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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7일 금요일

신용카드에 길들여져 있던 나, 카드를 자르니…


[살림 이야기] 카드‧① 나의 체험기 심미경 한살림경기남부 이사 2014.11.07 18:39:34 지난해 5월, 교통카드로 쓰던 신용카드 기간이 만료되었다며 새 카드가 발급되어 왔다. 이제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카드에 걸려 있던 휴대전화 요금 자동이체를 해지하고 스마트폰에 내장된 교통카드를 충전하며, 새 카드와 헌 카드를 함께 잘랐다. 카드회사로 전화를 걸어 사용중지도 알렸다. 신용카드와 완전히 결별했다. 얼마를 쓰고 얼마가 빠져나가는지도 몰라 돈에 관한 한 항상 빠듯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그 불안한 빠듯함 속에는 늘 신용카드가 함께 있었다. 결혼 전 오빠가 하던 사업이 망해서 나까지 소위 '카드깡'을 하게 됐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예기치 않게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는데, 문제는 마지막 월급을 고스란히 카드회사가 가져가 내게는 최소한의 생활비조차 남지 않았던 것이다. 책까지 팔아가며 연명해야 했던 씁쓸한 기억 때문에 신용카드에 매월 많은 돈을 '헌납'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 지난해 5월, 신용카드를 모두 자르고 현금만 사용하기 시작했다. 충동적이지 않고 현실에 맞게 소비하기 위해서는 신용카드가 아닌 현금 사용이 훨씬 도움이 된다. ⓒ심미경 ▲ 지난해 5월, 신용카드를 모두 자르고 현금만 사용하기 시작했다. 충동적이지 않고 현실에 맞게 소비하기 위해서는 신용카드가 아닌 현금 사용이 훨씬 도움이 된다. ⓒ심미경 대형마트·백화점·은행·행사장 어디서나 연회비는 없고 온갖 혜택은 강조된 신용카드 발급이 경쟁적으로 난무하고, 정부에서 세금 혜택까지 주면서 신용카드 사용을 정책적으로 장려하던 때에 나 역시 회사별로 다른 여러 장의 카드를 갖기도 했다. 주유소를 비롯해 놀이동산·쇼핑몰·음식점 등은 각각 식성이 달라서 하나의 같은 카드를 원하지 않았다. 지갑 속에 친절한 신용카드가 자리 잡고 계시니 굳이 현금을 준비할 필요도 없고, 현금이 없어도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다. 한 카드를 과다 사용하면 결제일이 다른 또 다른 카드가 해결해 주었다. 그 편리함과 감사함에 대부분의 소비를 카드로 해결하면서 많은 생활비가 카드 값으로 나갔다. 한 달 생활비에서 각종 공과금·교육비 등 고정 지출과 카드 값이 빠져나가고 나면 사실 남는 현금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또 카드로 살아야 하는 수밖에. 얼마를 쓰고 얼마가 빠져나가는지 정확히 계산되지도 않는 와중에 돈을 벌어 통장에 채워 넣느라고 정신없이 바빴다. 어쩌다 '가계부를 쓰겠다' 마음먹고 시작했다가도 현금과 카드의 이중 계산 때문에 영 골치가 아팠다. 분명히 소비는 했는데 현금은 쓴 만큼 이미 나가고 신용카드는 결제만 이뤄지고 실제 돈은 다음 달에 나가니, 섬세하지 못한 나는 계산이 피곤하기만 했다. 소비생활 바뀌니 신용카드 사용도 줄어 아이들이 학교를 마칠 때까지 이사 가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찾아온 경기 수원 칠보산마을에서 둘째 아이가 대안학교를 다니게 되고 나는 생협 활동을 하면서, 이웃들을 만나고 그 관계 속에서 함께하는 일들이 좋아졌다. 쫓기듯 돈 버는 일이 못 견디게 싫어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좀 다르게 살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졌다. TV를 없애고 나니 홈쇼핑을 볼 일도 없어졌고, 원치 않는 광고의 홍수와도 멀어졌다. 때로는 많은 욕망들을 힘들게 내려놓아야 했다. 좀 더 큰 집으로 옮기고 싶고, 폼 나는 외식도 하고 싶고, 아이들에게 질 좋은 사교육도 시키고 싶고, 부모님께 더 큰 차와 명품 옷으로 잘 살고 있음을 보여드리고 싶고, 근사한 여행도 자주 다니고 싶었다. 사실 여전히 그러고 싶다. 그렇지만 그러지 못하는 지금의 삶이 원망스럽거나 쪽팔리거나 그것들을 향한 갈증으로 괴롭지는 않다. 소비생활이 변하면서 신용카드 사용도 조금씩 줄어들고 안정을 찾아갔다. 특히 온라인으로 한살림 물품을 주문하고 집으로 받는 공급을 이용하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물품 구입액이 CMS 자동이체로 통장에서 현금으로 빠져나가다 보니 카드 지출이 자연히 줄었다. 그만큼 대형마트나 다른 가게를 이용하지 않다 보니 다른 지출도 줄어들었다. 통신비며 옷이나 책을 사고 외식할 때 등에만 몇 십만 원 카드를 사용했다. 재작년 말, 베리굿정리컨설팅에서 주최한 공간·물건·인맥·꿈·돈을 정리하는 '정리력 페스티벌' 안내문이 메일로 왔다.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가볍게 맞고 싶기도 해서 친구와 함께 참석했는데 내가 얼마나 어수선하게 사는지, 그 어수선함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지 확인했다. 돈에 관해서도 그랬다. 강사는 돈 관리가 정리되지 않는 주범으로 신용카드를 꼽았다. 일단 먼저 쓰고 나중에 갚아 나가면서 수입과 지출 사이가 어긋나 뒤죽박죽된다는 것이다. 그때 들었던 인상적인 말이 있다. "포인트 적립을 비롯한 각종 혜택을 잘 이용하면 더 큰 이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카드회사는 여러분의 이익을 생각해 주는 기관이 절대 아니며 자신들의 영리를 위해 철저한 연구와 검증을 통해 제도를 만든다." 그리고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이 자리에서 카드를 잘라 버리라고 제안했다. 완전 공감한 나는 지갑에 있던 두 장의 신용카드 중에서 교통카드로 쓰는 것을 빼고 하나를 잘랐다. '신용카드, 이제 안녕이다' 생각하며…. ▲ 친구가 만들어준 천 지갑에는 신분증과 도서관 대출회원증, 비상용 체크카드 한 장과 현금뿐이다(왼쪽). 아들이 오래전에 산 동전 지갑을 받아쓰고 있다. 현금을 쓸 때 동전 지갑은 필수(오른쪽). ⓒ심미경 ▲ 친구가 만들어준 천 지갑에는 신분증과 도서관 대출회원증, 비상용 체크카드 한 장과 현금뿐이다(왼쪽). 아들이 오래전에 산 동전 지갑을 받아쓰고 있다. 현금을 쓸 때 동전 지갑은 필수(오른쪽). ⓒ심미경 현금 쓰며 '즐거운 불편' 느껴 갑작스레 신용카드를 잘라버리고 나니 이중고가 있었다. 당장 현금이 있어야 생활이 가능한데, 이미 지난달 카드 값으로 빠져나가 현금 여유가 충분하지 않았다. 또 할부금들도 남아 매달 청구됐다. 현금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신용카드를 없애니 그렇게 당장은 힘들었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찾아오는 고통 속에 묘한 희열과 뿌듯함이 있었다. 현금을 쓰다 보니 신용카드의 편리함은 고스란히 불편함이 되었다. 교통카드로 쓰던 카드까지 잘라버린 후에는 교통비를 미리 충전해 잔액이 동나지 않게 신경 써야 하고, 물건을 살 때 은행에 들러 현금을 찾아야 하며, 거슬러 받은 동전들 때문에 동전 지갑을 따로 준비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을 때는 체크카드를 쓰는데, 생활비가 넉넉하지 않다 보니 월 말에 통장 잔고가 바닥나면 소용없다. 그때는 사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좀 참고 기다려야 한다. 친구를 만날 때 술값·찻값을 빚지기도 하고, 장보는 것을 줄여 냉장고에 있는 것으로 어떻게든 때워 보기도 한다. 그러다 들어오는 한 달 생활비는 가뭄에 단비처럼 소소한 기쁨을 준다. 현금을 쓰다 보니 돈의 무심함을 피부로 팍팍 느끼게 된다. 10만 원을 현금으로 찾아와도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이렇게 많은 돈을 일상적으로 쓰고 있었구나.' 손을 거쳐 현금이 빠져나갈 때마다 아찔한 느낌이 가슴에 전해진다. '마법의 네모난 플라스틱'인 신용카드는 이 아찔함을 잊게 했었다. 나는 벌이가 넉넉해서 현금을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댈 곳이 없기 때문에, 불확실함과 불안함을 떨치고 현실을 분명하게 직시하고 싶기 때문에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바로 가기) 심미경 한살림경기남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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