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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4일 토요일

진짜 문제는 ‘메피아’ 품은 ‘외주화’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서울도시철도 노동조합원들이 2008년 서울 고덕차량기지에서 공공기관 외주화가 주된 내용인 창의혁신계획을 반대하는 총파업 전야제를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서울도시철도 노동조합원들이 2008년 서울 고덕차량기지에서 공공기관 외주화가 주된 내용인 창의혁신계획을 반대하는 총파업 전야제를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서울메트로 구조개선을 위한 효율화 과정이 19세 노동자의 죽음 불러

“매출이 증가하였고 인건비 등 관리비용이 감소하여 전반적인 손실규모 감소함.”
행정안전부(현 행정자치부)가 2012년 전국 219개 지방공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1년도 경영실적 평가 결과’에서 서울메트로는 최고 등급인 ‘가’ 등급을 받았다. ‘가’ 등급을 받은 곳은 상위 10% 격인 총 25곳이었다. ‘가’ 등급을 받은 공기업은 사장의 경우 301~450%, 임직원의 경우 201~300%의 지급률로 성과급이 결정된다. 단계가 내려갈수록 성과급 지급률이 깎이며, 최저 등급인 ‘마’ 등급의 경우 성과급이 동결되고 사장이나 임원의 연봉도 5~10% 삭감된다. 경영개선명령을 받아 사업규모 축소, 조직개편, 법인 청산 등의 조치도 취해야 한다.
서울메트로도 한때는 ‘문제아’였다. 2001년 행정안전부로부터 경영개선명령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감사원으로부터도 경영효율화 추진을 요구받았다.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인 2008년 서울메트로는 구조개선을 위한 ‘창의혁신프로그램’을 가동, 전동차 경정비 업무를 최저입찰제를 적용해 민간에 위탁용역을 맡기는 것을 시작으로 구조개혁의 시동을 걸었다. 인력은 줄어들고 재무구조는 개선됐다. 그러나 안전업무 외주화 등 ‘효율화의 과정’은 19세 스크린도어(안전문) 정비노동자의 죽음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방공기업 효율화의 가이드라인은 행정자치부가 제시한다. 행정자치부의 2011년도 평가보고서를 보면 지하철공사 7곳(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 부산교통공사, 대구지하철, 인천지하철, 광주도시철도, 대전도시철도) 전체를 합쳐 903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2006년(8556억원) 이후 최대 손실규모였다. 행정안전부는 적자의 이유로 초기 건설차입금으로 인한 금융비용 부담, 대규모 시설의 감가상각비, 수송원가 대비 낮은 운송요금 수준과 더불어 ‘복지무임승차’를 지목했다. 노인 등 교통약자들에게 적용되는 지하철요금 면제로 인한 손실규모는 총 3689억원으로, 손실규모의 40%, 전체 매출액의 18%에 해당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수도권 환승할인도 적자폭을 높인 이유였다.
행정자치부는 보고서에서 지하철공사의 부채구조는 “초기건설비와 낮은 요금적정화율 등의 구조적 어려움”으로 인한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적자 경영상태를 탈피해 지자체의 부담을 해소하고 자립경영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재무구조 및 경영수지 개선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송원가 대비 요금률(요금현실화율)이 55%에 불과해 전반적 요금 현실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거론했으면서도 “현실적으로 물가상승률 억제로 인한 요금 현실화가 어려우므로 자체 사업을 추진해 손실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부대수익사업 발굴, 민자 유치 등 사업 다각화를 통한 수익성 제고”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시설물 임대, 비핵심부문의 분사 또는 아웃소싱 등을 통한 구조조정 등을 예시했다. 지하철공사 7곳 모두 인력 감축으로 1인당 매출액이 400만원 늘어났다는 점도 제시했다.
서울메트로는 이전부터 행정안전부의 권고를 충실히 따랐다. 2009년에 세운 서울메트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보면 조직개편으로 404명, 점검업무 기계화로 54명, 2호선 지선 1인 승무제로 37명 등 인력 467명을 감축할 계획이 나타난다. 이외 비핵심업무 외주 위탁으로 453명을 감축할 계획을 세웠다. 역무, 철도장비, 전동차 정비, 유실물센터 업무가 ‘비핵심업무’로 분류됐다. 또한 일부 ‘외주’로 운영되던 궤도시설물 유지·보수, 건축시설 보수, 신호설비 및 전원장치·통신설비·지상전력 공급로 보수, 청원경찰 업무분야의 외주 규모를 확대해 228명을 추가로 감축하기로 계획했다. 조건부 외주업체로 파인서브웨이(유실물센터), ㈜성보세이프티(구내운전), 프로종합관리㈜(전동차 경전비), ㈜고암(모터카 및 철도장비), 은성PSD(역사 유지·관리)가 선정됐다. 이번에 숨진 19세 전동차 안전문 정비노동자는 은성PSD 소속이었다. 일부 업무와 역을 민간위탁하면서 잔여 인력이 발생했고, 서울메트로는 재교육 후 재배치 대신 조건부 민간위탁된 용역회사로 전직을 유도했다. 프로종합관리㈜의 경우 서울메트로에서 이직한 직원은 2008년 1차 계약 때 33명이었고, 2011년 2차 계약 때는 64명으로 늘었다.
전동차 애자(절연체 덮개) 청소 중인 이주업체 (주)프로종합관리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3명과 서울메트로 소속 정규직 1명.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전동차 애자(절연체 덮개) 청소 중인 이주업체 (주)프로종합관리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3명과 서울메트로 소속 정규직 1명.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메피아’의 탄생은 외주 구조에서 가능했다. 외주업체는 지속적으로 원청업체인 서울메트로로부터 일감을 수주하는 대가로 인건비와 노사관리 부담을 떠안았으며, 이렇게 생긴 부담은 비정규직과 청년층의 인건비 절감에서 메웠다. <CBS 노컷뉴스>가 폭로한 2011년 서울메트로와 은성PSD가 체결한 용역계약서를 보면 서울메트로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스크린도어 정비·관리 용역비로 210억원(월 5억8000만원)을 지불하기로 계약했다. 계약은 2016년까지 연장돼 은성PSD는 약 350억원을 지급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은성PSD 임직원 143명 중 정비 관련 자격증을 보유한 직원은 전체의 41%인 59명이고, 자격증이 없는 나머지 84명 중 상당수가 서울메트로 퇴직자였다. 서울메트로 출신 퇴직자에는 은성PSD가 담당하는 대치역, 신천역 전 부역장 등이 포함돼 있다. ‘인건비 부담’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외주업체로 떠넘겨진 것이었다. 은성PSD에서 비정규직 정비공으로 일한 김군의 월급은 매달 144만원, 정규직 정비공의 월급 역시 매달 180만~220만원 정도다. 반면 서울메트로 퇴직자들은 300만~400만원 선의 월급이 지급됐다. 부담을 떠넘기는 과정에서 하청구조가 생겨나고 ‘퇴직자’의 몫이 커졌다.
행정자치부는 2014년도 지방공기업 경영평가에서 “모든 (지하철)공사가 재난·안전관리의 기본적인 체계를 구축했으며, 시설 및 설비의 보완, 적극적인 홍보 전개 등을 통해 안전사고 ZERO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2월에 발간한 ‘서울지하철 전동차 정비 외주화의 문제점과 직영화 필요성’을 통해 경정비 업무의 직영화를 주장했다. 담당 조직이 분할돼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소통과 정보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고, 특히 외주 직원의 의견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비용 절감이 목표인 외주 운영체계로는 노후 지하철의 최적 정비가 어렵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적자도 싫고, 요금 올리기도 싫은 상황에서 세금과 요금으로 다수가 부담을 떠안는 대신, 외주화와 하청을 통해 소수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14년 발간한 서울메트로 ‘경정비 용역실태 보고서’를 보면 ㈜프로종합관리 소속 직원들은 전동차 애자(전류가 흐르지 않도록 절연체를 사용한 전동차 덮개) 청소 등 분진이 발생하는 위험업무를 상당수가 담당하고 있었음에도 제대로 된 방진복이 지급되지 않았고 면장갑만 주어졌다. 정규직 직원들에게는 신발 살균장비 등이 지급됐지만 외주 직원들에게는 이런 장비가 주어지지 않았다. 은성PSD는 수시로 ‘2인1조’ 작업 규정을 어겼지만 업무보고에는 허위로 올려놓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사고 후 안전업무의 외주화를 전면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메트로는 오는 8월 자회사를 설립해 스크린도어 정비업무를 맡길 예정이다. 그러나 또 다른 스크린도어 정비업체이자 광고대행사인 유진메트로컴과는 2022년까지 계약이 돼 있다. 서울지하철 5~8호선을 담당하는 서울도시철도에서는 1인 우울증 및 공황장애로 2003년 이후 현재까지 총 9명의 기관사들이 자살했다. 전 구간 지하터널인 노선에서 ‘1인 승무제’가 원인으로 꼽히지만 해결되지 않고 있다. 효율성을 잣대로 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도,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고용하는 공무원의 수를 크게 늘리지 못하도록 한 ‘총액인건비제’도 계속 존재한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메트로’가 부실공기업에서 모범공기업으로 거듭나는 동안 마련된 제도들이다. 그동안 위험은 더 소수에게, 더 약자에게 응축된 형태로 떠넘겨졌다. 그 연쇄의 끝자락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세 노동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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