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만년 전 숲 토양 화석 발견…“고농도 온실가스가 초래”
한반도 경상도와 남해안 일대에 공룡이 어슬렁거리던 9000만년 전, 남극은 얼음 대신 온대우림 숲으로 뒤덮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남극에서 얼음을 사라지게 한 당시의 극심한 온난화는 대기 속 고농도의 이산화탄소가 일으킨 것으로 나타났다.
요한 클라게스 독일 알프레드 베게너 연구소 지질학자 등 국제연구진은 2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서남극 해저 시추조사 중 바다 밑바닥에서 27∼30m 깊이의 지층에서 당시의 환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육상 퇴적층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중생대 백악기(1억4400만∼6600만년 전)는 지구 역사상 가장 더웠던 시기의 하나로, 열대 바다의 표면 온도는 35도에 이르렀고 해수면은 지금보다 170m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시의 고 기후와 환경이 구체적으로 어땠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자들이 발견한 3m 길이의 시추 코어 부위는 잘 보전된 숲 토양이 이암으로 굳은 것인데, 빽빽하게 엉긴 뿌리망과 함께 수많은 꽃가루와 포자를 포함하고 있었다. 연구에 참여한 울리히 잘스만 영국 노섬브리아대 교수는 “수많은 식물 잔해는 9300만∼8300만년 전 서남극 해안에 뉴질랜드 남섬에서 아직도 볼 수 있는 온대우림이 자라는 늪지대 경관이 펼쳐졌음을 가리킨다”라고 이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이 시추 코어를 엑스선 컴퓨터단층촬영 해 확인한 식물에 비춰 당시 남극 대륙에는 키 큰 나한송과 남양삼나무 등 침엽수와 나무고사리가 서 있고 늪지대 바닥엔 키 작은 프로테아과 꽃식물이 뒤덮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추에서 공룡 화석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백악기에 세계적으로 공룡이 분포했고 기후조건이 공룡 서식에 적합해 남극에서도 공룡이 살았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보았다. 남극 반도 끄트머리에서는 이 시기 하드로사우루스 등 공룡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
이 연구는 남극점에서 900㎞밖에 떨어지지 않은 남위 82도의 남극에 어떻게 우림이 형성될 수 있느냐는 수수께끼를 남긴다. 이런 위도라면 남극의 겨울에 넉 달 동안 밤이 계속된다.
연구자들은 퇴적층을 정밀 분석해 당시 서부 남극의 연평균 기온이 12도(우리나라는 13도)였고 여름철에는 19도까지 올랐다는 결과를 얻었다. “강과 늪의 수온은 20도까지 올랐고, 연평균 강수량은 현재의 웨일스(2464㎜) 수준이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이런 조건이라며 비록 1년의 4분의 1이 밤이라도 우림이 형성될 수 있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보았다.
이렇게 얻은 식생, 온도, 강수량 자료를 토대로 백악기 기후모델을 돌려본 결과, 연구자들은 남극 대륙이 빽빽한 숲으로 덮이고, 남극에 빙상이 없거나 미미하며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높아야만 그런 기후조건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공동저자인 게리트 로만 알프레드 베게너 연구소 교수는 “이제까지 백악기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1000ppm 정도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서 당시 남극의 평균 기온에 도달하려면 대기 속 이산화탄소 농도가 1120∼1680ppm에 이르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400ppm을 갓 넘긴 현재 농도보다 3∼4배 수준이다. 그러나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가 늘어난다면, 대기 속 이산화탄소 농도는 앞으로 300년 안에 1000ppm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이번 연구는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구온난화에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가와, 기후변화를 막는데 극지방 빙상이 햇볕을 반사해 얼마나 큰 냉각 효과를 내는지를 보여준다.
연구에 참여한 토르스텐 비케르트 독일 브레멘대 박사는 “햇빛 한 줄기 없는 날이 넉 달이나 지속하더라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아주 높다면 남극점 근처라도 얼음 덩어리가 없는 온대 기후가 된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남은 연구과제는 이렇게 따뜻했던 남극이 무슨 계기로 식어 수천m 깊이의 얼음으로 뒤덮이게 됐냐는 것이다.
인용 저널: Nature, DOI: 10.1038/s41586-020-2148-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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