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기후정의 현장르포]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공동단장
4.09.11 06:58ㅣ최종 업데이트 24.09.11 06:58
▲ 지난 8월 22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열린 수라갯벌 친구들의 증언 마당 ⓒ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수라갯벌 친구들'이 서울행정법원에 모였다. 지난 8월 22일 있었던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 5차 재판 방청에 앞서, 새만금 사업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원형 갯벌 '수라'의 자리에 신공항이 들어서지 말아야 할 이유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인근에 있는 군산공항도 수요가 없어 매년 적자를 내는 가운데, 신공항은 군산에 기지를 둔 미 공군의 제2활주로로 쓰이기가 더 쉽고, 공항으로서의 전망은 불분명하다. 또한 물새들의 번식지이자 이동 경로와 겹치는 수라갯벌에서는 항공기와 조류가 충돌할 위험도 크다. 그 무수한 생명의 집터를 밀어내서도 안 된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오동필 공동단장도 목소리를 보탰다.
"새만금 갯벌과 바다를 살리는 일은 지역 공동체를 살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수라의 저어새를 보호하자고 말할 때 멸종위기종인 저어새의 서식지를 보전하는 법은 있는데, 지역민의 터전을 보호할 법은 없어요. 저어새가 살아갈 자연을 지켜야 인간의 서식지도 지켜질 수 있습니다."
▲ 수라갯벌의 저어새 ⓒ 오동필
군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새를 따라다니며 사진에 담는다. 새만금으로 메워진 동진강과 만경강 하구는 그가 수많은 새를 본 추억이 쌓인 놀이터 같은 곳이다. 2003년 시작된 조사단이 올해 20주년을 맞아 연 사진전 <바다를 만나다>에도 그간 만나온 새들이 모였다.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2023)에서 그는 그 새들의 '아름다움을 본 죄'를 말했다.
"새들이 갯벌에 없어. 공허감이 밀려와요. 괴롭고 슬프고, 아름다움을 본 죗값을 치르는 것 같아요. 너무 아름다운 걸 봤기 때문에 책임감이 있더라고요. 못 봤고 몰랐으면 나도 그냥 직장 다니고 그랬을 거 같아요."
그 책임감이 그를 지금까지 오게 했다. 생계를 위한 직업이 따로 있어 스스로 환경운동가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시민으로서 새만금을 둘러싼 운동을 포기할 수 없는 까닭이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핵심도 '시민'이다. 지역에 몸담고 살아가면 전문가보다도 잘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이들에게 생태조사란 삶을 살피고 돌보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올해 4월에 출범한 '새만금 상시 해수유통 서명운동본부'도 전북도민의 목소리로 이뤄지는 행동 조직이다. 오동필 단장은 그곳의 정책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바닷물이 가로막힌 새만금호에 해수를 유통하자는 얘기는 몇 년 간 꾸준히 나왔으나, 이 본부의 역할은 달리 있다. 싸워야 하는 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왜 '상시' 해수유통인가
'해수 유통'이란 방조제로 가둔 담수호에 다시 바닷물을 흐르게 만들어 해역으로 두는 것이다. 그러려면 방조제의 출입구를 인위적으로 닫기 위해 설치한 배수갑문을 열어야 한다.
2020년 12월부터 하루 두 번 새만금방조제의 배수갑문을 열고 있으니 지금도 해수 유통이 진행 중이긴 하다. 문제는, 그 지속 시간이다. 정부 방침대로라면 단 십 분만 열어도 해수 유통이기 때문이다. 오동필 단장이 수문 여는 횟수를 늘리기보다 아예 닫지 않는 흐름으로 바꾸고자 '상시'란 말을 제안했다.
"그 이름을 걸어야 싸움이 돼요. 운동은 싸움이거든요. 이미 주어진 말의 방향을 틀 수도 있지만, 전혀 새로운 이름을 거는 것도 운동이에요."
이름을 붙여보니, 과연 그렇다. '상시'라고 부르자 방조제로 막힌 새만금 안쪽이 예전처럼 바다로 흐를 수 있다는 상상력이 모인다.
반면 새만금개발청의 마스터플랜은 바닷물을 해수면보다 –1.5m로 낮추는 관리 수위를 유지하려 한다. 해수 유통을 확대하여 수위를 높이면 방조제와 방수제를 보강해야 해서 곤란하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수위가 높아지면 매립 용지가 줄어든다는 더 실리적인 이유가 있다. 아직도 새만금을 토건 사업의 이익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달라졌다. 방조제로 악화한 수질개선에 4조 원이 넘게 들어갔다. 담수호를 계속 고집하면 더한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해수 유통 없이는 '염분 성층화' 문제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소금물을 놔두면 소금이 점점 가라앉아 올라오지 않는 현상 같은 거예요."
새만금호 유역에서는 강의 민물과 염분기 있는 바닷물이 섞이지 않아 층이 생겨난다. 민물보다 무거운 바닷물이 가라앉아 층이 나뉜 채 오래 순환하지 못하면, 밑바닥의 산소가 부족해져 물이 썩는다. 그로 인해 어패류 같은 저서생물이 폐사하면서 수질 전반이 나빠진다.
바다의 자정 능력 자체는 뛰어나지만, 지금처럼 수문이 닫혀 있으면 새로운 바닷물이 흘러 들어올 수 없어 회복되기 어렵다. 가만히 고여만 가는 물속은 생명이 머무를 수 없는 죽음의 구역으로 남는다.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해수가 그 층을 흔들지 않는 한, 인간의 힘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하루에 한 번만 수문을 열었던 2020년 전에 비해 상황이 나아졌다지만, 정말 그럴까.
"사람도 산소가 충분해야 숨을 쉬잖아요. 누가 산소를 조금만 넣어주고 편하게 있으라고 하면, 죽지는 않더라도 숨이 가쁘고 고통스럽겠죠. 그게 맞나요? 그저 겨우 안 죽고 있는 상태일 뿐인데요."
▲ 새만금 이후 서식 생물의 변화 ⓒ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바닷물을 돌려주는 게 생태계의 숨을 돌려주는 일인 까닭이다. 생명권이 걸린 문제에서는 차선이 아닌 최선의 출구를 찾아야 한다. 덜 나빠진 현재보다 더 나쁘지 않았던 과거가 있다면 그때를 바라봐야 한다. 방조제가 생기고도 분명히 그럴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2006년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2010년까지 수문을 상시 개방했을 때는 훨씬 다양한 생물이 대량 번식했다. 상시 해수 유통만이 해답인 까닭이다.
이름을 주고 부른다는 것
다만 오동필 단장이 2016년에 직접 수질을 조사하다가 '염분 성층화' 문제를 발견했을 때, 다른 고민이 따라왔다. 현장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말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어려운 말을 알려봤자 이해받겠냐고, 저희끼리도 말이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낯설고 복잡할수록 더 알려줘야 한다고, 감추고 있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란 생각에 더 많이 떠들고 다녔어요."
그렇게 7년을 외치자, 그 뜻은 몰라도 말을 아는 이들이 늘어갔다. 사실 '새만금'도 그렇게 자리 잡은 말이다. 원래는 없었지만, 정부에서 동진강과 만경강 하구를 새만금이라고 부르며 어느새 지역을 대신하는 이름처럼 되었다. 그러나 이름을 둘러싼 싸움의 닻을 다 내어주지 않고 맞서려면 여러 가능성을 이뤄줄 말이 더 필요하다. 다시, 이름을 주고 부르는 문제다.
"현장에 있으면 일부러 말을 만들어야 할 상황이 와요. 이름이 주어져야 시작되는 싸움이 있거든요. 어떤 고유명사가 퍼지는 과정도 싸움이고요. 특히 장소를 지키려면 그곳의 이름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죠."
그가 영화 <수라>에서 앞으로도 수라를 갯벌로 부르자고 한 마음도 여기 있다. 그는 말했다. 당장 마른 땅도 언젠가 들어올 바닷물과 함께 살아난다면, 갯벌이라고. 풀만 자라나는 땅 같더라도 갯벌이라는 이름을 놓지 않으면 언젠간 갯벌로 돌아온다고. 끝난 게 아니라고. 그때까지 그 이름을 불러줘야 살 수 있다고.
덕분에 '수라'는 그가 세상에 가장 널리 전한 이름이 되었다. 군산시 옥서면 남수라마을 옆의 이름 없는 갯벌이던 그곳에 '비단에 새긴 수'라는 아름다운 뜻의 이름을 찾아준 사람도 오동필 단장이다. 지도에는 없지만 수라는 어느덧 사람들 속에서 당연한 지명이 되고 있다. 그에게는 그러한 변화야말로 대중 운동이다. 이름을 불러주면 얼굴이 보이고 주소가 그려진다는 믿음으로, 거기까지 가는 길을 닦아가려 한다.
▲ 지난 6월 '수라갯벌에 들기' 체험 ⓒ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그가 '수라갯벌에 들기'라는 체험을 꾸려 사람들과 수라로 가는 이유다. 다 같이 온몸으로 만나는 수라는 생생한 삶터다. 예전에는 전부 갯벌이었지만, 물이 빠지고 노출면이 많아지며 연안습지가 된 수라. 해안에서 갯벌, 또 육지로 이어지는 길목마다 습지와 염습지, 초지 등 다양한 지대의 풍경이 펼쳐진다.
덕분에 수라갯벌에 드는 길도 다채롭다. 정해진 길만 가는 관광과 달리, 날씨와 주변 환경에 따라 길도 변한다. 곳곳에 돌아다니거나 잠들어 있는 생물도 매번 달라져, 당장 보이지 않아도 여기서 살아가고 있을 온갖 생명을 상상하게 된다. 누군가는 수라를 밟아도 되는지 묻지만, 오동필 단장은 도리어 자연에 마음껏 닿아 누리라고 한다. 자연을 함부로 취하는 게 아니라 이 삶에서 자연과 공존하고 상생하자는 말이다.
"마음껏 밟고 겪어야 해요. 우리의 걸음 하나하나가 훼손이 아니라 생물 다양성이 주어지는 조건이거든요. 한 걸음마다 변화가 일어나요. 발자국 보폭에 따라 파이는 땅에 생물이 들어설 기회가 오고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에 물이 고이면 잠자리가 알을 낳아요. 새로운 길을 걸어 공간을 내면 거기를 통하는 생물이 생기죠. 우리가 넓은 곳을 다닐수록 자연의 회피로도 늘어나요. 무작정 해쳐 파괴하는 게 아니라 회복력을 배우고 기를 틈을 만들어주는 보존이에요. 인간과 자연이 서로를 적극적으로 누리는 과정이죠."
희망이 이기는 싸움으로
다시,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 5차 재판 때로 돌아가자. 그날도 수라를 보존할 필요를 얘기했다. 4차 소송의 법정 증인이었던 나일 무어스 박사(새와생명의터 대표)가 또 한 번 람사르 협약의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인 수라의 가치를 증언했다. 람사르 협약은 습지의 생태 환경을 보존하며 지속 가능한 이용을 추구한다. 고로, 이 모든 싸움의 종착지는 한곳에서 만난다. 새만금의 기본계획과 마스터플랜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는 것. 상시 해수 유통으로 갯벌과 바다를 보존하는 개발이 되어야 한다.
오동필 단장은 또 하나의 재판 선고를 앞두고 있다. 세종시 국토교통부와 환경부 앞에서 '새만금신공항 철회촉구 천막농성'이 9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데, 보행에 방해된다며 세종시에서 도로법 위반으로 그를 고발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환경영향평가가 끝나기도 전에 난개발 사업을 강행하려 하며 먼저 법을 무시한 정부가 일으킨 싸움이다. (관련기사: "환경영향평가제도 짓밟은 기만적인 국토부" https://omn.kr/22nj2 ) 지난 8월 29일 마지막 공판에서 2081명이 천막농성을 지지하는 탄원서에 연명했다.
▲ 새만금호 상시 해수유통과 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서명 운동 포스터 ⓒ 새상해 및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우리는 부끄럽지 않은 싸움을 하며 20년을 왔어요. 20년 전 아무도 싸우지 않았다면 지금 많이 부끄러웠겠지만, 그간 가만히 있지 않고 힘들게 싸워온 시간이 있어 떳떳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끝까지 싸워보고 싶습니다."
이기는 싸움. 그는 이 싸움을 그렇게도 부른다. 기울어진 법정의 승패와 관계없이 더 나은 세상의 희망을 구하고 지키려는 이들의 부끄럽지 않은 싸움이다. 그곳에서 함께 하는 모두가 수라갯벌의 친구들이다. 방청이 가능한 기본계획 취소소송 5차 재판일은 10월 17일, 천막농성 재판 선고일은 9월 26일로 잡혔다. 서명운동은 온라인으로도 동참할 수 있다. 수라가 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가을이 다가오는 8월 말, 상시 해수 유통을 위한 서명 인원이 2만 명을 넘겼다.
우리는 언제든 더 많은 친구를 기다리고 환영할 것이다.
[필자 소개] 김누리: 글을 읽고 쓴다. 돌봄과 연결의 힘에 기대어 더 정확히 비관하고 구체적으로 낙관하고 싶다. 현재 전주에서 살아가며 기후생태위기 현장으로부터 함께 상생할 가능성을 그려볼 수 있는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서명 운동 링크
새만금호 상시 해수유통 :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gNEDD6km3Ni-aEu1I0vve_WVPDABYdETwR1IMknhM55SXDw/viewform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 https://docs.google.com/forms/d/1AtoFzntOmRDl82q1DXG6hQm1ci8uieQ8Z7xa3dVmgoA/viewform?edit_requested=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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