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신임 국무총리는 인사 청문회를 앞두고 있던 지난달 27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마치 엄청난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이런 말을 했다.
“김영란법 때문에 기자들이 초비상이거든? 안 되겠어. 통과시켜야지, 진짜로. 내가 지금 막고 있잖아, 그치? 욕 먹어가면서. 내 가만히 있으려고 해. 당해봐. 김영란법이 뭐냐, 이렇게 얻어 먹잖아요? 3만원이 넘잖아? 1년 해서 100만원 넘잖아? 김영란법 만들어지면, 요게 못 먹는거지. 하자 이거야. 해 보자.”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김영란법을 반대하는 건 기자들을 염려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언론인들을 핑계로 김영란법 통과를 막으려는 얄팍한 꼼수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 총리가 국회 인준을 통과했지만 갑자기 입장을 바꿀 거라고 보기 어려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영란법 때문에 기자들이 초비상이라거나 이 법이 통과되면 기자들이 줄줄이 붙잡혀갈 거라는 이 총리의 이날 발언도 다분히 과장된 것이다.
흔히 김영란법이라고 부르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 제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하고 법제사법위원회에 걸려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공직자(공무원)가 1회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을 경우 대가성이나 직무 관련성과 무관하게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100만원 이하의 경우에도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 여러 차례 나눠 받는 경우를 감안해 동일인에게 300만원을 초과해서 받는 경우도 역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JTBC 썰전의 한 장면.
 
언론인은 공무원은 아니지만 정무위 논의 막판 단계에서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을 김영란법 적용대상에 포함시키기로 결론이 났다. 공직부패를 뿌리 뽑자는 김영란법의 취지를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언론인을 과연 폭넓은 의미에서 공무원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느냐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언론인이 공적 책무를 지는 건 맞다. 국내 대부분의 언론사가 직간접적으로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언론인도 김영란법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왜 언론인만 예외가 돼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언론인도 부정한 돈을 받으면 처벌돼야 한다는 논리는 언뜻 타당하게 들린다. 촌지는 사라졌다지만 취재원에게 밥 얻어먹는 언론인들은 여전히 많고 접대와 향응의 경계는 모호하다. 언론인을 포함시키느냐 마느냐로 김영란법에 제동이 걸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고 언론인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김영란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JTBC의 손석희 사장이나 뉴스타파의 최승호 PD 등도 떳떳하면 뭐가 문제냐는 입장이다. 손석희 사장은 방송에서 “투명한 권력과 불가근 불가원의 원칙을 지키고 싶은 언론인들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며 “언론인도 (김영란법에) 꼭 넣어주시기 바란다”고 밝힌 바 있고 최 PD는 “뇌물·향응을 받을 자유를 언론자유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부에서 김영란법에 언론인이 포함되면 언론자유가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데 대한 반론이다.
  
부정한 금품을 수수한 언론인들은 형법 375조의 배임수재죄로 처벌받는다. 김영란법은 대가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금품을 받으면 처벌된다는 게 차이다.
 
그러나 손 사장이나 최 PD의 주장은 그야말로 순진한 발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김영란법에 언론인을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동안 돈 받은 것 때문에 처벌 받을까봐 김영란법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 앞으로 접대를 못 받게 될까봐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이완구 총리가 말했던 것처럼 겨우 김치찌개 정도 얻어먹고 검찰에 불려 갈까봐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형법에서는 공무원과 민간인의 금품 수수를 뇌물죄와 배임수재죄로 구분하고 있다. 뇌물죄(수뢰죄)는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 또는 요구하는 죄를 말하고 배임수재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죄를 말한다. 수뢰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배임수재죄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양형도 다르다.
김영란법은 뇌물죄와 별개로 공무원들의 금품 수수를 포괄적으로 금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추진하는 법이다. 그동안 벤츠 여검사 사건처럼 일부 공무원들이 스폰서라는 형식으로 주기적으로 금품을 받고 있는데도 직무 관련성이나 부정청탁 여부를 입증하지 못해 처벌하지 못하는 등의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직무 연관성을 따지지 않고 공무원의 금품 수수를 원천 금지시켜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법이다.
간단히 알기 쉽게 정리하면 이렇다.
수뢰죄(형법 129조) : 공무원이 직무와 연관된 돈을 받으면 처벌 받는다.
배임수재죄(형법 357조) : 일반인이 업무와 연관된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돈을 받으면 처벌 받는다.
김영란법 : 공무원은 직무와 연관되지 않았더라도 돈을 받으면 처벌 받는다.
물론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근절하는 법을 만드는 김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들의 부정부패도 동시에 근절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언론인들도 공무원 만큼의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김영란법에 언론인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언론인들도 직무와 관련이 있든 없든 돈을 받으면 무조건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과 같다.
돈을 받은 언론인을 처벌하라는 주장은 언뜻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건 돈을 받은 회사원을 처벌하라는 주장 만큼이나 아찔한 이야기다. 부정한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한 민간인을 처벌하는 법은 이미 있다. 당연히 언론인도 기사를 써주는 걸 대가로 돈을 받거나 하면 배임수재죄로 감옥에 간다. 실제 사례도 많다. 그러나 지금 논의되는 김영란법은 대가성과 무관하게(대가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돈을 받으면 감옥에 가는 법이다.
취재원에게 김치찌개 몇 번 얻어먹은 정도는 문제가 안 되겠지만 밥값·술값이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이 넘으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골프 접대 한 번에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해외 취재지원이나 광고 집행도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다. 형법에서는 대가성이 있는 경우만 처벌하지만 김영란법은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일단 정해진 금액을 넘으면 무조건 처벌한다.
핵심은 대가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개인들 사이의 거래, 이를 테면 언론인과 취재원 사이의 밥값·술값 계산까지 국가가 개입해야 하느냐에 있다. 돈 받는 기자들은 물론이고 밥 얻어먹고 술 얻어먹는 기자들을 두둔하거나 보호할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과 그걸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윤리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 정당성의 문제다.
  
YTN 뉴스 캡처 화면.
 
공무원의 부정부패는 단호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언론인만 예외로 해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언론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게 불쾌해서도 아니고 잡혀갈까봐 겁이 나서도 아니다. 굳이 언론자유 침해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애초에 법적 정당성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만들면 좋은 법이 아니라 만들어야 할 법만 만드는 게 맞다. 언론인도 포함하면 좋은 게 아니라 언론인을 포함할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300만원어치 술을 얻어먹는 기자를 감쌀 이유는 없지만 그 기자를 처벌하려면 술 얻어먹는 행위의 불법성을 국가권력이 입증해야 한다. 불가근 불가원의 취재원에게 접대를 받는 행위는 분명히 취재윤리에 어긋나고 사회적으로도 지탄받을 일이지만 그 기준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국가가 언론인의 윤리를 법적으로 강제할 명분이 없다. 명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아무리 언론이 타락했다고 한들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은 제한적이다.
나는 떳떳하니 우리 중에 타락한 자를 처벌해 달라는 손석희 사장이나 최승호 PD 등의 도덕적 우월감은 공무원들에게 요구되는 공적 책무와 규율을 언론인까지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이 갖는 의미를 간과하게 만든다. 국가가 언론인의 취재 윤리를 법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다면 김영란법과 별개로 법제화를 검토해야 한다. 공무원의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를 막는 법에 언론인을 끼워넣는 걸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내 밥값은 내가 낼 테니 밥 얻어먹는 기자들을 처벌하라는 일부 언론인들의 과장된 사명감도 문제지만 김영란법이 언론자유를 침해한다거나 언론탄압의 도구로 악용될 거라는 호들갑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언론자유를 핑계로 부패 언론인을 감싼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부패 언론인은 퇴출돼야하고 당연히 상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다만 김영란법이 부패 언론인을 처벌할 근거가 되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논점이 뒤섞이는 걸 경계할 필요가 있다. 김영란법이 통과되면 밥도 못 얻어먹게 된다고 기자들을 조롱하는 이완구 총리가 대표적이다. 김영란법이 통과돼도 떳떳하면 문제가 없을 거라는 손석희 사장이나 최승호 PD도 논점을 뒤섞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알지도 못하는 친척 때문에 검찰에 불려가게 된다거나 언론인의 도덕적 책무가 유치원 교사보다 가벼운 건 아니지 않느냐는 등의 주장도 모두 핵심에서 벗어난 논리들이다.
공무원과 언론인에게 적용되는 법적 책무가 다르다고 지적하는 건 언론인에게 요구되는 윤리 기준이 더 느슨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법적 지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언론인은 공무원이 아니다. 김영란법을 공직 유관기관으로 확대해도 언론인이 포함될 이유가 없다. 정무위 회의록을 보면 언론인도 ‘공적의무 종사자’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데 정무위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 표현이 논란이 됐다.
정무위에서는 당초 정부 예산이 지원되는 KBS와 EBS, 연합뉴스 정도를 포함시키기로 했다가 공영방송인 MBC와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는 서울신문 등이 논의되면서 형평성 차원에서 공적 책무를 지닌 모든 언론사로 확대됐다. 정무위에서도 “공직자 등”이라는 표현으로 언론인을 포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결국 통과됐다. “이렇게 되면 ‘월간낚시’나 ‘여성조선’ 기자도 공무원으로 봐야 하는 것이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결국 언론인을 포함시키느냐 마느냐 때문에 김영란법이 통과되지 않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김영란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언론인을 포함시키고 가자는 주장은 잘못된 조건을 받아들여 오히려 김영란법을 무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김영란법의 취지에 동의한다면 이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라도 잘못된 전제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김영란법은 입법 취지에 맞게 공직자의 부정한 청탁과 금품 수수를 금지하는 핵심에 충실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