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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2일 금요일

얼굴은 얼이 모인 골짜기인 ‘얼골’

얼굴은 얼이 모인 골짜기인 ‘얼골’

박기호 신부 2016. 02. 12
조회수 596 추천수 0

a2.jpg» 미국 텍사스 사우스 파드레 섬 해변에 모래로 만든 예수 얼굴 조각이 놓여 있다. ap=연합뉴스

나이를 먹어가면서 좀 젊게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 들던 때도 한철이고 이제는 고운 얼굴로 늙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거라. 가끔 사우나에 가서 이발도 하고 푹 담그고 면도도 하고 거울을 보면, ‘그럴싸한데...!’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아무래도 내가 내 얼굴에 불만족인데 타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하면 이내 체념하곤 합니다. 이건 내 탓이 아니고 우리 어머니 탓이니까 난 괜찮습니다.

a6.jpg» ‘산위의 마을입니다’ 실린 사진.

 옛 사람들은 얼굴을 ‘얼골’이라고 불렀다고 고전문학이나 우리말 사전에 나옵니다. ‘얼이 모인 골짜기’란 뜻이라 하는데 얼은 곧 정신에 속합니다. 바른 정신, 천도에 맞는 정신상태를 의미하니까 썩었거나 얼빠진 상태는 얼이라고 하지 못합니다. 바른 정신은 얼골에 모여서 곱고 밝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얼굴이 되고, 나쁜 정신, 이기심과 탐욕의 정신은 얼골에 그렇게 모이게 마련이어서 얼굴만 보고도 그 사람의 심성과 정신과 심기 상태를 읽게 됩니다. 그래서 얼굴이 고운 것과 예쁜 것은 다릅니다. 내가 어떤 정신과 영성과 영적 세계를 살고 있는가? 이게 얼의 골짜기에 흘러 모이게 됩니다. 평화롭고 기쁜 얼굴은 배우처럼 보일 수는 없다는 겁니다.

고운 얼굴과 예쁜 얼굴은 다르다
 보좌신부 시절 건강이 엉망이 되어 버렸을 때 주변의 권고로 기 수련하는 곳에 따라 간 적이 있었습니다. 건강에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갔었지만 바로 등록을 했었는데 이유는 그곳의 사범이나 코치로 지도하는 젊은이들이 한결같이 피부가 곱고 여유롭고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출이 아니고 정말 곱게 느껴지기를 한결같았습니다.

a1.jpg» 미국의 다큐멘터리 전문채널인 <히스토리채널>이 30일 ‘예수의 진짜 얼굴은?’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에서 방영한 예수의 앞 얼굴과 옆 얼굴. <히스토리채널>은 예수의 주검을 감싼 천으로 알려진 ‘토리노의 수의’에 있는 흔적을 토대로 3D 컴퓨터 그래픽으로 예수의 얼굴을 재현했다. 그러나 ‘토리노의 수의’ 자체가 중세시대 모조품이라는 주장 또한 많다. 연합뉴스
a5.jpg»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명물인 거대 예수상이 9일 4개월여의 보수공사를 마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1931년 세워진 높이 38m의 이 예수상은 풍화작용으로 머리와 손 부분이 닳아 보수작업이 실시됐다. 리우데자네이루/AP 연합뉴스
a3.jpg» 미국 캔자스주 이스턴시 근처 한 공동묘지의 십자가 위로 멀리 번개가 치는 모습이 보인다. 이스턴/AP 연합뉴스

 복음을 묵상하고 있노라면 종종 예수님의 표정을 섬세히 느낄 때가 있습니다. 노기를 띠셨다는 기록, 좌판을 뒤집어엎던 분노에 찬 얼굴, 바리사이들의 교묘한 질문을 담담히 피해가시던 표정, 불쌍한 나병환자 앞에서의 얼굴, 제자 유다와 함께 빵을 찍어 먹던 순간의 표정, 십자가에 못질 당할 때의 얼굴.... 악령을 추방하실 때의 얼굴은 단호함이 추상과 같았고 병자를 치유하는 놀라운 신통력과 기적을 일으키시던 순간은 사랑과 측은지심, 연민과 상린의 마음이 가득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런데 친지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보고 미쳤다고 생각하고 찾아나섰던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거대한 권력 앞에 겁이 없는 모습을 보고 죽으려고 환장했나보다 하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해가 안갑니다.

왜 예수님이 미쳤다고 찾아나섰을까
 연민의 정이 없이, 병자의 심정을 알 수 없으면 기적이 나올 수 없습니다. 내 눈이 얼을 보고 느낄 수 없다면 얼이 모인 골짜기인들 보일 리가 없습니다. 내 얼굴도 타인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타인이 내 얼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에 미치지 못합니다.
 내 얼굴은 눈이나 거울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심안과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성찰 수행이 필요하지요. 타인이 내 얼굴에서 평화로움을 느끼고 곱게 볼 수 있는 얼굴은 나의 심기가 조화롭고 마음이 평온하고 너그러움으로 가득하고 육신적으로 건강할 때입니다. 그런 모습에서 민낯의 아름다움이 흘러나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니까 예수님의 얼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 친척들이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한 이유는 자신들의 마음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고, 예수님의 행적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다만 사랑이 너무 넘쳤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이 글은 ‘산 위의 마을입니다’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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