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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3일 금요일

"이제 무노조경영 불가능... 삼성은 변화 선언해야"

[인터뷰] 노중기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다 해고된 김용희 씨의 강남역 25m 높이 CCTV 철탑 고공농성이 4일이면 300일이다. 김 씨는 공식 사과, 복직, 해고기간의 임금 지급 등을 요구하며 한 평도 안 되는 철탑 위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삼성은 답이 없다.
돌아보면 삼성에는 수많은 김용희가 있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30여 년간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유지했음을 떠올리면 당연한 일이다.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다 실패한 수많은 사람 중 지금 철탑에 올라가며 싸우고 있는 사람이 김 씨일 뿐이다.
그간 어떤 이유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가능했을까. 다른 한편 변화가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
지난 달 31일 사당역 근방 커피숍에서 노중기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를 만나 삼성 노조탄압의 역사에 대해 물으며 이에 대해 들어봤다. 노 교수는 '노동정치체제'라는 개념을 통해 한국사회를 분석해왔다. 노동정치체제는 '노동과 자본, 국가의 전략적 상호 작용이 구조화된 틀'을 뜻한다.

 
87년 민주화 이후 정부 정책 기조가 크게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여러 사업장에서 노조가 생겼다. 삼성은 유독 노조 무풍 지대였다. 노 교수는 "합법적으로는 이런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삼성이 로비 등을 통해 국가 기구 전반을 '관리'했다"며 "경총, 보수언론 등도 함께 움직였다"고 말했다.

 
그래도 2011년 삼성에버랜드노조 설립 이후 삼성에서는 제대로 된 노조가 설립되고 유지되기 시작했다. 작년 12월에는 삼성에버랜드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한 삼성의 노조 파괴 행위에 대한 유죄 판결도 나왔다.
노 교수는 "2000년대 이후 비정규직 확산으로 노동자의 삶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것, 민주화 이후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가 확대된 것 등이 원인으로 작용해 삼성 무노조 경영 전략이 더는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이런 변화는 구조적이기 때문에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 교수는 "삼성이 무노조 경영 전략을 포기한다는 것은 노동을 배제하고 억압해 이윤을 만들어온 한국 자본주의 축적 체제의 본진이 무너짐을 뜻한다"며 "노동자는 물론 한국 자본주의의 합리화와 개혁을 위해서도 삼성이 빨리 그런 선택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 노중기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삼성 무노조 경영 전략 폐기, 그래도 낙관한다" 
프레시안 : 김용희 삼성 해고 노동자 고공농성이 4월 4일이면 300일이다. 어떤 생각을 했나?
노중기 : 우선 불편하고 힘들다. 강남사거리에 자주 가는 편은 아니지만 김용희 씨가 올라간 철탑이 있는 8번 출구 쪽을 쳐다보면 괴롭다. 당하는 사람이야 훨씬 안타깝고 안 됐다. 
 
노동자의 극한 저항을 40년 가까이 봐왔다. 그런데 사회가 변하면서 '이것 좀 안 봤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한 10년 전부터 진지하게 들었다. 아직도 고공농성이 노동자들의 유력한 투쟁 방안이 되는 현실이 불편하고 힘들다.
이명박 정부 때 민주노총이 한진중공업 김진숙 씨를 보러 가는 희망버스를 조직했다. 그때 두 번 정도 참가했다.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고공농성 같은 극한저항을 노동운동의 관행이나 전술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안다. 고공농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기 때문에 터져 나오는 것이다. 터져 나오면 지원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노동운동의 중심 사업으로 고공농성을 배치하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노동운동 내부에도 이런 문제의식은 있다. 
프레시안 : 노동자의 저항이 개인의 극한투쟁에 기대는 방식이 아니라, 노동운동 진영 전체의 조직적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그간 주로 저술해온 노동통제 혹은 노동정치체제의 관점에서는 어떤 생각을 했나.
노중기 : 지금의 고공농성은 문제가 풀리는 과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큰 틀에서는 한국의 노동 억압 체제가 해체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옛날의 낡은 모습이 계속 되는 지점이 있다.  
 
노동 체제의 변동과 관련해서 보면 근본적으로 낙관한다. 소망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해석한다.

"삼성은 노동 억압적인 한국 자본주의 축적체제의 본진" 
프레시안 : 삼성이 한국의 노동 통제 혹은 노동정치체제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나. 
노중기 : 노동 통제 혹은 노동정치체제는 한국 자본주의의 핵심고리 중 핵심고리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자본주의는 지질하고 더럽고 추접하고 억압적인 방식으로 이윤을 내서 성장해왔다. 
삼성은 한국 자본주의의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기업이다. 경쟁력, 조직관리, 사회적 영향력, 이미지 등 모든 면에서 한국자본주의를 대표하는 탑클래스 기업이다. 그리고 탑클래스 재벌이다. 대한민국 재벌 체제를 대표한다. 이런 삼성을 뒷받침하던 지배 시스템 전체와 관련된 문제가 노동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노동통제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불법파견 판결, 노조파괴 판결을 받은 삼성전자서비스는 삼성그룹이나 삼성전자라는 큰 틀에서 보면, 삼성전자서비스는 작은 작은 사양 산업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회사에서도 무노조 경영을 못 놓는다. 
지난 80년 간 노동을 배제하고 억압해서 이윤을 냈던 한국 자본주의에 여러 겹의 기지가 있다고 생각하면 제일 본진이 삼성이다. 본진인 삼성이 무너지면 한국의 노동 통제는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전투로 비유하면 삼성은 군단 본부 사령부다. 앞에 GM사단, 현대사단이 대규모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전쟁에서는 지고 있다. 그 여파가 이제는 삼성까지 오고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삼성의 무노조 전략이 다른 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말인가. 
노중기 : 삼성 무노조 전략이 있어서 쌍용차 노동자 탄압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대우가 가능했다. 삼성 무노조 전략이 있어서 2010년대 초반에 기업이 용역 폭력배를 동원해 노동자를 두들겨 팬 사건이 가능했다.
그런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데 맨 밑바닥에서 정당성과 가능성을 제공한 게 삼성이다. '삼성은 노조 없이도 운영하는데 왜 우리는 노조 때문에 부담을 져야 돼?' 노조파괴 노무법인인 창조컨설팅 심종두가 사회적으로 던진 질문이다. 기업이 볼 때 심종두는 돈만 주면 삼성의 무노조 전략을 관철해주는 사람이다. 삼성이 100개가 넘는 기업을 거느리고 있지만 노조가 없다. 그러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GM대우 같은 외국 기업도 한국에 들어오면 전부 노조 때려 부수려고 한다. 유럽에서는 불가능하니 안 하는 것뿐이고, 한국에서는 가능하니 한다. 그게 가능함을 보여주는 게 삼성의 노동탄압이다. 
▲ 강남역 CCTV 철탑 위에서 생활 중인 김용희 씨. ⓒ프레시안(최형락)
"삼성의 무노조 경영 전략 뒤에는 국가가 있었다" 
프레시안 : 삼성의 노조탄압 역사 이야기를 하면서 풀어가 보자. 유독 이병철 삼성그룹 전 회장의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노조는 안 된다"는 말은 유명하다. 이런 경영방식은 어디에서 비롯했나. 
노중기 : 이병철의 기업 운영이나 인사관리, 노무관리 모델은 일본 제조업 재벌이다. 2차 대전 때 일본 제조업 재벌은 노조를 가혹하게 탄압했다. 노조가 없는 게 당연했고 있어도 어용노조였다. 전후 15년 정도에 걸쳐서 일본 노동운동이 폭발했다. 그때 삼성이 모델로 삼았던 제조업 중심 기업 미쓰비시 등에서 엄청난 쟁의가 있었다. 일본 자본이 50~60년대 넘어오면서 노조를 때려잡았다. 어용노조도 활용했다. 일본의 기업 모델 중 노조가 작동하지 않는 모델이 이병철의 기업 모델이었다. 
이병철이 기업을 경영하던 기간이 박정희, 전두환 경제 성장기와 겹친다는 점도 중요하다. 말하자면 장시간 저임금 노동 체제가 민주노조를 완전히 억압하는 체제와 결합되어 있었다.

 
'노조 억압을 어떻게 실현하느냐'는 문제에서 삼성은 노조를 무력화하는 노하우를 만들고 이데올로기도 만들고 기업 관행도 만들었다. 삼성의 이런 기업 전략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등의 노조 배제 정책, 억압 정책과 맞물리면서 장기적으로 성공해왔다. 
이게 삼성전자가 후발 전자 회사로 일본 유수의 전자 기업을 추월하고 세계 최고 전자 기업이 될 수 있었던 주요 동력 중 하나라고 본다. 삼성의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병철의 무노조 전략은 자본 입장에서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프레시안 : 87년 민주화 이후 삼성을 제외한 다른 기업에서 수많은 노동조합이 생겼다. 
노중기 : 87년 이후부터 97년 외환위기 사이의 시간을 나는 87년 노동체제라고 부른다. 독특한 노동정치 환경과 구조가 만들어진 시기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정치사회는 민주화됐지만 노동사회는 여전히 전두환 체제다. 그 사이에 모순이 생겼다. 노동자에게 싸울 수 있는 근거가 생긴 거다. '왜 대통령은 내 손으로 뽑고 사회에 나가면 시민인데, 공장 안에만 들어오면 노비처럼 살아야 하냐. 못 참겠다. 작업장도 민주화 해라.'

 
작업장을 민주화하는 건 당시 제조업 기업 관점에서는 심각한 비용 부담이었다. 우리가 가진 기술력이나 생산력에 비하면 아주 낮은 인건비로 일본의 조선 공장을 전부 아웃시키지 않았나.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질은 좀 떨어지지만 값이 워낙 쌌다. 제품 가격의 원천은 인건비다. 
그래서 국가와 기업이 전력을 기울여서 민주노조 설립을 막았다. 노조 만드는 것까지는 되는데 한국노총까지만 돼. '민주노조는 안 돼.' 빨갱이 노조라서 안 된다고 하지만 이건 욕하거나 선동할 때 하는 말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민주노조로 제대로 싸우면 한국 자본주의가 망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위협감이 있었다. 그래서 끝까지 버텼다.
노조 문제가 1차로 터지는 데는 제조업이다. 그래서 과거 제조업 그룹 노사가 심각하게 붙었다. 가장 대표적인 데가 현대다. 현대 중공업. 현대 자동차. 매년 엄청난 쟁의가 벌어졌다. 공공부문에서는 지하철, 철도에서 매년 큰 쟁의가 벌어졌다. 이렇게 싸운 시간이 10년이다.

 
10년 동안 개별 사업장에서는 국가와 자본이 백퍼센트 이겼다. 그런데 97년 날치기 노동법 규탄 겨울 총파업 때 국가와 기업은 '10년 동안 민주노총을 때려잡으려 했는데 결국 민주노총은 만들어졌고, 노동조합의 힘은 커졌다. 우리가 전투에서는 수도 없이 승리했지만 전쟁에서는 패배했다'고 느꼈다.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자본 일부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이해했다. 이를 감지한 국가는 정리해고를 도입하는 한편으로 민주노총을 합법화하고, 전교조도 합법화했다. 현장에서도 민주노조라고 하는 현대자동차, 대우자동차 노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제도적 변화가 일어났다.

 
프레시안 : 삼성에서는 민주화 이후 10년 동안 기록에 남아있는 제대로 된 노조가 없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노중기 : 삼성은 노조 확산 흐름으로부터 상당한 정도로 무풍지대였다. 
현대와 삼성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현대는 중공업 중심이다. 삼성은 상대적으로 경공업 중심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삼성 주력 산업 중에 중공업은 삼성중공업밖에 없다. 나머지는 전자, 서비스, 섬유, 금융이다. 현대는 중공업 사업장을 많이 갖고 있다 보니까 노조와 먼저 부딪쳤다. 삼성은 삼성중공업을 잘 장악했다. 
그러다가 1995년에 삼성이 대규모 제조업 사업장을 만들었다. 90년대 초반에 삼성이 자동차 산업에 진출한다고 할 때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노태우 정부 경제관료, YS 다 반대했다. 강력한 로비로 2년 만에 다 뒤집었다. 결국 지금 르노에 인수된 자동차 사업을 세운지 2년도 안 돼서 망했다.

 
왕창 망하는 바람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직접고용 노동자가 최소 2, 3만명 잘렸다. 1차, 2차 하청업체 노동자를 합치면 약 10만 명이 해고당했다. 엄청난 문제였다. 이건희 회장이 자동차 공장에 사운을 걸겠다며 삼성전자에서 데려간 젊고 뛰어난 인력들도 다 잘렸다. 
노동쟁의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외환위기 한복판이었다. 회사가 생긴 지도 얼마 안 되니까 노조도 제대로 없고 노동자들이 저항할 힘도 없었다.

 
여기에 뛰어난 관리 통제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조직의 삼성이라고 한다. 조직의 삼성이 다른 말이 아니다. 삼성 무노조 전략 뒤에는 삼성만 있는 게 아니다. 권력기관이 다 결합돼 있다. 사법, 언론, 정부와 기업 유착 등과 관련해 말끔하게 정리하지 못한 문제가 집중되어 있는 데가 삼성이다. 다른 데서는 많이 무너졌다. 삼성은 2000년대까지 넘어왔다. 그걸 보여주는 사건이 2005년 X파일 사건이다. 
프레시안 : X파일 사건의 어떤 점이 그런 면을 보여주나.

 
노중기 : X파일 사건은 삼성 그룹이 불법 대선 자금, 고위 검사 뇌물 등을 이야기한 도청 파일이 폭로된 사건이다. 삼성이 검사들에게 수백억 원을 추석 떡값으로 돌렸다. 명절 때 수백억 원이니까 급한 사안을 두고 직접 로비할 때는 어땠겠나. 자기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다 돈을 주는 거다. 일상적 관리가 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직접 그 일을 하는 부서에서 일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면 삼성은 정부·청와대 정책과 인사에 개입하고, 대통령과도 직접 이야기할 수 있고, 문제가 터지면 법원, 검찰, 행정부서를 관리한다. 삼성 직원이 네트워크를 유지하다, 문제가 터지면 체계적으로 대응했다.

 
이병철이 있을 때는 비서실, 그 뒤에는 기업구조조정본부, 요새는 미래전략실이 그 일을 40~50년간 해왔다.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그냥 상징이 아니다. 
87년 이후에도 삼성에서 제대로 된 노조를 만들려는 시도를 찾기 어려운 이유다. 중공업이 약한 삼성 특성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억압, 은폐, 통제 문제가 크다. 
프레시안 : 외환위기 이후에는 삼성SDI, 삼성일반노조 등 기록에 남은 수많은 노조 설립 시도가 있었다.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나. 
노중기 : 민주화나 노동기본권 보장이 삼성에서는 불가능했다. 나아가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 게 X파일 사건이다. 저는 이렇게 이해를 한다.

 
"비정규직 확산과 민주화 여파가 구조적 변화 만들고 있다" 
프레시안 : 그래도 그 뒤에는 기록에 남는 노조 설립 시도가 있다. 어떤 변화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하나.
노중기 : 삼성의 무노조 전략과 관련해서 외환위기 이후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크게 세 가지다.
97년 이후에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졌다. 외환위기 이후 재벌 기업 절반이 망했다. 안 망한 기업은 마른 수건도 또 짜는 식으로 기업을 운영했다. 경쟁력, 효율성, 인건비 절감, 비용 절감을 위해 무한경쟁 시스템을 도입했다.
정규직 필요 없는 데는 다 비정규직으로 바꿨다. 아웃소싱, 소사장제, 하청 시스템, 자동차 모듈화를 동원해서 정규직을 줄였다. 정규직은 자기들끼리 경쟁시키고 못 견디면 잘랐다. 나머지는 저임금으로 착취했다. 이게 신자유주의의 슬림화, 유연화다. 이걸 삼성도 대규모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삼성에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전에도 삼성전자서비스 업무를 내부에서 관리했지만 (노동자의 어려움이) 이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햇수가 갈수록 점점 심각해진다. 여기에 첨단장비를 이용한 감시가 들어오니까 사람이 죽을 지경이 된다.
외환위기 이후 제조업뿐 아니라 비제조업 비정규직의 싸움도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프레시안 : 외환위기 이후 노동자의 삶이 나빠지면서 노조 설립 시도가 생겼다는 이야기 같다. 또 어떤 변화가 있었나.
노중기 : 자본주의가 변하면서 옛날에는 문제되지 않던 게 점점 문제가 된다. 대표적인 게 산업재해다. 1980년대 같았으면 황유미가 그렇게 문제가 안 됐을 거다. 그런데 이제 시민 사회가 이런 사태를 용인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황유미 문제는 터지자마자 시민 사회가 결합했다. 삼성도 방어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무리수가 터졌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이슈를 만든 힘의 절반은 황유미 사건에서 나왔다고 본다. 둘은 별개의 사건이지만 (황유미 사건으로) 삼성전자가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한쪽에서는 산업재해가 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면서 비정규직의 분노가 축적됐다. 그 힘이 삼성으로 향했다.
90년대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민주노총도 외환위기 이후 합법노조가 돼서 삼성에서 일어나는 일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제1노조가 됐다.

 
프레시안 : 민주화 이후 사람의 생명이나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었다는 이야기 같다. 마지막으로는 어떤 변화를 꼽나. 
노중기 : 법치주의가 강화됐다. 이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나는 노동에서 신자유주의 논리를 유지하는 두 힘이 시장만능주의와 법치주의라고 본다. 신자유주의를 파시즘 비슷한 거 아닌가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신자유주의가 절차적·정치적 민주주의 위에 있다고 본다. 그 핵심 내용 중 하나가 법치주의다. 시장만능주의를 하면 피해 보는 사람이 생긴다. 패배하는 사람이 저항하기 마련이다. 그걸 법치로 규율한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제도화됐는데, 이에 맞물리는 법치주의가 상당히 잘못됐다. 노동자는 법을 지키라면서 반대편은 마음껏 법을 어긴다. 
그나마 시간이 흐르면서 법치주의가 절차적 민주주의 원리와 맞물려 달리 해석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삼성의 법원 관리가 완벽히 작동하지 않게 됐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판결을 받았는데 90년대 같으면 법원이 어떻게든 (삼성에 유리한 쪽으로 판결을) 만들었을 거다.

 
프레시안 : 인터뷰 초반에 삼성 무노조 경영 전략에 대해 그래도 낙관적이라고 이야기했던 게 이런 변화들 때문인가.
노중기 : 삼성이 무노조 전략으로 갈 수 없다고 보는 건 앞서 열거한 이 같은 변화가 구조적이기 때문이다. 삼성 무노조 전략은 법을 다 지키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법을 어기고, 끊임없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야만 유지할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의 변화한 조건-노사 관계, 절차적 민주주의, 변화하는 사법기관, 시민 사회의 성장-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삼성에서 지금껏 유지되는 노조가 설립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삼성에버랜드노조 이후다. 왜 2011년인가?
노중기 : 중요한 제도적 변화가 있었다. 2011년 7월 기업 단위 복수노조가 합법화됐다. 삼성이 무노조 전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복수노조 금지 조항이 있기 때문이었다. 
87년에 삼성에 노조 만들려는 흐름이 없었던 게 아니다. 그때 창원이나 마산에서 노조 만드는 흐름이 강력했다. 거제도에 있는 대우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그 옆 삼성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밖에 나가서 술 마시면 전부 고등학교 친구고 형님, 아우 하는데 당연히 노조 만들자고 했을 거 아닌가.

 
당시에 삼성이 북한의 오호담당제(5가구마다 한 명씩 선전원을 배치해 주민의 삶을 간섭, 감시하는 제도) 비슷한 제도를 시행했다. 직원들이 서로 감시하게 하고 찌르면 승진시켰다. 노조 만들려는 사람이 포착되면 납치해서 데려다가 술 마시면서 '이번 일만 넘어가면 내년에 아파트 하나 사줄게'하는 식으로 회유했다는 말도 들었다. 김용희 씨는 협박도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밤에 두 세 명이 숨어서, 보안 철저히 해서 노동청에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하면 그거 받는 공무원이 맨 먼저 삼성 노무과에 전화한다. '노조 설립 신고 들어왔는데 너네들도 빨리 가져와라.' 그러면 삼성 노무과에서 가져온 신고증을 먼저 받는다. 어용노조를 먼저 만들어버리는 거다. 그때도 노조가 만들어졌다면 굉장히 많이 만들어졌다. 지금 삼성전자서비스노조도 삼성전자서비스에서 4번째로 만들어진 노조다. 
복수노조 금지 무너질 때 제일 급한 회사가 삼성이었다. 그래서 삼성 그룹 차원에서 준비한 게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폭로한 삼성 노조파괴 문건인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이다. 
▲ 김용희 씨가 고공농성 중인 철탑 근처에 있는 조형물. 김 씨가 주장하는 그의 사연이 적혀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삼성그룹 차원에서 무노조 경영 전략 폐기 선언해야" 
프레시안 : 작년 12월 삼성전자서비스, 삼성에버랜드 노조 파괴 유죄 판결이 나온 뒤 삼성의 노조 전략이 변하고 있다고 보나. 
노중기 : 이런 문제에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들이 제일 예민하다. 삼성 노동 문제와 관련해 계속 이야기 듣고 자료도 모으니까. 그 사람들 글을 보니, 삼성이 에버랜드나 삼성전자서비스나 문제된 사업장에서는 대국민사과 하고 인정한다는 취지의 사과문을 제시했지만, 한번도 그룹이나 경영자 차원에서 답한 사례는 없다.
문제는 같은 기간에 다른 사업장에서는 옛날 방식으로 여전히 (노무관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거다. 그룹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무노조 관련 입장을 바꾼다고 한 적은 없다고 봐야할 것 같다. 
지금도 경영진 한편에서는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바뀌듯 정권 바뀌면 돌아간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황교안 같은 사람으로 바뀌면 모르겠지만, 합리적 보수라고 이야기되는 사람 정도로만 바뀌어도 삼성이 옛날처럼 하기는 어렵다.
장기적으로는 무노조 원칙을 포기하도록 온 사회가 채찍질하는 게 삼성그룹이 돈을 더 많이 버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황유미 때나 X파일 사건 때 삼성이 경영 전략을 바꿨다면 이재용이 감옥 갈 일은 없었을 거다.
그런 점에서 제대로 현실을 읽는 경영능력이 필요하다. 이재용 가까이에 있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룹 경영진에 그런 능력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불행한 일이다.

 
프레시안 : 삼성의 무노조 경영 전략이 다른 기업에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다른 기업들에서는 변화가 있나.
노중기 : 2018년 말에 삼성 무노조 경영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과 관련해서 경제인총연합회에 관한 토론회를 한 적이 있다. 경총이 삼성 무노조 전략에 직접 개입했고 한 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 다음에 개혁 세력이라고 송 모를 불러왔더니 반대파가 벌떼 같이 달려들어서 날아갔다. 과연 한국 재벌이 노동에 대한 태도를 바꿀 거냐. 당시 경총 사태에서 보면 바꿀 생각 없다는 게 드러난 토론회였다. 
일본과는 좀 다르게 경총은 한국 자본의 대(代)노동 전략에서 보면 행동대다. 뒤에 자본이 있고, 그 자본의 핵심은 재벌이 만든 전경련이다. 경총의 노무관리 기본 전략 목표는 무노조다. '노조는 깨는 게 맞다. 한국노총까지는 봐준다. 민주노총은 깬다.' 이게 전략이다. 심종두가 경총에서 7~8년 근무했다. 그걸로 네트워크 만들어서 독립해서 돈 벌었다.
한국 자본이 계속 노동 배제 전략을 쓰면 한국 자본주의의 합리화와 개혁은 더 미뤄질 거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자본주의는 노동과 관련해서 더 큰 비용을 써야 할 거다. 노동자의 고공농성 같은 일이 더 나오고, 기업 입장에서는 경쟁력의 발목을 잡을 거다. 안타까운 일이다.

 
프레시안 : 삼성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노중기 : 삼성그룹 차원에서 무노조 전략 폐기를 선언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의미도 있다고 본다.
시민 사회나 민주노총은 계속 변화를 요구할 거다. 앞으로도 계속 노조가 만들어지고 다툼이 생길 거다. 그때마다 무노조 문제가 계속 부각되고 압박 받을 거다. 그런 선언이 나오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이건 잘 모르겠다.
삼성 문제는 단순히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 노동 배제 전략의 마지막 보루인 삼성의 노동 전략이 어디로 가느냐는 한국 사회 노동 문제를 보는 시금석이다. 삼성이 확실히 바꾸면 아마 용역깡패를 동원해서 노동자를 두드려패고 노조를 파괴한다는 전략, 창조컨설팅 전략은 역사의 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게 충분히 안 됐기 때문에 김용희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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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40315103315536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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