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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2일 일요일

인생의 비를 일찍 맞았을 뿐

김인숙 수녀 2015. 03. 22
조회수 777 추천수 0


이젠 지지 않을 거야


글의 주인공 청소년들은 살레시오 남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마자렐로센터>와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 현재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법원에서 ‘6호처분’이라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6호 처분’이란 소년법 제32조에 의한 보호처분을 말합니다. 비행성이 다소 심화되어 재비행의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 위한 법입니다. 센터에 머무는 법정기간은 6개월이며 퇴소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주인공 청소년들 가슴에는 대부분 아픈 가정사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 나이에 인생의 산전수전을 참 많이 겪었습니다. 이 글은 유혹과 열정, 막무가내 용기로 살았던 자신들의 경험을 진솔하게 들려주면서 그것을 통해 같은 청소년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을 전하는 또래 멘토들의 이야기입니다.   
 


인터넷에서 ‘가정 위탁 지원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위탁가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아동이 가정 내외의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친 가정에서 양육될 수 없을 때,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친가정의 역할을 대신해서 일정 기간 동안 아동을 보호 · 양육하는 가정을 말한다."

또 위탁가정 선정기준에는 아래와 같은 점이 분명히 들어가 있다. 

• 위탁아동을 돌봄에 현저한 장애 및 건강상의 질병이 없을 것
• 위탁받고자 하는 자 및 그 가족에게 범죄, 가정폭력, 아동학대, 알코올, 약물중독 등의 전력이 없을 것

나는 세 살 때부터 위탁가정에서 살았다. 부모가 나를 키울 능력이 안 되어 같이 살지 못했다. 그래도 엄마가 가끔씩 찾아와서 괜찮았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와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아줌마가 말했다. 
  “진아야, 엄마랑 연락이 안 되네. 걱정하지 마, 너가 잘 살면 여기서 오랫동안 살 수 있어.” 

힘없이 서 있었지만 속으로는 '아, 다행이다' 싶었다. 그 집 아줌마와 아저씨 나이는 50대였다. 위탁 된 아이들은 나 말고도 두 명이 더 있었는데 나는 등교를 못 할 정도로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밥은 항상 위탁 아이들 따로, 그 가족들 따로 먹었다. 아줌마, 아저씨가 자기 아이들을 더 좋아하겠지 생각했기에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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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학교에서 교장과 교사가 아이들을 성폭행하고 학대한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 중에서

어느 덧 4학년이 되었다. 그날은 수련회 가기 전날이었다. 자고 있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빨리 나오라고, 급한 일이 있다고 나를 불렀다. 나는 뭐지? 하고 나가 봤더니 아이들을 씻기고 있었다. 아저씨가 이제 너 씻을 차례라고 했다. 나는 내가 알아서 씻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또 뭐지? 하면서 아저씨가 때를 벗겨 주려고 그러나? 했는데 아니었다. 당한 것이다.    
눈을 뜨지 못했다. 이게 뭐지? 나는 이집의 하녀인가? 세상이 그냥 깜했다. 까만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았다. 나는 욕탕을 나와 방으로 뛰어가 장롱 속에서 펑펑 울었다. 울음소리가 들릴까봐 장롱 안에 숨어서.

괴롭힘은 계속 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울면서 아저씨에게 제발 하지 말라고 빌었다. 잘못했다고, 정말 잘못했다고 했다. 모르겠다. 그냥 그랬다. 그럼에도 아저씨는 나를 때려가면서 했다. 나는 견딜 수 없어서 한참 나중에. 아줌마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그랬더니 아줌마는 자기도 아저씨한테 많이 맞고 살았다면서 비밀을 말하듯 힘주어 속삭였다. 
 “이걸 말하면 진아 넌, 여기서도 못 살고 밖에서도 못 살아야.”

그러면서 어떤 사람한테도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다. 어린 나는 그 집이 아니면 못 살 줄 알고 엄청 비밀을 간직하면서 그냥 가만히 묵묵히 살았다. 꿈을 꾸면 나는 울면서 두 팔을 벌리고 달려가고 있었다. 어느 날은 비가 내리는 도로 위를, 어느 날은 눈 내리는 허허 벌판을 맨 발로 발가벗은 채 울면서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내 옆에도, 앞에도, 뒤에도, 옆에도, 그 누구도 없는 까만 밤. 꺼억꺼억 소리내어 울지만 꿈속에서도 내 울음소리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머리를 맞아서 병원에 입원도 했다. 아저씨가 들어올까 봐 방문을 잠그려다 테니스 채를 들고 들어오는 아저씨에게 머리를 맞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병원 의사가 왜 얘가 이렇게 다쳤냐고 물었을 때, 그 아저씨는 내가 장난을 하다 모서리에 찧었다고 했다. 나는 막 울었다. 그 당시 나는 음식이 넘어가지 않아 키 150에 몸무게가 30킬로그램이었다. 심한 빈혈에 걸어 다닐 힘도 없어서 누워 지낼 때가 많았다. 

중학교에 올라가니까 내가 할 일이 점점 더 많아졌다. 아이들 봐야지, 설거지도 해야지……. 아저씨에게 거부하면 맞고, 담뱃불로 지짐을 당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죽는다 하고 참을 수 있었다.
그 아저씨는 내가 당할 때마다 계속 울고 그러니까 이제는 억지로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며칠 후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온다며 나에게 자기 아들네 집으로 가라고 했다. 아저씨 아들은 결혼하여 아내도 있고 두 아이들도 있었다. 그 아들은 자기 아내가 임신을 했으니 부탁이 있다고 하면서 나에게 손을 대는 거였다. 그 아들은 수시로 나를 차 안으로 끌고 갔다. 내 자신이 너무 수치스럽고 참으로 불쌍했다. 햐얀 색깔 차. 나는 지금도 무서워 도망친다.

중 2때. 그날은 정말 못 참겠다, 싶었다. 나는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 저는 이제 못 참겠어요.”
  “무슨 일인데?…… 무슨 일 있었니?”
담임선생님은 남자였다. 그래서  
  “선생님한테 얘기하기엔 좀, 그래요. 상담 선생님께 얘기 할래요.”
모든 사실을 전해들은 담임은 분노하며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왜 빠져 나오지 못했느냐. 우시면서 말했다.
  “내가 미안하다. 내가 몰랐다.”
  “아니에요. 내가 말씀 못 드렸을 뿐이에요.”
선생님은 즉시 경찰에 신고 전화를 했다.

재판이 열렸다. 국민 참여 재판이었는데 나에게는 그러나 증거가 별로 없었다. 그때까지 생리가 없었기에 임신한 적도 없었다.
법원에서 그 아저씨는 철저히 거짓말을 했다. 웃옷을 걷어 올려 허리 보호대를 보여주면서 자기는 허리 수술을 해서 그런 짓을 못한다고 큰소리쳤다. 또 그 아줌마는 말하길, 자기네는 너무 억울하다고, 이제까지 키워줬더니 그 공도 모르냐며 나를 향해 쌍욕을 하며 내 머리끄덩이를 잡으려고 달려들었다.

아, 어른들이 저렇게 거짓말을 칠 수 있구나. 나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어리지만 여자인 내가, 이런 수치감을 느끼면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말할 뿐인데 왜 내가 욕을 먹고 있는가. 나는 너무 힘이 들어서 영상재판을 보겠다고 했다. 마지막 변론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제 자신이 부끄러울 거예요. 그리고 이런 일을 누가 거짓말을 하겠어요……. 저는 그 동안 내가 당한 그 만큼 이 사람들이 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 사람들은 진짜 정말 장난 아니게 화를 내면서 나에게 악을 썼다.
  “두고 보자. 내가 징역살고 나가면 너는 죽었어.”
그래도 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똑똑히 말했다.
  “그래요. 나를 죽일 수 있으면 죽여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벌을 받을 것은 똑똑히 받으면 좋겠어요.”
그때는 정말 말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그동안 내가 살았던 ‘위탁가정’은 선정 기준에서 한참을 벗어난 악몽의 집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나를 돌봐준다는 대가로 국가 지원금을 달마다 받았다.  

dogani2.jpg
*영화 <도가니> 중에서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친구에게


친구야!
그 후 난 위탁가정을 떠나 아동복지 시설에서 살게 되었어. 그때가 중 3.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친구 집에서 살았어. 친구네 집은 아빠가 안 계셨어. 그래서 들어간 거야. 거기서도 나는 예전처럼 학교를 잘 다녔고 성적도 좋았어. 난 모든 스트레스를 공부로 풀었어. 난 할 수 있어, 한 개라도 더 맞을 수 있어, 하면서. 난 지칠 때 더 공부를 했어. 나한테는 공부가 비타민, 사탕 같은 거였어. 무엇보다 그 사람들한테서 빠져 나오고 싶었어.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공부를 했어.

어느 날 밤에는 공부를 하고 있는 데 갑자기 전등이 꺼진 거야. 한참을 기다려도 불이 안 들어왔다. 그래서 그만 잘까? 하는데 딱 이 생각이 들었어. 내가 공부를 계속 하면 얻어질 이득이 뭘까? 하는. 그날 난 목표를 세웠어. 
내가 잘 되어서 엄마한테 보여주자. 내가 유명한 사람이 되어 엄마가 내 이름을 알게 하자. 가족 증명서를 떼어 봤는데 엄마가 제주도에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어. 하지만 난 엄마를 내가 성인이 되어 찾으려고 해. 또 말하지만 난 엄마를 원망하지 않아. 이유가 있었으니까 엄마도 나를 못 키웠을 거다. 생각해.  
그날 이후부터 난 달마다 계획을 세우고 살았어. 여기 센터에 와서도  첫 한 달 목표는 항상 밝고 긍정적일 것이었어. 이번 달은 '감사의 달'로, 선생님들께 편지쓰기야.

친구야!
그런데 내가 왜 여기 센터에 들어왔나 궁금하지?
그렇게 된 것은, 계속 친구 집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아 돈을 벌기 위해 음식점 알바를 했어. 난 친구 집에 그냥 신세만 지지 않았어. 내 몫으로 나오는 기초생활보조금과 알바해서 생활비 보태고, 내 용돈을 스스로 해결했어. 그런데 하루는 알바 음식점에서 청소년인줄 모르고 술을 팔아 청소년 위반 법에 걸린 거야. 그들에게 술을 건네준 나도 함께 말이야.
판사님은 나에게 말했어. 부모님이 계셨다면 진아는 1호를 받아 집으로 갈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너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보호처분을 준다고. 그러면서 너를 센터로 보내는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시며 진짜 마음 아파하셨어.
센터에 올 때 나는 뭔지 모르게 너무 억울했어. 지금까지 내가 고등학교까지 다니려고 정말 많이 노력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심하게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왜, 왜, 하면서. 난 여기 센터가 감옥이라 생각했거든.

친구야!
너만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심정, 난 충분히 공감해. 나도 그랬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하다고. 그래서 웃지도 울지도 못했어.  그 아저씨가 나를 괴롭힐 때마다 늘 하던 말이 있어.
  “너는 부모도 없는 주제에, 부모도 없는 주제에, 주제에…….”
하도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그래, 내 주제는 이 정도야' 생각했고, 부모가 없는 것도 내 잘못인 것 같고, 그래서 아저씨에게 당하면서도 잘못했다고 빌고, 그 일을 더 숨기고 사람들을 피해 다녔던 거야. 이 세상에 나 혼자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이젠 아니야. 진심으로 내 편이 되어주는 어른들을 만났어.
 “진아야, 세상에는 좋은 어른이 더 많단다. 그러니 무서워 할 거 없고 두려워하지도 마. 이젠 그들이 너를 감히 건들지 못해. 죄지으면 또 벌 받게 되어있어.”
 난 이제 알았어. 나는 혼자도 아니고, 죄짓지 않고 바르게 사는 게 이기는 거라는 걸. 나는 그래서 징역살고 나오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던 그 사람들에게 지지 않을 거야.
환경 탓? 맞아. 원망도 많이 했어. 그러나 그런 환경 때문에 더 이걸 해야 되고, 더 공부를 해야 되고 했어. 그래서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장학금을 받았어.

사랑하는 나의 친구야! 나를 닮은 친구야!
네가 지금 내 곁에 있다면, 진심으로 널 꼭 껴안아주고 싶어. 그러면서 말하고 싶어. 여기까지 견뎌온 네가 정말 사랑스럽다고. 장하다고. 이 말은 진짜 내 자신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기도 해. 

마지막으로 나를 이곳 센터로 보내신 판사님이 우리들에게 해준 말씀을 너에게도 들려줄 게. 청소년 판사님들은 정기적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식사도 하시고 그래. 자, 들어봐.  

  “인간은 모두 다 한 번씩 인생에서 비를 맞습니다. 그 비를 여러분은 십대 때 맞았습니다. 십대 때 맞았으니까 이십대 삼십대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아, 내가 비를 맞았구나. 이 비는 누구나 맞을 수 있는데, 나는 좀 빨리 맞았구나. 그러니 내 인생의 이십대 삼십대를 잘 준비해야 되겠다’ 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여기 온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내가 인생에 있어서 한 번쯤은 비를 맞을 수 있는데 십대에 맞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이제 내가 비를 맞았으니 이십대 삼십대를 정말 희망을 가지고 준비한다면 훨씬 다른 사람보다 더 멋지게 살 수 있다고 희망합니다.” 

친구야. 나 봐. 나, 울고 있지 않지?



함께 비를 맞아줄 게!

                                         남민영 수녀님                      
                                   
쏴아- 쏴아-
소낙비가 내린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비를 맞고
온 몸이 젖어 가슴까지 시린 인생

춥고, 떨리고, 무섭고 슬펐던 순간

~~~~~~~~~~~~~~~~~~~~~

비가 그치고
이제 햇볕도 따사로이 비추이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
젖은  마음이 따뜻해진다.

주님,
이 세상 어느 외진 곳에서
홀로 비를 맞으며 젖어있는 영혼들에게 씌워줄
마음의 우산 하나 챙겨
길을 나설 용기를 주십시오.

그들 곁에서 함께 비를 맞으며
더 아파하고 서 계시는
당신이라는 우산으로
이 영혼들이 위로받게 하소서.

오늘은 비가 내리지만
내일은 햇빛 찬란하리니
우리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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