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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창준 객원기자
- 승인 2025.08.0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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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가 한미 관계에서 자주적 입장을 올곧게 견지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안다. 본인 스스로가 인정했듯이 민주당은 보수 정당이고, 이재명 정부 역시 보수 정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나 보수가 공통적으로 견지해야 하는 최소한의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한국이 미국의 전쟁에 끌려들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그 자체로 종속적이고 전쟁지향적인 조약이다. 그것을 제대로 지켜도 문제가 되는 판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한미 관계를 동맹조약의 범위를 넘어서는 지경으로까지 끌고갔다.
바이든은 미국의 전쟁에 한국이 깊숙이 편입시켰고, 윤석열을 이를 수용했다.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은 이재명 정부가 해야 할 필수적 역할이다. 8월 25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요구하는 것 역시 동맹조약의 범위를 넘는 것이다. 주권국가의 대통령이라면 이런 요구는 당당히 거부해야 한다.
윤석열의 한미 합의를 무효로 한다는 입장을 밝혀야
윤석열은 한미군사 협력을 동맹조약에 명시된 한반도를 넘어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했다. 2022년 6월 21일 바이든을 만나 한미동맹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격상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조약의 발동 조건으로 “태평양 지역에서의 한국과 미국의 영토에 대한 무력공격”으로 규정했다. 글로벌은 조약의 범위를 넘어선다.
2023년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윤석열은 한미일 군사협력의 범위를 “인도태평양과 그 너머”로까지 확대했다. 이 역시 조약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한미일 정상회담의 합의문이라는 점에서 일본과의 군사협력 범위 역시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이 합의는 더 큰 문제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한미일 다영역 군사연습, 프리덤 엣지 중단을 천명해야 한다. 프리덤 엣지는 미국의 새로운 대중국 전쟁개념인 ‘다영역전’을 실행하는 군사연습이다. 연습이 진행되는 장소 역시 ‘제주도 남방 공해상’ 즉 동중국해이다.
또한 윤석열은 미국 핵전력과 한국 재래식전력의 통합을 합의했다. 2023년 한미 정상이 채택한 워싱턴 선언 후 핵협의그룹(NCG)이 창설되었고, 여기서 핵-재래식 통합(CNI)이 합의된 것이다.
한국의 재래식 전력이 미국의 핵전력을 지원하는 개념인 CNI는 사실상 미국의 핵작전에 한국군이 동원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군은 미국 핵전략의 하위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여기서 미국의 핵작전 범위는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중국 핵작전에 한국군을 동원하겠다는 구상에 윤석열 정부가 합의한 것이다.
동맹 조약 범위를 넘는 이런 내용들이 한미 워싱턴 선언,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선언, 한미 핵작전지침, 한미일 안보협력프레임워크 협력각서 등을 통해 합의되었다. 이런 합의들의 원천 무효를 선언해야 한다.
트럼프의 ‘동맹 현대화’를 거부해야
트럼프가 요구하는 ‘동맹 현대화’는 전략적 유연성, 대중국 전초기지화, 안보 비용 전가를 요소로 한다.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대만 등 한국 영토 밖에서 연합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대중국 전초기지화는 주한미군 기지와 한국군 기지를 대중국 전쟁 기지로 만드는 작업이다. 안보 비용 전가는 한국의 방위비분담금과 국방비를 인상하여 미국의 국방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합의할 당시 우리 정부는 동북아 지역의 경우 한국 정부와 상의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트럼프는 주한미군이 대만 분쟁에 개입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하지만, 문제는 우리 정부가 반대하고 거부할 수 있는 법적 장치와 논리적 근거가 충분히 갖추고 있다.
한편 트럼프는 한국군 역시 대만으로 출병해 미군과 연합작전을 펼칠 것을 요구한다. 대만 지역으로의 한국군 출동 문제는 전작권에도 해당하지 않는 주권 사항으로, 헌법상에 명시된 군통수권의 영역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미국과 협의할 대상 자체가 되지 못한다.
주한미군의 대중국 전초기지화는 오래 전부터 추진된 사항이다. 미본토 방어를 위한 미사일방어체계는 사드가 배치된 것 역시 미국을 향해 발사되는 중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다 빠르게 탐지하기 위해서였다. 2022년 우주군이 주한미군에 배치된 것 역시 대중국 전초기지화의 일환이었다.
트럼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중국 공격용 무기 체계인 F-16, F-35A 등 전투기를 주한미군 기지에 집중 배치하고 상시 운용하려 한다. 이들 전투기가 배치된다면 주한미군 기지는 유사시 중국의 공격 대상이 된다.
국가의 역할은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트럼프의 대중국 전초기지화는 한국을 전쟁에 연루시키고, 우리 국민을 타국과의 전쟁 피해에 노출시키는 행위이다.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제대로 된 대통령이다.
방위비분담금과 국방비 인상 요구는 정상회담 의제조차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미 지난해 방위비분담금 12차 특별협정을 체결했고, 국회 비준동의까지 완료되었다. 트럼프의 재협상 요구는 근본도 없고, 명분도 없다.
국방비 인상 여부 역시 주권 사항이므로 미국 대통령과 협의할 성격이 아니다.
트럼프에 ‘NO’ 하는 것은 국민주권 정부의 최소 필요 조건
이재명 대통령은 본인 스스로 국민주권 정부를 자임했다. 국민주권은 대내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하고, 대외적으로 자주를 지향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한미 관계에서의 오롯한 자주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강경한 대중국 군사정책을 마련하고, 그 군사정책에 한국을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당당히 거부하라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가 요구하는 ‘동맹 현대화’가 사실은 ‘전쟁 현대화’임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미국의 전쟁 전략에 종속된 한국을 원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동맹 현대화’ 요구는 그 어느 것이 되었건 동맹 조약을 벗어나고, 우리의 헌법에 명시된 주권의 범위를 뛰어넘으며, 우리 국민의 안전과 생존을 위협한다. 이런 요구마저도 거부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국민주권 정부라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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