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14년 11월 8일 토요일

고등학생이 만든 세월호 영상 "남일 같지 않아서요"


[인터뷰] 세월호 추모영상제에서 만난 두 '고딩' 감독 이승준·김은택 14.11.09 09:45l최종 업데이트 14.11.09 09:45l하성태(woodyh) 기사 관련 사진 ▲ 10월 3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영상제'에 영상을 출품한 고등학생 감독 이승준(좌), 김은택. ⓒ 하성태 관련사진보기 여기,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는 학생들이 있다. 자기 또래인 학생들의 죄없는 희생이 마음 아프고, 마치 내 일처럼 느껴져서다. 그들은 입을 모아 지금의 교육 현실을, 학생들 개개인을 봐달라고 말한다. '제2의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광주 석산고 3학년 이승준군과 서울영상고 2학년 김은택군이 바로 그들이다. 이 청소년 감독들이 세월호 문제에 목소리를 냈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영상제'를 통해서다. 10편의 본선 진출작 중 청소년들이 직접 만든 작품은 두 감독의 작품, <그날, 그때, 그곳에>(이승준)와 <유리창>(김은택)뿐이다. 이승준 감독의 <그날, 그때, 그곳에>는 지난 5월 광주 충장로 일대에서 진행된 청소년 세월호 추모 촛불문화제의 실황을 담았다. 추모 음악 위로 촛불문화제를 진행하는 청소년들의 얼굴이 왠지 모를 슬픔을 안겨준다. 김은택 감독의 <유리창>은 정지용 시인의 동명시를 인용한 추모 애니메이션이다. 꼬박 2주간 홀로 작업했다는 '고딩' 감독의 진심이 전해지는 작품이다. 세월호 문제가 남 일 같지 않았다는 두 감독은 입을 모아 '슬픔'과 '공감', '기억'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 중 김은택 감독은 "어른들은 '지금은 하지 마'란 말만 한다"며 '가만히 있으라'란 세월호 선원들의 말과 다를 게 뭐냐고 반문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어른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청소년들의 목소리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인터뷰 말미 두 감독은 영상을 통해 교육 문제나 한국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다음은 두 '고딩' 감독과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정치적 의견보다 순수하게 추모 마음 담으려 노력" -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세월호 추모영상제'에 작품을 출품하게 된 계기도요. 이승준 : "광주 석산고 3학년이고, 광주 청소년영상단체 '동그라미'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우리가 매년 영상제 활동을 하거든요. 근데 지난 5월 광주 충장로 시내 일대에서 행사 전체를 청소년들끼리 진행하는 세월호 촛불문화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됐죠. 단체 팀원들이 직접 촬영, 편집하고 출품까지 하게 됐어요." 김은택 : "경북 경산이 원래 집이고 지금은 서울영상고등학교에 다니거든요. 시, 영상 공모전이 있는데, 어느 날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을 보다가 세월호랑 이미지가 굉장히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추모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됐고, 이렇게 세월호 추모영상제에도 출품하게 됐고요." - 두 감독님 모두 고등학생 신분인데, 촬영은 어떻게 진행했나요? 이승준 : "충장로 일대에서 하루 종일 행사가 진행됐는데, 우리 단체에서 방송용 디지털 카메라 4대를 동원했어요. 조를 나눠서 촬영했고, 편집하면서 줄이는 게 가장 힘들었죠(웃음). 행사는 청소년들이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다 한지라, 여타 관련 행사와 달리 활기찬 분위기였어요. 행진도 하고, 피켓도 들고, 자유 발언도 하고. 다른 추모행사와 다른 느낌을 영화에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김은택 : "애니메이션 전공은 아니지만, 그림 그리고 영상 만들기를 좋아해요. 아직 청소년이라 촬영 이외에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 애니메이션이었고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유리창>은 아들의 죽음을 추도하는 시잖아요. 그 추도시와 유리창의 이미지를 접목시켰고요. 저만의 의도는 시 속 유리창 이미지와 세월호의 유리창을 연결시키고 싶었어요. 또 핸드폰 액정에 담긴 딸의 마지막 영상도 중첩적으로 그리려고 했고요." - 추모제나 추모시를 소재로 했다고 해도, '세월호 추모영상제'에 출품하는 건 부담감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또 학생 신분이기도 하고요. 이승준 : "<씨네21>을 정기구독 하는데, 거기서 처음 (추모영상제) 소식을 봤어요. 설마 될까 싶기도 했고 시험 삼아 낸 건데, 이렇게 본선에 올라 감격스러웠죠. 행사든 우리 작품이든 다 청소년들이 같이 만든 거잖아요. 만들었을 때 처음 의도가 조금이라도 (세월호 문제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주저하는 건 없었어요." 김은택 : "세월호가 아무래도 무거운 소재라 실수하지 않도록 주의를 했어요. 민감한 소재니까요. 그래서 더 정치적인 의사는 들어가지 않도록 했어요. 제가 청소년이고, 특별법 자체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찾아는 봤는데 말이 너무나 많아서 무엇이 정확한 정보인지 판단하기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추모하는 마음은 당연한 거잖아요. 정치적인 의견보다 순수하게 추모의 마음을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유가족 고통 앞에서 중립 없다'던 프란치스코 교황 말 되새길 때"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추모영상제' 포스터. 이 추모영상제를 필두로 서울 광화문에서는 '세월호 연장전'이란 제목으로 문화예술인들의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자는 활동들이 계속되고 있다. ⓒ 세월호특별법제정촉구영화인모임 관련사진보기 - 세월호 사건 당시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이승준 :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첫날은 제가 수학여행 갔던 때 생각이 가장 컸어요. 저도 제주도에 배를 타고 갔거든요. 갑판에서 친구들과 바람을 쐬고 재밌게 놀던 기억이 났죠. 그 순간에 이입이 되니까 마치 제가 그 사고를 당하고 유가족 분들이 우리 부모님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도와줄 수 있는 없다는 무기력이 밀려오기도 하고." 김은택 : "<유리창>이란 시는 2학년 때 배워요. (단원고) 그 친구들도 2학년, 저도 2학년. 같이 배웠거나 앞으로 배웠을 텐데…. 사건 당시가 고향 인문계 학교에서 지금 예술고로 전학왔을 때 거든요. 쉬는 시간 틈틈이 뉴스를 보는데 시시각각 보도가 달라지는 거예요. '전원구조'에서 피해자 숫자가 늘어나고.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전달하는 언론과 그 거짓정보를 SNS 등에서 이슈화시키는 걸 보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어요. 그래서 영상으로 추모를 하고픈 마음이 들었는데, 상황이 좀 더 정리되고 판단할 수 있을 때 만들었던 게 바로 <유리창>이죠. 한 달 전에 만들었고, 제작 과정은 2주가 걸렸죠." - 세월호 참사 이후 일련의 해결 과정을 보면서는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이승준 : " 국민이 공감하고 많은 단체에서 도움 준다고 하니, 걱정은 됐지만 잘 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하지만 오늘까지 해결은 안 되고 어물쩍거리는 듯해서 마음이 상했죠. 제 생각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때 했던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유가족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 위에서 일하는 분들이 그런 마음가짐만 가지고 있다면 수월하지 않을까요?" 김은택 : " 금방 해결될 줄 알았어요. 적절하게 시기 맞춰서 구조하고, 잘 수습할 줄 알았죠. 근데 뭔가 자꾸 트러블이 생겼잖아요. 사람들이 다투기도 하고, 많이 안타까웠고요. 잘못된 정보가 많다보니 선동을 당하는 경우도 있고요. 청소년이니까 분간하기도 어려웠고요. 추모하는 마음, 빨리 구조됐으면 하는 마음, 잘못된 건 밝혀지리란 마음…. 이것조차 없는 사람들을 보면 진짜 화가 났죠. 특례입학 가지고도 말이 많았잖아요. 기득권이니 아니니 하면서. 그것도 구분하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작품 속에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담아 추모를 한 거죠. 무엇이 정답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옳은 방향으로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 특례입학 얘기도 나왔는데, 동년배 고등학생들이 참사를 바라보는 분위기는 어땠나요? 이승준 : "희생자들 중 고등학생들이 많고 심정적으로 더 가깝잖아요. 그래서 학교 자체 행사도 많이 했었요. 전교생이 노란 리본 두르고 줄을 서서 쓰고 싶은 것도 쓰고. 선생님들이 노란 리본 목걸이나 팔찌도 차고. 유민아빠 지지 단식도 하고.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추모 분위기를 유지하니 학생들도 기억을 하고요.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광주 지역 일반계 실업계 학교들은 조금씩은 다 한 걸로 알고 있어요." 김은택 : "시간이 지나면서 아쉬운 게, 잊어가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와서 무언가 하는 행동을 하는 친구도 있고. 오늘처럼 영상을 통해 혹은 음악이나 글, 그림처럼 자기가 가진 달란트를 통해 추모하거나 계속해서 기억하고 행동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제2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추모영상제' 중 단편애니메이션 <유리창>을 연출한 이승현 감독(좌측 두 번째)과 <그날, 그때, 그곳에>를 만든 광주 청소년 영상제작단 '동그라미' 단원들 이승현(좌측 첫 번째), 이승준 감독, 이주형, 정유정. 광주에서 올라온 '동그라미 단원' 세 명도 추모영상제 후 함께 만날 수 있었다. ⓒ 하성태 관련사진보기 - '세월호 추모영상제'에 학생으로 참여한 감독이 딱 둘인데, 느낌이 어떤지 궁금해요. 이승준 : "영상 편집을 마치고 우리끼리 시사회를 하고 그랬는데, 이 영상이 도움이 되고 확산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있었어요. 막상 출품도 하고 공개가 돼니 영상을 만든 보람을 느껴요. 많은 분들, 특히 유가족분들과 영상을 나눌 수 있어서 뜻깊은 것 같아요." 김은택 : "저 말고도 영상을 통해서 다양하게 행동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만큼 이야기도 많고. 세월호 참사를 잊어 가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작게나마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어서 기뻤어요. 특히나 청소년 감독으로서 광화문이라는 크고 상징적인 장소에서 상영할 수 있어서 더요." - 앞으로도 계속 영상 작업을 하고 싶은 건가요? 혹시 영화감독을 꿈꾼다면 무슨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나요. 이승준 : "네, 영화 연출을 하고 싶죠. 예전엔 세상에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개성 강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헌데 이런 행사에 참여하다 보니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찍고 싶어졌어요. 나중에 영화 찍을 때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본질을 탐구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김은택 : "꿈이 많은 사람들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예요. 글이든 그림이든 영화든, 이야기하는 일이 정말 즐거운데 지금으로서 최적의 매체는 영상이거든요. 그 영상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이에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영상을 만들면서 갑갑함을 절실히 느꼈거든요. 제 이야기를 통해서 교육 현실을 변화시키고 싶기도 하고요. 꿈을 찾으려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지금은 하지 마, 대학 가서 해'거든요.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선택했을 때 그 꿈의 가치가 드러나는 건데, 너무 어른들의 말만 들어야 하거든요. 사실 비슷하게, '가만히 있으라'는 말 때문에 세월호 참사도 커졌잖아요. 제2의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교육 이야기가 필요할 거 같아요." - 마지막으로 '세월호 추모영상제' 본선에 오른 감독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이승준 : "영상을 만들면서 청소년과 영상이 가진 힘을 몸소 느꼈던 거 같아요. 청소년들이 만든 영상엔 직관적인 느낌이 있거든요. 기교도 모르고 영상문법도 모르기 때문에 더 순수한 영상이 나올 수 있죠. 그런 면에서 높은 분들이나 청소년들과 영상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어요." 김은택 :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각자 가진 재능을 이용해 음악이나 그림, 시나 영상으로 계속 행동해줬으면 좋겠어요. 자기만의 방법들로. 하다 못해 마음속으로라도 그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고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