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회 에너지·자원 전문 박현숙 선임비서관 "8억→140억 배럴 뻥튀기, 국정조사 필요"
"2020년 산업통상자원부(아래 산업부)는 '탐사 자원량이 약 8억 배럴'이라고 밝혔는데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최대 140억 배럴'이라고 했습니다. 불과 4년 만에 17배 가량 뻥튀기된 겁니다."
10년 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아래 산자위) 소속 의원 보좌진으로서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문제를 파고들었던 박현숙 선임비서관(이상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그때 하베스트 사업 인수와 지금 동해 (포항 영일만) 시추 계획은 닮았다"라고 꼬집었다.
박 선임비서관은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윤석열 정부의 동해 석유·가스 탐사 시추 계획을 강하게 비판하며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이명박·윤석열 정부) 둘 다 가능성에 베팅하고 있고, 자문사와의 검은 거래 의혹이 불거졌으며, 대통령 해외 순방의 발판으로 삼고 있죠. 기본 지표를 부풀렸다는 점도 공통점입니다. 더해 두 사업 모두 대통령이 발표했다 보니 정부 입장에선 무조건 사업을 시작해야만 하죠. 정치권이든 언론이든 모두 윤석열 정부의 칼춤에 놀아나고 있습니다."
국회 내 에너지·자원 전문가로서 소셜미디어에도 적극 비판하는 글을 올려온 박 선임비서관은 "(윤 대통령을) 제지할 방법은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산업부, 한국석유공사(아래 석유공사) 등이 절차를 제대로 이행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며 "탐사 시추 계획이 해외자원개발법과 해저광물자원개발법 등 관련 법을 준수하며 수립된 것인지를 따져야 한다. 법을 위반했다면 탐사 시추를 제지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박 선임비서관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대국민 사기극 블랙코미디 보는 느낌"
- 지난 3일 윤 대통령이 국정 브리핑에서 "최대 140억 배럴에 이르는 석유와 가스가 동해에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발표했다.
"140억 배럴이라는 수치에 깜짝 놀랐다. 지난 2020년 산업부가 국회에 제출한 성과보고서에는 탐사 자원량(석유나 가스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양)이 약 8억 배럴로 적시돼 있다. 호주 최대 석유회사인 우드사이드와 공동으로 진행한 물리탐사 결과다. 그런데 어떻게 4년도 안 돼 자원량이 17.5배나 늘어난 140억 배럴이 될 수 있나. 참고로 MB 정부가 추진한 사업들에서도 탐사 자원량이 늘어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특히 브리핑 이후 언론이 일제히 '산유국', '포항 앞바다 석유매장량', '30조 경제효과' 등을 거론하는 것을 보며 황당했다. 수치가 부풀려진 것은 물론이고, 경제성이 있을 때 쓰는 '매장량'이라는 용어가 잘못된 방식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마치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여론을 호도한 것이다. 현시점에서 올바른 용어는 '매장량'이 아니라 '탐사 자원량'이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첫 국정브리핑이었는데, 대통령이 대국민 사기극의 주인공이 되는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느낌이었다."
- 최근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탐사 자원량이 17.5배나 늘어난 것에 대한 해명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는데.
"해외자원개발법 제5조와 해저광물자원개발법 제12·14조에 따르면 석유, 가스, 광물의 주인은 국가이고 영토 내에서 탐사나 채취를 하려는 공기업이나 민간기업은 반드시 산업부에 구체적인 계획을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탐사할 면적은 어느 정도인지, 그곳에 자원은 얼마나 묻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지 등을 신고하라는 것이다.
나아가 탐사 내용에 변경 사항이 있는 경우에도 산업부에 보고하고 검증을 거치게 돼 있다. 즉 법에 따르면, 동해 심해 탐사 자원량이 8억 배럴에서 140억 배럴로 변경됐다는 건 산업부가 이 같은 변경 사항을 심의하고 검증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현재 불거진 논란들을 보면 제대로 된 심의를 거친 건지 의문이다."
- 지난 7일 동해 심해 탐사 분석을 수행한 액트지오(Act-Geo)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진행한 기자회견은 어떻게 봤나.
"해당 기자회견은 석유공사가 주최하고 아브레우가 발언한 현장이었다. 석유공사가 판을 짜고 아브레우가 호응한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으로 봤다. 당시 기자회견의 핵심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액트지오를 둘러싼 각종 의혹 해명'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최대 140억 배럴 발표'였다.
아브레우는 지질학계의 세계적 권위자다. 지금껏 쌓아온 권위가 이렇게까지 훼손된다면 석유공사와 손절한 뒤 명예훼손 소송 등 법적으로 대응하는 게 일반적인데, 그는 액트지오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궁색한 변명만을 이어갔다. 스스로 권위를 깎아내린 거다.
또 아브레우는 기자회견에서 전문용어를 잔뜩 사용하며 140억 배럴의 유전 가능성에 대한 지식을 자랑했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그의 말을 이해하기 쉬웠을까? 전문가들이 어려운 말을 쓰면서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학계 내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는다. 진짜 전문가는 어려운 용어를 보통 사람들도 이해하기 쉽고 명확하게 전달한다. 그 회견에서 국민들은 '산유국', '가능성 높다'라는 내용 정도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게 석유공사와 아브레우가 합작한 속임수 전략이라고 본다."
- 세금 체납, 주소지 문제, 석유공사 동해탐사팀장 학연 논란 등 액트지오 관련 여러 문제가 제기됐다. 그러나 산업부와 석유공사는 "계약은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진행하는 사업이 정말 유망하고 사업성이 있다면 석유공사가 '의혹투성이인 액트지오와의 계약을 위약금을 내고서라도 취소하겠다'라고 말한 뒤 다른 업체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석유공사가 왜 액트지오와의 계약을 지켜나가려고 하겠나. 석유공사와 개발 사업을 진행할 다른 업체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업체가 억지로 거짓 자문을 해주겠나. 우드사이드가 철수한 상황에서 개발 사업은 계속 이어가야 하니 학연이 얽힌 액트지오를 선택한 것 같다. (제대로 된 회사를 택하지 않으니) 액트지오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올 수밖에 없다."
"액트지오 계약 해지하고 산업부 장관·석유공사 사장 책임져야"
- 석유공사의 문제점은 MB(이명박) 정부 때도 불거졌는데.
"석유공사는 MB 정부의 하베스트 인수 사업 실패 이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특히 2022년 말 기준 석유공사의 부채가 19조 7951억 원에 달했는데, 이는 모든 자산을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하는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석유공사가 가스공사 등 다른 에너지 공기업과 통합하려면 약 8조 원이 필요하다. 기획재정부가 8조 원을 써야 한다는 뜻인데 어떤 정부가 8조를 더 주고 공기업을 망하게 하겠는가. 그래서 MB 정부 이후 들어선 그 어떤 정부도 쉽사리 공사 통합이나 매각을 진행하지 못했다.
공사 통합이 어렵다면 석유공사를 비롯한 에너지 공기업들은 새로운 주특기를 개발해 사업을 다각화해야 한다. 가령 석유공사의 경우 탄소 포집 기술(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을 연구하는 식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에너지 정책이 급변해 쉽지 않았다. MB 정부는 자원외교를 독려했고, 박근혜 정부에선 그 실패를 뒷수습하느라 아예 논의가 없었다. 문재인 정부에선 탈원전 등으로 정치 논쟁이 시작됐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에너지 정책의 정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에는 철학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이 정부가 유일하게 외치는 것이 '원전 생태계 복원'인데 그건 철학이라고 볼 수 없다. 하나의 산업일 뿐이다. 이처럼 역대 정부는 석유공사를 정리하지도 변화를 이끌지도 못했다. 계속해서 석유공사라는 폭탄을 돌린 꼴이다."
- MB 정부와 윤석열 정부를 비교한다면.
"크게 다섯 가지가 비슷하다. 첫째 가능성에 베팅했다는 점이다. 하베스트 사업 인수 당시에도 '바가지 쓰는 것 아니냐'라는 의견과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서둘러 매입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상존했다. 당시 석유공사 이사회는 후자를 택했고 4조 2000억 원을 주고 하베스트를 샀다. 그러나 2023년 말 기준 회수할 수 없는 금액(손상차손)이 6조 원에 달했다. 이번 계획도 가능성에 베팅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둘째, 자문사와의 검은 거래가 비슷하다. 당시 하베스트 관련 컨설팅을 '메릴린치'라는 회사가 했다. 수백억 원이 자문료로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메릴린치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부도 위기 직전 회사였다. 결국 나중에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인수합병 당했다. 대통령 측근과 메릴린치가 연결돼 있다는 의혹도 언론을 통해 제기됐다. 현재 액트지오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혹이 제기됐다.
셋째, 정권이 사업을 홍보해 해외 순방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MB는 당시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우리나라'를 이야기하며 해외 순방을 다녔다. 실제로 그의 저서 <대통령의 시간>을 보면 '임기 중 내가 해외 순방을 하면서 맺은 양해각서(MOU) 중 자원 사업과 관련된 양해각서가 30건'이라고 밝혔다. 그 MOU를 맺은 사업은 지금 알게, 모르게 다 사라졌다. 사라지기만 했으면 다행인데, 몇몇은 악성 자산이 되어 공기업들을 절벽으로 밀고 있다. 이번 계획도 마찬가지다. '산유국'이라는 표현으로 홍보를 하고 이번에 윤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3개국에 자원외교 순방을 하러 갔다.
넷째, 자원량 가치를 결정하는 기본 지표를 부풀렸다는 점이다. 하베스트를 2009년 1월에 인수할 당시 MB 정부는 '매장량 가치가 2억 1990만 배럴'이라고 과대 홍보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사업을 해보니 실제로 확인된 매장량은 1억 9500만 배럴이었다. 이번에 동해의 경우 8억 배럴을 140억 배럴이라고 뻥튀기했으니 이쪽이 더 심각해 보인다.
추가로, 두 사업 모두 대통령이 발표했다. 장관도 아니고 대통령이 발표하게 되면 정부에서는 사업을 무조건 시작해야 한다. 시작하면 어쨌든 성과를 내야 하므로 그 과정에서 수치를 부풀리거나 조작할 우려도 있다. 하베스트의 경우 깡통 유전 판명이 난 뒤에도 사 가려는 기업이 없어 철수도 못 한 채 계속 투자 중이다. 동해 시추도 향후 깡통 판정이 나면 복구비를 투자해야 한다. "
- 정부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의혹투성이의 개발은 성공하지 못할뿐더러 소모적인 정치 논쟁의 시작이 된다. 깨끗하게 의혹을 해명할 방법을 택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액트지오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 또 산업부 장관, 석유공사 사장 등은 이 사태에 책임져야 한다.
특히 정부와 정치권은 장기적인 에너지 정책을 수립해야 하고, 정권에 따라서 손바닥 뒤집듯 에너지 정책을 바꾸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석유공사 사업에 '에너지 전환'이라는 글로벌 추세를 반영해야 한다. 탄소 포집, 부유식 해상 풍력 사업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에 예산을 더 배정하는 식으로 말이다."
- 일단 윤석열 정부는 오는 12월 첫 시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윤석열 정부의 석유 시추라는 미친 무당의 칼춤에 정치권과 언론도 합류한 것처럼 보인다. 이를 제지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계획이 해외자원개발법과 해저광물자원개발법 등 관련 법을 준수하며 수립된 것인지를 따지는 것이다. 법을 위반했다면 탐사 시추를 제지할 수 있다.
또한 액트지오와 진행한 물리 탐사 결과 어떻게 140억 배럴로 탐사 자원량이 급증했는지 살펴야 한다. 국회가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하거나 국정조사를 진행하는 방법이 있다. 그 결과 혐의가 분명하게 확인된다면 수사기관에 수사의뢰 또한 요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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