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코리아] 당신도 내뿜는 이산화탄소··· 기후위기 청구서 누구도 피할 수 없어
24.05.21 07:04ㅣ최종 업데이트 24.05.21 07:04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
▲ 기후는 정의와 도덕의 문제다. ⓒ 셔터스톡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추는 문제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기후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 글은 기후위기란 문제의 본질을 우리 사회가 아직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다른 말로 첫 단추도 제대로 끼우고 있지 못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기후가 환경이라는 오랜 범주에 속한 문제라는 생각이 그 예다.
기후위기라는 문제는 무엇인가? 여러 깊이의 고찰이 가능하지만, 이야기의 출발을 위해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정의하자면 대기 중 온실가스의 농도가 급격히 오르면서 지구 기온이 따라서 상승하는 문제를 말한다.
이 문제가 환경이라는 범주에 속한다는 생각은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의 집합적 생각은 제도로 구현되고 제도는 다시 집단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 사회의 여러 제도는 이 문제를 환경의 범주에 담고 있다.
정부는 기후변화를 환경부의 일로 생각한다. 대통령, 국방부, 기획재정부, 교육부, 산업통상자원부의 일이 따로 있듯이 환경부가 따로 맡은 일 가운데 하나가 기후인 양 다루면서, 그런 수준의 대접을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기자들은 취재 영역에 해당하는 출입처를 갖게 되는데 기자가 매일 그리는 사회의 상은 이 시스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기후위기란 주제는 대체로 환경부를 출입하는 기자의 일로 여겨진다. 그들에 대한 대접은 정치, 경제, 사회 부문 기자에 비해 결코 낫지 않다.
기업은 어떤가. 기후를 ESG(Environmental 환경, Social 사회, Governance 지배구조)팀의 일쯤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지난글에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종오 사무국장이 지적한 바대로 그나마도 '입틀막'의 수모를 겪고 있는 터다.
미리 오해는 막고자 한다. 기후 문제는 환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구분해 따로 존재할 수 없다는 환경의 근본 의식은 기후 대응의 뿌리를 이룬다. 환경과 기후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선을 긋고 "환경 다루던 이들아, 기후는 당신 과업에 비해 더 큰 대업이야"라고 소리 내기 위함도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환경 문제를 그 중요성에 걸맞게 진지한 대접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할당 받은 배출 총량 거의 써버려
▲ 4월 22일 오후 국회수소충전소 옆에 기후위기시계가 설치돼 있다. ⓒ 연합뉴스
그럼에도 범주를 말하는 이유는 다시 돌아가 기후 문제의 첫 단추를 정확히 끼우기 위함이다. 기후 문제가 환경에 속하지 않는 첫째 이유는 환경 문제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인간조차도 기후 문제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1962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살충제가 자연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를 다뤘다. 이 책이 쏜 서구 환경운동의 화살은 1970년대 일본, 1980년대 한국으로 이어졌으며 역시 공해 문제가 급한 화두였다.
그런데 이런 온갖 공해를 일으키고도 나는 좋은 것 챙겨 먹으면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악덕업자조차 대기로부터 벗어날 순 없다. 오르는 지구의 기온은 코스타리카의 황금 두꺼비(기후위기로 멸종), 저개발국의 이주민, 선진국의 저소득층에 이어 그들에게도 반드시 찾아갈 것이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에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청구서는 당도한다.
둘째, 기후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문제다. 온실가스는 페놀 같은 공해 물질이 아니다. 나와 당신도 내뿜는 이산화탄소다. 먹고, 입고, 지내는 인간의 모든 일들이 유관하다. 단지 이 모든 일이 과학기술과 결합하여 대량의 에너지 소비와 함께 이뤄지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기후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 소비, 분배하는 경제와 나눌 수 없는 연관이 있다.
셋째, 기후는 정의와 도덕의 문제다. 지구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제한하겠다는 '파리 기후 협약'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과학은 예언하지 않기에 변화에 대해 여러 어려운 단서가 달려 있지만, 더 빈번한 자연재난, 해수면 상승, 수많은 생물종의 절멸 등 예견되는 재앙은 두말할 필요 없이 크다.
그리고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가 쌓이면 쌓일수록 "알고 보니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니었어"가 아니라 "예상 이상으로 위험하잖아"란 결과가 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불구덩이 옆의 아기와 같이 위험한 장난을 치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이 지금까지 밝혀낸 지구 온난화의 메커니즘은 단순한 공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데,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은 온실가스의 누적량과 비례한다는 것이다. 이 말의 뜻은 인간이 내뿜을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은 배출하기도 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가 있다면 과학기술로 배출 가스를 다시 거둬들이는 것이지만 아직 믿을 만한 기술은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재앙'에 앞서 공동으로 쓸 수 있는 배출 총량을 절대자에게 이미 할당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나가고 힘 있는 자들이 먼저 거의 써버렸다. 한데 종말은 모두에게 떨어진다. 못 가진 이, 힘없는 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에게 이런 부당한 일이 어디 있는가. 그런 일을 눈 뜨고 보고 있는 우리에게 양심이란 대체 무슨 의미인가.
이런 의미에서 기후는 환경부, 환경 기자, ESG팀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느 누구의 문제도 아니다. 당신과 나의 문제다.
▲ 권오성 / 기후솔루션 미디어팀장 ⓒ 권오성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권오성은 한겨레신문사에서 기자, 데이터저널리스트, 미디어전략팀장 등으로 14년을 일했습니다. 이후 LG AI연구원에서 커뮤니케이션 책임으로 일했으며, 현재 기후위기 대응 비영리단체인 기후솔루션에서 언론 커뮤니케이션을 맡고 있습니다. 미국 시러큐스대학교에서 컴퓨테이셔널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박사 과정 중입니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부른 생각치 못한 영향에 관심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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