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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일 일요일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독재가 경제를 살렸다”는 윤석열의 헛소리에 대하여

 이완배 기자 

“전두환이 경제는 잘 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이 사람이 좀 무식하고 경솔한 줄만 알았다. 개 사과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 발언에 대해 사과도 했으니 앞으로 그런 무식한 소리는 안 할 것이라 기대도 했다.

그런데 웬걸, 지난주 경북 안동에서 열린 경북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또 “권위주의 독재정부는 국민들 경제는 확실하게 살려놔서 우리나라 산업화의 기반을 만들었다”고 발언했단다. 이쯤 되면 이게 당신의 진심인 거겠지?

지금부터 이 헛소리를 자세히 살펴볼 참이지만, 그 전에 윤 후보에게 하나만 물어보자. 중세 봉건사회였던 조선이 일제 강점기 때 나름 근대 사회로 변모했으니 댁 논리대로라면 일제가 우리나라 근대화의 기반을 닦은 건가?

윤 후보가 잘 모를 것 같아 친절히 알려주자면 그런 논리가 식민지 수혜론, 혹은 식민지 근대화론(이 둘은 궤가 좀 다르긴 하다)이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판을 치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낙성대경제연구소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이영훈 교수 등이 지금도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이다. 아, 윤 후보, 혹시나 싶어 이것도 알려드리는데 낙성대는 대학 이름이 아니에요~.

윤 후보는 이 질문에 답을 해보라. 일제는 조선 근대화의 기반을 닦았나? 독재가 산업화의 기반을 닦았다고 주장하는 자의 머리라면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정해진 것 아니겠나? 뭐 이런 한심한 자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설친단 말인가?

인과관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왜 이런 한심한 발상이 나오느냐? 윤석열 후보의 뇌가 인과관계를 적절히 파악할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군사 독재 시절에 경제가 발전했다”는 사실과 “군사 독재 덕분에 경제가 발전했다”는 주장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일제 강점기 때 최소한의 근대화가 이뤄졌다”는 사실과 “일제 덕분에 최소한의 근대화가 이뤄졌다”는 주장이 아예 다른 이야기인 것처럼 말이다.

‘프레이저 보고서(Fraser Report)’라는 게 있다. 1978년 도널드 매케이 프레이저(Donald MacKay Fraser) 의원 등이 미국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다.

프레이저 의원이 중심이 됐던 프레이저 위원회는 당시 미국에 망명 상태였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출석해 박정희 정권의 치부를 폭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이 프레이저 보고서에는 한국이 어떻게 경제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 상세히 나온다.

그런데 윤 후보, 그거 알고 있나? 박정희가 미국에 원조를 구걸하며 제출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서를 본 미국의 첫 반응이 “수출 전략이 없어서 문제다”라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물론 박정희가 제출한 보고서에 수출 계획이 없지는 않았다. 그럼 그게 뭐였느냐? 토끼털 수출, 돼지고기 수출, 생선 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것이었다. 설마 윤 후보, 박정희가 토끼털 수출과 생선 수출로 한국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겠지?

이 한심한 계획을 수정한 쪽이 미국이다. 즉 보수주의자들이 신격화하며 물고 빠는 박정희의 수출주도 경제는 실체가 없는 허상이라는 이야기다. 그건 박정희의 작품이 아니라 미국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이 그런 지시를 내렸을까? 당연히 한국이 북한과 대치중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60년 북한은 경제력 측면에서 우리나라에 비해 1.5배~3배 정도 앞서나간 국가였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9일 경북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열린 경북 선대위 출범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1.12.29.ⓒ뉴시스

그래서 미국은 어떻게든 동북아시아의 핵심 거점에 자리 잡은 한국의 경제를 발전시켜 공산화를 막아야 했던 과제가 눈앞에 닥쳐 있었다. “미국이 개입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은 채 한국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게 급선무다”라는 것이 바로 월터 패트릭 매카너기(Walter Patrick McConaughy) 주한 미국 대사가 케네디 대통령에게 올린 보고였다.

미국이 동서 냉전 시대에 이런 경제 집중 지원 국가로 삼은 나라가 셋이 있었다. 동북아시아의 핵심 거점 국가였던 한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 동서 냉전의 상징인 서독이 그들이다. 이 세 나라를 집중 지원했던 미국의 전략을 ‘친미국가 개발전략’이라고 부른다. 전부 윤 후보가 하늘처럼 떠받드는 미국 의회 보고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무슨 이야기냐? 박정희가 한국 경제를 살린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박정희는 수출주도 경제를 계획한 적조차 없다. 생선과 토끼털 수출이 뭔 놈의 수출주도 경제란 말이냐? 그 자리에 박정희 말고 아무나 갖다 앉혔어도 미국의 국제전략 구상에 따르면 한국은 수출주도 국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미국이 전략적으로 밀었던 한국, 일본, 서독 세 나라의 1960년대 1970년대 경제 발전 속도를 보라. 셋 중 제일 엿 같은 수준으로 발전했던 게 우리나라다. 그러면 논리적으로 “박정희 덕에 경제가 발전했다”고 말하는 게 정상이냐, “박정희 그 개자식 때문에 우리가 엄청 손해를 봤다”고 말하는 게 정상이냐?

독재는 경제 발전의 적이다

“독재가 경제를 살렸다”는 한심한 발상은 1998년 아시아 출신으로는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 위대한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 1933~)의 가르침 앞에 바로 무릎을 꿇는다. 센은 민주주의야말로 경제 발전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믿는 경제학자다.

실제 센은 한국 경제발전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는데, 그가 내린 결론은 한국의 경제 발전은 박정희 독재 덕분이 아니라, 국민들이 박정희 독재에 끊임없이 저항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즉 민중들이 박정희 독재에 격렬히 맞서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켰기 때문에 독재정권이 폭주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또한 센은 독재 시절에도 강력한 야당이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그 나라 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박정희 독재 시절 한국에는 김대중과 김영삼이라는 걸출한 두 야당 지도자가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심지어 목숨을 걸고 박정희에 맞섰다. 바로 이게 한국 경제 발전의 진짜 원동력이다.

센의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박정희 때문에 일본에 한참 뒤쳐졌던 한국 경제가 최근 일본을 다 따라잡은 이유도 바로 민중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 덕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역사에는 일본의 역사에 없는 민중들의 투쟁이 차고 넘쳤다.

그릇된 역사관과 경제적 무식함이 콜라보를 이루며 윤석열의 독재 찬양이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윤 후보, “독재가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헛소리가 진심이라면 차라리 “독재뿐 아니라 일제 덕분에 우리가 근대화를 이뤘어요”라는 솔직한 심경을 마저 고백하면 어떤가?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 하는 말이다. 그래야 국민이 지도자를 선택하는 일이 좀 쉬워지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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