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15년 3월 3일 화요일

‘동물의 왕국’에 숨겨진 이데올로기 아세요?


김용택 | 2015-03-04 08:39:14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전두환정권 때 일이다.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정권은 불의한 권력의 실체가 드러날까 두려워 1980년 11월, 언론 통폐합에 이어 12월 언론 기본법을 제정한다. 전두환정권은 각 언론사에 기사보도를 위한 가이드라인인 보도지침을 작성,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였다. 전두환정권 때 ‘땡전 뉴스’라는 말이 유행했다. ‘뚜뚜전 뉴스’ 혹은 ‘땡전 뉴스’라는 이 말은 저녁 9시 시보가 ‘땡’ 하고 울리자마자 헤드라인 또는 첫 소식에서 ‘전두환 대통령은…’ 이라는 멘트가 나온데서 유래했던 말이다.
박정희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출세의 기회를 엿보던 보안 사령관 전두환은 10·26사건을 계기로 12·12 쿠데타를 일으킨다. 18년간 군사독재의 폭압에서 맞은 ‘80년 민주화의 봄’을 자신의 야망을 위해 총칼로 짓밟은 것이다. 국민의 눈과 귀를 막은 ‘보도지침’이나 ‘땡전 뉴스’는 우리 언론역사에 두고두고 잊어서는 안 될 치욕의 역사로 기억될 것이다.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동물의 왕국은 아이들이 가장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교육적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권장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동물의 왕, 밀림의 지배자. 사자의 위용과 자연의 신비를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만끽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지금도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골고루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다.
순수한 의미에서 보면 그냥 재미로 보고 지나칠 그런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세상은 순수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순수하지 못하다. 전두환이 88서울 올림픽을 유치한 이유가 무엇일까? 올림픽을 개최해 경제적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일까? 그가 88올림픽을 유치한 이유는 따로 있다. 광주시민을 무참하게 학살한 전두환이 자신에 대한 국민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통치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용한게 3S정책이다. 불의한 집권을 감추고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는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를 통해 국민단합과 애국심을 고취하려 했던 것이다.

모든 문화는 순수하기만 할까? 지금도 국민의 놀잇감이 된 화투는 어떨까? 지금은 화투의 그림도 옛날과 달라지기도 했지만 ‘카루타’라고도 하는 이 화투(1543년 포루투갈 상인에 의해 최초로 일본에 전래된 서양의 카드)에는 그냥 순수한 재미만 담겨 있는 게 아니다. 송학(松鶴)은 일본에서 설날부터 1주일 동안 조상신과 복을 맞이하기 위해 대문 양쪽에 소나무를 꽂아두고, 학 그림을 걸어두는 일본의 전통을 담고 있다.
매화는 일본의 국화인 벚꽃이 피기 전인 2월경 일본 전역에서 축제를 벌일 만큼 일본인에게 친숙한 꽃이요, 벚꽃은 일본의 국화다. 3광 아래에 있는 ‘만막’은 일본에서 벚꽃축제를 나타내는 휘장이다. 오동과 봉황은 일본왕의 도포에 쓰일 정도로,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며, 비광의 갓을 쓰고 있는 사람은 일본의 3대 서예가중의 한 사람인 오노도후(小野道x, 894~966)다. 일본은 자국민에게 금지한 화투를 왜 식민지 백성에게 보급했을까?
해방 50년이 되도록 ‘황국신민화’의 ‘국민’을 따 초등학교라는 이름 대신 ‘국민학교’로 쓰였던 것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학교에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학교장 훈화’며 ‘주번제도’며 ‘교문지도’가 조선학생을 보다 더 일본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동’자가 들어간 동중학교는 일본인 자녀가 다니고, 기우는 태양의 ‘서’자가 들어가는 서중학교 조선인 학생이 다니는 학교이름에 붙여졌다.
일본인의 이데올로기가 놀잇감인 화투에까지 침투했다면 동물의 왕국에는 수수한 예술정신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사자가 미국이고 얼룩말을 비롯한 사자의 먹이가 되는 동물은 약소국이라면 힘 센 사자에게 작은 동물이 먹이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데올로기는 이렇게 프로그램 속까지 침투해 ‘힘의 논리’를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힘의 논리가 자연계의 정당한 질서라면, 그런 먹이사슬이 유지되기 위해 ‘힘이 약한 동물은 희생되는 게 당연하다.’ 논리… 강한 자에게 복종하는 게 미덕이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있는 자의 편에 서는 게 정당하다는 것이 강자의 논리인 것이다.
‘순수하다’는 것은 순수한 사회에서나 통하는 논리다. 그러나 강자의 논리란 일방의 희생으로 상대방에게 반사이익이 돌아가는 현실에서는 ‘약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논리’다.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을 내놓아라’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약자의 끝없는 희생을 강요한 주장이 아니다. ‘오른뺨을 치거든…’교훈은 오른 뺨을 때리고 맘 아파하는 사람에게 확실하게 반성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대안이요, 교훈이다. 이 성경귀절은 이용하기에 따라 강자의 논리가 되기도 한다. 땡전뉴스나 보도지침이 전두환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였다면 오늘날 양극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논리는 무엇일까? 순수성이 없는 사회, 이해관계로 얽힌 사회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현상이 아닌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현명하게 사는 길이 아닐까?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74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