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23년 10월 13일 금요일

尹정부, 이스라엘 비극마저 '전 정권 때리기'에 이용하고 싶은가?


[박세열 칼럼] '호전적 극우파'와 손 잡은 윤석열 정부, 하마스 사태 진짜 교훈 삼아야 할 것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3.10.14. 06:24:11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사태를 언급하며 '남북간 군사적 적대행위 중단'을 골자로 한 9.19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관계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실소가 나올법한 주장을 버젓이 내놓는 게 윤석열 정부 안보 수뇌부의 수준이다.

신 장관은 9.19군사합의로 북한 도발 징후에 대한 감시가 제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마스의 기습공격과 관련한 복잡한 정치적 배경을 싹 무시하고 이스라엘의 '정보 실패'만 떼 와서 남북 대치 상황에 적용하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체결한 9.19군사합의를 폐기하고 싶은데, 마침 이스라엘-하마스 사태가 벌어지니 억지춘향 식으로 꿰 맞추는 격이다. 사실 지금 이스라엘에 필요한 것은 9.19군사합의와 같은 장치다.

한반도 상황과 이-팔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첫째,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일개 무장 정파다. 북한과 같은 국가 형태도 아니고, 정규군도 아니다. 하나의 과격 정치 세력이자 '비정규군 테러 단체'다. 둘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영토 경계선이 명확한 남북 분단상황과 완전히 다르다. 양 진영은 왕래가 가능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건너와 경제활동을 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에 정착해 불법 자경단을 꾸려 활동하기도 한다. 적대적인 두 집단이 무력 충돌과 확전 가능성을 일상적으로 품고 사는 곳이다. 웨스트뱅크에선 매일같이 죽고 죽이는 혈투가 벌어진다. 

북한이 하마스 수준의 기습 공격을 감행한다는 건, 국가대 국가의 전면전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하마스와 같은 기습 공격, 민간인 납치 등의 방식을 대대적으로 감행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정보 실패는 하나의 원인이긴 하지만, 하마스 기습 공격의 배경을 이런 식으로 축소해 입맛대로 끌고 오는 건 적절치 않다. 핵심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극단 세력'들이 어떻게 중동의 평화와 이-팔 민간인의 안정을 망치고 있는지에 있다. '극우 정치'다. 윤석열 정부가 교훈 삼아야 하는 것도 이 지점이어야 한다.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7일, 그보다 닷새 전에 <포린어페어스>에 한 편의 기고가 실렸다.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마틴 인딕과 유엔 주재 요르단 대사를 지낸 제이드 라드 알 후세인이 쓴 '사우디-이스라엘 거래가 팔레스타인에 의미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닷새 후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예언한 듯 해 주목된다. 

이스라엘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국제적으로는 미국이 중재하고 있는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 관계 개선 과정에서 위기감을 느낀 팔레스타인 내 강경파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위해 기습공격을 벌인 것이란 분석이 다수다. 팔레스타인 내 강경파들의 지지를 획득하고 세계에 자신들의 존재를 각인하기 위해 외국인들을 포함한 인질을 잡아들였고, 이웃 레바논의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이란을 자극해 중동의 '극단적 정치 세력'이 활동할 공간을 넓히고자 하는 게 목표다. 그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된 것 같다. 심지어 저 멀리 극동에 있는 남북한의 극우파들까지 고개를 들게 만들었으니까.

리딕과 후세인이 주목한 인물은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극우파로 네타냐후 집권 연립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내고 있다. 1980년생인 스모트리히는 웨스트뱅크 정착촌 출신이다. 1967년 이스라엘이 서안 지구를 점령한 후 처음으로 서안 지구 정착을 주장한 초민족주의 종교 단체 구시 에무님(Gush Emunim)을 배출한 메르카즈 하라브 예시바에서 교육을 받은 극우파다. 그는 2005년 가자 지구 정착민 철수 반대 시위에 참여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이스라엘의 주요 교통 동맥인 아얄론 고속도로를 폭파할 계획을 세훈 혐의로 당국에 체포된 이력도 있다. 정계로 진출한 그는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을 대변하고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인종청소' 수준의 주장을 내놓았다. 스모트리히는 2017년 발표한 글에서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을 말살하고, "이 땅에서 아랍 국가가 결코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각인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네타냐후는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이런 극우파들과 적극적으로 손을 잡았다. 그리고 법관 임명을 행정부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법 개혁' 법안을 내놓았다. 네타냐후 본인이 부정부패로 기소된 탓에 논란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스모트리히같은 극우파가 '불법 정착촌'에 제동을 거는 사법부를 손 보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행정부가 사법부를 통제할 수 있다면 팔레스타인인을 내모는 '극우 정책'도 탄력을 받게 된다.

인딕과 후세인은 이 글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관계정상화를 위한 협상에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스모스트리히 같은 극우파를 막도록 힘을 쓰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험천만한 이스라엘 극우파의 폭력이 중동 정세를 악화시키고, 하마스와 같은 상대편 극단 세력에 빌미를 주고 있다는 우려다. 놀랍게도 이 글이 쓰여진 후 5일만에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다. 

미국은 안이하게 생각했고, 이스라엘의 극우화는 가속화됐다. 이스라엘의 군정보 당국은 '도발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진짜 원인은 그게 아니다. '이-팔' 내부 정치 상황과 국제 정세를 통해 봤을 때, 이미 갈등 수위의 임계점에 달했다는 지적은 수없이 제기돼 왔다. 극우파가 설 자리가 없어지만, 하마스도 설 자리가 없어진다. 중동에 평화가 찾아오는 걸 두려워하는 하마스는 잔혹한 기습 공격으로 이스라엘의 허를 찔렀다. 이-팔 양 진영의 '호전적 극우파'들이 벌인 이 참사는 안타깝게도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피의 보복은 피의 보복으로 돌아온다. 영원한 보복의 굴레다.

극우파와 손 잡은 윤석열 정부가 우려스럽다 

핵무기 보유국이기도 한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힘에 의한 평화'의 예시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하마스가 핵이 두려워 테러를 포기하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힘에 의한 평화'가 어떻게 박살이 났는지 우리는 잘 지켜보고 있다. 문제는 호전적 극우파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모가지를 따는 건 시간문제'라고 주장한 인물을 국방부장관에 앉혔다. 어렵게 만들어낸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자는 극우파의 주장이 힘을 얻도록 둔 윤석열 대통령은 권력 연장을 위해 스모트리히와 같은 극우파와 손 잡은 네타냐후와 무엇이 다른가. 

그런데도 교훈은커녕, 입맛에 맞는 파편적 사실을 떼 와 '남북한 적대 행위를 하지 말자'고 한 약속을 휴지통에 던져버리려 하고 있다. 북한이 9.19 합의를 여러차례 어겼다는 것도 맞다. 하지만 모든 약속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공고해진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일본이 국제법과 한국 대통령을 무시하며 '독도는 일본땅'을 계속 외치고 있는데, 윤 대통령은 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폐기하지 않나? 

북한에도 '강경파'가 있고, 한국에도 '강경파'가 있다. '평화파'들이 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최대한 합의가 지켜질 수 있도록 노력해 가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호전적 강경파에 휘둘리는 북한 정권에게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양측 강경파들의 불만으로 인한 몇 차례의 불미스러운 합의 위반이 있다고 해서 합의 자체를 폐기하는 건 남북 양측 극우파들이 바라는 시나리오다. 

9.19합의와 같은 걸 '전 정권'의 불온한 유산으로 규정하고 폐기하려 안간힘을 쓰지 말고, 극우 세력과 손 잡은 이 정부의 모습을 되돌아봐야 한다.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수도권 민심도 확인하지 않았나. 극우파와 손잡고 이념 전쟁에 나선 윤 대통령은 국정 기조를 지금이라도 전환해야 한다. 휴전 상황을 종식시킬 생각은 안하고, 이-팔 상황마저 국내 정치에 활용해 '평화 협정'을 폐기하려는 저급한 정치 공세는 그만두자. '이-팔'과 다른 길을 걸으며 전 세계에 모범을 보여준 9.19군사합의를 팽개치려는 정부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되나.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원식 국방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