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열 칼럼] 철도 지하화라는 '헛소리'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22. 04:59:59 최종수정 2024.06.22. 09:40:39
여야가 극한 대치를 이루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다. 종부세를 없애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선거를 앞두고는 권력 쟁탈전을 치열하게 벌이지만, 세금, 혹은 토목 개발이나 대규모 SOC 이슈에서만은 사람들의 욕망에 손쉽게 편승하며 아늑하게 동거한다.
처음엔 그냥 '정치 구호'인 줄 알았는데 여야가 합심해 지난 1월 철도 지하화 특별법을 통과시키면서 농담이 아니게 됐다. 이 법이 얼마나 부실하냐면, 국회 입법조사처가 '철도 지하화 사업, 특별법만으로 부족하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냈을 정도다. 국토부는 10월 말까지 전국 17개 광역단체의 '철도 지하화' 사업 제안서를 받겠다고 한다.
기술이 발전해서 가능하다고 하는데,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자원 배분의 문제이고,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공공성을 헝클어트리는 문제다. 철도 주변에 사는 몇몇 사람들을 위해 대한민국의 자산인 공공 철도 네트워크를 담보로 잡는 것이 맞는지, 철도 주변에 사는 몇몇 사람들의 집값 상승과 개발 호재를 위해 공적 자원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지 판단해야 하는 윤리의 문제이고 가치의 문제다.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는 철도 지하화와 별다른 관계가 없는 곳에서 잘 살고 있다.
'철도 지하화'는 윤석열 대통령과 여야가 공히 이견이 없는 것 같다. 대통령은 선거 기간 '민생 토론회' 명목으로 전국을 돌면서 '철도 지하화' 사업을 약속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총선 당시 경기도 수원을 방문해 수원역~성균관대역 지하화 공약을 내놓고 "육교와 철도 부분 덮이고 공원, 산책로, 맨해튼 스카이라인 같은 것이 생긴다고 생각해보자"고 상상력을 자극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질세라 철도·광역급행철도(GTX)·도시철도의 도심 구간을 지하화하고 그 부지에 용적률·건폐율 특례를 적용해 주거복합 시설을 개발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총선 공약을 발표했다.
하지만 한마디로 '철도 지하화'는 헛소리(bull shit)다. 이 대역사를 실천하는 데 드는 예산은 추정치만 무려 80조 원. 그 돈이면 대한민국의 철도 망을 그대로 복사해 새로 하나 더 깔 수 있다.
서울을 예로 들어보자. 여야 공약을 적용하면 서울역부터 군포, 의왕시까지 1호선 철로를 대심도(지하 40미터 이상) 밑에 집어 넣게 된다. 당장 신도림 역은 대심도 GTX-B가 통과하기로 돼 있다. 신도림 1호선 철로를 대심도 GTX 밑에, '대대심도'로 우겨 넣겠다면 대체 지하 몇미터까지 파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아파트 20층 높이의 지하로 뚫고 내려가 기차를 타라는 것이다. 경부선 라인 서울 도심 주요 축을 온통 공사판으로 만들겠다는 거다.
'단군 이래 최대 토목 사업'으로 불렸던 경부고속도로 건설비가 현재 시세로 환산하면 1조4000억 원 가량이다. KTX 고속열차 경부선을 뚫는 데 20조 원 들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도 22조 원이고, 동해에 석유 시추공 100번을 뚫어도 10조 원에 불과(?)하다. 80조 원이면 동해에 석유 시추공 800번을 뚫을 돈이다. 이럴 거면 민주당은 왜 동해 석유 시추에 반대하는가?
재원 조달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철도 지하화 특별법을 설명하면서 "현 철도부지, 도로부지를 현물출자할 수 있게 해서 민간 투자를 받아 자금을 마련하고, 사업을 추진해서 생긴 유동성과 이익을 잘 분배하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했다. 공공 자산인 철로, 역사, 철도 부지 등을 몽땅 금융 기관에 담보 주고 돈을 빌리겠다는 것이다. 철도 지하화로 인해 새로 생길 부지를 담보로 민간 자본을 유치하겠다고 한다. 지자체도 채권을 발행해 '주민 숙원 사업'이라는 철도 지하화에 뛰어들 것이다. 국가와 지자체 역량을 쏟아붓는데, 철도 지하화로 '혜택(?)'을 보는 주민들은 대체 몇 명 정도 되는 규모인가?
철도 시설이라는 공공재를 담보로 금융권에 내맡기는 건 위험한 도박이다. 그만큼 부채를 확보된 '지상' 공간에서 이익을 극한대로 뽑아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 지도 의문이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나 상업 시설을 세워야 한다. 성공 가능성도 불투명한데다 '부동산 장사'로 귀결되는 꼴이다. 금융 자본과 부동산 자본에 공공 시설을 내맡기는 걸 누가 허락할 수 있는 건가.
공공 개발? 민간업자가 돈을 투여하고 은행과 금융권이 총 동원되는데, 철도를 지하에 넣어 생기는 부지의 공공적 성격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철로를 따라 생긴 다란 형태의 부지에 '대규모 개발'이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쳐도 거주지 아래 지하를 뚫고 가는 철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사람들이 많을까. 당장 대심도 지하에 GTX가 뚫리는 곳 위에 자리잡은 아파트 주민들이 '우리 집 지하에 열차가 통과하는 게 웬말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시설 유지 비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를테면 강릉역 KTX 탈선 사고같은 게 지하 50미터 아래서 벌어졌다고 생각해보자. 사고 수습과 보수를 떠나 승객들의 안전은 어떻게 담보될 지 아득하다. 방공호로 설계된 구소련 지역의 지하철에서나 볼 수 있는 엄청난 길이와 속도의 에스컬레이터는 노약자와 장애인 등 승객들의 접근성을 현저히 떨어뜨릴 것이다. 안보 문제도 빠트릴 수 없다. 지하 50미터 밀폐된 공간에 화학가스가 살포된다면? 지하 50미터 대심도의 공기질은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건설만 끝냈다고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다. 일반 지하철 유지 비용의 수십배, 수백배가 더 들 것이고 그건 고스란히 운임 상승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흔히 드는 해외 사례가 독일의 슈트트가르트21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처음 시작할 때 2009년 45억 유로가 들 것으로 예상됐지만, 투여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2022년에 91.5억 유로, 약 13조5000억 원이 들 것으로 예상됐다.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역사 하나와 철로 몇 가닥 지하로 넣는데 드는 돈이다. 지하화 된 슈트트가르트 역의 예상도를 봐도, 대체 어디에서 개발 이익을 건질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풀밭 공원 아래 있는 커다란 철도역이다. 그밖에도 환경 훼손, 문화재 훼손 등 수많은 논란들이 현재 진행형이다.
프로젝트 착수 명분도 우리와 전혀 다르다. 중앙역의 17개 트랙 두단식(철도역에서 철로가 끝나는 곳을 막은 승강장 형태) 구조를 8개 트랙의 관통식 구조로 변경해 교통 비효율을 개선하고 플랫폼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게 목적이었지, 우리처럼 철도를 '혐오시설'로 둔갑시켜 철로 부지를 개발해서 돈을 벌자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모달 시프트(교통 체계 전환)'가 주목받는 기후위기 시대에 철도 운송 시스템을 늘려가야 하는 시대 과제에도 역행한다. 일단 역사와 철로를 지하에 넣고 나면 확장은 거의 불가능해지고, 가능하더라도 막대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대륙 철도를 꿈꾼다면서 일부러 천문학적 돈을 투입해 철로의 확장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철도 용량 확충도, 속도 개선도 없다. 단지 지상의 철로와 시설을 땅 속에 집어 넣는 데에 80조 원, 그 이상이 들 지도 모른다.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철도 주변의 몇몇 주민과 일부 개발업자 뿐이다. 수십조 원의 막대한 공적 자원을 들인 국책 사업의 개발 이익을, 철로 주변에 사는 극소수의 부동산 보유자들이 가져가는 문제가 생긴다. 왜 공적 자원을 소수의 주민들과 개발업자들 이익을 위해 써야 되는가? 서울은 철도가 많은 도시도 아니다. 런던에는 서울역 규모의 역만 11개, 파리에는 7개가 있다. '철도 왕국' 일본의 도심 철도는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그 많은 세계 유수의 도시들이 왜 '혐오 시설'을 '지하화'하지 않고 있는가?
역사적으로 도시의 발전은 철도의 발전과 함께 했다. 역사와 철도 시설 주위에 사람이 모여들고 번영했다. 도시의 발전을 가능케 한 공적 교통 네트워크를 이제 와서 '혐오 시설'로 낙인찍고 있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자산을 금융 자본에 내맡기려 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정신 차려야 한다. 철도 지하화는 미친 짓이다. 그 돈 있으면 제발 '민생'을 돌보는 데 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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