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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9일 토요일

국민의당 비대위 잡음과 갈등, 당 전체가 죽는 길

[칼럼]’호남정치 복원’과 ‘탈호남’… 총선민심은 ‘호남정치 복원’이었다
임두만 | 2016-07-08 10:44:41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정치란 국민의 심리를 읽는 게임인데 이런 면에서 창당 6개월여에 비상대책위를 꾸린 국민의당의 행보가 내내 안쓰럽다. 자신들이 왜 비상대책위를 꾸려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자신들이 비상대책위를 꾸려야 할 정도로 난관에 빠진 것이 꼭 홍보비 리베이트 사건 때문인 것으로만 아는 것 같아서, 그래서 더 안쓰럽다.
지난 선거에서 호남지역 유권자들은 국민의당 후보들에게 몰표를 던졌다. 냉정하게 말해서 그 당 후보들이 더불어민주당 후보들보다 더 월등한 자질을 갖추어서일까? 아니다. 후보들 자질로만 보면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국민의당 후보들에 비해 전혀 꿀릴 것이 없다.
광주에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한 19대 현역들은 더불어민주당에 있을 때 ‘물갈이’ 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새정치’ 노래를 부르던 광주지역 신진인사들은 되려 더민주에 영입인사로 들어가는 촌극도 있었다. 그랬음에도 총선 전에 ‘물갈이와 새정치를 바란다’는 광주 유권자들은 신진인사들이 공천된 더민주 후보가 아니라 물갈이 대상이라던 현역들이 재출마한 국민의당 후보들에게 투표했다. 겉으로만 보면 엄청난 이율배반이다.
그렇다면 만약 지난 총선에서 당선 된 국민의당 19대 현역들이 그냥 더민주에 있었을 경우 어떤 현상이 생겼을까? 강기정 박혜자 의원과 같은 길을 걸었을 의원이 절반 쯤은 되었을 것이며, 그대로 공천을 받았을 나머지도 실제 총선에서 악전고투하여 낙선했을 개연성이 높다.
이는 광주 서구갑에서 낙선한 송갑석 후보와 광산을에서 낙선한 이용섭 전 의원, 이웃 선거구인 광산갑에서 낙선한 이용빈 후보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강기정 의원은 물갈이 컷오프, 박혜자 의원은 탈당하지 않고 남았다가 송갑석 전 전남대 총학생회장에게 공천에서 졌다. 그러나 송 후보는 국민의당 영입인사인 송기석 전 판사에게 본선에서 졌다. 이를 거꾸로 하여 송갑석이 국민의당 영입인사이고 송기석이 더민주 영입인사였다면 승자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광산갑의 현역이었던 김동철 의원이 더민주 후보로 출마하고 더민주 영입인사인 이용빈 의사가 국민의당 공천을 받아 ‘새정치’를 주장했다면 당선자는 바뀌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는가? 그것은 광주 유권자들의 당시 심리가 정치인 개개인의 ‘바꿔’열풍이 아니라 정치세력의 ‘바꿔’열풍이었음이다. 다시 말해 광주와 호남은 더불어민주당이란 노무현-문재인 계열의 정당은 ‘호남을 대변할 수 없는 정당’이란 심리가 팽배하여 ’호남을 대변할 새로운 정치세력‘의 탄생을 기다렸고, 그 대상으로 국민의당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 바람은 광주를 넘어 전남과 전북을 쓸었고, 서울로 상륙, 정당투표에서 국민의당을 선택하는 바람으로 승화되었다. 여기에 대구경북이나 부산경남의 새누리당 바꿔세력까지 정당투표에서 국민의당을 선택하므로 국민의당이 정당투표 2위를 하는 기염을 토하게 한 것이다.
이런 ‘바꿔’심리에 편승하여 3당으로 선거에서 승리하고도 곧바로 이 유권자들의 심리에 적응하지 못한 정당들의 실패는 우리 역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1991년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이 극명한 예가 될 것이며 1995년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앞서 1988년 13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상황이 되면서 전두환 군부세력과 결탁한 ‘정경유착’의 원흉으로 꼽혀 5공청문회와 광주청문회에 불려나와 곤욕을 치렀다. 당시 정 회장은 “달라고 하는데 안 주고 배길 재간이 없다”고 발언할 정도로 정경유착을 시인해야 했다.
이런 앙금이 직접 자신을 정치로 나서게 했으며 기존 정당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가진 돈으로 직접 정당을 창당, 자신에게 충성하는 정치조직을 꿈꿨다. 이후 정 회장은 기업 경영에서 얻은 감과 정보를 인용, 자신이 기반으로 삼아야 할 지역으로 대구경북, 강원, 경기북부 등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3김이 장악하지 못한 곳으로 설정했다. 1991년은 시기도 절묘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까지 거치며 1961년 이후 무려 30년 간 권력의 복판이었던 TK지역은 5공청문회 광주청문회 등을 거치면서 대통령은 노태우였으나 전두환은 물론 정호용 김복동 박철언 권정달 등 주력 정치인들 힘이 빠졌다.
정주영 회장은 이 틈을 노렸다. 그래서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에게 밀려난 구 민정당계와 암묵적으로 손 잡고 TK를 공략했으며 이 작전이 성공했다. 1992년 총선에서 통일국민당은 지역구 24석과 비례7석을 포함 31석을 얻었는데 이는 일부 보수층들이 민자당 대신 국민당을 지지하는 결과를 가져온 때문이었다. 당시 국민당은 대구2석, 경북2석 강원4석 충북2석은 물론, 경기5석, 충남4석. 경남3석. 서울2석 등 호남을 제외한 전국에서 민자당 취약지역을 파고든 나머지 24석을 따냈다.
그러나 그 정당의 수명은 짧았다. 물론 정주영 회장의 대선실패와 대선 승자인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보복이 가장 큰 이유가 되겠지만 자신들이 기반으로 삼았던 지역과 세력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또 3당으로 정착하기 위한 정책적 자산이 부족했다. 기본적으로 3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습성은 특정인과 특정세력에게 충성하지 않는데도 당시 정주영과 국민당은 이를 간과했었다. 때문에 그들은 정주영 회장이 정계를 은퇴하자 뿔뿔이 흩어지는 신세가 되었다.
1995년 창당하여 1996년 총선에서 무려 50석을 얻으며 화려하게 3당으로 등극한 자민련도 마찬가지다. 당시 자민련이 충청권만을 기반으로 했다면 50석은 언감생심이다. 당시 자민련은 지역구에서 무려 41석을 얻었는데 충청권에서 충남1석 충북2석을 뺀 싹쓸이는 물론 대구에서 무려 8석을 얻었다. 당시 대구의 의석이 10석인데 민자당 2석 자민련 8석이었다. 대구가 정치주류를 바꿔버린 것이다. 이 여세는 경북2석 경기5석 강원2석 등 민자당 기반 중 이탈지역까지 섭렵, 완벽한 3당으로 자리했다.
이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독주에 반발한 TK를 비롯한 보수 주류의 지역 안에 반 김영삼 심리가 팽배하게 내재되어 있었다는 증거다. 김종필은 이를 바탕으로 했다. 그러나 김종필은 추후 이들의 반대세력인 김대중과 손을 잡으면서 4년 후 이 기반을 그대로 잃었다. 그래서 교섭단체에도 못 미치는 17석 정당으로 패퇴했다. 이는 4년 전 자신을 지지했던 유권자의 심리를 읽지 못한 때문이다.
지금 국민의 당… 이 정당이 그렇다. 이 정당이 현재 자신들을 원내 3당으로 만들어 준 호남 유권자의 심리를 전혀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인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잃지 않겠다는 생각만 팽배하다. 그것이 홍보비 리베이트 수렁을 빠져나올 수 없게 했다.
법적으로 유죄가 확정된 것도 아닌데, 다른 당에 비하면 액수도 적은데… 당헌·당규에 맞게 했는데… 홍보비 리베이트 사건이 터진 뒤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들렸던 말들이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자신들이 주장했던 ‘새정치’와는 거리가 먼 대응이었다. ‘새정치란 다르다’는 도그마는 “그래 당신들은 어떻게 다른데?”의 질문이 필수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같지 않은 말과 행동’이다. 그러나 위의 대응들은 ‘같음’이었다. 다름을 찾는 사람들에게 같음을 보여주었다. 이탈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국민의당은 지난 총선에서 호남지역 28석 중 23석을 휩쓸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정당투표에서도 호남은 오랜 지지정당이던 더민주에서 국민의당으로 돌았다. 즉 국민의당은 19대 총선의 민주통합당 선호지역을 거의 그대로 계승하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19대 총선의 민주통합당 선호지역 유권자들 심리가 자신들의 대변정치세력의 교체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름’을 찾는 심리가 앞서 언급했듯 후보 개개인의 자질과 능력이 아니라 후보의 소속정당에의 기표심리로 작용했다.
그런데 지금 이 정당은 이런 유권자들의 심리를 역행하면서 앞서 유권자들에게 배척당한 더민주의 길을 그대로 가고 있다. 같음의 길만이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호남지역 유권자가 원하는 ‘호남정치 복원’이 아니라 정치인들 자신들이 원하는 ‘출세형 정치세력화’이다.
‘호남정치 복원’이란 말 안에 거대한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호남인들도 자신들이 지지한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해 달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갈수록 변방이 되어가는 호남이란 지역이 다시 정치의 주류세력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야권이라도 영남의 뒤에서 영남을 서포트하는 것이 아니라 호남이 앞장서고 영남이 서포트하는 그런 정치판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이는 늘 말하지만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일하라는 명령이다. 그런데 '다름'을 원했던 새정치세력의 안철수 그룹은 '같음'을 보여주었고, 그래서 지지층의 이탈이란 급박한 상황에서 일선 후퇴했으나 그 뒤를 이은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자신의 원맨쇼가 통할 것으로 보고 원맨쇼로 일관하고 있다. 홍보비 리베이트라는 작은 가시 하나가 몸통을 썪게 만들었다고 착각하고 있다.
천만에다. 홍보비 리베이트가 문제가 아니라 이런 악재에 대처하는 대처의 미숙이 판을 키운 것이다. 정치권 주류가 되기 위해서는 악재란 빨리 털어버릴수록 좋다. 정(情)이나 법(法)이 일을 정리시켜주지 못한다. 반발심리의 제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을 다른 말로는 소통이라고 있다.
정치세력과 유권자의 소통… 유권자가 싫다고 하면 그 싫은 것을 우선 털어버려야 유권자는 소통이 된 것으로 알고 떠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 설득이라는 용어로 대들다간 꿩도 매도 다 잃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갔던 실패의 길이다. 그 외에도 지금까지 실패한 정치인들의 역사가 그러하다.
국민의당에 홍보비 리베이트란 폭탄이 터졌을 때 국민의당 지도부는 호남 유권자들의 ‘허탄한 심리’안에 내제 된 이 ‘허탄함’을 채워주려는 노력을 무엇보다 우선해야 했다. ‘같음’으로 나타났으니 곧바로 ‘다름’으로 대처해야 했다. 안철수와 천정배의 퇴장은 이런 대응 미숙이 부른 사태다.
그런데 이들이 퇴장하고 그 뒤를 차고 앉은 박지원은 지금 엉뚱하게 ‘탈 호남’을 말한다. 박지원의 이 대응은 죽으러 가는 길이다. 국민의당의 ‘탈 호남’ “호남만 붙들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곧 호남까지 완전히 잃게 될 것이다. 자민련은 자민련일 때 효용가치가 있었다. 자민련이 자기 힘, 자기 것도 아닌 남의 힘, 남의 것으로 나라 전체를 어찌하려다 불과 4년 만에 아주 망했다.
국민의당 비대위를 두고 나오는 불만과 잡음은 박지원에게만 위기가 아니다. 국민의당 더 나아가 안철수, 그리고 이들을 대안으로 선택한 호남인 모두에게 위기다. 박지원과 국민의당이 맹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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