50대 20명, 60대 10명이었다. 주로 수도권에서 인터뷰가 진행됐으나 강원·충남·충북·경북·경남·전북·전남에서도 24명을 인터뷰했다. 공무원과 공기업 종사자, 대리기사, 자동차 공장 비정규직, 대학생과 대학원생, 아르바이트 노동자, 주부, 운송업자, 교수, 자영업자, 학원강사 등 다양한 직군이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 분량은 200자 원고지로 4000여장에 이른다. 
100명의 시민들은 인터뷰에서 삶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삶의 민주화’를 위한 출발은 ‘함께 목소리 내기’라는 사실 역시 인터뷰를 통해 얻어낸 결과다. 


■특별취재팀 
송윤경 김지원 정대연 허남설 고희진 기자
 


현장] 박근혜퇴진 촛불 천만명 돌파기념 폭죽

현장] 박근혜퇴진 촛불 천만명 돌파기념 폭죽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01/01 [11:0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6년 12월 31일 전국적으로 연인원 1000만명을 돌파한 기념으로 진행한 폭죽 행사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2016년 마지막 날 저녘 8시경부터 박근혜 탄핵 구속을 촉구하는 촛불집회 마지막 순서인 ‘송구영신 콘서트’가 진행되었다.

걸출한 전인권 가수와 신대철 기타연주자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 많은 이들이 관심을 모았던 이 촛불공연 도중 드디어 전국적으로 연인원 1000만명 촛불시위 참가 기록을 돌파했다는 사실을 사회자가 흥분된 목소리로 알렸다.

▲ 2016년 12월 31일 박근혜 탄핵 송구영신 문화제에서 '아름다운 강산'을 열창하는 전인권 가수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참가한 100여만명의 시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연속 촛불 파도타기를 하며 기뻐하였다. 압권은 이 1000만 돌파 기념 폭죽놀이였다. 미리 주최측에서 나누어준 폭축을 꺼내 촛불 시민들이 일제히 불을 붙여 터트리기 시작하자 광화문 일대는 찬란한 폭죽 불꽃과 현란한 무대 조명으로 대낮처럼 밝아졌다.

마치 헌재에서 박근혜 퇴진 판결을 내려 완전히 승리한 그날의 감격을 미리 보는 것만 같았다.

▲ 전인권, 신대철 음악가의 '아름다운 강산' 합동공연, 송귀철의 장구와 대금 등 국악이 어울어져 모든 참가자들을 격동시켰다.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무대에 오른 전인권, 신대철 음악가들이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자 온 촛불시민들이 함께 따라부르고 춤을 추며 박근혜 퇴진 구속 완전 승리 그날까지 싸워갈 의지를 드높였다.

송구영신 행사에서는 새해 첫 시각에 종각에서 진행될 새해맞이 타종 행사를 가상동영상을 통해 미리 진행하였는데 종을 울릴 때마다 대형 화면에서는 박근혜, 김기춘, 우병우의 사진이 깨져나가면서 구속시키라는 문구가 나타났고 100만 촛불시민들은 촛불을 흔들며 박근혜 구속, 김기춘 구속, 우병우 구속, 황교안 퇴진 등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 2016년 12월 31일 광화문 송구영신 문화제의 가상 타종행사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행사가 끝나고 집회 참가자들은 촛불을 들고 청와대를 향했다.

▲ 2016년 12월 31일 광화문 송구영신 문화제에서 목이 터져라 박근혜 구속을 외치는 시민들, 집회물건을 나른 트럭 짐칸이건, 화단 경계석 위건 입추의 여지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목이 터져라 박근혜 퇴진과 구속처벌 구호를 외쳤다.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한편 1일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에 따르면 지난해 마지막 날인 31일 열린 10차 촛불집회 참가자 수는 서울 100만명, 지방 10만4720명이다.
연인원을 배제하고 특정 시점 순간 최대인원을 추산하는 경찰은 이날 서울에서 6만5000명, 지방에서는 1만8000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주최 측 추산 결과 지난해 10월29일 1차 촛불집회부터 이번 10차 촛불집회까지 10차례 시위에 참가한 연인원은 서울 808만명, 지방 195만1870명에 이른다. 전국적으로는 약 1003만1870명이다.

▲ 2016년 12월 31일 광화문 촛불집회, 송구영신 문화제 진행 직전의 풍경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비록 주최측 추산이기는 하지만 이는 1987년 6월 항쟁(연인원 300만~500만 추정) 규모를 훨씬 뛰어넘었으며 100년 전인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1~2월 두 달 사이 집회 연인원은 67만6300명(당시 언론 추산 등)과 유혈 진압 당한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의 참가시민 약 100만명의 열배를 뛰어넘는 엄청난 기록이다.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 대단한 세계사적 기록을 세운 것이다.

박근혜 퇴진을 위한 10차에 걸친 촛불시위 중에 가장 많은 참가자가 모인 때는 6차 촛불집회였다. 당시 서울에서만 170만명이 운집했다. 서울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62만명이 참가했다. 경찰도 이날 참가자 수를 서울 32만명, 지방 10만9000명으로 집계했다. 현재 방식으로 경찰이 시위대 규모를 집계한 이래 최다 인원이다. 단군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는 진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