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이슈] 대통령 교체보다 어려운 건 '의료=상품' 이라는 지배담론의 교체
24.09.09 06:59ㅣ최종 업데이트 24.09.09 07:00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한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찾아 응급 의료 현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계획 발표로 촉발된 진료 공백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사실 현재도 개원의를 비롯한 대다수 의사들은 평소처럼 진료에 임하고 있다. 문제는 응급·중증환자 치료를 전담하는 상급종합병원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전공의들이 대거 이탈하며 고난도 치료 영역에서 큰 차질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들 병원은 해당 업무를 전문의와 간호사 등 기존 의료 인력에 분담하고 진료·수술, 응급실 운영 등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하지만 전공의 복귀가 여전히 불투명한 가운데 이러한 비상운영체계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진료 수입 감소에 따른 경영난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수개월간 지속된 과중한 노동으로 남아 있는 의료진들 다수가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이는 의료진의 건강뿐 아니라 이들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지며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정부는 이참에 전공의 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급종합병원 구조를 전문의가 중심이 되는 체계로 개편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전공의의 (상대적) 저임금·고강도 노동을 중심으로 설계된, 즉 생산 비용(인건비) 최소화를 통해 이윤을 창출해 온 병원의 의료서비스 생산시스템을 단기간 내 전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치료 지연으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환자들에게 공허한 계획일 뿐이다.
또한 수요 발생의 불확실성·불규칙성이라는 보건의료 특성을 고려할 때 현재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지 않는 경증 환자나 시민들 역시 시스템 개편을 기다려 줄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즉, 언제든 누구라도 응급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 진료 공백 사태의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따라서 지금 국면은 '의료대란'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은 심각한 사회적 위기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오판
▲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지난 6일 서울 시내 한 병원 응급진료센터로 의료 관계자가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지난달 말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현실과 동떨어진 문제 인식을 드러냈다. 실태 파악이 부정확하거나 시민들의 건강 피해를 과소평가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전자라면 관료제의 무능, 후자라면 정권의 낮은 인권 감수성에서 기인한 것일 테다. 정책결정자의 "관리 가능"하다는 말 속에는 의료개혁 완수를 위해 일정 수준 국민의 건강 피해를 감수하겠다는 정치적 판단이 전제돼 있다.
문제는 그 감당 가능한 '수준'이 비민주적으로 결정된다는, 즉 원치 않게 개혁의 '기회비용'을 치르게 된 환자와 병원 노동자, 시민들이 그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국의 판단과 별개로 의료대란에 따른 피해가 사회적 수용 범위를 넘어서는 순간 심각한 통치의 위기를 맞이하게 될 수 있다.
필자는 지난 기고 글에서 정부가 의사 집단이 가진 이해관계와 권력 자원, 전략 등에 대한 충분한 사전 고려와 대비가 부족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통령은 '헌신적인 의료인'에 대한 믿음이 있는 듯 하나, 의사 집단도 여느 이익집단과 다를 바 없다고 간주하는 것이 합리적 정책판단이다.
자본주의 사회체제에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동기 자체가 죄악시될 수 없다. 다만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집단적 행태가 사회 전체 공익과 충돌하는 경우 제도적, 비제도적(규범적·문화적) 수단을 동원해 이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 된다. 그것이 특히 의료와 같이 사회 필수재 공급을 책임진 집단의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오늘날 의사 집단은 이러한 사회적 통제 기전이 잘 '먹히지' 않는 초기득권 집단이 됐다.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는 가운데 거의 모든 언론과 70% 시민들이 이를 찬성했음에도 여태껏 힘겨루기를 이어오지 않았나. 이러한 의사 집단의 사회적 힘은 전문 지식이나 부, 명성 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의사 권력의 원천은 바로 '환자의 건강'이다. 굳이 애써 항의하고 시위할 필요 없이, 집단적으로 동시에 진료행위를 멈추는 것, 특히 생명의 촌각을 다투는 응급·중증 치료 현장을 떠나는 것이 가장 큰 권력 행사다.
이를 두고 비윤리적이라 비난할 수 있어도, 억지로 붙잡아 진료를 강제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의사면허 정지·박탈이라는 가장 강력한 법적 제재를 동원한다면 동시에 의료 공백에 따른 사람들의 막대한 건강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물론 의사들도 이런 극단적 집단행동에 따른 경제적 손해와 직·간접적 불이익 등을 고려하기 마련이다. 다만 이번 의사 증원과 같이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크게 침해받는 경우라면 이를 막고자 초강수도 불사할 수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오판은 지난 정부들이 의사 증원이라는 시급한 과제를 회피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정확하게는 하지 않은 게 아니라 하지 못한 것에 가깝다. 마치 핵 억지력과 같이, 의사 집단이 의료대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 자체만으로 정부가 의사들의 이해관계에 크게 어긋나는 정책을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도록 만드는 권력 효과를 발휘해 왔다.
물론 의사들도 실제 집단 행동에 나설 경우 직업 윤리를 저버린 것 외에도 면허제를 통해 시장 독점을 보장해 준 사회와의 암묵적 '계약'을 파탄 낸 것에 대한 일정한 사후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늘 저수가 문제를 외쳐도, 또 때로는 일정수준 손해를 끼치는 정책이 도입되더라도 그 불만을 극단적 형태로까지 표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의사 증원은 정부와 의사들 사이에 그어져 있던 일종의 '휴전선'을 훌쩍 넘어선 도발로 간주되었다. 향후 의사 시장에 인력 공급이 확대되면 경쟁이 심화되면서 1인당 소득이 줄어들고 더불어 사회 특권층으로서의 위상 역시 다소간 하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개원의나 의대 교수보다 비교적 '엉덩이가 가벼운' 전공의들이 응전에 나선 것이다.
현재 버티기 국면에 있는 의·정 갈등이 언제 어떻게 마무리될지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새로운 변수들이 발생할 수 있겠지만, 일단 정부가 더 불리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여론의 압박은 양측 모두 받고 있지만, 건강 피해의 가장 큰 책임은 국가의 몫일 수 밖에 없고, 그동안 버텨 온 전문의 인력마저 속속 이탈하게 되면 그 피해가 가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공의들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수련병원에 복귀하지 않더라도 개원의나 봉직의 등 다른 활로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정부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돌이켜보면 의사 증원은 정부가 총선 전략으로 꺼내든 측면이 크다는 점에서 정치적 맥락이 변화된 지금 이 시점에서도 이를 관철시키려는 강력한 동기를 갖고 있는지 회의적이다. 문제는 이미 내년 입시요강이 발표된 상황에서 의사들이 여전히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는 탓에 출구전략을 세우기 쉽지 않다는 것인데 결국 어떤 형태로든 정부는 명분을, 의사 집단은 실리를 챙기는 방식으로 타협점을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대통령의 '신념'을 형성하고 있는 담론을 주목해야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렇게 마치 제3자가 관망하듯 이야기한 까닭은 처음부터 '그들만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정책 추진과 저항 과정에서 사람들이 입게 될 건강 피해에 무감했다는 점에서 양측 모두 사람 중심 관점이 결여돼 있기는 매한가지다. 더 큰 문제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며 의대 정원을 늘리더라도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필수·지역의료 공백' 문제 해결을 장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한 의사 집단의 대응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안타깝게도 처음부터 시민들에게는 의사 증원 찬반이라는 양자택일의 선택지만 주어졌을 뿐이다. 그 결과 시민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한 소용돌이에 휩싸여 큰 고통과 불편을 겪으면서도 정작 정부와 의사들 사이에서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물론 둘 다 나쁘다고 비난하고 욕하기는 쉽다. 하지만 이 위기를 더 좋은 보건의료체계를 만들기 위한 기회를 바꿀 수 있으려면 양비론을 넘어 사태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이번 의사 증원 정책을 철저히 정치적 산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의사 수가 얼마나 부족한지, 미래 의사 인력 수급을 추계한 연구 결과가 얼마나 정확한지 묻는 것을 부차적 문제로 보자는 것이다. 정부와 의사 집단은 자꾸 사람들의 시선을 미시적인 정책기술적 논의에 가두려고 하지만, 우리는 어떤 이해관계와 권력관계 속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정책 결정이 이루어졌는지에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과정에 주목한다는 건 결과적으로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지 따지는 차원 역시 넘어서야 함을 의미한다. 영국의 건강정책학자 길 월트에 따르면, "정책결정에서 권력과 과정은 겉보기보다 더 '복잡하게 얽혀 있고, 직관적이며, 무의식적인 것'이므로 항상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좀 더 질서 있고 심층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도대체 대통령이 무슨 연유로 대혼란을 야기할 위험이 큰데도 예상을 뛰어넘는 대규모 의사 증원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그 정책 결정 과정에 여러 복합적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대통령이 유독 '신념 정치(conviction politics)'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건의료와 관련해 그의 신념을 형성하고 있는 담론이 무엇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 담론이란 사회 내 다양한 행위자들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정당화하기 위해 창출하는 논리성을 갖는 언술 체계 혹은 넓은 의미에서의 지식체계"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담론은 이처럼 특정 관점과 의도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면서, 동시에 사회 현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틀로 작동하며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지난해 우리는 '지역 응급실 문을 닫는다', '대형 병원 간호사도 수술받지 못해 죽었다', '소아과 진료 받기 너무 어렵다' 등의 뉴스를 접했다. 다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의사가 없거나 부족해서 생긴 문제였다.
그런데 대통령과 정부는 이 문제의 원인으로 인력의 왜곡된 분포보다는 공급 부족에 방점을 찍었다. 전자에 더 주목하거나 아니면 둘 다 균형있게 고려할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대안이 더 직관적이고 단순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정책결정자들의 이러한 판단마저 보건의료와 관련된 특정 담론을 수용한 결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는 보건의료(체계)에 관한 몇 가지 주요 담론이 존재한다. 각 담론은 보건의료체계의 현 상황이 어떠한지(표상), 미래 보건의료체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비전), 그리고 이렇게 상상된 보건의료체계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과정)에 대해 서로 다른 가치·지식 체계를 갖추고 있다. 사회적 담론의 장에서 이들 담론들은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서로 경합하는 가운데 영향을 주고받기도 한다.
담론 간 일정한 유사성이 존재하고 중첩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큰 틀에서 나눠 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의료를 '상품'으로 보는지에 따라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극단적인 자유지상주의 입장을 제외하면 보건의료가 가진 공공재, 가치재로서의 특성을 전면 부정하는 담론은 드물다.
다만 '의료=상품' 담론은 이 재화(서비스)의 분배가 시장 거래의 원리와 기전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가정한다. 국가는 구매 능력이 부족한 이들을 일정 부분 지원해 주면서, 낮은 수익성 등의 이유로 서비스 공급이 원활치 않은 특정 분야와 지역에 대한 서비스 제공을 책임지는 역할만 하면 된다. 이 담론의 핵심 가치와 목표는 의료를 통해 이윤 창출을 극대화하는 시장 행위를 긍정하고 장려하는 것이다.
이 말이 너무 당연하게 들리는 까닭은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지배담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지배담론으로서 '의료는 본질적으로 상품이다'라는 명제에 대한 사회적 동의와 수용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현재 치열하게 힘 겨루기를 하고 있는 정부와 의사 집단 모두 이 지배담론을 전제로 행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강화하고 확산, 유통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또한 보다 시장친화적인 보건의료체계를 미래 비전으로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역설적이지만 이번에 충돌하게 된 까닭도 둘 다 이 지배담론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경쟁' 강화라는 가장 이상적인 시장 원리에 따라 공급 확대를 선택했고, 의사들은 시장의 상품 판매자로서 '이익 극대화'라고 하는 어쩌면 본능에 가까운 목표에 따라 독점력을 지키고자 했을 뿐이다.
의사 증원이라는 시장친화적 대안, 그게 최선인가?
▲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와 의사 집단이 의료 상품화에 있어서는 공모 관계에 있으면서도 서로 대립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정부가 보건의료에 대한 국가 책임을 최소화하고 재정 부담을 줄이려는 신자유주의 담론을 추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국가 책임을 강화 또는 약화할 것인지를 보건의료를 둘러싼 담론을 가르는 또 하나의 축으로 볼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건강보험은 가입자에게 의료이용의 경제적 접근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공급자에게는 안정적인 시장 수요를 확보할 수 있도록 기능하는 측면이 있다. 물론 이미 사보험 시장을 통해 많은 수요가 창출되고 있긴 하지만, 의사 집단은 자신들의 수익 증대를 위해 정부가 수가 인상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의 보장성 역시 확대해주기 바란다. 의사 집단의 이해관계가 시민사회의 보장성 강화 담론과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한편 정부는 국가 통치의 차원에서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요구받고 있다. 이를 위해 예전에는 사회 재생산 측면에서만 관심을 가졌던 건강과 보건의료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담론이 대두되었고, 이러한 경향은 윤석열 정부 들어 더욱 노골화됐다. 필수의료를 강조하면서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비필수 건강관리 서비스에 대한 사기업 진출을 허용한 것도 보건의료 산업화 담론이 작동하는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산업화 담론은 폐쇄적인 의료 시장의 개방을 핵심 목표 중 하나로 삼는다는 점에서 정부와 의사 집단 간의 분기점이 된다.
물론 기업화된 대형 병원 자본에 합류한 의사들과 그렇지 않은 소자본가로서의 의사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측면이 있지만, 그동안 의사협회를 필두로 의사 집단이 원격의료나 영리병원 도입,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등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며 시민사회의 의료 민영화·영리화 반대 담론과 접점을 이룬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번 의사 증원 사태는 정부와 의사 집단 간 내재해 있던 이러한 담론(이해관계)의 불일치가 큰 갈등으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국가 권력과 의사 권력 모두 '의료=상품' 담론을 공고히 하는 관계라는 점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지배담론에서 분화됐거나 친화성이 높은 담론들이 가진 현실 인식과 비전이다.
시장 담론에는 경쟁과 소비자 선택이, 신자유주의 국가 담론에서는 의료비 지출의 효율화와 개인 책임 강화가, 산업화 담론에는 GDP 증대가 핵심 가치와 규범, 목표로 제시된다. 이 담론들이 지배적 영향력을 미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 안전, 자유와 평등, 공동체 안녕과 같은 소중한 가치들이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의사 증원 정책의 숨겨진 문제점 하나를 꼽자면, 바로 의사 증원이라는 시장친화적 대안이 국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인 것으로 표상됨으로써 부지불식간에 의료는 상품이라는 인식이 더 공고해지는 효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배담론에 맞서며, 의료가 상품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대항 담론이 존재한다. 이를 '의료=인권' 담론, 또는 보건의료의 탈상품화나 공공성 강화 담론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큰 담론 아래 의료 영리화, 민영화, 산업화(금융화) 등에 반대하는 담론들이 연합해 있다. 또 부정의하고 부당한 건강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건강형평성 담론도 한 줄기를 이룬다.
우리는 '필수·지역의료 공백'으로 불리는 보건의료 위기의 실체를 이러한 담론과 담론 구조를 통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위기는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며, 그동안 시장원리에 입각해 끌고 온 보건의료체계가 구조적 모순에 봉착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의료대란은 지배담론이 제시한 비전이 허상에 불과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지배담론이 규정한 의료개혁의 틀 속에서 탈정치화된 땜질식 처방만 열심히 쏟아내고 있다. 발표되는 정책들에서 공허한 레토릭들을 거둬내고 보면 사람들의 고통과 건강불평등에 관심이 없는 지배담론의 흔적만 남는다. 보건의료를 통한 이윤 창출과 자본 축적이 위협받지 않도록 시장형 체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불만을 적절히 잠재우면서 언젠가 스스로 체념하도록 만드는 것, 바로 이것이 지금 하려는 의료개혁의 실체 아닌가.
의정협의체 역시 기존 지배담론의 구조를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시민들이 직접 정책 논의 과정 전반에 참여하고 정책결정에 대한 최종 통제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료민주주의 담론이 헤게모니를 갖게 되면 의료민주주의 위기는 곧 통치의 위기가 될 수 있다. 어쩌면 대통령과 집권세력을 교체하는 것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과제가 새로운 담론 질서를 만들고 지배담론을 교체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 중심의 보건의료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담론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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