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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일 일요일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윤석열의 반국가 세력 타령이 진짜 코미디인 이유

 


  • 행 2024-09-02 07:21:21
  • 이완배 기자 peopleseye@
  • 2022년부터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하도 아무 데나 반국가 세력을 같다 붙이기에 나는 내심 ‘나 정도면 반국가 세력에 포함되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난달 을지 국무회의에서 그가 “우리 사회 내부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고 씨불이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 나는 일단 아니구나 하는 확신을 얻었다.

    왜냐? 난 암약(暗躍)을 한 적이 없거든. 암약이란 ‘어둠 속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활동함’이라는 뜻인데, 나는 내 맹렬한 활동을 다 남들이 알게 했다. 나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도 알아줬으면 하는 스타일이라 글을 쓰건 방송을 하건 다 공개된 자리에서만 했다.

    물론 친구도 별로 없고 혼자 뒹굴거리는 걸 좋아해서 집에서 혼술을 많이 하긴 했다. 기분 좋으면 불 끄고 노래 들으면서 홀짝이기도 했고. 그런데 설마 집에서 어둡게 하고 술 좀 마셨다고 그걸 암약이라고 부르진 않을 것 아닌가? 그래서 ‘암약’이라는 조건에 해당이 안 되므로 난 일단 반국가 세력이 아니다.

    말의 앞뒤도 못 맞추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기록을 찾아보니 생각이 또 바뀌었다. 작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석열이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고 말한 기록을 확인한 것이다.

    이번에 암약이 아니라 활개를 친단다. 잘 못한 게 없으니 나는 어디 다닐 때 어깨도 좀 펴고 당당하게 다니는 편이다. 그러면 나도 비교적 활개를 치는 쪽이므로 반국가 세력 자격이 생겼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묻는다. 도대체 이 나라의 반국가 세력은 암약을 하고 있다는 거냐? 활개를 치고 다닌다는 거냐? 정의를 정확히 해야 내가 반국가 세력인지 아닌지 인식을 할 것 아니냔 말이다.

    별 시답잖은 말꼬리를 잡는다고 비판하지 말라. 사실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시도때도 없이 반국가 세력 타령을 하는데 그게 광복절 경축사에 2년 연속으로 등장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인지 아닌지를 국민이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윤석열의 말에 따르면 이 나라에 반국가 세력 문제는 대통령이 시도때도 없이 언급해야 할 정도로 준엄한 문제다. 그러면 그걸 왜 안 잡는데? 잡아야 할 것 아닌가? 무려 반국가 세력인데! 심지어 활개까지 치고 다니는데 그걸 안 잡으면 그게 대통령이냐? 좀 잡아라.

    그러면 그러겠지. 걔들이 암약을 하고 있어서 못 잡는다고. 그러면 또 물어보자. 너무 암약을 잘 해서 도대체 어디 숨어있는지 모르겠는 그 반국가 세력이 그렇게 많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았는데? 숨어서 안 보인다매?

    그러면 그러겠지, 반국가 세력이 활개를 치는 건 다 아는 사실이라고. 아니, 다 아는 사실이면 좀 잡아! 활개까지 치고 다니는데 그걸 왜 못 잡아? 그러면 또 그러겠지. 암약을 하고 있어서 잡기 힘들다고. 그렇게 암약을 잘 하는데 그런 게 있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아? 그러면 또 그러겠지. 그들이 존재하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내가 다 안다고. 아니 너님이 그렇게 잘 알면 좀 잡으라니까!

    벌써 말의 앞뒤가 하나도 안 맞는다. 나는 이념투쟁이 벌어졌을 때 양쪽에서 나오는 말이 꽤 험악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사람이다. 원래 이념투쟁이란 게 그런 면이 좀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최소한의 앞뒤를 못 맞추는 비논리가 나오면 짜증부터 난다. 나와 뜻이 달라도 말의 앞뒤가 일단 맞으면 반박과 재반박이 가능하다. 그러면서 이념투쟁은 결론을 향해 전진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 하며 물을 마시고 있다. 2024.08.29. ⓒ뉴시스

    그런데 윤석열의 반국가세력 이야기처럼 말의 앞뒤가 안 맞으면 해결책이 없다. 반국가 세력이 그렇게 활개를 치면 잡아야 한다. 못 잡는 이유가 그들이 어디 숨어있는지 모르는 거라면, 그런 존재가 활개를 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지도 어디 있는지 모르면서 국민들보고 그런 게 어딘가에 있고 엄청 위험한 존재라고 떠들면 그게 말이냐? 항문에서 새어나오는 가스냐?

    인지적 유창성

    내가 정치 지도자들이 절대 삼가야 하는 태도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게 한 줄 요약으로 세상을 다 설명하려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걸 인지적 유창성(cognitive fluency)이라고 부른다. 인지적 유창성이란 “사람의 뇌는 문제를 쉽게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어려운 설명과 쉬운 설명이 있을 때, 뇌는 본능적으로 쉬운 설명을 택한다는 이야기다.

    이유는 이렇다. 어려운 해답이 제시되면 뇌는 그것을 해석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반면 제시된 해답이 간단하면 뇌는 에너지를 거의 소모하지 않는다. 그래서 뇌는 본능적으로 간단하고 쉬운 설명을 좋아하고, 간단한 해답이 진실이라고 착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조선시대 민중들이 가뭄으로 농사를 망쳤다. 이러면 가뭄이 들었을 때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 정부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한다.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울 수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런 복잡한 설명을 싫어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왕이 해법을 들고 나온다. “이 모든 게 다 짐이 부덕한 탓이니라!” 이런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왕이 며칠 밤을 지새우며 기우제를 지내는 거다. 듣기는 쉬워도 이런 건 절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내가 야구를 좋아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응원하는 팀이 지면 감독 사퇴하라는 목소리가 커뮤니티에 넘친다. 이 모든 게 감독 탓이라는 거다. 하지만 그 팀이 그날 진 이유는, 혹은 그 팀이 그 시즌에서 못하는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다.

    문제를 제대로 해석해야 해법도 정확해진다. 하지만 뇌는 “이 모든 게 감독이 개자식이어서”라는 간단한 설명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감독을 시도때도 없이 바꿔봐야 팀 사정은 절대 개선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이런 유혹에 빠지기 쉽다. 뭐든 한 줄로 요약해서 대충 퉁치면 사람들이 알아서 그걸 이해해 주는 게 편하다. 윤석열은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거나 위기 국면 때마다(3년 내내 곤두박질이긴 했다) 반국가 세력 타령을 한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진실일 수 있나?

    하여간 윤석열은 무능한데다 불성실하고, 황당할 정도로 비논리적이기까지 하다. 암약을 했다는 건지 활개를 쳤다는 건지 자기도 잘 모르는 그 반국가 세력이 당최 어디 붙어 있는지 우리도 좀 알자. 그걸 그렇게 못 잡는 윤석열은 뭐든 부여잡고 반성부터 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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