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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9일 금요일

‘노정교섭’ 경험 쌓은 보건·건설, 이재명 정부서도 잰걸음



[노정교섭과 국회 사회적 대화 4] 이재명-양경수 경기도판 노정교섭 경험도 주목

  • 남소연 기자 nsy@vop.co.kr 
    • 발행 2025-08-29 11:08:49
    보건복지부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의 노정실무교섭이 극적 타결된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서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과 나순자 보건의료노조위원장이 지난 2021년 서명한 합의서를 교환하고 주먹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1.9.2 ⓒ뉴스1

    불통과 탄압으로 점철된 윤석열 정권이 파면당하고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이 노정교섭의 불씨를 이어가기 위해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과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건설산업연맹)이다. 두 노조 모두 최근 정부와의 대화 테이블을 만들고, 각 산업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에 착수했다.


  • 보건의료노조는 지난달 21일 보건복지부와 실무 협의를 통해 ‘9.2 노정합의’에 담긴 과제를 이행하기 위한 협의를 지속하고, 그사이 추가로 제기된 보건의료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새로운 노정 간 대화 모델을 마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같은 합의 사항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실무 협의체는 내달 본격 가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보건의료노조와 복지부 사이 이뤄진 ‘9.2 노정합의’는 우리나라 노정교섭 역사상 의미 있는 합의로 꼽힌다. 당시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최전선에 있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공공의료 강화와 의료 인력 확충이라는 노조의 요구에 대한 전국민적 공감대가 모아졌다. 보건의료노조와 정부는 3개월여 간 13차례 교섭을 통해 감염병 전문 병원 설립 및 코로나19 치료 병원 인력 기준 마련, 생명안전수당 제도화, 공공병원 확충, 간호사 대비 환자 비율 법제화 등 구체적인 정책 과제들을 합의하고, 합의 이행을 점검하는 이행협의체도 정기적으로 운영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라는 커다란 벽을 만나면서 제동이 걸렸다. 합의의 핵심인 공공의료 확충이 아닌 단순 의사 증원만을 밀어붙이고, 이에 대한 반발을 누그러뜨리려 의사 달래기용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자 정기적으로 진행된 이행협의체 논의도 2023년 6월 이후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더욱이 당시 정부가 의료 개혁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었던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보건의료노조 등 양대노총 소속 노조가 아닌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를 포함하면서 사실상 노정 대화 자체가 멈춘 시기였다. 9.2 노정합의를 통해 해결하려던 보건의료현장의 구조적인 문제가 표류하는 상황에서 의료 대란까지 겹치자 보건의료노동자들의 고통도 한층 극심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9.2 노정합의 이행은 새 정부에 요구해야 할 최우선 과제였다. 보건의료노조가 대선 전인 지난 5월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와 맺은 정책 협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내용 역시 ‘9.2 노정합의 정신에 기초한 새로운 노정 협치 실현’이었다.



    보건의료노조는 9.2 노정합의와 이번에 추가로 맺은 복지부와의 합의를 토대로 보건의료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진전된 방식의 사회적 대화를 고심 중이다. 9.2 노정합의 4주년을 맞는 내달 2일에는 대규모 국회 토론회를 열고 노조의 구상을 공론화하고, 전문가와 정부의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기획실장은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노정교섭이라는 수단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보건의료산업에 대한 노조의 정책 개입을 추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가장 효율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한다는 의미가 있기에 노조에서도 힘을 들이는 것”이라며 “(그간의 경험을 돌아볼 때) 더욱 더 제도화된 방식을 통해서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사회적 대화나 초기업 교섭을 통해 국회 논의 등 각 과정에서 필요한 조치를 발전적으로 논의하는 게 좋겠다는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2017년부터 노정교섭 이어온 건설산업연맹, 올해로 벌써 10번째
    노정교섭 통해 ‘체불 근절’, ‘안전 강화’ 건설현장 변화 이끌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4월 2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청 앞에서 열린 건설노동자 산재사망 추모 위령제에서 사고로 떠난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2025.4.23 ⓒ뉴스1

    윤석열 정부가 ‘건폭’으로 몰았던 건설산업연맹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랜 기간 정부의 공식적인 대화 파트너였다. 과거에도 건설산업의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수시로 소통을 이어왔지만, 공식적인 노정교섭을 시작한 건 2017년부터다. 노조 탄압이 극에 달했던 2023년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매년 1~2차례씩 노정교섭이 진행돼, 올해로 10차 노정교섭에 접어들었다. 노조 탄압의 여파가 계속된 지난해에도 건설산업연맹은 대화를 주저하던 정부를 끝까지 설득해 대화 테이블로 끌어냈다. 노정교섭이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경험을 쌓아가기 위한 노력이었다.



    노조 설립 후 비정상적인 건설현장을 바로잡는 데 매진해 온 건설산업연맹은 노정교섭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를 통해 건설현장의 불합리한 관행과 부조리한 제도를 바꿔냈고,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했던 건설노동자들의 노동환경도 개선할 수 있었다. 건설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들의 의견이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과제를 제시하고, 제도 개선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교섭과 투쟁을 병행해 온 결과다.



    대표적인 성과가 ‘건설기능등급제 도입’과 ‘공공 공사 임금직접지급제도’다. 건설기능등급제란, 건설노동자의 경력과 교육, 자격증 소지에 따라 기능별로 등급을 산정해, 숙련공인 건설노동자를 제대로 대우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제도다. 임금직접지급제도는 고질적인 건설현장 체불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전까지 건설사가 발주자로부터 공사비를 제 때 받더라도 건설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임금을 다른 곳에 쓰면서 임금 체불이 일상적으로 이뤄졌는데, 이를 근절하기 위해 발주자가 직접 건설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도록 한 것이다. 이 외에도 강풍에도 안전하게 견딜 수 있도록 타워크레인 고정 방식을 벽체 지지 고정 방식으로 바꾸고, 전담 신호수를 배치하는 등 안전한 건설현장을 만들기 위한 제도 개선 역시 노정교섭을 통해 이뤄질 수 있었다.



    올해 노정교섭은 국토교통부만이 아니라 고용노동부와도 추진할 예정이다. 노동부와는 29일, 국토부와는 내달 5일 만날 예정이다. 핵심 의제는 건설현장의 근원적인 문제인 불법 다단계 하도급 근절이다. 최근 산재 근절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공개 국무회의에서 불법 다단계 하도급 문제를 “고질적인 문제”라고 짚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국토부와 노동부가 협업해 건설현장의 불법 다단계 하도급 등 구조적인 문제의 근본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건설산업연맹에서 오랜 기간 노정교섭을 담당해 온 송주현 정책실장은 이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매우 좋은 신호”라고 평가했다. 송 실장은 “노조가 20여 년간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안전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얘기를 했지만,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이 대통령은 (그간의 행정 경험으로) 건설을 아는 사람이라 현장에 어떤 규제가 필요한지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 공사비 거품을 없애기 위해 공공 발주 건설공사 원가 내역을 전국 최초로 공개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송 실장은 “그간 이 대통령이 한 지시들은 굉장히 고무적”이라면서도 “실현이 되려면 빨리 진행돼야 한다. 정권 초기라는 골든 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앞서 건설산업연맹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근절하기 위해 현재 공공 공사에만 적용되는 임금 직접 지급 시스템을 민간 공사로 확대하고, 불법 고용을 하는 업체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건설안전기본법 개정을 비롯한 선제적인 예방과 함께 사후 제재 강화 대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송 실장은 “우리가 하는 요구는 단순 민원성 요구가 아니다. 노조를 만나면 알지 못했던 (현장의) 이야기를 해주는구나, 노조를 만났더니 실제 현장의 갈등이 줄어들고 건설현장이 나아졌다고 느낄 수 있는 요구를 노조가 제안해 온 것”이라며 “(정부와) 협의하지 않으면, 각자 위치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현장을 바꿔내야 건설노동자들도 살 수 있다. 정부 역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반드시 들어야 건설산업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산별노조와 함께 민주노총 차원에서도 이재명 정부와의 노정교섭을 추진 중인 가운데, 양측 수장이 지역 차원의 노정교섭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점도 주목된다. 민주노총 경기본부는 2018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사회서비스원 설치, 대학생 노동인권 교육사업 등을 의제로 경기도와의 정책 협의를 추진해, 이듬해 선언문까지 도출해 냈다. 민주노총과 지방정부 간 노정교섭을 진행한 첫 사례였다. 당시 민주노총 경기본부장은 양경수 현 민주노총 위원장이, 경기도지사는 이재명 대통령이었다. 이 선언을 계기로 경기도는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대학교 노동인권 강좌 지원 사업을 시행해, 점차 확대하는 중이다.



    지난 2019년,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도청 상황실에서 양경수 민주노총 경기도본부장과 함께 '경기도-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노정교섭 협력 선언식'을 열고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제공 = 경기도북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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