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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6일 금요일

흰머리 '산업화 역군'이 '기후전환'을 외치는 이유

 

"기후붕괴는 우리 책임, 노인이 기후전환의 선두에 서겠다"

)한예섭 기자  |  기사입력 2023.10.07. 05:02:28


"기성세대가 이런 세상을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세상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과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우리에게 잘못이 있습니다."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주역인 노년세대들이 기후위기에 대한 산업화 세대의 책임을 지적하며 "기후대응 활동의 선두에 서겠다"고 모였다.

6일 오후 서울 중구 문학의집 서울(산림문학관)에 모인 100여 명의 기후활동가들은 모두 60대 이상의 노년세대로 구성됐다. 이들 시민단체 '60+기후행동'은 "노년이 달라져야 미래가 달라진다"는 각오로 결성된 시니어 활동가 기후단체다.

이날 이들은 국제연합(UN)이 지정한 '세계 노인의 날'(10월 1일)을 기념해 "노년이 기후 붕괴를 막아서는 선두로 나서야 한다"며 적극적인 기후행동을 핵심으로 한 '신노년'을 열어갈 것을 선언했다. "현 시기 노년은 경제성장의 주역이자 그 시혜자이지만, 미래세대와 함께 기후 재앙의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특히 이들은 본인들의 의도와 무관할지라도 본인들이 청-장년 세대에 이룩한 경제성장 시기가 작금의 '기후붕괴'의 원인이 됐다고 반성했다.

기후가 붕괴하기 시작한 이유는 "인류가 천지자연을 과도하게 수탈하고, 산업문명이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현실정치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성취하지 못해왔기 때문"이며 이는 "이념과 체제를 막론하고 생산력이 최고의 선(善)이라고 생각"했던 과거 세대의 과오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나승인 60+기후행동 상임대표는 "(노년세대가) 쌓아온 공적이 많이 있지만, 기후위기를 불러왔다는 그 책임 또한 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후배세대들이 이에 대해 지적하기 전에, 쌓아놓은 공은 미련 없이 내려두고 과를 책임지기 위해 실천하는 그런 노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말하는 신노년이란 그래서 "개발과 성장 중독에서 벗어나 지속가능성을 최우선 가치로 설정하고, 모든 차이와 경계를 넘어 공생공락하는 인류사회"를 지향한다. 나 대표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현재 시기에, '노년상'을 새롭게 정립하고 노년이 전 지구적 과제인 기후위기 극복과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기 위한 자리"라고 이날 모임의 취지를 밝혔다.

이날 단체가 발표한 '신노년 선언'에 따르면 기후위기 시대의 신노년이란 △기후위기라는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 직접 행동하고 △생태적인 삶을 실천하며 △산업문명을 생태문명으로 전환하기 위해 배움을 지속하고 △가진 것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게 아니라 유무형의 모든 자원을 다른 세대와 나누는 △그리고 다른 생각을 가진 노년은 물론 어린이와 청장년과도 공감하고 연대하는 노년세대를 말한다. 

이들은 이 같은 신노년상을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어슬렁 행동의 강화 △생태적 삶의 생활화를 위한 실천 프로그램 확장 △문명 '전환'을 위한 교육 및 학습의 강화 △범사회적인 '사회적 상속' 운동의 확산 등을 앞으로의 활동 모델로 제시했다. 

▲6일 오후 서울 중국 문학의집 서울에 모인 60+기후행동 활동가들이 '신노년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프레시안(한예섭)

60+기후행동이 말하는 '어슬렁 행동'이란 노년의 활동가들이 직접 기후위기 대응 활동의 현장에 참여해 실천에 나서는 일을 말한다. 지난 2022년 1월 정식으로 출범한 60+기후행동은 실제로 포스코 삼척신규석탄발전소 철회 촉구 집회,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기후전환 정책 촉구 기자회견, 국민연금을 향한 탈석탄 이행 촉구 집회 등의 기후행동을 지난 22개월 동안 이어왔다. 

이날 이들은 "특히 신규 석탄발전 철회를 위한 탈석탄법 제정과 국민연금의 탈석탄선언 이행을 위한 행동에 집중하겠다"라며 "모든 세대와 함께, 비인간 존재와 함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과 함께 문명 전환에 앞장서겠다"고 결의했다.

이날 현장엔 이유진 녹색환경연구소 소장, 한윤정 한신대 생태문명원 공동대표, 전범선 동물해방물결 활동가 등 후배세대 활동가들도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앞서 60+기후행동은 "후배들에게 배우겠다는 의미"로 10~50대 시민들로 구성된 자문위원단을 구성한 바 있다. 

"나도 10년 후면 이 그룹에 속한다"라며 축사에 나선 이유진 소장은 "기후위기에 대해 어떤 세대가 더 많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있겠지만, 결국은 서로가 서로의 뒷배가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라며 "오늘 이 자리에서 (기후활동에 대한) 힘과 용기를 얻어갈 것 같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30대의 젊은 활동가 전범선 자문위원 또한 "어르신들이 아이를 보면서 미래를 보고, 아이들은 어르신을 보면서 미래를 보는 게 당연한 공동체의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라며 "오늘 여기 계신 분들을 보니 (미래에 대한) 저의 희망이 몇 배는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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