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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5일 금요일

"내가 백남기다" 보성에서 서울까지 걷는다


16.02.05 20:57l최종 업데이트 16.02.05 20:57l




이 땅에 살고 있는 누구라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신나게 일하고 재미나게 놀고 사이좋게 살다 죽는 평범한 일상이 요즘처럼 절실할 때가 있었던가 싶다. 양심이 있는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이 죄스럽고 미안하여 부담을 한 짐 지고 살아가야 하는 야만적인 세상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지만 2016년 지금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은 이 말이 위로가 되지 않을 만큼 고통스럽다. 

지난 2015년 11월 14일, "대통령의 공약인 쌀값 21만 원 보장하라"는 농민들의 정당한 외침이 있었다. 이에 대한 국가의 응답은 경찰의 폭력적이고 살인적인 물대포였다.

집회 진압 과정에서 가톨릭농민회 백남기 임마누엘(전 가톨릭농민회 전국부회장, 전남연합회 회장) 농민이 10m도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서 경찰이 정조준한 물대포에 맞았다. 그는 의식을 잃고 70여 일이 넘도록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

당일 경찰은 쓰러진 백남기 농민을 향해, 또 그를 구조하려던 사람들을 향해, 후송하는 구급차에도 계속해서 물대포를 쏘아대며 반인륜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는 명백히 국민을 상대로 한 국가의 잔인한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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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화동 서울대병원 앞 농성장
ⓒ 천주교인권위원회

백남기 농민이 서울에 올라왔던 이유

지난해 11월 14일, 백남기 농민은 왜 새벽밥을 먹고 일찍 서울에 왔을까? 정부와 일부 언론은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언급도 외면하지만 "10만이 넘는 국민들이 왜 서울 시내에 모였는지" 더 외면했다.

당시 농민들은 "쌀값 보장과 TPP 가입 반대로 농민생존권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은 "쉬운 해고, 비정규직 양산하는 노동개악 안 된다"고 외쳤다. 빈민들은 "대책 없는 노점 강제철거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시민들은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보장하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안 된다"고 외쳤다.

이렇게 당시 1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의 요구는 단 하나였다. "정부는 제발 국민의 소리를 들어라"는 것이었다. 지난 3년간 박근혜 정부에 쌓인 국민들의 답답함을 호소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땅의 국민이라면 마땅히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으며, 국가는 이런 국민의 고통스런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며 들어주고 보호해줄 의무가 있지 않는가?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차벽과 물대포를 포함한 폭력적인 공권력으로 국민들을 공격하고 철저히 외면했다.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사건이 발생한 지 70여 일 지난 오늘날. 지난해 11월 14일 국민들이 요구한 사안이 어떻게 되었나를 살펴보자. 당시 박근혜 정부는 폭력시위가 우려되어 차벽과 물대포를 앞세운 것이 아니라 아예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작정한 처사였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농민들의 쌀값 보장 요구에는 지난 2015년 12월 29일 밥쌀용 쌀 3만 톤 추가 수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동자의 노동개악 반대 요구에는 지난 1월 22일 정부 행정지침 발표를 강행했다. 또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에는 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요구에는 집필진 미공개 밀실 집필을 강행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박근혜 정부 3년차, 물대포 직사로 차가운 아스팔트에 내동댕이쳐진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공권력이 국민을 상대로 가한 국가의 폭력이다. 백남기 농민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짓밟힌 사건이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국가폭력은 독재권력의 국민 무시가 최고 정점에 이르렀을 때 하느님의 섭리처럼 발생하였다. 1960년 김주열, 1979년 오원춘 납치사건,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항쟁, 1987년 박종철과 이한열, 1991년 강경대와 김귀정 사망 사건이 그렇다. 이렇게 발생한 국가폭력 사건은 4.19, 부마항쟁, 6.10 항쟁으로 이어져 정치와 세상을 바꿨다. 이번 백남기 농민의 국가폭력 사건도 이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백남기 대책위의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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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기 대책위 농성장에서 쾌유 기원 미사를 드리고 있다.
ⓒ 천주교인권위원회

'생명과 평화의 일꾼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아래 백남기 대책위)가 요구한 "대통령의 사과와 경찰청장의 파면 등의 책임자 처벌, 두 번 다시 이러한 국가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 마련"은 현재로 해결이 요원하다. 

대책위의 요구는 약 11년 전, 2005년에 전용철 농민이 전국농민대회가 열린 여의도에서 경찰의 곤봉과 방패에 맞아 죽임을 당했을 때 노무현 정부가 했던 최소한의 조치(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한 진상규명, 대통령의 사과, 경찰청장 사퇴)를 요구한 것이다.

허나 박근혜 대통령은 민중총궐기 집회 참가자를 '테러 단체'에 비유했고 당시 시위진압 경찰 간부를 승진시켰다. 또한 1500명이 넘는 집회 참가자를 수사했지만 백남기 농민의 가족과 농민단체가 지난해 11월 18일 고발(경찰청장, 서울지방경찰청장, 현장지휘관, 살수 경찰을 살인미수로 검찰에 고발함)한 건에 대해서는 고발인 조사 외에 아무런 조치가 없다.

최소한의 인간적 사과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는 그야말로 비상식, 비정상, 몰염치한 정부다. 이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10년 전보다 훨씬 후퇴하였음을 정부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이제 백남기 대책위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박근혜 정부와 싸워서 한국 정치상황을 바꾸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다. 4.13 총선을 앞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볼 작정이다.

2월부터는 백남기 농민의 밀밭이 있는 보성에서 서울까지 도보순례를 계획하고 있다. 순례 지역에 있는 국민들에게 국가폭력 사건을 알리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함께 일어설 것이다. 민중이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고, 이 땅의 주인이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국민임을 선언할 것이다. 백남기 농민을 쓰러뜨린 국가폭력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언제라도 국가폭력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대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백남기 농민은 평생을 정의와 평화, 생명을 위해 헌신했다. 그는 전남 보성에서 우리밀 농사를 지으며 땅과 자연과 세상을 살리는 가톨릭 농민운동의 지도자였다. 가톨릭농민회 역사에서, 시작한 싸움에 포기란 없었다. 수세 거부, 농협 민주화, 함평 고구마 사건, 오원춘 사건 등 독재 권력과 맞서 싸워 매번 승리하였다.

이번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사건도 가톨릭농민회에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소명이라 여기고 있다. '가농' 50년 역사에 면면히 흐르는 정의, 평화, 생명의 힘으로 반드시 끝장을 볼 것이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민들이 행복한 일상을 보장받는 민주공화국이 되도록 해야 하겠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백남기 농민이 쾌유하실 때까지 우리가 '백남기'가 되어 국가폭력 사건의 해결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보자"고 호소한다. 내가 바로 '백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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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나요 백남기님, 함께가요 밀밭으로! 도보순례 일정 웹자보
ⓒ 천주교인권위원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손영준님은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입니다.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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