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15년 2월 25일 수요일

한국형전투기(KFX)사업, 어디로 가나?

한국형전투기(KFX)사업, 어디로 가나?

김종대 2015. 02. 26
조회수 41 추천수 0
  KFX모형.jpg
    한국형 전투기(KFX)의 모형

   작년 12월 대한항공(KAL)의 최고위 관계자가 독일 뮌헨의 EADS(European Aeronautic Defence and Space Company 범유럽방위항공회사) 본사를 방문했다.  그 자회사인 에어버스 D&S사의 방위사업 담당인 피터 마우스 부사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대한항공과 EADS의 한국형 전투기사업(KFX) 참여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확인됐다. 피터 마우스는 유로파이터 전투기 개발을 총괄한 바 있는 인물로 이번 한국형전투기 사업에 관여하게 될 핵심 인물이다. 그리고 나서 한 달여가 지난 1월 중순에 에어버스 측은 방콕에 가 있는 아시아 지역의 항공방위사업을 총괄하는 피에르 자쿠르와 긴급 협의를 한 후 한국의 전투기 개발 사업에 본격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구 한 바퀴 돈 KAL의 최고위층

  이 소식을 전한 EADS 관계자는 “12월 초 대한항공 최고위 관계자의 방문 당시에는 EADS 측이 한국형 전투기사업에 회의적이었으나 최근 사업을 수주할 것이 유력시 되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미측과 기술이전 협상에 난항을 겪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 라이벌인 대한항공과 손잡게 된 것”이라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즉 기술이전에 있어 미국보다 자사가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이로써 총 8조7000억원이 소요될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무기개발사업인 KFX는 대한항공․에어버스와 한국항공우주산업․록히드마틴의 2파전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2월 중 한국형전투기에 대한 업체의 제안서 접수를 즈음해서 한국국방과 대한항공 사이에 항공 방위산업의 대회전이 예고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KAL과 KAI가 KFX 사업 입찰에 참여하는 제안서를 제출하게 되면 3월에 우선 협상대상업체를 선정한다. 이후 6~7월 중 KFX 개발 업체를 최종 선정하게 된다. 방위사업청은 반색하는 눈치다. 대형 국책사업에서 대한항공과 KAI의 경쟁구도를 형성하여 정부가 상당한 반사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화려한 경쟁의 이면에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드러난다. 우선 대한항공의 우왕좌왕하는 이상한 행보다. 앞서 말한 대한항공의 최고위 관계자는 작년 12월 뮌헨 방문 이전에 미국 시애틀의 보잉사 본사도 방문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여기서 차기 한국형 전투기를 보잉사의 F-18을 모델로 개발하는 방안을 협의하였으나 보잉사로부터 어떤 긍정적인 답변도 듣지 못했다. 한국에서 사업의 기반을 확장하려는 보잉의 입장에서는 자사의 여객기를 구매하는 A급 고객인 대한항공의 사업 제안을 소홀하게 받아들였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잉이 이 사업제안을 거절한 것은 전투기 개발에 대한 대한항공의 능력을 의심했던 것은 아닌지, 그 배경에 의문이 생긴다. 최근 몇몇 언론에는 보잉이 한국형 전투기 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공중급유기 판매에 전념한다는 소식이 실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기자가 만난 보잉 한국 지사의 최고위 관계자는 “일절 노코멘트”라면서도 “언론 보도는 대체로 맞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룬 밤’, 뮌헨으로 급회전

  시애틀에서 빈손으로 돌아 온 대항항공의 이 인사가 뮌헨으로 날아 간 시점은 그 직후였다. 이 때 EADS 측은 이미 대한항공이 보잉을 접촉했다는 것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 진다. 대한항공 고위관계자가 돌아간 직후 EADS 측은 담당 임원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겨우 8조원으로 전투기를 개발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한국 정부의 사업계획에 대한 강한 의문이 쏟아져 나왔다. 프랑스가 라팔 전투기를 개발하고 200여 대를 양산하는 데 소요된 예산이 총 1000억 달러(100조원)을 상회한다. 그런데 한국의 개발비 8조원과 생산비용 10조원으로 새로운 전투기를 양산까지 하겠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피터 마우스 부사장은 한국 시장 개척을 위한 장기적 포석 차원에서라도 대한항공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긍정적인 답변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미지 전략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1월에 EADS․에어버스 측은 대한항공에 긍정적 회신을 이메일로 보내 왔다. 내심 한국의 전투기 사업에는 회의적이지만 파트너십은 유지하겠다는 이중전략으로 보인다. 이 긍정적인 회신에도 불구하고 유럽회사는 이 사업에 얼마를 투자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호한 입장이다. 만일 적극적으로 사업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면 굳이 대한항공과의 협상을 거칠 것도 없이 “얼마를 내 놓겠다”는 공격적이고 선제적인 제안이 있을 법 한데 아직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한국항공과 록히드마틴 사이의 사업 협력의 성과를 지켜보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공격적인 마케팅이 있을 수 있다”며 여운을 남길 뿐이다.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사업 파트너를 물색하기에 바쁜 대한항공의 긴박한 행보도 무언가 이상하다. 항공기를 개발하는 전문기업 답지 못하고 사업 참여 그 자체에 매달리는 조급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최근 땅콩 회항 사태와 재무구조 악화라는 악재가 겹친 대한항공이 하락하는 주가를 관리하고 시장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전투기사업에 도전장을 내미는 과장된 행동을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KAL.jpg

  덩치론 내세운 KAL

  대한항공은 그동안 운수사업 위주로 성장해 왔기 때문에 항공기 개발 능력은 의심받아 왔다. 이런 세간의 우려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EADS․에어버스에 사업을 제안하면서 이렇게 강조했다고 한다. “경쟁사인 KAI는 한국에서 재계 순위 100위권에도 못 드는 중소기업이다. 어떻게 전투기사업을 할 수 있겠나. 반면 대한항공은 한국에서 재계순위 9위권으로 대형 사업을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 아닌가.”
 대한항공 측이 내세운 건 이른바 덩치론이다.  “한 때 우리는 KAI를 인수하려고도 했고, 앞으로도 그 계획은 유효하다” 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최근 땅콩 회황에 이어 대한항공이 항공 산업에서도 재계 순위를 앞세워 갑으로 행세하려는 과욕을 부리는 것 아닌지, 또 다른 반발도 예상된다. 지금 대한항공이 처한 상황을 보면 재계 순위를 내세울 만큼 한가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항공기 개발의 기술이 축적되지 않아 지금 진행하고 있는 육군의 무인정찰기 사업에서도 각종 개발 차질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높은 부채비율과 만성적인 적자는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덩치가 크다고 해서 KFX 사업에 대한 투자에서 유리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KFX 기술이전 협상 난항의 틈새

  이런 문제가 있음에도 EADS․에어버스 측이 관심을 보이는 대목은 최근 한미 간에 KFX 사업을 위한 기술이전 협상이 순조롭지 않다는 데 있다. 지난해 11월에 이어 올해 1월에도 한미 간의 사업관계자들이 만나 협상을 했으나 미 정부는 여전히 핵심기술에 대한 수출허가(E/L) 문제에 난색을 표명하였다. 미측은 KFX 사업 파트너로 들어와 있는 인도네시아가 미 동맹국이 아닌 이슬람 국가라는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고, 전자식(EASA) 레이더나 체계통합 기술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은 미 정부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으며, 기술을 이전하더라도 체계 통합은 한국 업체가 아닌 미 업체가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미국의 F-35A에 대한 구매의향서(LoA)를 체결하면서 미국으로부터 기술이전과 300여 명의 기술인력 지원에 대한 긍정적인 회신이 있었던 만큼 기술이전은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전을 낙관한다 하더라도 미국 정부와의 협상을 위해 국방부에 전담 부서나 조직을 만들어 적어도 국방장관 수준에서 미 정부를 상대로 기술이전이 이루어지도록 직접 업무를 챙기지 않으면 기술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 정부에 제대로 된 협상을 하기조차 어렵다. 이 때문에 과거 1990년대에 T-50을 개발하면서 국방부에 사업단을 설치하여 정부-업체-군이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미국을 상대한 전례를 이번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기술이전 협상을 업체에 미루는 것처럼 보여지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술이전이 어려운 것 아니냐는 외부의 의심이 사그라들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런 정황으로 인해 미국이 한국의 전투기 개발에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유럽 회사가 끼어들 틈새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EADS를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EADS의 행보는  KAI-록히드 협력이 깨질 경우에 대비한 ‘기다리는 전략’과, 하다 안 되면 ‘아니면 말고’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지난해의 차기전투기(F-X)사업과 달리 KFX사업에서 EADS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KAI.jpg
 자질론을 내세운 KAI의 반격

  게다가 KAI 측의 반응은 의외다. 일단 경쟁사가 사업에 뛰어든 데 대해 경계하면서도 “대한항공과 유럽회사가 사업에 뛰어든 건 잘 된 일”이라고 오히려 반기는 반응마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최고 핵심 기술을 이전받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유럽 회사가 사업에 참여한다고 하면 우리는 이걸 미국에 ‘기술을 내 놓으라’고 압박할 수 있는 협상의 수단으로 활용하면 된다. 방위사업청도 이 점을 노려 경쟁구도를 만든 것 아니겠나”라는 것이다.
  KAI가 보이고 있는 이런 자신감은 이른바 자질론에서 오는 것이다. 우선 이제껏 T-50, FA-50, 수리온 헬기를 개발한 유일의 통합 법인은 KAI라는 것이다. 따라서 항공기 체계종합능력을 보유한 기업은 KAI 이외에 없다.  게다가 재무구조 역시 KAI는 흑자 기업으로 건실하다는 것이다. KAL의 ‘덩치론’에 대해 KAI는 ‘자질론’으로 응수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돈과 기술
T50.jpg 무인기.jpg
                          한국항공의 대표적 전투기 T50(왼쪽) 대한항공의 무인기

  지난해까지 KFX를 진지하게 검토하던 청와대와 국방부는 2015년에 들어와서는 사업 추진에 더욱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가 재정에서 세수 결함으로 인한 적자폭이 커지고 복지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재정이 고갈될 위기에 처한 박근혜 정부는 대형 국책사업이 여전히 부담된다는 표정을 드러내고 있다. 작년에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주재로 열리던 KFX 검토회의는 올해 들어 일절 열리지 않은 채 잠시 관심권에서 밀려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국방사업에도 먹구름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최근 국방부는 한민구 국방장관의 지시로 중기국방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올해 중기국방계획이 국가 재정상황에 맞춰 하향 조정된다면 공군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올초로 기종선정 미뤄지긴 했지만 입찰이 예정되어 있는 공중급유기 도입사업이나 F-16 성능개량사업, 전투기사업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공군은 전력 공백을 메우는 일이 하루가 시급한 상황에서 미국에 좌지우지 되는 고가의 전투기 구매사업에 매달리는 상황을 막고 한국이 자주적 방위역량을 구축하려면 한국형 전투기사업에 대한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예산 확보가 어렵고 정책적 관심마저 멀어진 상황에서 공군 전체는 조직의 사활이 걸린 사업이 일대 시련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최근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우리가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야 할 미국제 무기구매를 한국형 전투기 사업과 강력히 연계시키지 않은 채 각각 따로 추진하고 있다. 이 또한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한국형전투기사업은 공군의 전력증강 사업 가운데 핵심 중의 핵심이다. 이 사업이 차질을 빚으면 작년에 추진한 차기전투기사업의 명분도 붕괴되며 자칫하면 공군의 존립기반을 흔들고 한국 항공 산업의 미래도 총체적 파산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관리하는 한편 항공 산업은 경쟁다운 경쟁으로 새로운 활력에 바탕해 성장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는 국가적 의지와 리더십이 요구된다.
김종대 디펜스21 플러스 편집장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