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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9일 목요일

서울 구로시장 청년들의 도전...

'똥집맛나' '쾌·슈퍼'... 기발한 청년장사꾼들

15.02.19 20:44l최종 업데이트 15.02.19 20:4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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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에 모인 젊은 장사꾼들 구로시장 한복판에 위치한 '영프라쟈'에 입주한 청년 장사꾼들. 왼쪽부터 김승현(28,아트플라츠), 변은지(28,쾌슈퍼), 윤지혜(29,쾌슈퍼), 김유진(25,아트플라츠), 윤혜원(29,구로는예술대학), 정근영(26,구로는예술대학), 박유석(35,똥집맛나), 전민정(25,아트플라츠).
ⓒ 이희훈

#. 박유석 사장 (35·똥집맛나)

2년 전, 박유석 사장은 3억 원을 빚내서 홍대 앞에 가게를 차렸다. 대구에서 직접 배워 온 '똥집튀김'을 만들어 팔았다. 맛집이라고 소문이 나고 여러 블로그에도 소개됐다. 장사가 잘 되나 했다. 그런데 집주인이 나가라고 했다. 가게가 잘 되니까 건물 가치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 8월, 쫓겨났다. 더 이상 똥집을 튀기고 싶지 않았다.

박 사장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청년 장사꾼들에게 점포를 빌려주는 사업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우리 지금 만나, 똥집맛나'라는 콘셉트로 심사에 나섰다. 똥집 메뉴 하나만으로 자신있었다. 지원한 11개 팀 중 4팀이 뽑혔다. 물론 똥집맛나도 함께였다. 박 사장은 "세입자가 겪어야 하는 갈등 없이 즐겁게 일을 하고 싶었다"라면서 "또래의 청년들과 함께 더 큰 꿈을 키워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 김승현 사장(28·아트플라츠) 

"비어 있는 곳, 외진 공간에 관심이 많았어요. 제 손을 거쳐 사람들이 찾게 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런 이유로 이곳에 터를 잡게 됐어요."

김승현 사장은 창업에 관심이 많았다. 무대 미술을 전공해 그림으로 공간을 변화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학교 후배인 김유진(25)·전민정(25)씨와 함께 초상화도 그렸고, 공장  벽화 그리는 사업도 벌였다. 구청이 창업 점포를 빌려준다는 소식에 시장 골목으로 들어왔다. 김씨는 "관광객들이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면 자연스럽게 시장 홍보가 된다"라면서 "시장을 물건 사러오는 소비 공간이 아닌 관광지로 변화시키겠다"라고 말했다.

구로시장, '아날로그단지'로의 부활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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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과 어우러진 젊은 가게 '아트플라츠' 구로시장 '영프라쟈'에 입주한 아트플라츠. 골목 끝에는 구로시장의 먹자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 이희훈

지난 11일 오후,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에서 5분 거리에 닿아 있는 구로시장. 한복 가게 골목에는 울긋불긋한 색동저고리가 상점에 진열돼 있다. 골목 좌우 건물에서 양쪽으로 내건 천막이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그늘을 선물했다. 먹자 골목에는 돼지고기 삶는 냄새와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올라왔다. 여느 전통 시장의 풍경과 같았다.

막다른 골목에는 셔터가 내려진 가게가 눈에 띄었다. 50년의 시간이 지난 듯, 셔터에는 녹 자국이 진하게 베어 있다. 오랫동안 입주하지 않아 버려진 점포였다. 빈 점포 사이에 독특한 이름의 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달 23일 문을 연 '똥집맛나' '아트플라츠' '구로는예술대학' '쾌·슈퍼'. 바로 구로시장의 청년장사꾼 프로젝트가 벌어지는 공간이다.

이 프로젝트는 폐허의 시장 골목에 청년들의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시작됐다. 특히 문화예술 전문가의 '끼'와 청년의 '깡' 그리고 장사 '꾼'의 화학적 결합을 기대한 것이다. 구로구청의 마을공동체 추진팀과 지역 예술문화 단체인 '구로는예술대학'이 진행하는 민관협력 사업이다. 구로는 예술대학은 지역의 문화, 지역 재생 등의 목적으로 만든 교육 프로젝트다. 3년 전부터 구로시장에서 활동해온 윤혜원(29)씨가 매니저가 돼 청년장사꾼 사업으로 이어졌다(관련기사 : 홍대 놀러가면 술 마시고 노래방... 구로에서는?).

구로구청은 청년들에게 월세(올해 12월까지)와 보증금(내년 6월까지)을 지원한다. 청년 장사꾼들이 자금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점포 크기는 모두 10제곱미터(3~4평) 남짓이다. 네 점포는 낮 12시부터 오후 9시까지 문을 연다. 월요일 하루는 휴무일이다.

문화·예술로 우리 지금 만나... "이웃을 잇는 작은 마을"

구로시장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1960년대, 산업화의 주역인 구로공단이 번창했다. 섬유·봉제공장의 여공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구로동 일대에 모여들어 상권을 형성했다. 이후 시장은 일꾼들의 쉼터이자 주요 생활공간이 됐다. 1990년대 베스트셀러였던 신경숙씨의 소설 <외딴방>과 시인 박노해씨의 <노동의 새벽>의 무대였다.

산업화는 정보화로 이름을 바꾸면서 공단은 구로디지털단지, 가산디지털단지로 탈바꿈했다. 또 인근의 쇼핑몰이 팽창하면서 시장 입지가 좁아졌다. 1990년대 후반, 현대화 사업을 추진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현재는 의류·식품·잡화 등으로 17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상인들은 60~70대 노령층으로 30년 이상의 베테랑들이다. 주요 고객으로 대림동과 가리봉동에 사는 중국 동포들이 많다. 유동인구는 하루 1000여 명으로 집계된다.

청년장사꾼 프로젝트는 '영-프라쟈'라는 이름 아래에 모였다. 영등포역 인근의 백화점과 대항하겠다는 의도다. 부제는 '구로아날로그단지'다. 인근의 구로디지털단지와 차별화해 전통시장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어넣겠다는 의도다. 똥집맛나, 아트플라츠와 프랑스식 팬케익인 크레페를 파는 구로는예술대학과 슈퍼마켓 컨설팅 플랫폼인 쾌·슈퍼의 활약이 기대된다. 입구에 걸린 플래카드에 이들의 지향점이 잘 나타나 있다.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입니다. 빈점포 골목에서 장사를 시작하고자 하는 이유는 지금을 있게 했던 과거를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시장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작은 마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는 오늘을 삽니다. 방문하시는 지금 옆 사람과 가장 즐거운 지금을 사세요."

속닥거리는 청년, 기웃거리는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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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팔고 있어요?" 쾌슈퍼에서 피자를 만들자 지나가던 한 상인이 질문을 던지고 간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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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 속 꽃초상화를 그려 파는 아트플라츠에서 그림을 그리고 이웃한 패션연구원 사장님은 옷 정리를 한다.
ⓒ 이희훈

주변 상인들은 청년장사꾼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가게 메뉴를 맛보기도 하고 장사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한다. 신호떡집 모상수(60) 사장은 "뭘 재밌게 하기에 속닥거리나 보려고 저희가 기웃거리게 된다"라면서 "30~40년 장사한 노하우도 알려주면서 잔소리도 하고 그런다"라고 말했다. 이어 모 사장은 "젊은 장사꾼들이 구로시장에 와서 젊은 점포를 차려놓으니까 젊은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것 같다"라면서 "젊은 취향으로 바뀌게 되면 시장 전체가 활발해질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달성기름집 여영호(58) 사장은 "청년들의 점포는 여름이면 노숙자들이 와서 잠자고 고등학생들이 담배 피우고 도망 가던 곳"이라며 "노인네들은 소비 능력도 적지만 젊은이들이 시장에 와야 돈도 많이 쓸 것 아니냐, 그래서 아주 반갑다"고 말했다.

주변 상인과의 협업도 준비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상인과 축제, 공연 기획은 물론 야시장 등 이벤트 성 사업을 벌일 예정이다. 또 아트플라츠는 상인들의 초상화를 그려 문패처럼 점포에 내 걸 생각이다. 칙칙한 골목, 때 묻은 벽에 그림을 그려 전통 시장의 이미지를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김승현 사장은 "늙어버린 상인들에게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초상화를 그려낼 것"이라며 "간판을 대신해 초상화를 보여주면 사장 얼굴도 익히게 돼 홍보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쾌·슈퍼는 슈퍼마켓 대상 컨설팅을 기획하고 있다. 슈퍼에서 주는 검은 봉지 대신 이미지를 넣은 봉지를 제공하는 등 슈퍼의 문화적 변신을 꿰하고 있다. 변은지(28) 사장은 "슈퍼마켓은 한 나라의 문화를 알 수 있는 문화의 집합체"이라며 "슈퍼마켓의 재해석을 통해서 소상공인들에게 개성을 불어넣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실험 한 달째... 지속가능한 경쟁력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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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시장 좁은 골목 끝에 보이는 크레이프 가게 '구로는예술대학'
ⓒ 이희훈

이들의 실험은 진행형이다. 입소문에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또 구청이 당분간 월세와 보증금을 지원하지만 약속 기간이 끝나면 그들 스스로의 자생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특히 이들은 네 팀이 하나의 그룹을 이뤄 시장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운영 기금을 모아 주요 자재를 공동 구매하고 협업을 통해 앞으로의 난관을 극복해 나갈 계획이다. 구로구청은 올해에도 5~6개의 청년 점포를 유치해 더 큰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프로젝트 매니저인 윤혜원씨는 "구청의 지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자생력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라면서 "문을 연 이유는 서로 다르지만 우리가 상인 공동체가 되길 지향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청년장사꾼의 자체적인 운영회를 만들어 체계적인 협력 관계를 만들겠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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