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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일 토요일

'면회·인터뷰 사절'...단식 20일, 유가족이 위험하다


[현장] 시민 300명, 광화문서 음악회...유족들 "쓰러지면 손 잡아주세요" 14.08.02 21:56l최종 업데이트 14.08.03 11:09l유성애(findhope) [기사보강 : 3일 오전 11시 09분]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는 2일 오후 7시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음악회'를 열고 수사권 등이 보장된 특별법을 제정을 촉구했다. ⓒ 세월호참사가족대책위 관련사진보기 "… …."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단식 농성장에 앉아 있는 김영오씨(47, 고 김유민 학생 아버지)는 말할 힘도 없어보였다. '괜찮으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씨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유족들이 단식을 시작한지 20일째. 특별법 제정이 늦어지는 가운데, 유족들의 소리없는 절규는 계속되고 있다. 애초 15명을 넘던 유족 단식농성단은 유경근씨(고 유예은 학생 아버지)와 김씨 단 두 명만이 남았다. 이날 오후 6시30분께 광화문 유가족 단식장 천막 밖으로는 '면회·인터뷰 사절'이라는 종이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계속된 단식으로 건강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광화문과 국회를 오가며 세월호 유족들의 건강을 체크하는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측 관계자는 "혈압과 심박수가 너무 낮아 말하는 게 어려울 정도"라며 "국회에 있는 유경근씨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눈을 감은 채 의자에 기대어 앉은 김씨를 지켜보던 김영현(45, 서울 은평구 불광동)씨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족들을 응원하고 싶어 자녀들과 함께 농성장을 찾았다는 김씨는 "진상규명도 안 된 상황에서 저렇게 단식을 계속하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선거에서 야당이 지면서 새누리당이 자꾸 보상 얘기를 꺼내는데, 유족분들께서 힘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농성장 안에 있던 김영오씨는 7시께 힘겹게 몸을 일으켜 농성장 뒤에 있는 세종대왕상 쪽으로 걸어갔다.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가수 강허달림, 평화의 나무 합창단, 정희성 시인 등이 함께 한 이날 음악회에는 유가족 10여명을 비롯해 시민 3000여명(대책회의 집계)이 참석했다.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는 2일 오후 7시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음악회'를 열고 수사권 등이 포함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 세월호참사 가족대책위 관련사진보기 "사랑하는 딸 경주야... 네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엄마는 울지 않을게" "사랑하는 우리 딸 애물단지 경주에게. (…중략)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행복이자 희망이었던, 우리에게 첫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했던 네가 지금은 엄마 곁에 없구나. 이것이 정녕 현실이라면 나는 거부한다. 아니 의미를 잃은 것이다. …경주야, 엄마는 아무리 힘이 들어도 힘들고 아프지 않을 거야. 엄마가 반드시 경주 눈물을 닦아줄게." 세월호 참사로 단원고에 다니던 딸 김경주 양을 잃은 유병화 씨가 단상에 올라 딸에게 쓴 편지를 낭독했다. 유씨는 "(세월호 사고 후) 109일째 광화문에서 보내는 것이 제게는 아주 특별한 휴가가 돼가고 있다"며 "나랏일 하시는 분들이 휴가를 가셨다고요, 아마 특별법 제정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려고 가신 것 같은데, 기다리겠습니다"라고 꼬집었다. 편지 낭독을 끝낸 유씨가 청중들을 향해 "저희가 쓰러지거나 지쳐 넘어져도 손 잡아주실 수 있으시죠"라 묻자 앉아 있던 시민들이 "네"라며 박수로 화답했다. 이어 단상에 오른 김병권 유가족 대책위원장(고 김빛나라 아버지)도 "시민분들의 따뜻한 연대가 유족들에게 너무나 힘이 된다"며 "더 나은 세상, 안전한 사회를 위한 진상규명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말했다. 이 날 광화문 광장에는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도 찾아와 유족들을 응원했다. 이 교육감은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기소권과 수사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은 정부와 사회의 의무"라며 "(새누리당이) 보상을 해주겠다고 자꾸 얘기하는데, 진상을 규명해야 보상을 하든 말든 할 것 아니냐"며 진상 규명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기사 관련 사진 ▲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유족들이 단식을 시작한지 20일째. 특별법 제정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유족들의 소리없는 절규는 계속되고 있다. 광화문 단식 농성장에 앉아 있는 김영오씨(47, 고 김유민 학생 아버지)는 말할 힘도 없어보였다.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음악회'가 열린 가운데 이재정 경기도교육감(맨 왼쪽)과 20일째 단식중인 김영오씨(가운데,고 김유민 학생 아버지) 등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세월호참사가족대책위 관련사진보기 김영어씨는 지난 31일 <미디어오늘>을 통해 밝힌 단식 일기에서 "일부 주장처럼 정말 우리는 유가족충인가, 광화문에서 언제 쓰러질지 몰라 저도 두렵다"고 썼다. 그는 또 "그래도 우리 유민이와, 공포와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살려달라고 울부짖다 죽었을 아이들 생각하면, 우리 아이들이 왜 억울하게 생매장 당했는지 밝혀내려면 나라도 광화문을 지켜야죠"라고 밝혔다. 한편 이 날 음악회를 주최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측은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함께 하는 '아주 특별한 휴가'를 앞으로도 계속할 예정이다(태풍 예보로 3일은 광화문 농성장 잠시 철수). 자세한 일정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오는 9일과 15일에는 문화제와 범국민대회가 각각 예정돼 있다.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는 2일 오후 7시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음악회'를 열고 수사권 등이 포함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 세월호참사가족대책위 관련사진보기

'글루텐'에 대한 흔한 오해 3가지


'​글루텐'에 대한 흔한 오해 3가지 허핑턴포스트코리아 | 작성자 곽상아 게시됨: 2014년 08월 01일 15시 03분 KST 업데이트됨: 2014년 08월 01일 15시 03분 KSTPrint Article GLUTEN 글루텐(gluten): 보리, 밀 등의 곡류에 존재하는 불용성 단백질 더 쉽게 말하자면, 밀가루 특유의 쫄깃하고 찰진 식감을 만들어주는 성분이다. 쫄깃한 면과 빵을 탄생시키는 고마운 존재이지만 최근에는 많은 이들이 글루텐을 '만병의 근원'처럼 인식하고 있다. 소화장애, 비만, 피부 트러블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하기 때문에 되도록 글루텐을 섭취하지 않는 게 건강과 아름다움에 좋다는 것이다. '글루텐 프리' 제품, '글루텐 프리데이', '글루텐 프리' 다이어트 등등, 가히 '글루텐 프리 열풍'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글루텐에 대해 반박도 만만치 않다. 1. 글루텐 때문에 배가 아프다? 사람들이 글루텐을 꺼리는 대표적인 이유는 셀리악병과 같은 '소화장애'를 유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권에서는 발병사례가 거의 없으며, 오히려 글루텐보다는 탄수화물 과다 섭취가 문제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셀리악병 등 글루텐이 문제돼 발병한 사례가 전혀 없는 국내에서 급속도로 번지고 있는 글루텐 기피현상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다소 의아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한종수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셀리악병은 국내에서 거의 진단사례가 없다”며 “미국이면 몰라도 국내에서 글루텐 섭취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정밀 혈액검사 후 소장까지 관찰할 수 있는 위내시경으로 조직검사를 해도 확진이 어려운 것이 셀리악병”이라며 “글루텐보다 탄수화물 중독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성은 한림대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평소 밀가루 음식 섭취에 문제가 없다면 글루텐 섭취를 피할 필요가 없다”며 “소화장애 때문에 병원을 찾은 이들 대부분은 탄수화물, 당류 섭취가 문제가 된 사람이 많다”고 했다.(한국일보 7월 28일) 하지만 정작 글루텐으로 생긴다는 장내 염증은 동양권인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선 발병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 신진영 가정의학과 교수/삼성서울병원 ▶ "셀리악병(장내 염증) 예측해서 글루텐 프리 식품을 드시는 것보다 탄수화물을 적게 복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개개인 체질을 살피지 않고 무조건 밀가루를 기피하기 보다는 균형 있는 식단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입니다.(MBC 7월 17일) 글루텐 질환으로 알려진 병들이 실제로 글루텐과 관계없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최근 셀리악병 환자들에 대한 면밀한 연구결과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글루텐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식품 속 다른 단백질이나 심지어 탄수화물이 원인일 수도 있다는 것. 2010년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글루텐 민감성으로 알고 있는 사람 32명을 대상으로 글루텐 프리 식이요법을 실시한 결과 불과 12명만이 증상이 개선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즉 60%는 글루텐 민감성이 아니고 따라서 효과도 없는 식이요법을 한 셈이다.(동아사이언스 7월 7일) 하지만, 글루텐 민감 체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빵을 먹으면 더부룩한 느낌이 든다는 사람들도 많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밀가루 속 글루텐이 문제가 아니라 빵을 제조하면서 넣는 수십가지 첨가물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늘날 빵을 먹고 탈이 난 많은 사람들이 글루텐을 원망하고 있지만, 어쩌면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글루텐이 아니라 제대로 만들지 않은 빵을 먹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수십 가지 첨가물을 잔뜩 집어넣어 속성을 대량생산한 빵을 먹으면서 깊은 풍미를 잃고 대신 글루텐민감성을 얻게 된 건 아닐까. 다음은 20세기 초 ‘사기 억제를 위한 국제회의(International Congress for the Suppression of Fraud)’가 소집한 전문가 집단이 제시한 빵의 법적 정의다. 이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먹고 있는 대부분의 빵은 빵이 아니다! “어떤 수식어도 붙지 않은 빵이라는 단어는 오로지 밀가루, 사워도우배양액(발효종) 혹은 맥주나 곡물로 만든 효모, 식수, 소금을 섞은 반죽에서 나온 산출물에만 사용된다.”(동아사이언스 7월 7일) 2. 글루텐이 탄수화물 중독을 유발한다? 글루텐이 탄수화물 중독을 유발한다는 것도 현재로서는 '증명되지 않은 주장'에 불과하다. 지난해 10월 25일 한국제분협회 주최로 열린 '밀가루의 영향학적 가치와 안전성' 세미나에서 365mc비만클리닉 대전점 김우준 원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밀가루가 탄수화물 중독의 원인물질이라는 속설과 밀가루를 끊으면 건강할 수 있다는 속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두 속설은 밀가루의 글루텐 성분에서 기인하는데, 글루텐은 밀에 포함된 단백질 중의 하나로 글루텐 성분이 많아질수록 쫄깃하고 찰진 식감이 강해진다. 글루텐은 위산에 포함된 펩신이라는 소화효소에 의해서 엑소핀이라는 물질로 전환되는데, 엑소핀은 모르핀과 유사한 화학구조식을 가지고 있어 중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몸에서 만들어지는 마약성 진통제인 엔돌핀과 달리 엑소핀은 음식에 포함된 단백질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으로 식품을 통해서 외부에서 얻을 수 있다는 뜻으로 엑소핀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exorphine = exogenous + morphine like compound). 음식 단백질에서 엑소핀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처럼 밀가루에 포함된 글루텐뿐만 아니라 우유의 카제인, 쌀의 알부민, 혈액 속의 알부민과 헤모글로빈 등에서도 엑소핀이 만들어질 수 있다. 밀가루의 글루텐이 소화 효소에 의해서 마약으로 바뀌어서 탄수화물 중독을 유발할 수 있다면, 우유, 쌀, 시금치, 선짓국 등도 음식 중독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와야 하는데, 이런 주장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식품저널 2013년 10월 25일) Q 글루텐이 탄수화물 중독의 원인이라는데. 증명되지 않았다. 밀가루의 글루텐이 탄수화물 중독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있다. 글루텐은 위산에 포함된 펩신이라는 소화효소에 의해 엑소르핀이라는 물질로 전환된다. 엑소르핀은 아편성 진통제인 모르핀과 유사한 화학구조식을 하고 있어 중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몸에서 만들어지는 마약성 진통제인 엔도르핀과 달리 엑소르핀은 음식에 포함된 단백질에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밀가루에 포함된 글루텐뿐 아니라 우유와 쌀·시금치·혈액 속 알부민과 헤모글로빈에서도 엑소르핀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유·쌀·시금치·선짓국에 중독됐다는 주장은 없다. 또 밀가루 500g을 먹었을 때 혈액에 녹아 드는 엑소르핀은 0.7㎎인데 이 정도의 엑소르핀이 중독성이나 신경계에 문제를 유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중앙일보 2013년 12월 16일) 보그걸(2010년 9월호)에 따르면, 한의사 김성현 박사도 "일부에서는 밀가루의 글루텐 성분이 탄수화물 중독을 일으킨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식품 자체의 영양만 비교하면 이 둘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이보다는 어떤 가공을 거치고, 어떤 음식과 곁들여 먹는지가 건강과 더 직결되는 문제죠"라고 지적했다. 3. '글루텐 프리', 먹으면 건강하고 날씬해진다? '글루텐 프리' 제품도 글루텐이나 밀에 예민한 사람에게만 의미있을 뿐 일종의 '건강식'이라거나 '다이어트식'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한다. 오히려 글루텐 대신 들어가는 탄수화물 등의 성분으로 대사증후군 가능성이 더 높아지니, '글루텐 프리' 제품을 찾기보다 균형적인 식단을 먹는 게 최선이라는 지적이다. '글루텐 프리' 열풍의 배경에는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이득을 취하는 기업들도 존재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6월 23일자에는 글루텐 프리 식품이 실제로 몸에 좋다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뉴스가 실렸다. 오히려 탄수화물과 당분의 함량이 높아 비만 등의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더 높다는 것. 현재 미국에서만 글루텐 프리 시장이 233억 달러(약 24조 원) 규모라고 한다. 어쩌면 대형 식품회사들은 진실의 미묘함을 알면서도 건강 염려증이 지나친 현대인들의 불안심리를 이용해 모든 문제를 글루텐으로 몰아 마케팅 컨셉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동아사이언스 7월 7일) 최근 미국인들 사이에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글루텐을 넣지 않은 이른바 ‘글루텐 프리(gluten-free)’ 식품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다이어트나 소화에 좋다는 인식 때문에 인기지만, 글루텐을 함유한 식품과 영양학적으론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나와 주목된다. (중략)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글루텐 프리 제품의 이면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글루텐 프리 식품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과 달리, 시판 제품 중에선 글루텐의 함량만 낮췄을 뿐 당류나 탄수화물은 되려 더 많이 함유한 경우가 많아서다. 실제 유명 파스타업체 바릴라의 ‘글루텐 프리 스파게티’ 제품은 같은 중량의 ‘통밀 스파게티’와 비교했을 때, 칼로리는 같으면서도 지방과 나트륨, 당류는 더 적었다. 글루티노의 ‘글루텐 프리 사과ㆍ시나몬 시리얼’은 일반 제품과 달리 칼슘, 철분, 비타민 A와 C를 하나도 함유하고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마고 우탄 미국 공익과학센터(CSPI) 영양정책담당 대표는 “이젠 정크푸드도 ‘글루텐 프리’로 포장돼 유통되면서 이 글루텐 프리 유행이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며 “도넛은 글루텐 프리든 아니든, 여전히 도넛일 뿐”이라고 우려했다.(헤럴드경제 6월 24일) Q 글루텐프리 다이어트가 필요한 사람과 방법은 살을 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글루텐을 먹었을 때 복통이 오고 가스가 차거나 설사를 하는 등의 장애를 일으키는 사람이다. 밀에 알레르기가 있어 두드러기가 생기거나 과민해서 소화가 잘 안되는 사람이다. 이들은 밀·귀리·보리가 포함된 음식은 피한다. 대두·쌀·옥수수·감자는 안전하다. 유화제나 안정제가 첨가된 가공음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 와인이나 증류주는 안전하지만 맥주는 위험하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밀가루 섭취는 건강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건강을 위해서는 균형 잡힌 식사와 적절한 열량 섭취가 현명하다.(중앙일보 2013년 12월 16일) 글루텐프리 제품은 글루텐·밀에 예민한 사람에게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일반인에게도 일종의 건강식으로 오해받는다. 실제 글루텐프리 시장은 세계적으로 연평균 30%씩 성장세다. 식품회사들은 앞다퉈 글루텐프리 식품을 내놓는다. 글루텐프리에 열광하는 이유는 밀가루가 건강을 악화시키고 비만의 주요 원인이라고 잘못 생각해서다. 일부 엄마는 아이에게 밀가루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 이유식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밀가루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김경수 교수는 “쌀과 감자는 주로 밥으로 먹거나 쪄서 먹는다”며 “반면 밀가루는 그 자체로 먹는 게 아니라 설탕과 버터를 듬뿍 넣은 케이크·도넛·쿠키 등으로 가공해서 먹는 식품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중앙일보 2013년 12월 16일) 업계의 과도한 마케팅이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석중 국립중앙의료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최근 출시되고 있는 ‘글루텐 프리’제품이 비만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광고를 하고 있는데 어불성설”이라며 “이런 제품에 의존하지 말고 짜고, 맵게 먹는 식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고 했다. 그는 또 “밀가루 음식에 과민증상이 있는 사람에게는 도움될 수 있지만 일반인에게 글루텐 프리제품은 건강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글루텐 프리제품이 인기를 끌자 맹목적으로 국내에서 ‘글루텐 프리’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는 비판이다.(한국일보 7월 28일) 더 보기: 장내 염증마케팅다이어트밀가루모르핀라이프스타일식품회사대사증후군셀리악병마약글루텐 프리 유행이스트건강식우유피부 트러블글루텐 프리 열풍엑소핀글루텐 프리 다이어트균형적인 식단단백질쌀시금치선짓국건강탄수화물 과다섭취탄수화물 중독글루텐 독성첨가물효모글루텐 민감성비만소화장애현대인 불안심리글루텐 민감체질글루텐글루텐 기피현상글루텐 프리

2014년 8월 1일 금요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 10계명'


휴심정 2014. 08. 02조회수 224 추천수 0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시한 ‘행복 10계명’ 교황 “식사 때는 TV를 끄고 대화를 하세요” 14일 방한 앞둔 프란치스코 ‘이 시대의 행복 10계명’ 제시 조국 아르헨티나 언론과 인터뷰…“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다른 이의 믿음 존중하고 개종시키려 하지 마라” 제안도 교황 10계명1.jpg 프란치스코 교황. 한겨레 자료 사진. “저마다의 삶을 살자. 식사 때는 텔레비전을 끄자. 다른 사람을 개종시키려 들지 말라….” 이달 14일 방한을 앞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들을 위한 ‘행복 10계명’을 내놨다.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는 이들에게 은은한 울림을 준다. 교황은 최근 고국 아르헨티나의 주간지 <비바>와 한 인터뷰에서 행복에 이르는 비밀 지침 10가지를 제시했다. 미국 주교회의 산하 ‘가톨릭 뉴스 서비스’가 이를 영어로 번역해 소개했는데, 자신의 삶의 경험에서 비롯된 겸손과 반소비주의의 덕목이 녹아 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평가했다. 교황은 무엇보다 독립적이고도 열린 삶의 자세를 강조했다. 그는 제1의 과제로 “자신의 삶을 살되, 남들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스스로의 길을 가되, 타인의 삶 또한 존중하자는 것이다. 그는 또 “나는 연못과 같이 느리고 고요하면서도 끊임없이 흐르는 삶의 상태를 좋아한다”며 친절하고 겸손하게 ‘조용히 전진하자’고 권고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다른 이의 믿음을 존중하고, 개종시키려 들지 말자”고 파격 제안을 했다. 그는 “교회의 성장은 개종 시도가 아니라 매혹시킴을 통해 가능한 것”이라며 “나는 당신을 설복시키기 위해 말한다는 태도야말로 최악의 종교적 태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마음을 타인에게 열자”고 주문했다. “마음을 닫는 순간 자기중심적이 된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말했다. 교황은 건강한 여가로 삶에 여유를 찾자고도 했다. 그는 “소비주의가 불안과 스트레스를 초래하고 건강한 여가 문화를 앗아갔다. 일하느라 아이들과 놀 시간을 갖기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반드시 시간을 내야 한다”고 했다. 또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자”, “식사 때는 꼭 티브이를 끄고, 대화를 나누자”,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자”고 권했다. 교황10계명2.jpg 교황이 제시한 ‘행복 10계명’ 그는 사회적 의제들에도 관심을 갖자고 했다. 그는 먼저 “젊은이들을 위한 가치있는 일자리를 창출할 방법을 함께 찾자”고 말했다. 그는 “사람의 존엄성은 스스로의 노동으로 생계를 이을 수 있을 때 확보된다”며 “젊은 세대가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할 때 마약에 손을 대고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교황은 “나는 ‘인간이 자연을 폭압적으로 착취함으로써 자멸의 길로 가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며 “자연을 존중하고 돌보자”고 했다. 그는 끝으로 “평화를 위해 행동하자”고 제안했다. “평화를 위한 호소는 우렁차야 한다. 때로 평화는 조용하다는 인상을 주지만, 사실 평화는 정적이지 않고 언제나 주도적인 움직임이다.” 그는 이밖에 ‘이민자 지원’의 중요성에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고 ‘가톨릭 뉴스 서비스’는 전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관련글 교황님이 억울함 다 들어줄줄이야 이해인 수녀의 <교황님의 트위터> 무신론자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화 교황, 8월 방한 시복식 열듯 염수정 추기경, "희생과 나눔 실천할 것"

북, 을지프리덤으로 전쟁 나면 유엔도 책임


북, 을지프리덤으로 전쟁 나면 유엔도 책임 “유엔 안보리 한미 합동군사훈련 긴급현안 회의”요구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08/02 [07:10] 최종편집: ⓒ 자주민보 조선이 미국의 위협이 계속되는 한 핵무기를 계속 개발할 것이라며 유엔 안보리는 을지프리덤 가디언 훈련에 대해 긴급 현안으로 회의를 열 것을 요구했다. 내.외신들은 2일 일제히 지난 1일(현지시간) 리동일 북한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는 이날 낮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북한처럼 끊임없이 위협받는 나라는 없다"면서 ”미국 등으로부터의 위협이 계속되는 한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핵무기 개발외에 대안이 없다“고 주장해 자신들의 핵개발이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임을 밝혔다. 유엔 주재 리동일 차석대사는 조선의 핵무기 개발은 2002년 조지부시(아들 부시) 미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정책을 정하고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핵 개발의 동기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발언으로 촉발 된 것임을 주장했다. 리동일 차석대사는 “이미 요구한대로 유엔 안보리는 한·미 합동군사훈련 문제를 긴급 현안으로 다뤄야 한다.”며 “안보리가 이 요구를 거절한다면 세계평화와 안보를 위해 중립과 원칙을 지켜야 할 유엔이 존재목적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해 유엔이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킬 것을 강조했다. 리 차석 대사는 “유엔 안보리가 조선의 요청을 무시하고 있다”면서 “유엔 안보리와 미국이 조선의 공식 요청을 계속 거부할 경우 북한은 스스로 선택한 길로 나갈 것이다. 특히 한반도에서 미-한 합동군사훈련이 계속되면 북한도 자위적인 차원에서 맞대응을 해 나갈 것이며 조선의 대응에는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모든 방안이 다 포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 차석대사는 “한·미 군사훈련 과정에서 불똥이 튀어 전쟁으로 번지면 이 책임은 미국이 져야 한다.”면서 “아울러 유엔 안보리 역시 미국을 불법으로 지원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말해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면 유엔도 공동 책임이 있음을 강력하게 역설했다.. 그는 “한국전 휴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이 벌인 대규모 군사훈련은 무려 1만8천회로 추산된다.”면서 “한반도 평화와 안보의 최대 위협은 바로 미국”이라고 피력했다. 유엔 주재 리동일 차석 대사는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에 대해서는 “조선이 미.일, 한·미 조약의 표적이 돼 있는 상황에서 일본은 이미 이웃에 군사화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고 지적하고 “매우 위험한 일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A급 전범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반 인권적 행위”라며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에 대해 반대의 뜻은 물론 미국이 이를 용인하는 것 자체도 잘 못되었음을 분명히 했다. 아시안 경기대회 참가에 대해서는 “조선의 아시안 게임 참가는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차원”이라는 원칙적 입장과 함께 상황을 지켜 보겠다는 입장을 덧붙였다. 한편 조선은 지난 31일 조선평화옹호전국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한.미 당국이 을지프리덤 가디언 훈련을 강행하면 총와대는 물론 미국의 백악관과 팬타곤, 세계에 있는 미군기지들이 핵타격의 목표물이 될 것이라고 강조해 한반도 정세가 엄중해 지고 있어 평화를 위한 관련국들의 해법이 필요하다.

세월호 사고를 키워 다른 중요한 이슈 은폐 시도


세월호 사고를 키워 다른 중요한 이슈 은폐 시도 호주한국일보 | 등록:2014-08-02 12:45:24 | 최종:2014-08-02 12:52:1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세월호 사고를 키워 다른 중요한 이슈 은폐 시도” “천안함은 좌초 후 이스라엘 잠수함과 충돌한 사고” 30일 이스트우드에서 천안함 사고에 대해 강연을 한 신상철 진실의 길 대표 신상철 <진실의 길>대표 시드니 강연서 ‘충격 주장’ 진보 성향의 인터넷 매체 <진실의 길> 신상철 대표가 천안함 침몰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시드니 강연에서 충격 주장을 했다. 김 대표는 31일(목) 리드컴 소재 한 교회에서 동포 80여명을 대상으로 세월호 참사에 얽힌 ‘의혹’을 설명하면서 “일부러 낸 사고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일어난 사고를 바로 수습하지 않고 일부러 지연해 사고를 키워, 중요한 다른 이슈를 묻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는 충격 발언을 했다. 신 대표는 30일(수) 첫 천안함 침몰 강연에서는 “좌초와 충돌에 의한 것이지 폭발은 아니다”고 말했으며, 31일(목) 세월호 참사 관련 강연에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 그리고 부정 선거 의혹들이 위험수위에 다다르자, 위기감을 느낀 수구 지배세력들이 세월호 침몰 사고를 악용해 구조 작업을 교묘하게 지연시켜 사고를 키웠다”라고 주장을 해 충격을 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이슈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부정선거의 문제였다”라고 말한 신 대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자신에게 요청해오던 부정선거 강연이 대폭 줄어들었다”라고 전했다. 이런 위기로 위기를 막는 전략이 바로 수구세력들이 즐겨 사용하는 전법이라는 것이다. 신 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더불어 부정선거를 방지하는 선거법을 개정하지 않은 한 진실을 밝히는 세상이 오기 힘들다”라면서 “투표소에서 개표가 이루어지도록 선거법을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논란이 많았던 컴퓨터 조작을 통한 부정선거의 증거는 이미 소멸된 듯 싶다”고 말한 신 대표는 “대선 당시 투개표의 컴퓨터 처리 프로그램은 이미 폐기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31일 현재 18일 동안 광화문 거리에서 단식을 하며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는 희생자 가족들은 한국 근대사에서 보여준 진보의 역사와 많이 닮았다”며 “고통을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피하지 않고 의연한 모습을 견지하고 있는 희생자 유가족에 대한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신씨가 제기한 ‘세월호 관련 10대 의혹’은 다음과 같다. 1) 왜 선수를 잡지 않았나? “사고 첫날 해경은 단 한 사람도 구조하러 가지 않았다. 민간회사 언딘에게 구조를 맡긴 것은 119에 신고했는데 레카 차가 달려온 셈이다. 에어포켓이 가장 많이 형성될 수 있는 조건으로 침몰한 세월호에 갇혀있던 아이들은 질식사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이 젖어서 옷을 갈아입은 정황도 포착된다.” 2) 컨테이너를 왜 묶지 않았나? 3) 인근 함대는 왜 출동하지 않았나? “목포 3함대 80km 거리, 1시간 내 도착이 가능했다” 4) 해군참모총장이 지시한 통영함(구조함) 출동을 누가 막았나? 5) 해경의 적극적 구조 방해 사실 “해경이 UDT 잠수와 어선 접근 다 막았다. 첫날, 단 1명도 물에 들어가지 않고 구조활동을 하지 않았다” 6) 선수가 가라앉은 전날 야간에 무슨 작업을 했나? “선수의 주야간 비교 사진을 보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는데 작업 후 바로 침몰한 것으로 보인다.” 7) “최초 신고 시간 오전 8시55분은 거짓이다. 7시20분에 이미 구조 요청이 있었으며 단원고등학교는 8시 10분에 비상이 걸렸다.” 8) 배의 급회전은 침몰의 원인이 아니다 9) 선체의 복원력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다 10) 이준석 선장을 구조 후 하루동안 해경 아파트에 묵게 한 이유는? “현관 CCTV 내용도 사라졌다. 왜 3등 항해사를 비롯한 선원들이 출항 전 출항을 애걸복걸하며 말렸나. 사고가 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은 잠수함과 충돌한 교통사고” “한국 정부의 북한 어뢰 폭침은 날조” 신 대표는 또한 천안함 사고에서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세월호 사고가 발생할 때 “위기관리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아 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신 대표는 30일 이스트우드 강연에서 “만약 천안함 사고에서 진실이 밝혀졌다면, 세월호 참사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비극인 계속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천안함 사고와 관련된 의혹에서 천안함 침몰은 좌초를 당한 상태에서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작전 중이던 이스라엘 잠수함과 충돌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한국 정부의 어뢰 폭침 주장은 날조됐다”고 반박했다. 이스라엘의 근동 잠수함 기지는 베트남에 있으며 서해까지 오가며 주로 북한에서 이란과 시리아로 무기수출을 한다고 의심되는 선박을 추적하는 것이 주요 임무라고 설명했다. 신 대표는 “이스라엘 잠수함은 서해에서 연례적으로 펼쳐지는 한미군사합동작전에 함께 참여했으며 독자적인 작전을 펼치는 도중 천안함과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는 주장을 전개했다. 한 강연 참석자는 신 대표의 주장에 대해 “충격적이지만 논리적인 측면이 있다”면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훗날 이런 의혹들의 진상이 밝혀질지 현재로선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현장 취재: 김효정 korean416au@gmail.com 페이스북: 가만히 있으라 in 호주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417&table=byple_news

'구악 쇼' 박정희, '적폐 쇼' 박근혜…닮은꼴 부녀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55> 제3공화국의 탄생, 두 번째 마당 김덕련 기자, 최하얀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8.02 09:15:11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일곱 번째 이야기 주제는 제3공화국의 탄생이다. <편집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이야기 마당 1∼3] 한국전쟁 [이야기 마당 4∼8] 친일파 [이야기 마당 9∼15] 학살 [이야기 마당 16∼31] 해방·분단 [이야기 마당 32∼41] 4월혁명 [5.16쿠데타, 첫 번째 마당] 박정희 쿠데타 연재는 왜 그 신문에서 사라졌나 [5.16쿠데타, 두 번째 마당] 오랜 꿈 이룬 '박통'…대한민국은 짓밟혔다 [5.16쿠데타, 세 번째 마당] 박정희는 왜 한국인의 '노예근성'을 주목했나 [5.16쿠데타, 네 번째 마당] 청와대·참모총장의 위험한 선택…헌법은 죽었다 [5.16쿠데타, 다섯 번째 마당] 박정희 '은밀한 과거', 미국이 개의치 않은 이유 [5.16쿠데타, 여섯 번째 마당] 정치 깡패 이정재는 진정 죽어 마땅했나 [5.16쿠데타, 일곱 번째 마당] 나라 구한 박정희? 장준하는 왜 그리 판단했나 [5.16쿠데타, 여덟 번째 마당] 청와대 '부정 선거' 앞잡이, 정보부…어쩌다? [5.16쿠데타, 아홉 번째 마당] '전 재산 헌납' 삼성 약속은 왜 물거품이 됐나 [5.16쿠데타, 열 번째 마당] 박정희 거듭 구한 은인, 제대로 뒤통수 맞다 [5.16쿠데타, 열한 번째 마당] '박통'의 특별한 선배, 왜 간첩으로 죽어야 했나 [5.16쿠데타, 열두 번째 마당] '장면 맹비난' 박정희, 사실은 대부분 따라 했다 [제3공화국, 첫 번째 마당] '가만있어라' 강조한 '박통', 은밀히 뒤통수쳤다 프레시안 : 박정희와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5.16쿠데타 세력이 권력을 내놓지 않기 위해 한 일은 민주공화당 사전 조직만이 아니었다. 서중석 : 사전 조직을 방대하게, 밀실에서, 중앙정보부 조직을 최대한 이용해서 했는데 이것만 가지고 집권을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앞에서 얘기한 1961년 8월 12일 박정희의 민정 이양 성명에는 중요한 내용이 또 하나 들어 있었다. "구정치인 중 부패·부정한 정치인의 정계 진출을 방지하기 위한 입법 조치를 취한다", 이것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구정치인 중 상당수가 정계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인위적으로, 법의 이름을 빌린 물리력으로 막겠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정치활동정화법이라는 것을 만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도 참 악명 높은 법이다. 1962년에 들어와 중앙정보부 중심으로 작업을 해서 재건동지회가 만들어진다고 지난번에 얘기했는데, 정치활동정화법도 1962년 들어 구체화된다. 1962년 2월 3일 윤보선 대통령은 기자 회견에서 '구정치인의 출마를 제한한다는 것은 재검토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구정치인에는 자기도 들어가지 않나. 간단히 이야기하면 기존의 모든 정치인을 구정치인으로 규정하고 쿠데타 이후 등장한 군인들이 신정치인이라고 한 셈이다. 그러니 자기가 대통령일 때 이 법이 통과되면 자기 동지들한테 얼마나 욕을 얻어먹겠나. 그런데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아직도 일부 몰지각한 구정치인들이 혁명 성업을 모독하고 있는 것은 용서 못할 처사다. 이러한 자들에게는 정권을 넘길 수 없다'고 하면서 '1∼2년 동안에 이런 부패한 역사가 해결된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프레시안 : 정치활동정화법은 5.16쿠데타 세력에게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무기였다. 서중석 : 1962년 3월 16일 최고회의에서 정치활동정화법이 통과됐다. 이 법에 대해선 역시 김종필 부장이 참 짤막하고 적절하게 잘 얘기했다. 앞으로 정부가 정책을 강력히 수행하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부당한 말썽을 일으킬 만한 "보균자"들에게 한 번 내지 두 번 정도 국회의원만 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보균자"라고 표현했다. 대통령은 자기들이 할 것이라고 확고하게 생각했는지, 하여튼 한 번 내지 두 번 정도만 국회의원이 되지 말아 달라고 얘기했다. (김종필은 1962년 3월 20일, "정치활동정화법은 구정치인들 중 신정부를 까부술 위험성이 있는 자들을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그 근본 목적"이라며 "보균자는 자진해서 국회에 안 나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자>) 이 말은 나중에 정확하게 구체화된다. 다수는 1963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되지만, 몇 사람은 1963년 총선은 물론 1967년 선거에도 출마를 못 하게 된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두 번 출마를 못하게 되는 것이고, 상당수는 한 번(1963년 선거) 못하게 되는 것이며, 나머지 다수는 정치 활동이 허용된 것이다. 단순하게 보면, 정치활동정화법은 박정희, 김종필이 강력한 통치를 하기 위해 방해물을 제거하거나 정치적 반대자를 약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정치활동정화법을 적절히 이용하면, 그러니까 누구는 풀어주고 누구는 안 풀어주는 식으로 하면서 야권을 서로 불신케 하고 분열, 갈등을 조장하는 간특한 머리도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반대파 옥죄고 야권 분열 조장한 정치활동정화법 프레시안 : 5.16쿠데타 세력은 이승만 정권의 주요 인사들을 선별해 끌어들이고 혁신계의 발을 확고하게 묶어두는 데도 정치활동정화법을 활용했다. 서중석 : 그렇다. 윤보선은 더는 대통령을 할 수 없으니 3월 22일 사임했다. 그러니까 박정희가 바로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된다. 4374명을 '해당자'로 정하고 그 명단을 공고했다. 그러면서 구정치인 가운데 신고를 하게 했는데, 2958명이 정치활동정화위원회에서 자신들의 적격 여부를 처리해달라고 청구한 것으로 돼 있다. (이 위원회에서 적격 판정을 받지 못하면 1968년 8월 15일까지 정치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었다. <편집자>) 1962년 5월 30일, 2958명의 45퍼센트인 1336명을 적격자로 규정해 '이 사람들은 정치를 할 수 있다'고 풀어줬다. 그해 12월 31일에 가서는 171명을 또 추가 해금했다. 어느 경우나 자유당이 많다. 특히 12월 31일에는 이승만 정권 말기 국방부 장관을 한 김정열, 초대 내무부 장관인 윤치영 같은 사람들이 풀렸다. 나중에 둘 다 민주공화당 의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다. 1963년 2월 1일에는 또 275명을 해금한다. 이때도 자유당계가 많았다. 박정희 의장은 망명지인 하와이에서 앓고 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귀국 문제를 심심히 고려하고 있다고 하면서, 자유당계의 민주공화당 입당을 유도하고 있었다고 한다. (정치적 필요에 따른 이런 몸짓과 반대로, 박정희 정권은 이승만의 귀국을 막았다. <편집자>) 마지막으로, 물론 선거를 앞두고 한 것인데, 1963년 2월 27일까지 추가 해제했으나 269명은 제외했다. 이 269명 여기에 중요한 사람들이 많았다. 자유당계로는 이승만, 민주당 정권의 장면 같은 사람들이 여기에 포함돼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제일 많은 건 혁신계 간부급 인사들이다. 김달호, 고정훈, 정화암, 박기출, 장건상, 윤길중 등이 다 묶여 있었다. 이 정치활동정화법은 개폐할 수가 없다고 헌법에까지 못을 박았다. 부칙 제4조 2항에다가 '못 고친다'고 못을 박아 놨다. 이렇게 해서 쿠데타 세력이 일부를 제외하면서 야당을 분열시키는 데 정치활동정화법을 이용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훗날 전두환 신군부는 총칼로 권력을 잡은 후 기성 정치권 등의 발을 묶은 5.16쿠데타 세력의 방식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신군부는 1980년 11월 '정치 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 조치법'을 만들고 기성 정치인 등의 정치 활동을 금지한다. 그 대상에는 김종필도 포함돼 있었다. 그에 앞서 신군부는 김종필을 부정 축재자로 규정했다. 5.16쿠데타 후 기성 정치인 등을 보균자로 몰아붙였던 김종필은 그렇게 20년도 안 돼 정반대 처지에 놓인다. 전두환 정권이 막바지에 접어든 1987년 6월항쟁 이후에야 김종필은 정치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편집자>) 역사학자 서중석의 진단 ▲ "박근혜는 유신의 허깨비가 결코 아니었다" ▲ "박정희 신드롬, 박근혜가 지울 수도 있다" ▲ "<조선> 말대로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빨갱이" 새 헌법 만들어 대통령에게 막강한 힘 부여한 이유 프레시안 : 쿠데타 세력은 정치활동정화법을 만들어 야당 정치인들을 옥죄고 분열시키는 한편 헌법을 만드는 작업에 구체적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국민이 직접 뽑은 대의 기관도 아닌 최고회의에서 헌법 문제를 다루는 게 적절한가 하는 것도 논란거리다. 서중석 : 나중에 제3공화국 헌법으로 불리는 것이다. 1962년 7월 11일 최고회의는 헌법심의위원회를 구성했다. 여기에는 민간 전문위원을 비롯한 21명이 참여했다. 대개 새로 만드는 헌법은 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쿠데타로 제2공화국을 무너뜨렸으니) 장면 정부 때 헌법의 수순에 따라 새 헌법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최고회의에서는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을 고쳐 헌법 개정의 절차를 취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법안을 만들면 최고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 투표로 확정한다'고 했다. 이러면서 국민 투표가 다시 부각된다. 국민 투표법은 10월 12일에 제정된다. 국민 투표는 이승만 정권의 악명 높은 사사오입 개헌에 포함돼 있었다. 이승만 이 노인네가 중임 제한을 철폐하려고, 그러니까 영구 집권을 하려고 개헌을 밀어붙였는데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들의 반대가 워낙 심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이 양반이 '그것만 개헌하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개헌은 국민 투표를 할 필요성 때문에 꼭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몰고 갔다. 그래서 1954년 11월 국회에서 부결됐다고 선포한 걸 다시 사사오입으로 강변하면서 통과됐다고 주장하는 그 헌법에는 제7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의 제약 또는 영토의 변경을 가져올 국가 안위에 관한 중대 사항은 국회의 가결을 거친 후 국민 투표에 부친다"고 돼 있었다. 그렇지만 이승만은 국민 투표 조항을 전혀 지킬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법률로 국민 투표법을 만들지 않았다. 1952년 발췌 개헌 때 참의원 조항을 넣었는데도 지키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양원제에서 참의원은 상원, 민의원은 하원 격이다. 이승만 정권 때는 헌법에 참의원 조항이 있긴 했지만 한 번도 구성되지 않았다. <편집자>) 그런데 드디어 이 군사 정권에 의해 국민 투표법이 의결되기에 이르렀다. 국민 투표는 그 당시 어느 나라건 간에 대개 집권 세력의 의도에 맞게 통과되며, 집권 세력의 의도와 다르게 국민 투표가 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들 얘기하고 있었다. 이것도 마찬가지였다. 최고회의에서 통과시킨 것을 합법화한다고 할까, 합리화하는 구실로 국민 투표를 치른다. 박정희 정권 때는 이것 말고도 3선 개헌, 유신 체제 때 등 국민 투표가 몇 번 더 실시된다. 프레시안 : 쿠데타 세력이 만든 새 헌법은 대통령에게 강력한 힘을 부여했다. 이는 쿠데타 세력의 핵심 인사들이 영도자의 강력한 통치를 선호한 것과 관련 있어 보인다. 서중석 : 이 헌법 개정안은 최고회의를 통과해서 1962년 12월 17일 국민 투표를 거쳐 확정됐다. 이 새로운 헌법은 다 알다시피 내각 책임제였던 제2공화국과 달리 대통령 중심제였다. 그것도 대통령의 권한이 대단히 강화된 것이었다. 첫째, 부통령제를 없앴다. 부통령제를 없앤 데는 박정희와 김종필의 속셈이 각각 달랐을 수 있을 것이고, 다른 최고위원들의 생각도 작용하고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부통령 제도를 제도화해놨더라면 과연 유신 체제가 탄생할 수 있었겠느냐, 3선 개헌을 하는 게 용이했겠느냐 하는 점은 생각해볼 수 있다. 부통령이라는 자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일정 정도 견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여론이 있는데 이 부통령제를 다시 살리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경우엔 이승만 정권처럼 대통령과 부통령을 따로따로 선거하게 하는 게 아니라 러닝메이트 제도로 꼭 해야 한다. 박정희 정권의 행태를 되돌아볼 때 부통령제를 두는 것은 충분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어쨌건, 부통령제를 없앤 대신 국무총리를 뒀다. 헌법에 국무총리의 권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도 논란이 많이 되는 국무위원의 임명 제청권과 해임 건의권을 갖고 있었다. 물론 어느 누구도 과거에 그 권한을 제대로 행사해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승만 정권 때도 '국무총리는 장관만도 못하다', 그렇게 얘기됐다. 이승만은 권력에 대한 집착이 워낙 강해서 사사오입 개헌을 할 때 국무총리제까지 없앴다. 어쨌건 새 헌법에선 국무총리제를 뒀다. 그리고 헌법심의위원회 다수 의견으로 국무원을 장면 정권 때나 제헌 헌법처럼 의결 기관으로 해야 한다고 했지만, 쿠데타 세력은 국무회의로 이름을 바꾸고 결국 심의 기관으로 격하했다. 이처럼 대통령의 권한이 강력했다. 대통령한테는 국가 긴급권, 입법 거부권까지 보장돼 있지 않았나. ▲ 민정 이양을 앞두고, 5.16쿠데타 세력은 대통령에게 강력한 힘을 부여한 새 헌법을 만들었다. 사진은 1973년 국군의 날(10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이 경축사를 하는 동안 스탠드에 펼쳐진 대통령 초상화 카드 섹션. ⓒ연합뉴스 ▲ 민정 이양을 앞두고, 5.16쿠데타 세력은 대통령에게 강력한 힘을 부여한 새 헌법을 만들었다. 사진은 1973년 국군의 날(10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이 경축사를 하는 동안 스탠드에 펼쳐진 대통령 초상화 카드 섹션. ⓒ연합뉴스 괴상한 비례 대표제…헌법·선거법을 자기들 입맛에 맞춘 쿠데타 세력 프레시안 : 이 헌법에는 독특한 조항도 있었다. 서중석 : 그렇다. 이 헌법에 아주 독특한 게 들어갔다. 제36조에 "국회의원 후보가 되려는 자는 소속 정당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제64조엔 "대통령 후보가 되려는 자는 소속 정당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돼 있었다. 한마디로 무소속 후보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으로 나올 수 없게끔 만들어버렸다. 이것에 대해 여러 정치학자가 '정당을 육성하려고 그런 것'이라고 썼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그 당시 이미 한 신문에서 '이것은 야당 난립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여러 야당이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지적이었다. '무소속으로 나올 수 있으면 당을 안 만들어도 되지만 이런 식으로 해놓으면 꼭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 되든 안 되든 대통령으로 나오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당을 만드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러면 야당이 제구실을 할 수가 있느냐. 그런 점에서 이 부분은 문제가 많으니 이를 고려하라'고 요구한 것에 문제점이 잘 나타나 있다. 이 헌법은 제38조에 뭐까지 붙여놨냐 하면, "국회의원은 임기 중 당적을 이탈하거나 변경한 때 또는 소속 정당이 해산된 때는 그 자격이 상실된다"고 해 놨다. 국회의원이 당의 명령을 잘 듣지 않으면 안 되게끔 하는 부분이었다. 한마디로 야당을 난립시키면서 여당이 강력한 통치를 하기 위한 방책으로 이걸 만들어놨고 그렇게 활용된다. 그래서 유신 헌법으로 가면 또 싹 바뀌지 않나. 다 알다시피 유신 체제에서는 한 선거구에서 국회의원을 두 명씩 뽑게 돼 있었다. 그러면 반드시 한 명은 여당, 즉 민주공화당이 될 수 있다고 봤으니 문제는 야당을 떨어뜨리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하려면 무소속 후보가 나오게 해야 한다. 그래서 유신 헌법에서는 무소속 출마를 가능하게 해버렸다. 프레시안 : 지난번에 살펴본 8.15 계획서의 핵심 중 하나는 '군인들이 민정에서도 계속 권력을 잡을 수 있도록 새 헌법과 선거 제도를 고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헌법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법에도 이것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 눈에 띈다. 서중석 : 국회의원 선거법에도 문제 조항이 있었다. 1963년 1월 16일에 제정됐는데, 처음으로 전국구 비례 대표란 것을 두었다. 이게 44명이었다. 지역 대표가 131명이었던 걸 생각하면 그 비중도 적은 게 아니다. 비례 대표제가 당시 독일 등 다른 나라에서 시행된 것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정당에 투표한 것에서 유실 표를 막자는 것이다. 정당 대표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직능 혹은 전문성 대표라는 의미다. 각 당이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여러 좋은 사람들을 국회로 보내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쿠데타 세력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이것도 역시 강력한 통치와 관련이 있다. 제1당의 득표율이 50퍼센트 이상이면 비례 대표 의석의 3분의 2, 그 미만이면 절반을 주게 돼 있었다. 선거에서 제1당이 되는 건 대개 여당 아닌가. 그러니 비례 대표의 최소한 반절은 여당이 먹는 것으로 돼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또 야당한테도 나중에 이상하게 이용된다. 이 선거가 끝나고 그다음 선거부터는 '어떻게 보면 이게 국회의원 거저 되는 것이지 않나. 그러면 돈 좀 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됐다. 당시엔 '비례 대표는 국회의원 거저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전국구로 나오려면 상당한 정치 자금을 내도록 했다. 처음에는 박정희 정권이 그걸 탄압하기도 했지만 이걸 막을 수도 없었다. 야당은 돈이 궁해 죽을 처지였으니, 전국구 비례 대표가 돈을 갹출하는 한 방법이 돼 버린 것이다. 비례 대표가 직능 대표성이라든가 전문성을 진정으로 갖게 되는 것은 1987년 6월항쟁 이후다. 20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여성에게 비례 대표 자리를 많이 주지 않나. 나중엔 반절까지 배정했는데, 여성이 의회에 진출하는 데 큰 힘이 됐다. 그리고 정말 직능 대표성이 있는 사람들도 각 당에서 추천하고 그러면서, 21세기에 와서는 비례 대표가 예전보다 그 본질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프레시안 : 5.16쿠데타 세력은 지방 자치의 싹도 잘라버렸다. 서중석 : 1962년 11월 14일, 조시형 최고회의 내무위원장은 지방 자치 단체장 선거 제도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금 지방 자치 할 생각 없다. 단체장을 선임하거나 지방 의회를 구성할 생각이 없다', 이 말이다. 그러면서 그 후 30년 동안 풀뿌리 민주주의가 사라진 나라가 됐다. 전 세계에서 지방 자치를 완전히 없앤 나라는 한국 빼놓고는 없지 않느냐고까지 그때 애기를 많이 하더라. 이렇게 사전 조직, 그것도 이원 조직에 의한 사전 조직을 하고, 정치활동정화법도 만들고, 헌법과 국회의원 선거법도 자신들한테 유리하게 만들고, 지방 자치도 없애버리면서 박정희와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세력은 이제 큰 골격은 이뤘다고 생각하게 된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이다. 사진은 2011년 8월 27일 경북 청도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성역화 사업 준공식에 참석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이날 공개된 박 전 대통령 동상에 손을 대며 활짝 웃는 모습. ⓒ연합뉴스 ▲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이다. 사진은 2011년 8월 27일 경북 청도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성역화 사업 준공식에 참석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이날 공개된 박 전 대통령 동상에 손을 대며 활짝 웃는 모습. ⓒ연합뉴스 "구악 일소" 강조한 박정희 세력, '구악 중 구악' 자유당계 대거 포섭 프레시안 : 독재자들은 대개 '강력한 영도자를 뒷받침하는 정도의 역할만 하는 국회'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지난번에 했다. 영도자의 손발 노릇을 하는 국회라는 건데, 박정희 정권이 1970년대에 만든 유신정우회가 떠오른다. 서중석 : 비례 대표를 발전시킨 게 유신 체제에서는 유신정우회다. 대통령이 사실상 임명하는 방식으로 국회 의석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전두환 신군부 때 가서는 그것이 조금 미안했는지 신군부한테 절대 유리하게 의석을 분배하는 방식으로 약간 바꾼다.(1980년 10월 신군부가 만든 헌법은 국회 의석의 3분의 1을 전국구로 배정하고 그 전국구의 3분의 2는 제1당이 차지하도록 규정했다. <편집자>) 프레시안 : '5.16 혁명 공약'에는 "부패와 구악을 일소"한다는 내용도 있었다(제3항). 정치권의 구악을 일소한다는 명분 아래 만든 것이 정치활동정화법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혁신계와 민주당 정권을 쥐 잡듯 몰아세운 쿠데타 세력이, 민주당 정권보다 훨씬 부패했고 국민을 학살하기까지 한 자유당 정권의 인사들을 대거 받아들인 것도 앞뒤가 안 맞는 일이다. 4대 의혹 사건 등이 보여준 것처럼, 쿠데타 세력이 구정치인들보다 덜 부패했다고 볼 근거도 없다. 결국 쿠데타 세력이 구악 일소를 내세워 정치 쇼를 한 셈인데, 세월호 참사 후 박근혜 정부가 내건 "적폐 청산" 주장과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예컨대 참사의 밑바탕에는 '생명 뒷전, 돈벌이 우선' 논리가 있었는데도, 박근혜 정부가 "적폐"의 핵심인 무분별한 규제 완화에 오히려 힘을 싣는 역주행을 하는 데서도 이 점은 잘 드러난다. 적폐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 조금도 과하지 않은 인사들을 중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적폐의 일부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서중석 : 거듭 얘기하지만 박정희나 김종필한테는 '상식적으로 안 맞는다', 이게 통하지 않았다. 일부 최고위원까지 포함한 다른 정치 세력을 다 묶어놓고 자기들끼리만 뭘 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지 않나. 그리고 자유당계를 대거 포섭했다. 나중에 공화당 간부 중에서 군인 다음으로 많이 차지하는 게 자유당계다. 이것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가고 나도 항상 의아했다. 그러나 이런 점은 있다. 박정희가 1962년에 쓴 <우리 민족의 나갈 길>, 박정희의 사상과 의식이 가장 잘 담긴 책으로 보는데 어쨌든 이 책도 그렇고, 1963년에 쓴 <국가와 혁명과 나>나 박정희의 다른 어떤 글을 봐도 이승만 대통령을 직접 비판하는 대목을 찾아보기 어렵다. 소설가 이병주가 쓴 글에도, 쿠데타 전 부산에서 술 마실 때 박정희가 이상하게 이승만을 직접 욕하지는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난 이런 걸 보고 참 놀랐다. 박정희 관련 자료를 많이 봤지만, 이승만을 직접 비판하는 걸 찾기가 어렵다. 자유당을 욕하는 것도 거의 안 나온다. 1963년 이후에는 욕을 좀 덜한다고 하더라도 1962년 <우리 민족의 나갈 길>에서는 자유당을 강하게 비판해도 되는 것 아닌가 싶은데, 그렇지가 않더라. 그때는 누구나 자유당을 비판했다. 4월혁명 이후에는 자유당 비판이 보통 강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게 별로 없다. 이와 달리 장면 정권에 대해선 하나의 장을 만들어서 엄청난 비판, 사실상 비방과 중상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다. (박정희가 "이승만 노인의 눈 어두운 독재"라는 정도로 비판한 대목이 있긴 하지만, 반공을 강조한 장면 정권을 용공 세력으로 몰아가는 등 제2공화국을 사실과 다르게 몰아세운 것에 비하면 이승만 정권을 겨냥한 강도 높은 비판은 훨씬 적다. <편집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쉰여섯 번째 편도 조만간 발행됩니다. 페이스북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미투데이 보내기 요즘 보내기 C로그 보내기 구글 북마크 김덕련 기자, 최하얀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세월호 유가족 ‘노숙자’라며 밥한끼 주겠다는 새누리”


유경근 대변인 “돈으로 가족 분열시려는 의도”…조동원 “그래서 ‘쇼한다’는 것” 김태흠 질타 입력 : 2014-08-02 11:57:16 노출 : 2014.08.02 12:29:48 강성원 기자 | sejouri@mediatoday.co.kr 새누리당 의원들이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향해 연이어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세월호 참사 100일이었던 지난달 24일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세월호는 교통사고’라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음에도 지난 1일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이 또 다시 단식농성 유가족들을 ‘노숙자’라고 폄훼했다. 김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국회에서 단식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 “국회에서 노숙자들처럼 저렇게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은 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유가족들을 노숙자라고 운운하는 그런 망언은 거의 매일해서 이제 새롭지도 않고, 결국 세월호 참사나 가족을 바라보는 새누리당 전반의 인식이 저급하다는 것”이라며 “새누리당 의총이 끝나자 바로 그날 오후에 국회에서 빨래 좀 걷어달라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변인 이치열 기자 truth710@ 유 대변인은 새누리당이 다른 한쪽에서는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 보상·지원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 “반복되는 망언에 대한 사과와 인식 전환이 없는 상태에서 유가족 지원을 위한 일대일 면담을 하겠다는 얘기는 돈을 앞세워 가족들의 생각을 왜곡시켜 우리를 분열시키겠다는 것”이라며 “노숙자들 불쌍하니까 밥 한 끼 주겠다는 이런 인식인데 전혀 반갑지 않고 새누리당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믿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가족대책위는 새누리당의 세월호 피해자 지원대책에 대한 공식 입장을 오는 4일 밝힐 예정이다. 유 대변인은 “진상규명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보상을 해준다 해도 절대로 받지 않을 것”이라며 “충분한 진상규명이 이뤄진 후 국가의 책임이 명확하게 드러나면 피해보상은 이미 정해진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법적 절차에 의해 진행될 문제”라고 설명했다. 한편 김태흠 의원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노숙자로 비하한 것에 대해 조동원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은 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선거가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구태가 돼가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며 “‘노숙자’니 ‘교통사고’니 하는 일부 의원들의 발언과 행태는 구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그런 발언으로 갈등을 유발하고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수요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없도록 새누리당이 진심을 다해야 한다고 부탁했다”면서 “그러니까 선거 때만 되면 ‘쇼한다’고 그러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강성원 기자의 트위터를 팔로우 하세요. @ sejou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