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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5일 목요일

한동훈 장관의 미묘한 움직임... 흉악범죄, '사형'이 해결책일까

 


[이게 이슈] 사형 미집행 25년... '찬반' 넘어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 대안 필요

23.10.06 07:17최종 업데이트 23.10.06 07:17

▲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8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한 장관은 전국 4개 교정기관에 "사형 집행 시설을 점검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 남소연

 
# 1997년 12월 30일, 서울구치소를 비롯한 전국 교도소에서 사형수 23명에 대해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 뒤 25년이 흐른 2023년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더는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이른바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다. 최근 5년간 1심 사형 판결은 총 4건에 불과하며, 이 중에서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사건은 없다. 사형제를 없애는 나라가 늘고 있고(OECD 가입국 중에서 사형제가 있는 나라는 미국, 일본 정도다), 사형의 야만성을 거론하면서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 '투표에 참여하시겠습니까?' 어느 날 전 국민에게 의문의 문자메시지가 발송된다. 이른바 <국민사형투표>. 사법 절차를 통해 단죄하지 못한 흉악범을 사형 집행하는 데 찬반 의견을 묻는 투표다. 투표 결과에 따라 찬성이 과반수가 나오면 범죄자는 목숨을 잃게 된다. 최근 '드라마' 이야기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절차가 도입된다면, 우리나라에서 사형이 집행될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 "검사 체면 한 번 세워 주이소. 시원하게 사형 집행 한 번 딱 내려주고…재판장님도 부장판사 정도 되시면 커리어가 있습니다. 사형집행도 아직 한 번 안 해 보셨을 거니까." 3번째 살인죄 혐의로 기소된 A는 법정에서 이렇게 법원과 검찰을 조롱했다. 그는 총 14회 징역형 전과로 약 30년을 교도소에서 복역했고 이미 2차례의 살인(미수) 전력도 있었다. 1심 재판부는 "가석방의 가능성조차 없도록 이 사회에서 영구히 격리해야 할 필요가 크다"며 지난 8월 사형을 선고했다.
#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최근 사형 집행 시설이 있는 교도소에 시설 관리 점검을 지시했다. 또한 한 장관의 지시로 유영철, 정형구 등 사형수들이 사형 집행이 가능한 서울구치소로 이감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를 두고 중단된 사형 집행 재개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한 장관은 지난 8월 국회에서 "어떤 정부도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정한 바 없다"라면서 "사형의 형사 정책적 기능이나 국민의 법 감정, 국내외 상황을 잘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실질적 사형폐지국'에서 다시 고개 드는 사형 집행 여론
 

▲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피고인 최원종이 지난 9월 14일 오전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진행된 첫 공판을 마친 뒤 호송차로 이송되고 있다. ⓒ 복건우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라는 한국에서 사형 존치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더 나아가 사형 집행을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사형제 완전 폐지'를 주장하는 반면, 반대쪽에서는 "법대로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여론과 대중의 정서는 후자 쪽으로 기울고 있다.

대중들이 이토록 사형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최근에 발생하는 흉악범죄에 대한 공포와 이에 대처하는 국가에 대한 불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하철역과 편의점, 길거리 등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살인, 대낮 등산로 성폭행 살인, 정유정 살인사건 등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방식으로 잔혹하게 공격하는 양상의 흉악범죄가 잇따라 발생했다. 

이에 대해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이 제대로 범죄를 예방하고 대처할지, 제대로 범죄자를 단죄할지 대중들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특히 범죄의 잔혹성에 비해 처벌 수위가 터무니없게 낮고, 흉악범이 출소 후 재범을 해도 막기 어렵다는 것이 현재의 여론이다.

다시 말해, 현재 시스템으로는 범죄를 예방하거나 조기에 차단하기 어렵다는 우려, 범죄자를 검거해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고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것이라는 걱정과 함께 흉악범에게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고 나아가 흉악범을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하기를 바라는 의견이 절대다수다.

사형 집행 여론이 대두되는 것은 어쩌면 사법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가져온 결과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흉악범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사형을 집행하는 방안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대법원 "문명국가의 예외적 형벌"... 사형 선고엔 신중
 

▲ [표] 1심 판결로 본 주요 연도별 사형, 무기징역 판결 수. 전국 법원의 1심 판결 선고 기준이며, 최종 대법원 확정판결과는 차이가 있음(자료 : 대법원 연도별 사법연감) ⓒ 김용국

 
먼저, 법원 판례를 보자. 대법원은 사형이 "문명국가의 이성적인 사법제도가 상정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며, "사형의 선고는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분명히 있는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한다"는 신중론을 보이고 있다. 2016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대법원은 "사형의 선고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양형의 조건이 되는 모든 사항을 철저히 심리하여야 하고, 그런 심리를 거쳐 사형의 선고가 정당화될 수 있는 사정이 밝혀진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법원은 사형제가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 필요하다'는 입장이나, 사형 선고에는 무척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1997년을 끝으로 사형 집행이 중단되면서 사형 선고가 감소하고, 무기징역 선고 비율이 높아진 것이 최근의 판결 경향이다. 수치로 보면, 1980년 32건, 1990년 36건, 2000년 20건이던 1심 사형 건수는 2010년 5건, 2011년 1건, 2012년 2건 등 한 자릿수로 감소했다. 특히 2015~2017, 2020, 2021년엔 사형 선고 자체가 없었다.

하급심에서 사형선고가 되어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단적인 예로, 중학생 딸의 친구를 유괴한 후 엽기적으로 살해한 이영학,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한 안인득, 인천 미추홀구 강도 연쇄살인 사건의 장본인 권재찬은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사형제도의 위헌여부를 심판한 헌법재판소(헌재)도 2차례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필요악'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시 말해 "사형이 비례의 원칙에 따라서 다른 생명 또는 그에 못지 아니한 공익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성이 충족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한 위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형제, 세 번째로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올라
 

▲ 2022년 7월 14일, 형법 41조 1호와 250조 2항 중 '사형'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 변론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사형폐지범종교인연합 종교지도자들과 사형폐지를 위한 종교,시민, 사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들이 사형제도 위헌결정 호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그런데 지금 사형제가 세 번째로 헌재 심판대에 올라있다. 위헌 의견을 낸 헌법재판관은 1차(1996년) 2명에서, 2차(2010년) 4명으로 늘었다. 3차 심리 중인 현재의 재판관들이 임명 당시 밝힌 견해를 종합하면 위헌 쪽이 다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9명의 재판관 중 6명 이상이 위헌 의견 쪽에 서면, 사형제도는 법전에서 사라지거나 대대적인 손질을 봐야 할 수도 있다.

'법'과 '판례'는 아직 사형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소수의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을 포함하여 적지 않은 법률전문가들은 사람의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제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므로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형제 폐지 주장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이에게 살인을 금지하면서 국가가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살인행위'를 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사형제도가 범죄 예방에 기여한다는 점은 입증되지 않았고, 재범 위험성이 있는 범죄자는 사형 외에도 사회에서 영구히 격리하는 다른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도 추상적인 공익을 내세워 국가가 개인의 생명을 도구 또는 복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 판사도 신이 아닌 이상 오판할 가능성이 있는데, 사형을 집행한 다음에는 오판을 시정할 방법이 없다.'

9월 여론조사선 '사형집행 찬성'이 70% 넘어
 

▲ 2021년 5월 14일, 16개월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부모에 대한 1심 선고가 열린 서울남부지법앞에서 전국에서 모인 시민들이 '사형' 등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 권우성

  
하지만 여론은 사형제 존치론이 우세하다. 한국갤럽 조사 결과를 보면 사형을 존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2003년 52.3%였다가 오원춘 사건 등이 발생한 2012년 다시 79%로 나타났다. 2022년 조사도 69%가 사형제 유지 의견이었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도 사형제 폐지 찬성은 20.3%(당장 폐지 8.8%, 향후 폐지 15.9%)인 반면 사형제 유지는 59.8%나 됐다.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19.9%였다. 주목할 만한 점은 사형 대체 형벌(감형 없는 종신형) 마련을 전제로 한 사형제 폐지는 66.9%가 찬성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최근 연합뉴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형 집행 재개에 대해 찬성(74.3%)이 반대(22.6%)보다 월등하게 높게 나왔다. 이런 추세로 볼 때 드라마에서처럼 전 국민에게 흉악 살인범의 사형 집행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면 찬성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 살인에는 그에 상응하여 최대한 무거운 처벌을 내리는 것, 그것이 피해자와 유족을 위하는 길이고 정의의 실현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리라.
  
살인범 때문에 두 딸을 잃은 어느 아버지는 법정에서 재판장에게 이렇게 호소했다(어느 판결문에 실제로 소개된 사연이다).

"(살인범에게) 사형을 선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형을 해야만 사회에 나올 수 없습니다. 제가, 피고인 죽이라는 소리 아니에요. … 무기징역을 받는다고 해도, 피고인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오려고 아마 성실하게 생활할 겁니다. 살인자는 살인자일 뿐입니다."

살인 피해자 유족의 입장을 잘 드러내는 표현이다(현행법상 무기징역이 확정되어도 출소할 길은 열려 있다. 무기수가 수감생활 20년이 지나면 가석방 대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살인죄로 무기형을 선고받은 20대 무기수가 40대에 출소하는 일도 가능하다).

사형제 '존폐 논쟁' 대신 제도 보완이 필요

현재 사형판결이 확정돼 복역 중인 사형수는 총 59명(군 교도소 4명 포함). 이들에 대해 지금 바로 사형 집행을 한다고 해도 현행법상 문제는 없다. 하지만 25년간 중단된 사형 집행을 재개하는 것이 타당한지, 시대에 역행하는 건 아닌지 냉정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이유로 사형판결을 받았던 '사형수' 출신 대통령이 사형 집행을 중단한 지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사형 존폐 논쟁 중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수사기관과 사법당국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지 않는 한 국민의 '법감정'은 강한 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여, 여론을 의식하여 '사형 집행' 카드를 꺼내 드는 자극적인 방법이 필요한 시점이 지금인지 의문이다. 그보다는 범죄 원인 규명과 사전 예방 정책, 피해자(유족) 보호 지원 정책, 일상에서 발생하는 흉악 범죄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사형제를 두고 단순한 찬반 양론의 소모적인 논쟁을 넘어섰으면 한다. 존폐를 떠나서 현재의 제도를 보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외국의 사례와 학자들의 연구 결과도 참고할 만하다.

예컨대,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사형제 대신 감형·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비롯하여 ▲사형의 집행유예 도입(사형선고 이후 일정기간 개선 효과를 재평가하여 무기형으로 전환) ▲법정형 사형 규정 최소화(현재는 인명 살상 범죄 외에도 내란, 국가보안법 등에도 사형이 있음) ▲사형 선고 시 법관의 전원일치 요구 ▲오판 가능성에 대비, 재심 구제 확대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국회, 사법부가 제대로 대책을 세우지 못하면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국민사형투표'를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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