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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17일 화요일

노벨상 받은 코로나 백신... 헌신짝처럼 버려진 약속

 


[글로벌건강리포트] 과학 기술의 성과, 어떻게 공평하게 배분할지도 고려해야

23.10.18 05:44최종 업데이트 23.10.18 05:44

▲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카탈린 카리코 헝가리 세게드대학교 교수 겸 바이오엔테크 수석 부사장 (왼쪽), 드루 와이스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 EPA/연합뉴스

 
'노벨상의 달'이라는 10월이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을 가능하게 한 핵심 원리를 발견한 공로로 카탈린 카리코와 드류 와이스먼, 두 사람이 공동 수상한다. 두 사람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의대 동료로 지내며 수십 년간 연구를 함께했다.

과학계는 예상했던 수상이라는 반응이다. 노벨 생리·의학상은 과학 패러다임을 바꾸고 인류에 큰 혜택을 준 발견을 한 사람에게 수여한다. 두 사람의 발견은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목숨을 살린 과학적 발견일지 모른다는 분석도 있다.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mRNA 백신의 과학적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화이자-바이오앤테크와 모더나 백신은 mRNA 백신을 최초로 상용화한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가장 많은 사람이 접종한 코로나19 백신이 됐다. 최근에도 새로 유행하는 변이 바이러스에 맞춰 신규 백신을 내놨다.
코로나19 백신은 이전까지 평균 10년 이상 걸렸던 백신 개발 기간을 1년 미만으로 단축한 전례 없는 경험을 통해 개발됐다. mRNA 백신 외에도 바이러스벡터 백신(옥스퍼드-아스트라제네카, 얀센), 합성항원 백신(노바백스, 스카이코비원) 등 여러 효과적 백신이 빠른 속도로 개발된 후 안전하게 접종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개발을 마치고 전 세계 최초로 승인을 받아 접종을 시작한 건 mRNA 백신이었다. 다른 백신과 달리 병원체를 직접 사용하지 않다 보니 병원체의 유전자 염기서열만 알고 나면 빠른 개발이 가능했다. 변이 바이러스에 맞춰 신규백신을 개발하기에도 용이해 마지막까지 시장에서 살아남은 백신이 됐다.

혁신적 mRNA 백신, 조명되지 않은 이면의 그늘
 

▲ 모더나 백신 (자료사진) ⓒ 연합뉴스

 
이렇듯 혁신적인 mRNA 백신이지만, 이면에는 충분히 조명되지 않은 어두운 그늘이 있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백신이 최초로 상용화한 사례였기에 기존 생산시설이 부족했다. 적어도 전 세계 인구를 빠른 속도로 접종하기에는 생산량이 턱없이 모자랐다. 제한된 생산량은 분배 문제를 야기했다.

'코백스'라는 글로벌 배분 기구를 통해 모든 국가가 공평하게, 의료·돌봄 종사자와 고위험군부터 차례로 접종하자던 국제적 약속은 결국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돈 많고 힘센 고소득국이 인구의 몇 배 분량 백신을 사재기하고 부스터 샷까지 접종하는 동안, 중·저소득국에서는 백신을 구경도 못 한 채 사람들이 죽어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이 과연 기술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mRNA 백신 생산을 위한 기존 시설이 부족했다 해도,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mRNA 백신은 병원체를 대규모로 배양해야 하는 전통적 백신에 비해 소규모 시설에서도 빠르고 저렴하게 대량 생산이 가능했다.

옥스퍼드-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경우, 전 세계 인구를 위한 대규모 생산시설을 구비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해 미리부터 기존 시설을 활용하기 위한 위탁생산 계약을 적극적으로 체결했다. 결과적으로 생산시설이 인도혈청연구소, SK바이오 등 여러 국가에 분산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기술이전도 이뤄졌다.

반면 mRNA 백신을 생산하는 화이자-바이오앤테크는 위탁생산 없이 자체 공장만을 활용했고, 모더나 역시 자체 공장 외에는 단 한 개 회사에만 원액 생산을 위탁했다. 다른 위탁생산 기업에는 이미 제조된 원액을 바이알에 나눠 담고 포장하는 작업만 맡겼다. 기술 유출을 우려한 mRNA 백신 회사들의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남아공 mRNA 백신 허브, 자체 개발·생산에 성공했지만
 

▲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보건기구(WHO) 본부 외관. ⓒ 연합뉴스

 
팬데믹 2년 차인 2021년 6월, 세계보건기구(WHO)는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mRNA 백신 기술이전 허브'를 출범한다고 발표했다. 적어도 다음 팬데믹에는 코로나19와 같은 백신 불평등을 경험하지 않도록, 중·저소득국의 자체생산 역량을 구축한다는 목표였다.

mRNA 백신이 가진 여러 장점은 '안성맞춤'이었다. 코로나19 외에 중·저소득국이 겪는 다른 질병의 백신·치료제로도 적용이 가능했다. 애초 계획은 화이자-바이오앤테크, 모더나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은 뒤 다시 여러 중·저소득국에 기술을 이전한다는 것이었지만, 화이자-바이오앤테크와 모더나는 일체의 기술이전이나 노하우 공유를 거부했다.

반년 뒤인 2022년 2월, mRNA 백신 허브는 모더나 mRNA 백신 염기서열을 기반으로 백신(후보물질)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기술이전을 거부한 제약사들에 보기 좋게 한 방 먹인 셈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에는 전 임상 동물실험까지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자체 습득한 기술과 노하우는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아시아·동유럽 15개 국가에 전수했다.

임상시험을 앞둔 상황에서, 기반으로 삼은 모더나 백신이 새로 유행하는 변이 바이러스에는 효과가 떨어진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결국 임상시험을 취소하고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신규백신 개발을 시작했다. 동시에 기존 백신은 영장류 실험을 진행하면서 다른 중·저소득국에 전수하기 위한 대량생산 기술을 확립하기로 했다.

mRNA 백신 허브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은 원 개발자로부터 기술이전이나 노하우 공유 없이 개발된 최초의 제네릭(복제) 백신이다. 그렇다 해도 모더나, 화이자-바이오앤테크가 기술을 이전하거나 노하우를 공유했더라면, 부족한 자원과 시간을 중복연구에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다. 기술이전이 있었더라면 1년 안에 끝마쳤을 과정에 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다.

특허 등 지적재산권 분쟁 가능성도 mRNA 백신 허브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요인이다. 2020년 10월 모더나는 '팬데믹 기간 코로나19 백신에 대해 특허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라고 공약했지만 mRNA 백신 허브가 소송당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팬데믹 선언은 해제되었고 mRNA 백신 허브는 이 기술을 코로나19 백신 외에 다른 질병의 백신·치료제에도 활용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기술 독점의 폐해는 중·저소득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바이러스벡터 백신(옥스퍼드-아스트라제네카), 합성항원 백신(노바백스, 스카이코비원)에 대해 위탁생산 혹은 자체 개발을 통해 원천기술을 확보했지만 mRNA 백신은 그러지 못했다. 단지 기술적 어려움 때문일까?

mRNA 백신은 이미 소수의 기업이 수많은 특허를 가지고 있어 개발하기 쉽지 않다. 심지어 이들 기업 사이에도 서로 여러 건의 특허침해소송이 진행 중이다. 특허청이 국내 mRNA 백신 개발사를 위해 발간한 <mRNA 백신 특허 분석 보고서>는 '기존 특허의 라이선스(이용허락)를 취득하거나, 기존 특허를 회피할 자체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한다.

이와 같은 어려움 때문인지, '문재인 정부 국정백서'에 따르면 2021년 6월 남아공 케이프타운이 mRNA 백신 기술이전 허브로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 뒤 한국 정부는 '멀티테크 기술이전 허브'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추가 지정을 제안했다. 아무래도 한국이 mRNA 백신 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작용한 듯싶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WHO는 '한국은 이미 많은 종류의 백신을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기술이전 허브보다는 기술이전 허브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필요한 인력양성 허브 역할이 더 적합하다'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이후 한국은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생산훈련) 허브'로 선정되어 중·저소득국 대상 백신·바이오의약품 생산 교육·훈련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막대한 지원의 대가... 한국은?
 

▲ 2022년 4월 25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경기도 성남 분당구 SK바이오사이언스를 방문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연구소를 둘러보고 있다. ⓒ 당선인 대변인실

 
한국 정부는 팬데믹 초기부터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 범정부지원단(위원회)'을 운영하면서 백신 개발사에 아낌없이 지원을 해왔다. mRNA 백신은 단연 핵심 지원 대상이었다. 범정부위원회 산하에는 백신 전문위원회와 별도로 mRNA 백신 전문위원회를 두었고 복지부·질병청 산하 '신·변종 감염병 mRNA 백신사업단'은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정부출연금 688억 원을 포함, 총 900억 원의 연구비를 mRNA 백신 기술 개발과 생산 생태계 구축에 투입한다.

올해만 해도 mRNA 백신 개발·생산 지원에만 총 326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신·변종 감염병 대응 mRNA 백신 임상지원사업(복지부·질병청) 157억 원, 신기술 기반 백신플랫폼 개발지원(질병청) 113억 원, 차세대 백신 생산기반 구축(산업자원부) 56억 원 등이다.

한국 정부가 기여하는 국제보건 이니셔티브를 통한 간접 지원도 무시할 수 없다. 2022년 10월, 감염병대비혁신연합(CEPI)은 mRNA 백신 플랫폼 개발을 위해 SK바이오에 최대 1.4억 불(2천억 원)의 연구개발비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연 300만 불(3년간 총 129억 원)을 CEPI에 기여했다.

mRNA 백신 개발에 성공한 미국도 마찬가지다. 모더나 백신은 미 국립보건원(NIH)과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해 애초 NIH-모더나 백신으로 불렸고, 임상시험 수행과 생산시설 확보를 포함해 연구개발 모든 단계에서 미국 연방정부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았다. 미국 정부를 포함해 각국 정부가 기여한 CEPI로부터도 자금을 지원받았다. 모더나 백신 연구개발에 대한 공적 지원 기여는 100%에 가깝다고 알려졌다.

막대한 지원의 대가는 가혹했다. 모더나가 백신을 공동 개발한 NIH 과학자들을 빼고 모더나 과학자들 이름으로만 특허를 출원한 것이다. NIH가 반발한 것은 물론, 미국 시민단체들도 즉각 비판에 나섰다. 미국 특허법에 따라 연방정부는 연방정부 지원을 통해 개발되었거나 연방정부가 발명·소유한 특허에 대해 개입할 수 있다. 모더나의 독점으로 백신 생산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연방정부는 모더나의 동의 없이도 전 세계 제조업체에 생산을 허락할 수 있다. 전 세계 백신 부족과 불평등 해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권한이지만, 미국 정부는 실제로 활용한 적이 없다.

모더나와 NIH 사이 특허분쟁이 답보상태인 가운데, 올해 초 모더나는 NIH와 라이선스(이용허락) 계약 체결을 통해 NIH에 4억 불(5천억 원)의 로열티(기술료)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매출 360억 불(46조9천억 원)의 1%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매출액에 비해서도 정부 지원에 비해서도 터무니없이 작은 금액이다. 미국 시민단체들은 충분치 않은 해결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과학기술·연구개발 정부 지원 사회적 논의 시작하자
 

▲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11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 등의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삭감된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올해 대비 16.6% 삭감이라는 과감함도 놀랍지만, 국고보조금과 연구개발 예산을 긴축재정을 뒷받침할 재정절감 영역으로 나란히 제시하는 참신함 또한 고개를 젓게 한다.

이번 연구개발 예산 삭감을 두고 '정치가 과학을 망친다'는 진단도 있지만, 본래 과학은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mRNA 백신의 사례는 과학기술의 운명이 기술 그 자체가 아닌 맥락과 제도, 무엇보다 정치·경제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안이 전년도보다 감소한 것은 1991년 이후 33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올해만 해도 정부 예산안에서 연구개발 예산은 사상 처음 30조 원을 돌파했고, 증가율로는 12대 부문 중 다섯 번째로 큰 규모(4.3%)였다.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하에서도 연구개발 중요성이 반영된 예산편성 결과라는 해석이었다.

한국은 벌써 몇 년째,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투자 총액 세계 2위를 차지해 왔다. 이 중 정부·공공 재원이 전체 23.6%, 민간·외국 재원은 76.4%로 민간·외국 비중이 높다지만, GDP 대비 정부연구개발예산 비중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 2배를 상회하며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논란은 과학기술·연구개발 정부 지원에 관한 사회적 논의의 기회일 수도 있다. 과학기술과 연구개발의 의미, 공적 지원의 필요성과 조건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이제는 필요하다. 이해당사자인 과학자의 입장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민들이 이 문제에 의사를 표현하고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더 없는 기회다.

제한된 사회적 자원을 어떤 과학기술에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배분할지에 관한 결정은 연구개발의 성과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갈 수 있느냐에 관한 질문과 떨어져 있지 않다. mRNA 백신의 사례처럼 일부의 혜택을 위해 나머지를 배제할 때, 과학기술이 기존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도구가 되어버릴 때 연구개발과 그에 대한 정부 지원의 의미는 무엇인가? 조건 없는 기초과학 투자가 중요하다지만, 적어도 그 성과가 공평한 접근성이라는 공익, 공적가치에 부합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의무부과가 필요하지 않은가?

지난 11일 열린 올해 과기정통부 국정감사에서는 예산 삭감에 대한 야당의 질타가 쏟아졌다고 한다. 다음 달 예산안 심의에서도 비슷한 공박이 이어질 것이다. 각자 자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하고 참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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