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9일 대법원 확정 판결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직을 상실하고, 10월 16일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게 되었습니다. 조희연 교육감을 세웠던 민주진보 진영은 ‘2024 서울민주진보교육감추진위원회’를 구성해 9월 20일까지 단일 후보를 세우기로 했고,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들도 9월 23일까지 단일 후보를 세우겠다고 합니다.
부산 금정구청장, 인천 강화군수, 전남 곡성 군수, 전남 영광 군수로 예정됐던 선거에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갑자기 추가되면서 10월 재보궐 선거가 전국적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작년 10월에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재보궐 선거는 5월에 대법원 확정판결로 강서구청장 직에서 물러난 김태우 씨가 8월에 사면·복권을 받고 출마하여 큰 비난을 받은 바 있습니다. 물론 강서구 주민들이 표로 심판도 했지요.
그래서 재보궐 선거에 귀책사유가 있는 정당은 후보를 내지 말자는 주장이 확산되어 왔습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올해 1월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국민의힘 귀책사유로 재보궐 선거 시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고, 더불어민주당도 그런 이유로 작년 전주 재보궐 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않았습니다.
이번 서울시 교육감 재보궐 선거에서도 그런 기준을 적용하는 게 옳을까요? 조희연 교육감은 전교조 출신 해직 교사 5명을 특별채용한 것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교육감 직을 잃었습니다. 그렇다면 조희연 교육감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2024 서울민주진보교육감추진위원회’의 입장은 옳지 못한 것일까요?
조희연 교육감이 사법부의 심판대에 올라간 것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기소했기 때문입니다. 공수처는 고위 공직자의 비리, 특히 검찰과 사법부의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입니다. 그런데 2021년 공수처가 신설된 후 수사에 착수한 첫 번째 사건은 조희연 교육감이 2018년 시행한 해직교사 특별채용이었습니다. 조희연 교육감은 해직교사 5명을 복직시켰다는 죄로 본인이 ‘해직’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습니다. 조희연 교육감은 왜 전교조 교사들을 복직시켰을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시계를 2008년으로 돌려야 합니다. 2007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하고 2008년 4월 총선에서 압승한 이명박 정권은 4월 15일 ‘학교 자율화 조치’를 발표합니다. 말이 좋아 ‘자율화’지 일제고사, 0교시 수업, 야간자율학습이 ‘학교 자율’이란 미명 아래 부활되었습니다. 이에 2008년 5월 2일 광화문에서 최초로 촛불 집회가 열립니다. 참석자 2만여 명 중 80%가 중고등학생이었죠. 그들이 외친 구호는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였습니다. 여기서 출발한 게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광우병 촛불 집회였습니다.
촛불이 꺼져가던 8월에 최초의 주민직선 교육감 선거가 서울에서 치러집니다. 선거는 공정택 후보와 주경복 후보가 맞붙어 치열하게 전개되었습니다. 공정택 후보가 내건 구호는 “우리 아이들을 전교조에 맡길 수 없다”였습니다. 공정택 후보는 서울 25개 구 중에 22개 구에서 패배했으나 강남 3구에서 몰표를 받아 1.7%p 차이로 승리하여 서울시 교육감이 되었습니다.
당선이 유력한 공정택 후보가 ‘반전교조’를 전면에 내건 선거에서 전교조 조합원들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주경복 후보 당선을 위해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모았습니다. 선거가 끝난 후 ‘전교조 저격수’를 자처하는 조전혁 의원(한나라당)이 전교조가 주경복 후보의 선거 비용을 모았다며 서울지검에 수사를 의뢰했고, 검찰은 전교조 통장을 샅샅이 뒤져 3명을 구속하고 수십 명을 재판에 회부하여 7명이 해직되고 13명의 간부가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반면 공정택 후보에게 직접 돈을 건넨 학교장들은 벌금 80만 원을 선고해 교장직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흘러 해직되었던 교사 중 공무담당권이 회복된 5명의 교사가 2018년 특별채용 되었습니다. 이게 조희연 교육감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교육감직에서 물러나게 된 이유입니다.
교육감 선거에 모금했다고 7명 해직, 13명 중징계
보수 후보에 돈을 건넨 학교장들은 솜방망이 처벌
OECD 중 교사 참정권 부정하는 유일한 나라, 한국
지난 7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에서 사퇴하고 해리스가 후보로 지명되자 조합원이 300만 명으로 미국 최대 교원노조인 NEA(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와 조합원 180만 명으로 두 번째로 큰 교원노조인 AFT(American Federation of Teachers)는 모두 해리스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2008년 오바마가 출마했을 때 NEA는 오바마에게 5천만 달러(한화 600여억 원)를 정치자금으로 제공하여 오바마 당선의 일등 공신이 되기도 했죠. 이게 ‘글로벌 스탠다드’입니다. OECD 국가 중 교사의 정치활동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하물며 교육감을 뽑는 선거에서 교육의 주체인 교사가 후원금조차 모으지 못하게 막는 나라, 다른 나라에 가서 말하기도 부끄럽습니다.
이번 서울시 교육감 재보궐 선거는 정치 검찰과 사법부의 합작품입니다. 검찰은 조희연 교육감이 해직교사를 특별채용한 것이 위법하다고 기소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모두 특별채용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1994년 검사 생활을 시작한 윤석열 대통령은 2002년 사표를 내고 법무법인 태평양에 변호사로 취업했다가 1년 만에 다시 검찰로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특별채용입니다. 한동훈 당대표도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09년 검찰에 사표를 내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행정관으로 근무합니다. 그리고 2년 후인 2011년 다시 검찰에 복귀합니다. 어떻게? 특별채용입니다. 이렇게 2006~2021년에 검사를 그만두고 나갔다가 다시 검찰에 특별채용된 검사가 43명입니다.
대통령이건 서울시 교육감이건 특별채용은 임용권자의 권한입니다. 검사는 되는데 교사는 안 되는 나라, 이거 공정과 상식 맞습니까?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 교육정책도 중요하고 후보의 면면도 따져봐야 할 겁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왜 재보궐 선거를 하게 되었는가?’입니다. 조희연 교육감이 잘못했고 교육감직 상실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조희연 교육감의 뜻을 잇겠다는 후보를 반대하여 투표하고, 조희연 교육감이 잘못한 게 없다고 판단한다면 조희연 교육감의 뜻을 잇겠다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게 옳습니다. 이게 10월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시 교육감을 뽑는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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