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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6일 월요일

미일 대 중러의 견제와 협력구도 속 결단 요구받는 한국외교


강태호 2015. 0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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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푸틴 박근혜 대통령 정상회담

 또 다른 결단이 요구되는 5월의 모스크바 전승절 행사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 체제) 배치와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참가 문제는 미, 중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안이다. 한국은 지금 이 서로 충돌하는 두 개의 현안을 놓고 결단을 요구받고 있다. 정부관계자는 “사드는 안보측면에서, AIIB는 경제실익 측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둘다 내부적으로 검토를 끝내고 결정을 내렸으나 눈치를 보며 공식발표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애기도 나오고 있다.  이는 사드에 대한 중국의 반발을 AIIB 참가로 무마하려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하고 그 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사안을 연계시키는 이런 결정은 자칫하면 미중 모두에게 ‘꼼수’로 비춰질 수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사드는 애초부터 한반도의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군사적 조처라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쟁점은 중국이 제기하는 안보위협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입장을 보일 것인가다. 반면에 AIIB 참가는 지배구조, 의사결정의 투명성 등 문제라면  말 그대로 그런 문제가 해소될 수 있느냐의 문제다. 흥정하듯이 ’주고 받기’할 사안이 아닌 것이다. 
 이들 문제처럼 쟁점현안으로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한국외교가 결단을 요구받고 있는 보다 더 근본적인 현안이 존재한다. 다가오는 5월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2차대전 승전 기념일(전승절) 행사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 위원장이 참석 의사를 밝혀 놓은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박 대통령의 전승절 행사 참가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진전과 남-북-러 삼각협력을 한 단계 진전시키기 위한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한채 지난 7년여 뒷걸음질 치고 있는 남북관계의 극적인 전환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따라서 한반도 정세의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사안이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 거 아닌가라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통상 정상의 해외 방문은 보통 2달 전에는  조율되고 최소 한달 전에는 통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한러 경제협력의 한계와 잠재적 가능성
 
  우선 신범식 서울대 교수(러시아)가 지적하고 있듯이 임기 3년차(임기 내 가시적인 성과를 올리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를 맞는 박근혜 정부와 안팎의 위기를 맞으며 경제회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푸틴 정부에게 2015년은 매우 중요한 시기일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무시돼 왔지만 한국경제가 위기 상황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적 측면만 보더라도 러시아와의 협력은 전략적 의미가 있다.
  정여천 대외경제정책 연구원에 따르면 수교 이래 25년의 대부분 기간 동안 한·러 간 경제교류는 빠르게 성장했으며, 러시아는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의 무역상대국 순위에서 10위로까지 부상하였다.  거의 미미한 수준이었던 한·러 간 무역은 국교 수립을 전후하여 급증하기 시작해  1990년대 중반에  30억 달러까지 성장했으며, 2011년에는 200억 달러를 넘어서 2014년에는 257억 달러를 기록했다. 수출의 측면에서 보면 러시아는 한국산 자동차 수출에서 2번째 시장이다.  수입의 측면에서 2000년대에 들어서 러시아로부터의 수입품 중에서 가장 중요해진 것은 원유이다. 러시아산 원유의 수입은 1990년대 말에 사할린에서 원유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시작되었는데, 오늘날 한국의 러시아로부터의 수입 품목 중에서 원유는 단일품목으로 금액 기준 4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대러시아 수출에서 자동차 및 관련 부품의 수출을 합친 비중과 유사한 수준이다. 러시아산 원유의 수입이 꾸준히 증가한 결과 최근까지 한국의 전체 원유 수입액 중에서 러시아산 원유의 비중은 약 5%까지 확대되었다. 2009년부터 러시아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도 시작됨에 따라 한국 경제의 러시아산 에너지자원에 대한 수입의존도는 한층 높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무역규모만 보더라도 상대적인 순위가 아닌 절대액으로 보면 러시아는 한국의 핵심적인 무역상대국이 못된다.  한국의 총 무역규모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2% 내외에 머물고 있다.  실제 양국간 경제관계는 실제로 도달할 수 있는 잠재적인 수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최근에 수행된 한 연구 (정여천 외, 『전략적 동반자 시대의 한러 경제협력』, 2010,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는 2000년대에 기록되었던 한-러 간의 무역 규모가 당시의 두 나라의 경제적 조건을 토대로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규모의 40~50%에 불과했던 것으로 평가된 바 있다. 게다가 이런 경제교류마저도 최근 1~2년 사이에는 러시아 경제의 침체로 인해 증가 속도가 대폭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작년(2014년)의 경우, 한국의 대러시아 수출액은 전년 대비 9% 정도 감소했고 이로 인해 한국의 대러시아 무역수지 적자폭이 확대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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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울란우데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러-북 관계의 발전과 남-북-러 삼각협력의 가능성

  그에 반해  2011년 북러 정상회담 이후 최근 들어 두드러지고 있는  북러 협력관계는  전문가들 사이에 양국 관계의 르네상스 시기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신범식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기 몰리는 상황과 더불어 이런 러시아의 필요에 북중관계가 소원해진 데 따른 북의 필요가 서로 맞아 떨어지면서 양국관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지정학적 분석 보다는  이런 협력관계가 공유하는 전략적 이익을 바탕으로 중기적으로 상당한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입각해서 바라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북과 러가 미국이라는 비우호 세력을 상대해야 하며, 국제정치적 고립을 탈피해야 하는 동일한 모티브를 가지며,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의 지나친 영향력 확대에 대한 우려도 작동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와 북한의 협력은 믿기 어려울 정도의 규모와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두나라는 지난해 10월 250억달러 규모의 자원개발과 철도망 현대화를 연계시킨 ‘포베다(승리) 프로젝트’에 합의한 데 이어 북-러는 리수용 외무상,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그리고 김정은 제1위원장의 특사로 최룡해 북한 정치국 최고회의 상무위원의 잇딴 러시아 방문을 통해 합동군사연습을 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 총참모장은 지난 1월30일(현지시간) 러시아 군사정책 방향을 밝히며 북러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전승절 행사가 열리는 5월 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을 예고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상호 이익이 되는 부분을 면밀히 검토하여, 무역 수준을 조속히 10억 달러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그 내용과 방식이다. 승리 프로젝트를 들여다보면  러시아가 북의 철도를 보수하고 희귀자원 광산을 개발하는 역할을 수행하면 북은 이에 희귀 광물로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 1단계라면 러시아는 그 대금을 다시 북의 산업시설을 현대화하는 사업에 재투자하고, 이 현대화 사업의 파트너로 러시아 기업이 참여하는 사업 진행 구도를 진행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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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극동 코즈미노항의 원유저장 시설

  이를 통해 러시아는 자국 기업의 국제적 경쟁력을 높이고, 북은 자국 내 산업 시설의 현대화를 진행시키는 윈-윈 협력이 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제협력을 위한 러시아연방 상공회의소 산하 ‘기업협의회’가 2월4일 발족했다.러시아 외무부, 경제개발부, 극동개발부, 주러 북한 대사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설립된 ‘기업협의회’의 주요과제는 러시아 기업 및 단체들이 북한 내 사업 파트너를 찾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또 기업협의회는 다양한 무역투자 프로젝트 개발과 사업 박람회 및 회담을 주관하는 업무를 맡았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2월 26일에는 러시아 극동개발부 알렉산드르 갈류슈카 장관과 북한 대외경제성 리용남 장관 주재하에 첫 번째 공식회담인 북러 경제협력위원회가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는 러시아 철도공사(Russian Railway) 철도 교량의 브릿지 그룹(Bridge Group), 러시아 수력발전기업 루스하이드로 (Rus Hydro)의 계열사인 라오 에스 보스톡(Rao Es Vostok), 극동지역 광산지질탐사기업 노던 마인즈(Northern Mines),러시아 자동차 제조업체 가즈그룹(Gazgroup), 생의약품 전문회사 나노렉(Nanolek), 제분회사 알타이 플로어 밀즈(Altai Flour Mills) 등 많은 러시아 기업이 참가했다고 <러시아 포커스>는 전했다.
이에 따르면 북한 철도 현대화 사업 포베다의 일환으로, 평양에서 남포를 잇는 철도구간의 설계 및 건설 준비 작업을 브릿지 그룹이 2015년 말까지 완료하기로 했으며,  러시아 상업용 차량 제조업체인 가즈그룹은  자사 4.5t 중형 트럭(Gaz 3309)을 북한에 공급하는 것과 북한 김책제철소 현대화에 대해서 협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들어 두드러진게 동해권을 잇는 통합 전력망 계획이다. 러시아동부전력계통회사인 라오 에스 보스톡은 지난 1월22일 대북 전력공급 사업의 기술 경제적 타당성 조사를 맡을 기업의 입찰에 들어갔다. 알렉산드르 아브라모프 극동연방대학교 자연대 수리경제학과 교수는 “러시아-한반도, 그리고 사할린-일본을 잇는 전력 연계망 건설로 동해를 둘러싼 ‘통합 전력 그리드’를 구축함으로써 이 지역의 에너지안보협력이 강화될 것”이며 “현재로선 석탄, 가스, 석유를 원료로 내다파는 것보다 전력을 파는 것이 나은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동해를 위한 전략 
  
  박 대통령은 2013년 10월18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한국수출입은행,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공동 주최로 ‘유라시아 시대의 국제협력 컨퍼런스’에서의 기조연설을 통해 유라시아 지역 국가들의 동반 성장·번영을 위한 복합 물류 네트워크 구축을 강조했다. 이른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다. 박 대통령은 유럽과 아시아를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의 대륙으로 만들기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남북한과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연결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역내 전력망과 송유관 등의 연계와 국가 간 무역·투자 장벽 해소도 과제로 제시했다. 이  연설은 그해 9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하고, 11월의 푸틴 대통령 방한을 앞둔 시점에서 이뤄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시베리아 극동연해주를 개발하겠다는 신동방정책을 추진해왔다. 신동방정책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만난 것인데 2013년 11월 한러 정상회담에서는 무려 35개항의 합의문이 발표되었다. 박 대통령은 그 뒤 2014년 3월 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한반도 통일론과 연계시켰다. “한반도를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해 동아시아 전체의 성장 동력이자 번영의 불빛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제가 꿈꾸는 한반도 통일구상입니다.”
  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역사적 맥락과 한반도의 현실을 반영한 비전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동북아 역내 국가들과의 수출입 교역은 전체의 40%에 육박하며, 특히 한국의 대 중국 수출은 2013년 기준으로 전체의 26.1%에 달했다. 이는 미국(11.1%), EU(8.7%), 그리고 일본(6.2%)에 수출하는 물량을 합한 것보다 더많다.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은 그 잠재적 규모에서 현재 보다 2배 이상 확대될 여지가 있다. 
   엄구호 한양대학교 교수(러시아) 역시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대륙경제와의 경제적 통합을 통해 한국 경제에 새로운 모멘텀을 주고 북방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통한 국가간 신뢰제고로 한반도 안정은 물론 통일에 우호적 국제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현재의 남북관계를 보건데 북한의 직접적 변화를 통한 전략적 협력으로 나아가는 방식은 흡수통일이라는 북한의 반발로 인해 벽에 부닥칠 수 있다는 것이고 그 보다는 북한 변화를 유도하는 동북아 협력체제 형성이라는 우회적 접근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대북정책이 윈윈할 수 접점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러시아를 포함시키는 남북러 3각 협력 그리고 특히 에너지 협력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핵심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 구축된 경제관계에 대해서 북한은 실제로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한-러 사이에는 북한을 참여시키는 (또는 활용하는) 경제협력 사업들이 끊임없이 제안돼 왔으며, 이 중에서 상당수는 비록 아직까지 성공적인 결실을 맺은 것은 없었으나 실제로 시도됐다. 남한과 러시아의 극동지역 사이에 위치하는 북한의 지리적인 입지를 활용하자는 것이 이러한 제안들의 가장 주된 논거가 되었으며,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오랜 정치적, 외교적 우호관계나 남한과 북한 사이의 특수한 관계를 활용하자는 것도 이러한 제안들의 추가적인 근거가 되어왔다. TSR-TKR 철도 연결 사업이나 러시아 극동지역과 남한을 연결하는 파이프라인 건설 사업들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이밖에도 러시아와 한반도 사이의 송전망 건설 사업, 러시아 극동지역에서의 한·러 간 공동 개발사업에 대한 북한 노동자의 활용 방안, (북한 내 지역개발에 대한 한국과 러시아의 공동 협력 방안 북한의 나진항 개발과 관련된 러-북 간 협력 사업에 대한 한국의 참여 방안이 대표적이다) 과 같은 다양한 사업 방안들이 제안되었다. 소위 ‘남-북-러 3각 경제협력’으로 불리는 이와 같은 방안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유용한 지리적인 조건을 활용하여 이 지역의 장기적인 경제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 남북한 간 대화와 협력을 촉진하고 한반도 주변의 안정에 기여한다는 정치적, 안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둘 중의 어느 의미에서든 이러한 ’3각협력‘의 실현은 한반도 전체와 러시아 사이의 경제관계를 한 단계 더 심화시키게 될 것이 분명하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나진항을 통한 러시아 석탄의 수송 말고는 박근혜 정부의 실크로드 익스프레스와 한러 협력은 제자리 걸음이다. 이제 정책은 더 이상 구호와 이름 붙이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분단으로 대륙과 단절됐음에도 남한이 중국과의 협력을 확대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서해를 통해서였다. 마찬가지로 이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관점에서 동해를 시야에 넣는 환동해 네트워크를 통한 협력의 전략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한러 두나라가 장관급 전략대화 및 1.5트랙 미래비전 대화 등 공식 및 비공식 대화를 활성화하고 전략적 협력을 실현할 지혜를 모아 실천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정상간의 만남을 통한 한-러, 남북러, 남북관계의 전환을 위한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강태호 선임기자 kank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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