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14년 8월 3일 일요일

이효리처럼 오일풀링? '착한 기름' 이렇게 골라라


[인터뷰] 기름 만드는 김미영-이현주씨... "색깔 잘 살펴야" 14.08.04 08:32l최종 업데이트 14.08.04 08:32l이정환(bangzza) 기사 관련 사진 ▲ 최근 좋은 기름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좋은 기름을 골라서 섭취하는 것은 그리 쉽지 만은 않다. 사진은 한 대형 할인점의 기름 판매 코너 ⓒ 이정환 관련사진보기 요즘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가 '오일풀링'이다. 참기름이나 올리브유 같은 식물성 오일을 입에 머금고 가글하면 입 안 독소가 체외로 배출된다는 인도 민간 요법으로, 최근 가수 이효리씨가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건강 관리 비법으로 소개하면서 화제가 됐다.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는 물론 방송 뉴스에 등장할 정도로 관심이 그야말로 '핫'하다. 물론 맹신은 금물이다. 그 효과가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구토나 피부 질환 등 부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한다. 오일풀링 과정에서 '세균 오일'이 자칫 체내에 유입되면 오히려 큰 질병을 일으킬 수도 있다. 어떤 오일을 선택하느냐도 중요하다고 한다. '나쁜 기름'을 이용할 경우는 독과 독이 만날 가능성도 높아지니 어쩌면 당연한 경고다. 게다가 걸핏하면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이 '나쁜 기름' 뉴스다. 그동안 참기름에서 발암 물질인 벤조피렌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됐다는 소식은 잊을 만 하면 한 번 씩 튀어나오기도 했다. 대형 할인점 판매 상품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한 대형 할인점이 위탁 생산을 맡겨 판매한 참기름 상품에서 벤조피렌이 과다 검출됐다는 뉴스가 터져 나왔던 것도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일이다. 착한 기름과 덜 착한 기름 구분하기 기사 관련 사진 ▲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한 대기업 제품(사진 왼쪽)과 '착한들기름 착한참기름'의 제품을 비교해봤다. 고온에서 만들어진 기름일수록 갈색을 띠고, 반대의 경우는 노란 색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 이정환 관련사진보기 그러면 '착한 기름'까진 아니라고 해도, 그나마 '덜 착한 기름', 어떻게 골라야 할까. 직접 기름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강원도 인제군 원통시장에서 '착한들기름 착한참기름'을 운영하고 있는 김미영씨와 이현주씨. 한 사람은 농민이고 한 사람은 오랫동안 생협을 이용해 온 소비자였다. 김씨는 한국여성농업인 인제군연합회장, 이씨는 서울 토박이로 과학 선생님 '출신'이다. 이씨는 2010년에 전원 생활을 하려고 남편을 따라 고향에 왔다가 김씨와 만나게 됐다고 한다. 진짜 들기름을 한 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직접 제조를 시작했고, 친척 등 지인에게 '깨 값'만 받고 공급하다가 그 반응이 좋아 작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벌였다고 한다. 두 사람은 무엇보다 제조 방식을 살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름병에 '압착식'이라고 콱 박혀 있으면 두 사람에게는 일단 '통과'다. 김미영씨는 "예전에는 깨를 쪄서 그 다음 맷돌 같은 무거운 걸 올려놓고 눌러서 기름이 나오면 받는 과정을 반복했던 걸로 안다. 그게 요즘 말하는 저온 압착식 방법"이라며 "이런 방식으로 기름을 만들었다면 자신 있게 제조 방식을 표기할 것"이라고 했다. 제조 방법을 명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제품을 고르란 뜻이다. 따라서 기름을 고를 땐 큰 글자보다 작은 글자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제품 유형도 '의외로' 중요한 체크 포인트다. 만약 향미유라고 써 있으면 피하는 게 좋다고 한다. 이현주씨는 "향미유는 포도맛 사탕이나 바나나 맛 우유처럼 향만 넣은 기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기름 집 차리면서 관심을 갖다 보니까 알게 됐다. 그 전에는 향이 좋은 기름으로 알았었다"고 했다. "수입 여부를 떠나서요. 열을 많이 가해서, 태워서 짜는 기름은 아무래도 착한 기름이라고 할 수 없겠죠. 태우면 태울수록 기름이 많이 나와요. 누룽지 태우면 고소하잖아요. 태워서 고소한 맛, 식용유를 섞어서 태우면 맛이 고소해지거든요. 그러면 그게 참기름인지 뭔지, 들기름인지 뭔지 모르게 되는 거죠." (김미영씨) "보통 기름 갖고 사기치는 분들이 그렇게 하는 걸로 알아요." (이현주)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색깔 비교인데... 기사 관련 사진 ▲ '착한들기름 착한참기름'을 운영하고 있는 김미영씨와 이현주씨. 김씨는 현재 한국여성농업인 인제군연합회장이다. 서울에서 과학 선생님을 하던 이씨가 2010년 남편과 함께 귀향하면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됐다고 한다 ⓒ 이정환 관련사진보기 두 사람의 기름 공부 결론은 이렇다. 착한 기름을 만드는 기준은 바로 '온도'라는 것. 일을 벌이기 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직접 기름을 짜 보고 얻은 결론이라고 한다. 같은 기계라도 사용하는 사람 '의도'에 따라 천차만별. 이현주씨는 "낮게 한다는 곳도 180도, 높은 곳은 230도까지도 올라가더라"며 "100도로 하면 기름이 안 나오고 기계가 망가진다는 말도 들었었다"고 했다. 두 사람이 100도를 '착한 온도'로 정하자 나온 이야기라고 한다. 김미영씨는 "깨를 씻어서 볶을 때 연기 나지 않게, 물기만 말리는 정도만 볶아서 짜는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덕분에 방금 짜서 만져도 뜨거운 기운이 없다"며 "기계 허용 범위에서 온도를 최대한 낮춰서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산 참깨와 들깨를 사용하는 것과 함께 이들이 표방하는 '착한 기름'의 근거다. 따라서 이들에게 착한 기름과 그보다 덜 착한 기름을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름 색깔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태우면 태울수록 갈색을 띠고, 반대의 경우는 노란 색에 가까워진다고 했다. 다만 곤란한 점은 현실적으로 이런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것. 시중에서 판매되는 기름 용기는 그 색깔이 짙어 육안으로는 비교 불가다. 보관 중 햇볕에 노출되면 산화가 잘 되는 특성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이들 두 사람은 별도 케이스를 만들면서까지 투명 용기를 '고집한다'. 품질에 대한 일종의 자신감이다. 김미영씨는 "저희가 시식 행사도 하는데 숟가락에 기름을 따라 놓으면 왜 색깔이 이러냐고 놀라는 경우가 적지 않더라"면서 "기름 농도가 진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던 분들도 직접 먹어보면 깜짝 놀란다"고 자랑했다. 이현주씨는 이런 말도 했다. "생협 판매 제품보다 우리 기름이 더 착하다고 하고 싶네요(웃음). 수입 깨가 너무 싸다 보니까 판로가 없어서 우리 들깨가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저희가 3년 째 지역 들깨 농가에서 수매하고 있는데요. 나중에 이 분들과 함께 생산자 협동조합을 만들고, 더 잘 되면 전국 단위로 생산자 협동조합 만들고, 더 나아가 소비자 협동조합도 만드는 게 꿈이에요. 우리 들깨 살려야죠." 가장 착한 기름은 들기름, 하지만 잘못 먹으면 '독' 기사 관련 사진 ▲ 인터뷰 도중 이현주씨는 '착한들기름 착한참기름' 제품의 검사 성적서들을 보여줬다. 발암 물질인 벤조피렌의 불검출을 '인증'하기 위해서였다. 참기름의 경우는 한 달에 한 번, 들기름은 석 달에 한 번 품질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작은 규모 업체 입장에서는 검사비(1회 16만5천원)가 다소 부담스럽지만, 식품제조가공업으로 등록한 선택을 후회하진 않는다고 했다 ⓒ 이정환 관련사진보기 최근 들기름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혈관을 깨끗하게 하고 혈액 독소를 제거하는 그 효능이 방송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덕분이다. 김미영씨나 이현주씨 역시 가장 착한 기름으로 들기름을 꼽았다. 집에서 요리할 때 튀김 요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들기름을 쓴다고 할 정도다. "식물성 기름은 다 좋은 줄 알지만 그건 아니라고 하잖아요. 물론 동물성 기름보다야 낫지만, 역시 오메가6가 많은 기름이 적지 않으니까요.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오메가6 섭취량이 많이 늘어났잖아요. 콩기름이나 식용유 성분에도 오메가6가 굉장히 많고요. 그러다 보니 오메가3를 찾아 섭취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오메가3 무슨 약도 나오고요. 하지만 식품으로 먹는 것이 더 흡수율이 높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착한 기름 1등은 들기름이란 거죠. 들기름은 참기름보다 오메가3가 훨씬 많으니까요. 올리브유보다도 그렇고요." (이현주씨) 오메가3와 오메가6의 불균형 해소 차원에서는 들기름 만한 식품이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단서는 붙는다. 지난 5월 방영된 한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가들은 "들기름을 먹으면 혈관을 깨끗하게 하고 혈액 독소를 제거한다고 많이 드시는데 고온에서 만들어진 들기름에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놨다. 두 사람의 의견도 물론 같았다. "고온에서 만들어진 들기름은 독"이라고 했다. 태그:참기름, 오일풀링, 착한들기름 착한참기름, 들기름, 올리브유 태그입력

'민족혼' 담을 '겨레말큰사전'


'민족혼' 담을 '겨레말큰사전' [친절한 통일씨] 4년 반 만에 재개된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08.03 17:21:27 트위터 페이스북 남북 민간교류가 한창이던 때, 북측에서 말한다. "일 없습네다." '일없다'. 남측 사람들이 듣기에 '일없다'는 표현은 상당히 불쾌하다. 그래서 다짜고짜 화부터 내기도 했다. 하지만 남측 사람들의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에 북측 사람들은 오히려 더 당황스러워한다. 사실 북측에서 '일없다'는 말은 '괜찮다'라는 표현이다. 60여 년의 분단만큼, 남북의 언어표현과 어휘의 의미는 상당한 차이를 갖고 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하나의 민족이라고 노래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다. ▲ 북측 '조선말 대사전'. '겨레말큰사전'은 남측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측 '조선말 대사전'을 1차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하나의 사물을 두고 오징어와 낙지라 달리 말하고, 식당 종업원을 아가씨라 불렀다가 된통 혼나지만 '접대원'이란 표현이 매우 어색할 정도로 남북의 언어차이는 상당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남북 간 이질화된 언어를 하나로 통합하고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남북이 함께 만드는 사전이 있다. 바로 '겨레말큰사전'이 그것이다. 2010년 '5.24조치'로 모든 남북 간 교류가 단절되던 시기,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도 중단됐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난 4월에 세상의 빛을 봐야 했을 '겨레말큰사전'이지만, 최근 4년 반 만에 남북이 겨레말 큰사전 편찬사업을 재개했다. '겨레말큰사전'.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은 언제 시작됐을까. 그리고 어떻게 진행되고 얼마만큼 성과를 거두었을까. 과연 우리 손으로 '겨레말큰사전'의 책장을 하나하나 넘겨볼 날이 올 것인가. 문익환 목사, 김일성 주석의 유지. '겨레말큰사전' '겨레말큰사전'이라고 하면 언어학자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학자들의 필요로 논의가 처음 시작됐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고 문익환 목사와 고 김일성 주석이 '겨레말큰사전'의 첫 단추를 끼었다. 1989년 평양을 방문한 문익환 목사는 김일성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통일국어대사전'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여기에 김일성 주석이 즉석에서 동의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03년 문 목사의 아들 성근 씨가 방북, 당시 북측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위원장 겸 서기국장에게 사전 편찬 문제를 다시 제기했다. 그리고 2004년 1월 문익환 목사 10주기 행사 참석차 서울을 방문한 북측 대표단에게 문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 '통일국어대사전' 편찬을 요청했다. 이후 남측 '통일맞이'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가 사전편찬을 위한 의향서를 체결, '겨레말큰사전'으로 명칭을 결정했다. 이를 토대로 2004년 12월 금강산에서 편찬위원회 실무접촉을 통해 합의서와 부속합의서를 체결, 2005년 2월 20일 금강산에서 역사적인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결성식이 열렸다. ▲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위원회' 결성식. 2005년 2월 20일 금강산에서 열렸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공동보도문] 남과 북의 어학 학자들은 내외의 커다란 관심 속에 2005년 2월 20일 금강산에서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을 실천하고 민족의 단합과 조국통일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민족어 공동사전편찬을 위한 공동편찬위원회 결성식을 가졌다. 1. 남과 북의 언어학자들은 민족어 공동사전을 우리말과 글의 민족적 특성을 높이 발양시키고 통일의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며 오랜 역사를 통하여 창조된 우리 민족어 유산을 총집대성한 겨레말 총서를 편찬하기로 하였다. 2. 민족어 공동사전의 이름을 '겨레말큰사전'이라고 하였으며 남과 북의 언어학자들은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위원회'를 구성하고 사전편찬사업을 2005년 2월부터 시작하여 빠른 기간 안에 완성하기로 하였다. 3. 북과 남의 언어학자들은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위원회를 분기에 1차씩 합의되는 장소에서 진행하며 여기에서 사전편찬과 관련한 제반 문제들을 협의 결정하기로 하였다.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위원회 2005년 2월 20일 금강산 [출처-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위원회] 이어 '겨레말큰사전'은 학문적 영역이라는 점을 고려, 전문조직이 필요하다는 뜻에 따라 2006년 1월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사업회'(이사장 고은)가 설립됐고, 여기에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따라 2007년 4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남북은 2005년 2월부터 1년에 4번씩 만나 2009년 12월까지 총 20차례의 공동편찬위원회와 4차례의 공동 집필회의를 가졌다. 여기에 정부는 남북협력기금으로 총 220억여 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2010년 '5.24조치'로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중단, 2014년 4월 발간 계획이 무산됐다. 이에 국회는 2014년 4월까지 적용되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을 2019년까지 연장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지난달 29일 중국 선양에서 남북공동편찬회의와 공동집필회의가 4년 반 만에 열렸다. ▲ 2009년 12월 중국 선양에서 열린 제20차 공동편찬회의. 이 회의를 끝으로 남북은 4년 반 동안 '겨레말큰사전' 편찬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의 조직은 남북 당국의 개입이 없다는 점에서 순수 학술집단이라는 특징이 있다. 남측의 표준국어사전 등을 편찬하는 국가기관인 '국립국어원'과 북측의 공식 학술기구인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는 총체적 책임권한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남측에서는 국립국어원 소속 연구원 일부와 언어학 교수들이 참여하고, 북측에서는 '사회과학원' 소속이지만 실제 호칭은 '조선언어학회' 회장 및 회원으로 불려 학술적 목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남측 고은 '공동편찬위원회 상임위원장', 홍윤표 공동위원장, 김재용, 오봉옥, 이태영, 이희자, 조남호, 홍종선(이상 편찬위원), 조재수 편찬실장, 정도상 집행위원장 △북측 문영호 공동위원장, 윤춘현, 정순기, 고인배, 고인국, 최병수, 방린봉, 권종성, 리명복, 허일룡(이상 편찬위원) ▲ 2007년 6월 8일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개소식이 열렸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 고은 이사장, 박용길 장로, 백낙청 상임대표, 이해동 목사(왼쪽부터 순서대로)가 개소식 떡을 자르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남북이 언어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은 '겨레말큰사전'이 처음이었을까. 남북은 사전 편찬을 위한 공식적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다양한 연구활동을 해왔다. 1990년대 '코리안 컴퓨터처리 국제학술대회'(1994~2001), '코리안 어문규범과 관련한 국제학술회의'(1995~1996), '남북 언어동질성 회복을 위한 국제학술회의'(2001~2004), 정보화시대에 따르는 민족어의 통일적 발전과 언어정보 산업표준에 관한 학술모임'(2002)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남북 언어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논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들 논의는 일회성 행사에 그치거나 논의를 확장할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혔기에, 실질적인 남북 간 언어 동질성을 위한 논의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언어관 차이, 남측 '표준어', 북측 '문화어' '겨레말큰사전' 내용을 이해하려면 언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언어의 개념을 아는 것은 매우 학술적인 분야이고 연구자가 아니라면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겨레말큰사전'은 남북 간 언어관을 극복하고 하나로 통합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기에 남북의 언어관을 알면 이해하기 쉽다. 남북 언어의 본질은 같다. '나는 밥을 먹는다'는 식으로 주어 다음에 목적어가 오고 뒤이어 동사가 오는 문법구조나 'ㅏ,ㅑ,ㅓ'와 같은 모음, 자음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인 음운체계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어휘, 단어에는 차이가 있다. '동무'라는 단어가 '늘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지만, 북측에서는 '혁명을 위하여 함께 싸우는 사람을 친근하게 이르는 말'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식이다. 이는 한국전쟁 이전 남북이 '동무'라는 단어를 흔히 사용했지만, 전쟁 이후 남측에서 '동무'라고 말했다가는 간첩으로 취급받는 것과 같이, 남북이 어휘를 두고 서로 사용법과 의미가 다른데, 이는 남북 간 언어관의 차이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60년 분단 동안 남측에서는 '표준어' 북측에서는 '문화어'라는 개념이 생겼고, 여기에 남북의 체제 의미까지 부여돼, 언어 이질화를 가져왔다. ▲ 2005년 11월 개성 봉동관에서 열린 4차 공동편찬회의. 회의에서는 '단일언어규범을 만들기 위한 작업지침서'(단일언어규범작업요강)이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남측의 '표준어'는 의사소통의 불편을 덜기 위해 전 국민이 공통적으로 쓸 공용어의 자격을 부여받은 말로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원칙으로 한다. 북측의 '문화어'는 주권을 잡은 노동계급의 당의 영도 밑에 혁명의 수도를 중심지로 하고 수도의 말을 기본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노동계급의 지향과 생활 감정에 맞게 혁명적으로 세련되고 아름답게 가꾸어진 언어이다. 이런 언어관을 극복하고 공통의 언어, 공통의 어휘를 사용하도록 돕는 작업이 바로 '겨레말큰사전'이다. 물론, 그렇다고 '겨레말큰사전'이 남북의 언어 통일을 주요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사전 하나로 통일된 어휘를 사용하는 것은 60년의 세월을 극복하는 것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레말큰사전'은 남북이 함께 사용하는 어휘, 그리고 어휘에 대한 남북 간 뜻의 같음과 다름을 이해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목적이 더 크다. ▲ 2005년 8월 서울에서 열린 제3차 공동편찬회의 중인 문영호 편찬위 북측위원장(왼쪽)과 홍윤표 남측위원장(오른쪽). [자료사진-통일뉴스] '겨레말 큰사전', 어떻게 만들까.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는 올림말, 집필, 새 어휘, 정보화, 형태표기 등 총 5개 분과에서 작업하고 있다. 사전의 가장 큰 작업은 바로 '올림말'. 즉 어휘 선정이다. 올림말이 선정돼야 그에 대한 뜻을 정리하고 사전으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올림말은 20세기 초부터 오늘날까지 사용되었거나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을 범위로, 표준어와 문화어 외에 새 어휘를 다량 수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일차적으로 '겨레말큰사전'에 등재될 올림말은 남측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측 '조선말대사전'을 대상으로 총 80만여 개 올림말 가운데 등재 후보 어휘가 선별됐다. 여기에 남북은 검토 후 1차 협의로 28만 5천여 어휘를 선정, 여기에 새 어휘 10만 개를 포함해 약 30만여 개의 어휘를 올림말로 선정했다. 여기서 새 어휘는 남북이 각자 사용하는 △문예작품 등 간행물에 나타난 문헌어, △생활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현장어, △해외에서 사용하는 우리말 중 남북의 사전에 등재되지 못한 어휘를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사전에 수록될 어휘가 방대하다는 점을 고려, 남북은 약 23만 개로 줄일 계획이다. ▲ 2009년 10월 개성에서 열린 제19차 공동편찬회의. [사진출처-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선정된 어휘는 뜻풀이 작업인 사전 집필로 이어진다. 사전 집필은 남북의 편찬위원들이 '6.15 공동선언' 정신을 토대로 정한 '집필요강'에 따라 이루어진다. 뜻풀이 집필은 전체 올림말을 자모별로 나눠, 남측은 'ㄱ,ㅁ,ㅇ,ㅈ,ㅊ', 북측은 'ㄴ,ㄷ,ㄹ,ㅂ,ㅅ,ㅋ,ㅌ,ㅍ,ㄲ~ㅉ'를 각각 담당한다. 하지만 뜻풀이에서 일관성과 체계성이 요구되는 항목 중 언어학 용어와 문법 형태, 붙임은 남측이, 의성.의태어와 갈래말은 북측이 전담한다. 각기 맡은 자음별 뜻풀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남북이 모든 단어를 집필하고 검토한다고 할 수 있다. 각자 맡은 어휘에 대한 뜻풀이 원고는 서로 나눠 검토작업에 들어간다. 각자 검토된 원고는 다시 교환해 재검토하고, 재검토된 원고를 갖고 남북의 편찬위원들이 직접 만나 합의하는 과정을 거친다. 남북은 이런 방식으로 1년에 7만 6천 개 올림말을 집필, 교차 검토하기로 했지만, 2007년부터 시작, 2009년까지 전체 35만 개 올림말 중 4만 개의 합의만 한 상태이다. 게다가 2010년 이후 편찬사업이 중단, 현재 남측은 2011년 말 까지 독자적으로 12만여 개 올림말에 대한 집필을 끝냈다. 현재, 66% 진행된 것으로 위원회 측은 평가한다. 전체 올림말을 정리하고 뜻풀이가 완료되면, 교정과 교열과정을 거쳐 2019년 사전으로 편찬될 예정이다. 남북은 집필 외에도 '겨레말 말뭉치'를 구축, 사전 전산화 작업을 통해 각종 검색, 통계 및 체계화를 위한 전산처리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 2008년 12월 평양에서 열린 제16차 공동편찬회의. [사진출처-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올림말과 여기에 대한 뜻풀이 과정만 보면 '겨레말큰사전' 편찬작업은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남북이 모두 인정하는 언어 규범이 없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남북은 자모 배열순, 띄어쓰기, 외래어 표기, 형태 표기, 된소리 표기, ㅣ모음 동화형태 표기, 문장부호, 문법 용어 등에서 합의했지만, 두음법칙 표기, 사이시옷 표기, 문법형태 목록, 인용례 출전과 작가 명기 여부 등은 문제로 남아있다. 여기서 두음법칙 적용 여부는 매우 첨예한데, 김정은 제1위원장의 부인을 '리설주'냐 '이설주'냐 표기하는 법이 다르다는 점, '여자'와 '녀자' 등 남북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쪽의 손을 들어주면 될 것 아니냐는 단순한 생각도 가능하다. 하지만 남북은 '겨레말큰사전'으로 남북 주민들의 언어생활에 전혀 구속력을 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고, 만약, 영향을 준다면, 양측이 모두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편찬위원회는 '형태표기위원회'를 두고 '겨레말큰사전'에만 적용될 언어 규범과 표기 형태들을 호혜적으로 합의하고 있다. '겨레말큰사전', 남북 언어 동질성 회복의 단초가 될까. '겨레말큰사전'은 매우 어렵고 오랜 시간이 있어야 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을 들인 사전 편찬 작업은 민족의 앞길에 큰 도움이 된다. 일제시대 조선어학회가 만든 '조선말큰사전'은 1929년부터 1942년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조선말큰사전'은 분단 이후 남북의 언어사용에 큰 뿌리로 작용했다. 그뿐만 아니다. 사전과 다르지만, 1977년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천주교와 개신교가 공동 번역한 '공동성서번역'은 지금도 각 교파에서 사용하면서 종교 간 화합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공동성서번역'은 천주교에서는 성종완 신부, 개신교에서는 문익환 목사가 함께 작업했다. 이런 역사적 사례는 '겨레말큰사전'이 가져올 남북 언어 동질성 회복에 매우 큰 발자취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겨레말큰사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남북 당국이 '겨레말큰사전'에 수록된 어휘로 공문서를 작성하고, 민간 학술교류에서 활용한다면 대중에게 미칠 영향은 클 것이다. 또한, 남북의 각급 학교에서 '겨레말큰사전'을 활용한 수업이 이루어진다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민족 동질성 회복을 넘어 통일세대를 키워내는 훌륭한 교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2019년 세상의 빛을 볼 '겨레말큰사전'에 등재된 어휘로 기사를 작성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 '겨레말큰사전' 집필 예. 가운데 줄은 삭제표시이고 밑줄은 추가표시이다. (출처, 홍종선(2012.3) '겨레말 큰사전'의 성격과 과제') [자료정리-통일뉴스]

뉴욕과 엘에이 동포들 통합진보당 마녀재판 규탄 연대시위


뉴욕과 엘에이 동포들 통합진보당 마녀재판 규탄 연대시위 김동균 통신원 기사입력: 2014/08/04 [09:12] 최종편집: ⓒ 자주민보 ▲ 7월 31일 로스앤젤레스 동포들이 총영사관 앞에서 통합진보당 마녀사냥식 재판을 규탄하는 시위를 진행 © 자주민보 ▲ 8월 1일 미주 동포들이 진행한 뉴욕 총영사관 앞 통합진보당 마녀사냥식 재판 규탄 시위 ©자주민보 ▲ 8월 1일 미주 동포들이 진행한 뉴욕 총영사관 앞 통합진보당 마녀사냥식 재판 규탄 시위 © 자주민보 어제(금, 8/1)와 그제(목, 7/31) 낮 12시,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 앞에서 소위 '이석기의원 내란음모 사건'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박근혜 정권의 시녀 검찰이 1심 재판 과정과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조작, 왜곡, 거짓 증거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밝혀졌음에도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20년을 구형한 만행을 규탄하는 동, 서부 재미동포들의 연대시위가 이틀에 걸쳐 개최 되었습니다. 그제(목, 7/31) 낮 12시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 앞의 '진보의 벗' '엘에이시국회의' 회원들을 중심으로 한 시위참가자들은 "이석기 무죄" "진보당 해산시도 즉각 중단하라" "진보당 사수 민주주의 수호" "이석기 석방하라" "Lee Seok-ki Not Guilty" "박근혜 퇴진" "내란음모조작이다 이석기의원 석방하라" 등의 주장이 적힌 피켓과 함께 구호를 외치며 한 시간 가량 시위를 펼쳤으며 총영사관 앞에서 지속적으로 '세월호 촛불'을 지키고 있던 분들도 참여하여 시위를 잘 마쳤다고 하였습니다. (*사진에는 다섯 분 밖에 보이지 않지만 참가자 수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제(금, 8/1) 낮 12시 뉴욕 총영사관 앞에서는, '내란음모 조작 박근혜 정권 및 정치검찰을 규탄하는 뉴욕동포들'이 시위를 개최하였으며 시위 참가자들은 "내란조작 중형구형 정치검찰 규탄한다" "내란조작 간첩조작 박근혜정권 규탄한다" "대선부정 덮기 위한 내란음모 조작이다" "내란음모조작이다 이석기의원 석방하라" "South Korea democracy under attack Down Down NIS" "South Korea democracy under attack Out Out Park Geun-hye" "South Korea democracy under attack Free Free Lee Seok-ki" "Down Down NIS Out Out Park Geun-hye" "Free Free Lee Seok-ki" "Park Geun-hye - Dictator! NIS - Manipulator!"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습니다. 우리 재미동포 시위 참가자들은 8월 11일에 있을 항소심 판결에서 재판부가 정치검찰과 박근혜 정권의 외압에 휘둘리지 말고 정의와 진실에 기초한 판결을 해 줄 것을 요구하며 만악의 근원인 국정원 해체와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해 국내의 시민사회진영과 해외 전 지역의 동포들과 연대하여 끝까지 싸워 나갈 결의를 다시 한 번 다집니다. 그리고 시위에 참가한 우리 동부와 서부의 동포들이 <내란음모 조작 박근혜 정권, 정치구형 시녀검찰 강력 규탄한다>는 연대성명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아래에 1. 2. <성명서 전문>을 붙이겠습니다. .............................................................................. 아래 .................................................................................. 1. https://www.dropbox.com/sh/alxdy654j8apeh4/AAAjxeSF04u8RNaGjtapmGoqa 2. <내란음모 조작사건 정치구형 박근혜 정권 규탄 재미동포 연대성명서 – 전문> 내란음모 조작 박근혜 정권, 정치구형 시녀검찰 강력 규탄한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에나 일어 났던 정치적 조작사건 재판이 21세기인 오늘에도 이렇게 버젓이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지난 해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나기 시작 한 시점인, 8월 말에 터진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접한 일부 국민들은 설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무리 국정원 이라도 '국가내란음모' 같은 사건을 조작해 내겠냐며 반신반의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사건이 발생되고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 당원들에 대한 무차별적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이라는 국정원의 또 다른 조작사건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반신반의 하던 국민들마저 국정원의 정치공작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내란음모 사건의 1심 재판에서부터 지난 월요일(7/28)의 항소심 결심공판까지의 과정에서 밝혀진 셀 수 없이 조작된 거짓, 왜곡 증거들을 보면서 박근혜 정권이 유신정권의 부활임을 깨닫게 되었다. 한 예로, 내란음모의 유일한 증거인 녹취록에서 잘못된 녹취로 밝혀져 재판과정에서 수정된 곳이 최초에 언론에 보도된 녹취록과 비교하여 천 여 곳에 이른다 한다. 따라서 대다수 국민들은 이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박근혜 정권의 위기 모면과 장기적으로 진보정당 및 진보진영을 말살하기 위해 철저히 조작된 사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특히 올 해, 비극적인 세월호 대참사를 겪으면서 박근혜 정권이 위기 모면과 정권유지를 위해서는 어떠한 거짓과 왜곡과 조작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 하게 되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반신반의하며 내란음모 사건과 거리 두기를 하였던 시민운동진영, 종교계, 학계, 법조계, 정치계도 이 사건의 조작을 확신하고 구속된 사람들의 석방을 주장하기 시작 한 것이다. 국외적으로도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의 규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의 구속자 가족들의 직접 접견이 있었으며, 우리 재미동포들도 잘 아는 쿠씨니치 전 의원은 내란음모 2심 결심공판이 있던 당일(월,7/28), 미국의 허핑턴포스트에 발표한 박근혜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이석기 의원이 내란죄의 혐의로 체포되고 구속된 사실"과 "반대 정당을 해산시키려는 귀하의 노력, 국정원을 귀하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한 사실"등의 표현을 써 가면서 박근혜 정권의 독재성을 직접 규탄하기까지 하였다. 우리는 지난 독재정권 시대에 조봉암 진보당사건, 인혁당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부림사건, 납북어부 간첩사건,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등 등,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정치적 조작 사건들을 보아왔으며 정의롭고 전도유망한 청년학생들과 활동가들이 불법구금, 강제 투옥, 강제 징집, 의문사를 당하거나 간첩으로, 내란사범으로 조작되어 사형판결을 받고 몇 십 년씩 감옥에 갇혔던 비극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해부터 국내에 앞서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문제를 제기하고 국정원과 박근혜 정권을 향해 싸워왔던 우리 재미동포들은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터지자 이 사건이 국정원과 가짜대통령 박근혜가 과거의 독재정권과 똑 같은 행태로 위기 돌파를 위해 조작한 사건이었음을 곧바로 알아차렸으며 다시는 과거 독재시대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불법 대선개입 규탄과 동시에 내란음모 조작사건을 강력 규탄하며 국정원 해체와 박근혜 정권 퇴진 시위를 전개하여 왔던 것이다. 8월 11일에 있을 항소심 판결을 열 흘 앞 둔 오늘, 우리 재미동포들은 항소심 재판부가 정치검찰과 박근혜 정권의 외압에 휘둘리지 말고 정의와 진실에 기초한 판결을 해 줄 것을 요구하며 만악의 근원인 국정원 해체와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해 국내의 시민사회진영과 해외 전 지역의 동포들과 연대하여 끝까지 싸워 나갈 것이다 1. 내란조작 중형구형 정치검찰 규탄한다! 2. 내란음모조작이다 국정원을 해체하고 박근혜 정권 퇴진하라! 3. 재판부는 이석기의원 및 구속자를 무죄 석방하라! 내란음모 조작 박근혜 정권 및 정치검찰을 규탄하는 재미동포들 관련기사 진보당 ‘세월호 사건 청와대 국정원 성역 없다’ 진보연대 이석기사건 검찰 구형 규탄 김선동, 쌀시장 전면개방 반대 무기한 단식 진보당 당원, 보안관찰법 위반으로 교도소 수감 이재화 변호사 “진보당이 해산되면 암흑의 시대가 온다”

2014년 8월 2일 토요일

너 모르면 간첩, 마을 사람들이 바뀌었다


너 모르면 간첩, 마을 사람들이 바뀌었다 보내기 인쇄 2014. 08. 01 조회수 8675 추천수 0 봉하마을 황새 ‘봉순이’ <4>  노인회장님 딸 이름이 봉순이라고 진짜 극진히  북쪽서 온 근사한 남친 만나 아들-딸 낳았으면 <1> 그분의 환생처럼 홀로 그 멀리서 고고하게 왔다 http://ecotopia.hani.co.kr/205372 <2> 잠자리가 고압선 철탑 꼭대기라니! http://ecotopia.hani.co.kr/205487 <3> 낙원 같은 고향 떠나 혼자 온 까닭은 http://ecotopia.hani.co.kr/205655 021.jpg » 왜가리가 먹이 터에 다가오자 날개를 크게 펴고 위협하며 접근하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한국과 일본은 무슨 차이일까. 나는 알 거 같아. 말해볼까? 자동차를 운전해보면 금방 알 수 있어. 사람들은 하나같이 급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운전하는 거 같아. 나는 엉망이면서 상대방만 탓을 해. 나는 기초질서 하나 잘 안 지키면서 관료들에게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공항에 착륙한 비행기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선반에서 가방을 꺼내거나 뒤에서부터 일어나 나오는 거, 바로 그 차이 아닐까?    조심하기는커녕 날아가는 걸 보려고 되레 차를 쌩 몰아   또 있어. 봉순이 네가 저만큼 논에서 먹이를 먹거나 농로에 나와 있을 때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서행을 해야 하잖아. 하지만 새가 혼비백산 날아가는 걸 보려고 속도를 줄이지 않거나 오히려 속도를 올린다는 거야. 황새인지 두루미인지 왜가리인지 백로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애교로 넘길 수는 있어. 그러나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함부로 한다면 후진(?) 국민 소리밖에 더 듣겠니? 020.JPG » 자동차가 다가오면 잠시 피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황새는 자리를 지키는 집념이 대단하다. 내가 너를 바라보고 있는 곳 농수로에 흰뺨검둥오리 두 가족 약 20마리가 살고 있었어. 그런데 저녁시간에 근처 동남아 근로자 세 명이 느닷없이 돌멩이로 새끼 오리들을 공격한 거야. 며칠 전 배터리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던 녀석들이었지. 너도 보았으니까 누군지 알 거야 아마. 오리들은 혼비백산 흩어져 이산가족이 되었고 그 다음날까지 어미가 새끼들을 눈물겹게 찾아다니고 있었어. 겨우 찾은 새끼는 두 마리뿐. 나는 우리와 이런 친구들의 의식 차이가 일본과 우리와의 차이쯤 된다고 생각해. 점수가 너무 짰나? 아무튼 그래. 화포천에서 너를 관찰하고 있을 때였어. 거긴 물고기잡이 금지구역인데 동남아 근로자들이 낚시와 그물을 들고 나타났어. 내가 알아듣게 설명한 후 보냈는데 잠시 후 나이 지긋한 한국 사람이 낚싯대 하나를 들고 왔어. 내가 ‘이곳은 낚시 금지구역’이라고 말했더니 뭐 이 정도는 괜찮대나? 그래서 낚시를 하지 않기로 했으면 하지 말아야지 한국인이 그러면 동남아 근로자들도 우습게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점잖게 얘기했는데 알아듣는 눈치였어. 참 다행이지? 낚시를 하면 낚싯줄이나 낚시바늘이 유실될 테고 버려진 낚시바늘에 미끼를 물고기가 먹으면 새들은 물고기를 먹게 돼. 결국 그곳에서 사는 모든 생물들이 피해를 입잖아.   044.JPG » 왜가리와 비교되는 몸집. 그런데 사람들은 왜가리와 황새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지성이면 감천, 김해시청에서 인공 둥지 만들어주기로   하여튼 봉순이 네 덕분에 요즘 마을 안팎으로 잔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단다. 첫째, 내가 땡볕에 하루 종일 앉아 너를 바라보는 바람에 우선 마을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어. 황새와 백로와 왜가리를 구분하게 되었고 황새가 어떤 새이며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먹고 살고 황새가 사는 곳은 사람 살기도 좋은 곳이라는 거 말이다. 그리하여 네가 자주 활동하는 들판 양쪽 두 개의 마을 사람들은 너를 모르면 마을 사람이 아니라고 할 만큼 너는 유명인사(?)가 되었어. 045.JPG » 황새를 바라보는 마을 주민. 둘째, 너에게 인공 둥지와 습지가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정말로 지대한 변화가 온 거지. 자동차들도 너를 발견하면 서행하기 시작했고 저녁이면 마을 사람들이 너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어. 더 재미있는 일이 있어. 뭐냐면 퇴은마을 노인회장님의 시집간 딸 이름이 ‘류봉순’이라는 거야. 정말 묘한 인연이지? 특히 류봉순 오빠 되는 분이 류우상이라는 분인데 가족들과 함께 너를 우상처럼 돌보겠다고 약속했단다. 역시 내가 이름 하나는 잘 지었나봐. ^.^ 엊그제는 화포천습지생태관에서 도요오카에 다녀온 보고회 겸 특강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도 초대했어. 강의를 마치고 진지한 얘기들이 오가고 봉순이 네 얘기로 꽃을 피웠지. 그리고 빅뉴스! 김해시청 정책과에서 전화가 온 거야. 김맹곤 김해 시장님이 봉순이 인공 둥지를 빨리 지어주라고 했다는구나. 세상에 이런 경사가!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결국 진심이 통한 거 아니겠니? 097.JPG » 일본 도요오카 황새마을 인공 둥지에서 쉬고 있는 황새. 내 역할은 세 개 정도의 인공 둥지를 지어 주고 두 사람 정도 너를 전담하는 인력이 마련되는 데까지라고 생각해. 그렇게 되면 봉순이 남친도 생길 테고 잘하면 아이들도 생기고 화포천도 예산처럼 황새마을이 될 수도 있을 거야. 그런 후 나도 내 자리로 돌아가야겠지? 서운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영영 떠나는 건 아니야. 너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동화로 쓰고 싶으니까 자주 보게 될 거야.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한 게 있어. 올 가을쯤 나는 도요오카로 날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어. 그동안 일본어도 더 열심히 배워서 도요오카 황새마을에 가서 너의 종족들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은 거야. 적어도 한 일 년은 머물면서 보고 들어야 너희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서야.    시청 황새공생과장 명퇴 뒤에 아예 황새마을 만들기 나서   도요오카 황새마을에서 생산된 쌀은 가장 먼저 어린이 급식용으로 사용됐다고 해. 어린이가 먹는 쌀이니 당연히 날개 돋힌 듯 팔렸다고 하더라. 국제황새회의 때 ‘밥먹기운동본부회장’이라는 분이 소개되었어. 밥 먹기 운동본부라니 나는 장난인 줄 알았어. 그러나 정말 그런 모임이 있었고 그분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어. 그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딱 한 마디만 했어. “밥을 먹읍시다. 밥을 먹어야 황새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보다 더 간결하고 감동스러운 메시지가 어디 있겠니. 그렇구나. 너희들은 논습지에서 사는 족속이니 논이 없으면 너희들도 없으니까. 나도 이참에 ‘밥 먹기 운동’ 한 번 해볼까? 지난해야. 한일논습지심포지움이 창원에서 열렸었는데 그때 도요오카 시장이 이런 말을 했어. “우리는 100년을 내다보고 황새를 복원하고 있습니다.” 이번 국제황새회의 때도 같은 말을 하더구나. “우리는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100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존경 받아 마땅한 사람이지? 105.JPG » 일본에서 수집한 황새 자료. 106.JPG » 황새 복원 효과 그래프. 107.JPG » 야생으로 방사된 황새 가락지 표시. J0051 봉순이도 보인다. 그런데 말이다. 그때 도요오카에서는 시장까지 와서 습지와 황새복원에 대해 설명하고 람사르습지재단 이사장도 하루 종일 앉아있는데 정작 시청 담당 과장 한 사람은 겨우 20분 앉았다가 일어나더군. 화장실 가나 싶었는데 아예 나타나지 않았어. 도요오카 황새마을에 사다케 라는 전설적인 분이 있어. 시청 ‘황새공생과장’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명퇴를 하고 아예 황새마을 만들기에 뛰어든 분이야. 대단한 철학을 가진 분인데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봉순이 너도 태어난 거야. 이분은 ‘지금의 생태환경이 나의 손자들이 살기에 적합한가?’를 진짜 고민했대. 내가 ‘봉순이를 열심히 지켜보겠다’고 했더니 뭐라는지 알아? ‘지켜보는 것만으로 안 된다. 변화시켜야 한다’는 거야. 사람을 변화시키고 환경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이지. 가슴이 뜨끔하고 전율이 느껴졌어. 이 사람들 생각이 이래. 독일에서 아프리카로 이동하던 황새들이 이동을 멈춘 적이 있었어. 원인을 알고 보니 스페인의 쓰레기장 때문이야. 황새들이 쓰레기장에서 먹고 잤던 거지. 나쁜 음식을 먹은 황새들은 큰 피해를 입었어. 환경은 이렇게 중요해.    너를 만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됐으니 너는 나의 멘토   7월 25일에는 김해에 귀한 손님도 오셨단다. 바로 네가 태어난 도요오카에 사는 어린이들이 너를 보고 싶어서 온 거야. 아이들은 농로에 미리 준비한 미꾸라지를 풀어주기도 했고 나는 생물다양성과 환경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어. 아이들은 좋은 추억을 갖고 돌아가 너의 친구들에게 네 소식도 전해줄 거야. 048.JPG » 일본 도요오카 황새마을 아이들이 봉순이를 보러 와 농수로에 미꾸라지를 풀어주고 있다. 하여튼 내가 살아오는 동안 크고 작은 여행이 있었지만 이번 도요오카 여행이 가장 의미 있고 행복한 여행이었단다.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라고 있어. 그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리차드 클레이드만’을 멘토로 삼고 네 개뿐인 손가락으로 죽어라 연습했대. 그 말을 들은 리차드 클레이드만은 ‘내가 왜 피아노를 쳤는지 이제야 할 거 같다’고 했다는구나. 나도 최근에 그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어. 뭐냐면, 지난 수십 년간 사진을 찍어오면서 갈등도 많았지만 봉순이 너를 만난 후에야 왜 내가 사진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깨닫게 된 거야. 사진을 찍으면서 지금처럼 보람있는 일이 없었거든. 그러니 너는 나의 멘토가 분명해. 022.JPG » 논에 미꾸라지를 풀어주는 장면. 미꾸라지들은 논에서 번식하여 넉넉한 먹이를 제공할 것이다. 봉순이 너로 인해 나는 정말 많은 공부를 했어. 도요오카 행사를 마치고 습지연대 모임에서 화포천습지생태관 곽승국 관장의 ‘봉순이 일기‘가 다시 발표되었고 나한테도 말할 기회가 주어졌어. 나는 봉순이 네가 날아온 이유를 나름대로 말했어. 첫째, 노무현 대통령의 못다 이룬 꿈에 새삼 불을 지피러 왔을 것이다. 둘째,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셋째, 봉순이를 통해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이 더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넷째, 당신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손자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일 것과 아름다운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랬더니 긴 박수가 쏟아졌어.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곽승국 관장도 봉순이 네 얘기를 할 때마다 가슴이 뜨거웠대.    달밤 화포천 물 속 둥근 달은 바로 익숙한 그이 얼굴   사람들이 그래. ‘스님은 세월호 침몰, 사대강, 밀양 고압선 철탑, 원자력 발전, 제주도 해군기지, 골프장, 설악산 케이블카 등등 사회적 이슈에 별 관심이 없나봐요’라고. 또 어떤 이는 ‘스님이 목탁 치고 염불이나 할 것이지’라고 해. 그러나 모르는 말씀이야. 내가 들판에 앉아있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목탁이고 염불이 되고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는 걸. ‘달빛 길어 올리기’라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와. “왜 이 일을 하시죠?” “아무도 하지 않으니까!” 나도 사람들이 물으면 “아무도 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라고 대답해. 104.JPG » 공룡의 후예라더니…. 봉순이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맞추며 찍은 모습. 행사가 있었던 도요오카 시민회관 휴게실에 ‘파도만리’라는 글이 있었어. 오늘 내가 만드는 작은 물결이 훗날 커다란 파도가 되어 세상으로 퍼진다는 뜻일 거야. 정말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 그 글을 보고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봉순이 너는 역시 특별하고 대단한 아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어. 봉순이 너는 남쪽에서 왔으니 북쪽에서 온 근사한 남친과 사귀었으면 좋겠구나. 그래야 유전적으로 건강한 2세를 보게 될 테니까. 그렇게 되길 기도할게. 달 밝은 밤, 너는 잠이 들고 나는 늦게까지 화포천에 앉아 있었어. 물속에 비친 둥근 달에 누군가 빙그레 웃는 모습이 겹쳐졌어. 아아, 바로 그건 그이의 얼굴이었어. 익숙하고 기분 좋은 시골 아저씨 같은 얼굴. 안녕 봉순아. 글·사진 도연 스님 도연 스님은 철원 지장산의 ‘도연암’에서 삽니다. 안락한 절집을 떠나 홀로 살며 새를 즐겨 찍습니다. 새는 “날기 위해 뼛속까지 비우”는 자유로운 존재여서 좋아합니다.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그래, 차는 마셨는가’, ‘중이 여자하고 걸어가거나 말거나’, ‘연탄 한 장으로 나는 행복하네’ 등의 책을 냈습니다. 누리집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http://www.hellonetizen.com/)에 가면 그의 글과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관련글 낙원 같은 고향 떠나 혼자 온 까닭은 잠자리가 고압선 철탑 꼭대기라니! 그분의 환생처럼 홀로 그 멀리서 고고하게 왔다 세계적 희귀새 황새, 백령도 폐염전에 최대 규모 찾아와 천수만 황새 부부, ‘느림의 미학’으로 새해 연다 목록

대한민국 군대 정상 맞나?


by 편집부 Posted: August 2, 2014 at 6:25 pm Updated: August 2, 2014 at 9:45 pm 대한민국 군대 정상 맞나? -토픽스 등 외신들도 윤일병 폭행치사 사건 등 주목 -때려죽이고, 자살하고, 총기 난사하고 연이어 일어나는 군대 내 가혹행위로 인한 사고로 대한민국의 병영문화가 다시 한 번 도마에 오르고 있다. ‘기본이 바로선, 强한, 좋은 육군’을 구호로 삼은 육군의 모토가 무색해 질 지경이다. 특히 선임사병들의 가혹행위로 숨진 윤일병 사건의 진상이 알려지자 외신들도 이를 주목하고 나섰다. AFP가 31일 윤일병 사건을 ‘South Korea soldiers charged over death of conscript -한국 병사들이 사병 사망과 관련해 기소됐다’라는 제목으로 상세하게 타전하자 토픽스, 야후 뉴스 등을 비롯한 전 세계 외신들이 이를 받아 보도하고 나서 대한민국 육군이 다시 한번 국제적인 망신을 사게 됐다. AFP는 윤일병 사건이 두 명의 육군 사병이 자살한 사건과 지난 달 한 병장이 자신을 따돌리던 부대원들에게 총기를 난사해 다섯 명의 병사들이 숨지는 사건 이전에 발생했다고 전해 한국 군대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 징후들을 함께 언급했다. AFP는 다섯 명의 병사들이 상해치사혐의로 기소됐다며 이들은 윤일병의 가슴을 가격해 음식물 덩어리가 기도를 막는 상황에 이르렀고 결국 윤일병은 사망했다고 전했다. 윤일병은 이들로부터 상습적인 가혹행위의 표적이었고 심지어 치약 한 통을 다 먹고 바닥에 뱉은 다른 병사의 침을 핥도록 강요당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윤일병에 대한 차마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의 가혹행위들이 적나라하게 알려지면서 언론과 소셜미디어 상에서는 이들을 비난하며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들이 들끓고 있다. 대한민국 군대는 지난 대선에서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부정선거운동으로 정권의 개가 되었다는 추한 명성을 얻은데 이어 연이은 사고로 국제적인 망신을 사고 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AFP의 기사전문이다. 번역 감수: elisabeth 기사 바로가기 ☞ http://yhoo.it/1sg5gOx South Korea soldiers charged over death of conscript 한국 병사들, 사병 사망 관련해 기소돼 Screen Shot 2014-08-02 at 18.12.51 AFP, July 31, 2014, 5:00 pm AFP Screen Shot 2014-08-02 at 18.13.17 South Korea soldiers charged over death of conscript 한국 병사들이 사병 사망과 관련해 기소됐다 Seoul (AFP) – Five South Korean soldiers have been arrested on manslaughter charges for an assault that led to the death of a young conscript they had repeatedly bullied, the military said Thursday. 다섯 명의 한국 군인들이 지속적으로 괴롭혀오던 어린 사병을 사망에 이르게 한 가혹행위에 대해 상해치사 혐의로 체포됐다고 목요일 군 당국이 밝혔다. The case comes on the back of two separate suicides by army privates last weekend, and a deadly shooting spree last month in which a sergeant killed five members of his unit for taunting him. 이 사건은 지난 주말 두 명의 육군 사병이 각각 자살한 사건과 지난 달 한 병장이 자신을 따돌리던 부대원들에게 총기를 난사해 다섯 명의 병사들이 숨지는 사건 이전에 발생했다. The five detained men allegedly assaulted a 23-year-old private in April, striking him in the chest and causing a chunk of food to get lodged in his airway. 구속된 다섯 명의 병사들은 지난 4월 23살의 사병의 가슴을 가격해 음식물 덩어리가 기도를 막는 상황에 이르게 한 폭행 혐의를 받고 있다. The soldier, identified by his surname Yoon, died of asphyxiation. 윤이라는 성으로만 신원이 확인된 사병은 질식으로 사망했다. “The five were all charged with manslaughter,” an army spokesman told AFP. “다섯 명 모두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됐다”고 군대변인이 AFP에 전했다. Investigators said Yoon had been the target of regular bullying, including sessions of crude water-boarding. 조사관들은 윤 씨가 가차 없는 물고문을 포함한 상습적인 가혹행위의 표적이었다고 말했다. He had also been forced to eat a tube of toothpaste and lick the spit of other soldiers from the ground. 그는 또한 치약 한 통을 다 먹고 바닥에 뱉은 다른 병사의 침을 핥도록 강요당했다. Barrack-room bullying has long tainted South Korea’s military service, which is mandatory for all able-bodied men between the ages of 18-35. 내무반에서의 가혹행위는 18세와 35세 사이의 건장한 남성에게 의무인 한국 병역의 명예를 오랫동안 실추시켜왔다. Conscripts, most in their early twenties, account for the lion’s share of the military’s 690,000 active personnel. 대부분 20대 초반인 징집병들은 군대 69만 현직 인력의 큰 몫을 차지한다. Experts say the pressures facing the young servicemen can be daunting when, after what is often quite a cosseted childhood and teenaged youth, they are suddenly plunged into a world of harsh military discipline. 전문가들은 흔히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란 어린 시절과 10대 청소년기 후에 갑자기 가혹한 군대 규율로 떠밀렸을 때 젊은 병사들이 대면하는 압력이 위협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번역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Smart phone only

피살된 ‘강서구 재력가’ 송씨, 수천억대 재산의 ‘비밀’


피살된 ‘강서구 재력가’ 송씨, 수천억대 재산의 ‘비밀’ 등록 : 2014.08.01 19:34수정 : 2014.08.03 11:21툴바메뉴 스크랩 오류신고 프린트기사공유하기facebook461 twitter120 보내기 [토요판] 커버스토리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는 이야기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연합뉴스, 그래픽 송권재 기자 cafe@hani.co.kr 지난달 하늘에서 바라본 강서구 공항로 근처의 야경. 내발산동은 서울 부동산 개발 열풍의 마지막 장소였다. 김형식(44·왼쪽 사진) 서울시의원의 살인교사 혐의 기소사건은 그저 단순한 야당 소속 시의원의 스캔들이 아니다. 서울 부동산 개발의 상징적인 지역에 위치한 ㅅ빌딩에서, 부동산으로 자수성가한 재일동포와 그에게서 건물과 토지를 ‘소송을 통해 증여받아’ 갑자기 부동산 부자가 된 전직 운전기사 송아무개(67)씨, 부동산 관련 청탁을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된 전도유망했던 보좌관 출신 야당 시의원의 삶이 마주친다. <한겨레> 토요판은 위 사진 오른쪽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처리한 송씨의 부동산 치부 역사를 두루 살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송씨는 범죄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수사 대상자다. 살아있었다면 뇌물공여죄 혐의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치부의 역사가 독자들이 이번 사건을 둘러싼 정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둘째, 엽기 추구나 검경의 수사 속보에서 벗어나 범죄의 ‘큰 그림’(whole picture)을 독자에게 제공하고 싶었다. 부동산이라는 자석이 여러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굴절시키고 범죄를 낳았는지 분석하고자 했다. <한겨레>의 ‘취재보도준칙’은 35조(희생자·피해자 배려)에서 ‘사건·사고의 피해자나 그 가족을 취재할 때에는 마음의 상처가 덧나거나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한다’고 규정한다. 그럼에도 송씨를 분석한 이유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살해된 강서구 재력가 송아무개(사망 당시 67)씨는 오랜 소송 끝에 자신이 재산을 관리해주던 재일동포의 건물과 토지를 자기 명의로 소유권 이전 하는 데 성공했다. 내발산동 ㅅ빌딩과 바로 옆에 있는 ㅂ웨딩홀 둘 다 본래 자수성가한 재일동포의 소유였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한 일간지 1997년 11월8일치는 강서구 내발산동 주변을 “택지난 서울 마지막 보고”라고 표현했다. ‘발산’은 강서구의 수명산이 밥주발(鉢·바리때 발)을 엎어놓은 것처럼 생겼다는 데서 생긴 지명이다. 그릇에 물이 담기듯, 땅값 상승에 대한 기대와 욕망이 그리로 모였다. 살인사건이 벌어진 내발산동 ㅅ빌딩 터는 1970년대까지 논이었으나 이미 1991년에 개별공시지가가 ㎡당 153만원에 달했다. 올해는 694만6000원이다. 그 땅에서 세 남자의 욕망이 만났다. 송씨의 치부와 살인사건은 토건자본주의의 초상이었다. 법으로 완벽히 재일동포 재산 획득한 뒤 1년만에 피살 서울시 강서구 내발산동은 변화의 땅이다. 그곳은 1966년 6월 농촌지도사가 일하다 숨진(<경향신문> 1966년 6월29일치) 경작지였고, 1976년 5월 서울시 직원 2200여명이 모내기를 돕던 논(<매일경제> 1976년 5월25일치)이었다. 김포국제공항 덕에 해마다 7만~8만명씩 인구가 늘던 ‘서울의 변두리 지역’이자 ‘신개발지역’(<동아일보> 1979년 1월9일)이 되었고, 고도제한이 완화된 1997년 부동산 투자가들에게 ‘택지난 서울 마지막 보고’(<경향신문> 1997년 11월8일)로 알려진, 급격하게 땅값이 오른 지역이다. 내발산동은 지역적으로 외곽이었고 계층적으로도 그러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산업개발이 영남에 몰렸고 가난한 전라도 사람들은 관악·강서·구로 등 강서지역에 많이 살았다. 서울대 이성우 교수는 2002년 ‘주거밀도로 측정한 출신지역별 주거수준 차이’ 논문에서 “‘1995년 이후 관악, 강서, 구로 등 강서지역에서는 호남 출신의 거주 비율이 높게 나타났고, 서초, 강남 지역에서는 영남 출신의 거주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재판기록과 취재결과로 보면 송씨는 부동산 소송과 관련해 변호사 못지않은 법 기술자 8건 넘는 민사소송 먼저 제기 고소당해 형사소송도 경험  일본에 10개 회사 가진 이씨 한국서 땅 사고 호텔 지었으나 재산관리인들에 계속 사기당해 재당숙의 딸이 마지막 관리인 송씨가 바로 그의 남편이었다 법기술자로 거듭나게 한 ‘1991년 소송’ 그러나 2014년 7월15일의 내발산동 ㅅ빌딩 주변은 더이상 논도 아니고, 민원이 폭주하는 행정의 외곽지역도 아니다. 지하철 5호선 발산역 5번 출구 계단을 올라온 행인은 강서구청 입구 교차로 방향으로 난 왕복 8차로의 공항대로를 보게 된다. 출구로 나오면 바로 오른편에 커피 프랜차이즈 간판이 보인다. 널찍한 보도블록을 따라 5분 정도 걸으면 지상 3층의 ㅅ빌딩을 발견할 수 있다. 2014년 3월3일 월요일 0시39분께 빌딩 주인 재력가 송아무개(67)씨가 전기충격기와 손도끼로 살해된 곳이다. 송씨를 살인교사했다는 혐의를 받는 김형식 서울시의원의 ㅎ아파트 자택은 ㅅ빌딩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김 의원이 성장기를 보낸 화곡동도 그리 멀지 않다. 송씨는 1947년 1월 전남 장성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이상의 정규교육은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향을 떠난 뒤 서울에서 버스기사를 했다고 전해진다. 송씨는 전남 출신으로 3살 어린 이아무개씨와 1971년 서울에서 결혼했다. 부인 이씨는 광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17살이 된 1966년 상경해 성동구와 금호동 등에서 살았다. 송씨 부부는 수유리나 도봉구 창동 등 서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주로 살다 1998년 5월 초 강서구 내발산동 현재의 연립주택으로 이사했다. 여러 재판기록과 법원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송씨는 부동산 소송과 관련해 변호사 못지않은 법기술자다. 소유권이전등기 소송 등 8건 이상의 민사소송에서 원고로 먼저 소송을 제기했다. 여러 건의 형사재판 경험도 있다. 한국의 법률·재판 용어는 일본식 한자어로 점철되어 있다. 법과 소송 절차를 익히는 일은 쉽지 않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의 전직 버스기사는 어떻게 부동산 소송의 달인이 되었을까. 처음부터 법기술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1980년대 초반까지는 운수업, 건축업 등으로 그럭저럭 살 만한 정도였는데 의리에 못 이겨 친척의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큰 타격을 입어 생활형편이 매우 곤궁”(2006년 송씨 형사재판기록)했다. 이 때문에 송씨 부부는 잠시 법률상 이혼한 적도 있다. 1991년의 한 소송이 송씨를 법기술자로 거듭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는 지난 5~7월 송씨 건물 임차인 등 송씨와 민사소송을 주고받은 4명과 만나거나 통화했다. “송씨가 언제부터 소송과 법에 익숙해졌느냐”는 <한겨레>의 공통질문에 이들 4명 모두 ‘1991년 땅 소송’을 지목했다. 이 소송의 3심 판결문을 보면, 송씨의 처제 이아무개씨가 1992년 도봉구 창동에 소유한 자신의 땅과 관련해 토지 공유자 가운데 한명인 권아무개씨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소송을 냈고 서울민사지법(현 서울중앙지법)은 1992년 1·2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1994년 12월 원고 승소 취지로 2심 판결을 파기해 돌려보냈다. 3심에서 승소한 덕분에 송씨의 처제는 등기부등본에 자신의 이름을 무사히 등재할 수 있었다. ‘1991년 땅 소송’은 이해관계자가 많고 사익을 위해 거짓말이 난무한 소송이었다. 땅을 차지하려는 가짜가 진짜 소유자와 소송을 주고받았다. 송씨의 부인 이씨는 1981년 1월 도봉구 창동에 여러 명의 소유권자가 지분 공유자로 복잡하게 이름을 올린 땅 1078㎡(약 326평)를 구입해 이듬해 여동생(송씨 처제)에게 양도했다. 문제는 등기부였다. 송씨의 부인이 구입한 토지는 여러 사람이 자기 땅이라고 쟁송을 벌이던 터였다. 소송 과정에서 거짓말도 오고 갔다. 해당 토지의 진짜 소유자의 조카가 서류를 위조해 자신이 땅의 상속자라고 했다가 들통났다. 송씨의 부인은 이처럼 ‘등기부상의 소유권 분쟁이 벌어지던 땅’의 일부를 구매하면서 구매 직후 소유권이전등기를 하지 않았다. 토지 공유자 가운데 한명의 지분을 산 것이라 등기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소요됐다. 등기부에 자신의 이름이 없는 채로 땅을 여동생에게 양도한 것이다. 땅을 구입한 1981년부터 재판이 확정된 1994년까지 13년간 지속된 이 부동산 분쟁에서 송씨가 부인과 처제를 도와 법무사를 만나며 소송 업무를 도운 것으로 알려진다. 송씨와 한때 가까웠으나 훗날 송씨를 고소한 ㅂ씨는 지난 1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송씨가 그 소송(도봉구 땅 소송) 하면서 문서나 법무사 관계 일을 잘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해박한 문서 지식 덕분인지 가난했던 송씨는 “1987년 무렵부터 경매 관련 사업 등으로 차츰차츰 재기”했고 1990년대 중반에는 “수억원의 재산을 모을 수 있는 정도에까지”(2006년 형사재판 당시 송씨 주장) 이르렀다. <동아일보> 1995년 2월13일치 15면 부동산면을 보면,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115.5㎡(35평형) 크기 1채 매매가 시세가 1억8000만~2억3000만원이었다. 그는 1990년대 중반에 소박한 부자 또는 중산층 상류 정도의 자산가였던 것 같다. 송씨는 획득한 자산을 토대로 2012년 경매 매물로 나온 염창동 스포츠센터 건물(사진)과 토지를 낙찰받았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재일동포 이씨가 질려버린 사기, 사기, 사기 송씨가 수억원대의 부자에서 수천억원대의 부동산 자산가가 되는 데 20년도 걸리지 않았다. 부동산 등기부 등을 통해 확인한 송씨의 부동산 자산은 크게 ‘부인의 재일동포 친척에게서 증여받은 부동산’과 ‘이 재산을 토대로 추가로 늘린 부동산 2곳’으로 구분된다. 종로구 장사동 토지와 건물 2곳, 내발산동 건물과 토지 3곳, 화곡동 ㅇ관광호텔 건물과 토지, 염창동 스포츠센터 건물과 토지 등 서울시내 총 7곳의 토지와 건물을 소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내 중심지라 시세가 높다. 서울시 부동산종합정보 사이트의 개별공시지가(2014년 1월 기준)를 기준으로, 송씨의 부동산 자산은 건물을 빼고 토지만 계산해도 694억6400만원에 이른다. 이들 토지 위에 있는 3층 ㅅ빌딩, 5층 다세대주택, 2층 상가 건물, 4층 웨딩홀 건물, 15층 관광호텔, 3층 스포츠센터 건물 등을 포함하면 송씨의 자산은 부동산만 수천억원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급격한 재산증식은 부동산 소송을 통해 가능했다. 송씨 부인의 먼 친척이 송씨 부부에게 ‘증여한 것으로 인정받은’ 재산이, 송씨 치부의 출발이자 고갱이다. 법률상 증여는 ‘한쪽이 무상으로 재산을 상대방에게 수여하는 의사를 표시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민법 554조)하는 행위다. 송씨 부인의 친척인 재일동포 이아무개씨가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의 명의를 송씨로 바꿔주는 평범한 증여가 아니었다. 대신 송씨는 재일동포 이씨가 재산을 자신에게 넘겨준다는 취지의 ‘위임장’을 한국 법원에 제출했고, 2002년 5월부터 2013년 7월까지 11년에 걸쳐 소유권이전등기 소송 등 8건의 민사재판과 사문서위조 혐의 재판 등 2건의 형사재판을 거쳐 겨우 증여사실을 법적으로 인정받았다. 송씨가 살해된 내발산동의 3층짜리 ㅅ빌딩 토지와 건물의 역사는 송씨의 치부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수성가한 재일동포의 삶과, 시골에서 태어나 강서구에서 갑자기 부자가 된 전직 운전기사의 인생이 그 공간에서 얽힌다. 재일동포 이씨는 1917년 3월 경상도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학으로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만난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많이 일했고, 자수성가했다. 일본에서 10개의 회사를 소유했다. 죽어서 한국에 묻히고 싶어했다. 한국에서 땅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1967년 2월 ‘ㅅ산업 주식회사’를 만들었다. 내발산동 ㅅ빌딩 토지, 또다른 내발산동 토지 3곳, 종로구 장사동 토지 등 훗날 송씨 소유가 되는 땅들을 모두 같은 해 3~10월에 샀다. 장사동 토지에 6층짜리 ㅅ호텔을 일본에서 만나 알게 된 한국인 사업가 친구와 함께 지어 지분을 나눠 가졌다. 1987년에는 부인, 아들을 이사에, 딸을 감사에 앉혔다. 회사 지분도 가족 4명이 나눠 가졌다. 가족기업이었다. 재일동포 이씨는 한국말이 유창했지만 부인의 한국어 말하기는 듣기보다 어눌했다. 아들과 딸의 사실상 모국어는 일본어였다. 한국말을 조금 알아들었고, 거의 말하지 못했다. 자수성가한 부자의 땅에 탐욕이 모였다. 1967년 임명된 재산관리인이 재일동포 이씨의 토지를 계속 관리했다. 사기범이 1993년 ㅅ산업 주식회사 사원총회 의사록을 위조해 대표이사에 취임하는 일이 벌어졌다. 재일동포 이씨는 사기범을 고소하고 사원총회결의 부존재확인 청구 소송 등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일간지에도 보도됐다. 재일동포 이씨가 승소했고 사기범은 1995년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이번엔 17년간 토지를 관리하던 재산관리인이 1995년 ㅅ산업 명의로 20억원 액면의 약속어음을 위조했다. 재일동포 이씨는 18년간 한국의 토지를 맡겼던 재산관리인을 해임하고 새로운 재산관리인을 임명했다. 두번째 재산관리인은 재일동포 이씨에게 허락받거나 보고하지 않고 토지 일부를 무단으로 임대해줬다. 두번째 재산관리인도 해임됐다. 재일동포 이씨는 1995년 11월 자신의 7촌 당숙의 딸을 세번째 재산관리인으로 고용했다. 1967년 이후 한국에 올 때 가끔 보던 관계였다. 7촌 당숙의 딸의 남편이 송씨였다. 이와 함께 재일동포 이씨는 자신과 아내는 이사로, 딸을 ㅅ산업 대표이사로 등기했다. 송씨는 세입자로부터 수금하는 잔무 등 재일동포 이씨의 토지관리를 거들었다. ‘문서위조’ 고소당해 징역 8년을 선고받다 송씨는 재일동포 이씨의 내발산동 토지에 지어진 골프연습장을 실제로 운영했고 ‘ㅅ산업 대표이사’라는 명함을(2006년 송씨 형사재판 기록) 뿌리고 다녔다. 재일동포 이씨는 1996년 10월엔 25살 된 송씨 부부의 딸을 감사에 추가 등재했다. 1997년 내발산동 토지에 빌딩을 짓고 또다른 내발산동 토지 3곳에 각각 4층 예식장 건물, 5층 연립주택, 3층 상가 등 건물 짓기 실무도 도왔다. 이들 자산은 공시지가 기준으로 300억원에 이르렀다. 그러다 돌연 송씨 부부는 자신들이 관리하던 토지와 건물 6곳을 자신들이 샀으니 소유자 이름을 “재일동포 이씨에서 자신들의 명의로 바꾸라”며 ㅅ산업 대표이사인 재일동포 이씨의 딸을 상대로 2002년 5월9일 서울남부지법에 소유권이전등기 소송을 제기했다. 송씨 부부는 ‘1998년 3월7일 매매계약서’ ‘계약금과 중도금 12억원을 받았다는 1998년 3월7일 영수증’ ‘잔금 8억원을 받았다는 1999년 3월7일 영수증’ 등 3개의 문건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재판부는 피고 재일동포 이씨의 ‘무변론’을 이유로 석달 만인 8월16일 송씨 부부에게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법률상 소송의 주체인 ㅅ산업의 법인등기부상 소재지인 내발산동 사무실로 소장을 송달했다. 법인등기부에 대표이사였던 재일동포 이씨의 딸의 오사카 거주지 주소가 명시돼 있었지만, 법률상 재판문서 송달 장소는 엄연히 법인의 사무실이었다. 석달 만에, 2심과 3심으로 이어지는 법정 다툼 없이 송씨는 갑자기 ㅅ산업 소유 부동산을 전부 소유한 부동산 부자가 됐다. 내발산동의 부동산 시세는 좋았다. ㅅ빌딩 터의 개별공시지가는 ㎡당 1991년 153만원에서 2002년 당시 241만원으로 올랐다. 그러나 이는 11년간 지속될 부동산 소송 전쟁의 시작이었다. ㅅ산업 소유 토지에서 영업하던 예식장 사업자 등이 송씨 부부를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2004년 3월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이들은 “매매계약서와 영수증은 전부 위조되었고 송씨의 조작으로 소장이 재일동포 이씨의 딸에게 송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2002년 소유권이전등기 소송에서 재일동포 이씨의 딸이 변론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송씨는 재산관리인에 불과하므로 재일동포 이씨가 아니라 송씨에게 임대료를 낼 수 없다”며 송씨를 2004년 3월 고소하고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소송도 냈다. 검찰은 2년에 걸친 수사 끝에 송씨가 문서를 위조했다고 결론 내고 2006년 2월 송씨 부부를 불구속기소했다. 송씨 부부에 대한 총 5개의 고소 사건이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에서 병합돼 재판이 진행됐다. 사문서 위조, 위조사문서 행사 등 모두 6개 혐의를 다퉜다. 송씨의 뇌물장부인 ‘매일기록부’에 정아무개 부장검사에게 돈을 줬다고 기록한 시점이 송씨가 한창 검찰 수사를 받고 형사재판을 받던 2005~2011년 무렵이다. 검찰은 송씨가 “명의신탁 받았다”고 진술했다 번복하는 등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여러 건의 문서위조 의혹 가운데 송씨가 재산을 매입했거나 증여받았다는 증거로 검찰과 법원에 낸 5건의 문서가 핵심 쟁점이 됐다. △1998년 3월7일 매매계약서 및 영수증, 1999년 3월7일 영수증 △1998년 3월7일 위임장 △1996년 9월12일 위임장 △1996년 5월25일 위임장 △1996년 11월25일 각서 등이다. 송씨는 “고소인들이 송씨를 몰아내고 이 부동산을 가로채려고 소송을 낸 것”이라고 고소와 소송의 동기가 ‘불순’하다고 항변했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김용상)는 2009년 11월 4가지 핵심 쟁점 문서들을 전부 송씨가 위조했으며 재일동포 이씨와 그의 딸이 한국의 부동산 자산을 자신들에게 증여했다는 송씨 부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송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고 부인 이씨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송씨는 ‘1998년 3월7일 매매계약서 및 영수증’을 근거로 재일동포 이씨의 딸이 공시지가로 300억원대의 부동산을 자신들에게 20억원에 팔았다고 주장했다. 또 재일동포 이씨가 매매 이후 소유권이전등기 절차를 자신에게 위임했다며 1998년 3월7일 위임장도 근거로 제시했다. 1심 재판부는 이 문서 모두가 송씨의 위조라 판단했다. 송씨가 제출한 1998년 3월7일 위임장에 오타가 있고 고령의 재일동포가 쓰기 어려운 현대어가 사용된 점 등을 근거로 삼았다. 실제로 <한겨레>가 입수한 1998년 3월7일 위임장에는 ‘회사’ 대신 ‘화시’라는 오타가 발견되며, 위임장 말미에 ‘일본주소. 대판시 생야구 도곧동 4-9-13…과전주주 권리행사자’라고 한글타자기로 적혀 있었다. 일본에는 ‘초’(町)라는 주소 단위는 있으나 ‘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전주주’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점주주’(발행주식의 과반수를 소유하고 기업경영을 지배하는 주주)의 오기로 추정된다. 송씨는 자신이 관리하던 재산을 자신 명의로 바꾸는 데 성공했으나 사문서위조 혐의로 고소당했는데 검사에게 준 뇌물이 기록된 시점이 바로 한창 형사재판 받을 때였다  중요 재판 앞두고 정치인에게 전화할 정도로 담대했던 송씨 무수한 범죄로 얼룩져 있던 위험한 부동산 부자가 내민 손을 김형식 시의원은 잡고 말았다 재일동포 이씨 “송씨와는 일면식도 없다” 1심 재판부는 ‘1996년 9월12일 위임장’, ‘1996년 5월25일 위임장’, ‘1996년 11월25일 각서’ 등도 전부 송씨가 위조했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송씨가 제출한 문서와 다른 문서들 사이의 ‘모순’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가령 송씨가 제출한 ‘1996년 11월25일 각서’에는 ‘ㅅ산업 부동산의 임대행위 및 일체의 처분행위에 대해 권한을 위임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데 이는 송씨가 낸 ‘1996년 9월12일 위임장’이 증여를 언급한 것과 모순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행동의 모순’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송씨가 정말 증여받았다면 2004년 3월 고소당한 뒤 검찰 수사를 받던 시점에 아직 살아있던 재일동포 이씨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일동포 이씨는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2004년 10월 숨졌다. 강서구 재력가 송아무개씨 관련 의혹 흐름도 무엇보다 일본에 거주하던 재일동포 이씨와 딸의 진술이 국제형사사법공조로 확보돼 검찰 기소와 1심 판결에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됐다. <한겨레>가 입수한 ‘오사카 경찰의 형사사법공조 요청에 대한 회신’을 보면, 재일동포 이씨는 송씨의 부인은 알지만 송씨는 “일면식도 없다”며 “자신은 집안 사람을 포함하여 누구에게도 부동산 물건을 팔지 않고 증여하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했다”고 답했다. 재일동포 이씨의 딸도 한국 검찰이 보낸 매매계약서 및 위임장을 본 뒤 “자신이 아버지의 도장 등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다”며 “(송씨 위임장에서) 확인한 도장은 아버지의 도장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재일동포 이씨의 딸은 “매매계약서, 영수증, 위임장을 확인했으나 전혀 본 적이 없는 서면뿐이며 아버지나 내가 작성한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필적감정을 통해 재일동포 이씨의 자필 서명이 다른 점 △인감도장 비교 등의 과학적 근거도 제시했다. 송씨는 1심 판결로 징역살이는 물론 갑자기 손에 넣은 거액의 부동산 자산을 잃어버릴 위기에 몰렸다. 2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2010년 6월25일 1심 판결의 핵심을 전부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여러 사람이 2002년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의 ㅅ산업 부동산 명의가 송씨 부부로 이전된 사실을 알렸는데도 재일동포 이씨 등은 재산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조처도 취하지 않은 점 등을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았다. 실제로 재일동포 이씨와 딸은 2002년 소유권이전등기 소송 이후에도 민사소송법상 보장된 재심을 청구하거나 송씨 부부를 고소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재일동포 이씨의 지인들 의견을 종합하면, 재일동포 이씨는 한국 사법부에 대한 깊은 불신과 내발산동 토지 때문에 송씨 재판 전에 겪었던 수많은 법적 분쟁에 지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믿었던 재산관리인이 함부로 행동하고 사기꾼이 접근하는 일에 지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민법의 격언이 있다. 2심 재판부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한 것이다. 2심을 맡은 강형주 인천지법원장은 <한겨레>의 질의에 지난 25일 공보판사를 통해 “과거 재판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판결문을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답했다. 오래 판사로 재직했던 이홍철 변호사가 당시 법무법인 지평 소속으로 송씨의 여러 민형사 재판에서 송씨를 대리하고 변호했다. 현재 법무법인 세종 소속인 이 변호사 사무실에 접촉했으나 “휴가”라는 답을 들었으며, 이메일을 보냈으나 답이 오지 않았다. 2심 재판부가 1심의 판단 중에 유일하게 인정한 것은 세금을 탈루할 목적으로 부동산 매매 이행각서를 위조했다는 혐의였다. 핵심 쟁점인 소유권 다툼과 무관한 혐의였다. 복잡한 파기환송심 끝에 송씨에 대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이 확정된 것은 지난해 7월이었다. 김 의원이 송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심 재판~3심 재판 사이의 어느 시기로 추정된다. 송씨는 중요한 재판을 앞두고 정치인에게 전화를 할 정도로 담대했다. 2010년~2014년 6월 8대 서울시의회에서 활동했던 ㄱ아무개 전 서울시의원은 지난 6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송씨에 대해 “2010년 6·2 지방선거로 시의원에 당선된 직후 송씨가 제 의원 사무실에 전화해서 ‘내 사무실에 들르라’고 전화한 적이 있다. 주변에서 전부 ‘가지 말라’고 말해서 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강서구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들은 일부러 피했던 형사재판 피고인이자 “2000년도 이후 범죄 전력만으로도 업무방해, 명예훼손, 폭행, 상해, 모욕 등으로 여러 차례 벌금형 전과가 있었”(송씨의 형사재판 항소심 판결문)던 위험한 부동산 부자가 내민 손을, 김 의원은 잡았다. 송씨가 연루된 재판 결과를 모두 모아보면, 한국의 사법부는 ‘재일동포 이씨가 ㅅ산업 부동산을 20억원에 송씨에게 팔았다’(2002년 소유권이전등기 소송)는 주장, ‘재일동포 이씨가 부동산을 증여했다’(1996년 9월12일 위임장)는 주장, ‘재일동포 이씨가 부동산 처분의 전권을 위임했다’(1996년 11월25일 각서)는 주장 등 서로 다른 세가지 주장을 전부 사실로 인정한 셈이다. 원소유주가 사법공조를 통해 “증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법원이 “증여 의사가 있다”고 판단하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2014년 7월 송씨는 강서구 유지 모두가 알지만 지금 누구도 언급하려 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가 유언처럼 남긴 ‘매일기록부’는 송씨를 만났던 지역 정·관계 유지들을 수사 대상에 올려놨다. 공적 인정에 대한 욕망은 있었던 것 같다. 송씨는 2009년 지역축제인 우장산 신록축제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재단법인 강서구장학회의 이사였다. 우장산동을 지역구로 둔 강서구의회 신창욱 구의원은 <한겨레> 기자와의 통화에서 “송씨와 어떤 자리에서 처음 만났느냐”는 질문에 “과거 공식 석상에서 봤지만 최근엔 개인적으로 만난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송씨를 처음 안 게 “20년도 더 됐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재력가 송아무개씨에 대한 살인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김형식 서울시의원이 지난 7월3일 검찰로 송치되기 앞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검찰이 송씨의 ‘매일기록부’에 나온 비리 정황을 수사할지도 관심사다. 뉴시스 네 자녀 주소지 모두 방문했으나 접촉 실패 송씨는 동향하고만 어울린 것 같다. 2010년~2014년 6월 6대 강서구의회 때 활동했던 ㄱ아무개 구의원은 지난 9일 <한겨레> 기자와의 통화에서 “송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알지만 얼굴도 모른다”며 “그러나 저는 출신이 영남이고 그분은 호남이다. 그분(송씨)은 같은 지역 출신들만 상대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지역)사람은 못 믿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송씨는 자신의 건물 임차인에게 사소한 이유로 임대차보증금 7억원을 지급하지 않아 소송을 진행한 ‘독한’ 인물이기도 했다. 2009년 우장산 신록축제 당시 찍힌 사진 속의 송씨는 67살 나이가 믿기지 않게 어깨가 다부져 보였다. 눈두덩이 두툼하고 다문 입술이 단단한 느낌을 줬다. 평소 근력운동을 많이 했다고 전해진다. “과묵한 편”이며 “허튼 이야기는 안 하는 사람”이라는 한 법무사의 법정 증언(2006년 송씨 형사재판)과 사진의 이미지가 비슷했다. 송씨의 자녀들은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산다. 송씨의 2남2녀 중 장남(41)은 재벌계열사 연구소에 다니다 퇴직하고 송씨의 재산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녀(43)는 현직 세무서 직원으로 알려졌다. <한겨레>는 등기부등본에 나온 송씨의 네 자녀 주소지에 모두 찾아가 보았으나 인기척이 없거나 출입을 통제당해 접촉하지 못했다. 송씨가 소유한 예식장에서는 취재를 거부당했다. 시골 출신으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상경해 버스기사로 일하다, 법기술자들과 어울리면서 소송과 재판을 몸으로 배운 뒤 악착같은 소송을 통해 결국 수만㎡의 땅과 건물을 가진 부동산 부자가 됐다가 부동산 투기의 상징적 지역에서 숨진 남자가, 지금 어느 땅에 묻혔는지는 아직 알려진 바 없다. 무덤 부지가 몇㎡인지도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참고 문건: 송아무개씨의 서울남부지법 02가합5478 소유권이전등기 소송 판결문, 서울중앙지법 2007나24741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소송 판결문, 2006고합145 형사재판 판결문, 2013고합39 판결문, 서울고법 2009노3265 판결문, 2013노2437 판결문, 송씨 처제의 93다1596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소송 판결문, 2006년 서울중앙지검 송씨 부인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2005년 주일대사관 형사사법공조 요청에 대한 회신, 2006고합145 형사재판 공판조서, 당시 송씨 변론요지서

북한의 로켓발사장 증축, 북미대결전의 중심


북한의 로켓발사장 증축, 북미대결전의 중심 <분석과전망>유인우주선 발사를 위한 것인가? ICBM 발사를 위한 것인가? 한성 자유기고가 기사입력: 2014/08/02 [17:04] 최종편집: ⓒ 자주민보 미국의 북한전문 웹사이트 <38노스>가 지난 7월 29일 북한의 동창리 서해 발사장 로켓 지지대가 기존 보다 두 배나 높아졌다는 보도를 했을 때 일반 전문가들은 물론 한반도정세전문가들 역시도 깜짝 놀라야했다. 일반전문가들은 곧바로 ‘은하9호’를 떠올렸다. 기존 로켓지지대는 30m이다. 2012년 4월과 12월에 각각 광명성3호 1호기와 광명성3호 2호기를 쏘아올렸던 은하3호를 장착했던 지지대였다. 은하3호의 크기가 30m인 셈이다. 그러나 <38노스>보도에 따르면 증축된 지지대는 위로 3개 층이나 더 높아져 있었다. 총 50~55m였다. 7월 초 촬영한 위성사진들을 분석해 낸 결과라고 했다. 이는 증축된 로켓지지대에 장착될 로켓이 은하3호 보다 훨씬 클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에 은하 3호보다 큰 로켓에는 무엇이 있을 것인가? 그래서 전문가들이 상기한 것이 은하 9호였다. 은하 9호. 광명성 3호 2호기를 쏘아올리는 데 성공한 은하 3호에 대해서야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그에 비하면 은하9호는 생소하다. 물론 일반인 입장에서다. 전문가들이야 특별히 접했고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은하 9호이다. “운반로케트 ‘은하-9’ 모형을 가리키시며 자세히 보았는가고 물으시였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2년 12월 광명성3호 2호기 궤도진입 성공 뒤 열린 발사 자축 연회에 참석하여 한 말이다. 2012년 12월 21일자 <노동신문>가 보도한 내용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 연회에는 은하3호 그리고 그보다 큰 은하9호 모형이 설치되어 있었다. 은하 9호는 우리나라에 그렇게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전문가들이 아니어도 은하3호의 후속모델일 것 정도는 쉽게 짐작이 되었다. 9호라는 수치에서 확인되듯이 은하계열에서는 최고 발전된 로켓일 것이라는 추정도 누구나 했다. 은하 9호의 실체와 관련된 궁금증은 날로 커져 갔다. 그 즈음에 은하 9호와 관련될 법한 뉴스가 주목을 끌었던 것은 당연했다. 북한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우주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 중이라는 것에 우선, 전문가들은 남다른 주목을 돌렸다. 전문가들이 기억을 되돌려 재일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기사를 찾아내 주목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2012년 4월 은하3호에 광명성3호를 장착해 쏘아올린 현장을 취재한 뒤 북한 관계자와 인터뷰를 한 기사였다. 가까운 앞날에 정지위성을 발사하게 될 것이지만 “전망적으로는 유인우주비행선까지 쏘아올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 대목에서 전문가들은 은하9호를 인공위성의 최고 발전 형태인 유인우주선과 등치시킬 수 있다는 추정을 내놓았다. 은하 9호는 유인우주선. 물론 조심스러운 태세로였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서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추론이 맞을 수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2013년 2월 초였다. 북한 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은하 9호를 타고’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동영상은 북한 남성이 장거리 로켓 ‘은하 9호’로 쏘아 올린 유인우주선 ‘광명성 21호’를 타고 우주여행을 하는 내용이었다. 결국, 은하 9호의 실체는 그렇게 확인되었다. 물론 확정 수준은 아니었다. 여전히 추론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라기 보다는 극히 대중적인 방식을 빌려서 암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의 우주개발계획이 매우 구체적인 목표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는 사실만은 명쾌하게 확인되었다. 북한이 2013년 연초에 “단숨에 ‘은하 9호’까지!”라는 구호를 제기했던 것에서 전문가들이 확인하게 되는 것도 그것이었다. 그러한 특별한 기억이 아니었다면 전문가들은 <38노스>의 서해 발사장 증축보도를 은하 9호와 연계시키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북한의 동창리 서해 발사장 로켓 지지대가 기존 보다 두 배나 높아졌다는 <38노스> 보도와 관련하여 일반전문가들은 은하 9호를 떠올렸지만 그러나 정세분석가들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정세분석가들은 <38노스>의 서해발사장 증축보도를 은하 9호와 연계시키면서도 동시에 올 들어 유난히 강화되고 있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시험 훈련과도 밀접히 결부시켜서 바라보았다. 그럴 것이 <38노스>의 보도에는 로켓지지대를 높힌 것 그리고 도로를 확장한 것 말고도 특별히 주목을 끌만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KN-08’으로 추정되는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엔진시험 등이 감지됐다는 것이 그것이다. 결코 예사롭지 않은 정보였다. 7월 30일에 북한은 발사체 4발을 평안도 묘향산 일대에서 동쪽 방향으로 발사했다. 발사체사거리가 제각각이라고 하는 것이 유독 주목을 끌었다. 특히 발사지점이 해안지역이 아니라 내륙지점이라고 하는 것은 더 강조되었다. 아울러, 항상 그러하기는 했지만 항행경보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했다. 오발사고나 오착사고에 대한 염려를 전혀 하지 않는 경우에나 볼 수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북한의 자신감이 읽히는 대목이라고 전문가들은 다들 입을 모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목한 것은 북한이 올해 들어 왜 로켓발사훈련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날 발사체 발사는 올해 들어 무려 16번째였다. 이때까지 발사한 총 수 만 해도 100발이 넘는다. 정확히는 7월 30일 현재 102발이다. 우리군당국은 발사체의 종류와 관련하여 방사포와 스커드 및 노동 미사일, 프로그 로켓 등일 것이라는 추정을 내놓고 있다. 이중에서 탄도미사일 발사는 7번 시험발사한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로켓발사시험을 두고 흔히 있는 일반적인 군사훈련이라고만 볼 수 없게 하는 특징들이다. 결국 정세전문가들은 <38노스>의 서해 발사장 증축보도를 북한의 연속적인 로켓발사시험훈련은 같은 맥락으로 보아야한다고 했다. 유인우주선 개발사업과 ICBM 개발사업. 동창리 서해발사장 증축공사를 두고 내놓고 있는 일반전문가들과 정세분석가들의 입장은 이처럼 서로 약간씩은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겉으로 보면 그럴 뿐 본질에 있어서는 같다. 북한의 미사일로켓 능력을 높이는 활동이 적극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서해발사장 증축공사에서 확인되는 북한의 로켓 능력의 강화는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면과 군사적인 면 두 가지 측면을 다 포괄하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다양한 인공위성 그리고 일반전문가들이 추정하는 유인우주선 발사를 향한 노력의 일환으로 된다. 그렇지만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38노스>가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ICBM 능력을 높이는 것으로 볼 수가 있다. 결국 북한의 서해 발사장 증축공사는 어떻게 접근하든 결코 단순할 수 없는 사안으로 된다. 북미대결전의 중심으로 진입해보면 사람들이 군사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북미대결전의 양상을 응축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이 서해 발사장 증축 공사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를 북한이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민간정보기관에 의해서 흘러나온다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