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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3일 화요일

필리버스터 부른 테러방지법이 '악법'인 까닭


16.02.23 21:09l최종 업데이트 16.02.23 22:5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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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화 국회의장이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고 있다.
ⓒ 남소연

정의화 국회의장이 23일 오후 테러방지법(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을 직권상정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이에 대한 본회의 의결을 막으려고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진행하는 중이다. 2012년 5월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첫 필리버스터다. 그만큼 테러방지법을 반드시 막아야 할 '악법'으로 규정한 셈이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가 및 공공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테러방지법을 왜 '악법'으로 규정하는지 정리했다. 

[이유 하나] 테러방지법으로 북한 도발 막는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추가 도발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테러방지법을 속히 처리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테러방지법을 제정해야 할 까닭이 북한 때문이라고 공언한 것이다. 그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당·청은 북한의 4차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으로 고조된 안보 위기를 테러방지법을 처리하기 위한 '도구'로 써왔다. 

지난 18일 열린 '긴급 안보상황 점검 당정협의'가 대표적 사례다. 당시 국가정보원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최근 대남 테러에 역량을 결집하라고 지시해 정찰총국 등이 대남공격 역량을 확충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납치·테러 대상자 명단에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윤병세 외교·홍용표 통일·한민구 국방부 장관 등 정부 외교안보 핵심 인사들이 포함됐다"고도 밝혔다. 

이는 결국 직권상정을 이끌어냈다. 정 의장은 이를 직권상정 지정요건 중 하나인 '국가비상사태'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정작 법안 내용을 뜯어보면, 이 같은 당청의 행동은 '기만 작전'에 가깝다. 일단, 테러방지법 제2조 2항은 "테러단체'란 UN이 지정한 테러단체를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국제적으로 테러단체 혹은 테러지원국가로 규정돼 있지 않다. 

북한의 대남 테러를 막으려고 테러방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것도 수긍하기 어렵다. 국정원이 '북한의 대남테러 역량 결집' 첩보를 알린 자체가 이미 대테러 활동이 펼쳐지고 있음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북한 간첩과 무장 도발을 법이 없어서 막지 못했다는 건 못 들어봤다"라고 꼬집었다. 

[이유 둘] 인권 침해 우려 '독소 조항' 가득한데 제도적 장치 마련했다?

김영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이날 "야당이 주장하는 것과 다르게 이미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도 모두 들어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테러방지법 제정시 국정원의 과도한 권한 행사로 인권 침해 우려가 있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김 대변인 말대로 테러방지법 내용이 일부 달라지긴 했다. 앞서 야당은 "간첩조작사건 등 신뢰성이 떨어진 국정원에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라며 테러방지법을 반대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대테러 활동의 컨트롤타워를 국정원에서 국무총리실로 바꿨다. 이 밖에도 "관계 기관의 대테러 활동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 방지를 위해" 국가테러대책위원회 소속의 대테러 인권보호관 1인을 배치하도록 했다. 아울러, 관련 혐의를 무고·날조한 경우엔 관련 형법보다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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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진 의원, 테러방지법 반대 무제한 토론 정의화 국회의장이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자,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 남소연

하지만 이는 '조삼모사'에 가깝다. 일단,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출입국·금융거래 및 통신이용 등 관련 정보를 수집·조사할 실질적인 업무 권한은 여전히 국정원에 있다. 

무엇보다 테러위험인물 등에 대한 모호하고 추상적인 규정은 인권침해 가능성이 있는 독소 조항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선, 테러방지법은 '테러위험인물'로 "테러단체의 조직원이거나 테러단체 선전, 테러자금 모금·기부 기타 테러예비·음모·선전·선동을 하였거나 하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아래 민변)' 등은 23일 긴급 의견서를 통해 "선전, 선동의 의미가 매우 불확정적이고 추상적"이라며 "테러위험인물을 지정하고 해제하는 절차와 주체도 없어서 결국 국정원의 판단만으로 테러위험인물로 분류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민변 등은 '국정원장은 테러위험인물에 대해 출입국·금융거래 및 통신이용 등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등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정보수집을 명시한 9조에 대해서도 "테러위험인물의 정의가 모호한 반면, 정보 수집, 제재, 프라이버시 침해, 기타 추적 등에 대한 국정원의 권한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영장주의의 예외인 독소조항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 심각한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라고 비판했다. 

결국 인권 침해 우려를 사고 있는 '알맹이'는 그대로인데 컨트롤타워란 '포장'만 바꾼 꼴이다. 실제로 미국은 9.11 테러 직후 테러방지법인 '애국자법'을 제정했지만 외국민·자국민에 대한 무차별적인 도·감청 및 통신기록 수집 허용 사실 등이 드러나면서 2015년 6월 이를 폐기하고 '미국자유법'을 대체 입법했다.(관련 기사 : 테러방지법은 국정원 밥그릇 지키기법 )

[이유 셋] 이미 존재하는 테러방지제도도 제대로 못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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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테러방지법이 현재 우리나라에 반드시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8일 "우리나라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 이런 기본적인 법체계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IS(이슬람국가)도 알아버렸다"라면서 테러방지법 처리를 촉구했다. 지난 1월 대국민담화에서도 "현재 OECD, G20 회원 국가 중에 테러방지법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4개국에 불과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박 대통령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1982년부터 국무총리를 의장으로 하는 국가테러대책회의가 존재한다. 정부는 지난해 IS의 파리 테러가 발발했음에도 이 회의를 한 차례도 열지 않았다. 있는 기구를 쓰지도 않으면서 새로운 법을 만들려 한 셈이다. 

실제로 국가테러대책회의의 '의장'인 국무총리조차 이 기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황교안 총리는 지난 18일 국회 대정부질문 당시 "국가테러대책회의 의장이 누군지 아느냐"는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관련 기사 : 대테러기구 책임자가 자기인 줄 모르는 황교안 총리)

심지어 국정원은 지금 존재하는 법령만으로도 테러 정보를 충분히 수집할 수 있다. 국가정보원법 3조에는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 및 배포"가 국정원의 직무로 규정돼 있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는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통합방위법, 비상대비자원관리법, 대테러특공대, 국가테러대책회의 등 많은 제도적인 장치들이 마련돼 있으며 사이버안전을 위해서도 국가사이버안전규정, 미래부 사이버안전센터 등이 존재한다"라면서 "문제는 테러방지법 제정이 아니라 기존 제도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라고 꼬집었다. 

"OECD, G20 회원 국가 중 테러방지법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4개국"이란 박 대통령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김광진 의원은 지난 22일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장윤선·박정호의 팟짱'과 한 인터뷰에서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칠레, 덴마크, 핀란드, 체코, 헝가리, 아이슬란드에는 형법에 테러 행위에 관한 벌칙 조항이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즉, 박 대통령이 거론한 4개국 외에도 '테러방지법'이란 별도의 법체계를 두지 않은 나라들이 다수란 얘기다.(관련 기사 : 김광진-안진걸 "박근혜, 테러방지법 관련 허위 유포" )

[이유 넷] 증명되고 있는 정부·여당의 '무리수', 왜 하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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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20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에 앞서 국정원 관계자들이 정보위 소속 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결국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의, 국정원에 의한, 국정원을 위한 법처럼 돼 버렸다. 국정원의 대북 첩보를 바탕으로 한 '공포'로 직권상정이 가능하게 됐고, 이미 존재하는 관계기구와 법들을 '생략'한 채 통제 못할 권한을 국정원에 건네주게 된 셈이다. 

아울러, 이 같은 비판이 충분히 예상 가능한데도 강행한 정부·여당의 '속내'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댓글 여론 조작' 사건 등으로 상당한 부담을 안고 출범했기 때문이다. 

이미 '해석'이 나오고 있다. 민변은 이날 논평을 통해 "이미 존재하는 테러대책기구와 제도의 존재조차 모르는 집권 세력이 이 시기에 오로지 테러방지법 하나만 콕 집어 직권상정을 압박하고 국정원장이 국회에 미확인 첩보를 흘리며 겁박하는 이유는 단 하나"라면서 '선거개입공작'을 우려했다.

민변은 "2012년 대선 개입 공작, 간첩 조작 사건 등에서 보듯 집권세력이 총동원돼 테러방지법 통과에 혈안이 돼 있는 것은 국정원의 권능을 강화하여 국민과 반대정치세력을 사찰, 감시하고 또 다시 선거 개입 공작을 하고자 함에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비대화된 공룡 조직 국정원이 본래 소임을 다하도록 개혁이 진행되기는커녕 그에 역행하여 또 다시 권능이 추가되려는 이 비극적 상황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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