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테무 ‘유해 제품’ 문제 여전...전문가들 “종합적 대책 필요”
- 김백겸 기자 kbg@vop.co.kr
- 발행 2024-05-20 19:02:59
- 수정 2024-05-20 19:20:28
전문가들은 "애초에 실현 불가능했던 설익은 정책이었다"고 지적한다. 또 알리익스프레스(알리), 테무 등 'C커머스'의 유해제품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는 실존하는 만큼 '직구 금지' 등 투박한 정책을 내놓는 것이 아닌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은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해외직구 대책 관련 브리핑에서 저희(정부)가 말씀드린 80개 '위해품목의 해외직구를 사전적으로 전면 금지·차단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지난 16일 KC인증(안전·보건·환경·품질 등의 법정 강제인증제도를 단일화한국가인증통합마크)을 받지 않은 해외 제품의 직구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어린이용 제품 어린이제품 34개 품목, 전기·생활용품 34개 품목, 생활화학제품 12개 품목 등 총 80개에 달하는 직구 금지 품목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알리·테무 등에서 해외 직구를 통해 국내 유통되는 어린이용 제품에서 발암 물질인 카드뮴이 국내 기준치의 3,026배가 넘게 검출되는 등 유해 제품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당시 16일 브리핑에서 이정원 국무조정실 2차장은 "소비자 편익이나 권익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물건은 들어오지 않게 만드는 게 국가의 기본 책무"라며 "소비자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소비자 편익의 침해가 예상되지만, 이를 감수하겠다는 입장으로 읽힌다.
그러나 문제가 된 유해 제품뿐 아니라 기존에 직구로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물품도 모두 금지되는 것 아니냐는 소비자들의 우려가 나왔다. 어린이제품 금지 품목에 '완구'가 포함되면서 성인들이 취미로 즐기는 프라모델, 피규어 등도 금지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소비자들의 걱정이 취미 관련 커뮤니티를 뒤덮었다.
전기·생활용품 품목 중에는 컴퓨터용 전원공급장치, 전지 등이 포함되면서 부품뿐 아니라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폰 등 완제품의 직구도 막힐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는 직구로 구입할 경우 정식 수입 제품보다 가격이 저렴한 경우가 많아 주요 직구 품목 중 하나인 만큼 소비자들의 반대 여론도 컸다. 무선통신장치의 적합성 인증을 국립전파연구원이 담당하는데 이번 '직구 금지' 정책을 내놓은 관계부처TF(태스크포스)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이와 관련한 명확한 입장을 곧바로 내놓지도 못했다.
규제 반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해외직구 자유를 보장해주세요'라는 청원을 올린 청원인은 "정부는 안전을 이유로 수많은 제품의 해외직구를 금지하려 하지만 국민 스스로 위험을 평가하고 선택할 자유가 있다"며 "국민을 과보호한다면 이는 국민 자유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대 여론이 들끓자 국무조정실은 지난 17일 밤 보도자료를 내고 "(KC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도) 해외 직구를 원천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6월 중 실제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의 반입만 차단하겠다"고 수습에 나섰다.
그럼에도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자 결국 일요일인 19일 브리핑을 열고 이정원 2차장이 직접 나서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이 2차장은 "이유 여부를 불문하고 국민 여러분께 혼선을 끼쳐 드려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밝혔다.
그는 "학용품, 어린이 제품도 종류가 수천, 수만,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도 잘 안되는 것들이고, 조명기기도 제품 종류가 굉장히 많을 것"이라며 "80개를 일시에 한꺼번에 사전에 해외직구를 차단한다, 금지한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16일 당시 정책 발표에서 '소비자 편익 침해를 감수하겠다'며 단호한 입장을 보이던 것과는 정반대다.
정부는 위해성 조사를 실시해 위해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제품의 경우 차단 등의 대책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2차장은 "80개 품목, 위험할 것 같은 품목에 대해서 관계부처와 함께 관세청, 산업부, 환경부 등과 함께 집중적으로 위해성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위해성이 확인된 품목이 아니라면 이전처럼 자유로운 해외 직구가 가능하다.
여당하고도 소통 안 했나...국민의힘 "사전협의 촉구"
알리·테무 '유해 제품' 문제는 여전한데..."종합적 대책 필요"
이번 논란은 정부가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정부가 강제로 해외직구를 막으려면 대대적인 법률 개정이 필요하지만, 16일 정책 발표에서는 "KC인증이 없는 경우 해외직구를 금지한다"고 단정적으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또 법률 개정 전까지는 "관세법에 근거한 위해제품 반입 차단을 실시할 예정이며, 관세청과 소관부처 준비를 거쳐 6월 중 시행한다"고 '6월 시행'을 못 박았다.
KC 인증을 받지 못한 어린이제품 등 80개 대상 품목이 당장 6월부터 반입 차단된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특정 품목의 반입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어린이제품법, 전기생활용품안전법, 화학제품안전법 등 제품 관련 법 10개 법률과 전자상거래법 등 유통 관련 법 5개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다. 정부가 당장 6월부터 시행하겠다는 근거로 밝힌 '관세법 제237조'도 '국민보건 등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위해제품 차단이 가능하다.
법 개정이 필요한 만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하지만, 여당인 국민의힘 안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일 이번 사태와 관련해 "앞으로 정부 각 부처는 각종 민생 정책, 특히 국민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주요 정책의 입안 과정에서 반드시 당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직구 금지' 발표에 앞서 여당과 소통이 있었는지 의심이 드는 부분이다.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정책이라는 지적도 있다. 연간 1억건이 넘는 해외직구 물품을 일일이 확인해 규제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직구 건수는 1억3,144만3,000건이다. 이 중 중국 직구 규모는 8,881만5,000건으로, 전체의 68%에 달한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처장은 "중국에서 직구로 들어오는 물품이 한두개가 아닌데 어떻게 다 검사를 하겠다는 거냐"라며 "인력, 장비, 시간이 다 부족한 상황에서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에서 지난 3월부터 TF로 모여 정책을 만들어냈다는 사람들이 준비도 제대로 안하고, 탁상행정으로 웃음거리가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관세청 인력을 증원한 것도 아니고 몇천만건씩되는 물품을 체크하는 게 가능하겠느냐"라고 반문하면서 "이걸 시스템을 만들어서 걸러져야 하는데 아직 데이터베이스도 구축이 안 된 상태에서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유일한 안전성 기준으로 KC만을 고집하기보다 해외 인증 기준을 준용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의 CCC, 유럽 CE, 미국 FCC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은희 교수는 "해외직구를 하는 소비자 입장을 생각하면 유럽 CE 인증 등 해외 기준의 인정이 있으면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상모 국가기술표준원 제품안전정책국장은 지난 19일 "전기용품·생활용품안전법, 어린이제품안전법에 있는 68개 품목의 직구의 안전성을 위해서 법률 개정을 통해서 KC 인증을 받지 못한 제품을 차단하는 방안을 제시했었다"며 "앞으로 KC 인증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므로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쳐서 법률 개정 여부를 신중히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알리·테무를 통해 유해제품이 유통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정부는 19일 '직구 금지' 정책을 철회하면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만 차단하겠다는 입장으로 물러섰다. 이전처럼 '사후규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직구 물품을 규제하는 단순한 방안보다 정부의 적극적인 모니터링, 소비자 정보 제공 확대 등 종합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플랫폼과의 자율 규제도 실제로 작동돼야 하고, 적극적인 모니터링으로 리콜 등도 작동해야 한다"면서 "유해제품 자체를 차단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소비자에 대한 교육과 홍보로 소비자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게 하도록 하는 등 정부가 종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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