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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5일 금요일

"호남 타령 그만하고, 영남 너나 잘하세요!"


[4.13 호남의 선택] 장은주 교수에게 묻는다
윤중대 호남 누리꾼| 2016.02.05 13:58:40
오는 4.13 총선 또 2017년 대선에서 호남 민심은 어디로 갈까요? 호남 주민은 대대로 선거에서 이른바 '민주 후보'와 야당에게 몰표를 던졌습니다. 1997년의 정권 교체로 탄생한 김대중 대통령,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기적 역시 호남이라는 '상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호남의 몰표는 정작 자신이 대통령으로 만든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도 조롱을 당했죠("호남이 날 좋아서 찍었느냐, 이회창이 싫어서 찍었지"). 하지만 호남은 또 2012년 대선에서 야당 후보로 나온 '영남 출신' 문재인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습니다. 아시다시피 그와 야당은 정권 교체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야권은 분열했습니다. 

지금 호남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호남의 토호-엘리트 등이 더불어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으로 이미 분열하고 있습니다. 유난히 현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호남의 보통 사람 사이에서도 설왕설래가 많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고나 할까요? 물론 그 틈에 정의당, 녹색당과 같은 진보 정당이 굴기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고요.

김욱 서남대학교 교수의 도발적인 책 <아주 낯선 상식>(개마고원 펴냄)과 이에 대한 장은주 교수의 역시 도발적인 칼럼을 계기로 '호남'을 둘러싼 날선 공방이 <프레시안> 지면에서 진행 중입니다. '호남의 선택'을 둘러싼 이모저모는 프레시안 옴브즈만을 비롯한 여러 독자가 직간접적으로 공론화를 요청한 사항이기도 합니다.

(☞관련 기사 : 호남이 '세속화' 되어야 한다고?(장은주)선거 전엔 '호남 몰표'! 선거 후엔 '호남 없는 개혁'?(김욱)) 

장은주, 김욱 교수의 글에 이어서 자신을 "호남 누리꾼"이라고 소개하는 윤중대 씨의 역시 도발적인 기고를 싣습니다. <프레시안>은 이 문제와 관련한 다양한 논의를 언제든지 환영합니다(tyio@pressian.com). 

장은주 교수는 그의 글에서 "지금과 같은 시대에 민주공화국의 서로 다른 지역이라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도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대립과 갈등을 빚어낼 수 있다는 것인지"라고 말하면서, 영남의 지역 패권주의나 호남에 대한 차별이 없다는 듯한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호남이 영남 패권주의에 포섭(?)"되었다면서 영남 패권주의의 존재를 긍정한다. 

이렇게 같은 글에서 동시에 다른 주장을 하는 장은주 교수에게 정식으로 묻고 싶다. 영남 패권주의가 있다는 것인가 없다는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영남인이 정치, 경제, 사회의 각 부분에서 지도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는 것은 장은주 교수가 말하는 '사회과학'의 도구를 빌리지 않아도 금방 확인이 되는, 거의 객관적인 사실이다. 지금껏 1960년 이래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7명의 대통령이 모두 영남 출신이었다는 사실처럼 말이다. 박근혜 정부 역시 영남인이 주도권을 쥐고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며, 삼성을 위시로 한 재벌 역시 영남 출신이 압도적이다.

이러한 현상을 해석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영남인이 특별히 우수하거나, 혹은 다른 지역에 비해 성실히 노력했기 때문에 나타난 당연한 결과라는, 이른바 '노오력' 론이다. 영남이 잘나고 우수해서 지배적 지위를 누리고 있으니 이는 부당한 패권이 아니라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이러한 사상을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곳이 있으니, 다름 아닌 대구에 본사를 둔 인터넷 사이트 '일베'다. 

다른 하나는 흔히 말하는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카르텔 개념을 빌려와 영남 지역성이 박정희 정권 이래 강고한 네트워크로 작동해 지역 패권을 형성해 왔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장 교수가 "씁쓸하고 어처구니가 없"어 하는 김욱 교수의 <아주 낯선 상식>(개마고원 펴냄)이라는 글의 기본 전제라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영남 패권의 주요한 작동 기제인 '호남 왕따(혹은 영남-경기·충청·강원-호남의 층위를 갖는 유사 지역 카스트) 체제' 역시 동시에 논해진다. 

장 교수가 일베의 '노오력 영남'주의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연 카르텔의 한 전형으로 '영남 패권주의'라는 해석에는 거의 경기에 가까울 정도로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아니면 혹시 장 교수는 그 모든 영남 편향, 영남 독식의 현상이 단지 수학적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 진실은 장 교수 본인만이 알 것이다.

새누리당 천지를 만든 이들이 누구인가? 그 고통은 누가 받고 있나?

▲ <아주 낯선 상식>(김욱 지음, 개마고원 펴냄). ⓒ개마고원
아무튼, 영남 패권주의 존재 논증은 이쯤 해두자. 말이야 바른 말이지, 호남인 입장에서 영남 패권주의 논의는 솔직히 논하기도 싫은 주제다. 마치 그것은 '개는 짖는다' '해는 동쪽에서 뜬다' 하나마나한 소리가 되어버린 지 오래기 때문이다. 장 교수처럼 횡설수설하며 명시적으로 영남 패권이 없다고 외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이 주제를 대놓고 다루는 경우는, 적어도 호남에서는 별로 없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평범한 네티즌인 내가 굳이 이렇게 장 교수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칭 "영남 개혁 세력"의 정체성을 자임하는 장 교수가 이 글에서 보여주는 인식구조가 해괴하고, 심하게 말하면 부도덕하기 때문이다.

장 교수 글을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 호남에서는 안철수를 뽑겠다며 '야권 분열'을 획책하고 있다. 거기에는 김욱 교수와 같은 사람들의 '영남 패권주의론'이 자리하고 있다. 영남 패권은 없으며, 김욱 교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망상분자다. 

영남은 새누리당 천지라 본인 같은 개혁 및 진보 세력은 대변자가 없었다. 반면에 호남 사람들은 지역의 다수를 점하는 개혁 정당을 마음껏 뽑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호남의 세속화를 말하는 호남의 일부 엘리트 출세주의자들을 보며 영남의 소수파 민주 진보 세력은 '호남 사람'들에게 큰 배반감을 느낀다. 

영남 패권주의의 가장 큰 피해는 영남 사람들이다(?). 영남 패권주의로 이익을 보는 것은 소수의 영남 출신 엘리트들과 지역 토호뿐이다. 그리고 호남은 유리한 정치적 지위(?)를 이용하여 호남을 더 복지 친화적이며 인간적인 삶의 공간으로 만들지 못한 잘못이 있다. 그래서 호남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부족'이다. 

그래서 호남에게 필요한 것은 지역주의적인 호남 정치가 아니라, 호남의 더 많은 민주주의다. 호남은 민주적 시민성의 모범을 보여야 하고, 과감히 몰표를 던져야 한다. 절체절명에 처한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호남이 이를 구원해야 한다. 특히 새누리당은 호남에게는 '국민전선'과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안철수에 쏠리는 호남 표심을 '야권 분열'이라고 걱정하는 것은 선거를 앞둔 노파심이니 별 달리 논의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 평소에는 호남 몰표를 지역주의라고 욕하는데 앞장선 사람들이("호남의 노무현 지지는 암 환자의 몰핀 투여"(유시민), "호남의 90% 몰표는 전라인민공화국 행태"(진중권)) 정작 몰표가 분산되게 생기자 몰표를 왜 안 내놓느냐며 윽박지르는 게 황당하다는 점을 논외로 치면 말이다. 

장 교수의 글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호남의 이익을 말하는 호남 엘리트를 보며 영남의 소수파 민주 진보 세력은 '호남 사람'들에게 큰 배반감을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문장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이를테면 충청도 정치인이 자기 지역의 발전을 위해 일한다고 강원도의 '민주 진보 세력'이 '충청도 사람들'에게 큰 배반감을 느낀다고 말했다고 치자. 이게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얘기인가? 왜 다른 지장자치단체에서 지역 발전을 고민하는 데 그 지역민에게 배반감을 느끼나? 

새누리당 천지에 사는 본인과 같은 '영남 소수파'가 불쌍하다는 자기 연민 정서를 바탕으로, 개혁 정당이 집권하는 '호남이라는 유토피아'에 사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과 피해의식을 나타내는 부분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새누리당 천지의 영남 현실에 대한 절망과 한탄이 호남을 향해 발산되는 해괴한 감정 회로! 

새누리당 천지를 만든 장본인은 호남 사람들이 아니라 장 교수가 발 딛고 사는 영남의 '영남 다수파'다. 왜 호남에게 화를 내는가? 군사 쿠데타로 헌정을 뒤엎고 광주 항쟁을 잔인하게 진압하고 외환 위기를 초래하고 4대강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부정선거로 정권을 탈취한 세력을 지지한 '영남 다수파'가 새누리당 천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영남 다수파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호남 사람들이다. 장 교수가 연민해 마지않는 '영남 소수 진보파'가 영남 다수파에게 입은 피해는 기껏해야 정치적 취향의 불만족이나 지역 정치 영역에서의 좌절일 것이다. 그것 역시 당사자에게는 중요한 일이겠지만, 객관적인 잣대로 생각해보자. 

호남 사람들은 영남 다수파에게 천수백 명이 죽었고, 차별과 탄압을 받았고, 지금도 대구에 본사를 둔 '일베'에서 매일 수백 수천 건의 언어 살해를 당하고 있다. 영남 진보파의 아픔에 우리들이 울어야 한다면, 호남의 아픔에는 대한민국 전체의 굿판이라도 필요할 판이다.

장 교수가 이런 역사적 사실을 모를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글에는 압도적인 사실로 존재하는, 호남의 고통과 손해에 대한 인식은 없다. 거꾸로 그 피해 당사자인 호남에 대한 엉뚱한 투정과 불만과 더불어 그 주체를 가련한 '영남 소수파'로 놓는 전도된 인식만 존재한다. 다시 말해 잘못한 것은 호남이고 피해자는 '영남 소수파'라는 얘기다.

참으로 놀라운 이기주의와 자기연민이다. '영남 소수파'가 '호남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그 이유는 호남이 먹고사는 것을 고민하니까! 

호남 엘리트가 지역 이익을 추구하는 호남의 세속화를 이유로 영남 소수파가 '호남인'에게 배반감을 느낀다면, 호남 사람들을 죽이고 탄압한 영남 엘리트의 존재로 호남 소수파(그게 있다면)는 영남인을 괴물로 봐도 된다는 것인가. 

'영남 소수파', '호남 엘리트' 같이 편리한 대로 지역적 정체성을 구획지어 어떻게든 영남을 피해자이자 고발자의 자리에, 호남을 가해자이자 피고발자의 자리에 놓으려는 그 노력은 가상할 지경이다. 하지만 진실은 '영남'이 '호남'을 죽이고 차별하고 탄압했다는 것이다(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장 교수가 정말 정의와 도덕을 중시하는 진보적 지식인이라면, 일단 '영남 대 호남'이라는 문제를 먼저 생각한 뒤 영남 소수파를 운운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 너무나 명백한 영남의 잘못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이 애향심과 충돌하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인가? 반드시 '프로타고니스'가 되어야 한다는 그 영남 특유의 주인공 의식이 '가해자 영남'을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는가? 보수의 영역에서는 산업화의 주역 영남, 진보의 영역에서는 척박한 현실에서도 진보적 전망을 잃지 않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주역 영남(민주주의와 진보를 마음껏 누리는 배부른 호남에 비교하여)이 되고 싶은 것인가? 장 교수의 글에서는 이와 같은 '자뻑'과 더불어 호남에 대한 해괴한 우월의식이 곳곳에서 보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진보와 개혁은 개개인의 자기 부정과 반성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며, 장 교수가 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 영남 진보파의 주인공 의식은 자기기만과 착각에 불과하다. 기초적인 자기 부정도 못하면서 무슨 진보이고 개혁을 자임한단 말인가.

물론 장 교수가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영남이 호남을 탄압하고 차별했다는 사실을 부정해도 된다. 영남은 잘못한 것 없고, 홍어 전라도 놈들이 죽을 만해서 죽었고, 차별할 만 해서 차별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영남이 누리는 모든 특권과 지대는 정당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자부하면 된다. 물론 이것은 정확히 일베가 표방하는 바이긴 하지만, '리무진 좌파'도 있는데 '일베 좌파'는 없으라는 법 있는가. 일베가 진보나 좌파와 반드시 상극이라는 고정관념도 장 교수의 글을 읽다보면 왠지 사라지는 느낌이기도 하고.

호남으로 이주하든지, 선거운동을 열심히 하든지 

그의 글에서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호남의 부족한 민주주의"를 논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나는 여기서부터는 어떤 반론을 할 의욕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정치학의 문제는 논증의 대상이지만, 임상 심리의 문제는 이해와 해석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편하게 민주와 진보를 누리는 호남이 왜 북유럽 같은 복지 천국을 만들지 못했냐는 반문에서 읽혀지는 것은 상론했듯이 어떻게든 호남을 가해자, 피고발자, 안타고니스트로 만들고자하는 날것 그대로의 욕망, 그리고 그 욕망에 구축된 상식과 이성이다.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복지 천국을 만들 수는 있는 것인지, "부족한 민주주의"란 게 뭔 말인지, 호남이 왜 시민성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인지, 인식의 낙차가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엽기적' 인식들이지만, 따져 묻는 것은 그만하기로 한다.

그저 나는 장 교수에게 말한다. 호남의 부족한 민주주의가 안타까우면, 장 교수 본인이 호남으로 와서 민주주의 열심히 일구시라. 장 교수 같은 영남의 '소수 진보파'들이 호남으로 원적과 주소를 죄다 옮겨, 민주주의가 넘쳐흐르는 진정한 진보의 유토피아로 만드시라. 전라남도 장흥, 곡성, 순천, 나주, 함평, 보성, 목포, 담양 등으로 와라. 땅은 넓은데 사람은 없어서 원시 공산주의부터 공동체주의, 생태주의 등 다양하고 세련된 여러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 

게다가 장 교수 말대로라면 진보파로 살기에 영남은 지옥이고, 호남은 천국인데, 영남에서 계속 살 이유가 없다. 이참에 지인과 친척, 지역 주민 가운데 진보 좌파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 죄다 끌고 진보의 유토피아 호남으로 와서, '호남의 부족한 민주주의'를 채워주시라.

복지 미비에 대해서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 있다. 영남 개혁파 여러분이 호남 지방자치단체와 협약을 맺고, 복지 예산에 쓸 돈을 기부하는 것이다. 호남 지방자치단체에겐 복지를 하고 싶어도 할 재정이 없다. 물론 성남의 사례도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호남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죄다 몰표로 당선된 토호라 그런 의식이 없다.

장 교수가 증오해 마지않는 그 "호남 엘리트", 영남인들로 하여금 "호남인에게 배반감을 느끼게 만드는" 지역 유지들이다. 따라서 없는 재방 재정을 짜내서 복지를 할 정도로 선진적이고 전위적인 차원의 복지의식은 없다. 선진적 의식을 지닌, 영남이라는 동토에서 단련된 민주 복지의 전사들인 '영남 소수파' 여러분이 여러모로 도와줘야 한다.

이렇게 할 생각이 없다면, 다시 말해 호남에 이사 와서 민주주의를 일굴 생각도, 돈을 줘서 복지 호남을 일궈줄 생각도 없다면, 그냥 영남에서 열심히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국회의원의 당선을 위해 힘쓰시라. 그래야 이번 총선에서 경상도를 또다시 빨간 색이 장악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것 아닌가. 

말이야 바른 말이지, 영남의 새누리당 천지에 '영남 개혁파'의 책임은 없는가. 영남 개혁파가 영남 지역민에게 선택받지 못했기에 새누리당이 뽑히는 것 아닌가. 영남 개혁파의 무능과 무책임이 새누리당의 경상도 독식을 부른 것이 아닌가. 그러면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쇄신으로 지역민에게 다가가야지, 왜 엉뚱하게 호남의 '부족한 민주주의'를 걱정하고 계신가. 

빨리 밖으로 나가 선거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선거 운동을 하시라. 언제까지 대한민국이 영남 개혁파의 무능으로 인한 경상도 몰표로 손해를 봐야 하는가.
독자가 프레시안을 지키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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