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부, ‘라인 지분 매각 압박’ 받는 네이버 두고 “입장 결정하면 지원”
- 김백겸 기자 kbg@vop.co.kr
- 발행 2024-05-10 20:26:42
- 수정 2024-05-10 21:46:51
전문가들은 이미 네이버가 실질적으로 '일본 정부의 압박'이라는 외부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네이버가 입장을 정하는 것이 먼저'라는 태도를 보인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유감" 표명했지만 일본 정부 입장 그대로 되풀이한 과기부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10일 브리핑을 열고 "일본 정부는 행정지도에 지분매각이라는 표현이 없다고 확인했지만, 우리 기업에 지분매각 압박으로 인식되는 점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유감을 표명했지만, 유감이 향하는 대상은 모호하다. 과기부 입장을 보면 사건의 발단이 된 일본 총무성의 행정지도에 대해서는 '지분매각을 직접 압박한 것은 아니다'라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날 오전 마쓰모토 다케아키(松本剛明) 일본 총무상은 기자회견에서 라인야후에 대한 행정지도와 관련, "경영권 관점에서 자본 관계 재검토를 요청한 것이 아니"라면서 "철저한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고 이용자 이익을 확실히 보호하도록 요청하는 행정지도를 실시했다"고 기존의 원론적인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입장과 달리 현재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진행 중인 라인야후의 지분 조정 협상은 일본 총무성의 행정지도가 계기가 됐다.
지난달 16일 일본 총무성은 라인야후에서 지난해 11월 일어난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2차 행정지도를 통해 '자본관계를 포함한 네이버와의 관계 재검토'를 요청했다. 앞서 라인야후는 지난 3월 총무성의 행정지도를 통해 구체적인 재발방치대책을 세울 것을 요청했다. 이에 라인야후가 4월 1일 네이버와의 위탁업무를 종료하고, 네이버와의 네트워크도 차단하는 내용을 담은 재발방지책을 보고했다. 기술적으로 완전히 네이버와 단절하겠다는 강력한 대책이었다. 그럼에도 총무성은 2차 행정지도에 나서 '네이버와의 자본관계를 재검토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총무성이 같은 사안에 대해 단기간에 두차례 행정지도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며, 특히 해외 민간기업의 지분 관계를 조정하라고 언급한 것도 이례적이다.
행정지도는 법적인 강제력이 없지만, 실제로 라인야후, 소프트뱅크는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요청해 협상이 진행 중이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는 라인야후의 지분을 절반씩 가지고 있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A홀딩스라는 지주회사의 지분을 각각 50%씩 가지고, A홀딩스가 라인야후의 지분 64.5%를 가진 구조다. 기업 구조상 라인야후는 소프트뱅크의 계열사로 분류되며, 네이버와는 관계사 관계다. 네이버의 지분이 조금이라도 넘어가면 라인야후는 지분 상으로도 완전한 '일본기업'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라인야후가 대주주인 네이버에게 지분을 조정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나, 라인의 개발사인 네이버에게 기술·개발을 의지하고 있는 소프트뱅크가 라인의 지분을 매각하라고 요청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협상이다. 행정지도를 네이버에 대한 지분 매각 압박으로 해석하는 배경이다.
그럼에도 과기부가 '지분매각을 직접 표현하지 않았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굳이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효창 두원공과대 교수는 "라인야후 경영진이 공식적으로 네이버에 지분 관계를 조정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한 것은 그만큼 일본 정부의 압력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자회사(라인야후)가 대주주(네이버)에게 '지분을 정리하세요'라고 요청하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느냐"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 행간을 과기부가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도 "정말 일본 정부 입장대로 (행정지도가) 지분 조정 문제와 전혀 관계없다고 한다면 '네이버가 지분을 넘길 거냐, 말 거냐'는 문제가 생길 수 없다"면서 "일본 정부 압박에서 비롯된 협상이 아니라면, 네이버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안 팔겠다'고 하면 쉽게 해결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고 있는데, 과기부 설명을 납득할 수 없다"면서 "(과기부가) 차라리 일본 정부로 하여금 네이버에게 '지분을 매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명확히 밝히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력 대응"한다는 정부, 대응 방향은 "네이버가 결정하면..."
전문가들 "네이버가 합리적 결정 내릴 수 있도록 국가가 보호해야"
과기부는 이번 일의 대응에 대해 "단호하고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표현했지만, 대응 방향에 대해서는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강 2차관은 "정부는 네이버를 포함한 우리 기업이 해외 사업·해외 투자와 관련해 어떠한 불이익 처분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확고한 입장"이라며 "우리 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와 우리 기업의 의사에 반하는 부당한 조치에 대해선 단호하고 강력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강 2차관은 "네이버가 라인야후 지분과 사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일 경우, 적절한 정보보안 강화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네이버는 자사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라인야후에 접목시키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어 지분매각을 포함한 여러 대안을 중장기적인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검토해 왔던 상황이라 밝혔다"고 언급했다. 네이버도 같은 날 공식입장 자료를 통해 "지분 매각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고 소프트뱅크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종합하면 '지분 매각'까지 포함해 대응을 검토 중인 네이버의 결정에 따라 정부가 대응하겠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네이버가 지분 매각을 결정하더라도 존중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민간 기업에 대한 지분 매각 압박이 부당하듯이, 민간 기업이 지분 매각하겠다고 결정한 것을 정부가 직접적으로 막을 순 없다. 그러나 현재 네이버가 일본 정부의 압박을 받으면서 경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문제다. 네이버가 정상적인 경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강 2차관은 "A홀딩스의 지분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0:50인데, 이사 구성 등을 볼 때 라인야후의 경영권은 2019년부터 사실상 소프트뱅크에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현재도 라인야후의 경영권은 소프트뱅크에 있으니 네이버가 지분을 매각하더라도 '경영권' 문제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정부가 이번 라인야후 문제의 의미를 축소 해석하려는 시도로 비칠 수 있다.
실제로 통합 합의 당시 경영권은 소프트뱅크가, 기술·개발은 네이버가 담당하기로 했다. A홀딩스의 구체적인 지분관계를 보면 소프트뱅크 50%, 네이버 42.25%, 제이허브 7.75%의 구조다. 제이허브는 네이버 지분 100%의 일본 자회사다. 실제로는 소프트뱅크와 네이버가 절반씩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지만, 형식상으로는 소프트뱅크를 대주주로 세워준 것이다.
이미 경영권까지 소프트뱅크에 넘겨준 네이버 입장에서 추가로 지분까지 넘겨주는 것은 큰 손해다. 단순히 라인에 대한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뿐 아니라 라인을 발판 삼아 해외로 진출하려는 네이버의 글로벌 진출 전략이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라인의 글로벌 진출을 담당하는 라인플러스는 한국에 있지만, 라인야후의 자회사다. 일본 등 해외에서 서비스 중인 '라인망가'를 통해서는 네이버웹툰의 콘텐츠가 유통되고 있다. 이 밖에도 게임개발사인 '라인게임즈', 메타버스 플랫폼인 '네이버제트', 라인프렌즈 캐릭터 사업을 운영하는 'IPX' 등 네이버와 관련된 많은 사업들이 라인야후와 지분을 나누고 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네이버는 소프트뱅크가 요청한 지분 조정 협상을 굳이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일본 정부의 압박이 네이버를 협상장으로 끌고 나왔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네이버의 경영 판단을 존중하겠다면, 먼저 일본 정부로부터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네이버를 보호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방효창 교수는 "기업의 경영은 외적 변수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의도치 않은 외적 변수 영향을 받게 되면 경영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면서 "과기부가 팔짱 끼고 네이버 입장을 지켜보겠다고 하면 안 된다. 일본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개입해서 민간기업의 경영권과 관계된 부분을 좌지우지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인데, 그런 협상을 네이버가 받아들였다고 해서 정부가 네이버 입장을 확인하겠다는 건 이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의 조치가 국제통상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송기호 변호사는 2003년 발효된 '한일투자협정'을 언급하면서 "국가 간 체결한 협정에 있는 최소한의 혜택을 민간기업이 누리게 하는 건 국가의 의무"라며 "네이버가 일본 정부의 압박으로 자유롭고, 정상적인 상황에서 경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는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가 한일투자협정 10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일투자협정 제10조는 한일 양국 모두 자국 내 투자자를 상대로 '수용·국유화에 해당하는 조치'를 취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송 변호사는 "네이버가 지분을 매각할 수도 있지만 일본 정부의 압박에 의해서 결정하는 게 아니라 회사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면서 "네이버가 합리적인 경영 판단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국가가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프레임에 따라가는 듯한 태도는 한일투자협정에 따른 한국 기업의 보호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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