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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2일 수요일

최장집 "박근혜 탄핵되면 촛불의 명예혁명"


"朴정부 붕괴는 대전환점…도전적 태도 버린 야당"
임경구 기자   2017.02.23 08:51:29

"위험에 처해 있던 한국 민주주의가 촛불 시위에 힘입어 이제 다시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는 넓은 가능의 공간이 열렸다."

대담은 '촛불'에서 시작됐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촛불 시위는 1987년 민주화 이래 최대의 사건일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될 대사건"이라며 "정치적 수준에서 볼 때 대규모 시위에 관한 한 분명 세계 최고를 자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이 타오르던 때, "운동의 강렬한 열정이 장기간 유지되기 어렵고,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려우므로 대의 민주주의 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방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제도 밖에서 분출된 에너지에 경계심을 보인 바 있다. 

그 때와 달리 최 교수가 이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을 "세계적 차원의 모델"이라고 극찬한 이유는 신간 <양손잡이 민주주의>(후마니타스 펴냄)에 실린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과의 대담에 잘 설명되어 있다. 

최 교수는 "양손잡이 민주화의 등장은, 한국 민주화를 위해 촛불 시위가 만들어 낸 가장 큰 공적"이라며 "촛불 시위는 한국 정당 체계를 양극화시켜 왔던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를 해체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보수 정당의 분화로 비박계가 박 대통령 탄핵에 합류한 점에 주목하며 "보수가 극우적 분파와 합리적 보수로 분열됨과 아울러 이른바 친박계 보수를 주변으로 밀어내는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책 제목이 '양손잡이 민주주의'인 까닭도 최 교수가 진보적 민주파들, 즉 '왼손잡이 민주파'(기존 야당)와 보수적 민주파들, 즉 '오른손잡이 민주파'(비박계 탄핵 찬성파)가 손을 잡고 헌법적 절차에 따른 탄핵을 이끌었다는 점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는 "대규모 집회의 요구와 압력을 통해 대통령이 자진사퇴하거나 여론의 힘에 의해 퇴진하기보다, 헌법적 절차에 따라 퇴진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며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헌법, 즉 법의 수단에 의해 정상화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탄핵을 통해 헌법적 절차를 따라, 폭력적 방법이나 피를 흘리지 않고도 대통령이 교체될 수 있는 희귀한 사례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분명 이 경험은 대통령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실례를 보여주는 것이고,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고 있음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민주주의의 생생한 교훈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최 교수는 "(박 대령에 대한 탄핵이 완성될 때) 탄핵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촛불 시위에 대해 명예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모든 관심은 헌법재판소에 쏠려 있다. 최 교수는 "헌재가 얼마나 헌법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할 것인지 명백히 드러나게 될 것"이라며 "박-최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국가기구의 중심이 되는 국회와 헌재가 얼마나 민주적인지, 민주적이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분명하게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만약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거나 찬미하는 사회적 힘이, 개발독재를 신화화하는 발전주의 이데올로기나 반공 보수주의를, 헌법적‧이성적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문제와 접맥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문제는 다른 수준으로 옮겨갈 수 있다"며 "그런 힘들이 촛불 시위를 혐오하고, 촛불 시위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 두려움을 동원하는 데 성공한다면, 탄핵을 둘러싼 갈등은 이념 대립의 차원으로 옮겨갈 수 있을지 모른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소위 '태극기 집회'에서 드러나듯, 헌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된 탄핵이 극우 세력의 이념 갈등 교란에 휘말릴 가능성에 대한 경고로 풀이된다. 

▲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이번 대선은 '중대 선거'…야당, 현상타파 못할 것" 

최 교수는 탄핵 심판 직후 본격적으로 전개될 차기 대선과 관련해선 정권 교체 가능성을 높게 전망하면서도 "그래서 그 다음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어떤 정권교체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그들(야당)이 어떻게 국가를 운영하고, 어떤 아젠다를 설정하고, 행정관료 체계를 지휘해 어떻게 자신들의 개혁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했다.

그는 "과거 야당은 두 번이나 집권했지만, 개혁은 그만두고라도 무엇인가 뚜렷하게 남긴 것이 없다"며 "이 점이야말로 개혁적 정당들에게는 넘어서야 할 가장 중요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최 교수는 이어 "촛불 시위 이후 다가오는 대선은 탄핵 과정에서 드러난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대 선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붕괴는 한국의 현대 정치사에서 민주화에 이어 두 번째의 정치적 대전환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경쟁하는 정당과 후보들 간의 정책 공약에서 나타날 가치나 이념의 차이는, 레토릭 수준에서는 격렬하고 커보일지 몰라도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정당들은 여전히 과거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기능 이익으로 분화되지 않은, 추상화된 다수를 대표하기 위한 경쟁에 몰입하고 있다"며 "서로 추상적인 다수에 호소하기 위해 상대의 공약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므로 상호 정책적 포섭이 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레토릭이 듣기는 좋을 수 있어도 사회구조를 실제로 변화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두 야당(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으로 하여금 기존의 정부 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는 정책 프로그램을 제시해 현상을 타파하려는 도전적 태도보다, 안정적인 통치 능력을 보여 주는 방향으로 당과 대선 주자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 교수의 이 같은 진단은 사회경제 정책에서 구체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보수‧중도층 표심을 겨냥해 급격한 우경화 행보를 걷는 야당과 대선주자들의 태도에서 확인된다.   

그는 "더민주당 쪽이 특히 더 심하다. 박-최 사태로 드러난 대통령의 무능함과 실정, 부패와 리더십 파탄에 대해 과격하게 대응하기보다, 비판을 절제하면서 집권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지 않은 온건한 대응이 현명하다고 전략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결과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라고 지적했다. 

그만큼 아직 야당을 비롯한 한국의 정당 체계가 취약하다는 진단이다. 최 교수는 "냉전 시기 국가 건설과 전쟁, 남북한 간 적대 관계의 지속으로 말미암아 진보적 이념이 자리잡기 어려워 정치 경쟁의 이데올로기 지평이 극히 협소하다"며 "이런 특성 때문에 한국의 정당 체계는 이념적 대립이 격렬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 정책과 대외 관계 등 중요 정책 영역에서 별 차이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사회의 엘리트 계층, 지식인, 전문가 집단들은 과다 대표되고,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등 사회의 기능적 이익들은 거의 대표되지 못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이렇게 넓게 열린 공간과 예기치 않게 다가온 구질서의 치명적 약화 내지 해체가, 밖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응할 수 있고 안으로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원리에 부응하는 정치 질서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인지, 아니면 위로부터의 개혁을 통해 구질서를 다른 형태로 복원하게 될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다"며 "정당과 정치인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합리적 대안은 조절된 시장경제와 결선 투표제" 

결국 촛불이 열어놓은 넓은 '가능성의 공간'에 무엇을 채워 넣을 것이냐는 숙제가 남은 셈. 이와 관련해 최 교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요소가 결합된 "조절된 시장경제"를 강조했다. 

국가와 재벌 동맹 해체가 화두가 된 지금, 최 교수는 "과거와 같이 '발전 국가'가 주도하는 제조업 발전, 수출 중심 경제성장과 경제 운영 방식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며 "(반공주의 같은) 이념적 경직성과 폐쇄성, 관료주의에 의한 위계주의와 획일성은 새로운 시대의 기업 환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유물"이라고 했다. 

또한 "노동자들이 노사 관계의 파트너로 인정되는 문제는,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기업 운영에 협력하고 기여할 수 있는 '코포라티즘(노사협력적 관계)'적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과 병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의 입장에서도 국가권력이 주도하는 관치 경제하에서 국가권력에 종속적인 파트너가 되어 기업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에 부응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시시때때로 헌납을 강요받는 것보다, 민주적 가치에 부응해 노동운동을 인정하고 민주적 노사 관계를 받아들이는 쪽이 훨씬 명분이 있으며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이어 권력구조 문제와 관련해선 "대통령중심제를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면서도 "대선을 치르는 일,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해체를 마무리하는 과정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과 개헌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사려 깊고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성급한 개헌 논의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그는 "비상한 대선은 비상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 방식으로 결선 투표제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대선 기간이 짧더라도 정당들이 합의하기만 한다면 (결선 투표제 도입을 위한) 법률 개정은 전혀 어려울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은 대선 관련 선거법을 개정해 결선 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이라며 "지금 할 수 있는 바로 그것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정권교체에 가장 근접해 있는 더불어민주당도, 헌법적 질서에 따른 탄핵에 참여해 '양손잡이 민주주의'의 기회를 열었던 비박계 바른정당도 '지금 할 수 있는 바로 그것'을 방기하고 있는 정치 현실은 여러모로 모순처럼 보이기만 한다. 
임경구 기자 hilltop@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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