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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31일 일요일

“미국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하라!”


[현장보고]NCCK 평화협정 대표단 워싱톤 일지(7/26~28)
[NCCUSA]
지난 18일부터 로스앤젤레스로부터 미 대륙을 횡단하여 7월26일 오후 5시가 다되어 워싱턴DC 남쪽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 Quality Inn에 도착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평화협정 캠페인 대표단 24명은 미국교회협의회(NCCUSA)가 주최하는 저녁 만찬에 참여함으로 3일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미국교회협의회가 사무실을 갖고 있는 이곳 미감리교 건물에는 7, 80년대 박정희 독재정권 아래서 민주화운동을 돕기 위한 코리아 사무실도 상주했었다. 이 감리교 건물은 위치부터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는데, 바로 정문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길 하나 건너 국회의사당이 있고, 정면으로는 길 하나 건너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위치하고 있었다, 만찬에서 미국교회협의회 총무인 Jim Winkler 목사가 환영사를 하였고 미국감리교단 교회와 사회위원회 이사회의 General Secretary인 Susan목사께서 기도를 하였다. Winkler목사는 이 시간부터 끝날 때까지 3일 동안 모든 일정을 우리와 함께 하였다.

[The Senator's Office]
오늘은 휴전협정 체결 63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27일이다, 오늘 우리 대표단은 미국 정계의 여러 관계자들과 회담을 갖는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 날을 기해 모든 회담 일정을 잡았지만, 7월 마지막 주는 휴가가 시작하는 때이고 특히 올해는 미국의 공화당 전당대회와 민주당 전당대회가 연이어 있어 정치인들은 모두 자리에 없는 기간이었다. 안타까웠지만, 할 수 없이 주어진 여건 아래서 최선을 다해야 했다.
오늘의 첫 회담은 미국상원 국제관계위원회의 동아시아소위원회 위원장직을 갖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는 공화당 상원위원 Gardner 사무실에서 한반도담당 보좌관인 Trent Bishop과 한 시간에 걸쳐 회의를 진행하였다. 그는 우리들의 얘기를 듣고 자신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점을 많이 깨달았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와 같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오는 사람보다는 북을 제재하기를 원하는 보수그룹들이 더 많이 온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질보다는 양에 의존하는 약점을 갖고 있다. 우리는 한국에서 모은 수만 명이 참여한 평화협정 서명 복사본과 이번 캠페인 과정에서 모은 수천 명의 서명용지를 전달하였다.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바로 이어 우리는 건너편 하원의원 건물로 가서 동아시아 법률 담당 보좌관과 함께 한 시간동안 회의를 진행했다. 그는 지금 북한 인권관련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에 우리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함이 왜 적절하지 못한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면서 평화협정의 필요성에 대해 여러 얘기를 했다.
첫째, 인권문제는 미국과 달리 북한에게 있어서는 생존문제 다음의 문제이다. 1951년부터 시작되어 70년 이상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경제봉쇄정책과 1년에 절반 이상 북한 침공을 위한 남한과 미국의 군사훈련이라는 압박상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북한 내에서의 인권문제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문제인 것이다. 목숨이 먼저이고 그 후에 인권이 존재하지 목숨이 없는데 어떻게 인권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기 전에 먼저 경제봉쇄와 군사훈련을 중지해야 한다. 둘째, 북한(조선)보다 더 열악한 사우디아라비아(여성은 운전도 할 수 없다)의 인권문제는 거론하지 않으면서 북한만 문제를 삼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또 미국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나라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쿠바와 이란과는 대화를 통한 외교관계를 진행하면서 유독 대화를 원하는 북한과는 인권문제와 핵을 빌미로 악의 축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분쟁을 통해 남한과 일본을 대(代)중국 견제용으로 삼기 위함이다. 남한과 일본은 미국의 군사무기 주요 수입 국가들이다. 남한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인권이 목적이 아닌 적대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변명이다.(이 얘기는 안했지만, 지금 미국은 흑백 인종차별로 인해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남의 나라 인권을 운운하는 것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흉보는 일과 같다.)
넷째, 북한의 내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탈북자들의 얘기에 의존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만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다섯째, 남북에는 천만이 넘는 이산가족이 있고 그리고 남한은 세계 제1의 자살률 국가로서 이 또한 분단으로 인한 인권침해인데 이런 점은 간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대북압박정책은 70년 동안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북한을 더 강경하게 만들었다. 이상과 같은 여러 이유를 들어 우리는 미국이 북한 인권상황을 문제 삼는 적대정책을 버리고 대화와 상호공존을 향한 평화정책에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했다. 압박이 아닌 대화만이 북한의 인권을 증진하는 길임을 설명하였다. 이어 어떤 과정을 거쳐 법안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이어 평화협정 서명용지를 전달하였다.

[Dr. John Merrill]
점심을 피자로 때운 다음 우리는 바로 택시를 타고 존 홉킨스대학 건물로 가서 John Merrill 박사와 한 시간가량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제주 4.3민중항쟁을 주제로 석사학위, 그리고 한국전쟁의 기원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역사에 매우 밝은 사람이었으며 젊은 시절에는 한국어에도 능통한 사람이었다. 그는 무려 30년 동안 미국무성에서 한반도문제를 다루어온 한국통이었다. 그는 미국이나 남한 정부가 얼마나 왜곡된 역사를 만들어내는지를 잘 알고 있었고, 특히 국정교과서에 대해 심히 우려하는 입장을 얘기했다. 그중 하나 그는 탈북자들이 미국에 와서 의회나 교회 등 여러 집회 장소에서 북한의 인권침해에 관련하여 여러 가지 증언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 증언으로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그리고 지금 그들이 행한 대부분의 증언들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어 그는 우리에게 군산에서 온 사람이 있느냐고 물은 다음 70년대 군산 미군기지에 핵탄두 300개가 있었다는 사실도 말하면서, 우리 한국인들도 잘 모르는 얘기를 하나 하였다. 그건 몇 년 전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안내로 로스앤젤레스 근처에서 모텔을 운영하고 있는 해군제독을 지냈던 분을 직접 만나 한국전쟁 전 남한의 해안경비대가 마치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였듯이 북한의 몽금포 해군기지를 기습 습격하여 이를 초토화시켰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역사에는 감추어진 진실이 많다고 말하였다. 어쩌면 이것이 주고받는 전쟁사에 있어서 한국전쟁의 하나의 기원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천안함 사건 또한 그보다 6개월 전에 있었던 남한 해군의 포격에 의해 북한군 경비정이 크게 부서지고 북한군 12명이 죽은 사건을 거론하면서 이것이 북한의 군사적 대응일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래 나는 그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이 얘기를 다시금 언급하면서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비유는 적절치 않다고 지적하면서 천안함 침몰은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 북한의 소행이 될 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는 하나의 가능성을 얘기하는 것이지, 북한의 소행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답변했다. 그는 결론으로 이제 대북적대정책은 실패했고, 대화만이 지금의 막힌 난관을 타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국무성에서 30년을 일한 사람으로서는 너무 솔직하고 매우 특이한 관점을 가진 사람이었다.

[The State Department]
이어 바로 택시를 타고 오후 3시에는 국무성으로 가서 북한인권대사인 Amb. Robert King 그리고 갑작스러운 일로 불참하게 된 Shaun Casey, US Special Representative for Religion and Global Affairs를 대신하여 그의 보좌관과 함께 한 시간의 회담을 가졌다. 킹 대사와 NCCK와의 만남은 이번으로 세 번째이다. 3년 전 내가 NCCK 화해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을 때 김영주 총무, 노정선 교수, 그리고 당시 감리교 사회부 총무였던 Jim Winkler 목사와 함께 국무성에서 처음 만났었고 2년 전 정전협정 61주년을 맞아 NCCK 통일위원회 대표단과 NCCUSA 그리고 UMC가 주도했던 백악관 평화행진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이 있었다. 이때 나는 백악관 한반도 안보담당관인 사일러를 만나고 있었기에 그를 만나지는 아니했다. 3년 전 첫 번째 만남에서 나는 한국전쟁의 원인 중 하나로 50년 1월 애치슨 국무장관의 선언 곧 한반도가 미국의 방어에서 제외되었다는 발언을 지적하자 그는 두 번이나 “It was a mistake”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킹 대사의 직임 자체가 북한의 인권상황을 문제시하고 이를 확대하는 일이었으니 처음부터 우리와는 반대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인사말에 이어 바로 북한의 인권상황을 부정적으로 언급하였다. 특히 우리가 목사들이다 보니 종교의 자유가 없음을 주장함으로 우리를 곤경에 몰아넣고자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의 발언 직후 곧바로 이런 물음을 그에게 던졌다. '20년 전 브리태니커사전에서 세계종교를 설명하면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세계종교의 하나로 다루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론 그는 전연 생각하지 못했던 이 질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노정선 교수께서 북한이 미국이나 남한과 같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에도 교회, 성당, 절이 있고, 우리 남한 기독교 대표단이 평양에 가면 언제나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에서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과 김 주석 자신이 어렸을 때는 교회를 다녔고, 그리고 칠골교회는 주석의 어머님의 이름(강반석)이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를 기념하는 이름임을 상기시켰다.
이어 서보혁 교수가 인권에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차원이 있음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북에 대한 인권문제 거론이 부당함을 학문적으로 역설하였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비판적 발언이 계속 되었다. 그러나 킹 대사가 끝까지 북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면서 시간이 다 되었다고 하며 일어나려고 하자 전용호 목사께서 “잠깐만 한마디만 더 하고 싶다”며 그를 자리에 앉힌 뒤 이전 북한을 방문한 바 있는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의 발언 곧 “인권문제를 거론함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막는 것보다 대화를 통해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 외교에 있어 더 중요하다”를 언급하자 그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이어 김영주 총무께서 백악관에 보내는 평화협정 서명카드와 부채를 선물로 전달하면서 다시 한 번 말했다. “이제는 미국이 기독교 국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상호 존중의 정신에 따라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외교정책에서 대화를 통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고 이를 위한 첫 단계가 바로 북한(조선)과 미국의 평화협정이다.” 이전 두 번의 모임보다 오늘 킹 대사는 우리들의 계속되는 날카로운 질문과 반격으로 매우 곤혹스러운 시간을 가졌고, 그는 속히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은 표정이 역력했다.

[Peace Committee in United Methodist Church]
나는 국무성 입구를 걸어 나오면서 거기에 걸려 있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국기들과 함께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기가 당당히 걸리는 그날을 기도하면서 나왔다.(우리는 북한을 국가가 아닌 하나의 적성단체로 규정하고 있지만, 사실 남한이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180여 개국이고 북한이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160여 개국으로 세계 외교적 측면에서 보면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침 9시부터 진행된 4개의 연속된 중요한 회담을 우리는 잘 마쳤다. 이후 우리는 미국감리교단의 평화위원회 고문인 정희수 감독과 위원장 장위현 목사께서 베푸는 저녁 식사를 가지면서 당일의 회담에 대한 회고를 다 같이 나누었다. 보스턴에서 미국감리교회를 목회하는 장 목사는 70년대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아래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통일위원장으로서 남북화해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셨던 장기천 감독회장의 아들이기도 하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인 것 같다. 지금 미국감리교 내 평화위원회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전담할 사역자를 두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미국 전체 한인 목회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Consultation with Ecumenical Leaders]
셋째 날 28일 오전 9시 감리교빌딩에 다시 모인 우리는 미국교회협의회와 함께 일하는 평화일꾼들이 북한을 위해 일하는 저들의 사역 얘기를 들었다. 두 총무의 인사말이 있은 다음 우리 측에서는 노정선 교수께서 대표발언을 하였고, 이어 이 건물에 함께 사무실을 갖고 있는 미국장로교(PCUSA) 사회국에서 총무로 일하다 미국장로교 총회 교단본부 총무(the Stated Clerk)로 지난달에 선출된 넬슨 목사(그는 첫 번째 흑인이었고, 공교롭게도 당일 오후 그를 환송하는 파티가 있었다), 감리교를 대표하여 Levi Bautisa(co-chair of East Asia Forum)와 정희수 감독, American Friends Service(퀘이커)의 Dan Jasper, Episcopal Church의 Lacy Broemel, Pax Christi International(가톨릭)의 Judy Coode, Mennonite Central Committee의 Charissa Zehr 그리고 Maryknoll Office for Global Concerns(가톨릭)의 Gerry Lee 등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자신이 속한 기관들이 어떤 일들을 하여왔는지를 발표하였다.
흥미로웠던 발표는 American Friends의 Dan이 직접 저작한 <Engaging North Korea>란 제목의 책자였다. 이전 쿠바나 베트남, 라오스 등등의 적대 국가들과의 정상외교 전 미국의회의 지도력과 재정 도움으로 민간인들의 만남과 문화 교류가 먼저 있었던 사례들을 쭉 나열하고 이를 책자로 만들었다. 그리곤 북한에 대해서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선행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는데, 현재는 많은 의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매우 고무적인 이야기였으며 그런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했다. 물론 미국보다 남한이 먼저 북한과의 민간교류에 앞장 서야 할 것임은 당연한 일이었다.

[Presbyterian Church(USA)]
쉬는 시간 나는 넬슨 목사에게 가서 나를 소개했다. 왜냐하면 내가 한때 몸담았던 미국장로교단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총회의 총무로 부임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바로 이곳 워싱턴에서 사회국 총무로 6년간을 일하였을 뿐더러 흑인이라는 점에 상당히 호감을 갖게 된 것이다. 그에게 나는 이곳 수도노회 회원 출신으로 16년간 이곳에서 한인교회를 섬겼고, 노회장을 역임했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이 수도노회에 참석을 해도 한국인들이 별로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는 그간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난 6월 중순 포틀란드에서 진행된 총회에서 결의한 한반도 평화협정안에 따라 평화협정 서명운동을 막 시작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런데 창피스럽지만, 나는 다음의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그가 앞으로 겪을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넬슨목사님, 당신이 그간 여기서 사회국 총무로 있으면서 세계 정의와 평화운동 특히 한반도 문제에 대해 활동한 일에 대해 깊이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당신이 앞으로 총무로 부임하면서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지금 한반도 평화협정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건 부끄럽게도 교단 내의 한국교회이다.” 그러자 그는 깜짝 놀란다.

[Korean Church Leaders in Presbyterian Church(USA)]
사실 나는 작년 6월과 7월 미국의 United Church Christ(오바마가 소속된 매우 진보적인 교단)와 Disciple 교단 총회에 기장 대표로 초청을 받아 이 두 교단이 한반도평화 헌의안을 통과시키는 일에 참여하여 세미나도 인도하고 총회에서 발언도 하였다. 물론 이 한반도평화통일방안은 두 교단에서 절대 다수로 통과가 되었고, 이번 대륙횡단 시에도 적극 환영을 해주었다. 그때 나는 올해 미국장로교 총회에서도 이러한 한반도평화통일 안건이 상정되어 통과되는 것을 희망하여 내가 소속했던 수도노회에 접촉을 했고, 몇 달간의 자체 논의를 거친 후에 수도노회에서 이를 담당하겠다고 하면서 한인교회들의 협력을 요청하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한인총무 목사님을 통해 한인교회연합회(약 350개 교회) 총무 임원단에 이를 안건으로 내놓았는데, 이를 거부했던 것이다. 이때 나는 실망을 넘어 분노가 일어났다. 아니 미국교회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일하겠다는데, 당사자인 한국교회가 이를 거부한다니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30년 전에도 이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90년대 남북관계가 한참 어려울 때에도 북의 종교정치지도자들을 초청한 것은 미국장로교회였다. 이를 주도하셨던 이승만 목사님이 갑작스레 돌아가신 일이 너무나 아쉬웠다. 남한 정부가 그렇듯이 미국 내의 한인장로교회 또한 오히려 뒷걸음을 친 것이었다. 이에 비해 미국감리교단의 한인목사님들 가운데 한반도 평화문제를 위해 일하는 목사들이 많은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사실 조선일보는 이번 우리가 미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평화협정 서명운동을 친북이라고 비난했다. 평화협정을 반대하면 전쟁을 하자는 입장인데, 그들은 전쟁을 하나의 소꿉장난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살아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굳이 북한이 핵무기를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남쪽에 있는 24개의 핵 원전 가운데 서너 개만 폭탄을 맞아 터진다면 한반도 전체는 100년 동안 사람이 살수 없는 황무지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난 평화협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전쟁이 일어나면 외국으로 도망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평화협정을 반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목숨이 두개이든가. 하여간 백보 양보하여 친정부 종미의 조선일보는 그렇게 우리를 비난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나 어떻게 목사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만드는 일꾼이 되라고 하셨고, 그럴 때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평화를 만들어내는 일은 친북/친남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다. 그런데 예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들이 어떻게 평화를 반대하는 발언과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분들은 무엇을 갖고 설교하는지 알 수가 없고, 누구를 향해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겉으로는 예수를 믿고 따른다고 말하고 실제는 자기를 믿고 세상을 따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Press Conference]
휴식이 끝나고 나서 며칠 전에 공고한대로 SNS를 통한 기자회견이 약 40분 동안 진행되었다. 대상은 미국 전체의 2천개 언론기관의 기자들이었다. 물론 당일 참여한 기자들은 약 90명이었고, 다수는 종교계 기자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기자회견을 핸드폰을 통해 SNS로 하는 것을 보면서 시대와 나라의 격차를 느꼈다. 사실 남한에서 기자회견은 한 자리에 모여서 한다. 기자 대부분이 서울에 거주하고 있으니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미국은 땅덩어리가 너무 넓다. 그리고 지금 모든 언론은 민주당 전당대회에 가있다. 그러니 이것이 가장 좋은 방식이었다. 화면을 통해 먼저 미국교회협의회 총무 Jim Winkler 목사의 인사말 이어 노정선 교수께서 위원장으로서 이번 평화협정문의 취지 발언을 하였고, 이어 Nelson 목사, Levi Bautista, 이문숙 목사, 서보혁 교수가 각각 발언을 하였다.
분단 71년 정전협정 63주년을 맞이하며 남북이 겪는 수많은 아픔과 고통을 얘기하고 이를 해결하는 길은 평화협정임을 모두가 동의하고 이를 위한 길에 모두가 나서줄 것을 요청하였다.
발표가 끝나자 트위터를 통해 질문이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미국교회 교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는데, 이에 대한 답변으로
- 교단의 관련 책임자나 미국교회협의회의 도움을 통한 교육이 필요하다
-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미 상원/하원 지역 의원들에게 전화하기
- 평화협정 백악관 청원 서명하기(카드 혹은 SNS)
두 번째 질문은 이전에도 많은 남북 평화운동들이 있어왔는데, 이번 평화운동의 특징은 무엇인가?
- 남쪽 교회협의회가 공식적으로 선언한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구체적인 평화협정안을 제시하는 것이며, 북의 교회가 공식적으로 승인한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은 인식하고 있다. 이는 이미 세계교회협의회가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백악관 청원을 위한 10만인 직접 서명을 받고 있는 일이다. 이는 전쟁을 막는 구체적인 행동으로서 사드(THAAD)가 도입이 되면 평화협정이나 핵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큰 어려움이 예상됨을 역설하며 이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

[White House]
화상 기자회견을 마친 후 우리는 샌드위치를 먹고 일부는 백악관 안으로 들어가서 Allison M. Hooker, Director for Korea, National Security Counsil과 Melissa Rogers, Executive Director of the White House Office of Faith-based and Neighborhood Partnerships와 회담을 갖고 나머지 일행은 백악관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였다. 나는 3년 전 당시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으로, 이후 6자회담 차석대사로 있다가 지금은 미8군으로 자리를 옮긴 사일러(그는 한국말에 매우 능통한 미정보국에서 30년을 일한 대북정보관이다)와 2시간 대화를 나눈 적이 있기에 오늘은 백악관 시위를 책임지기로 했다.
우리 일행은 약 20분에 걸쳐 기도로 시작하여 “We Are Peacemakers!”, “End the Korea War!”, “Korea Peace Treaty Now”, “No THAAD in Korea” 등등의 피켓과 구호를 외치고 ‘We shall overcome’ 노래를 반복한 다음, 약간의 행진을 하고 다시 백악관을 향해 서서 내가 “Mr. Obama, In the Name of God, I Demand Your Repentance!”라고 외친 다음 20초간 모두가 함성을 질렀다. 이런 과정에서 백악관 관광을 왔던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사진도 찍고 또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평화협정 안내용지도 나누어 주었다. 그러면서 조금 그늘에 앉아 쉬고 있자 백악관 안에 들어갔던 팀이 나왔다. 우리는 다시 모여 구호를 외치고 모두가 빙 둘러서서 손에 손을 잡고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다같이 부른 다음 Jim Winkler 총무목사의 기도로 모든 공식적인 순서를 마쳤다.
Winkler 목사는 백악관 앞에서 이렇게 구호를 외치는 피켓 시위는 처음이라고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였다고 말한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한국 교회를 위해 3일을 꼬박 함께한 그의 헌신과 정성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백악관 회담에 참여했던 분들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회담은 잘 진행이 되었지만, 미국은 자신들의 수천 개의 핵은 정당시 여기면서도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하는 적대시 정책을 바꿀 의도가 별로 없어보였다.
[Holocaust Museum]
일부는 펜실베이니아의 퀘이커본부가 있는 펜들힐로 가고 나머지는 유대인 학살 기념관으로 갔다, 나는 여기 방문이 세 번째이고 이스라엘과 독일, 폴란드의 여러 홀로코스트 수용소들을 다녀본 관계로 많이 아는 얘기이자 익숙한 장면들이지만, 홀로코스트 기념박물관을 들어갈 때마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악랄한 동물인지 그리고 이념에 한번 사로잡히면 인간은 쉽게 악마로 변하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우리도 물론 제주 4.3항쟁을 비롯해 이념갈등으로 인한 수많은 동족 학살들이 있었다. 여기에는 단지 군인들만이 동참한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여기에 동조했다. 사실 히틀러는 유대인만 학살한 것이 아니다. 지체장애인들과 정신장애인들, 집시인들, 동성애자들 모두를 학살했다. 어떻게 아무런 해악도 끼치지 않는 사람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인간성 자체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당시 이 일에 앞장선 게시타포들은 모두 대학을 나온 엘리트들이었다. 도대체 배움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학위가 무슨 소용이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1년에 여기에 드나드는 관람객이 180만이라고 한다. 지금 이 근처에는 스미스소니언이라는 유명한 박물관들이 줄지어 있고 조금 있으면 개장할 Afro-american 박물관이 있는데 이 모든 박물관들의 관람이 무료이다. 우리도 이런 인간의 의식을 새롭게 깨우칠 박물관들을 만들고 이를 무료화해야 한다. 우리는 무료는 없다. 그리고 있다는 것도 평화박물관이 아닌 전쟁박물관이다. 거기에는 거짓의 천안함을 설치해 놓고 있다. 역사는 진실을 알고 있다. 히틀러의 동조자들은 자신들이 승리할 것으로, 그리고 모든 거짓은 감춰질 줄 믿었다. 그러나 역사는 결국 진실을 드러내고 만다.

[성찰과 감사]
3일간의 워싱턴 일정을 마치면서 우리 모두는 왜 우리의 통일문제를 남과 북 우리끼리 해결하지 못하고 이곳 미국까지 와서 이들에게 호소를 해야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약소민족으로서 깊은 서러움을 느꼈다. 물론 미국이 남북분단에 직접 책임이 있고, 북을 계속 적대하는 정책을 펴고 있기에 미국을 설득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왜 우리 남한은 전시작전권도 없는 허수아비 나라가 되었는가에 대해 깊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실제적인 도움도 되지 못할뿐더러 동아시아의 평화를 더 어렵게 만들어가는 사드(THAAD)를 도입하는 미국의 하수인 국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렇게 될 경우 남북간의 평화협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이제는 중국과 미국 간에 분쟁이 일어날 경우 한반도는 중국의 첫 번째 공격 목표가 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재 우리는 OECD 국가 중 가장 긴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전체 노동자의 반수가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생계조차도 제대로 꾸려가지 못하는 낮은 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결국 재주는 곰이 넘고 돈 주머니는 주인이 챙긴다고 우리는 열심히 일을 하지만, 남한은 최고의 군사비 지출을 하고 있고 이 가운데 상당부분이 미국산 무기 구입과 미군 주둔비용으로 소요되고 있으며 주식과 채권을 통한 기업 이익의 상당 부분 또한 미국의 소수 자본가들에게 넘어가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결국 통일이 되지 못하면 미국 예속은 단지 정치와 군사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 부분에까지도 임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우리 남한은 진정한 독립국가가 될 수 있으며 언제나 우리 남북한이 통일된 국가로 세계 평화를 주도하는 그런 나라가 될 수 있을까? 내 생전에 그런 날이 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끝으로 나는 급한 사정으로 대륙횡단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여기에 참가한 이들은 하루도 쉼 없이 매일 밤 10시가 다되어 호텔에 도착하여 잠만 자고 다시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빡빡한 일정을 감당해야만 했다. 이들 가운데는 캐나다연합교단의 선교동역자인 캐더린 목사는 나이도 많거니와 몸도 그리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일정을 소화했으며 미국장로교 선교동역자인 커트 목사는 운전은 물론 다른 잡일까지도 기쁘게 감당해 주었다. 깊은 감사를 드린다.
조헌정 목사  news@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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